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Art Hist > Volume 323; 2024 >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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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우방·김승희, 『甘露幀』 (예경, 1995); 이경화, 「조선시대 감로탱화 하단화 풍속장면 고찰」, 『미술사학연구』 220(1998), pp. 79-107; 윤은희, 「감로왕도 도상의 형성 문제와 16, 17세기 감로왕도 연구: 수륙재 의식집과 관련하여」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3); 박은경, 「일본 소재 조선 16세기 수륙회 불화, 甘露幀」, 『조선시대 감로탱-감로』 (통도사성보박물관, 2005); 연제영, 「조선시대 감로탱화 하단장면과 사회상의 상관성」, 『한국문화』 49(2010); 김정희, 「감로도 도상의 기원과 전개-연구 현황과 쟁점을 중심으로」, 『강좌미술사』 47 (2016), pp. 143-181; 박정원, 「조선시대 감로도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20).
2) 정해은, 「조선시대 여성사연구 동향과 전망 2007~2013」, 『여성과 역사』 19 (2013), pp. 25-65; 정해은, 「조선시대 여성사 연구에 대한 몇 가지 질문-2000년 이후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105 (2023), pp. 143-176.
3) 『17세기 여성생활사 자료집』 1~4책 (보고사, 2006); 『18세기 여성생활사 자료집』 1~8책 (보고사, 2010); 『19세기·20세기 초 여성생활사 자료집』 1~9책 (보고사, 2013).
4) 정우택, 「조선왕조시대 전기 궁정화풍 불화의 연구」, 『미술사학』 13 (1999), pp. 51-71; 김정희, 「문정왕후의 중흥불사와 16세기의 왕실 발원 불화」, 『미술사학연구』 231 (2001), pp. 5-39; 강희정, 「조선 전기 불교와 여성의 역할-불교미술의 조성기를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313 (2002), pp. 269-297; 박은경, 「조선 전기 불화의 제 양상」, 『조선 전기 불화 연구』 (시공아트, 2008); 유경희, 「조선 말기 왕실발원 불화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5); 박아연, 「1586년 德嬪 尹氏를 위한 불사, 문경 봉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연구」, 『강좌미술사』 60 (2023), pp. 197-222; 왕의 어머니, 부인, 딸이라는 신분을 기반으로 불사를 후원하고 불교미술 수준을 끌어올린 의미에 대해서는 김정희, 『조선왕실의 불교미술』 (세창출판사, 2020).
5) 여성 후원자라는 측면에서 나아가 일본 불교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여성을 다룬 전시는 〈女性と佛敎〉 (奈良國立博物館, 2003); 동아시아 관점에서 조망한 전시로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호암미술관, 2024).
6) 비구니가 비구에게 지켜야 하는 공경법을 뜻하는 尼八敬戒는 최초로 출가한 비구니이자 붓다의 養母였던 마하파자파티로부터 유래한다.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면서 제시한 조건은 100년 된 비구니라고 해도 바로 그날 자격을 얻은 비구에게 먼저 합장하고 예를 올려야하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수창, 「비구니팔경법에 대한 고찰」, 『불교학연구』 15 (2006), pp. 187-222.
8) 황인규, 「조선 전기 정업원과 비구니 주지」, 『한국불교학』 51 (2008), pp. 103-130; 민덕식, 「조선시대의 정업원」, 『문학사학철학』 53 (2018), pp. 49-84.
9) 한효정, 「17세기 전후 양반가 부인의 경제활동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7); 한효정, 「공인문기를 통해 본 조선 후기 여성의 상업 활동과 소유의식」, 『조선시대사학보』 69 (2014); 김경미, 「조선후기 여성의 노동과 경제활동: 18-19세기 양반여성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28-4 (2012); 정창권, 「추사 한글편지에 나타난 남성들의 살림참여 양상」, 『국어문학』 70 (2019).
10)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고려 아미타불상의 발원문, 1302년 창녕군부인 장씨 발원문에서 조선 전기 흑석사 불상에 이르기까지 여성 발원자의 서원에서 이러한 전통은 유지되었다. 특히 ‘정토에서 태어나기를 기원하나, 정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인간의 생을 잃지 않고 중국의 바른 집안에서 태어나되 남자의 몸을 얻게 해주소서’라며 남자의 몸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타불의 48대 서원 가운데 하나였다. 아미타불의 자비력을 받들어 임종시 극락왕생하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다시 세속으로 돌아와 미혹한 중생을 제도하길 서원하는 방식은 40권본 『화엄경』의 「보현행원품」 내용과 일치한다. 정은우·신은제, 『고려의 성물 불복장』 (경인문화사, 2017).
11) 사갈라 용왕의 딸인 여덟 살의 용녀는 문수보살이 설법하는 법화경을 듣고 깨달아 부처가 되는데,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사리불존자를 반박하면서 보배 구슬을 부처님께 바친 후 남자의 몸으로 변해 성불했다. 김영미, 「고려 말 여신성불론과 그 영향」, 『한국사상사학』 41 (2012), pp. 165-200.
13)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을 다룬 『佛說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 역시 감로도의 조성 연원 중 하나다. 아난이 자신의 목숨이 다해 곧 아귀도에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묻게 된다. 강소연, 「대승보살로서 아귀의 조형적 표현과 상징」,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67 (2016), pp. 121-154.
16) 『佛祖統紀』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六朝시대부터 설행되어 점차 민속화된 행사로 정착되었다. 일본 승려 圓仁(794~864)의 『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도 음력 7월 15일의 百中에 우란분재가 정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많은 기록에서 우란분재에 先亡父母를 위해 『목련경』을 강하였다.
18) 〈熊野觀心十界圖〉는 구마노[熊野] 비구니가 포교에 사용한 불화로, 그림을 두고 도해된 내용을 설명해주는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西山克, 「熊野歓心十界図とはなにか-朝鮮「甘露幀」の受容をめぐる精神史」, 『日本史硏究』 551 (2008), pp. 30-47; 정명희, 「조선시대 불교의식의 삼단 의례와 불화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3); 정명희, 「1653년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을 중심으로 살펴본 조선시대 야외의식과 괘불」, 『동아시아불교문화』 40 (2019), pp. 105-131; 김자현, 「熊野觀心十界圖의 도상과 연원에 관한 검토」, 『동양문화연구』 34 (2021), pp. 233-263.
20) ‘歲在壬子之春, 大設無遮之會, 僧徒雲合, 濱於漢水, 經日浹旬, 窮奢極侈, 幡蓋蔽日, 鍾鼓動地, 畫天堂地獄之苦樂, 示死生禍福之報應. 於是無論貴賤男女, 率皆企聳觀聽, 都市爲之一空, 關津爲之不通’,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64권, 세종 16년(1434. 4.11) 기사.
22) 탁효정, 「조선 전기 왕실불교의 전개양상과 특징」, 『불교와 사회』 10 (2018), pp. 185-219; 불경 번역에 참여한 여성의 사례와 그 의미를 다룬 논문은 전영숙, 「조선 초 불경언해와 불자여성의 참여」, 『선문화연구』 33 (2022), pp. 7-43.
23) ‘親定口訣 貞嬪韓氏 御前書 口訣社堂惠瓊道然戒淵信志道成覺珠 淑儀朴氏書’, 『金剛般若波羅密經(諺解)』, 天順八年(1464)春二月日孝寧大君臣補奉敎謹跋…天順八年春二月有日判敎宗事興德寺住持都大師臣海超奉敎勤跋…金守溫奉敎謹跋天順八年二月一日…韓繼禧奉敎謹跋天順六年任午(1462)九月…盧思愼奉敎謹跋(불교아카이브 https://kabc.dongguk.edu/). 세조의 구결을 기록한 정빈 한씨(1437~1504)는 昭惠王后 韓氏, 즉 후의 仁粹大妃로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덕종)의 세자빈이자 성종의 모후이다. 그녀는 사대부 여인들의 수신서이자 당시 여성교육의 기본서였던 『內訓』의 편찬자이자, 불교옹호론자였다.
24) 尙宮 조두대는 세종의 5남 廣平大君의 家婢 출신으로, 한문 뿐 아니라 이두와 梵語에도 뛰어났다. 그로 인해 세조에게 발탁되어 입궁한 후 예종, 성종, 연산군에 이르는 40년을 궁에 살며 『석보상절』, 『월인석보』 인출이나 『능엄경언해』, 『내훈』 등 언해본 발간에 기여하며 각종 문건을 書寫했다. 세조가 승하한 후 『내훈』의 발문을 쓸 때는 종7품 典言에서 궁녀로서의 최고품계인 정5품 尙儀에 올랐다. 한희숙, 「조선 초 궁녀 조두대의 생애와 女謁」, 『한국사학보』 87 (2022), pp. 145-175.
25) 박은경, 「조선 전기 불화의 제 양상」, 『조선 전기 불화 연구』 (시공아트, 2008), pp. 294-300; 최엽, 「성주사 감로탱」, 『감로: 조선시대 감로탱』 (통도사성보박물관, 2005), pp. 100-109; 『치유의 시간, 부처를 만나다』 (부산박물관 특별전, 2022).
26) 탁효정, 「조선 전기 정업원의 성격과 역대 주지-조선시대 정업원의 운영실태1」, 『여성과 역사』 221 (2015); 탁효정, 「15-16세기 정업원의 운영실태-새롭게 발견된 단종비 정순왕후의 고문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82 (2017); 탁효정, 「조선후기 경기 서북부 일대 비구니 사찰과 비구니의 활동-『전등본말사지』에 수록된 비구니 명단을 중심으로」, 『한국불교학』 103 (2022), pp. 133-165.
27) ‘一心奉請 捨家僧行 棄俗離童 或抛父母而遠去雲遊 或別親知而參禪問道 諸方論議 到處尋師 挑囊負鉢而拄杖驅馳 涉水登山而徃來辛苦 致使燒身煉臂 爲法忘軀 不遇聖人 徒勞喪命 一切徃古 鍊行僧尼等衆 惟願承三寶力仗秘密語 今日今時 來臨法會 受沾供養’, 「僧魂請」, 『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
30) 김정희, 「감로도 도상의 기원과 전개-연구 현황과 쟁점을 중심으로」, 『강좌미술사』 47 (2016), pp. 143-181; 박정원, 「한국 개인소장 조선전기 수륙회도 연구」, 『동악미술사학』 30 (2021), pp. 35-63.
31) 현종은 사찰 노비 출신의 비구니가 身役 면제를 청하자, 백성의 출가로 각종 역의 수취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비구니를 서울 밖으로 내쫓고 자수원과 인수원을 철폐하고 사찰 재산을 몰수하고 노비를 뺏는 일련의 정책을 시행했다. 처능은 전국의 승려를 대표해 「諫廢釋敎疏」를 지어 불교에 대한 억압을 시정해줄 것과 폐불의 부당성을 언급했다. 자수사와 인수사를 중심으로 한 비구니 중심의 내원당과 봉은사와 봉선사를 중심으로 한 비구 중심의 외원당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기운, 「백곡 처능의 간폐석교소와 왕실 불교사원의 철폐」, 『동아시아불교문화』 59 (2023), pp. 91-117.
32) 서울역사박물관의 〈한양 여성, 문 밖을 나서다-일하는 여성들〉(2023)은 도성 안팎에서 일하는 다양한 신분 계층의 여성들을 다룬 전시로, 전시의 기반이 된 학술 성과는 『한양의 여성 공간』 (서울역사박물관, 2021).
33) 공의왕대비가 대시주자가 되었고 서원군부인이 협력한 청평사 수륙재의 경우에도 여러 상궁, 시녀들이 잇따라 백미를 보내고 귀중한 패물을 내거나 錦丹의 비단 휘장이나 火龍의 行旗를 수놓는데 참여했다. 나암 보우, 「淸平寺保上春秋水陸齋疏」, 『懶庵雜著』 [『한글대장경』, 동국대학교 역경원]; 김정희, 「文定王后의 中興佛事와 16世紀의 王室發願 佛畫」, 『미술사학연구』 231 (2001), pp. 5-39; 신광희, 「朝鮮 前期 明宗代의 社會變動과 佛畫」, 『미술사학』 23 (2009), pp. 321-346; 김상현, 「문정왕후의 불교중흥정책」, 『한국불교학』 56 (2010), pp. 25-52.
36) 화순옹주는 1758년 남편 김한신이 세상을 떠나자 곡기를 끊다가 세상을 떠나는데, 왕의 딸 중 烈女가 된 유일한 인물이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열녀는 유교사회의 이상적인 여성관이었다. 『삼강핼실도』가 보급된 이래, 조선 후기에 이르면 지역 『邑誌』에 『효행』, 「열녀」 항목이 들어가고 18~19세기에는 평민이나 천민 중에도 수록되는 비중이 늘었다.
38) 정명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조선시대 괘불의 문화적 가치」, 『대형불화 정밀조사 사업 학술 심포지엄: 괘불을 보는 관점과 과제』 (문화재청·성보문화재연구원, 2021), pp. 27-47.
The Introduction of Bat Design in late Chosŏn and its Use by the Royal Court2023 June;3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