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Art Hist > Volume 318; 2023 >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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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ohn F. Haskins, “The Chinese Mirror from Pazyryk”, Archives of the Chinese Art Society of America Vol.18(1964), pp. 55-61; 국립중앙박물관,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국립박물관문화재단, 2016), pp. 99-101.
2) 이송란, 「중국 前漢 海昏候墓의 <銀製一角獸文裝飾>과 흉노의 벨게트 구르스(Belget Göröö)」, 『崇實史學』 45(2020), pp. 343~365; 주경미, 「흉노시대 幻想動物文의 특징과 문화사적 의의」, 『중앙아시아연구』 vol.27, no.1(2022), pp. 23-61.
3) А . А .Тишк ин, М . Ю. Кузеванова, Ме та л лические зе рк а л а к ак исто чник по древне й и с редневе к овой истории Алтая(Metallic mirrors as source about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of Altay) (Барнаул: Азбука, 2011), pp. 55-58.
4) 최근 유라시아와 관련한 국내 연구성과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편, 『실크로드 연구사전 서부: 중앙아시아 서투르키스탄』 (국립문화재연구소, 2021);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편, 『2018 Asian Archaeology 국제학술심포지엄: 유라시아의 고대문화 최신 발굴성과』 (국립문화재연구소, 2018) 등이 있다.
5) 유적은 120m×120m 정도의 비교적 작은 규모로 정착 생활을 했던 주거지 유적으로 파악되었다. Philipp Rott and Valery A. Kolchenko, “The Ancient Site of No vopokrovskoe 2 Excavation 1: Preliminary results” In Urban Cultures of Central 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Karakhanids (Wiesbaden: Harrassowitz Verlag, 2019), pp. 366-385.
6) 1923년 이래로 여러 학자에 의해 해당 유적이 언급된 바 있으나 1959년에 들어와 유적에 관한 가장 자세한 현황과 함께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가 진행되었다. Kožemâko, P. N., Rannesrednevekovye goroda i poseleniâ Čujskoj doliny (Frunze: Akademiâ Nauk Kirgizskoj SSR, 1959).
7) 1960년대 ‘문화의 집(House of Culture)’을 세우기 위해 건축공사가 진행될 때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Valery А. Kolchenko, “Buddhism in the Chuy Valley (Kyrgyzstan) in the Middle Ages”, The Journal of Oriental Studies vol.30(2020), pp. 67-101.
8) Goryacheva, V.D. and S.Ya. Peregudova, “Buddiyskie pamyatniki Kirgizii’”, Vestnik drevney istorii no. 2(1996), pp. 167-89; Staviskiy, B.Ya., “Novoe o buddizme v Sredney Azii (po povodu stat’i V.D.Goryachevoy i S.Ya. Peregudovoy)”, Vestnik drevney istorii no. 2(1996), pp. 193-95.
10) T.V. Grek은 8∼10세기 북인도로부터 수입된 불상으로 보았고, T.K. Mkrtychev는 隋代 제작한 중국 불상이거나 현지에서 이를 모방해 제작한 복제품으로 판단하였다. Valery А. Kolchenko, 앞의 논문, pp. 67-101.
16) 劉淑娟, 『遼代铜镜硏究』 (沈阳市:沈阳出版社, 1997), pp.86-87, 135-136; 河北省文物硏究所编, 『歷代铜镜纹饰』 (石家庄市:河北美术出版社, 1996), pp. 341-344.
18) 추 계곡은 키르기스스탄의 북부와 카자흐스탄의 남부에 걸쳐 있으며 추강의 중류를 따라 길이 250km, 해발 500~1300m이다. 초원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제티수(Jetisu, Jeti-Suu) 지방에 해당한다. 제티수는 ‘일곱 개의 강’이 분포한 지역으로 러시아어로 세미레치예라고 한다. 김동훈, 「카자흐스탄 남동부 제티수(세미레치예) 일대 실크로드 관련 고고유적의 분포현황과 특징」, 『2018 Asian Archaeology 국제학술심포지엄: 유라시아의 고대문화 최신 발굴성과』 (국립문화재연구소, 2018), pp. 3-17.
19) 역사적으로 사카, 오손, 서돌궐, 카를루크, 카라한조, 카라키타이(서요) 등 유목민족 정권들의 중심지나 거점 역할을 하였다. 정수일 편저, 『실크로드 사전』 (창비, 2013), pp. 767-770.
21) Vladimir Belyaev, Vladimir Nastich, and Sergey Sidorovich, “The coinage of Qara Khitay: A new evidence”, The 3rd Simone Assemani symposium on Islamic coins (Trieste: EUT, 2012). pp. 127-143.
22) Masashi ABE, Shogo KUME, Hiroo KANSHA and Masatoshi YAMAFUJI, eds. Protection and Research on Culfural Heritage in the Chuy Vаllеу, the Kyrgyz Republic Ak-Beshim and Ken Bulun (Tokyo: Japan Center for International Coperation in Conservation, 2017), pp. 5-29.
23) 요대에서는 天贊, 天顯, 應曆, 保寧 등 요나라 연호를 새긴 여러 동전들을 주조해 사용하였다. 周錦章, 「西遼的貨幣與貨幣流通」, 『內蒙古金融研究』第3期(2003), pp. 17-20; 天津博物館 編, 『發現契丹-遼代文物精華展』(北京: 故宮出版社, 2015), p. 103.
24) Bernshtam A. N.,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очерки центрального тянь-шня и памиро-алая(Moskva: Leningrad, 1952), pp. 158-159; William Trousdale, “A Chinese Handle-Bearing Mirror from Northern Afghanistan”, Artibus Asiae vol.24, no.1 (1961), pp. 11-19.
25) 이와 유사한 문양과 주제를 다룬 동경이 중국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에서 출토된 바 있는데 ‘龜鶴齊壽’라는 명문을 함께 주조해 문양이 상징하는 구체적인 의미를 추정해볼 수 있다. 孔祥星 外, 『中國銅鏡圖典』(北京: 文物出版社, 1992), p. 858.
26) 黑龍江省 阿城市, 金上京 北城과 白城, 吉林 集安 金墓에서 출토되었다. 張英, 『吉林出土銅鏡』(北京: 文物出版社, 1990), p. 85; 阿城縣文物管理所 編, 『阿城縣出土銅鏡』(哈爾濱市: 阿城縣文物管理所, 1974), p. 30; 王禹浪外, 『金上京百面銅鏡圖錄』(哈爾濱: 哈爾濱出版社, 1994), pp. 185-186; 伊葆力 外, 『金代銅鏡』 (哈爾濱: 哈爾濱出版社, 2001), p. 170.
28) 奈良文化財研究所飛鳥資料館, 『東アジア金属工芸史の研究 5: 対馬の鏡』 (奈良: 文化財研究所奈良文化財研究所飛鳥資料館, 2004), pp. 11-13; 박진경, 『고려·조선시대 동경(銅鏡)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1), pp. 83-90.
30) Н. Н Серегин, А. Н. Чистякова, Монгуш К. М., “РЕДКОЕ МЕТАЛЛИЧЕСКОЕ ЗЕРКАЛО ЧЖУРЧЖЭНЬСКОГО ВРЕМЕНИ ИЗ ТУВЫ”, ТЕОРИЯ И ПРАКТИК 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30, No.1 (2021), pp. 172-188; B.A. Baitanayev, P.N. Petrov, “Нур-Тухумские зеркала”, ПОВОЛЖСК А Я АРХЕОЛОГИЯ 30, No.4(2019), pp. 28-42.
31) 周峰, 「試論金朝對西部邊疆的經略—以西夏和西遼爲中心」, 『東北史地』 第4期 (2009), pp. 23-28; 금의 통치자는 서요 정권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금나라 서북 변경지역에 있는 거란인들을 여진의 중심지역인 상경로로 이주시키거나 여진인과 함께 거란인을 거주시킴으로써 민족을 통합시키고자 하였다.
32) Michal Biran, “Qarakhanid Studies: A View from the Qara Khitai Edge” Cahiers d’Asie centrale 9(2001), pp. 82-83.
34) 탈가르 주민의 대부분은 튀르크인이었지만 중앙아시아, 이란, 중국에서 온 상인들이 살고 있었다. 11∼13세기 초 최고의 전성기에 대략 6천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다. K. 바이파코프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역, 『중앙아시아 실크로 드 주요 유적지』 (국립문화재연구소, 2016), pp. 33-35.
35) 韓雪昆, 「新彊博爾塔拉州出土的幾件古代銅鏡」, 『文物』 第1期(1992), p. 96; 徐光冀, 「新 疆 維 吾 爾自治 區 阜康縣三 宮 鄉西遼 銅 鏡」, 『考古文物新發現』 (1993), pp. 265-266.
36) Warwick Ball, Archaeological Gazetteer of Afghanistan(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p. 1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