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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19; 2023 > Article
조선 시대 行實圖 삽화에 보이는 雷神圖像 연구

Abstract

이 논문은 세종 대에 간행된 『三剛行實孝子圖』와 정조 때 편찬된 『五倫行實圖』 삽화에 그려진 雷神圖像의 기원과 특징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山海經』과 『論衡』의 기록 및 漢代 畫像石과 敦煌 莫高窟 벽화를 통해 중국의 뇌신도상이 力士와 連鼓를 기본형으로 하면서 獸頭로 교체되거나 날개가 추가된 형식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삼강행실효자도』에서는 고려불화의 뇌신도상을 차용하여 양손과 양발에 들린 북채로 連鼓를 치는 獸頭人身형 뇌신도상이 그려졌다. 『오륜행실도』의 뇌신은 천둥과 번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삼강행실효자도』의 뇌신과 동일하지만, 조선 후기 회화에서 鳥頭人身有翼형으로 자주 그려졌던 뇌신이 도식화되면서 새의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우리나라 회화에서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의 가장 이른 예는 『月印釋譜』로 확인되며, 『월인석보』의 뇌신은 불교의 護法神인 迦樓羅와 도교 경전인 『玉樞經』에 그려진 主雷鄧天君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獸頭人身형에서 鳥頭人身有翼형으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은 八相圖나 甘露圖에 자주 그려졌고, 윤두서가 명청대 서적 삽화에 그려진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을 참고하여 회화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면서, 조선 후기 뇌신도상의 주류가 되었다.

Abstract

This article explores the origin of the Thunder God image and its iconographical features that appear in the Exempla of Filial Sons in the Illustrated Guide to the Three Bonds (Filial Sons, hereafter), publish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r. 1418-1450), and An Illustrated Guide to the Five Moral Imperatives (Five Moral Imperatives, hereafter), compiled during the reign of King Chǒngjo (r. 1776-1800). As attested by the textual descriptions in the Shanhai jing and the Lunheng and the visual depictions in the pictorial stones from the Wu Family Shrine and the mural paintings in the Mogao Caves of Dunhuang, the Chinese iconography of Thunder God primarily takes on the form of a muscular man, sometimes added with beast-headed or winged variations, striking a series of drum connected together. Drawing on Buddhist paintings of the Koryŏ, the Filial Sons of the Chosŏn shows Thunder God as a beast-headed man with four sticks held in both hands and feet surrounded by a series of drum attached together. The Thunder God image in the Five Moral Imperatives continues to follow the iconographical convention adopted in the Filial Sons in the sense that it symbolizes thunder and lightning. However, it takes on a bird form as a schematization of the image of a bird-headed man with wings, which was widely adopted by the late Chosŏn painting. The earliest known case of depicting Thunder God as a bird-headed man with wings appears in the Moon Reflection and the Biography of the Buddha (Wŏrinsŏkpo). This particular iconography of Thunder God seems to have been inspired by the iconography of the Buddhist guardian Garuḍa and that of the Daoist Thunder Marshal “Heavenly Lord Deng, the Governor of Thunder,” depicted in the Daoist scripture Yushu jing, reflecting the transition from the form of a beast-headed man to a bird-headed man with wings. The latter form became the dominant iconography of Thunder God in the late Chosŏn period. It frequently appeared in the Eight Scenes of the Buddha’s Life or the Sweet Dew Painting. Yun Tu-sŏ (1668-1715) also adopted that iconography since it conformed to the depiction of Thunder God in the illustrations of books imported from Ming and Qing China.

Ⅰ. 머리말

雷神은 천둥을 관장하는 신이다. 천둥은 우레라고도 하며 雷聲과 번개(電)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放電 현상을 뜻한다. 천둥과 같은 자연현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경외와 탐구의 대상이었다. 일찍부터 인류는 천둥을 신격화하였고, 천둥신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제우스(Zeus), 인드라(Indra), 雷神, 雷公, 라이진(らいじん) 등 각기 다른 명칭과 형상으로 나타났다.1 우리나라 미술에서 보이는 雷神圖像은 주로 불교와 관련이 있다. 고려와 조선 시대 寫經變像圖나 八相圖, 甘露圖 등에서 뇌신은 두려움과 역경의 대상으로 그려지는데, 천둥이나 번개와 같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불보살에게 구원을 청하는 대목이나 사람들이 번개에 맞아 죽는 지옥 장면에서 등장한다. 이와 같은 불화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회화에서 뇌신도상이 확인된 경우는 드물며, 특히 조선 시대 대표적인 유교윤리서인 행실도 삽화에 뇌신도상이 등장한 것은 흥미롭다.
우리나라 뇌신도상에 관한 연구 자료는 많지 않은 편이다. 한국의 風神雷神圖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이래,2 관련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다가 최근에 조선 시대 불화에 나타난 뇌신 도상이 정리되었고,3 중국의 뇌신을 고찰하거나 우리나라의 뇌신을 중국·일본의 뇌신과 비교하는 연구들이 있었다.4 한편 『三剛行實孝子圖』에 나타난 뇌신도상에 대해서는 고려불화의 도상이라고 언급된 이후에 추가적인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5 또한 정조 대에 편찬된 『五倫行實圖』에 묘사된 뇌신도상은 『삼강행실효자도』의 뇌신과 차이를 보이는데, 도상의 변천 과정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의된 바 없다.6 이에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중국에서 뇌신도상이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삼강행실효자도』에서 등장한 뇌신도상의 기원과 『오륜행실도』에서 보이는 뇌신도상의 특징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동아시아 雷神圖像의 형성

동아시아 뇌신도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선행 연구에서 상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7 이 논문에서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뇌신도상에 관한 주요 문헌 기록과 작품들을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먼저, 뇌신의 형상이 기록된 문헌으로는 『山海經』과 王充의 『論衡』을 들 수 있다. 『산해경』의 「海內東經」과 「大荒東經」편에는 각각 雷神과 雷獸의 형상에 대한 글이 실렸다.
뇌택 가운데에 뇌신이 있는데,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자신의 배를 두드린다. 오땅의 서쪽에 있다.8 - 「해내동경」
동해의 한가운데에 유파산이 있는데 바다 쪽으로 7000리나 쑥 들어가 있다. 그 위에 소 같이 생긴 짐승이 있는데 푸른 몸빛에 뿔이 없고 외발이다. (이 짐승이) 물속을 드나들 때면 반드시 비바람이 일고 그 빛은 해와 달 같고 그 소리는 우레(雷)와 같다. 이름을 夔라고 한다. 황제가 이것을 잡아 그 가죽으로 북을 만들고 雷獸의 뼈로 두들기니 소리가 500리 밖에까지 들려 천하를 놀라게 했다.9 - 「대황동경」
漢代 사상가인 왕충은 『논형』의 「雷虛」편에서 당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雷公의 형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10
그림을 그리는 장인이 그린 천둥은 마치 북을 하나하나 이어놓은 連鼓의 모습이다. 또한 力士와 같은 사람을 그리고 雷公이라 하였으며, 왼손은 연고를 잡고 오른손은 망치를 들게 하여 마치 북을 치는 듯한 모습이다. ‘웅웅’하는 雷聲은 연고를 두들기는 소리와 같고, ‘빠각’하고 갈라지는 소리는 망치로 치는 소리와 같다. 사람을 죽일 때는 한 손으로 연고를 당기고 다른 손으로는 망치를 들고 내려치는 뜻으로 여긴다.11
이와 같은 문헌기록을 통해 늦어도 漢代에는 뇌신도상이 형성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뇌신은 사람 머리에 용의 몸을 하고 있거나, 힘센 장사가 망치를 들고 여러 개의 북이 연결된 連鼓를 두들기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현전하는 작품 중에서 뇌신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예는 漢代 畵像石이다. 東漢대 武氏祠 좌측 석실 천장의 화상석은 총 4층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2층에서 雷神과 雷公을 볼 수 있다.12(Fig. 1) 화면의 좌측에 있는 뇌신은 雲車를 타고 우측을 향해 가고 있으며, 한 손에 망치 또는 북채를 들고 운차의 앞뒤에 달린 북을 치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의 우측에 있는 뇌공은 한 손에는 망치를, 다른 손에는 정을 들고 바닥에 엎드린 사람을 내리치고 있다. 이후 南北朝時代 莫 古窟인 제249굴과 제285굴의 벽화나 唐代 조성된 제17굴에서 출토된 幡과 그림에도 뇌신도상이 나타난다. 특히 제17굴 출토 번에 표현된 뇌신은 力士가 양손에 든 망치로 연고를 치는 모습으로, 왕충의 『논형』에 기록된 모습과 유사하다.(Fig. 2) 그런데 北魏(386~534)시기의 제249굴과 西魏(535~556)의 제285굴에서 보이는 뇌신의 경우, 연고가 함께 그려진 점은 문헌기록과 같으나, 사람 몸에 짐승 머리를 하고 날개가 달린 모습을 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Fig. 3) 이처럼 獸頭人身에 날개가 있는 형식은 北周 시대(557~580) 조성된 제290굴의 天神像이나 北齊(550~578)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神獸像 등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다른 벽화에서도 나타난다.(Fig. 4) 특히 제249굴 벽화에서 뇌신과 함께 그려진 風神 역시 뇌신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 자주 그려졌던 神象에 연고나 바람주머니 등 각기 다른 持物을 그려 넣어 뇌신과 풍신을 구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중국에서 뇌신도상은 力士와 여러 개의 북이 원형으로 연결된 連鼓를 기본형으로 하면서 獸頭로 교체되거나 날개가 추가된 형식으로 그려졌다. 이와 같은 뇌신도상은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으며,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 불화에서부터 뇌신도상이 확인된다.13
Ⅲ. 『三綱行實孝子圖』에 등장한 雷神圖像의 기원
『삼강행실도』는 세종의 명에 따라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三剛의 모범이 될 만한 孝子, 忠臣, 烈女의 행실을 모은 책으로 1434년에 간행되었다.14 『삼강행실도』는 세종 때 만들어진 한문본과 성종 때 편찬된 諺解本 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문본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효자, 충신, 열녀 각 110명에 관한 삽화와 글을 싣고, 이를 『삼강행실효자도』, 『삼강행실충신도』, 『삼강행실열녀도』 각 1책으로 만든 것이다. 언해본은 본문에 한글을 덧붙인 책으로, 효자, 충신, 열녀 각 35명을 수록하고 원래 3책이었던 것을 1책으로 만들었다. 언해본의 삽화는 한문본을 토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삽화의 판각 수준이 다소 떨어지고 세부 표현이 단순화될 뿐 구도와 구성물은 거의 동일하다. 이 논문에서는 고려대학교도서관 만송문고 소장 『삼강행실효자도』에 수록된 삽화와 글을 중심으로 뇌신도상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15
『삼강행실효자도』 에서 뇌신도상이 보이는 고사는 3개로, 蔡順桑椹, 王裒廢詩, 吳二免禍이다. 각 고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16

채순상심

漢나라의 채순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王莽의 亂때에 채순이 오디(桑)를 따서 검은 것과 붉은 것을 각기 다른 그릇에 담았다. 도적이 그 모습을 보고 까닭을 묻자 채순이 검은 것은 어머니께 드리고 붉은 것은 자신이 먹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도적이 채순에게 쌀 서 말을 주었으나 채순은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묘살이를 하였는데 아침에 神魚가 내려와서 무덤 앞에 놓고 제사를 지냈다. 어머니가 평생에 천둥(雷)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천둥이 칠 때마다 채순이 무덤을 돌면서 “순이 여기 있습니다(順在此)”라고 하였다. 太守가 천둥이 칠 때마다 수레와 말을 내어 무덤에 보내주었다.
왕부폐시
왕부의 아버지 王儀는 魏나라 司馬昭의 司馬였는데 패전의 책임을 물어 사마소가 斬하였다. 왕부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숨어살면서 벼슬을 받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묘소를 찾아 잣나무를 붙들고 울부짖으니, 나무가 말라죽었다. 평소 천둥(雷)을 두려워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천둥이 칠 때마다 어머니의 무덤에 가서 “부가 여기 있습니다(裒在此)”라고 하였다. 『詩經』을 읽다가 “슬프다 우리 부모, 나를 낳아 기르심에 수고가 많으셨네(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대목에 이를 때마다 눈물을 흘리니 문하생들이 모두 「蓼莪篇」을 읽지 않았다.
오이면화
宋나라의 오이는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어느 날 神이 꿈에 나타나 다음 날 벼락(雷)에 맞아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오이는 老母가 있으니 구해달라고 빌었으나 神은 하늘에서 받은 명이라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낮에 검은 구름이 일고 天地가 어두워지며 천둥소리(雷聲)가 진동하였다. 오이는 어머니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野田에 나가 기다렸는데 구름이 개고 오이는 禍를 면하였다. 그날 밤 꿈에 神이 나타나 “너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이미 묵은 허물을 용서하였으니 공경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세 고사 모두에서 천둥과 벼락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되었으며, 뇌신은 천둥과 벼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채순이나 왕부의 고사에서 평소 천둥을 두려워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천둥이 칠 때마다 무덤을 찾았다는 대목이나 주인공이 어머니의 무덤에서 “순/부가 여기 있습니다(順/裒在此)”라고 말했다는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와 같은 효행담은 『세종실록』에서도 확인되는데, 예조에서 효자들의 敍用을 세종에게 건의하면서 그 효행을 상세하게 기록한 기사로,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7 李伯孜는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동안 여묘살이를 하였고, 평시에 雷聲을 두려워하시던 어머니를 위해 雷風이 있을 때마다 분주히 달려가서 무덤 위를 몸으로 덮고 뇌성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이처럼 천둥 관련 유사 효행담이 각기 다른 고사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 천둥조차 개의치 않았던 주인공의 지극한 효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삼강행실효자도』에 등장한 뇌신도상을 살펴보면, 세 고사 모두에서 뇌신은 하늘에 떠있는 것을 상징하듯 화면의 최상단에 그려졌다. 뇌신은 짐승 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있으며, 여러 개의 북이 원형으로 연결된 연고를 양손과 양발에 들린 북채로 치는 모습이다. <오이면화>에는 뇌신의 全身이 그려진 반면,(Fig. 5) <채순상심>과 <왕부폐시>에는 뇌신의 일부만 표현되었으며, 특히 <왕부폐시>에서는 상반신을 생략한 채 양발에 들린 북채로 연고를 두들기는 뇌신의 하반신만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Fig. 6) 『삼강행실효자도』에 표현된 뇌신도상은 양손뿐만 아니라 양발에도 북채가 들려있고, 날개 없이 짐승 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한대 화상석이나 둔황 막고굴에 표현된 뇌신도상과 다소 차이가 있다. 따라서 『삼강행실효자도』에 등장한 뇌신도상의 연원을 고찰하기 위해 『삼강행실효자도』 편찬 과정에서 참고했던 서적들에 대해 분석하고, 선행연구에서 언급되었던 고려불화와의 연관성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삼강행실도』의 서문에 따르면, 효자편은 명나라 太宗文皇帝(成祖, 재위 1402~1424)가 하사한 『孝順事實』의 詩를 기록하고, 權溥(1262~1346)가 편찬한 『孝行錄』 중에서 李齊賢(1287~1367)의 贊을 실었으며, 나머지는 신하들이 나누어 짓도록 하였다.18 또한 본문에서 『二十四孝圖』을 인용하고 있어, 『삼강행실효자도』 의 제작을 위해 『효순사실』과 『효행록』, 『이십사효도』 등의 서적을 참고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효순사실』은 1420년에 명나라 성조의 명에 따라 편찬된 책으로 중국의 효자 207명에 관한 고사가 실렸다. 『삼강행실효자도』 한문본의 경우, 그 체제와 구성, 내용 면에서 『효순사실』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는 사실이 선행연구에서 밝혀졌다.19 즉 지면의 제약 때문에 『효순사실』 중에서 문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인명, 지명, 시대 정보 등을 생략하는 방식으로 본문을 작성하고, 『효순사실』에 없는 내용은 『효행록』을 바탕으로 적은 것이다. 『효순사실』에는 그림이 실려 있지 않으므로, 삽화의 제작에는 『효행록』과 『이십사효도』 등을 참고했을 것이다. 『효행록』의 전편은 『이십사효』의 한 계통으로 분류되므로, 『이십사효』에 수록된 삽화를 중심으로 뇌신도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십사효” 개념의 성립 시기는 불분명하나, 『敦煌變文集』 권7의 「古圓鑒大師二十四孝押坐文」으로 보아 적어도 五代宋初에는 講經僧들이 이십사효를 설법했던 것으로 보인다.20 14세기 이후에는 이십사효와 관련된 여러 판본들이 나타났는데 이 판본들은 고려의 『효행록』 계통, 원대 郭居敬이 집록한 『全相二十四孝詩選』 계통, 명대 간행된 『日記故事』 계통 등 세 가지 계통으로 구분된다.21 세 계통의 판본에는 각각 24명의 효행고사가 실렸으나, 각 판본에 수록된 고사의 종류는 상이하다.22 먼저, 『효행록』은 고려 말에 권보와 權準(1281~1352) 父子가 중국의 효자 64명에 관한 기록을 엮은 책이다. 전편은 권준이 효자 24명을 소개한 글에 이제현이 贊을 붙이고, 畫工이 그린 그림을 더한 것이다. 권준이 아버지인 권보에게 이 책을 바치자 권보가 효자 40명에 관한 38편의 글을 쓰고 여기에 사위 이제현이 찬을 붙였는데, 이것이 후편이다. 고려 말에 만든 책은 남아있지 않고,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1433년)을 비롯해 조선 시대에 그림 없이 글만 수록한 책이 전한다. 1346년에 이제현이 쓴 『효행록』의 서문에 따르면, “府院君 吉昌 權公(권준)이 일찍이 工人에게 명하여 二十四孝圖를 그리게 하였다.”23 여기서 언급된 “이십사효도”는 현전하지 않으나, 선행연구에서 『효행록』에 수록된 이십사효도와 중국 북방지역 고분벽화에 그려진 이십사효도 간 관련성이 제시되었다.24 즉, 河南城과 山西省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북방 지역의 墳墓에서 출토된 宋金元代 이십사효도와 『효행록』에 수록된 24개 고사의 종류가 일치한다는 점과 당시 고려와 원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근거로 중국 북방에서 유행한 이십사효도가 고려에 전파되었다고 추정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여, 채순과 왕부의 효행고사도를 중심으로 중국 북방 지역 고분벽화를 살펴보았다. 북방계 고분벽화에 그려진 왕부와 채순 고사도의 경우, 각각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왕부의 모습이나 神이 채순에게 神魚를 전해 주는 대목 등이 단일 장면으로 묘사되었으며, 뇌신은 그려지지 않았다.(Fig. 7)
다음으로 『전상이십사효시선』과 『일기고사』 계통의 판본을 살펴보면, 중국 국가도서관 소장 『전상이십사효시선』은 明 洪武年間(1368-1398)에 간행되었다. 한 면에 2개의 효행고사를 담고 있으며, 삽화와 본문을 각각 화면의 위, 아래에 수록한 上圖下文 형식이다. 만력39년(1611)에 간행된 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 『新鐫徽郡原板校正絵像註釈便覧興賢日記故事(이하 편람흥현일기고사)』 역시 한 면에 2개씩 효행고사를 수록하고, 각 고사의 삽화와 본문이 화면의 위와 아래에 배치된 上圖下文의 형식이나, 본문에 계선이 없고 각 고사의 제목을 4자로 만든 점에서 『전상이십사효시선』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전상이십사효시선』에서는 주인공 이름인 “왕부”나 “채순”을 고사의 제목으로 사용한 반면, 『편람흥현일기고사』에서는 고사의 핵심 내용을 제목으로 하여 각각 “聞雷泣墓”와 “拾椹供親”이라 하였다. 『전상이십사효시선』에는 채순 고사가 실렸는데, 채순이 도적들에게 자신이 딴 오디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단일 장면으로 도해되었으며, 뇌신은 그려지지 않았다.(Fig. 8) 『편람흥현일기고사』에는 왕부와 채순의 고사가 실렸으나, 채순이 도적 앞에 무릎을 꿇고 설명하거나 왕부가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한 화면에 그려졌으며, 뇌신은 나타지지 않았다.
한편, 일본 류코쿠대학(龍谷大學) 도서관 소장 『新刊全像二十四孝詩選』의 <문뢰읍묘>에는 뇌신이 등장한다.(Fig. 9)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왕부의 맞은 편 하늘에 뇌신이 있는데, 짐승 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있으며, 양손에 북채를 들고 검은 구름에 둘러싸인 연고를 두들기는 모습으로, 『삼강행실효자도』에서 보이는 뇌신도상과 차이가 있다. 류코쿠대학 소장본은 『전상이십사효시선』 계통 판본 중 하나인 嘉靖25년(1546) 간행본을 필사한 것으로, 필사본의 삽화는 室町時代(1338~1573)에 일본인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25 『전상이십사효시선』에는 <문뢰읍묘> 고사가 수록되지 않았고, 가정25년에 간행된 원본은 현전하지 않기 때문에, 『신간전상이십사효시선』에 뇌신도상을 그린 것이 일본인 화가의 창작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십사효도』 淸刻本의 <문뢰읍묘> 고사에도 양 손에 연고가 도식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긴 띠를 들고 구름 위에 서 있는 獸頭人身형의 뇌신이 그려진 것을 감안할 때,26가정25년 간행 원본에 뇌신도상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요컨대, 『신간이십사효시선』이나 『이십사효도』 청각본은 『삼강행실효자도』 보다 간행시기가 늦고 영향 관계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삼강행실효자도』에 등장한 뇌신도상의 연원을 추정하는데 있어서 명확한 단서가 되기는 어렵다. 다만 『삼강행실효자도』의 편찬 과정에서 참고한 『이십사효도』에 뇌신도상이 수록되었을 가능성을 열어주며, 『이십사효도』에 수록된 뇌신도상의 특징이 『삼강행실효자도』의 뇌신도상과 차이가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면, 『삼강행실효자도』에 그려진 뇌신도상과 고려불화와의 관련성을 검토하면 양자 간 유사성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고려불화에서 뇌신은 주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도해한 『묘법연화경』 제7권의 변상도와 수월관음도에서 등장한다.27 「관세음보살보문품」은 중생이 어떠한 위험에 처하더라도 관음보살을 찾으면 구제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중생이 처한 위험 중 하나인 雲雷雹雨難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뇌신이 나타난다. 즉, 구름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큰 비와 우박이 쏟아져도 관음보살을 찾으면 이와 같은 재난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구제된다는 내용을 표현하는 대목에서 천둥과 번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뇌신이 그려진다.
『묘법연화경』 제7권 변상도의 뇌신은 獸頭人身형으로 양손과 양발에 들린 북채로 뇌신 주위를 둥글게 둘러싼 연고를 치는 모습이며, 연고의 바깥을 에워싼 구름 아래에는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이 그려졌다. 수월관음도에서도 獸頭人身형의 뇌신이 양손과 양발에 들린 북채로 연고를 두들기는 모습이 나타나나, 우산을 든 사람이 생략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고려 시대 불화 중에서 뇌신 도상이 그려진 가장 이른 예는 1315년에 제작된 일본 天倫寺 소장 『묘법연화경』 제7권 변상도로 확인되며, (Fig. 10) 이후에 제작된 고려시대 『묘법연화경』의 사경변상도 가운데 기년명이 알려진 현전 작품 대부분에서 뇌신이 나타난다.28 즉, 羽賀寺 소장본(1325년)과 鍋島家 소장본(1340년), 根律美術館 소장본(1353년), 호림박물관 소장본(1377년) 등의 제7권 변상도에서 화면 좌측 상단에 뇌신이 그려졌다. 일본 談山神寺 소장 <수월관음도>나 靜嘉堂美術館 소장 <수월관음도>의 우측 하단에서도 동일한 모습의 뇌신을 볼 수 있으며, 우산을 든 사람이 생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Fig. 11)
이처럼 『삼강행실효자도』의 뇌신도상은 우산을 든 사람이 그려지지 않은 고려 시대 수월관음도와 높은 친연성을 보인다. 다만 호림박물관 소장본(1377년)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1385년)에서는 뇌신의 상반신을 그리지 않고 다리에 들린 북채로 연고를 치는 뇌신의 하반신만 상징적으로 그렸는데,(Fig. 12) 이러한 면모는 『삼강행실효자도』의 <왕부폐시>에 묘사된 뇌신도상에서도 나타난다. 고려 시대 사경변상도와 수월관음도에서 우산을 든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 도상적 특징들이 동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삼강행실효자도』에서는 고려불화에 그려진 뇌신도상을 차용하되 우산을 든 사람을 생략하는 방식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불화에 표현된 뇌신도상의 연원과 관련하여서는 宋代 寫經圖와의 관련성이 제시되었으며,29 遼代 법화경 판본에서도 뇌신이 등장하고 고려 전기 법화경 사경변상도가 거란대장경판본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큰 만큼,30 宋·遼代 불화와의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정리하면, 고려불화와 『삼강행실효자도』에서 뇌신은 천둥과 번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그려졌으며, 동일한 도상으로 표현되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삼강행실효자도』에 수록된 세 고사에서 천둥과 벼락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운뇌박우난 장면에서 천둥을 바라보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둥의 발생에 대한 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전통사회에서 인간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었던 천둥과 같은 자연현상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 천둥과 번개가 치는 일은 ‘雷變’으로 기록되었으며, 하늘이 노하여 발생한 재앙의 징조로 여겼다. 뇌변이 있고 난 후에는 왕이 두려워하여 修身을 명하거나 음주와 연회를 금지하였고 신하들이 뇌변을 이유로 견책과 사직을 청했을 정도로천둥은 畏敬의 대상이었다.31
특히 조선왕조의 억불숭유 정책 기조 속에서 유교질서 정착을 위해 간행한 『삼강행실효자도』에 고려불화의 뇌신도상이 수용된 것은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미술에 대한 유연한 태도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는 국초부터 강력한 억불정책을 실시했지만, 조선 초기에는 왕과 왕비, 비빈, 대군, 종친 등의 주도로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왕실의 후원을 바탕으로 다수의 불상과 불화가 제작되었다.32 李原海, 崔涇, 李孟根, 李長孫 등 조선 초 왕실의 도화서 소속 화원들이 불화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33 특히 세종은 국가운영과 사회교화의 구체적인 방안 모색에는 유교를 기준으로 삼았으나, 신앙의 측면에서는 불교의 전통의식을 계승하는 유불공존의식을 지니고 있었다.34 또한 일본 西福寺 소장 <수월관음도>와 知恩院 소장 <도갑사 관세음보살32응신도>에 그려진 뇌신 역시 양손과 양발에 들린 북채로 연고를 치는 모습을 하고 있어,35 조선 전기 불화에 고려불화의 뇌신도상이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묘법연화경』 권7의 사경변상도에서 「관세음보살보문품」 관련 도상들이 고려 말기의 도상을 그대로 답습한 점을 고려할 때,36 고려불화에 그려졌던 뇌신도상이 조선 전기 불화로 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기반으로 유교윤리서인 『삼강행실효자도』에도 고려불화의 뇌신도상이 수용었다고 볼 수 있다.
Ⅳ. 『五倫行實圖』에 표현된 雷神圖像의 특징
『삼강행실도』의 편찬 이후, 조선왕조는 풍속을 교정하고 왕권을 정비해야 하는 시기마다 『속삼강행실도』 (중종 9, 1514), 『이륜행실도』 (중종 13, 1518), 『동국신속삼강행실도』 (광해군 9, 1617)와 같은 행실도 서적을 간행해 반포하였으며,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오륜행실도』를 만들었다. 『오륜행실도』는 정조의 명에 따라 1797년에 간행되었으며, 세종 때 만든 『삼강행실도』와 중종 때 편찬된 『이륜행실도』를 합한 것이다. 권1에서 권3까지는 『삼강행실도』에서 뽑은 孝子 33인, 忠臣 35인, 烈女 35인이 수록되었고, 권4에서 권5까지는 『이륜행실도』에서 발췌한 47인의 兄弟, 宗族, 朋友, 師生 관련 고사가 담겼다.37
『오륜행실도』가 다른 행실도 서적과 대별되는 특징은 삽화이다. 이전의 행실도 삽화에서는 한 화면에 시공간이 다른 여러 장면을 표현한 것과 달리, 『오륜행실도』에서는 고사의 중심 내용을 단일 장면으로 그렸다. 『삼강행실효자도』에서 뇌신도상이 등장한 고사 가운데 『오륜행실도』에 수록되지 않은 <채순상심>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삽화를 살펴보면, <왕부폐시>는 왕부가 후학들과 함께 『시경』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한 화면에 그려졌다. 그에 따라 천둥이 치는 날에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왕부가 울부짖는 대목이나 이 장면에서 등장했던 뇌신은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오이면화>에서는 오이가 집에 계신 어머니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野田에 나가 벼락에 맞으려 한 대목이 그려지면서 화면의 우측 상단에 뇌신이 등장한다.(Fig. 13) <오이면화>에 표현된 뇌신도상은 지금까지 살펴본 뇌신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언뜻 보면 하늘에서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다. 새의 머리에는 깃털이 달렸고, 양발에 발톱이 있으며, 활짝 펼친 날개 위에는 원통 모양의 물체 4개가 놓였는데, 연고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뇌신의 주변에는 구름이 둘러싸고 있으며, 구름 사이에는 끝이 뾰족한 번개 모양이 표현되었다.
우리나라 회화 작품 가운데 이와 같이 새의 특성을 지닌 뇌신도상이 그려진 가장 이른 예는 『月印釋譜』로 확인된다. 『월인석보』는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을 합하여 1459년에 간행하였으며, 서강대학교 소장 『월인석보』 권1·2에 수록된 판화는 현전하는 八相圖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38 팔상도 중 여섯 번째 장면인 <樹下降魔>는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의 유혹과 방해를 물리치고 항복을 받는 내용을 그렸는데 여기에 뇌신이 등장한다.(Fig. 14) 본문에 “우레 번개를 치며 무기를 가진” 귀신이나 “눈이 많은 귀신이 소리가 벼락같은 것”이라는 대목이 있어,39 석가모니의 成道를 방해하는 여러 귀신 중 하나로 뇌신이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월인석보』에 등장한 뇌신은 사람 몸을 하고 있으나 얼굴에 부리가 있고 어깨에 날개가 달렸으며 양 발에는 발톱이 있다. 뇌신의 한 손에는 망치가, 다른 손에는 끝이 뾰족한정이 들렸다. 뇌신의 주위에는 연고와 구름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으며 뇌신은 긴 머리털을 흩날리며 하늘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모습이다. 뇌신 옆에는 타악기의 일종인 哱囉 모양의 원반을 양손에 쥔 雷母가 함께 그려졌다. 『오륜행실도』에서 새의 모습으로 그려진 뇌신은 이와 같은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에서 연원한 것으로 보인다.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불교의 護法神인 迦樓羅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제시된 바 있다.40 본래 인도 신화에 등장했던 가루라는 불교에서 팔부신중의 하나로 그려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8세기부터 석탑부조상에 나타나기 시작한다.41 조선 후기에는 중국의 도교 경전인 『玉樞經』에 수록된 신장 도상 중 하나인 主雷鄧天君을 차용해서 신중도의 가루라상이 그려졌다.42 『玉樞經』은 중국 도교에서 雷部를 관장하는 主神인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이하 뇌성보화천존)의 설법을 담은 책이다.43 1427년에 세종에게 올린 상소에는 소격전에서 뇌성보화천존에게 비가 내리는 기도를 드릴 것을 청하는 내용이 있어,44 『옥추경』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조선 초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옥추경』은 조선왕조의 祈雨祭에 여러 차례 활용되었고, 성종대 간행된 『경국대전』에는 道流의 시험과목으로 『옥추경』이 포함되었다.45 특히 『옥추경』은 도교 경전이지만 현전하는 대부분의 조선 시대 판본이 사찰에서 간행되었고, 誦經을 하면 악귀를 쫓고 질병을 낳게 해주며 비를 내리게 해준다는 신앙 때문에 사찰이나 민간에서 각종 기도 의식을 할 때 다른 불교 경전들과 함께 독송되었다.46
현전하는 『玉樞經』 판본 중에서 삽화가 수록된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은 15세기에 간행된 영국도서관 소장 『高上神雷玉枢雷霆宝經符篆』이고,47 삽화가 수록된 조선 시대 판본으로는 1570년 안심사본과 1733년 보현사본 등이 있다.48 삽화본에는 뇌성보화천존과 주뢰등천군뿐만 아니라 雷公과 雷母, 雷神 등이 그려졌다. 세 삽화본에 수록된 주뢰등천군은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얼굴에는 새의 부리가 달렸고 양쪽 귀 옆으로 머리털이 흩날리고 있다. 근육질의 사람 몸에 양어깨에는 날개가 달렸으며 양손에는 각각 번개 망치(雷錘)와 번개 정(雷鑽)을 들고 있는데,49 이러한 모습은 『월인석보』에 그려진 뇌신도상과 유사하다. 주뢰등천군은 새의 부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는 점과 용을 잡아먹는 특성이 가루라와 유사하며, 가루라는 용을 퇴치하고 폭풍우나 霹靂 등의 재해를 막을 수 있는 뇌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50 『월인석보』의 뇌신은 가루라상과 주뢰등천군이 지닌 유사한 성격과 새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아 종래의 獸頭人身형에서 鳥頭人身有翼형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Fig. 15) 한편, 연고를 치는 뇌공과 바라를 양손에 든 뇌모는 부부의 모습으로 한 화면에 표현되었다.51 다른 면에 수록된 뇌신은 獸頭人身형에 연고를 치는 모습이며 뇌신 아래에는 우산을 들고 비를 막으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함께 그려졌는데, 고려 시대 사경변상도에 등장한 뇌신도상과 유사하다.(Fig. 16)
이와 같은 鳥頭人身有翼형 뇌신은 조선 후기 팔상도나 감로도에 자주 그려졌다.52 특히 조선 후기 팔상도가 대부분 『월인석보』에 수록된 팔상판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53 <송광사 영산전 팔상탱>(1725년)이나 <통도사 영산전 팔상탱>(1775년)을 비롯해 조선 후기 팔상도에는 『월인석보』의 뇌신도상을 계승한 鳥頭人身有翼형 뇌신이 많이 그려졌다.54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畵僧 丕賢 등이 그린 <팔상도> 중 <수하항마상>에 묘사된 뇌신 역시 사람 몸을 하고 있으나 얼굴에는 새의 부리, 어깨에는 날개, 양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렸으며, 양손에는 각각 망치와 정을 들고 있다.(Fig. 17) 여러 개의 북이 둥글게 연결된 연고에 둘러싸인 뇌신은 머리털을 흩날리면서 거꾸로 떨어지는 모습으로, 뇌신과 雷母뿐만 아니라 雷夫가 함께 그려진 점을 제외하면 『월인석보』의 뇌신도상과 거의 동일하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尹斗緖(1668~1715)의 <擊虎圖>에서도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을 확인할 수 있다.(Fig. 18) 이 그림은 윤두서가 『忠義水湖傳』의 삽화를 응용하여 도복을 입은 인물이 마귀대신 호랑이를 잡는 장면으로 바꿔 그린 것이다.55 <격호도>에 그려진 뇌신은 근육질의 사람 몸에 상반신은 탈의한 채 한 손에는 망치, 다른 손에는 정을 들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며, 부리를 유난히 길고 가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윤두서가 필사하여 소장했던 청대 백과사전인 『管窺輯要』의 <天鼓>에도 이와 같이 새의 부리가 강조되고 하의만 입은 채 망치와 정을 양손에 들고 있는 뇌신도상이 수록되어 있어, 『관규집요』에 수록된 뇌신도상을 참고하여 <격호도>를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56(Fig. 19)
이와 같은 내용을 정리하면, 18세기 말에 간행된 『오륜행실도』에서 새의 모습으로 표현된 뇌신은 조선 후기 뇌신도상의 주류였던 鳥頭人身有翼형 뇌신이 도식화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회화에서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이 그려진 가장 이른 예는 『월인석보』로 확인되며, 『월인석보』의 뇌신도상은 불교의 호법신인 가루라상과 도교 판화인 『옥추경』에 그려진 주뢰 등천군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獸頭人身형에서 鳥頭人身有翼형으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은 조선 후기 팔상도나 감로도에 자주 그려졌으며, 비슷한 시기에 윤두서가 명청대 서적 삽화의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을 참고하여 그림을 제작하기도 하면서 조선후기 뇌신도상의 주류가 되었다. 『오륜행실도』에서는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에서 보이는 새의 부리나 날개, 발톱과 같은 조류의 특징이 강화되면서 큰 발톱을 가진 새의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뇌신 주변에 둥글게 그려졌던 연고는 단순하고 간략한 원통형으로 변하였으며 새의 날개 위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월인석보』의 뇌신이나 『옥추경 』의 주뢰등천군에서 보이는 머리카락 역시 도식화 되면서 『오륜행실도』에서는 머리 위에 솟아난 깃털 같은 형태로 그려졌다. 또한 『오륜행실도』에서는 뇌신의 주위를 구름이 둥글게 에워싸고 그 안에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번개 모양이 그려졌는데, 이러한 번개 표현은 『옥추경』에 등장하는 뇌공의 연고 옆이나, 『釋氏源流應化事蹟』 수록 삽화에서 뇌공의 연고 주위에 그려진 번개의 모습과 유사하다.(Fig. 20) 『석씨원류응화사적』은 17세기에 중국에서 전래된 뒤 우리나라에서 판각되어 조선 후기 팔상도의 형식과 도상에 많은 영향을 준 책으로,57 이 책에는 <聞雷悟道>를 비롯해 <道安遠識>, <從禮祈雨> 등 3개의 삽화에 뇌신도상이 그려졌으며, 세 삽화 모두에서 이와 같은 번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Ⅴ. 맺음말

이 논문은 세종 대에 간행된 『삼강행실효자도』와 정조 때 편찬된 『오륜행실도』 삽화에 그려진 뇌신도상의 기원과 특징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중국에서 뇌신도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산해경』과 『논형』의 기록 및 漢代 화상석과 둔황 막고굴 벽화를 통해 뇌신도상이 力士와 連鼓를 기본형으로 하면서 獸頭로 교체되거나 날개가 추가된 형식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초에 간행된 『삼강행실효자도』의 뇌신은 양손과 양발에 들린 북채로 연고를 치는 獸頭人身형으로, 도상의 기원을 파악하기 위해 『삼강행실효자도』의 간행 과정에서 참고하였던 『효행록』, 『이십사효도』 등과 연관된 뇌신도상을 찾아보았으나, 명확한 관련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반면, 선행연구에서 제시되었던 고려불화의 영향을 검토한 결과, 『삼강행실효자도』와의 관련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삼강행실효자도』 수록 고사와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도해한 고려불화 모두에서 천둥과 벼락을 공포와 역경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뇌신도상을 사용한 점과 조선 초 왕실의 불교미술에 대한 유연한 태도가 배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8세기 말에 간행된 『오륜행실도』에 나타난 뇌신도상은 조선 후기 회화에서 鳥頭人身有翼형으로 자주 그려졌던 뇌신이 도식화되면서 실제 새의 모습에 가깝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회화에서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의 가장 이른 예는 『월인석보』로 확인되며, 『월인석보』의 뇌신은 불교의 호법신인 가루라상과 도교 경전인 『옥추경』에 그려진 주뢰등천군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獸頭人身형에서 鳥頭人身有翼형으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은 팔상도나 감로도에 자주 그려졌고, 비슷한 시기에 윤두서가 명청대 서적 삽화에 그려진 鳥頭人身有翼형 뇌신도상을 참고하여 회화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면서, 조선후기 뇌신도상의 주류가 되었다. 이처럼 『오륜행실도』의 뇌신은 천둥과 번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삼강행실효자도』의 뇌신과 동일하지만, 조선 시대에 널리 유통된 불교나 도교 관련 서적 삽화 등의 영향으로 『삼강행실효자도』의 獸頭人身형 뇌신과는 전혀 다른 새의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조선 시대 행실도 판화에 그려진 뇌신도상은 공들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삽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고 등장하는 횟수도 많지 않지만,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에 그려질 만큼 조선 시대에 널리 알려진 도상이었다. 특히 『삼강행실효자도』와 『오륜행실도』에 그려진 뇌신은 현격하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두 도상을 모두 천둥과 번개를 상징하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처럼 뇌신도상에 대한 높은 인지도는 유교윤리서인 행실도의 삽화나 불교 및 도교 관련 회화의 각기 다른 맥락 속에서도 유사한 뇌신도상이 사용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논문은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 행실도 삽화에 보이는 뇌신도상의 기원과 특징을 고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회화에 표현된 뇌신도상이 獸頭人身형에서 鳥頭人身有翼형으로 변하는 큰 흐름을 파악하고 조선 시대 유교와 불교, 도교 미술에서 뇌신도상이 공유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Notes

1) 이주노, 「중국의 천둥신(雷神)에 관한 소고(小考)-명칭을 중심으로」, 『중국문학』 101 (2019), pp. 67-83.

2) 한정희, 「風神雷神圖像의 起源문제와 韓國의 風神雷神圖」, 『미술사연구』 10 (1996), pp. 21-49.

3) 민금수, 「朝鮮時代 佛畵에 보이는 雷神像 硏究」 (동아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5).

4) 이주노, 「중국의 천둥신(雷神)에 관한 연구-그 형상을 중심으로」, 『중국문학』 107 (2021), pp. 269-288; 류희승, 「한중일 뇌신(雷神)에 관한 고찰」, 『일본학보』 71 (2007), pp. 335-348; 노성환, 「高麗와 日本의 雷神圖에 관한 比較硏究」, 『일어일문학』 82 (2019), pp. 225-248; 同著, 「조선과 에도의 뇌신(雷神)에 관한 비교연구」, 『일본어문학』 83 (2019), pp. 301-327.

5) 이태호·송일기, 「初編本 『三綱行實孝子圖』의 編纂過程 및 版畫樣式에 관한 硏究」, 『서지학연구』 25 (2003), p. 431.

6) 박순이는 『삼강행실효자도』에 등장한 뇌신의 형상이 『오륜행실도』에서 변화되어 그려졌다고 언급하였으나, 도상 분석이나 배경 고찰은 시도하지 않았다. 박순이, 「조선 시대 행실도류 효자도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박사학위 논문, 2023), pp. 144-146.

7) 한정희, 앞의 논문; 羅玲, 「中国皮影における雷公像の図像的考察」, 『早稲田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紀要』 62 (早稲田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 2017), pp. 686-684.

8) 『山海經』, 「海內東經」, “雷澤 中有雷神 龍身而人頭 鼓其服 在吳西.” 국역은 정재서 역, 『산해경』 (민음사, 1985)를 참고함.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9) 『山海經』, 「大荒東經」, “東海中有流波山, 入海七千里. 其上有獸, 狀如牛, 蒼身而無角, 一足, 出入水則必風雨, 其光如日月, 其聲如雷, 其明曰夔. 皇帝得之, 以其皮爲鼓, 橛以雷獸之骨, 聲聞五百里, 以威天下.” 국역은 정재서역, 『산해경』 (민음사, 1985)를 참고함.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10) 천둥신을 일컫는 雷神, 雷獸, 雷公, 雷母, 雷師, 雷王 등 다양한 명칭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주노, 「중국의 천둥신(雷神)에 관한 소고(小考)-명칭을 중심으로」, 『중국문학』 101 (2019), pp. 73-78.

11) 王充, 『論衡』, 「雷虛」, “…圖畫之工, 圖雷之狀, 纍纍如連鼓之形. 又圖一人, 若力士之容, 謂之雷公, 使之左手引連鼓,右手推椎, 若擊之狀. 其意以為,雷聲隆隆者, 連鼓相扣擊之意也, 其魄然若敝裂者, 椎所擊之聲也. 其殺人也, 引連鼓相并擊之矣….” 국역은 성기옥 譯, 『논형』 (동아일보사, 2016), p. 268을 참고함.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12) 『중국 고대회화의 탄생』 (국립중앙박물관, 2008) p. 102에서는 무씨사 좌측 석실 천장의 2층 화면을 <雷公天罰圖>라고 명명하였다. 한편, 『中國畫像石全集』 권1 (山東美術出版社, 2000), p. 29에서는 화면의 중간에 머리가 길고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인 채 구름 위에 서 있는 형상을 雷母로 보았다.

13) 집안 오회분 5호묘 벽화 출토 牛頭人身의 神農氏를 비롯해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人面鳥, 人頭獸, 瑞獸, 仙人, 四神 등 신비롭고 다양한 요소들이 그려졌으나 뇌신도상은 확인하지 못했다; 풍신뇌신상이 한국과 일본에서 각기 다르게 수용되는 양상에 대해서는 한정희, 앞의 논문, pp. 27-29를 참조.

14) 『삼강행실도』에 대해서는 미술사학뿐만 아니라 역사학, 국어학, 서지학 등 다각도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각 분야의 연구 성과를 모은 대표적인 책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조선 시대 책의 문화사』 (휴머니스트, 2008)가 있다.

15) 언해본에 비해 한문본은 현전하는 수량이 매우 적으며, 『삼강행실효자도』의 경우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소장본과 보물로 지정된 개인 소장본, 그리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 정도가 확인된다.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소장본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영상, 「삼강행실효자도 연구-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만송문고 『삼강행실효자도』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한국 및 동양미술전공 석사학위 논문, 2002); 보물로 지정된 개인 소장본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최경훈, 「德源堂本 『三綱行實孝子圖』의 發見과 價値」, 『고인쇄문화』 19 (2012), pp. 91-11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은 영인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삼강행실도 효자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2); 그 외 일부 내지만 남아있는 한문본이 있다고 하나, 실물은 확인하지 못했다. 류탁일, 「初刊 三綱行實圖에 對하여」, 『한국어문학』 11 (1974), pp. 85-113.

16) 주요 내용은 『삼강행실도-효자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2)의 국역을 참고하였으며,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17) 『世宗實錄』 卷63, 世宗 16年(1434) 2月 3日條, “慶幸坊住學生李伯孜……其母平時, 畏其雷聲失措, 守墳三年之內, 雷風忽至, 雖夜奔走, 覆於塚上, 以待雷聲之止.”

18) 「三剛行實圖序」, “…孝子則謹錄太宗文皇帝所賜孝順事實之詩, 兼取臣高祖臣溥所撰孝行錄中名儒李齊賢之贊, 其餘則令輔臣分撰….” 국역은 『삼강행실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2)를 참고함.

19) 오민석·김유범·이규범, 「언해본 삼강행실도 효자도의 원전과 텍스트 성립 과정에 대하여」, 『국어사연구』 30 (2020), pp. 187-238.

20) 宇野瑞木, 「元・郭居敬撰『全相二十四孝詩選』系諸本の成立と展開について」, 『東洋文化研究所紀要』 177 (2020), pp. 1-3.

21) 이 논문에서는 각 계통의 현전하는 판본 중에서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른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 국가도서관 소장 『전상이십사효시선』과 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 『新鐫徽郡原板校正絵像註釈便覧興賢日記故事』 판본을 사용하고자 한다. 宇野瑞木, 위와 같음.

22) 『효행록』과 『전상이십사효시선』, 『일기고사』에 각각 수록된 24명의 효자의 종류와 내용 비교는 다음을 참조. 최정운, 앞의 논문, pp. 33-45.

23) 「孝行錄序」, “…府院君吉昌權公, 嘗命工人, 畵二十四孝圖…”, 국역은 윤호준 譯, 『효행록』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7), pp. 3-6을 참고함.

24) 김문경이 『효행록』에 수록된 이십사효도와 중국 북방지역 고분벽화의 이십사효도와의 관련성을 제시한 이후 이를 수용한 여러 후속연구들이 진행되었다. 김문경, 「高麗本 『孝行錄』과 中國의 「二十四孝」」, 『한국문화』 45 (2009), pp. 3-14; 박순이, 앞의 논문; 최정운, 「동아시아의 이십사효도(二十四孝圖)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8).

25) 橋本草子, 「慶応義塾大学斯道文庫蔵写本「廿四孝詩」について」, 『紀要論文』 56 (2008), pp. 2, 14. 일본 류코쿠대학 도서관에는 삽화가 있는 책과 삽화 없이 본문만 수록된 책 등 2종의 『신간이십사효시선』이 소장되어 있다.

26) 郭巨正·高月槎 輯錄, 임동석 역, 『이십사효』, 동서문화사, 2012, p. 209의 상단 도판 참조.

27) 한정희, 앞의 논문, pp. 29-31.

28) 현전하는 기년명 『묘법연화경』 사경변상도의 작례와 제7권의 「관세음보살보문품」 중 운뇌박우난이 그려진 예는 다음을 참조. 문선희, 「고려시대 『묘법연화경』 사경변상도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5), p. 48의 <표4> 및 p. 85의 <표11>.

29) 한정희, 앞의 논문, p. 31.

30) 문선희는 고려 金剛峯寺本(1081년)이 거란대장경판본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가장 빠른 시기의 작품으로 보았다. 또한 『묘법연화경』 제3권 중 三草二木 도상의 변용과 관련하여, 고려 금강봉사 변상도가 요대 판본과의 영향관계를 보여 주며 송대 판본 도상으로 변화하는 중간단계를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요대 佛宮寺 출토 판본에 수록된 龍, 風神, 雷神이 <도14>로 제시되었다. 문선희, 「고려시대 『妙法蓮華經』 寫經變相圖의 도상연구」, 『미술사학연구』 264 (2009), pp. 19-21.

31) 『成宗實錄』 卷39, 成宗 5年(1474) 2月 3日條 “命減膳, 又命禁酒, 因雷變也”; 『中宗實錄』 卷20, 中宗 9年(1514) 9月 27日條 “而今當秋季, 數旬之內, 雷變疊見, 天之譴告極矣, 豈無所召而然乎. 予甚懼焉。 自古有非常之災, 則有非常之變, 上下其可不各自省察之哉”; 『肅宗實錄』 卷23, 肅宗 17年(1691) 9月 20日條 “政院以雷變陳戒, 上嘉納之.”

32) 김정희, 「1465年作 觀經16觀變相圖와 朝鮮初期 王室의 佛事」, 『강좌미술사』 18, pp. 60-63.

33) 유경희, 「왕실 발원 불화와 궁중 화원」, 『강좌미술사』 26 (2006), pp. 580-597.

34) 조남욱, 「세종의 불교 수용에 관한 연구」, 『윤리교육연구』 24 (2011), p. 311.

35) 민금수, 앞의 논문, p. 37.

36) 김도윤, 「도갑사 〈관세음보살32응신도〉 도상 연구」, 『불교미술사학』 9 (2010), p. 66. <도갑사 관세음보살32응신도>의 근거 경전에 관한 논의는 pp. 45-46 및 각주 3 참조

37) 『오륜행실도』의 편찬 배경과 양식적 특징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정붓샘, 「조선후기 오륜행실도에 나타난 화풍 연구」, 『梨院학술논집』 2 (2004), pp. 55-108.

38) 본고에서는 1459년의 원간본으로 보물로 지정된 서강대학교 소장 『월인석보』 권1,2를 사용하고자 한다. 조선 시대에 제작된 팔상도 목록은 다음을 참조. 박수연, 「조선 시대 팔상도의 특징」, 『불교미술사학』 4 (2006), pp. 224-226의 <표1>.

39) 역주 『월인석보』 제4 (세종대왕기념사업회), “魔王이 더 怒 야 十八億 兵馬 모도니 變 야…울에 번게 며….”, “귓것 히 구룸 지픠 더니……눈 한 귓거시 소리 霹靂 니도 이시며….” 출처: 세종한글고전 웹사이트.

40) 타케시 쿄고쿠는 뇌신도상의 발생에 가루라 도상이 영향을 미친 근거로 가루라 도상에서 자주 보이는 뱀을 물거나 짓밟는 모습이 『酉陽雑俎』나 『錄異記』에서 뱀을 잡아 먹으려고 하거나 짓밟는 기록과 유사한 점과 唐代 밀교 경전인 『金剛光焔止風雨陀羅尼經』에서 가루라가 용을 퇴치하고 폭풍우나 霹靂 등의 재해를 막을 수 있는 뇌신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들었다. 京極健史, 「中国における雷神像の変容」, 『饕餮』 13 (2005), pp. 111-137; 羅玲, 「中国皮影における雷公像の図像的考察」, 『早稲田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紀要』 62 (2017), p. 680 참조 및 각주 6 재인용.

41) 한재원은 팔부중상의 실제 造像이 인도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인도에서는 각 신들이 거의 개별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중국에서 불경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팔부중 또는 천룡팔부라는 집합적 개념으로 우리나라에 수용된 것으로 보았다. 8-9세기 석탑 부조에 새겨진 가루라상은 날카로운 부리의 표현을 특징으로 하며 주로 천신상 옆에 배치된다. 한재원, 「한국 고대 신중상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8), pp. 32-33, 36, 102-108.

42) 김현중은 주뢰등천군이 새의 부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는 점과 용을 잡아먹는 특성이 팔부중의 하나인 가루라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주뢰등천군이 지물로 번개를 일으키는 雷錘와 雷鑽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루라와 차이가 있지만, 『封神演義』나 『西遊記』와 같은 신마소설에서 주뢰등천군이 새의 형상을 한 神으로 등장한 것처럼, 조선후기 민중들은 가루라와 주뢰등천군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새의 형상을 한 神으로 인식했으며 두 신을 혼동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김현중, 「조선 후기 신중도의 『옥추경』 도상 차용」, 『동악미술사학』 32 (2022), pp. 78-81.

43) 『옥추경』의 원래 명칭은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玉樞寶經』이며, 『玉樞寶經』이라고도 한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은 도교 雷部의 뭇 신들 중 최고의 尊神이다. 뇌부에서는 五雷(天雷, 地雷, 水雷, 神雷, 社雷)를 관리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한다. 鍾肇鵬, 이봉호·신진식·최재호·이대승·박용철 역, 『도교사전』 (파라아카데미, 2018), pp. 489-490, 681-682; 한편, 『옥추경』이 중국에서 간행된 시기와 편찬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唐末에 杜光庭(850-933)이 지었다는 설과 集注本의 卷末에 玄陽子(張嗣成의 號)가 쓴 跋文을 근거로 1333년에 장사성 (?~1344)이 편찬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이정재, 「『옥추경(玉樞經)』의 성립과 활용 및 사상사적 의의」, 『한국종교』 42 (2017), pp. 150-1; 문순회, 「『옥추경』 판본의 서지적 특성에 관한 연구」, 『동아시아 불교문화』 50 (2022), pp. 314-5.

44) 『世宗實錄』 卷36, 世宗 9年(1427) 6月 11日條, “前判羅州牧事黃子厚上言, 祈雨之法雖多, 雷聲普化天尊, 祈雨尤切. 請擇道流淸齋, 以上護軍李蓁祈禱于昭格殿, 從之.”

45) 김현중, 앞의 논문, pp. 67-69.

46) 문순회, 앞의 논문, p. 312.

47) 尹翠琪은 영국도서관 소장 『高上神雷玉枢雷霆宝經符篆』의 後序, 결손흔적, 삽화 등을 분석하여 이 판본이 종래에 알려졌던 1333년에 간행된 원대 초판본이 아니라 명대 영락연간(1403~1424) 또는 그 이후인 15세기에 간행된 후판본이라고 주장하였다. 尹翠琪, 「道教版畫研究:大英圖書館藏 《玉樞寶經》 四註本之年代及插畫考」, 『道教研究學報:宗教、歷史與社會』 2 (2010), pp. 135-183.

48)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옥추경』 판본은 5종 이상으로 확인되며, 가장 오래된 판본은 감로사본(1563년)이다. 본고에서는 그림이 수록된 1570년의 무등산 안심사본 『옥추경』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을 사용하고자 한다. 『옥추경』의 현전 판본에 대해서는 문순회, 앞의 논문, p. 317의 <표1> 참조; 尹志华에 따르면 삽화가 수록된 『옥추경』 조선 시대 판본으로는 안심사본(1570년), 보현사본(1733년), 계룡산본(1888년)이 있으며, 이와 비슷한 중국 판본으로는 영국도서관 소장본과 일본 天理大學 소장본이 있다. 尹志华, 「朝鲜刊本『玉枢宝经』中的神像研究」, 『대순사상논총』 22 (2014), p. 135-136.

49) 『正統道藏』 太平部, 『法海遺珠』 卷二十三 “第一帥鄧伯溫 育面鳳觜 銀牙 朱發 藍身 長百丈 右手雷鍾 左手雷鋼 生兩肉翅 眼放光 足龍JT飛 行三界香峻鬼神”, 김현중, 앞의 논문, p. 78, 각주 22 재인용.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50) 각주 40 및 42 참조.

51) 이주노는 雷公이라는 명칭이 남성화된 자연신의 개념이 되면서, 송대 이후부터 雷母와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뇌공과 뇌모가 부부가 된 이야기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주노, 「중국의 천둥신(雷神)에 관한 소고(小考)-명칭을 중심으로」, p. 76.

52) 민금수에 따르면, 조선 후기 감로도나 팔상도에 그려진 뇌신도상 중 獸頭有翼상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그 중에서도 부리가 있는 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민금수, 앞의 논문, pp. 31-35.

53) 조선 후기 팔상도는 『월인석보』에 수록된 팔상판화의 전통에 『釋氏原流應化事蹟』의 다양한 도상이 추가된 형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영종, 「朝鮮時代 八相圖 圖像의 淵源과 展開」, 『미술사학연구』 215 (1997), p. 44.

54) 박수연은 『월인석보』나 18세기 초 팔상도에서는 경전에서와 같이 뇌신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방해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1775년) 이후에는 석기모니의 위신력으로 감화를 받은 뇌신이 오히려 마왕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박수연, 앞의 논문, pp. 233-235.

55) 차미애, 『공재 윤두서 일가의 회화』 (사회평론, 2014), pp. 432-436. 본고에서 참조한 삽화는 같은 책, p. 436, 도 4-216로 수록된 『충의수호전』 明 容與堂刊本이다.

56) 차미애, 위의 책, pp. 208-209. 『관규집요』는 1652년에 중국에서 목판본으로 初刊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숙종연간(1674-1720)에 古活字本으로 復刊되었다. 앞의 책, p. 196; 한편, 민금수에 따르면, 『관규집요』에 그려진 뇌신처럼 머리에 작은 관을 쓰고 있는 도상은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감로도에 등장하는 뇌신도상의 대세를 이룬다. 민금수, 앞의 논문, pp. 15-16; 윤두서의 <격호도>를 제외하고, 조선 시대 일반 회화에서 뇌신도상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는 金德成(1752-1784)의 <雷公圖>가 있다. 김덕성의 뇌공도로 알려진 작품은 2점이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뇌공도>(덕수 2272)와 <신선>(덕수 1637)이며, <뇌공도>(덕수 2272)에서는 뇌신이 북을 메고 양손에 망치와 칼을 든 力士형으로 그려졌다. 한편, <신선>(덕수 1637)과 관련하여, 배원정은 雷公圖像이 아닌 魁星圖像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배원정, 「魁星 圖像의 기원과 전개」, 『미술자료』 84 (2013), pp. 49-73.

57) 『釋氏原流』는 석가모니의 행적과 사상이 인도와 중국에서 전개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정리한 책으로, 400여개의 일화가 그림과 글로 수록되었다. 1422년에 편찬되기 시작하여 1425년에 처음 간행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널리 유통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불암사본(1673년)과 선운사본(1711년) 두 종류의 판본이 있다. 석씨원류의 명·청대 판본과 우리나라 전래 경위 및 판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영종, 「『석씨원류』와 중국과 한국의 불전도」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6), pp. 28-37, 165-175; 본고에서는 명대 成化本(1486년)을 토대로 1673년에 경기도 불암사에서 간행한 불암사본의 영인본인 이광우 역, 『석씨원류응화사적』 (법보원, 2006)을 사용하고자 한다.

Fig. 1.
雷 神, 武氏祠 畫像石 拓本, Thunder god, Rubbing from the Wu shrine's stone relief carving, Eastern Han (Zhongg uo huaxiangshi guanji, vol. 1, p.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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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雷神, 둔황 제17 굴 출토 幡 부분, Thunder god, a detail of the painted banner excavated from Cave 17, Mogan Caves, Dunhuang, 8th-9th century, Tang, ink and color on silk, The British Museum (The British Museum, https://www.british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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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雷神(좌)과 風神(우), 둔황 제249굴, Thunder god (left) and Wind god (right) from the west ceiling of Dunhuang Mogo Cave 249, Mogan Caves, Dunhuang, Northern Wei, 北魏(386-534) (Dunhuang shiku quanji, vol. 23, pp. 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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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神獸, 河北省子縣灣漳村北朝壁畫墓, My thical animal, mural painting from Wanzhangcun, Hebei, (550-577), L. 131.3 cm, Cultural Relics Institute of Hebei Province (Zhong guo chutu bihua quanji, vol. 1, p.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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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吳二免禍> 부분, 『三 綱行 實孝子圖』, Detail of “Wu Er saved from disaster” from the Illustrated Guide to the Three Human Bonds: Filial Sons, Korea University Library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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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王裒廢詩> 부분, 『三 綱行 實孝子圖』, Detail of “Wang Pou stops in the middle of reading the shijing” from the Illustrated Guide to the Three Human Bonds: Filial Sons, Korea University Library (photograph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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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孝子王裒, 山西省太 原 市集 化厂唐墓, The filial son Wang Pou, a tomb mural from Jiaohuachang in Taiyuan, Shangxi, 唐武周(690-704), Tang, H. 68cm, W. 47cm (Zhong guo chutu bihua quanji, vol. 2, p.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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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蔡順> (좌), 『全相二十四孝 詩 選 』, “Cai Shun,” The Twenty - Four Filial Exemplars with Illustrations and Poems National Library of China (National Library of China, http://www.nlc.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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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王裒>, 『 新 刊 全 相 二 十 四 孝 詩 選 』, “Wang Pou,” Fully Illustrated Selected Poems on the Twenty - Four Filial Exemplars, Ryukoku University Library (Ryukoku University Library Digital A rchives, https://da.library.ryukok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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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妙法蓮華經』 第七卷 變像圖 부분, 日 本 天 倫 寺, Detail of illustrated manuscript of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 volume 7, 1315, Gold on Indigo Paper, Tenrinji, Japan (Koryŏ pulhwa, p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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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水月觀音圖> 부분, 日本 靜嘉堂美術 館, Detail of Water-moon Avalokiteshvara, Seikado Bunko Art Museum (Kŏraijidai no butsuga, p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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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妙法蓮 華 經 』 第七卷 變 像圖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Detail of illustrated manuscript of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 volume 7, 1385, Gold on Paper, National Museum of Korea (e-museum Korea, http://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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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3.
<吳二免禍> 부분, 『五倫行實圖』, Detail of “Wu Er saved from disaster,” Illustrated Guide to the Five Moral Imperatives, 1797,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Kyujanggak, https://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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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4.
<樹下降魔> 부분, 『月印釋 譜』, Detail of “Conquering the demons under the tree,” Songs of the Moon’s Reflection on a Thousand Rivers and Episodes of the Life of the Buddha, 1459, Sogang University Loyola Library (Digital Hangeul Museum, https://archives.hange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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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5.
主雷鄧天君, 『玉樞 經 』, Zhulei Deng tianjun, Scripture of the Jade Pivot, 1570, Yonsei University Library (Yonsei University Library, https://libra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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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6.
(왼쪽 부터) 雷母, 雷公, 雷 神, 『玉樞 經 』, Leimu (Mother of thunder), Leigong (Duke of thunder), Leishen (Thunder god from left to right), Scripture of the Jade Pivot, 1570, Yonsei University Library (Yonsei University Library, https://librar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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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7.
丕賢 등, <팔상도> 부분, Pihyŏn and other monk artists, Detail of Thunder god, The Great Events in the Life of the Buddha, 18th century, The Eight Great Events, Color on Silk, National Museum of Korea (e-museum Korea, http://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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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8.
尹斗緖, <擊虎圖>, 《家傳寶繪》, Yun Tusŏ, “Fighting with a tiger,” Treasured Paintings Inherited in the Family of Yun Tusŏ, 18th century, Ink on Paper, 26.2×63.6cm, Nogudang (Gongjae Yun Du-seo Family’s Paintings, p.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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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9.
黃鼎, 『管窺 輯要』 부분, Huang Ding Book of Astronomy 18th century, Nogudang (Gosan Yunseondo Museum, https://gosan.haena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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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0.
<聞雷悟道> 부분, 『釋氏源流 應化事蹟』, Detail of “Enlightened by hearing thunder,” Sŏkssi wŏlly uŭnghwa sajŏk, (『釋氏源流 應化事蹟』 卷3, 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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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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