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출토 중국계 동경을 통해 본 西遼(1124∼1218)의 교류사적 의미*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Cultural Exchanges of Qara Khitai (1124-1218) Interpreted Through Chinese-style Bronze Mirrors Excavated from Kyrgyzstan*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Art Hist. 2023;318():135-159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3 June 30
doi : https://doi.org/10.31065/kjah.318.202306.005
**Research Prof., The Institute for Humanities Research at Duksung Women’s University
박진경**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이 논문은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2S1A5C2A02092293)
Received 2023 February 15; Revised 2023 February 20; Accepted 2023 March 22.

Abstract

키르기스스탄 노보포크로브카(Novopokrovka) 지역에서 출토된 중국계 동경은 遼·金系 양식으로 카자흐스탄 동남부 및 키르기스스탄 북부를 중심으로 발견해온 동경들과 유사한 특징을 나타낸다. 五代 이후로 중앙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중세 중국계 동경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발견되는 양상을 살필 수 있어 주목된다. 중국계 동경들은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의 국경 지대로 추이 계곡(Chuy Vаllеу)을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이 지역은 12세기 초 거란이 金에게 중원을 내어주고 서쪽으로 이동해 西遼(Qara Khitai, 1124∼1218)를 다시 세웠던 곳으로 당시 수도였던 발라사군(Balasaghun)을 포함해 서요의 주요 거점지역에 해당하였다. 특히 중국의 동북삼성을 중심으로 출토된 금대 동경과 한국의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금계 동경과의 관련성도 찾을 수 있어 금계 양식이 국제적인 양식으로 유라시아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소비 및 유통되었던 상황과도 연결된다. 서요가 멸망했던 13세기 초 이후로 중국계 동경이 중앙아시아에서 출토되는 양상은 현저히 줄어든다. 몽골의 침략과 함께 오아시스 지역의 중심 도시들이 13세기를 하한선으로 갑자기 쇠락해 상당 기간 회복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됨에 따라 중국계보다 이슬람계 동경이 더 선호되었던 소비 기호의 경향 역시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Trans Abstract

Chinese-style bronze mirrors in the style of the Liao and Jin Dynasties excavated in Novopokrovka, Kyrgyzstan, display similarities to those found in southeastern Kazakhstan and northern Kyrgyzstan. As Chinese-style bronze mirrors of Central Asia rarely date later than the period of the Five Dynasties, the Novopokrovka mirrors are remarkable as being from the medieval period. They were mostly excavated in the Chuy Valley, the border area between Kyrgyzstan and Kazakhstan. In the early twelfth century, the Khitans lost the central China to the Jurchens and migrated to the west to establish the Qara Khitai (Western Liao). The new dynasty was centered around the Chuy Valley, including the capital city of Balasaghun. The Novopokrovka mirrors are mostly in the style of the Liao and Jin Dynasties from the late eleventh to the early thirteenth century, and closely resemble the Jin-style mirrors, mainly found in the three northeastern provinces of China—Jilin, Liaoning, Heilongjian—, and Koryŏ sites in Korea, implying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the Jin-style mirrors as an international style in the large areas of Eurasia. There are fewer examples of Chinese bronze mirrors made after the early thirteenth century, when the Western Liao collapsed . After the Mongolian invasion, the cities in the oasis region met sudden decline by no later than the thirteenth century and did not recover for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Furthermore, the preference for various types of Islamic-style mirrors, brought on by the expansion of Islamic influence may have also contributed to the decline of the Chinese-style mirrors.

Ⅰ. 머리말

중앙아시아는 동서 교류의 교통망이었던 실크로드를 따라 동아시아와 활발히 교류하였다. 이로 인해 알타이 지역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영역에서 중국계 동경이 일찍부터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중국 전국시대 성행했던 山字紋鏡이 알타이 파지릭(Pazyryk)의 왕족급 쿠르간에서 발견되기도 하였고,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틸리야 테페(Tillya tepe) 유적에서도 漢代 제작한 동경들이 출토되기도 하였다.1 특히 漢鏡과 관련해서는 유목민족으로는 처음으로 유라시아 동부에서 광활한 제국을 건설했던 흉노와 한나라 간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2 7∼8세기로 넘어와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대상단으로 활동했던 소그드 상인집단의 활약으로 唐鏡이 알타이, 샤안 산맥 등지에서도 발견되는 등 중국계 동경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되었다.3

이후 아바스 왕조와 당나라가 함께 쇠퇴했던 9세기 중반 이후부터 몽골이 유라시아를 대통합해 동서의 교역망을 새롭게 구축하기 직전인 13세기 초까지 중국과 서역 간의 교역 양상은 전후 시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축소된 인상을 준다. 실제 해당 시기의 경우, 서역과의 교역 양상을 대변해주는 실물 자료가 唐, 元에 비해 드물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 역시 양 시기를 중심으로 그간의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중앙아시아에서 중세 도시 및 주거지와 관련된 유적들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의 초원 지대를 중심으로 확인될 뿐 아니라 러시아의 주요한 연구성과들이 함께 소개되면서 중세 중국계 동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4

키르기스스탄 노보포크로브카(Novopokrovka)가 대표적인 사례로 五代 이후 중앙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중세 중국계 동경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해당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계 동경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동경이 유통될 수 있었던 시대 상황과 함께 동경이 지닌 교류사적인 의미에 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사실 9세기 중반〜13세기 초는 유목민족이었던 거란과 여진이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패권을 장악했던 시기로 심지어 요를 세운 거란이 금에 의해 멸망한 이후로도 서쪽으로 이동해 西遼(Qara Khitai, 1124∼1218)를 새롭게 건국했던 때와도 맞물린다. 유라시아를 무대로 삼아 거란의 서요가 마치 흉노나 몽골처럼 중원 문물을 매개로 삼아 서역과의 교역 활동을 장악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에 먼저 노보포크로브카 유적에서 출토된 동경을 중심으로 양식을 분석해 제작 시기를 살피고, 서요와의 관련성 속에서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 국경 인근에서 발견된 여러 자료들도 함께 비교해 고찰하고자 한다.

Ⅱ. 노보포크로브카(Novopokrovka)에서 출토된 동경

1. 노보포코스코에 유적지와 출토품

한 점의 중국계 동경이 키르기스스탄 노보포크로브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노보포크로브카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Bishkek) 근처로 약 11km 정도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Fig. 1). 비슈케크를 포함한 이들 지역은 모두 키르기스스탄 북쪽에 자리해 카자흐스탄과 경계를 맞댄 국경 지대와 인접한 곳이다. 동경은 노보포크로브카 중심부 언덕에 있는 중세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되었으며, 유적지의 구체적인 명칭은 ‘노보포코프스코에(Novopokrovskoe)-2’이다.5 1950년대 P.N. 코제마코(Kožemâko)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발굴이 진행되었으며, 지질학적인 지층 조사를 통해 8∼12세기에 해당하는 생활유적으로 파악된 바 있다.6 이후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1960년대 신축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동경을 포함한 여러 점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Fig. 1.

<추이 계곡의 주요 도시와 유적>, Historic cities and sites in Chuy Valley, April 13, 2023, data available from Google map (https://www.google.com/maps)

유적에서는 금속제 동경을 비롯해 석제 부조와 불두, 청동제 불상 등이 함께 출토되었다(Fig. 2).7 불교적인 성격이 강한 유물들로 불상을 비롯해 유적지 성격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된 바 있다. 주거지 전체를 불교 사원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단순히 사찰 혹은 작은 예배당과 같은 종교 시설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었다.8 그러나 건축물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미 유물뿐 아니라 유적도 상당 부분 훼손 및 파손된 상태로 더욱 구체적인 결론을 입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단지 유물이 출토된 중심부 언덕에 불교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이다. 그나마 2004년∼2019년 최근까지 키르기스스탄 국립과학원과 함께 해외 공동발굴조사를 진행해 유적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상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9 7세기 후반∼8세기 초에 해당하는 최초의 정착지가 조사과정에서 확실히 드러나는 한편, 11세기 마지막 분기∼12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주거용 생활 건물지가 상층부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Fig. 2.

<金銅佛像> Gilt Bronze Buddhist Statues, excavated from the Novopok rovskoe-2 site in Kyrgyzstan, 8th-12th century, Max h. 18.3 cm (Valery А. Kolchenko,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p. 367)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먼저 소형으로 제작된 세 점의 금동제 불상을 살펴 보면, 양식상 중국 수나라 때의 전통을 따른 古式의 불상으로 중국에서 건너온 수입품이거나 중국에서 제작한 불상을 모방해 현지에서 제작한 복제품일 가능성이 지적되기도 하였다.10 이와 달리 8∼10세기 인도 북부에서 수입한 불상으로서 중국제가 아닐 수 있다는 이견도 제시된 바 있다. 또한 청동제 불상 외에도 유적에서는 불보살이 조각된 소형의 석제 부조물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 석제 부조물에 대해서는 2∼4세기 또는 5∼6세기 인도에서 제작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제작 시기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차이가 있으나 인도의 간다라 장인이 제작했다는 것에는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불상과 함께 청동제 불구 1점이 함께 출토되어 주목된다(Fig. 3). 유물 일부분이 유실된 상태로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파악하기에 한계가 있다. 현존하는 유물들과 비교해볼 때 형태적으로 金剛杵의 일부 또는 金剛鈴의 손잡이 부분과 외형적으로 가장 유사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금강저와 금강령은 주로 한 세트로 제작되는데 종소리를 내기 위해 손으로 잡는 금강령의 손잡이 부분과 금강저가 서로 비슷한 외형과 장식으로 제작된다는 특징이 있다(Fig. 4).11 노보포코프스코에-2 출토품의 경우, 세 개의 갈고리가 있는 三鈷杵의 형태로 길고 날카로운 세 부분의 갈고리가 한 곳을 향해 원형으로 맞물린 형태로 제작되었고, 그 아래로 여러 개의 마디로 구성된 몸체가 연결해 있다. 삼고저의 각 마디와 몸체 받침에는 작은 구슬형 장식이 전체적으로 달려있어 통일감있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몸체 중간에는 작은 공 형태의 둥근 마디가 있어 손잡이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어 해당 유물이 금강령의 손잡이 일부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Fig. 3.

<金銅製三鈷杵形 法具> Gilt Bronze Three-pronged Buddhist Ritual Object, excavated from the Novopok rovskoe-2 site in Kyrgyzstan, 8th-12th century, H. 14.2 cm (Valery А. Kolchenko,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p. 367)

Fig. 4.

<金銅製五鈷鈴과 五鈷杵>, Gilt Bronze Five-pronged Vajra and Vajra Bell, Tang, H. 24.5cm, Toji (Shun’ichi Sekine, Japanese art no. 5 41, p. 3)

금강령과 같은 불교 공예품들은 일반적으로 밀교가 발전했던 唐代부터 활발히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밀교 법구는 당 이후로도 꾸준히 제작되었는데 특히 중세로 넘어와 북송, 요에서도 밀교가 흥성해 금강저, 금강령과 같은 법구의 수요가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례는 많지 않아 이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12 주로 指環의 부속 장식처럼 크기가 매우 작은 소형의 장식물로만 전하는 사례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양식상 티베트계 불구와는 다른 중국계 양식을 따른 불구로 크게 이해해볼 수 있다.

2. 출토 동경의 양식과 제작 시기

노보포코프스코에-2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일부 살펴본 결과, 양식적인 특징이 다양해 제작지로 추정되는 지역과 제작 시기가 상당히 넓어 일정한 결론을 도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유적의 하한이 12세기인 것을 고려해볼 때 지금까지 살핀 유물들의 제작 시기와는 시간적으로 상당한 격차를 나타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함께 출토된 동경을 살펴보고자 한다(Fig. 5). 동경에 관해서는 다른 유물들과 달리 지금까지 세부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다. 1940∼50년대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을 중심으로 고고학 발굴조사를 진행했던 러시아 학자 A.N. 베른시탐(Bernshtam)의 오랜 견해를 인용해 중국에서 제작한 수입품으로 당∼송대 중국제 동경으로 해석된 바 있다.13 따라서 동경의 세부를 자세히 분석하고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다른 사례들과 함께 비교해본다면, 제작지 및 제작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Fig. 5.

<鳳凰雁飛天雲紋鏡>, Bronze Mirror with the pattern of Phoenix Wild Goose, Flying Buddhist Angel, and Cloud, excavated from the Novopok rovskoe-2 site in Kyrgyzstan, 8th-12th century, d. 18.2cm (Valery А. Kolchenko,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p. 367)

먼저 동경 뒷면에 주조된 문양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앙에는 반구형의 손잡이 있고 그 주변으로 꽃모양의 뉴좌가 펼쳐져 있다. 그 주변으로 네 마리의 봉황이 일정한 간격으로 꽃 형태를 그리며 시계방향으로 배치되었다. 봉황 밖으로는 기러기로 추정되는 네 마리의 작은 새가 거울 바깥면을 향해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모습이다.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과 비교해볼 수 있는 예로는 중국 허베이(河北) 쉬안화(宣化) 張文藻(1074∼1093) 遼墓에서 출토된 사례를 들 수 있다(Fig. 6).14 기러기를 포함해 봉황, 구름의 표현까지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과 세부까지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거울의 지름이 작아 동경에 표현된 동물 수에만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구도와 도안을 이용해 제작되었다. 이 외에도 동경의 제작연도를 알 수 있는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Fig. 7).15 ‘乾統七年’銘鳳凰紋鏡으로 ‘건통칠년’의 네 글자가 손잡이 주변에 양각으로 주조해있다. 건통7년은 1107년으로 요의 마지막 황제인 天祚帝 연호에 해당한다.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을 비롯해 쉬안화 요묘에서 출토된 동경들과 세부적으로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Fig. 6.

<鳳 凰 雁 雲 紋 鏡>, Phoenix Wild Goose and Cloud Patterned Bronze Mirror, excavated from the tomb of Xuanhua in Hebei, 1074∼1093, Liao, D. 13.3cm (Hebei sheng wenwu yanjiusuo, Xuanhua liaomu, pl. 36)

Fig. 7.

<‘ 乾 統 七 年 ’ 銘 鳳 凰 紋 鏡>, Phoenix-patterned bronze mirror with the inscription “the 7th Year of the Qiantong reign,” 1107, Liao, D. 19.0 cm, National Museum of China (Peifen Chen, Zhongguo qingtongqi cidian, pl. 1479)

鳳凰雁雲紋鏡은 일반적으로 요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해 금대까지 꾸준히 성행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기러기, 구름, 봉황 이외에도 魚龍, 鸞, 鶴 등의 상서로운 동물들을 함께 조합해 다양하게 제작한 사례들이 다수 전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난새-학, 기러기-구름과 같은 단순한 조합에서부터 기러기-구름-어룡, 기러기-구름-어룡-학, 기러기-구름-봉황-어룡(Fig. 8), 기러기-구름-봉황-어룡-난새 등과 같이 여러 가지의 도안을 다양하게 조합해 만든 요·금대 동경들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출토된 사례를 기준으로 요대 후기에서부터 금대까지 즉 11세기 후반∼13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제작 및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16 이로 볼 때 노보포크로브카 지역에서 출토된 동경 역시 요·금계 양식으로 적어도 요대 후기 이후에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Fig. 8.

<鳳 凰 魚 龍 雁 雲 紋 鏡>, Bronze Mirror with the pattern of Phoenix Ichthyosaur, Wild Goose, and Cloud, excavated from the tomb of Baixiang, Jin, D. 19.8 cm, The Institute of Cultural Relics and Archaeology of Hebei Prov ince (Hebei sheng wenw u yanjiusuo, Liaodai tongjing wenshi, p. 341)

한편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에서는 飛天의 모습을 추가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두 마리의 봉황이 맞물리는 부분에 새를 탄 비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비천이 구름 속에 새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원형의 구도로 제작되었는데 비천의 머리 위로 새의 양 날개가 마주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비천상은 주로 요대 유적에서 발견된 사례들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Fig. 9). 중국 랴오닝(遼寧) 젠핑(建平) 요대 분묘의 출토사례를 포함해 여러 점의 예들이 전해진다.17 거울의 공간을 운문, 연주문으로 분리한 후, 각 공간 속에 원형의 비천을 독립적으로 배치하는 단순한 구성의 동경도 제작되었다.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에서 볼 수 있는 비천상 외에도 요대에는 기러기, 구름과 함께 몇 가지 유형의 비천을 유사한 구도로 배치해 만든 사례를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노보포크로브카 지역에서 출토된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은 11세기 후반∼13세기 전반에 성행했던 요·금계 양식에 해당하였다.

Fig. 9.

<飛 天 雲 紋 銅 鏡>, Bronze Mirror Patterned with Flying Buddhist Angel and Cloud, excavated from the tomb of Jianping in Liaoning, Liao, D. 13.0cm, Liaoning Provincial Museum (Shujuan Liu, Liaodai tongjing yanjiu, pl. 75)

Ⅲ. 서요의 주요 거점과 출토지와의 관계

1. 추이 계곡과 동경의 출토지

이와 같은 요·금계 동경이 출토된 곳은 앞서 설명하였듯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국경 지대로 양국의 경계선을 따라 흐르고 있는 추강(Chu Liver) 중류에 위치한 추이 계곡(Chuy Vаllеу)에 해당한다. 추이 계곡은 제티수(세미레치예) 영역으로 양국의 주요한 강들이 연결해 있어 수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초원과 초지가 광활히 펼쳐 있어 예로부터 사람과 동물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리적 환경을 갖춘 지역이었다.18 이러한 자연환경과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역사상 여러 왕조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나라 통치자들이 서역 정책을 세워 여러 차례 공격하기도 하였고, 투르크어와 함께 소그드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만큼 동서남북을 잇는 유라시아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곳이었다.19 큰 산맥을 넘지 않고도 동서로 이동할 수 있어 일찍부터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 다른 지역에 비해 오아시스의 도시문화가 크게 번성할 수밖에 없었던 지역이었다.

더욱이 12세기 초에는 거란이 이곳에 수도를 세우고 서요를 건국했다는 점을 주목해볼 수 있다. 수도였던 발라사군 역시 추이 계곡에 위치해 지금의 노보파블로브카 지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두 곳 모두 추이 계곡에 속한 지역들로 서요의 주요 거점일 가능성이 크다. 수도 발라사군은 耶律大石(1087∼1143)을 포함해 거란의 통치 세력이 중원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해 요 왕조를 새롭게 부흥시켰던 곳이었다. 야율대석은 1124년 예밀립(葉密立, 現 이리 카자흐 자치구의 타청 지구 額敏縣)에서 군신들로부터 天祐皇帝라는 존호를 받은 이후 1132년에 이르러 서요를 결국 건국해 새로운 황제로 등극하였다.20 존호를 받은 이후로 서쪽으로 계속 진격해 발라사군에 수도를 세우고, 고창회골, 동부와 서부의 카라한칸국(KaraKhanid Khanate), 호라즘 왕국을 차례로 정복해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강성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서요의 영역은 전성기를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서하와 금이, 남쪽으로는 토번과 접해 있었고, 서쪽으로는 아랄해와 아무다리야강 하류까지를 포함해 동서로 약 3,000km, 남북으로는 약 2,000km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광활하였다.

이처럼 서요의 광활한 영역에서 추이 계곡이 주요 거점이었다는 사실은 서요가 발행했던 동전(이하 西遼錢)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출토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서요전의 경우, 수도 발라사군을 중심으로 대략 50km 이내의 좁은 반경에서 주로 출토되는 양상을 띤다(Fig. 10).21 대표적인 도시로 크라스나야 레치카(Krasnaya Rechka) 성터의 나바케트(Navake), 아크-베심(Ak-Beshim)의 수야브(Suyab), 부라나(Burana) 성터의 발라사군 등이 있다.22 서요전이 출토되는 이들 유적은 최근까지 추이 계곡 내에서도 8∼13세기로 추정되는 비교적 큰 도시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해있다.

Fig. 10.

<續興元寳>, Coins with the inscription Xu Xing Yuan Bao, excavated from the ruins of Aq-Beshim, Krasnaya Rechka, Burana, Qara Khitay (https://en.wikipedia.org/wiki/Liao_dynasty_coinage)

서요전은 중앙에 뚫린 구멍을 따라 續興元寳 네 글자를 동서남북, 네 방향에 새긴 형태로 제작되었다. 서요의 두 번째 황제인 耶律夷列(?∼1163)이 재위한 1150년∼1163년간에 발행했던 동전으로 거란이 서쪽으로 이동해 처음으로 주조한 화폐로 알려져 있다.23 서요의 속흥원보는 중앙아시아에서 이전부터 주조해 사용해왔던 다른 전통적인 동전들과는 양식적으로 차이가 있다(Fig. 11). 서요 이전까지만 해도 서아시아의 고대 전통을 따라 주로 구멍 없이 아랍의 명문을 새긴 동전들을 제작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서요전의 경우는 전형적인 중국계 양식으로 거란이 중원을 장악해 요나라 때부터 발행했던 鑄錢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 제작한 것으로 이해된다. 마치 한때 중원을 정복했던 북방왕조 요의 거란을 계승했던 서요의 정체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Fig. 11.

<셀주크 왕조 동전>, Coin issued at Nishapur by the Seljuq governor Sanjar, dated 1099, Seljuk, D. 2.2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s://www.metmuseum.org)

2. 추이 계곡 부근에서 출토된 金系 동경

지금까지 서요의 주요 거점에 해당하는 추이 계곡과 그 부근에서 서요의 동전들이 출토되는 정황을 살펴보았다. 사실 노보포크로브카에서 출토된 중국계 동경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사례를 찾기 어려웠으나 그나마 크라스나야 레치카 유적에서 중국계 동경이 출토된 것으로 언급된 바가 있고, 1940∼50년대 이 일대를 발굴 조사한 러시아 보고서에도 다양한 문양으로 제작한 중국계 동경들을 볼 수 있어 실제 추이 계곡을 중심으로 제티수 일대에서 향후 중국계 동경들이 꾸준히 발견될 것으로 예상된다.24 이와 관련해 러시아 국립에르미타시 박물관의 소장품과 러시아 보고서에 수록된 동경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 잠불(Dzhambul), 키르기스스탄 코추코르 계곡(Kochkor Valley)과 같이 추이 계곡과 가까운 지역에서 발견된 중국계 동경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Fig. 12). 특히 코추코르 계곡은 추강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 바로 도착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Fig. 12.

<仙人龜鶴紋鏡>, Bronze Mirror patterned with Recluse, Turtle, and Crane, excavated from the Kochkor Valley of Kyrgyzstan, D. 9. 5cm, State Hermitage Museum (William Trousdale, Artibus Asiae 24, fig. 2)

세 점의 동경 모두 지름이 9.0cm로 크기가 거의 같고 주조상태 및 제작 수준에만 차이가 있을 뿐 손잡이가 있는 仙人龜鶴紋鏡으로 제작되었다. 두 손을 모은 인물이 중앙에 바르게 앉아 정좌한 모습으로 소매가 넓은 관복을 입고,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착용해 신분이 높은 사람임을 알려준다. 그 옆으로 주인공을 보좌하듯 시동이 幢幡과 같은 물건을 높이 들고 서 있다. 나뭇가지와 잎들이 거울 상단을 가득히 채웠고, 학으로 추정되는 한 마리의 새와 거북이가 모두 인물을 향해 있다.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신선과 함께 길상의 동물들을 거울에 표현해 현실 세계와는 다른 이상향의 완전한 세계 즉 仙境을 동경 안에 담아 장수의 염원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25 선인구학문경의 경우는 현재 金系 양식으로 특히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아청(阿城)의 금대 성터와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에 소재한 금대 고분에서 세부 표현만이 아니라 구도, 크기까지 비슷하게 제작한 사례들이 출토되었다.26

특히 해당 동경들은 모두 손잡이가 길게 달린 柄形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손잡이 형태와 문양에서도 금계 동경의 양식적인 특징을 확인해볼 수 있는데 금경의 경우는 거울면 외에도 손잡이 자루에 다채로운 문양을 담아 화려한 장식성을 띤다는 특징이 있다(Table. 1).27 예를 들어 손잡이를 화병의 형태로 제작하거나 구름 속의 초승달을 바라보는 사슴, 꽃과 식물 넝쿨 등의 문양을 넣어 다양하게 제작한 손잡이의 장식유형들을 살필 수 있다. 이외에도 ‘銅院’ 등과 같이 관서명을 비롯해 여러 명문을 함께 주조한 사례들도 제작되었다. 추이 계곡 주변에서 발견된 동경의 손잡이에도 만개한 연꽃과 연잎, 식물 넝쿨로 구성된 연당초문이 공통으로 장식되었다.

〈金代 동경의 손잡이 형태와 문양〉 Patterns and Ty pes of Mirror Handles in the Jin Dynasty

추이 계곡을 중심으로 양국의 국경 지대에서 발견된 이 같은 중국계 동경들은 앞에서 살핀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보고서 및 박물관에 소장된 선인구학문경들은 마치 再鑄한 듯 문양의 깊이와 선명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동일한 문양과 크기로 제작된 사례들로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12∼13세기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의 동북 삼성을 중심으로 제작 및 유통되었던 금경과 고려경에서도 주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에 해당하였다.28 당시 시대적으로 동경의 私鑄造가 극성을 부렸던 때로 같은 문양일지라도 주조 수준이 제각각으로 제작된 예가 많은데 이곳에서 발견된 동경들 역시 비슷한 특징을 나타낸다. 금계 동경의 경우는 고려의 수도였던 북한의 개경에서도 이미 다량의 예가 출토된 바 있다.29 최근 러시아에서도 중세 고분, 주거지와 같은 생활유적을 중심으로 금경의 출토사례가 늘고 있어 금계 동경의 교역 범위는 상당히 넓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투바(Республика Тыва), 부랴티야(Нур-Тухумский)의 누르-누쿰(Nur-Tukhum) 유적들이 대표적이다.30 노보포코프스코에-2 동경과 유사한 사례 역시 고려경으로 전해지는 예를 살필 수 있어 주목된다(Fig. 13). 중앙아시아, 한국, 러시아 등 유라시아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금계 양식이 국제적으로 유행했던 양상을 살필 수 있다.

Fig. 13.

<鳳 凰 雁 雲 紋 銅 鏡>, Bronze Mirror with Phoenix Wild Goose, and Cloud Patterns, excavated from Kaesŏng, Koryŏ, D. 20.3cm, National Museum of Korea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Ⅳ. 서요를 중심으로 한 동경의 교역과 확산

요, 금계 동경 특히 금계 동경이 추이 계곡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유통 및 소비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서요의 역할이 나름 컸을 것으로 파악된다. 서요와 금은 당연히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었다. 요를 대신해 차지했던 중원의 금대 문물이 양국의 적극적인 교역을 통해 유통되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지배 중심이 물리적으로 만 리나 떨어져 있었고, 야율대석의 서행으로 분쟁이 최소화되면서 양국은 점차 방어적인 태세로 전환하였다. 오히려 양국은 주변의 서역 민족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당시 활동했던 서역의 상인집단이나 중국의 정주 문화에 익숙했던 거란족에 의해 동경과 같은 중원의 물자가 교역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위그루 사신이나 상인들이 입공해 양국의 상황을 전해주었다고 하거나 서요의 일부 수령이 금에 직접 조공을 청하기도 하였고, 양국의 국경 지대에 거주했던 금의 거란인들이 서요와 긴밀하게 관계했다는 기록들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31 또한 서요의 수도 발라사군에 거주하는 서역 상인들이 금나라 시장에 비정기적으로 방문하거나 서요에서 만든 술이 금나라에서 인기 있었다는 것으로 볼 때 금계 동경이 서요에 전해졌을 교역의 방식이나 방법은 상당히 다양했을 것이다.32

중국계 동경이 중세 실크로드의 교통망을 따라 전래 및 교역되었던 상황은 당시 국제 교역의 중심지였던 탈가르(Talgar, 현재 알마티에서 25km)를 통해서도 여실히 확인해볼 수 있다. 탈가르가 가장 번성했던 11∼13세기 초의 최전성기 성터 유적에서 세 점의 중국계 동경이 출토된 바 있어 주목된다(Fig. 14).33 학과 구름, 세 마리의 난새(鸞)를 표현한 두 동경의 경우, 모두 요·금계 양식에 해당된다. 탈가르는 서요의 수도가 있었던 추이 계곡으로부터 추강 또는 초원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 쉽게 연결되는 지역이었고, 실크로드 결절점에 위치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도 바로 연결되는 교역로에 해당하였다.34 또한 서요 왕조의 유물로 추정되는 금계 동경들이 신장 위그루 자치구 중에서도 탈가르와 가장 인접해있는 보얼타라 몽골자치주(博尔塔拉蒙古自治州)를 비롯해 우루무치시(乌鲁木齐市)와 가까운 푸강시(阜康市)에서 이미 출토된 사례를 살필 수 있다.35

Fig. 14.

<雲鶴紋鏡 외> Bronze Mirror patterned with Cloud and Crane, excavated from the Talgar of Kyrgyzstan, 11th-13th century (K. M. Baypakov, K’ajahŭsŭt’an ŭi Shilk’ŭrodŭ, p. 230)

이외 추이 계곡으로부터 동쪽뿐 아니라 서쪽 반대편에서도 요·금계 동경이 출토된다는 점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이 계곡 및 그 주변에서 발견된 중국계 동경들이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소재한 쿤드즈(Kunduz) 유적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있다.36 11∼12세기에 해당하는 유리기, 청동 기물들과 함께 금계 양식에 해당하는 仙人龜鶴紋鏡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쿤드즈 유적은 지리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남부와 인접한 곳으로 서요의 야율대석이 康國六年(1141) 서카라한 왕조와의 전쟁을 통해 사마르칸트를 점령하고 호라즘 왕조까지 속국으로 만들어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의 광대한 영역을 차지한 것을 고려해볼 때 이곳에서 요·금계 동경이 출토되는 상황도 충분히 이해해볼 수 있다. 결국 서요는 12∼13세기 초 추이 계곡을 중심으로 동방뿐 아니라 서방까지 요·금계 동경을 포함한 중국계 동경을 확산하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오아시스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해 동북아시아의 문물과 문화를 전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서요가 멸망했던 13세기 초 이후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계 동경이 출토되는 사례는 더욱 찾기가 어렵다. 몽골의 침략으로 오아시스 지역에서 번성했던 도시들이 황폐해져 약탈과 학살, 방화의 흔적을 13세기 유적에서 일반적인 특징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37 추이 계곡의 도시들 역시 13세기를 하한선으로 갑자기 쇠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14세기 초까지도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탈라스 계곡을 포함한 제티수 지역에서 계속해서 싸움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불안정한 시기가 일정 기간 지속됨에 따라 도시 중심지와 정주 문화가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지속되었다. 앞서 살핀 노보포코프스코에 유적에서도 재해로 인해 파괴된 흔적이 있고, 이후 버려진 정착지로 있다가 13세기 중반 이후에나 산발적인 거주 흔적을 살필 수 있다.38

13세기 초반 이후로 중국계 동경이 급격히 줄어든 또 다른 요인으로 혼란했던 대내외 정세와 함께 소비 기호의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중국계 양식보다 이슬람계 양식을 선호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요가 중앙아시아를 장악했을 때도 이미 이슬람계 동경이 중국계 동경과 함께 사용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원래 중앙아시아 일대는 중세 튀르크계 민족이 지배했던 곳으로 10세기 이후 카라한 칸국에 의해 카자흐스탄 남부 이하의 지역은 이미 이슬람 문화가 가속화된 상황이었다. 특히 이슬람계 동경은 셀주크 왕조(Seljuk dynasty, 1040∼1194) 때 한 차례 크게 성행했던 것으로 파악된다.39 실제 이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제작된 이슬람계 동경이 나바케트시의 크라스나야 레치카 성터에서 중국계 동경과 함께 발견된 사례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Fig. 15).40 전갈 꼬리에서 볼 수 있는 침을 지닌 두 마리의 스핑크스가 등을 맞댄 채로 있고, 그 밖으로 쿠픽체(Kufic Script)로 주조된 아랍어 명문대를 볼 수 있다. ‘영광과 영원한 생명, 부와 위대함, 위엄과 찬양, 더할 나위 없는 행복과 고귀함, 권력과 번영이 거울을 소유한 자에게 영원히 있을지니’로 해석해볼 수 있다. 몽골이 유라시아를 장악한 이후로 다양한 유형의 이슬람계 동경이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 남부 초원 일대에서 보다 폭넓게 유행하였다.41

Fig. 15.

<한 쌍의 스핑크스와 아랍 문자로 장식한 동경>, Bronze Mirror with a Pair of Addorsed Sphinxes with Scorpion Tails, 12th-13th century, Iran or Turkey, 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s://www.metmuseum.org)

Ⅴ. 맺음말

지금까지 카자흐스탄 동남부 및 키르기스스탄 북부에서 발견된 중국계 동경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11세기 후반∼13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중국계 동경이 중앙아시아에서 소비 및 유통될 수 있었던 상황과 동경이 지닌 교류사적 의미에 관해 고찰하였다.

먼저,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중국계 동경이 주로 출토되는 지역은 서요가 수도를 세웠던 발라사군을 포함해 서요의 주요 거점지가 밀집해있었던 추이 계곡 주변이었다. 추이 계곡에는 노보포코프스코에 유적과 공통점이 많은 중세의 도시 유적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곳이었다. 출토된 동경들을 확인해본 결과, 11세기 후반∼13세기 초에 유행했던 요·금계 동경들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오대 이후로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계 동경을 찾기 어려웠으나 해당 시기를 중심으로 재출현하는 양상을 파악해볼 수 있었다.

둘째, 금계 동경이 서요의 수도를 포함한 추이 계곡뿐 아니라 동쪽으로는 탈가르를 넘어 중국의 보얼타라 몽골 자치주, 창지 후이족 자치주 등지에서도 출토되는 등 중세 실크로드의 교통망을 따라 부족하나마 확인해볼 수 있었다. 한때 중원에서 한족 문화를 흡수했던 거란의 서요가 12∼13세기 초 오아시스 북로를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계 동경이 서역으로 교역된 흔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진에게 밀려 중원으로부터 쫓겨난 거란이 서쪽으로 세력을 이동해 서요를 건국한 이래로 추이 계곡을 중심으로 중국계 동경이 활발히 유입될 수 있는 교류 환경이 조성된 것을 의미하였다. 특히 노보포코프스코에 유적 및 주변 지역에서 출토된 동경들의 경우, 중국 동북삼성 지역에서 발견된 금대 또는 한국의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동경들과도 비교해 볼 수 있어 금계 동경이 국제적인 양식으로 유라시아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소비 및 유통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서요는 200여 년간 중원의 선진 문화를 통치했던 거란의 북방왕조로서 서요의 교류사적인 의미와 영향은 향후 미술사에서도 재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간 중세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계 양식을 모방했거나 중국의 서북지역에서 출토된 이슬람계 유물일 경우 주로 元과의 영향 관계 안에서만 논의해왔다. 그러나 12〜13세기 전반에도 서요-금의 영향권 아래 중원의 문물이 교류되었고, 몽골 제국이 점령한 이후에도 일정 기간 교류가 단절되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향후 거란을 포함해 북방 민족과의 영향 관계는 더욱 자세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Notes

1)

John F. Haskins, “The Chinese Mirror from Pazyryk”, Archives of the Chinese Art Society of America Vol.18(1964), pp. 55-61; 국립중앙박물관,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국립박물관문화재단, 2016), pp. 99-101.

2)

이송란, 「중국 前漢 海昏候墓의 <銀製一角獸文裝飾>과 흉노의 벨게트 구르스(Belget Göröö)」, 『崇實史學』 45(2020), pp. 343~365; 주경미, 「흉노시대 幻想動物文의 특징과 문화사적 의의」, 『중앙아시아연구』 vol.27, no.1(2022), pp. 23-61.

3)

А . А .Тишк ин, М . Ю. Кузеванова, Ме та л лические зе рк а л а к ак исто чник по древне й и с редневе к овой истории Алтая(Metallic mirrors as source about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of Altay) (Барнаул: Азбука, 2011), pp. 55-58.

4)

최근 유라시아와 관련한 국내 연구성과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편, 『실크로드 연구사전 서부: 중앙아시아 서투르키스탄』 (국립문화재연구소, 2021);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편, 『2018 Asian Archaeology 국제학술심포지엄: 유라시아의 고대문화 최신 발굴성과』 (국립문화재연구소, 2018) 등이 있다.

5)

유적은 120m×120m 정도의 비교적 작은 규모로 정착 생활을 했던 주거지 유적으로 파악되었다. Philipp Rott and Valery A. Kolchenko, “The Ancient Site of No vopokrovskoe 2 Excavation 1: Preliminary results” In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Wiesbaden: Harrassowitz Verlag, 2019), pp. 366-385.

6)

1923년 이래로 여러 학자에 의해 해당 유적이 언급된 바 있으나 1959년에 들어와 유적에 관한 가장 자세한 현황과 함께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가 진행되었다. Kožemâko, P. N., Rannesrednevekovye goroda i poseleniâ Čujskoj doliny (Frunze: Akademiâ Nauk Kirgizskoj SSR, 1959).

7)

1960년대 ‘문화의 집(House of Culture)’을 세우기 위해 건축공사가 진행될 때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Valery А. Kolchenko, “Buddhism in the Chuy Valley (Kyrgyzstan) in the Middle Ages”, The Journal of Oriental Studies vol.30(2020), pp. 67-101.

8)

Goryacheva, V.D. and S.Ya. Peregudova, “Buddiyskie pamyatniki Kirgizii’”, Vestnik drevney istorii no. 2(1996), pp. 167–89; Staviskiy, B.Ya., “Novoe o buddizme v Sredney Azii (po povodu stat’i V.D.Goryachevoy i S.Ya. Peregudovoy)”, Vestnik drevney istorii no. 2(1996), pp. 193-95.

9)

Philipp Rott and Valery A. Kolchenko, 앞의 논문, pp. 366-385.

10)

T.V. Grek은 8∼10세기 북인도로부터 수입된 불상으로 보았고, T.K. Mkrtychev는 隋代 제작한 중국 불상이거나 현지에서 이를 모방해 제작한 복제품으로 판단하였다. Valery А. Kolchenko, 앞의 논문, pp. 67-101.

11)

関根俊一, 『日本の美術: 金剛鈴と金剛杵』 No.541(東京: 至文堂, 2011), pp. 2-6.

12)

金遠, 「中國古代金剛杵的發現及其源流考」 (吉林: 吉林大學 碩士學位論文, 2016), pp. 3-6, 34-36.

13)

Valery А. Kolchenko, 앞의 논문, p. 78.

14)

河北省文物硏究所 編, 『宣化遼墓: 1974-1993年考古發掘報告』 (北京: 文物出版社, 2001), pp. 111-114.

15)

陳佩芬, 『中國靑銅器辭典』 (上海: 上海辭書, 2013), p. 1479.

16)

劉淑娟, 『遼代铜镜硏究』 (沈阳市:沈阳出版社, 1997), pp.86-87, 135-136; 河北省文物硏究所编, 『歷代铜镜纹饰』 (石家庄市:河北美术出版社, 1996), pp. 341-344.

17)

彭軍超, 「東北地區出土遼代銅鏡研究」 (甘肅: 西北師範大學, 2019), pp. 36-38.

18)

추 계곡은 키르기스스탄의 북부와 카자흐스탄의 남부에 걸쳐 있으며 추강의 중류를 따라 길이 250km, 해발 500~1300m이다. 초원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제티수(Jetisu, Jeti-Suu) 지방에 해당한다. 제티수는 ‘일곱 개의 강’이 분포한 지역으로 러시아어로 세미레치예라고 한다. 김동훈, 「카자흐스탄 남동부 제티수(세미레치예) 일대 실크로드 관련 고고유적의 분포현황과 특징」, 『2018 Asian Archaeology 국제학술심포지엄: 유라시아의 고대문화 최신 발굴성과』 (국립문화재연구소, 2018), pp. 3-17.

19)

역사적으로 사카, 오손, 서돌궐, 카를루크, 카라한조, 카라키타이(서요) 등 유목민족 정권들의 중심지나 거점 역할을 하였다. 정수일 편저, 『실크로드 사전』 (창비, 2013), pp. 767-770.

20)

劉建麗, 「略論西遼與金朝及西域民族的關系」, 『新疆大學學報』 第3期 (2004), pp. 78-81.

21)

Vladimir Belyaev, Vladimir Nastich, and Sergey Sidorovich, “The coinage of Qara Khitay: A new evidence”, The 3rd Simone Assemani symposium on Islamic coins (Trieste: EUT, 2012). pp. 127-143.

22)

Masashi ABE, Shogo KUME, Hiroo KANSHA and Masatoshi YAMAFUJI, eds. Protection and Research on Culfural Heritage in the Chuy Vаllеу, the Kyrgyz Republic Ak-Beshim and Ken Bulun (Tokyo: Japan Center for International Coperation in Conservation, 2017), pp. 5-29.

23)

요대에서는 天贊, 天顯, 應曆, 保寧 등 요나라 연호를 새긴 여러 동전들을 주조해 사용하였다. 周錦章, 「西遼的貨幣與貨幣流通」, 『內蒙古金融研究』第3期(2003), pp. 17-20; 天津博物館 編, 『發現契丹-遼代文物精華展』(北京: 故宮出版社, 2015), p. 103.

24)

Bernshtam A. N.,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очерки центрального тянь-шня и памиро-алая(Moskva: Leningrad, 1952), pp. 158-159; William Trousdale, “A Chinese Handle-Bearing Mirror from Northern Afghanistan”, Artibus Asiae vol.24, no.1 (1961), pp. 11-19.

25)

이와 유사한 문양과 주제를 다룬 동경이 중국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에서 출토된 바 있는데 ‘龜鶴齊壽’라는 명문을 함께 주조해 문양이 상징하는 구체적인 의미를 추정해볼 수 있다. 孔祥星 外, 『中國銅鏡圖典』(北京: 文物出版社, 1992), p. 858.

26)

黑龍江省 阿城市, 金上京 北城과 白城, 吉林 集安 金墓에서 출토되었다. 張英, 『吉林出土銅鏡』(北京: 文物出版社, 1990), p. 85; 阿城縣文物管理所 編, 『阿城縣出土銅鏡』(哈爾濱市: 阿城縣文物管理所, 1974), p. 30; 王禹浪外, 『金上京百面銅鏡圖錄』(哈爾濱: 哈爾濱出版社, 1994), pp. 185-186; 伊葆力 外, 『金代銅鏡』 (哈爾濱: 哈爾濱出版社, 2001), p. 170.

28)

奈良文化財研究所飛鳥資料館, 『東アジア金属工芸史の研究 5: 対馬の鏡』 (奈良: 文化財研究所奈良文化財研究所飛鳥資料館, 2004), pp. 11-13; 박진경, 『고려·조선시대 동경(銅鏡)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1), pp. 83-90.

29)

박진경, 「金系 高麗鏡의 제작과 유통」, 『미술사학연구』 no.279·280 (2013), pp. 67-92.

30)

Н. Н Серегин, А. Н. Чистякова, Монгуш К. М., “РЕДКОЕ МЕТАЛЛИЧЕСКОЕ ЗЕРКАЛО ЧЖУРЧЖЭНЬСКОГО ВРЕМЕНИ ИЗ ТУВЫ”, ТЕОРИЯ И ПРАКТИК 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30, No.1 (2021), pp. 172-188; B.A. Baitanayev, P.N. Petrov, “Нур-Тухумские зеркала”, ПОВОЛЖСК А Я АРХЕОЛОГИЯ 30, No.4(2019), pp. 28-42.

31)

周峰, 「試論金朝對西部邊疆的經略—以西夏和西遼爲中心」, 『東北史地』 第4期 (2009), pp. 23-28; 금의 통치자는 서요 정권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금나라 서북 변경지역에 있는 거란인들을 여진의 중심지역인 상경로로 이주시키거나 여진인과 함께 거란인을 거주시킴으로써 민족을 통합시키고자 하였다.

32)

Michal Biran, “Qarakhanid Studies: A View from the Qara Khitai Edge” Cahiers d’Asie centrale 9(2001), pp. 82-83.

33)

劉淑娟, 앞의 책, pp. 129-134.

34)

탈가르 주민의 대부분은 튀르크인이었지만 중앙아시아, 이란, 중국에서 온 상인들이 살고 있었다. 11∼13세기 초 최고의 전성기에 대략 6천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다. K. 바이파코프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역, 『중앙아시아 실크로 드 주요 유적지』 (국립문화재연구소, 2016), pp. 33-35.

35)

韓雪昆, 「新彊博爾塔拉州出土的幾件古代銅鏡」, 『文物』 第1期(1992), p. 96; 徐光冀, 「新 疆 維 吾 爾自治 區 阜康縣三 宮 鄉西遼 銅 鏡」, 『考古文物新發現』 (1993), pp. 265-266.

36)

Warwick Ball, Archaeological Gazetteer of Afghanistan(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p. 152 .

37)

카를 바이파코프, 앞의 책, pp. 74-77.

38)

Philipp Rott and Valery A. Kolchenko, 앞의 논문, p. 382.

39)

Giovanni Curatola, Islamic Metalwork from the Aron Collection (Milano: Silvana editoriale, 2020), pp. 257-263.

40)

카를 바이파코프, 앞의 책, pp. 224-225.

41)

С. А. С. А. Фидельский, М. М. Чореф, “Бронзовое зеркало золотоордынского времени из окрестностей села Тея на левобережье Нижнего Днестра”, V poiskach suščkach: sbornik statej v čest 60-letija N. D. Russeva (Kišinev: Universitet Vysšaja Antropologičeskaja Škola, 2019), pp. 275-290.

References

1. 국립문화재연구소,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주요 유적지』, 2016.
2.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금문화』, 2018.
3. ,『실크로드 연구사전 서부: 중앙아시아 서투르키스탄』, 2021.
4. ,『Asian Archaeology 국제학술심포지엄: 유라시아의 고대문화 최신 발굴성과』, 2018.
5. 국립중앙박물관,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2016.
6. 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사계절, 2016.
7. 박진경, 「金系 高麗鏡의 제작과 유통」, 『미술사학연구』 no.279·280, 2013.
8. ,『고려·조선시대 동경(銅鏡)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1.
9. 신숙, 『한국 고대 보석장식 공예품과 국제교류』,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6.
10. 이난영, 『고려경 연구』, 신유, 2003.
11. 이송란, 「중국 前漢 海昏候墓의 <銀製一角獸文裝飾>과 흉노의 벨게트 구르스(Belget Göröö)」, 『崇實史學』 45, 2020.
12. 이지은, 「유라시아 서부지역 인물문양 동양계 동경 검토」, 『석당논총』 no.73, 2019.
13. 정수일 편저, 『실크로드 사전』, 창비, 2013.
14. 주경미, 「흉노시대 幻想動物文의 특징과 문화사적 의의」, 『중앙아시아연구』 vol.27, no.1, 2022.
15. 카를 바이파코프, 최문정·이지은 번역, 강인욱 감수, 『카자흐스탄의 실크로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7.
16. 孔祥星 外, 『中國銅鏡圖典』, 北京: 文物出版社, 1992.
17. 金遠, 「中國古代金剛杵的發現及其源流考」, 吉林: 吉林大學 碩士學位論文, 2016.
18. 徐光冀, 「新疆維吾爾自治區 阜康縣三宮鄉西遼銅鏡」,『考古文物新發現』, 1993.
19. 阿城縣文物管理所 編, 『阿城縣出土銅鏡』, 哈爾濱市: 阿城縣文物管理所, 1974.
20. 楊夏薇, 『宋代銅鏡紋飾研究』, 南京: 南京藝術學院 藝術理論 博士學位論文, 2021.
21. 王禹浪 外, 『金上京百面銅鏡圖錄』, 哈爾濱: 哈爾濱出版社, 1994.
22. 王士倫, 『浙江出土銅鏡』, 北京:文物出版社, 2006.
23. 劉建麗, 「略論西遼與金朝及西域民族的關系」, 『新疆大學學報』 第3期, 2004.
24. 劉淑娟, 『遼代銅鏡硏究』, 沈陽市:沈陽出版社, 1997.
25. 伊葆力 外, 『金代銅鏡』, 哈爾濱: 哈爾濱出版社, 2001.
26. 張英, 『吉林出土銅鏡』, 北京: 文物出版社, 1990.
27. 周錦章, 「西遼的貨幣與貨幣流通」, 『內蒙古金融研究』第3期, 2003.
28. 周峰, 「試論金朝對西部邊疆的經略—以西夏和西遼爲中心」, 『東北史地』第4期, 2009.
29. 陳佩芬, 『中國靑銅器辭典』, 上海: 上海辭書, 2013.
30. 彭軍超, 「東北地區出土遼代銅鏡研究」, 甘肅: 西北師範大學, 2019.
31. 河北省文物硏究所 編, 『宣化遼墓』, 北京: 文物出版社, 2001.
32. 河北省文物硏究所 編, 『歷代銅鏡紋飾』, 石家莊市:河北美術出版社, 1996.
33. 韓雪昆, 「新彊博爾塔拉州出土的幾件古代銅鏡」, 『文物』 第1期, 1992.
34. ABE, Masashi, Shogo KUME, Hiroo K ANSHA and Masatoshi YAMAFUJI, eds. Protection and Research on Culfural Heritage in the Chuy Vаllеу, the Kyrgyz Republic Ak-Beshim and Ken Bulun, Tokyo: Japan Center for International Coperation in Conservation, 2017.
35. Ball, Warwick, Archaeological Gazetteer of Afghanista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36. Biran, Michal, “Qarakhanid Studies: A View from the Qara Khitai Edge”, Cahiers d’Asie centrale 9, 2001.
37. Haskins, John F., “The Chinese Mirror from Pazyryk”, Archives of the Chinese Art Society of Americavol.18, 1964.
38. Kolchenko, Valery А., Translated by Gulzat Usubalieva, “Buddhism in the Chuy Valley (Kyrgyzstan) in the Middle Ages”, The Journal of Oriental Studies vol.30, 2020.
39. Rott, Philipp, and Valery A. Kolchenko, “The Ancient Site of No vopokrovskoe 2 Excavation 1: Preliminary results.” in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edited by Christoph Baumer, Mirko Novák, 365-385, Wiesbaden: Harrassowitz Verlag, 2019.
40. Trousdale William, “A Chinese Handle-Bearing Mirror from Northern Afghanistan”, Artibus Asiae vol.24, no.1, 1961.
41. Vladimir, Belyaev, Vladimir Nastich, and Sergey Sidorovich, “The coinage of Qara Khitay: A new evidence.”In The 3rd Simone Assemani symposium on Islamic coins, 127-143, Trieste: EUT, 2012.
42. Baitanayev B.A., Petrov P.N., “Нур-Тухумские зеркала” [The Mirrors from Nur-Tukhum], ПОВОЛЖ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30, no.4, 2019.
43. Seregin N. N., Chistyakova A . N., Mongush K . M ., “РЕДКОЕ МЕТА Л ЛИЧЕСКОЕ ЗЕРК А ЛО ЧЖУРЧЖЭНЬСКОГО ВРЕМЕНИ ИЗ ТУВЫ” [Rare Metal Mirror of the Jurchen Time from TUVA], ТЕОРИЯ И ПРАКТИК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30, no.1, 2021.
44. Tishkin A.A., Kuzevanova M.Y., Металлические зеркала как источник по древней и средневековой истории Алтая [Metallic mirrors as source about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of Altay], Барнаул: Азбука, 2011.
45. Baypakov, K. M. K’ajahŭsŭt’an ŭi Shilk’ŭrodŭ. Taejŏn: Kungnip munhwajae yŏn’guso, 2017.
46. Chŏng, Sui l. Shilk’ŭrodŭ sajŏn. P’aju: Ch’angbi. 2013.
47. Chu, Gyŏngm i. “Hyungno sidae hwansang dongmul munŭi t’ŭkching kwa munhwasajŏk ŭiŭi.” Chungang asia yŏn’gu 27, no.1 (2022): 23-61.
48. Kim, Ho-dong. At’ŭllasŭ Chungang yurashiasa. P’aju: Sagyejŏl, 2016.
49. Kungnip munhwajae yŏn’guso. Chungang asia Shilk’ŭrodŭ chuyo yujŏkchi. Taejŏn: Kungnip munhwajae yŏn’guso, 2016.
50. .K’ajahŭsŭt’an ch’owŏn ŭi hwanggŭm munhwa. Taejŏn: Kungnip munhwajae yŏn’guso, 2018.
51. . Shilk’ŭrodŭ yŏn’gu sajŏn sŏbu: Chungang asia Sŏt’urŭk’isŭt’an. Taejŏn: Kungnip munhwajae yŏn’guso, 2021.
52. .Asian Archaeology Kukche haksul simp’ojiŏm: Yurasia ŭi kodae munhwa ch’oesin palgul sŏnggwa. Taejŏn: Kungnip munhwajae yŏn’guso, 2018.
53. Kungnip chungang pangmulgwan. Ap’ŭganisŭt’an ŭi Hwanggŭm munhwa. Sŏul: Kungnip pangmulgwan munhwa chaedan, 2016.
54. Lee, Jiŭn. “Yurasia sŏbujiyŏk inmul munyang tongyanggye tonggyŏng kŏmt’o.” Sŏktangnonch’ong 73 (2019): 219-250.
55. Lee, Nanyŏng. Koryŏgyŏng yŏn-gu. Sŏul: Sinyu, 2003.
56. Lee, Songnan “Chungguk Chŏnhan Haehonhumyo ŭi <Ŭnje ilgak sumun jangsik> kwa Hyungno ŭi Belget Göröö.” Sungsil sahak 45 (2020): 343-365.
57. Pak, Chin’gyŏng. “Kŭmgye Koryŏgyŏong ŭi chejak kwa yut’ong,” Misulsahak yŏn-gu 279·280 (2013): 67-92.
58. . “Koryŏ·chosŏn shidae tonggyŏng yŏn’gu.” PhD diss., Hongik University, 2021.
59. Sin, Suk. “Han’gunk kodae posŏk changik kongyep’um gwa kukche kyoryu.” PhD diss., Hongik University, 2016.
60. Acheng xian wenwu guanlisuo. Acheng xian chutu tongjing. Beijing: Acheng xian wenwu guanlisuo, 1974.
61. Chen, Peifen. Zhongguo fengtongqi cidian. Shanghai: Shanghai cishu, 2013.
62. Hebei sheng wenwu yanjiusuo. Lidai tongjing wenshi. Shijiazhuangshi: Hebei meishu chubanshe, 1996.
63. .Xuanhua liaomu. Beijing: Wenwu chubanshe, 2001.
64. Han, Xuekun. “Xinjiang boertalazhou chutu de jijian gudai tongjing.” Wenwu 1(1992): 96.
65. Jin, Yuan. “Zhongguo gudai jingangchu de faxian jiqi yuanliu kao.” Master’s thesis, Jilin University, 2016.
66. Kong, Xiangxing.zhongguo tongjing tu dian. Beijing: Wenwu chubanshe, 1992.
67. Liu, Jianli. “Luelun xiliao yu jinzhao ji xiyu minzu de guanxi.” Xinjiang daxue xuebao 3 (2004): 78-81.
68. Liu, Shujuan. Liaodai tongjing yanjiu. Tuyangshi: tuyang chubanshe, 1997.
69. Peng, Junchao. Dongbei diqu chutu liaodai tongjing yanjiu. Gansu: Xibei shifan daxue, 2019.
70. Wang, Shilun.zhejiang chutu tongjing. Beijing: wenwu chubanshe, 2006.
71. Wang, Yulang. Jin shangjing baimian tongjing tulu. Haerbin: Haerbin chubanshe, 1994.
72. Xu, Guangji. “Xinjiang weiwuerzizhiqu fukangxian sangongxiang xiliao tongjing.” Kaogu wenwu xinfaxian, 1993.
73. Yibaoli. Jindai tongjing. Haerbin: Haerbinchubanshe, 2001.
74. Yang, Xiawei. “Songdai tongjing wenshi yanjiu.” PhD diss., Nanjing University, 2021.
75. Zhang, Ying. Jilin chutu tongjing. Beijing: wenwuchubanshe, 1990.
76. Zhou, Jinzhang. “Xiliao de huobi yu huobi liutong.” Neimenggu jinrong yanjiu 3 (2003): 17-20.
77. Zhou, Feng. “Shilun jinzhao dui xibu bianjiang de jinglue-Yi xixia he xiliao wei zhongxin.” Dongbeishidi 4 (2009): 23-28.
78. ABE, Masashi, Shogo Kume, Hiroo Kansha and Masatoshi Yamafuji, eds. Protection and Research on Culfural Heritage in the Chuy Valley, the Kyrgyz Republic Ak-Beshim and Ken Bulun. Tokyo: Japan Center for International Coperation in Conservation, 2017.
79. Baitanayev B.A., Petrov P.N., “Nur-Tukhum mirrors.” Volga Archaeology 30, no.4 (2019): 28-42.
80. Ball, Warwick. Archaeological Gazetteer of Afghanista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81. Biran, Michal. “Qarakhanid Studies: A View from the Qara Khitai Edge.” Cahiers d’Asie centrale 9 (2001): 77-89.
82. Haskins, John F. “The Chinese Mirror from Pazyryk.” Archives of the Chinese Art Society of America 18 (1964): 55-61.
83. Kolchenko, Valery А. “Buddhism in the Chuy Valley (Kyrgyzstan) in the Middle Ages.” The Journal of Oriental Studies 30 (2020): 67-101.
84. Rott, Philipp, and Valery A. Kolchenko. “The Ancient Site of No vopokrovskoe 2 Excavation 1: Preliminary results.” In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edited by Christoph Baumer, and Mirko Novák, 365-385. Wiesbaden: Harrassowitz Verlag, 2019.
85. Seregin N. N., Chistyakova A. N, and Mongush K. M., “Rare Metal Mirror of Zhurzhen Time from Tuva” Theory and Practice Archological Research 30, no.1 (2021): 172-188.
86. Tishkin A.A and Kuzevanova M.Y. Metal Personal Mirrors as a Source of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of Altai. Барнаул: Азбука, 2011.
87. Trousdale, William. “A Chinese Handle-Bearing Mirror from Northern Afghanistan.” Artibus Asiae 24, no.1 (1961): 11-19.
88. Vladimir, Belyaev, Vladimir Nastich, and Sergey Sidorovich. “The coinage of Qara Khitay: A new evidence.” In The 3rd Simone Assemani symposium on Islamic coins, 127-143. Trieste: EUT, 2012.

Article information Continued

Fig. 1.

<추이 계곡의 주요 도시와 유적>, Historic cities and sites in Chuy Valley, April 13, 2023, data available from Google map (https://www.google.com/maps)

Fig. 2.

<金銅佛像> Gilt Bronze Buddhist Statues, excavated from the Novopok rovskoe-2 site in Kyrgyzstan, 8th-12th century, Max h. 18.3 cm (Valery А. Kolchenko,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p. 367)

Fig. 3.

<金銅製三鈷杵形 法具> Gilt Bronze Three-pronged Buddhist Ritual Object, excavated from the Novopok rovskoe-2 site in Kyrgyzstan, 8th-12th century, H. 14.2 cm (Valery А. Kolchenko,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p. 367)

Fig. 4.

<金銅製五鈷鈴과 五鈷杵>, Gilt Bronze Five-pronged Vajra and Vajra Bell, Tang, H. 24.5cm, Toji (Shun’ichi Sekine, Japanese art no. 5 41, p. 3)

Fig. 5.

<鳳凰雁飛天雲紋鏡>, Bronze Mirror with the pattern of Phoenix Wild Goose, Flying Buddhist Angel, and Cloud, excavated from the Novopok rovskoe-2 site in Kyrgyzstan, 8th-12th century, d. 18.2cm (Valery А. Kolchenko,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p. 367)

Fig. 6.

<鳳 凰 雁 雲 紋 鏡>, Phoenix Wild Goose and Cloud Patterned Bronze Mirror, excavated from the tomb of Xuanhua in Hebei, 1074∼1093, Liao, D. 13.3cm (Hebei sheng wenwu yanjiusuo, Xuanhua liaomu, pl. 36)

Fig. 7.

<‘ 乾 統 七 年 ’ 銘 鳳 凰 紋 鏡>, Phoenix-patterned bronze mirror with the inscription “the 7th Year of the Qiantong reign,” 1107, Liao, D. 19.0 cm, National Museum of China (Peifen Chen, Zhongguo qingtongqi cidian, pl. 1479)

Fig. 8.

<鳳 凰 魚 龍 雁 雲 紋 鏡>, Bronze Mirror with the pattern of Phoenix Ichthyosaur, Wild Goose, and Cloud, excavated from the tomb of Baixiang, Jin, D. 19.8 cm, The Institute of Cultural Relics and Archaeology of Hebei Prov ince (Hebei sheng wenw u yanjiusuo, Liaodai tongjing wenshi, p. 341)

Fig. 9.

<飛 天 雲 紋 銅 鏡>, Bronze Mirror Patterned with Flying Buddhist Angel and Cloud, excavated from the tomb of Jianping in Liaoning, Liao, D. 13.0cm, Liaoning Provincial Museum (Shujuan Liu, Liaodai tongjing yanjiu, pl. 75)

Fig. 11.

<셀주크 왕조 동전>, Coin issued at Nishapur by the Seljuq governor Sanjar, dated 1099, Seljuk, D. 2.2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s://www.metmuseum.org)

Fig. 12.

<仙人龜鶴紋鏡>, Bronze Mirror patterned with Recluse, Turtle, and Crane, excavated from the Kochkor Valley of Kyrgyzstan, D. 9. 5cm, State Hermitage Museum (William Trousdale, Artibus Asiae 24, fig. 2)

Fig. 13.

<鳳 凰 雁 雲 紋 銅 鏡>, Bronze Mirror with Phoenix Wild Goose, and Cloud Patterns, excavated from Kaesŏng, Koryŏ, D. 20.3cm, National Museum of Korea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Fig. 14.

<雲鶴紋鏡 외> Bronze Mirror patterned with Cloud and Crane, excavated from the Talgar of Kyrgyzstan, 11th-13th century (K. M. Baypakov, K’ajahŭsŭt’an ŭi Shilk’ŭrodŭ, p. 230)

Fig. 15.

<한 쌍의 스핑크스와 아랍 문자로 장식한 동경>, Bronze Mirror with a Pair of Addorsed Sphinxes with Scorpion Tails, 12th-13th century, Iran or Turkey, 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s://www.metmuseum.org)

Table 1.

〈金代 동경의 손잡이 형태와 문양〉 Patterns and Ty pes of Mirror Handles in the Ji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