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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20; 2023 > Article
安岳 圓覺洞 73호 지장시왕감*: 도상학적 재검토

Abstract

資陽市 安岳縣 圓覺洞의 73호 지장시왕감은 1980년대에 학계에 소개된 이래로 四川 지역의 대표적인 “지옥변상”으로 회자되어 왔다. 또한 1980년대 말 제기되었던 이 감실의 주존을 비롯한 일부 부조 장면이 목련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이 현재까지도 관련 연구에서 종종 인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73호감의 부조 장면과 관련 미술 및 문헌 자료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73호감에 대한 이와 같은 기존의 설명에는 재고의 여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73호감은 가운데에 주존으로 지장보살을 두고 그 양측면에 시왕을 대칭적으로 배치하는 전형적인 지장시왕도의 도상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정벽 하단 좌측에서는 염라왕의 심판장에서 고난 속에 있는 망자를, 우측에서는 오도전륜왕의 심판장에서 삼악도에 떨어질 운명으로부터 구제받게 된 망자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지옥과 목련이야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대체로 시왕의 심판 장면을 지옥에서의 형벌 장면으로 오인하였던 듯하며, 부조 장면과 목련이야기에 대한 상세한 검토 없이 양자를 무리하게 연관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Dizang and the Ten Kings in Niche no. 73, at Yuanjue Grottoes in Anyue, Ziyang, has been considered one of the most famous transformation tableaux of hell (diyu bianxiang) in the Sichuan Basin since it was first introduced by the local scholars in the 1980s. At the time, it was suggested that some relief-scenes in the niche, especially the central figure and its lower part, illustrate the story of Mulian, and this hypothesis continues to be occasionally cited in the academic literature to this day. However, my reexamination of the relief-scenes and related visual and literary materials reveals that the previous discussions on the niche must be reconsidered. In this paper I argue that the arrangement program of the reliefs in the niche follows the typical iconography of Dizang and the Ten Kings, which places Dizang in the center, with the Ten Kings surrounding the bodhisattva in a symmetric composition. In addition, on the bottom left of the main wall are the dead suffering at the court of Yanluo wang, and on the right are those who were saved from the fate of the three evil destinies (san edao) at the court of Wudao zhuanlun wang. There are no evidences of the hell and/or Mulian story in the niche. It seems likely that previous studies misidentified the relief-scenes of the two kings' courts with punishment in hell and made a loosen connection between the reliefs and the story of Mulian without further scrutiny of text and image.

Ⅰ. 문제의 소지

당대(唐代, 618~907) 말 불교도 사이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환생하기 전까지 3년 동안 열 명의 왕(十王)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이 퍼져가고 있었다.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망자의 다음 생은 이들 시왕의 판결에 따라 정해졌다. 망자가 생전에 예수재(預修齋)를 지내는 등 선업을 쌓았거나 또는 심판의 기간 중 살아있는 가족들이 망자를 대신하여 공덕을 쌓아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망자는 지옥을 비롯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이와 같은 시왕의 심판을 특징으로 하는 사후세계관의 유행과 관련하여 우선 당대(當代)에 등장한 문헌인 『시왕경(十王經)』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1 중국에서 찬술되었다는 것 이외에 그 기원과 관련하여 아직 많은 부분이 모호하지만 이 경전은 늦어도 9세기 말에는 당시 중국의 여러 지역에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2
이 무렵 불교미술에서 시왕이 주요 소재가 되었다는 점 역시 『十王經』 못지 않게 주목된다.3 이전부터 육도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널리 알려졌던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그 주위에 시왕이 배치된 도상형식이 출현하여 성행했다.4 특히 이 도상형식의 대표적인 초기 사례로서 敦煌 지역에서 10세기 무렵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장시왕도(족자 및 석굴 벽화)에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5 그러나 1980년대부터 四川 지역의 불교미술이 학계에 활발히 소개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러한 작업이 누적되어 뒤늦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四川의 지장시왕상이 관련 연구에서 敦煌의 사례에 못지않은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6 그 중에서도 지장시왕상의 초기 사례로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으로는 단연 安岳 圓覺洞의 73호 지장시왕감을 꼽을 수 있다. 73호감은 1980년대 중반에 소개된 이래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지옥변상(地獄變相)”으로 관련 논저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7 또한 73호감의 주존과 그 주변의 일부 장면이 부처의 제자 목련(目連)이 지옥에서 어머니 청제부인(靑提夫人)을 구한 이야기(이하 ‘목련이야기’로 지칭)와 관련되어 있다는 구체적인 분석도 1980년대 말 제기된 이후 근래까지 관련 연구에서 종종 인용되고 있다.8 그러나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목련이야기는 73호감의 부조 장면과 무관하며, 특히 정벽(正壁) 하단의 부조는 기존 연구에서의 판단과 달리 염라왕과 오도전륜왕의 심판 장면으로 양분된다는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아울러 73호감이 지옥 변상, 바꾸어 말해 지옥을 묘사한 것이라는 인식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Ⅱ. 73호감과 목련이야기

四川省 資陽市 安岳縣의 동남쪽 2km 지점에 자리한 雲居山9의 암벽에는 당대부터 송대(宋代, 960~1279)에 조성된 석굴, 감실, 석각이 밀집되어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현재는 이들을 단일 유적으로 묶어 오래전부터 이곳의 한 석굴(9호)을 지칭하던 ‘圓覺洞’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한다.10 그 중 산의 남쪽 암벽(F구역)에 조성된 73호 지장시왕감은 높이 162cm, 너비 272cm, 깊이 111cm 규모로 남서향을 한 방형 단층감이다(Figs. 1, 2).11 감실의 정벽 전체와 양 측벽의 상단에 여러 상이 새겨졌는데, 현재 감실의 동벽(우)과 그 주변은 결실되었다(Fig. 3). 동쪽에 연접한 72호감과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이 벽은 후촉(後蜀, 934~965) 광정(廣政) 4년(941) 무렵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72호감의 조성으로 인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Figs. 4, 5). 72호감의 설계자가 왜 그러한 위치를 선택했는지는 현재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중복 관계를 통해 73호감 이 941년 이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12
73호감의 정벽 중앙에는 높은 단이 있고 그 위 놓인 방형 대좌에 지장보살이 오른쪽 다리를 대좌 아래로 내려뜨린 채 앉아있다. 지장은 두건을 쓰고 왼손으로는 석장(錫杖)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타원형의 물체를 받치고 있다. 지장의 대좌 밑단은 연꽃과 연꽃 줄기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양쪽 가장자리에는 웅크리고 앉은 동물 한 마리(좌)와 지장을 향해 서 있는 인물 한 명(우)이 자리한다. 이 중앙부 양옆으로 펼쳐진 정벽은 상하 두 단으로 나뉜다. 그 중 측벽까지 연장되는 상단에는 시왕 중 여덟 명의 왕이 좌우로 각각 네 명씩 배치되었다(그중 우측벽의 두 왕은 결실되었다). 하단 양측에는 각각 한 명의 왕이 있고 그 주변으로 여러 인물, 귀졸, 동물 등이 밀집되어 있다. 이는 상단의 시왕 옆에 시자가 한 명씩만 배치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하단을 양분하며 지장의 대좌를 받치고 있는 높은 단의 정면에도 업경(業鏡)을 가운데에 놓고 그 주위로 여러 인물 등이 보인다.
1980년대 중반 73호감을 학계에 소개했던 胡文和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감의 일부 장면이 목련이야기와 연관된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13 그는 목련이야기를 담고 있는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과 敦煌 莫高窟에서 발견된 필사본 문서인 「목련연기(目連緣起)」(P2193),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S2614, 921)의 내용과 73호감 지장의 하단에 있는 장면을 비교하였다(Fig. 6).14 지장 하단 받침의 정면에서 좌측 위쪽에는 귀졸이 바닥에 주저앉은 인물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데 胡文和는 머리채 잡힌 이 인물을 목련의 어머니 청제부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 있는 업경 내에 비친 모습은 살았을 때 청제부인이 살생하던 광경이 기록되어 나타난 것이며, 업경 오른편에 있는 인물이 들고 있는 문서는 청제부인이 살았을 때 지었던 여러 업이 이미 저승의 문서에 기록되었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더하여 부처가 목련에게 십이환(十二環)의 석장과 칠보 장식 발우를 내려 주었다는 「목련연기」의 내용을 근거로 석장을 든 73호감의 주존은 지장이 아니라 목련이며, 주존의 대좌 왼쪽 아래에 앉아 있는 동물을 개라고 주장했다.15 이 동물을 개로 본 것은 목련이야기 중 청제부인이 지옥에서 벗어난 후 개로 한 차례 환생한 일을 의식한 판단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에서 여러 가지의 맹점을 본다. 먼저 청제부인의 사후 심판에 대한 문제이다. 胡文和의 도상 판별을 따른다면 73호감 지장 하단의 업경을 중심으로 한 부조 장면은 청제부인의 사후 심판을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업경과 그 주변의 인물을 청제부인과 연관하여 해석하면서 ‘사후 심판’ 혹은 그에 상당하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업경과 업을 기록한 저승의 문서는 모두 사후 심판의 도구이며 실제로 업경이 앞에 있는 청제부인의 생전의 죄악을 비추고 있다는 것은 그가 심판 중이라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16 그런데 胡文和가 참조했다는 목련이야기의 몇몇 판본 중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에서는 청제부인의 사후 심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군(五道將軍)께서는 제(목련)게 일체의 죄인은 모두 왕이 계시는 이곳에서 판결을 받은 다음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셨는데 빈승의 모친은 어찌하여 왕을 뵙지 않고 지나갔습니까?”
장군이 대답하였다.
“세간에는 왕의 대면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가 두 부류 있소이다. 한 부류는 평생 동안 십선(十善)과 오계(五戒)를 닦아 사후에 혼백이 천상에 태어나게 되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생전에 선업을 닦지 않고 온갖 죄를 지어 죽은 뒤에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오. 이들은 왕을 만나지 않고 다만 반선반악(半善半惡)한 사람만이 왕을 뵙고 판결을 받은 뒤 전생(轉生)하여 업연에 따라 응보를 받는 것이오.”17
이상은 저승(“冥路”)으로 간 목련이 어머니의 행방을 찾던 중 오도장군과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이 대화를 통해 어머니 청제부인이 생전에 온갖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서 오도장군에게 심판을 받지 않고 즉각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목련연기」에서는 청제부인이 죽어서 아비지옥에 떨어지도록 스스로에게 저주를 내렸고 그것이 실현되었다고 이야기 할 뿐 사후 심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18 한편 『불설우란분경』에서는 청제부인이 죽은 후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났다고 말한다.19 이와 같이 胡文和가 참조한 세 문헌 중 어디에서도 청제부인이 죽은 후 생전의 일을 심판받았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에서는 청제부인이 사후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목련이야기에서는 73호감의 업경 앞에서 심판을 받는 인물이 청제부인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필자는 지장과 그 하단의 업경을 중심으로 한 장면이 양측벽의 시왕과는 독립된 별개의 장면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 더욱 주의를 요한다. 정벽 하단 좌우측에 있는 두 왕은 상단의 여덟 왕보다 크기도 더 크고 주변에 여러 인물 등이 밀집해 있어 시왕 중에서도 그들을 대표하는 두 왕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우측에 있는 무장(武裝)을 한 왕은 시왕 중 열 번째 왕인 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와 상대되는 위치에 있는 좌측의 왕은 다섯 번째 염라왕(閻羅王)에 해당할 것이다. 이렇게 73호감 하단의 두 왕이 염라왕과 오도전륜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 사이에 있는 장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의 중심에 있는 업경은 『시왕경』과 그와 관련된 불교미술에서 염라왕과 밀접히 관련된다. 『시왕경』에서는 사람이 살았을 때 저지른 죄가 업경에 기록되며 염라왕은 망자를 업경 앞에 세워 그를 심판한다고 말한다.20 73호감과 비슷한 시기인 10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삽도가 포함된 敦煌 발견 필사본 『시왕경』 4점과 삽도만이 그려진 두루마리 1점(이하 이 5점을 ‘삽도본 『시왕경』’으로 통칭)21에는 염라왕의 심판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 좋은 비교가 된다.22 『시왕경』의 내용을 반영하듯 여기에는 모두 업경이 등장한다(Figs. 7, 8). 업경 앞 혹은 주변에 망자가 있고 업경은 살생 등 망자가 생전에 저지른 죄를 비추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염라왕과 업경의 관계에 근거하여 73호감의 업경도 염라왕 심판 장면의 일부인 것으로 파악한다.23
그와 달리 胡文和를 비롯하여 여러 연구자들은 73호감의 하단이 좌측의 염라왕, 가운데의 업경, 우측의 오도전륜왕을 중심으로 하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본다.24 하지만 73호 하단에 있는 개별 구성요소들의 위치, 자세 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상호 관계를 살펴본다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염라왕의 아래에서 업경 앞으로 뛰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열 지어 있는 세 마리 동물이 주목된다(Fig. 9). 이 동물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들은 확실히 염라왕 구역과 업경이 있는 지장 하단 구역의 경계(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즉 연구자들이 상정한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다. 염라왕과 업경이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동물의 배치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는 73호감 하단에서 업경과 그 좌측이 모두 염라왕의 심판 장면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맞은편인 업경의 우측은 그 우측에 있는 오도전륜왕의 심판 장면에 속한다(Fig. 10). 여기에서는 업경의 오른쪽에 두루마리 문서를 들고 있는 인물이 오도전륜왕을 향해 서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도전륜왕도 그에게 호응하는 듯하다. 현재 얼굴이 파손되었지만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를 통해 그가 두루마리 문서, 혹은 그 문서를 든 인물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Fig. 11). 이처럼 (상상의) 경계를 넘어 서로 마주하는 모습은 양자가 각각 분절된 다른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곳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상과 같이 73호감 하단 중 업경과 그 좌측은 염라왕의 심판 장면이며 업경 우측은 오도전륜왕의 심판 장면에 해당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면 73호감은 지장을 주존의 위치에 두고 그 양옆에 협시하듯 시왕이 나뉘어 자리하는, 즉 명계의 판테온(pantheon)을 보여주는 이 시기 새로 등장한 도상형식의 전형적인 예에 해당하며 여기에 염라왕과 오도전륜왕의 심판 장면이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이 판테온에 청제부인의 사후 심판이라는 별개의 내러티브가-실제로 근거는 없지만 설령 존재했다고 하더라도-개입할 여지는 찾을 수 없다.25

Ⅲ. 망자의 고난과 구제

이처럼 73호감 하단이 염라왕의 심판장과 오도전륜왕의 심판장으로 양분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양자를 비교한다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둘 다 사후심판의 장소이지만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좌측 염라왕의 심판장에 있는 망자들은 비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업경 앞에 있는 헐벗은 망자는 귀졸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주저앉아 있다. 염라왕의 책상 왼쪽에는 두 명의 망자가 보이는데 모두 목에 칼을 차고 있다. 더욱이 그중 좌측의 망자는 그 왼쪽에 있는 장대한 귀졸에게 머리채를 잡혀 있다. 그러나 오도전륜왕의 심판장에 있는 망자들에게서 일부 예외를 제외한다면 귀졸에게 통제 받는 모습 혹은 그러한 정황을 암시하는 듯한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
오도전륜왕의 앞에는 여러 인물들이 밀집해 있다. 우선 가장 우측에는 두 명의 인물이 서로 얽혀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이 자신의 앞에 주저 앉아 있는 인물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듯한데 파손과 풍화로 인해 명확치 않다(필자가 앞서 일부 예외라고 했던 이들이다. 그 우측은 72호감으로 인해 파손되었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의 좌측으로 오도전륜왕의 책상 앞까지 열을 지어 있는 여섯 명은 오도전륜왕을 향해 서 있다. 이미 파손되어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불상, 경전 등을 오도전륜왕에게 바치는 혹은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다.26 염라왕의 심판장에 있는 망자들이 귀졸에게 속박되어 자신의 재판장(裁判長)과 마주하지도 못하는 광경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살아있는 가족들이 망자를 위해 불상, 경전 등을 만들어주면 그로 인해 망자가 심판에서 벗어나고 삼악도에 떨어질 운명에서 구제될 수 있다는, 즉 망자가 구제되는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망자가 생전에 쌓은 선업이 심판의 과정 중 밝혀져 구제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어떠한 경우이든 이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망자의 구제이다. 이 메시지는 오도전륜왕의 좌측 아래에 있는 문으로도 이어진다. 이 문의 좌측에는 귀졸이 있고 우측에는 목에 칼을 찬 인물이 자리한다. 필자는 敦煌의 삽도본 『시왕경』과의 비교를 통해 이 문이 지옥의 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삽도본 『시왕경』 중 오도전륜왕 심판 장면의 다음이자 전체 삽도본 『시왕경』의 마지막 삽도에는 지옥이 등장한다(Fig. 12). 판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지옥은 성으로 둘러싸였고 한쪽 벽에 문이 있다. 성벽 혹은 성 안에서 불길이 타오르기도 하며 성벽 안에서 망자가 침상에 누어 형벌을 받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지옥성 문의 앞 혹은 주변에는 귀졸, 망자, 승려가 있다.27 일부 판본에는 여기에 두루마리 문서 다발과 동전 꾸러미가 추가로 그려졌다(P2003, P2870, 구보소기념미술관 소장본28). 이 두루마리 문서는 봉헌용 필사본 경전일 것이고, 동전 꾸러미는 삼보에 재물을 바치는 공덕을 연상케 한다. 경전과 보시를 통한 이 공덕은 아마도 망자의 살아있는 가족들이 그의 명복을 위해 쌓아주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망자는 지옥에서 막 벗어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29 즉 이 삽도가 그것을 보는 자이자 『시왕경』을 읽는 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회향(廻向)을 통해 이미 사후 심판을 마치고 지옥으로 떨어진 망자조차도 구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삽도본 『시왕경』 내에서 이 삽도와 경문의 배치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삽도 다음의 경문은 “열 번의 재(齋)가 다 갖추어지면 십악(十惡)의 죄를 사면하고 그(망자)를 풀어주어 하늘에서 태어나게 한다”30는 구절로 시작한다. 삽도와 호응하는 내용이다.
73호감의 문도 삽도본 『시왕경』의 마지막 삽도와 내용과 구도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업경 오른쪽 아래에 있는 문과 귀졸, 목에 칼을 찬 인물을 삽도본 『시왕경』의 마지막 삽도와 대비해 본다면, 귀졸이 지키는 문은 지옥의 문이며 그 오른쪽에 있는 칼을 찬 인물은 지옥에서 벗어난 망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망자는 귀졸을 향해 합장하여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73호감의 문은 삽도본 『시왕경』의 마지막 삽도보다 간략하지만 마찬가지로 지옥에서 구제되는 망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31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오도전륜왕의 심판장과 지옥은 별개의 장소이다. 하지만 필자는 양자가 망자의 구제라는 주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개념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같은 구획 내에 배치되었다고 본다.
이와 같이 73호감 하단은 좌측 염라왕의 심판장과 우측 오도전륜왕의 심판장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염라왕의 심판 장면을 통해 망자의 심판이라는 비극을, 오도전륜왕의 심판 장면을 통해 망자의 구제라는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대조되는 양자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은 『시왕경』의 찬문을 상기시킨다.
백일, 죽은 사람은 더욱 처량하고 두려워진다.
몸은 형틀에 묶여 채찍질로 상처 입는다.
자식들이 노력하여 공덕을 쌓으면
지옥에 떨어져 오랫동안 고통받는 일을 면하게 된다.32
1년, 이곳을 지나면서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자식들은 어떠한 공덕을 쌓았는가?
육도윤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전을 만들고 상을 만들어 미혹의 나루를 벗어나라.33
찬문에서 말하듯이 3년에 걸친 사후 심판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게다가 어떠한 공덕도 쌓지 못해 삼악도에 떨어진다면 더욱 참혹하다. 그러나 절망으로만 일관되지는 않는다. 살아있는 가족들의 회향(혹은 망자가 생전에 스스로 쌓았던 공덕)을 통해 망자는 사후 심판에서, 심지어 심판의 결과로 이르게 된 지옥에서도 구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73호감의 하단에 이와 같이 대조되는 두 심판장의 모습이 나란히 배치된 데에서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이상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 혹은 연상시키겠다는 조성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Ⅳ. 73호감은 지옥을 묘사한 것인가?

이 글의 모두(冒頭)에서 필자는 73호감이 四川 지역의 대표적인 “지옥변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34 과연 73호감은 지옥을 묘사한 것인가?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의문은 이미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논의했듯이 73호감은 지옥에 떨어진 청제부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 필자가 지옥문(지옥의 입구이자 출구)으로 추정했던 오도전륜왕 구획의 왼쪽 아래에 있는 문을 제외하고는 73호감의 어디에서도 지옥과 관련된 모티프(motif)를 찾을 수 없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73호감에는 지장보살과 망자를 심판하는 시왕 및 그들의 권속이 등장하며35, 정벽 하단에 있는 염라왕과 오도전륜왕의 심판장에서 고난 속의 망자와 구제된 망자 등을 추가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연구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73호감을 지옥변상이라고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이 “지옥변상”에 대한 서술을 살펴보면 정벽 하단에 있는 업경, 귀졸(鬼卒), 철개(鐵狗), 철뱀(鐵蛇) 등이 지옥의 표지로 인식되는 것 같다.36 그러나 업경은 앞서 말했듯이 『시왕경』과 73호감이 조성되던 무렵의 불교미술에서 항상 염라왕과 함께, 즉 염라왕의 심판장에 등장한다.37 귀졸은 지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敦煌의 삽도본 『시왕경』에서는 시왕의 심판장에서 망자를 몰고 가는 귀졸을 흔히 볼 수 있다.38 판별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이는 철개, 철뱀39이 이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보증할 수는 없을 것이다.40
이러한 빗나간 판단의 기저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중에서도 여기서 “지옥시왕(地獄十王)”이라는 인식에 대해 간략하나마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41 73호감을 포함하여 시왕과 관련한 여러 연구에서 시왕이 지옥의 왕이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하는 경우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시왕의 심판장면을 지옥 광경이라고 서술하는 경우 역시 흔히 볼 수 있다.42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당대 말부터 불교도 사이에서 확산되던 시왕의 심판을 특징으로 하는 사후세계관에 따르면 망자의 다음 생은 시왕의 심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점은 敦煌의 삽도본 『시왕경』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삽도본 『시왕경』 중 마지막 시왕인 오도전륜왕의 삽도에는 어김없이 육도(六道)의 모습(혹은 상징)이 등장한다(Fig. 13). 시왕의 심판을 다 받은 망자가 나아가게 되는 여섯 종류의 다음 생을 한 화면에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43 물론 앞서 인용한 목련과 오도장군의 대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생전에 너무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 죽은 후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특수한 사례이다. 이와 같은 환생의 과정을 떠올린다면 시왕의 심판장과 지옥은 별개의 장소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시왕경』에서 시왕과 지옥을 직접 연관 짓는 서술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44 그렇다면 시왕은 어떠한 이유로 ‘지옥시왕’이라고 불리는 것인가? 놀랍게도 이러한 관점에서 시왕과 지옥의 관계에 대해 상세히 논의된 적은 아직 없는 듯하다. 이는 분명 별도의 지면이 할애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상 73호감에 대한 논의는 이와 같이 시왕과 지옥을 더욱 정교한 시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새로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Notes

1) 『十王經』(P.2003) [杜斗城, 『敦煌本《佛說十王經》校錄硏究』 (蘭州: 甘肅敎育出版社, 1989), pp. 3-22]. 잘 알려져 있듯이 현재 전하는 『시왕경』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1900년(혹은 1901년) 敦煌 莫高窟 17굴에서 발견된 50여 점의 필 사본 두루마리 문서이다. 이들 문서에서 이 경전은 여러 명칭을 가지지만 이 글에서는 『시왕경』으로 통칭한다. 『시왕경』 관련 주요 연구로 다음을 참조. 杜斗城, 앞의 책; Stephen Teiser, Scripture on the Ten Kings and the Making of Purgatory in Medieval Chinese Buddhism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4); 蕭登福, 『佛道十王地獄說』 (臺北: 新文豐出版公司, 1996). 여기서 蕭登福은 『十王經』이 7세기에 등장했다고 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2) 필자는 『시왕경』의 유통 시기와 관련하여 『시왕경』에서 강조하는 예수재와 망인재(亡人齋)가 9세기 말 불교도 사이에서 시행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에 주목한다. 근래에 四川省 南充市 營山縣 太蓬山에서 발견된 「大蓬秀立山普濟寺衆修十王生七齋記」는 文德 원년 12월(889) 여성 불교도 24명(혹은 그 이상)이 참여했던 시왕생칠재(예수재)에 대한 기록으로서 현재 透明岩이라고 불리는 암벽에 새겨졌다. 王雪梅, 「四川營山《大蓬秀立山普濟寺衆修十王生七齋記》校錄整理」, 『西華師範大學學報』 哲學社會科學版 2014.6 (2014), pp. 6-10. 이를 통해 예수재의 공덕을 언급한 『시왕경』이 당시 불교도 사이에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敦煌 발견 필사본 『시왕경』 중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하여) 가장 이른 기년을 가진 것은 BD1226이며 그 연대는 서력 기원 908년에 해당한다. Teiser, 앞의 책, p. 240.

3) 『十王經』 등장 이전의 불교미술 및 문헌 자료에서의 시왕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Teiser, 앞의 책, pp. 19-84; 張總「初唐閰羅圖像與刻經: 以《齊士員獻陵造像碑》拓本爲中心」, 『唐硏究』 6 (2000), pp. 1-17; 張總 「十王地藏信仰圖像源流演變」, 『信仰、實踐與文化調適』 上冊, 第四屆國際漢學會議論文集, 康豹, 劉淑芬 主編 (臺北: 中央硏究院, 2013), pp. 193-202.

4) 근래의 조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현재 전하는 이 도상형식의 가장 이른 사례는 四川 資中 西巖 羅漢洞 41호감(893)과 敦煌 莫高窟 8굴 남벽 문 상단 벽화(890년대)이다. 劉易斯, 「四川資中西巖羅漢洞浮雕造像調査與分析」, 『大足學刊』 4 (2020), pp. 145-146; 王惠民, “敦煌所見早期披帽地藏圖像新資料,” in Tenth-century China and Beyond: Art and Visual Culture in a Multi-centered Age, ed. Wu Hung (Chicago: The Center for the Art of East Asia, University of Chicago, 2012), pp. 274-276.

5) 敦煌 莫高窟에서 발견된 지장시왕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Arthur Waley, A Catalogue of Paintings Recovered from Tun-huang by Sir Aurel Stein, K.C.I.E. (London: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and of the Government of India, 1931), pp. 113-114, 239-240, 277-278, 312-313; 河原由雄, 「敦煌畵地藏圖資料」, 『佛敎藝術』 97 (1974), pp. 99-123; 松本榮 一, 『燉煌畵の硏究』 圖像篇, 復刻版 (京都: 同朋舍, 1975), pp. 374-389; Nicole Vandier-Nicolas, Bannières et peintures de Touen-houang conservées au Musée Guimet, vol. 2 (Paris: Editions de la Centre National pour Recherche Scientifique, 1974), pp. 237-257; Roderick Whitfield, The Art of Central Asia: The Stein Collection in the British Museum, vol. 2 (Tokyo: Kodansha Ltd. in co-operation with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1983), pp. 318-319; ジャック・ジエス 編集, 『西域美術: ギメ美術館ペリオ・コレクション』 2 (東京: 講談社, 1995), pp. 317-325; Lokesh Chandra and Nirmala Sharma, Buddhist Paintings of Tun-Huang in the National Museum New Delhi (New Delhi: Niyogi Books, 2012), pp. 178-182. 근래에 敦煌에서 새로 발견된 관련 자료에 대해서는 張小剛, 郭俊葉, 「敦煌“地藏十王”經像拾遺」, 『敦煌吐魯番硏究』 15 (2015), pp. 95-109, 敦煌의 지장시왕도 및 관련 문헌의 개관으로 羅慶華, 「敦煌地藏圖像和“地藏十王廳”硏究」, 『敦煌硏究』 1993. 2 (1993), pp. 5-14; 羅世平, 「地藏十王圖像的遺存及其信仰」, 『唐硏究』 4 (1998), pp. 373-414를 참조.

6) 四川 지역 불교 석굴, 석각 등의 연구사를 개관한 張媛媛, 「四川地區佛敎摩崖造像發現與硏究」, 『石窟寺硏究』 5 (2014), pp. 196-218에서는 1980년대 초 이전을 연구의 ‘개시기’, 1980년대 초부터 20세기 말까지를 ‘발전기’, 21세기 초부터 논고 작성 당시까지를 ‘번영기’로 구분하였다. 2010년대의 연구를 개관한 李飛, 「川渝地區石窟及摩崖造像調査硏究綜述(2011-2020)」, 『四川文物』 (2021), pp. 83-103를 함께 참조. 四川 지역 지장시왕상의 개관으로 江滔, 張雪芬, 「9-13世紀四川地藏十王造像硏究」, 『成都考古硏究』 3 (2016), pp. 331-346을 참조. 총 19기의 지장시왕감을 검토한 江滔, 張雪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四川 지역 지장시왕상의 특징을 제시하였다. 첫째, 감실의 형태는 가로가 긴 장방형이 다수이며 이른 시기에는 감실이 상하 두 단으로 구분되지만 점차 단층형으로 바뀐다. 둘째, 시왕의 심판을 강조하던 부조 장면이 지옥의 형벌이 두드러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셋째, 지장시왕상은 仁壽-資中 일대, 安岳-內江-大足 일대, 大足 일대의 세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나열된 지역의 순서는 조성연대의 순서를 반영한다(p. 340). 여기서 江滔, 張雪芬의 분석을 상세히 검토하지는 않겠지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四川 지역의 지장시왕상에 지옥의 형벌 장면이 두드러진다는 언급에 대해서는 상세한 재검토가 요구된다는 점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이하 이 글의 논의를 참조. 한편 근래에 간행된 지장보살 관련 논저에서 四川 지역의 지장시왕상이 빈번히 언급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張總, 『地藏信仰硏究』 (北京: 宗敎文化出版社, 2003); Zhiru, The Making of a Savior Bodhisattva: Dizang in Medieval Chin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7); 尹富, 『中國地藏 信仰硏究』 (成都: 四川出版集團巴蜀書社, 2009).

7) 劉長久, 胡文和의 논고 이래로 여러 연구에서 73호감을 “지옥변상” 혹은 “지옥변”으로 지칭하였다. 劉長久, 胡文和, 「四川石刻造像藝術概述」, 『社會科學硏究』 1985.6 (1985), p. 71; 胡文和, 「論地獄變相圖」, 『四川文物』 1988.5 (1988), pp. 20-22; 傅成全, 唐承義, 「四川安岳石刻普査簡報」, 『敦煌硏究』 1993.1 (1993), pp. 38-39; 劉長久 主編, 『安岳石窟藝術』 (成都: 四川人民出版社, 1997), pp. 9, 71; 胡文和, 「四川石窟中‘地獄變相’圖的硏究」, 『藝術學』 19 (1998), pp. 44-47; 中國石窟雕塑全集編輯委員會 編, 『中國石窟雕塑全集』 8: 四川, 重慶, 重慶: 重慶出版社 (1999), p. 105; 胡文和, 『安岳大足佛雕』, 佛敎美術全集 9 (北京: 文物出版社, 2009), p. 184. 다음 논저에서는 “지옥변상”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73호감(및 64호감)에 지옥 장면이 묘사되었다고 서술하였다. 張總, 앞의 책, 2003, pp. 195-196; Zhiru, 앞의 책, pp. 152, 154; 成都文物考古硏究所 等, 「四川安岳縣圓覺洞摩崖石刻造像調査報告」, 『南方民族考古』 9 (2013), pp. 416, 419, 424; 王劍平 等, 「四川安岳圓覺洞造像的初步硏究」, 『成都考古硏究』 2 (2013), pp. 340, 344; 胡文和, 胡文成, 『巴蜀佛敎雕刻藝術史』 下 (成都: 巴蜀書社, 2015), p. 79; 于春, 王婷, 앞의 책, pp. 176, 208. 이와 다른 의견도 있다. 陳明光은 망자의 심판과 징벌을 구별해야 하며 따라서 73호감은 지옥변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더 이상의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았다. 陳明光, 「石窟遺存《地藏與十佛、十王、 地獄變》造像的調査與硏究」, 『大足石刻考察與硏究』, 北京: 中國三峽出版社, 2002, pp. 257-260.

8) 胡文和, 앞의 논문, 1988, pp. 20-22에서 이러한 견해가 처음 제기되었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 이후 胡文和의 몇몇 논저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반복된다. 胡文和, 앞의 논문, 1998, pp. 44-47; 胡文和, 앞의 책, 2009, p. 184. 劉長久 主編, 앞의 책, pp. 9, 71-72에서는 (아마도 胡文和, 앞의 논문, 1988에 동의하여) 73호감에 목련과 그의 어머니가 표현되었다고 하였다. Zhiru, 앞의 책, 2007, 154-156에서는 劉長久 主編, 앞의 책, p. 71를 인용하며 73호감(“84호”)에 목련이 묘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반면 주 8에서 언급한 陳明光의 논고는 이러한 견해에 부정적이다.

9) 무성(武成) 3년(910)의 기년이 있는 66호감(69호)의 명문에서 볼 수 있듯이 73호감이 조성되었던 10세기 전반 무렵이 산은 ‘靈居山’으로 불렸던 듯하다. 于春, 王婷 앞의 책, p. 183. 圓覺洞과 관련한 다른 문헌 기록은 王劍平 等, 앞의 논문, pp. 354-355의 주 1을 참조.

10) ‘圓覺洞’이라는 이름은 경력(慶歷) 4년(1044) 혹은 경원(慶元) 4년(1198)에 작성되었으며 현재 8호감(15호)으로 불리는 석각 비문 「普州眞相寺新建圓覺洞記」에서 확인된다. 胡文和, 『四川道敎佛敎・石窟藝術』 (成都: 四川人民出版社, 1994), p. 75; 于春, 王婷, 앞의 책, pp. 24-25.

11) 于春, 王婷, 앞의 책, p. 199.

12) 于春, 王婷, 앞의 책, pp. 193-194, 199, 207. 감실 간의 중복관계가 파악되기 이전에는 73호감의 조성연대가 후촉대보다 늦지 않을 것이라는, 구체적으로는 941년에 조성된 71호감(82호)과 같은 시대일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胡文和, 앞의 논문, 1988, p. 20. 이후 중국의 연구자들은 대체로 이 연대에 동의했던 듯하다. 한편 헨릭 쇠렌센은 조형양식으로 보아 73호감(84호)의 연대가 10세기 전반일 것으로 추정했다. Henrik H. Sørensen, The Buddhist Sculptures at Yuanjuedong in Anyue: The History and Art of a Buddhist Sanctuary in Central Sichuan Province (Copenhagen: Seminar for Buddhist Studies, 1999), pp. 57-58.

13) 주 8과 같음.

14) 『佛說盂蘭盆經』 [T685 16: 779a-c]; 「目連緣起」(P2193) [黃征, 張湧泉 校注, 『돈황변문교주』 6, 전6권, 전홍철, 정병윤, 정광훈 옮김, 서울: 소명출판, 2015, pp. 11-42];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S2614) [黃征, 張湧泉, 앞의 책, pp. 43-140]. S2614는 말미의 간기(刊記)에서 이 문서의 필사가 정명(貞明) 7년(921)에 완료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S2614) [黃征, 張湧泉, 앞의 책, p. 140].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목련이야기의 기원과 발달에 대한 간략한 개관으로 Victor Mair, “Notes on the Maudgalyāyana Legend in East Asia,” Monumenta Serica 37 (1986- 87), pp. 83-93을 참조. 한편 胡文和는 『佛說盂蘭盆經』에서 말하길 청제부인이 죽은 후 아귀지옥(餓鬼地獄)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이는 아귀도(餓鬼道)에서 환생하였다는 구절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佛說盂蘭盆經』 [T685 16:779b].

15) 胡文和 앞의 논문, 1988, pp. 20-21. 「目連緣起」(P2193) [黃征, 張湧泉, 앞의 책, pp. 19, 21]를 함께 참조. 이에 대해 張總은 혹자는 73호감의 주존을 목련으로 보는데 목련이 왜 시왕명부(十王冥府)를 주재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張總, 앞의 책, 2003, p. 196의 주 1.

16) 업경은 당대에 들어 사후세계의 망자가 생전에 행했던 일을 비추는 거울로서 널리 알려졌고, 당대 말에는 시왕신앙으로 편입되어 염라왕(閻羅王)에게 전속(專屬)된 사후 심판의 도구로 인식되었다. 姜守誠, 「‘業鏡’小考」, 『成大歷史學報』 37 (2009), pp. 23-26. 『시왕경』에서 업경은 다음의 두 찬문 중 언급된다. “재일을 지키지 않고 계를 범하며 닭과 돼지를 살육하면, 업경에 [그 일이] 비추어지니 업보란 허황되지 않다. 이 경과 함께 그림과 상을 만든다면 염[라]왕은 [망자를] 풀어주고 죄를 없애기로 판결할 것이다.” 『十王經』(P2003) [杜斗城, 앞의 책, p. 5]. 번역은 필자. 이하 출처를 밝히지 않은 번역문은 모두 필자가 옮긴 것이다. “다섯 번째 7일, 염라왕은 송사하는 소리를 멈추게 한다. 죄인의 마음은 원통하여 달갑지 않다. 머리채 잡혀 고개를 들고 업경을 바라보니, 비로소 생전의 일을 분명히 알게 된다.” 『十王經』(P2003) [杜斗城, 앞의 책, p. 11].

17)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S2614) [黃征, 張湧泉, 앞의 책, p. 79, 판독문(p. 78)과 비교하여 번역문을 일부 수정].

18) “‘나는 네 어미고 너는 내 아들이다. 모자의 정은 그 무겁기가 산과 같거늘 내가 한 말은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험담을 사실로 여기는구나. 네가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니 나는 이레 안으로 목숨이 다하여 아비지옥에 떨어지도록 [나 스스로에게] 저주를 내릴 것이다.’ …… 모친은 주문을 외웠고 명계(冥界)에서는 이 사실을 진즉에 알게 됨에, 이레가 채 못되어 모친은 죽어서 아비지옥에 떨어져 간단없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目連緣起」(P2193) [黃征, 張湧泉, 앞의 책, p. 14. 판독문(p. 13)과 비교하여 번역문을 일부 수정]. 敦煌 발견 필사본 문서 중에는 胡文和가 인용한 이상의 「목련연기」,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 이외에 본래 표제는 없지만 현재 ”목련변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텍스트가 하나 더 있다(BD 8444 [成 096]). 여기에서도 청제부인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고만 할 뿐 사후 심판에 대한 내용은 없다. 「目連變文」(BD 8444) [黃征, 張湧泉, 앞의 책, pp. 142-143].

19) 주 14를 참조.

20) 주 16을 참조.

21) P2003, P2870, S3961, 일본 久保惣記念美術館 소장본, P4523/SP80(Ch.cii.001)을 말한다. 그 중 P4523/SP80은 삽도만이 있는 두루마리이다. 禿氏祐祥, 小川貫弌, 앞의 논문; Stephen Teiser, “Picturing Purgatory,” in Images de Dunhuang: Dessins et peintures sur papier des fonds Pelliot et Stein, ed. Jean Pierre Drège (Paris: Ecole francaise d’ExtrêmeOrient, 1999), pp. 169-197을 참조.

22) 禿氏祐祥, 小川貫弌, 앞의 논문, p. 282; 姜守誠, 앞의 논문, pp. 41-45.

23) 헨릭 쇠렌센도 73호감에 대한 간략한 서술 중 업경이 실제로는 염라왕에 속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73호감에 축약된 사후세계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지장, 시왕, 업경에 비친 죄인을 꼽았다. Henrik Sørensen, “The Meeting of Daoist and Buddhist Spatial Imagination: The Construction of the Netherworld in Medieval China,” in Locating Religions: Contact, Diversity, and Translocality, eds. Reinhold F. Glei and Nikolas Jaspert (Leiden; Boston: Brill, 2017), p. 272. 그러나 그가 꼽은 구성 요소가 사후세계의 그것이 될 수는 있어도 73호감의 부조 장면을 적절히 대변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하 필자의 논의와 비교.

24) 주 9를 참조. 胡文和는 73호감 하단이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보고 가운데 업경을 중심으로 한 장면을 청제부인과 연관 지었다. 따라서 그의 의견을 따르는 연구들은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73호감 하단이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에서도 그러한 구분법을 볼 수 있다. 張總 앞의 책, 2003, p. 195; 成都文物考古硏究所 等, 앞의 논문, pp. 424-426; 王劍平 等, 앞의 논문, p. 344; 于春, 王婷, 앞의 책, pp. 205-206.

25) 이외에 73호감의 주존이 지장이 아니라 목련으로, 지장 대좌 아래에 있는 동물을 개로 보았던 胡文和의 의견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지장의 대좌 양 옆에는 승려(우)와 웅크려 앉은 동물(좌)이 있다. 胡文和가 개로 보았던 이 동물은 실제로는 사자일 것이다. 지장, 승려, 사자의 조합은 대력(大曆) 13년(778) 도명화상(道明和尙)이 죽어서 염라왕을 만난 후 이승으로 돌아오기 직전 지장과 사자(獅子)를 만났다는 이야기인 「還魂記」(S3092)의 내용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陳明光도 이점을 거론하며 73호감을 목련이야기와 연관 짓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陳明光, 앞의 논문, pp. 257-260. 이 조합은 四川 지역의 지장시왕상에서는 드물지만 비슷한 시기 敦煌의 지장시왕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敦煌 발견 지장시왕도 13점 중 9점에서 이 조합이 확인된다. 다음을 참조. 河原由雄, 앞의 논문, pp. 115-123; Teiser, 앞의 책, 1994, pp. 230-232. 명문을 가진 대표적인 예인 MG 17662(太平興國 8, 983)에는 승려와 사자 옆의 방제에 각각 “南无道明和尙”, ”南无金毛師(獅)子”(원 괄호 내의 글자는 통용자이다. 필자의 추가)라는 묵서가 있다. Vandier-Nicolas, 앞의 책, vol 1, p. 243. 이와 더불어 왜 목련이 시왕을 주재하는지 설명되지 않았다는 張總의 언급(주 15)과 함께 불교미술 속 목련이 두건을 쓴 모습으로 묘사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목련이야기 관련 미술자료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樊金詩, 梅林, 「楡林 窟第19窟目連變相考釋」, 『段文傑敦煌硏究五十年紀念文集』, 敦煌硏究院 編 (北京: 世界圖書出版公司, 1996), pp. 46-55(내용은 축약되었지만 도판이 추가된 Fan Jinshi and Mei Lin. “An Interpretation of the Maudgalyayana Murals in Cave 19 at Yulin,” Orientations 27.10 [1996], pp. 70-75도 함께 참조); Rostislav Berezkin, “Illustrations of the Mulian Story and the Tradition of Narrative Painting in China (Tenth-Fifteenth Centuries),” Religion and the Arts 20.1-2 (2016), pp. 5-28.

26) 이 여섯 명 중 오도전륜왕의 책상 바로 아래에 있는 좌측의 세 명은 우측의 세 명보다 체구가 휠씬 작다. 염라왕의 심판장에서도 망자는 옥졸에 비해 상당히 작은 체구이다. 이로 보아 좌측의 세 명은 망자일 듯하다. 반면 우측의 세 명은 시왕의 권속이거나 아니면 망자의 살아있는 가족, 즉 공양자일 수도 있다. 삽도본 『시왕경』에서도 시왕의 심판장에 불상, 경전 등을 들고 서 있는 인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정제된 복식을 하고 있어 망자로 보기 어렵다. 망자는 대개 헐벗었거나 칼 등의 형구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禿氏祐祥, 小川貫弌는 공양물을 든 인물을 망자의 유족인 공양자로 본다. 禿氏祐祥, 小川貫弌, 앞의 논문, pp. 280, 282-285.

27) 여러 판본에 등장하는 지옥 장면의 비교로 禿氏祐祥, 小川貫弌 1962, 앞의 논문, pp. 285-286을 참조.

28) 삽도본 『시왕경』의 목록은 주 21을 참조.

29) 禿氏祐祥, 小川貫弌는 이 삽도의 망자가 사후 추선의 공양도 효과 없는 중죄를 저지른 자이며 그럼에도 지장의 대자비심으로 구제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S3961의 마지막 삽도에 등장하는 승려는 지장으로, P2003과 久保惣記念美術館 소장본의 마지막 삽도에 등장하는 승려를 지장의 응화신(應化身)인 도명으로 보았다. 禿氏祐祥, 小川貫弌, 앞의 논문, pp. 285-286. 그러나 미쉘 수와미는 S3961, P2870, 구보소기념미술관 소장본의 마지막 삽도가 『시왕경』 삽도의 명문인 것으로 보이는 P3304v 중의 “대목건련, 여기 철상지옥에서 옥졸을 교화하여 어머니를 구할 때”(大目乾連, 於此鐵床地獄, 勸化獄卒救母時. 표점은 수와미)”라는 구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S3961의 마지막 삽도는 지옥성 문 앞에서 승려가 목에 칼을 찬 여성에서 수저로 밥을 떠서 먹이는 광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P2870과 久保惣記念美術館 소장본의 마지막 삽도에 등장하는 승려와 망자도 목련과 그의 어머니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 삽도 모두에서 상의를 벗은 망자는 남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Michel Soymié, “Un recueil d'inscriptions sur peintures: Le manuscrit P. 3304 verso,” in Nouvelles contributions aux etudes de Touen-houang, ed. Michel Soymie (Geneve: Librairie Droz, 1981), pp. 170-171, 177-178.

30) 『十王經』(P2003) [杜斗城, 앞의 책, p. 12].

31) 같은 安岳縣에 있는 聖泉寺 지장시왕감은 전체 규모나 구도 등 여러 면에서 圓覺洞 73호감과 상당히 유사하며 세부 장면은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聖泉寺 지장시왕감의 하단에도 문이 등장한다. 張總, 廖順勇은 삽도본 『시왕경』과의 비교를 통해 이 문을 지옥의 문으로 보았다. 張總, 廖順勇, 「四川安岳聖泉寺地藏十王龕像」, 『敦煌學輯刊』 2007.2, 2007, pp. 43-44. 이는 73호감 하단의 문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데에 있어 좋은 참조가 된다. 더욱이 여기에서는 망자가 반쯤 열린 문 앞에 자리하고 있어 그가 확실히 문밖으로 나오는 중이라는 인상을 준다. 한편 聖泉寺 지장시왕감의 지옥문 왼쪽에는 승려로 보이는 인물과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張總, 廖順勇은 이를 목련이 어머니에게 밥을 먹이는 장면이라고 하였다. 앞의 논문, pp. 46-49. 필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 29에서 언급한 P3304v, S3961도 떠오른다.

32) 『十王經』(P2003) [杜斗城, 앞의 책, p. 12].

33) 앞과 같음.

34) 주 7과 같음.

35) 염라왕의 좌측에는 세 명의 판관이 의자에 앉아 있고 오도전륜왕의 우측에도 마찬가지로 세 명의 판관이 있었을 것이지만 72호감으로 인한 파손으로 현재는 두 명의 판관만을 볼 수 있다. 이들 주변에는 “曹判官”, “生▒判官”(이상 염라왕 구역), “▒判官”, “趙判官”(이상 오도전륜왕 구역)이라는 명문이 있다. 于春, 王婷, 앞의 책, p. 207. 선악동자(善惡童子), 판관 등 시왕의 권속과 관련된 문헌자료의 연구로 다음을 참조. Michel Soymiè, “Notes d’iconographie chinoise: Les acolytes de Ti-tsang (I),” Arts Asiatiques 14 (1966), pp. 45-78; “Notes d’iconographie chinoise: Les acolytes de Ti-tsang (II),” Arts Asiatiques 16 (1967), pp. 141-170.

36) 劉長久 主編, 앞의 책, p. 71; 成都文物考古硏究所 等, 앞의 논문, p. 344; 王劍平 等, 앞의 논문, p. 424.

37) 주 16, 주 22을 참조.

38) 禿氏祐祥, 小川貫弌, 앞의 논문, p. 275에 있는 인물의 분류표를 참조.

39)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지만 73호감의 염라왕 구역에 등장하는 동물과 관련하여 필자는 닭, 뱀, 돼지가 등장하는 P4523/SP80의 염라왕 삽도를 눈여겨본다(Fig. 8). 이 동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논의된 바 없다. 생사륜도(生死輪圖)의 중앙에 삼독(三毒), 즉 탐진치(貪嗔癡)를 상징하는 동물로서 비둘기(혹은 닭), 뱀, 돼지가 등장하는 것이 떠오르지만 아직은 섣부르게 이들을 연관 짓고 싶지는 않다. 다음을 참조.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卷 34, 「展轉食學處」 [T1442 23:811b]; Stephen Teiser, Reinventing the Wheel: Paintings of Rebirth in Medieval Buddhist Temples (Seattle and London: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06), pp. 11 ff. 이외에 사후심판을 주관하는 시왕이라는 관념이 정립되기 이전인 당 정관(貞觀) 13년(639)의 기년을 가진 제사원헌릉조상비(齊士員獻陵造像碑)와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별개의 비석받침에는 염라왕의 심판 광경이 선각되어 있다. 여기에는 닭, 뱀, 돼지 이외에도 다수의 동물이 등장한다. 張總, 「初唐閰羅圖像與刻經: 以《齊士員獻陵造像碑》拓本爲中心」, 『唐硏究』 6 (2000), pp. 2-3, 6-8.

40) 남북조시대(南北朝, 386-589)부터 지옥도가 유행했다는 것을 문헌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이에 비해 현재 전하는 지옥도는 매우 적고 단편적이다. 송대 이전으로 한정한다면 그 중 상당수가 敦煌 일대의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지옥 장면일 것이다. 敦煌의 지옥도에 대해서는 일부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다음을 참조. 殷光明, 「敦煌石窟中的地獄圖像與冥報思想」, 『敦煌壁畵藝術與疑僞經』, 北京: 民族出版社, 2006, pp. 260-349; Costantino Moretti, “Scenes of Hell and Damnation in Dunhuang Murals,” Arts Asiatiques 74 (2019), pp. 5-30. 아울러 문헌 기록에서 보이는 중세 중국 지옥도의 사회적, 종교적 역할을 분석한 Stephen Teiser, “‘Having Once Died and Returned to Life’: Representations of Hell in Medieval China,”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48.2 (1988), pp. 433-464를 함께 참조.

41) 73호감을 지옥으로 보았던 기존의 연구(주 7을 참조) 중에서는 다음의 두 논고에서 “지옥시왕”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해당 부분의 내용은 양자가 거의 동일하다). 成都文物考古硏究所 等, 앞의 논문, p. 344; 王劍平 等, 앞의 논문, p. 424.

42) 수많은 관련 연구를 여기에 모두 언급할 수는 없다. 다만 敦煌 지역에서 발견된 필사본 『시왕경』의 교감과 관련 사안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시왕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던 杜斗城도 시왕을 “지옥시왕”으로 지칭했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그러나 그는 敦煌 발견 삽도본 『시왕경』 중의 심판 장면은 말 그대로 심판 장면일 뿐 일각에서의 인식과 달리 지옥변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杜斗城, 앞의 책, p. 152. 이러한 그의 비판적 접근이 이후의 연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듯하다. 한편 이 글의 참고문헌에 제시된 논고 중 시왕을 지옥의 왕으로 지칭하거나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시왕의 심판 장면을 지옥의 묘사로 본 것으로는 주 8에서 언급한 논저 이외에 다음이 있다. Waley, 앞의 책; Vandier-Nicolas, 앞의 책; Whitfield, 앞의 책; 金岡照光, 「敦煌における地獄文獻」, 『講座敦煌』 7: 敦煌と中國佛敎, 牧田諦亮, 福井文雅 編 (東京: 大東出版社, 1984); Teiser, 앞의 논문, 1988; 羅慶華, 앞의 논문; 蕭登福, 앞의 책; 羅世平, 앞의 논문; 殷光明, 앞의 논문; 姜守誠, 앞의 논문; Chandra and Sharma, 앞의 책; 張媛媛, 앞의 논문; 王娟 앞의 논문.

43) 천(天), 인(人),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이 육도를 이루지만 지장시왕도를 비롯하여 敦煌의 불교미술에서 확인되는 육도는 이러한 전형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닐 슈미드는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敦煌의 육도가 이전 시대의 불교문헌에서 말하는 아수라가 포함되지 않은 오도(五道) 관념과 불교의 환생 개념을 도입한 도교적 요소가 어우러진 특수한 지역적 세계관인 것으로 설명한다. David Neil Schimid, “Revisioning the Buddhist Cosmos: Shifting Paths of Rebirth in Medieval Chinese Buddhism,” Cahiers d’Extreême-Asie 17 (2008), pp. 293-325.

44) 敦煌 발견 필사본 『시왕경』은 지옥과 관련된 경전(“지옥경전”, “지옥문헌” 등)으로 분류되곤 한다. 吉岡義豐, 「スタイン敦煌文書中の密敎關係經典目錄」, 『道敎と佛敎』 1 (東京: 日本學術振興會, 1959), pp. 465-466; 金岡照光, 앞의 논문, pp. 574-578; 道端良秀, 「敦煌文獻に見える死後の世界」, 『講座敦煌』 7: 敦煌と中國佛敎, 牧田諦亮, 福井文雅 編 (東京: 大東出版社, 1984) pp. 505, 508-509, 517-522. 그러나 의아하게도 『시왕경』은 지옥에 떨어지면 고통을 받는다는 정도 이외에 지옥에 대한 별다른 내용을 전하지 않는다.

Fig. 1.
圓覺洞 전체 배치도, Layout of Yuanjue Grottoes (Yu Chun and Wang Ting, Anyue Yuanjuedong: Sichuan Anyue Yuanjuedong shiku kaogu diaocha baogao, Fig.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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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圓覺洞 F구역 배치도, Layout of Section F, Yuanjue Grottoes (Yu Chun and Wang Ting, Anyue Yuanjuedong: Sichuan Anyue Yuanjuedong shiku kaogu diaocha baogao, Fig.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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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圓覺洞 73호 지장시왕감, Dizang and the Ten Kings, Niche no. 73, Yuanjue Grottoes, First half of the 10th century (Before 9 41), Anyue, Ziyang, Sichuan Prov ince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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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73호감 입면도, 단면도, Elevation and sectional plan of Niche no. 73 (Yu Chun and Wang Ting, Anyue Yuanjuedong: Sichuan Anyue Yuanjuedong shiku kaogu diaocha baogao, Fig.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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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72호감 서벽, Western wall of Niche no. 72, c. 9 41, Anyue, Ziyang, Sichuan Province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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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도 3의 세부: 업경과 그 주변, Relief-scenes around the karmic mirror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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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염라왕의 심판장, The court of Yanluo wang, the eighth illustration to P2003, 10th century, Discovered from Magao Cave no. 17,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Gallica, https://gallica.bn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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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염라왕의 심판장, The court of Yanluo wang, the seventh illustration to P4523, 10th century, Discovered from Magao Cave no. 17,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Gallica, https://gallica.bn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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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도 3의 세부: 염라왕의 심판장, The court of Yanluo wang, Niche no. 73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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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도 3의 세부: 오도전륜왕의 심판장, The court of Wudao zhuanlun wang, Niche no. 73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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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도 3의 세부: 오도전륜왕과 문서를 든 관리, Wudao zhuanlun wang and an official holding a document, Niche no. 73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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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지옥에서의 구제, Salvation from hell, the four- teenth illustration to P2003, 10th century, Discovered from Magao Cave no. 17,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Gallica, https://gallica.bnf.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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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3.
오도전륜왕의 심판장과 육도, The court of Wudao zhuanlun wang and Six Paths of rebirth, the fourteenth illustration to S3961, 10th century, Discovered from Magao Cave no. 17, British Museum (International Dunhuang Project, http://idp.bl.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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