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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09; 2021 > Article
牧谿의 <六枾圖>: 신화의 탄생과 역사적 진실*

Abstract

牧谿(13세기 활동)의 <六枾圖>는 선불교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것으로 작품의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 이 글은 <六枾圖>의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전까지 <六枾圖>의 수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15세기 이후 일본의 茶道界에서는 牧谿의 花卉雜畫를 茶會의 장식용 그림으로 선호했다. 이 시기 千利休(1522-1591)는 侘茶 철학과 관련해 茶會에서 말린 과일이나 열매를 후식으로 먹는 果子 문화를 성장시켰다. 여기에 어울리는 장식으로 花卉雜畫가 큰 인기를 끈 것이다. 이렇게 급증한 일본의 수요에 맞춰 중국에서 牧谿 전칭의 花卉雜畫卷이 다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일본에서 果子로 애호되었던 감을 그린 <六枾圖> 또한 일본 茶道의 고유한 문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이다. <六枾圖>는 늦어도 1571년 이후 養花曲庵(16세기 후반 활동)이나 津田宗及(?-1591)와 같은 茶人의 소장품이 되어 茶會의 실내 장식으로 사용되었으며 1612년부터는 京都 龍光院에서 소장해 온 掛物의 茶道具이다. <六枾圖>에 관한 일본의 기록은 주로 茶會記를 통해 확인되며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일본에서는 <六枾圖>가 대개 名物茶道具로서 인식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六枾圖>는 갑자기 禪畫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서구와 대비되는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禪을 강조하고 기존의 화가를 새롭게 해석했다. <六枾圖>의 신화는 이렇게 선종 미술사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19세기 말 岡倉天心(1863-1913) 등의 일본 미술사학자들은 당시 서양에서 인기를 끌던 선불교가 중국에서 잊혔으나 일본에서 계승되었다는 담론을 만들었다. 牧谿는 미술사 영역에서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화가로 여겨졌으며 일본의 미술사학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선종 미술사 담론에 牧谿를 위치시키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相見香雨(1874-1970)는 <六枾圖>를 禪의 정신이 담긴 그림으로 윤색했다. 이를 접한 오토 퀴멜(Otto Kümmel, 1874-1952)과 에른스트 그로세(Ernst Grosse, 1862-1927)는 저서에 <六枾圖>의 도판을 수록하거나 相見의 글을 인용했다. 이후 퀴멜과 그로세의 책을 접한 아서 웨일리(Arthur Waley, 1889-1966)는 <六枾圖>를 牧谿의 대표작으로 소개하며 크게 부각시켰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웨일리의 해석에 의해 <六枾圖>가 선불교의 명작으로 수용되었으며 이후로도 <六枾圖>는 선화로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Abstract

Muqi’s (act. late thirteenth century) Six Persimmons, now in Ryōkō-in, a sub-temple of Daitoku-ji, Kyoto, is regarded as a masterpiece of Zen painting. Such a reputation is based on the modern interpretation of the painting, an interpretation that has deprived Six Persimmons of its original historical context. This article examines how the painting was originally received in Edoperiod (1615-1868) Japan, and how Six Persimmons was subsequently canonized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Japanese taste led to an increase in the number of huahui zahua (flowers, plants, and miscellaneous subjects) handscrolls attributed to Muqi in China, as well as Ming (1368-1644) painters’ interest in huahui zahua bearing Muqi’s name. Japanese tea connoisseurs developed the habit of hanging Muqi’s huahui zahua paintings to decorate tokonoma after the fifteenth century. This period coincides with the floruit of Sen no Rikyū (1522-1591), a tea master who expanded the use of kashi (fruits or nuts) as sweets to be eaten at tea gatherings. The huahui zahua genre surged in popularity largely because it was considered appropriate to the wabicha (rustic tea) aesthetic. Six Persimmons, an example of one such Muqi-attributed huahui zahua hanging scroll, first appears in the records no later than 1571. Owned by influential tea practitioners such as Yōka Kyokuan (act. sixteenth century) and Tsuda Sōgyū (d. 1591), Six Persimmons was donated to Ryōkō-in in 1612. Appearing mostly in chakaiki (records of tea gatherings), Six Persimmons has long been treasured as a tea utensil in Japan.
How then did Six Persimmons lose its historical context as a tea utensil and gain modern fame as a masterpiece of Zen art? In accordance with a new Zen-centered theory, the Japanese began to emphasize Zen as their spiritual identity and, starting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restructured East Asian art history in the context of that identity. Six Persimmons was canonized alongside this fashioning of Zen art history. Notably, Okakura Tenshin (1863-1913) alleged that Zen culture, then popular in the West, had been forgotten in China and only continued in Japan. As Muqi was considered the most suitable painter for supporting Tenshin’s theory, Japanese scholars endeavored to locate Muqi within this new Zen art history by means of various theoretical attempts. Among such attempts, the Japanese art historian Aimi Kōu (1874-1970) was the first to interpret Six Persimmons as a significant Zen painting. Based on Aimi’s new perspective of Six Persimmons, British Orientalist Arthur Waley (1889-1966) emphasized this perspective, arguing that the painting was a masterpiece that embodied the Zen spirit. In the wake of Waley’s rediscovery, and the Zen fever of the twentieth-century West, Muqi’s Six Persimmons continues to enjoy fame as a Zen art masterpiece in both scholarly and public arenas, while its original function has been mostly forgotten. This article reconstructs that function and the context in which it operated, revealing the process by which Six Persimmons was recontextualized as a work of Zen art at the same time.

Ⅰ. 서론

牧谿(13세기 활동)는 동양미술사 개론서에서 南宋(1127-1279)을 대표하는 중국의 선승화가로 소개된다.1 牧谿의 수많은 전칭작 중 특히 京都 大德寺 塔頭 龍光院의 <六枾圖>는 禪의 정수를 담은 명작으로 평가된다(Figs. 1, 2,).2 이 작품의 세계적 인기는 서양의 미술사학자 제임스 캐힐(James Cahill, 1926-2014)의 강연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캐힐은 “<六枾圖>는 모두가 가장 좋아했던 선종화이자 모두가 알고 있던 유일한 그림”이었다고 술회했다.3 그런데 이처럼 이 그림을 선불교와 결부시킨 해석은 20세기에 들어서 나타난 것이다. 즉 현재 <六枾圖>의 이미지는 19세기까지 이 그림이 지녀왔던 맥락과 무관하다. 그렇다면 ‘선불교의 명작’이라는 <六枾圖>의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당대의 기록은 이 그림의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미술사 담론의 비판적 수용이 지닌 중요성을 확인하고자 한다.4 이는 선불교와 관련된 선행연구를 의문시하는 비판적 선종사(critical zen history)의 관점으로 牧谿와 <六枾圖>를 재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5 동양미술사에서 南宋과 室町(1336-1573)의 水墨禪畫가 크게 주목받은 것은 明治(1868-1912) 이후의 일이다. 이 시기 岡倉天心(1863-1913)을 위시한 학자들은 일본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미술사 담론을 만들었다.6 <六枾圖>의 신화는 바로 이러한 사상적 토양 위에서 성립된 것이다.
상술한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이 글은 우선 <六枾圖>가 본래의 맥락과 분리되어 선불교의 담론으로 편입된 과정을 분석하겠다. 이후 일본과 중국의 기록을 통해 <六枾圖>의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Ⅱ장에서 필자는 <六枾圖>를 다룬 1910-30년대 일본과 서양의 주요 논저를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근대기 초 성립된 일본의 선종 미술사 담론을 구미의 학자들이 수용하면서 <六枾圖>가 선불교의 명작으로 윤색되었다는 점을 확인하겠다. Ⅲ장에서 필자는 15-16세기 일본의 茶會記와 <六枾圖>의 異本에 관한 기록에 주목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室町 이후 등장한 다도 문화의 수요에 맞춰 중국에서 <六枾圖>와 같은 牧谿의 花卉雜畫 그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가능성을 검토하겠다.

Ⅱ. <六枾圖> 신화의 탄생

<六枾圖>는 선불교의 명작이자 牧谿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이 그림을 茶道具로 사용한 일본의 역사와 무관한 해석이다. 이런 왜곡이 발생한 것은 근대기에 일본 미술운동의 지도자로 세계적인 활동을 전개한 天心이 禪畫를 중심으로 동양미술사를 집필했기 때문이다. 明治 이래 일본에서는 서구와 대비되는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7 이때 서양인들의 관심과 취향은 일본이 자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는 지표가 되었다. 구미 문화계의 동향에 밝았던 天心은 당시 서양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던 선불교를 통해 일본의 문화적 우수성을 강조했다.8
天心은 동양 정신의 핵심은 선불교 속에 있는데 이는 원류인 인도와 중국에서 잊힌 반면 오직 일본에서 계승되었다고 역설했다.9 이 이론에 따라 牧谿는 본국이 아닌 일본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은 전설적 畫僧으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사실 牧谿는 중국에서 잊힌 화가가 아니다.10 하지만 중국에 전해지는 牧谿의 기록이나 현전작과 일본에 남아있는 牧谿 관련 사료를 비교하면 牧谿는 일본에서 보다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이 때문에 牧谿는 그 누구보다 天心의 이론에 잘 부합하는 화가로서 주목된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선승화가’로 牧谿를 설명하는 데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 남송의 禪畫에 담긴 동양의 예술적 정수가 일본으로 계승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牧谿의 그림이 逸品의 粗放한 室町 수묵화와 조응해야 한다. <龍虎圖>, <羅漢圖>, <瀟湘八景圖>, <叭哥鳥> 등 牧谿의 전칭작은 이러한 설명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필치를 지니고 있다(Fig. 5). 그러나 일본에서 牧谿의 대표작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觀音猿鶴圖>는 일본 회화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소개되면서도 정작 天心이 구성한 禪畫 중심의 동양회화사 체계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Fig. 6).11 天心의 영향을 받아 집필된 책 또는 天心과 관련된 기관의 간행물은 상술한 선종 미술사 담론과 선승화가 牧谿의 신화가 형성되는 과정, 나아가 그에 맞게 <觀音猿鶴圖>를 제시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12
1910년대 초반 일본에서 <六枾圖>를 처음으로 선종 미술의 명품으로 부각시켰던 것도 天心의 이론에 牧谿를 보다 적절히 위치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六枾圖>에 관한 논의는 일회적인 시도에 그쳤을 뿐, 특별한 주목을 받거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주요 간행물 중 일본에서 <六枾圖>를 자세히 다룬 글은 1931년 간행된 『國華』 제493호의 도판해설뿐이다.13
이 글은 간행시기와 편집방식의 측면에서 특히 주목된다. 牧谿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늦은 시기에, 그것도 영어로 작성된 이례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1896년부터 1931년까지 『國華』에는 이미 牧谿가 19회나 다루어졌다(Table 1). 이는 20세기 초반 일본 미술사학계에서 <六枾圖>가 牧谿의 대표작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군다나 <六枾圖>의 도판해설은 일본어 해설을 배제하고 영어로만 작성되었다. 이는 『國華』의 다른 도판 해설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편집방침이다. 서양에서 <六枾圖>를 이미 1920년대부터 주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글의 예상독자는 일본인이 아니라 외국의 동양미술 애호가일 가능성이 높다.14 『國華』에 <六枾圖>가 소개된 이후로도 일본에서 <六枾圖>는 牧谿의 여러 花卉雜畫 그림 중의 하나, 또는 일본의 茶會를 장식한 茶道具 중 하나로서 단편적으로만 소개될 뿐이었다.15 즉 <六枾圖>의 선불교 담론은 일본의 내재적 또는 자생적인 관심보다는 서양이라는 외부자의 시선과 관계가 깊다.
반면 1920년대 초반 구미의 학계에서 <六枾圖>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아서 웨일리(Arthur Waley, 1889-1966)는 이 그림을 선종 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소개하여 <六枾圖> 신화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1922년 간행된 『선불교와 미술의 관계(Zen Buddhism and Its Relation to Art, 이하 ‘1922년 책’)』, 이듬해 간행된 『중국회화사 입문(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Chinese Painting, 이하 ‘1923년 책’)』에서 <六枾圖>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6
  • 牧谿는 禪과 관련된 速筆의 無我境적 수묵화를 처음으로 익힌 것으로 보인다. 牧谿는 다급하게 소용돌이치는 먹을 사용해 술이 불러온 광기, 茶가 초래한 昏迷, 또는 無念의 沒入을 통해 이룩한 幻影과 狂喜가 소멸하기 전에 이를 포착하고자 했다. 牧谿의 구성은 때때로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또는 그의 유명한 <六枾圖>[Persimmons]에서처럼 정열을 경탄스러운 적막 안으로 凝結시키기도 한다.17

웨일리는 어디에서 <六枾圖>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일까? 일본의 주요 저작물 중이 그림을 주목한 글이 없던 1920년대 초 웨일리가 <六枾圖>를 알게 된 경로는 독일의 동양 미술사 개론서로 추정된다. 웨일리의 1922년 책과 1923년 책은 중국에서 작성된 1차 문헌부터 20세기 이후 일본과 구미에서 집필된 2차 문헌에 이르는 다양한 자료를 인용했다.18 이 중 <六枾圖>의 도판을 게재하고 이를 禪의 맥락에서 해석한 책은 오토 퀴멜(Otto Kümmel, 1874-1952)의 『동양의 미술(Die Kunst Ostasiens, 1921)』과 에른스트 그로세(Ernst Grosse, 1862-1927)의 『동양의 수묵화(Ostasiatische Tuschmalerei, 1922)』뿐이다. 당시 웨일리는 1920년 일본에서 발표된 논문까지 입수해 1922년 간행된 책에 인용할 정도로 같은 시기 일본의 주요 연구동향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있었다.19 따라서 웨일리가 언급한 일본의 문헌 중 <六枾圖>를 선종 미술의 대표작으로 소개한 글이 없었던 것은 웨일리의 조사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일본의 주요 간행물 중 牧谿의 <六枾圖>를 다룬 글이 없었기 때문이다.
東京文化財硏究所에 소장된 선행연구 정리노트는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준다. 이 노트는 牧谿에 관해 일본에서 발표된 여러 논문과 도록집 등의 자료를 망라해 작품별로 정리한 것이다. 노트에 기록된 일본의 간행물 중 1922년까지 <六枾圖>를 소개한 일본의 글은 단 한 편뿐이다. 바로 1913년 相見香雨(1874-1970)가 『群芳清玩』에 게재한 <六枾圖>의 작품 해설이다.20 독일의 책에 이 내용이 반영된 덕분에 웨일리는 <六枾圖>를 禪畫의 명작으로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이다.
  • “宋朝에 (…) 홀로 院外에서 燦然히 이채로운 그림을 그린 이는 牧谿다. 牧谿는 본디 禪門의 衲子로, 超佛越祖의 遊戲三昧에 들어선 그 안중에는 본래부터 화원도 황제의 待詔도 없었다. 雅心이 한 번 동하면 흉중의 산수화조를 갑자기 붓끝의 禪으로 만드는 것이다. 馬遠, 夏珪 등은 위대한 수완을 가졌으나 金帶를 영예로 여기(는 화원이)기 때문에 그 풍격이 저 멀리 牧谿의 酒脫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牧谿가 붓을 내리자 닥종이 표면에 불현듯 靈氣가 넘치며 기개가 있다. 여기 보이는 <栗枾圖>와 같이, 지극히 簡疏不經意의 그림이지만, 필치묵법이 진실로 神의 경지에 들어서 妙한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지극히 하여, 雅趣를 헤아릴 수 있어도 다시 그 아취의 다함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 내가 牧谿의 그림을 만난다면 諦玩하느라 가끔 침식을 잊어버리라. 牧谿의 그림은 크게는 大德寺의 <觀音猿鶴圖>에서 작게는 이 <栗枾圖>까지, 그 화제를 불문하고 한 幅, 한 幁이 모두 세계의 至寶라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 牧谿의 遺作이 많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栗枾圖>의) 이 두 폭은 옛날부터 名物(…)이다.”21

그로세와 퀴멜은 모두 相見의 『群芳清玩』을 통해 ‘禪畫의 명물’ <六枾圖>를 접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웨일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六枾圖>의 신화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그로세가 相見의 논고를 충실히 반영해 웨일리가 相見의 해석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면 퀴멜은 일본의 기록물이나 진열대에서 늘 병존해왔던 <六枾圖>와 <栗圖>를 분리시켰다.22
그로세는 참고문헌을 수록하지 않아 그가 어떻게 <六枾圖>를 접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책 전반에 걸쳐 牧谿를 소개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로세가 『群芳清玩』의 내용을 반영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23 『동양의 수묵화』에서 그로세는 중국 미술사를 개관하기에 앞서 먼저 수묵화의 발전단계를 논의한다. 牧谿의 그림은 일본의 雪村(1504-1589), 雪舟(1420-1506)의 그림과 비교되는데 그로세는 이들을 “禪人(Der Zenmann)”이라고 칭한다. 이후 “11-13세기 송나라의 대가”를 열거하면서 수묵화가 먼저 중국에서 등장해 선의 정신에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 집성되었다고 평했다. 특히 牧谿는 “金帶를 받고 화원에서 봉직을 맡았던 夏珪”와 달리 세속을 벗어난 예술세계를 구사했으며 이는 일본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아시카가시대[室町]에 열정적인 수집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설명된다. 이 내용은 앞서 살펴보면 相見의 글과 매우 유사하다. 『群芳清玩』은 수묵화만을 다룬 책이었기 때문에 그로세가 『동양의 수묵화』를 집필할 때 『群芳清玩』을 주요 참고서적으로 활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 퀴멜의 『동양의 미술』은 <栗圖>를 배제한 채 <六枾圖>의 도판만을 단독으로 수록했다(Fig. 7). 16세기 이후 일본에서는 龍光院의 <六枾圖>가 <栗圖>와 한 쌍으로 전해졌는데 퀴멜은 이러한 전통을 깨고 <六枾圖>와 <栗圖>를 처음으로 분리시킨 것이다.24 도판해 설까지 제공한 그로세와 달리 퀴멜은 그림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퀴멜은 <六枾圖>의 탄생에 더욱 크게 기여했다. 퀴멜이 편집한 도판 덕분에 웨일리는 <六枾圖>와 <栗圖>를 병렬할 때, <六枾圖>를 단독으로 제시할 때의 시각적 효과를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웨일리는 두 그림을 모두 수록한 그로세의 『동양의 수묵화』를 통해 <栗圖>의 존재, 그리고 <栗圖>와 <六枾圖>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었다(Fig. 8). 특히 그로세는 <六枾圖>가 아닌 <栗圖>를 牧谿가 “밤의 가지(Kastanienzweig)를 훌륭히 표현해 뾰족한 열매와 함께 그려 넣었으며 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선의 상징(zenistisches Symbol)”이라고 설명하며 <六枾圖>가 아닌 <栗圖>를 선불교와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25
하지만 웨일리가 선택한 것은 <栗圖>가 아닌 <六枾圖>이다. 이것은 <六枾圖>가 선불교의 정신을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六枾圖>는 서양의 시각에서 볼 때 신비로운 그림으로 여겨질 만한 요소를 여럿 가지고 있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그림의 주요 제재인 감이라는 과일의 특징이다. 20세기 중후반까지도 독일이나 영국에서 감은 낯선 과일이었다. 생소한 이름의 과일을 먹의 농담 변화만으로 추상화한 <六枾圖>는 어떤 수수께끼나 신비를 담고 있다는 기대감을 품기에 충분한 그림이었다. 이에 비해 <栗圖>에 구상적으로 표현된 밤은 서양에서도 친숙한 열매였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六枾圖> 특유의 단순한 원형의 도상이다. 서양에서는 江戸(1615-1868) 후기 유행한 禪畫인 円相가 널리 알려져 있다(Fig. 9).26 <六枾圖>와 円相는 먹을 사용해 단순한 원형으로 ‘선의 깨달음’을 포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작가가 <六枾圖>와 <栗圖>를 그릴 때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서양의 감상자들이 미니멀리즘의 수묵화를 보며 마주하기를 기대한 것은 깨달음과 무(無)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신비한 종교적 순간이다. <六枾圖>는 이러한 욕망을 훌륭히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이후 웨일리의 책은 로렌스 시크먼(Laurence Sickman)의 『중국의 미술과 건축 (The Art and Architecture of China, 1956)』, 1956)』, 피터 스완(Peter C. Swann)의 『중국의 회화(Chinese Paintings, 1958)』와 같은 대표적인 개론서에 인용되면서 <六枾圖>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데 밑거름을 마련하였다.27 다만 웨일리는 ‘Six Persimmons’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여섯’이라는 숫자는 언제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것일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1955년 독일의 미술사학자 디트리히 제켈(Dietrich Seckel, 1910-2007)이 발표한 논문이다.28 제켈은 작품을 ‘여섯 개의 감(Sechs Kaki-Früchte)’이라고 기재하고 작품의 도상과 그 속에 담긴 선불교의 철학을 논증했다. 저자는 여섯 개의 감에 각각 번호를 부여하고 이들의 물성 차이와 상호 관계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켈의 글은 牧谿의 감 여섯 알 속에 중국의 음양 사상을 바탕으로 구현된 절대적인 형상과 공백이 들어있음을 역설한다. 제켈에게 <六枾圖>는 公案처럼 초월적 개념을 암호화하여 구체적 현존재(konkret gegenwartig)이자 초월적 추상(durchscheinend und entruckt)으로 구현한 그림이다. 牧谿가 그린 여섯 개의 감은 현존재와 空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모순을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동양 미술의 정점을 구현했다는 찬탄을 통해 제켈은 相見, 그로세와 퀴멜, 웨일리를 거치며 형성된 <六枾圖>의 신화에 點眼을 한 것이다.

Ⅲ. <六枾圖>의 역사적 진실

그렇다면 이러한 해석이 제기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六枾圖>는 어떤 의미로 수용되었던 그림일까? 1931년 『國華』의 도판해설은 선화로서 윤색되기 전 일본에서 이 그림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이 글에 의하면 <六枾圖>는 “茶湯의 전문가를 통해 古畫로서 상찬되어 온 것”이다.29 이 설명은 <六枾圖>의 역사적 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역사적으로 이 그림은 다도계에서 명망 높았던 龍光院의 茶會를 장식하는 掛物로 사용되었다(Figs. 2, 4). 특히 <六枾圖>는 다양한 花卉雜畫가 그려진 긴 수권을 도상별로 잘라 다실을 장식하기에 적합한 크기로 표구한 것으로 추정된다.30 따라서 掛物로 표구되기 전 <六枾圖>의 원형은 臺北 國立故宮博物院의 <寫生卷>(이하 타이페이본), 北京 故宮博物院의 <水墨寫生卷>(이하 베이징본)과 유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Figs. 10, 11).
牧谿의 花卉雜畫 그림에 관련된 가장 이른 기록은 “牧谿가 蘆雁과 雜畫를 잘 그린다”는 莊肅의 『畵繼補遺(1298)』이다. 『畵繼補遺』를 제외하면 明代(1368-1644)까지 작성된 畫史書나 題畫詩에서 牧谿의 雜畫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흥미롭게도 일본에서는 중국보다 반세기 이상 앞선 1436년부터 牧谿의 花卉雜畫에 관한 기록이 확인된다. 이후 16세기부터는 중국과 일본 양국에서 모두 이러한 유형의 그림에 대한 기록이 급증하기 시작한다.31 그렇다면 왜 牧谿의 花卉雜畫에 관한 기록은 牧谿 사후 2백여 년이 지난 16세기에 들어서야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일까?
필자는 <六枾圖>의 역사적 진실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한다. <六枾圖>가 처음 기록에 나타난 1571년은 일본에서 다도 문화가 급속도로 성장했던 시기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茶會 장식용 그림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六枾圖>는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제작 또는 유통되어 다도구로서 수용된 그림이다. <六枾圖>에 관한 일본의 다양한 기록은 당시 이와 같은 유형의 작품이 얼마나 많이 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Figs. 12,-14). 이와 같은 일본의 폭발적인 수요에 맞추어 그간 중국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六枾圖>와 같은 작품이 다량 제작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일본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牧谿傳稱의 花卉雜畫圖卷이 다량 제작되었으며 이 중 일부는 일본으로 수출되지 않고 중국에 남아 명청대의 화가나 수집가에게까지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32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해주는 첫 번째 근거는 室町 때 일본에서 牧谿 그림을 수입하던 관행에 관한 기록이다.33 15세기 기록에 따르면 将軍의 문화적 조언자였던 相阿彌(?-1525), 화가 狩野元信(1476-1559)가 足利義政(재위 1449-1473)의 취향과 필요에 맞추어 牧谿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지정하여 주문했던 것이 확인된다.34 예를 들어 1488년 이들은 義政의 소장품이었던 牧谿의 새 그림 쌍폭의 가운데에 두어 <觀音猿鶴圖>의 백의관음처럼 본존의 역할을 수행할 만한 그림을 한 폭 주문하거나, 牧谿의 수묵관음도 양 옆에 각각 두 폭을 걸기 위해 네 폭의 그림을 주문했다. 늦어도 15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牧谿의 그림을 중국에서 수입할 때 일본인들의 취향과 필요에 맞춰 구체적인 화풍과 도상, 심지어 진열 방식까지 미리 고려해 매우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이러한 관행은 당시 일본에서 牧谿의 花卉雜畫 그림의 인기가 높았다면 이를 중국에 적극적으로 요청했으며 이에 따라 중국의 고화시장에서 일본의 취향을 충분히 인지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본의 취향에 맞추어 牧谿의 특정한 작품의 수량이 증가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는 두 번째 근거는 牧谿의 花卉雜畫에 관한 일본의 기록이다. 상술했듯이 흥미롭게도 일본에서는 중국보다 반세기 이상 앞선 1436년부터 牧谿의 花卉雜畫에 관한 기록이 확인된다. 당시 일본에서는 <六枾圖>와 같이 과일이나 야채를 그린 그림을 ‘果子圖’라 명명했다. 15세기 전반까지 일본의 牧谿의 果子圖와 관련된 기록은 많지 않다. 특히 義政의 소장품을 기록한 『君臺観左右帳記(1476년 이후)』에는 牧谿의 그림 104점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 果子圖는 1점뿐이다(Table 2).35 그러나 16세기 중반의 茶會를 기록한 이른바 ‘四大茶会記’, 즉 『松屋会記(1533-1650)』, 『天王寺屋会記(1548-1590)』, 『宗湛日記(1586-1613)』, 『今井宗久茶湯日記(1554-1589)』를 살펴보면 牧谿의 果子圖는 총 35회에 걸쳐 다실을 장식한 것으로 확인된다(Table 3).36 15세기에는 중일 양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록이 16세기 초중반 일본에서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즉 오늘날과 같이 牧谿의 花卉雜畫가 다량으로 전해지게 된 것은 16세기 전후 일본에서의 수요 증가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일본에서 이런 그림이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15-16세기 일본 다도문화의 변화와 관계가 깊다. 이 시기 일본의 다도계를 이끌었던 千利休 (1522-1591)는 侘茶라는 소박한 미학을 강조했다.37 侘茶의 영향으로 茶會의 식사인 懷席料理가 간략해지면서 이를 대신해 후식으로 제공된 말린 열매나 과일, 즉 果子가 茶會에서 중시된 것이다.38
16세기 茶會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果子 중 하나가 바로 <六枾圖>에 그려진 감, 그리고 <六枾圖>와 늘 짝을 이루어 사용되었던 <栗圖>의 밤이다. 당시 밤과 감은 손님 접대에 果子로 흔히 사용되었다.39 織田信長(1534-1582)는 총애하는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ís Fróis, 1532-1597)에게 美濃 지방에서 재배한 감을 선물했다. 한편 껍질을 모두 없애고 찐 밤을 일본에서 勝栗라고 부르는데 ‘勝’이라는 글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축하연이나 설날 등 경사로운 날에 사용되었다. 또한 茶人들은 茶會를 위해 茶壺를 빌린 후 주인에게 돌려줄 때 감사의 표시로 干枾나 勝栗 등을 대접하였다. 특히 다도 문화에서 果子의 비중을 증가시킨 利休는 밤과 감을 매우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40
이처럼 果子의 섭취가 급증하던 일본의 다도 문화에서 <六枾圖>나 <栗圖>와 같은 果子圖는 실내 장식용 그림으로 사랑받았다. 天文(1532-1555) 연간까지는 果子를 대접하지 않을 경우 果子圖를 장식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문화가 존재했다.41 한편 利休가 특별히 선호한 果子는 밤이었는데 이는 일본에서 <六枾圖>보다 <栗圖>의 인기가 높았던 원인으로 생각된다. 1543년 元信가 제작한 牧谿 <栗圖>의 모본이 전해져 늦어도 이때에는 <六枾圖>와 <栗圖>가 일본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Fig. 17). 이후로도 <栗圖>는 狩野探幽(1602-1674)의 작품 감정록인 <探幽縮圖>의 스케치, 式部輝忠와 伊藤若冲(1716-1800)의 모본 등의 형태로 제작되는 등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Fig. 18).
<栗圖>와 <六枾圖>가 누린 인기는 여러 異本의 기록을 통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현재 널리 알려진 <六枾圖>와 <栗圖>는 1612년 이래 龍光院에 소장되어 왔다. 이 작품은 16세기의 茶會記를 통해 첫 번째 소장자로 알려진 養花曲庵을 거쳐 津田宗及(?-1591)가 소장한 후, 宗及의 아들이자 大德寺 주지였던 江月宗玩(1574-1643)을 통해 龍光院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42 그런데 첫 번째 소장자로 알려진 曲庵과 관련된 기록은 龍光院에 전해지는 그림과 다른 부분이 있어 주목된다. 曲庵이 茶會에서 <六枾圖>와 <栗圖>를 사용한 기록은 세 건 확인된다. 이 중 1579년 4월 10일의 茶會를 기록한 松屋久政(1521-1598)의 『久政茶會記』에 묘사된 <六枾圖>와 <栗圖>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 初回 床間(역주: 掛物 진열 공간)에 栗枾의 그림이 걸려 있다. 牧谿 筆이며 가지에 밤이 세 개, 감이 네 개, 잎사귀 5장이 달렸고 가지 앞쪽에는 달린 것이 없다. (표구의) 위아래는 보라색이며 가운데는 하얀 바탕에 작은 무늬가 있고 띠에는 짙은 청색에 작은 무늬가 들어가 있다.43

<六枾圖>와 <栗圖>를 한 폭에 압축한 것과 같은 이 그림은 狩野派의 모본, 侯爵 井上薫(1836-1915)의 소장품, 京都 相國寺의 承天閣美術館의 소장품에서도 확인된다(Figs. 12-14). 네 점의 작품이 모두 같은 그림인지, 아니면 도상이 같은 서로 다른 그림인지는 承天閣美術館의 작품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불명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龍光院의 <六枾圖> 및 <栗圖>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이본이 16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최소 한 점 이상 전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 牧谿의 果子圖가 큰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 아니라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果子圖의 이본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편 이러한 인기의 여파로 중국에서도 牧谿가 새로운 명성을 누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15세기 말을 기점으로 牧谿 그림에 관한 중국 기록의 경향이 크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먼저 기록의 중심이 되는 화목이 변화했다. 일본에서 花卉雜畫 그림이 인기를 누리기 전까지는 중국에서도 牧谿의 蘆雁圖나 猿圖가 선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Table 4). 반면 명대 이후로는 牧谿의 花卉와 雜畫에 관한 기록이 크게 두드러진다.
화평에 있어서도 花卉雜畫를 계기로 중국에서 牧谿의 이미지는 크게 변화했다. 『畵繼補遺』나 湯垕의 『畵鑑(1348 이전)』 夏文彦의 『圖繪寶鑑(1365)』 등에서 보이듯 元代에는 牧谿에 대한 악평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기록은 후대에도 반복적으로 인용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컸다.44 이를 고려하면 명대 이후 牧谿의 花卉雜畫卷을 감상한 예술가들이 남긴 찬사는 매우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李日華(1565-1635)는 이 그림이 “매우 독특한 착상으로서 요즘 사람들이 사생할 때 단지 법식대로 판에 박은 듯이 그리는 것과 달랐다”고 평했다.45 1693년 작성된 査士標(1615-1698)의 제발은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드러낸다.
  • 송의 승려 牧谿는 여러 가지 그림을 두루 잘 그렸으나, 특히 꽃과 풀을 사생하는 데 더욱 뛰어났다. 畵史에 실려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먹을 거칠게 사용하여 이루어내고 굳이 겉모습을 꾸미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직 牧谿의 모든 면을 다 말해주기에는 부족하다. (…) 項元汴이 보배롭게 여겨 갑품으로 삼고 제발을 써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王穀祥과 陸治도 모두 화훼 사생으로 세상에서 보배롭게 여겨졌는데, 지금 이 두루마리를 보니 두 분 모두 牧谿로 침식을 삼듯이 하여 그 뜻을 깊이 얻은 사람이다. 沈周가 花鳥를 수묵담채로 그리는 데 이르러 또한 여러 명가들의 법식을 벗어난 새로운 뜻을 냈지만 이 두루마리와 비교해 보면 대략 엇비슷하기는 하나 정교함은 조금 미치지 못한다.46

花卉雜畫를 통해 牧谿가 중국에서 형성한 이미지는 『芥子園畵傳』 제3집 『草蟲翎毛花卉譜(1701)』과 彭蘊璨의 『歷代畵史彙傳(1882)』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먼저 『芥子園畵傳』에는 牧谿가 翎毛畫의 명인, 특히 기러기의 명수로 기재되어 있다. 특히 彭蘊璨은 夏文彦의 『圖繪寶鑑』을 계승했지만 그중 牧谿에 관한 부정적인 내용은 삭제하고 牧谿를 기이한 禪僧으로 윤색해주는 전설적 일화를 추가했다.
  • 성정은 아름답고 술을 심하게 즐겨,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바람이 불 때나 비가 올 때나 관계없이 늘 취해 있어, 취하면 깊이 잠에 들고, 잠에서 깨면 시를 읊조렸다.47

이는 이전까지 소개된 적 없는 내용으로 목계처럼 ‘法常’을 법휘로 사용했던 다른 禪僧의 일화를 잘못 인용한 것이다.48 특히 이러한 내용은 명대 이래 牧谿 전칭의 花卉雜畫 그림을 감상한 중국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남긴 평가 속 목계의 이미지, 즉 독특하고 법식을 벗어난 선승화가의 모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즉 일본에서 牧谿의 花卉雜畫卷이 인기를 얻은 후 중국에서도 이러한 그림이 주목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牧谿에 대한 중국의 인식 또한 점차 일본의 인식과 유사한 양상으로 변화했다고 하겠다.

Ⅳ. 결론

지금까지 필자는 <六枾圖>가 어떻게 선불교의 맥락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전까지 <六枾圖>가 어떤 맥락에 위치했는지를 확인했다. 이것은 특정한 작품의 역사적 맥락을 복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이 글의 논의를 통해 선종 미술과 관련된 담론이 근대기 일본에서 특수한 목적을 바탕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六枾圖>의 재검토를 위해 필자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六枾圖>가 일본과 서양에서 수용된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六枾圖>를 기존과 같은 선종 미술사의 맥락이 아닌 수용사적 관점에 위치시켰다.
<六枾圖>의 역사는 수용이라는 행위가 지닌 입체성과 상호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일본이 牧谿의 그림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문화를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본의 문화를 통해 중국에 역으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근대기 서양을 중심으로 <六枾圖>의 신화가 형성된 과정은 수용행위의 상호성을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일본에서 <六枾圖>가 禪畫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서양에서 선불교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서양이 동양의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은 동양의 자의식 형성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렇게 이루어진 변화가 서양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통해 <六枾圖>는 禪의 정수를 담은 명작으로 윤색되어 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필자가 제시한 해석 또한 비판적 선종 미술사와 수용사라는 특정한 담론을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로서는 지지를 받을 수 있으나 후대에는 다시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한 작품에 대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이론적 토대를 언제나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명제만이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고 재확인되어야 하겠다.

Notes

1) James Cahill, Chinese Painting (Geneva: Skira, 1960), p. 95; 리처드 반하트 외 4인, 『중국회화사 삼천년』, 정형민 옮김 (학고재, 1999), pp. 133, 136.

2) 16세기 중반 이래 일본에서는 ‘六枾圖’라는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으며 이를 ‘枾圖’라고 명명해왔다. 또한 <枾圖>는 늘 <栗圖>라는 牧谿의 다른 전칭작과 對聯의 쌍폭으로 전해졌다(Figs. 3, 4). 이 글에서 필자는 龍光院의 <枾圖>와 <栗圖>를 각각 ‘六枾圖’와 ‘栗圖’로 명명한다.

3) James Cahill, “12B: The Beginnings of Chan (Zen) Painting and Muqi.” (https://youtu.be/c5S-qgtXDCg 최종접속일 2021년 2월 22일)

4) 키스 먹시(Keith Moxey)에 따르면 미술사학 내에서 특정한 화가나 작품에 권위가 부여되는 것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Keith Moxey, “Motivating History,” The Art Bulletin 77(1995), pp. 392-401. 한국미술사 선행연구 중 명작 이론의 형성 과정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선행연구로 장진성, 「명작의 신화-金正喜 筆 〈歲寒圖〉의 성격」, 전국역사학대회발표문, 2011; 조규희, 「만들어진 명작: 신사임당과 초충도(草蟲圖)」, 『미술사와 시각문화』 12(2013), pp. 58-91; 고연희 외 6인, 『명화의 탄생 대가의 발견: 한국회화사를 돌아보다』(아트북스, 2021) 등이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선행연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5) Gregory P. A. Levine, “Critical Zen Art History,” Journal of Art Historiography 15(2016), pp. 1-30. Levine은 미술사학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되며 이를 ‘비판적 선종 미술사(critical zen art history)’라고 명명한다.

6) 天心의 일본미술사 정립에 대해서는 김용철,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과 일본미술사의 성립」, 『일본사상』 7 (2004), pp. 177-197 참조.

7) 佐藤道信은 근대기 일본미술사의 구축을 이룬 네 개의 중요한 축 중 하나로 국가 주도의 일본미술을 꼽았다. 佐藤道信, 『明治国家と近代美術ー美の政治学』(東京: 吉川弘文館, 1999), pp. 125-127. 이러한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眞美大觀』이다. 『眞美大觀』에 대해서는 강희정, 「 『진미대관(眞美大觀)』과 일본 고대 불교조각」, 『미술사논단』 28(2009), pp. 89-110 참조.

8) 장진성, 「사무라이, 다도(茶道), 선불교-서양인이 본 일본의 미」, 아시아 미 탐험대, 『밖에서 본 아시아, 美: 여행 사진 미술 영화 디자인』(서해문집: 2020), pp. 86-121.

9) 岡倉天心, 「東洋の理想」, 『岡倉天心全集』 1(東京: 平凡社, 1980), p. 90. 天心은 室町가 중국에서 사라진 宋代의 예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동양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까지 평가하였다. Okakura Tenshin, “Modern Problems in Painting,” in Collected English Writings 2(Tokyo: Heibonsha Limited, Publishers, 1984), pp. 68-69; Okakura, “Notes by and Concerning Okakura, Housed at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in Collected English Writings 3(Tokyo: Heibonsha Limited, Publishers, 1984), p. 376.

10) 天心 등의 일본학자가 明治期에 牧谿의 서술체계를 확립해가는 과정에 관해서는 졸고 「牧谿繪畵 受容樣相硏究: <觀音猿鶴圖>와 <栗枾圖>를 中心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2019), Ⅴ장 1절 참조; 南宋 이래 중국의 牧谿 인식에 관해서는 같은 논문, Ⅲ장 참조.

11) 『眞美大觀』에는 이 그림이 “지극히 근엄한 작품”으로 “ ‘蜀僧法常謹製’의 관기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서술되었다. 田島志一 編, 『眞美大觀』 1(東京: 日本佛敎眞美協會, 1899), p. 111.

12)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졸고 Ⅴ장 1절 참조.

13) 國華社 編, 「龍光院の傳牧谿栗柿圖解」, 『國華』 493(1931), p. 351. 東京文化財硏究所 노트에 따르면 이보다 앞서 <六枾圖>를 게재한 주요 간행물로는 『日本國寶全集』이 있으나 여기에 간략히 실린 내용은 선불교의 맥락과 무관하다. 文部省 編, 『日本國寶全集』 25(東京: 日本國寶全集刊行會, 1927).

14) 『國華』는 181호부터 253호까지 영문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rthur Waley,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Chinese Painting (New York: Grove Press, 1923), p. 253.

15) 예외적으로 <栗枾圖>를 자세히 소개한 글은 1939년 金原를 통해 발표되었다. 金原省吾, 『東洋美術文庫』 第三卷: 牧谿, 東京: アトリエ社, 1939.

16) Waley, Zen Buddhism and Its Relation to Art (London: Luzac, 1922), pp. 22-23; Waley, Introduction, pp. 230-231, Plate 44. 牧谿를 소개한 부분과 관련해 1922년 책과 1923년 책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차이점은 도판과 중국 명칭의 표기방식에서 확인된다. 1922년 책의 경우 도판을 직접 제시하는 대신 퀴멜 책의 도판을 참조하도록 각주로 처리했으며 중국 명칭을 일본식 한자 발음으로 표기했다. 1923년 책의 경우 도판을 수록했으며 중국 명칭을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했다. 내용 측면에서는 1923년 책에 石恪이 牧谿보다 200여년 앞서 선종 미술을 창시했다는 설명이 추가되었으며 문단 편집이 일부 변경되었다.

17) Waley, Zen Buddhism, pp. 22-23. 밑줄 필자.

18) 1922년 책은 ‘참고문헌(bibliography)’, 1923년 책은 ‘서적(books)’이라는 제목 아래에 본문에서 인용한 문헌을 나열했다. Waley, Introduction, pp. 253-254. 특히 1923년 책에서 웨일리는 학술적 독자성과 정확성을 암시하기 위해 자신은 중국의 1차 사료 또는 이를 인용한 일본의 2차 문헌에서 대부분의 정보를 입수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1차 사료에서 牧谿의 <六枾圖>에 관한 기록이나 牧谿 회화의 선불교적 감상과 관련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1922년 책의 ‘bibliography’와 1923년 책의 ‘books’ 내용에는 일부 차이가 있는데 후술할 퀴멜과 그로세의 저서는 1922년 책에 소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분의 牧谿에 관한 내용은 사실상 차이가 없으며 발간 시기의 차이도 1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해당 부분은 같은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고 생각된다.

19) 佐賀東周, 「六通寺派の画家」, 『支那学』 1(1920), pp. 31-49.

20) 相見는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런던과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며 1913년에는 審美書院의 책임자였다. 審美書院의 특성상 相見는 天心의 선종 미술사 담론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審美書院은 일본 최초의 전집 도록인 『眞美大觀』을 간행했는데 이 작업은 모두 天心을 중심으로 진행된 近畿宝物調査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21) 相見香雨, 『群芳清玩』 2(東京: 藝海社, 1913), p. 2.

22) Otto Kümmel, Die Kunst Ostasiens (Berlin: B. Cassirer, 1921); Ernst Grosse, Die Ostasiatische Tuschmalerei (Berlin: B. Cassirer, 1922).

23) Grosse, 위의 책, pp. 22, 27, 31, 33-41.

24) 주 2 참조.

25) 이는 <六枾圖>보다 <栗圖>가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전통적 취향을 따른 결과이다. 그로세는 독일에서 일본 미술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어를 몰랐다고 한다. 그는 미술상 林忠正(1853-1906) 등 일본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며 유럽에서 활약하던 일본인들을 통해 일본 미술의 정보를 입수했다. 持井康孝, 「エルンスト·グロッセ: その家族及び東亞古美術調査収集行簡介」, 『金沢大学文学部論集 史学考古学地理学編』 20(2000), pp. 33-72. 이런 한계로 인해 오히려 그로세의 저술은 일본의 전통적인 견해를 매우 충실히 반영할 수 있었다.

26) 円相는 타일러 베넷(Tyler Barnett)과 같은 전문 작가가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대중매체나 광고에서 활용될 정도이다. 円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논의되는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애플(Apple) 본사 사옥인 애플 파크(Apple Park)의 원형 구조이다. 円相에 대해서는 Audrey Yoshiko Seo, Ensō: Zen Circles of Enlightenment (Boston: Weatherhill, 2007) 참조.

27) Laurence Sickman and Alexander Soper, The Art and Architectureof China (Harmondsworth: Penguin Books, 1955); Peter C. Swann, Chinese Paintings (New York: Universe Books, Inc., 1958).

28) Dietrich Seckel, “Mu-hsi: Sechs Kaki-Früchte. Interpretation eines Zen-Bildes,” Nachrichten der Gesellschaft für Naturund Völkerkunde Ostasiens 77(1955), pp. 44-55.

29) 國華社 編, 앞의 논문, p. 351.

30) 戸田禎佑 編, 『水墨美術大系』 3 牧谿·玉澗 (東京: 講談社, 1973), pp. 52-60; Nancy Wey, “Mu-ch’i and Zen Painting” (PhD diss., The University of Chicago, 1974), pp. 152-154; 鈴木敬, 『中国絵画史』 中之一 南宋·遼·金 (東京: 吉川弘文館, 1984), p. 216; 小川裕充, 「中国画家牧谿」, 五島美術館 編, 『牧谿: 憧憬の水墨画』(東京: 五 島美術館, 1996), pp. 95-111. 한편 長谷川等伯(1539-1610)의 『等伯画説』에는 牧谿의 手卷을 잘라 掛軸으로 만든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Xiaojin Wu, “Metamorphosis of Form and Meaning: Ink Bird-and-Flower Screens in Muromachi Japan” (PhD diss., Princeton University, 2011), p. 43 n 30. 小川는 작품이 전래되자마자 현재와 같은 형태로 분리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31) 牧谿의 花卉雜畫圖卷에 관한 선행연구는 주로 牧谿가 중국 화가에 미친 양식적 영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Cahill, “Continuations of Ch’an Ink Painting into Ming-Ch’ing and the Prevalence of Type Images,” Archives of Asian Art 50(1997/1998), pp. 17-41; Wu, 앞의 논문, pp. 41-50.

32) 대표적인 사례가 沈周(1427-1509)의 『寫生冊(1494)』이다.

33) 足利 가문의 수입 관행 전반에 관하여 이정은, 「아시카가의 문화적 권위와 『군다이칸소초키(君臺観左右帳記)』 제작의 경제적 의미」, 『미술사학』 36(2018), pp. 217-246.

34) 『蔭凉軒日錄』1488년 5월 8일 기사; 審美書院 編, 『東洋美術大觀』 3(審美書院, 1909), p. 215에서 재인용.

35) 谷信一, 「牧谿畵誌ー中世に於ける支那畵の鑑賞の一節」, 『美術硏究』 43(1935), p. 307. 牧谿의 花卉雜畫는 늦어도 1436년 이전 일본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蜷川親元(1433-1488)의 『親元日記(1465-1485)』 1436년 6월 18일 기사에는 牧谿의 <鷄犬子>라는 그림이 언급된다. 현전하는 花卉雜畫圖卷에도 야채나 과일뿐 아니라 새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이런 부분을 잘라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반까지 井上侯爵이 유사한 도상으로 추정되는 <狗子鷄>를 소장했던 것으로 확인된다(Fig. 15). 이 그림의 세로 길이는 34.8cm로 타이페이본(44.5cm)이나 베이징본(47.3cm)에서 여백을 잘라내면 비슷한 크기가 된다. 일본에 전해지는 牧谿 전칭의 掛物의 세로 길이 또한 대부분 20~40cm 사이에 해당한다. Wu는 牧谿 전칭의 <雙鳩圖>를 근거로 花卉雜畫卷이 1441년 이전 일본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주장했다. Wu, 앞의 논문, p. 44, Fig. 1.30. 그러나 이 그림의 높이는 84cm에 달하기 때문에 이를 직접적인 근거로 하여 花卉雜畫卷의 존재를 증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牧谿의 강아지 그림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닭 부분은 타이페이본의 후반부에 그려진 새와 유사한 형상이다. 기록상 일본에는 牧谿 전칭의 狗子圖가 다수 존재했다. 특히 필자는 <探幽縮圖>에서 狗子圖를 현재까지 네 점 확인했다(Fig. 16). 이들은 모두 李巖의 狗子圖와 동일한 도상이며 이 중 한 점은 牧谿의 인장이 찍혀 있다. 이 기록은 앞서 소개한 井上의 <狗子鷄>과 함께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에서 牧谿가 狗子로도 이름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후로는 狗子圖가 牧谿의 그림으로 전칭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모두 李巖의 전칭작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일본의 李巖畫 수용과도 관계되는 것으로 향후 보다 면밀한 검토가 요청된다.

36) 竹內順一, 「茶会記における牧谿画」, 五島美術館 編, 앞의 책, pp. 160-169의 표와 谷晃, 「研究資料: 茶会記に現れた絵画」, 『美術研究』 362(1995), p. 242. 四大茶会記 원문은 千宗室 編, 『茶道古典全集』(京都: 淡交社, 1977) 참조.

37) 筒井紘一, 「茶の湯の菓子ーその成立と展開」, 筒井紘一 編, 『茶道学大系』 4 懐石と菓子(京都: 淡交社, 1999), p. 303. 利休의 시대 이후로 懐石料理는 호화로운 유형과 소박한 유형으로 양분되어 양자가 모두 발달되었지만 이러한 변화가 果子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38) Eric Rath, Food and Fantasy in Early Modern Japa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0), pp. 52-84.

39) 熊倉功夫 編, 『利休大事典』(東京: 学習研究社, 1983), pp. 199-200, 240-247.

40) 四大茶会記에 기재된 利休의 茶會 및 『南方錄』에 기재된 茶會에서 果子로 밤이 사용된 사례는 총 150회에 이른다.

41) 掛物의 도상과 실제 섭취한 果子의 관련성은 16세기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六枾圖>와 <栗圖>의 소장자였던 津田宗及는 1571년 2월 24일 茶會에서 손님들과 이들 그림을 감상한 후 찐 밤과 감을 果子로 먹었다. 津田宗及, 「宗及茶湯日記自會期」, 千宗室 編, 앞의 책 8, pp. 115-204.

42) 熊倉功夫, 「江月宗玩と茶の湯」, 田中敦子 編, 『大徳寺龍光院: 国宝曜変天目と破草鞋』(京都: MIHO MUSEUM, 2019), pp. 152-153.

43) “初ヨリ床ニ栗枾ノ絵カカル牧溪筆エタ折ノクリ三ツ枾四ツ葉五ツエタサキハナシ上下ムラサキ中白地小文一文字クン色ノ小文.” 松屋久政, 「久政茶會記」, 千宗室 編, 앞의 책 9, p. 89. 宗及의 기록에도 동일한 도상의 曲庵 소장 栗枾 그림이 보이는데 이 그림은 月山이 그렸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그 독음은 牧谿와 동일하게 적혀있어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津田, 「宗及茶湯日記他會期」, 千宗室 編, 앞의 책 7, p. 240.

44) 특히 『圖繪寶鑑』의 牧谿의 악평 부분은 일본의 여러 책자에서도 재인용되었다. 雪舟는 이 기록을 인용하며 牧谿를 저평가했기까지 했다.

45) “(…)然余得觀一卷, 叢竹之杪, 止作瓦雀頭數十相聚, 㳫見側出, 而若見其全形者, 此大入意匠, 不似今人寫生, 但描依様 葫蘆而已.” 李日華, 『六研齋三筆』 卷三 (臺灣: 商務印書館, 1983).

46) “宋僧牧谿, 畵兼衆妙, 而尤長於花卉寫生. 觀畵史所載, 稱其點墨而成, 不假妝飾, 尚未足盡牧谿也. (…) 宜項墨林氏珍為甲品. 題跋讃歎, 若不容口. 蓋南渡而後, 高孝累朝, 篤重翰墨, 一時人物熙雍, 湖山引勝, 風氣興起, 即方外亦多名流, 負技爭長焉. 明時王酉室陸包山, 皆以花卉寫生為世所重, 今觀此卷, 二公倶寢食牧谿, 深得其意者. 至沈石田花鳥點染, 又能出新意於諸家町畦之外, 視此卷在離合之間, 而工緻差不逮矣(…)” 國立故宮中央博物院 編, 『故宮書畵錄 增訂本二』 卷四 (臺北: 國立故宮中央博物院中華叢書委員會, 1955), pp. 38-39.

47) “(…)性英爽,酷嗜酒,無寒暑風雨常醉,醉即熟寢,覺即朗吟.”

48) 이 기록은 일본에도 알려져 20세기 초반까지 ‘기이한 선승 화가’로서의 牧谿에 대한 환상을 심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田島志一 編, 앞의 책.

Fig. 1.
牧谿, <六枾圖>, Attributed to Muqi. Six Persimmons. Before 1543. Hanging scrolls; ink on paper. 36.0×38.0 cm, Ryōkō-in, Kyoto (In Tanaka Atsuko, ed., Daitoku-ji Ryōkō-in: k okuhō yōhentemoku to hasōai. Shiga: MIHO MUSEUM, 2019, Fig.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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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Current status of Fig. 1 in Ryōkō-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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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牧谿, <栗圖>, Attributed to Muqi. Chestnuts. Before 1543. Hanging scrolls; ink on paper. 35.0×33.0 cm, Ryōkō-in (In Tanaka, ed.,Daitoku-ji Ryōkō-in, Fig.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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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Current status of Fig. 3 in Ryōkō-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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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牧谿, <龍虎圖>, Attributed to Muqi. Tiger and Dragon. 1269. Hanging scrolls; ink on silk. Tiger, 171.9×94.0 cm; Dragon, 173.1×99.3 cm. Daitoku-ji, Kyoto (In Gotō Bijutsukan, ed., Mokkei: Shōkei no suibokuga. Tokyo: Gotō Bijutsukan, 1996, Fig.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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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牧谿, <觀音猿鶴図>, Muqi. Guanyin, Gibbons, and Crane. Southern Song dynasty, thirteenth century. Hanging scrolls; ink and light color on silk. Guanyin, 171.9×98.4 cm;Gibbons, 173.3×99.4 cm; Crane, 173.1×99.3 cm. Daitoku-ji (In Gotō Bijutsukan, ed., Mokkei, Fig.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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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Otto Kümmel. Die Kunst Ostasiens. Berlin: B. Cassirer, 1921, pp. 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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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Ernst Grosse. Die Ostasiatische Tuschmalerei. Berlin: B. Cassirer, 1922, pp.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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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仙厓義梵, <○△□>, Sengai Gibon. The Universe. 1823. Hanging scrolls; ink on paper. 28.4 × 48.1 cm. Idemitsu Museum, Tokyo (In Idemitsu Bijutsukan, ed., Dai Sengai ten: zen no kokoro, kokoni tsudou. Tokyo: Idemitsu Bijutsukan, 2016, Ch.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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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牧谿, <寫生卷>, Attributed to Muqi. Drawing from Life. 1265. Handscroll; ink on paper, 44.5×1017.1 cm. National Palace Museum, Taipei (https://www.npm.gov.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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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牧谿, <水墨寫生圖卷>, Attributed to Muqi. Drawing from Life in Ink Painting. 1269. Handscroll; ink on paper, 47.3×814.1 cm. The Palace Museum, Beijing (https://en.dpm.org.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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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狩野派, <栗·枾圖> 模本, Kanō School. Chestnuts and Persimmons, in Tōgakan 19. Edo period. Ink on paper. Tokyo National Museum (Gotō Bijutsukan, ed., Mokkei, Fig. 78,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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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3.
牧谿, <栗·枾圖>, Attributed to Muqi. Chestnuts and Persimmons. 33.0 ×28.6 cm. Private collection of Marquis Inoue Kaoru (In Hoshino Shaku, ed., Tōyō bijutsu kahōshū. Tokyo: Gahōsha, 1912, Fig.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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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4.
牧谿, <栗·枾圖>, Attributed to Muqi. Chestnuts and Persimmons. Ink on paper. The Jōtenkaku Museum, Shōkoku-ji, Kyoto (In Jōtenkaku Bijutsukan, ed., Onkoraisan: hyakkaryōran Shōkoku-ji bunkaken. Kyoto: Jōtenkaku Bijutsukan, 2019, Fig.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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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5.
牧谿, <狗子鷄>, Attributed to Muqi. Puppies and Chickens. 34.8×76.7 cm. Private collection of Marquis Inoue Kaoru (In Hoshino, ed., Tōyō bijutsu,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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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6.
狩野探幽, <探幽縮圖> 中 <狗子圖>>, Kanō Tan’yū, Puppies, in Tan’yū shukuzu gyūbakan, jyō 12, ge 20-22. Late seventeenth century. Ink on paper. The University Art Museum,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Konō Motoaki, “Shiryō shōkai: Tan’yū shukuzu Tōkyō geijutsu daigaku shiryōkanzō,” Bijutsushi ronsō 9(1993):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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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7.
狩野元信, <栗圖>, Kanō Motonobu. Chestnuts. After 1530s. Hanging scroll; ink on paper, 35.8 ×49.6 cm. The Ibaraki Prefectural Museum of History, Mito, Ibar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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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8.
狩野探幽, <探幽縮圖> 中 <栗圖>, Kanō Tan’yū, Chestnuts, in Tan’yū shukuzu. Late seventeenth century. Ink on paper. H: 28.4 cm. Tokyo National Museum (https://colbase.nich.g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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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六枾圖> 게재 전 『國華』의 牧谿 관련 문헌, Articles featuring Muqi in Kokka 1-492
通號 Vol 發行日 Date 題目 Title
87 1896-12-25 牧谿 Muqi [J: Mokkei]
112 1899-01-30 牧谿 Muqi
122 1900-02-24 牧谿 Muqi
177 1905-02-05 牧谿筆双鳩圖 A Pair of Doves
185 1905-10-01 大徳寺牧谿猿鶴圖 Gibbon and Crane in Daitoku-ji
190 1906-03-01 牧谿筆龍虎圖 Dragon and Tiger
209 1907-10-01 牧谿の傑作龍圖 Masterpiece Dragon
218 1908-07-01 牧谿筆叭哥鳥圖 Mynah Bird
233 1909-10-01 牧谿筆羅漢圖 Arahat
242 1910-07-01 傳牧谿筆水墨柳燕圖 Monochrome Willow and Swallow
265 1912-06-01 牧谿白衣観音圖 White-robed Avalokiteśvara
268 1912-09-01 牧谿筆虎圖 Tiger
291 1914-08-01 傳牧谿筆遠浦帰帆圖 Returning Sails Off Distant Shore
293 1914-10-01 傳牧谿筆蓮鷺圖 Lotus and Heron
410 1925-01-05 傳牧谿筆平沙落雁圖 Wild Geese Descending to Sandbar
425 1926-04-05 牧谿筆韋陀天竹猿圖 Skanda, Bamboo, and Gibbon
481 1930-12-05 傳牧谿春江渡舟圖 Boating on Spring River
486 1931-05-05 帝室御物傳牧谿筆蘿蔔圖 Radish in Imperial Collection
489 1931-08-05 帝室御物傳牧谿蕪菁圖 Turnip in Imperial Collection
<Table 2>
15세기 일본의 将軍 소장품 중 牧谿 전칭작, Paintings attributed to Muqi among Ashikaga shogunate collection in the fifteenth century
道釋人物 Taoist and Buddhist figures
獸 Beasts
禽鳥 Birds
山水 Landscape 不明 Unknown Sum
Title 觀音 Kannon (…) 猿 Gibbon 虎 Tiger 龍 Dragon 菓子猫 Fruits, Nuts, and Cats 雁 Geese (…)
Number 10 (…) 17 5 4 1 12 (…) 2 18
Sum 32 27 25 2 18 104

(Edited from the table in Tani Shinichi. “Mokkei gashi: Chūsei ni okeru shinaga no kanshō no issetsu.” Bijutsu kenkyū 43 (1935): 1-11.)

<Table 3>
16세기 일본의 四大茶会記에 기록된 牧谿의 果子圖, Kashi paintings attributed to Muqi in the sixteenth-century Yondai chakaiki (The Four Documents on Tea Ceremonies)
No Date Subject Source
1 1533-02-20 川苣 Veronica undulata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2 1544-02-21 芙蓉 hibiscus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3 1551-11-18 芙蓉 hibiscus 「宗達他会記」 Sōtatsu takaiki
4 1555-03-12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5 1556-03-19 菜 greens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6 1558-11-13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7 1558-05-04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8 1558-06-13 芙蓉 hibiscus 「宗達他会記」 Sōtatsu takaiki
9 1561-10-18 石榴 pomegranate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10 1561-11-22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11 1561-02-24 瓜 gourd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12 1561-04-08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13 1561-07-17 石榴 pomegranate 「久重茶会記」 Hisamasa chakaiki
14 1561-07-25 瓜 gourd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15 1562-02-15 瓜 gourd 「宗達他会記」 Sōtatsu takaiki
16 1563-11-04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17 1563-12-18 芙蓉 hibiscus 「宗達他会記」 Sōtatsu takaiki
18 1563-02-08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19 1564-11-02 烏芋 water chestnut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20 1564-12-17 大根 white radish 「宗達他会記」 Sōtatsu takaiki
21 1564-02-13 菜 greens 「宗達他会記」 Sōtatsu takaiki
22 1566-12-07 菜 greens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23 1566-12-07 菜 greens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24 1567-12-29 芙蓉 hibiscus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25 1567-12-29 芙蓉 hibiscus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26 1567-02-29 瓜 gourd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27 1571-11-21 川苣 Veronica undulata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28 1571-02-24 栗枾 chestnut and persimmon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29 1571-02-24 栗枾 chestnut and persimmon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30 1573-03-25 石榴 pomegranate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31 1576-03-22 栗枾 chestnut and persimmon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32 1577-12-12 石榴 pomegranate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33 1579-02-10 大根 white radish 「宗及他会記」 Sōgyū takaiki
34 1579-04-10 栗枾 chestnut and persimmon 「久政茶会記」 Hisamasa chakaiki
<Table 4>
宋元代에 기록된 목계의 그림, Muqi’s paintings in Song and Yuan texts
作成者 Author 題目 Title 出典 Source
虚堂智愚 Xutang Zhiyu (1185-1269) 「常牧溪猿圖」 Gibbon 『虚堂和尚語錄』 Xutang heshang yulu
道璨 Dao Can (act. 13th century) 「錦屏山記」 Jinping Mountains 『柳塘外集』 Liutang Waiji
徐集孫 Xu Jisun (act. late-13th century) 「牧溪上人, 為作戱墨, 因賦二首」(鷺, 猿) Heron and Gibbon 『江湖小集』 16 Jianghu xiaoji 16
馬臻 Ma Zhen (b. 1254) 「題常牧溪山水卷」 Landscape Handscroll 『柳塘外集』 Xiawai shiji 9
張昱 Zhang Yu (d. 1346) 「題牧溪畵飛鳴二雁」 Two Geese Flying and Crying 『柳塘外集』 Kexian laoren ji 1
宋濂 Song Lian (1310-1381) 「題長牧溪五燕圖」 Five Swallows 『柳塘外集』 Wenxian ji 32
劉基 Liu Ji (1311-1375) 「爲丘彦良題牧谿和尙千鴈圖」 Thousand Geese 『柳塘外集』 Chengyibo wenji 4
「爲戴起之題猿鳥圖牧谿書」 Gibbon and Bird 『柳塘外集』 Chengyibo wenji 11
劉嵩 Liu Song (1321-1381) 「題龍」 Dragon 『柳塘外集』 Chaweng shiji 7
岑安卿 Cen Anqing (1286-1355) 「百鴈圖」 Hundred Geese 『柳塘外集』 Kaolao shanren shiji 1
宋僖 Song Xi (act. mid-14th century) 「題牧溪所作阿羅漢圖」 Arahat 『柳塘外集』 Yong’an ji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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