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Art Hist > Volume 316; 2022 > Article |
|
1) 惲壽平에 관한 홍콩과 대만의 연구로는 張臨生, 「淸初畫家惲壽平」, 『古宮季刊』 10(1975); 傳抱石·伍稼靑 等 著, 『惲南田參考資料彙編』 (香港: 中山圖書公司, 1974)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惲新安·顧信, 「惲壽平的家世, 生平事跡及其著述, 石刻考略」, 『南京藝術學院學報』 1981年 1期; 楊臣彬, 「惲壽平早年事跡及年譜簡編」, 『古宮季刊』 1983年 3期; 同著, 『明淸中國畫大師硏究叢書 - 惲壽平』 (長春: 吉林美術出版社, 1996); 蔡星儀, 『惲壽平 硏究』(天津人民藝術出版社, 2000); 朱萬章, 「惲壽平的家族傳人考」, 『中國國家博物館館刊』 2011年 7期; 蔡星儀 主編, 『中國名畫家全集 - 惲壽平』 (天津: 天津人民美術出版社, 2015); 張玉霞, 「隱逸特性在惲壽平沒骨花鳥畫中的體現」, 『常州大學學報』 12(2015); 同著, 「諢壽平字號寓意考辯」, 『美術學報』 2017年 3期; 賈田雪, 「絢爛之極 仍歸自然 - 惲壽平沒骨花卉的藝術特色研究」 (中央美術學院 碩士學位 論文, 2019) 등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 1983년 惲壽平 탄신 350주년을 맞이하여 常州市에서 惲壽平記念館을 건립하고, 惲壽平의 묘역을 정비하였다. 대만과 중국 내에서 열린 惲壽平에 대한 전시는 소장품전이나 화조화전 등과 같이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출품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최근에 개최된 전시는 中國美術館의 <甌香傳逸韻 - 中國美術館, 南京博物院藏常州畫派畫家作品展> (2021)으로, 惲壽平과 그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3) 惲壽平에 관한 국내의 연구로는 이지희, 「惲壽平 硏究」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6)를 시작으로 정윤희, 「남전 惲壽平의 繪畫硏究」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4); 손홍랑, 「중국 淸代 花鳥畫 연구」(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0); 백윤경, 「淸代 남전 惲壽平의 花鳥畫 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가 있다. 惲壽平의 작품분석은 대부분 宋~明代까지 화가들의 그림을 모본으로 한 작품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시기별로 나타나는 惲壽平 花卉畫의 특징을 논하고자 하였다. 惲壽平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조선시대 화가들에 관한 연구로는 조보민, 「조선말기 淡彩花卉畫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2); 고연희, 「申緯의 회화관과 19세기 회화」, 『韓國學論集』 37(2003); 이은하, 「朝鮮時代 花鳥畫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고연희, 「申緯의 감각과 申命衍의 色彩」, 『한국한문학연구』 75(2019); 배진경, 「애춘 신명연(1809~1886)의 화훼화 연구」, 『미술사학보』 53(2019) 등이 있다.
4) 현재까지 밝혀진 惲壽平의 號는 대략 30가지 정도이다. 그 중 南田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본인 스스로도 가장 즐겨 사용하였다. 臺北故宮博物院이 소장한 1685년 作 《寫生圖冊》 第8葉 <銀杏栗房圖>의 제발에 따르면 南田은 惲壽平이 가꾸던 정원의 이름이라 한다.
6) 朱慧深, 「再記南田少年時事-讀 『賴古齋文集』」, 『惲南田參考資料彙編』 (香港: 中山圖書公司, 1974), p. 53; 惲壽平의 『甌香館集』에는 천태산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며 쓴 글이 있다. 그는 당시 천태산 곳곳을 다니며 본 경치에 대해 시와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평하였다. 惲壽平, 「甌香館集補遺」, 『甌香館集』(杭州: 西泠印社出版社, 2012), p. 146.
8) “香山翁雲; 北苑禿鋒, 余甚畏之. 既而雄雞對舞, 雙瞳正照, 如有所入. …… 香山翁蓋於北苑三折肱矣, 但用筆全爲雄勁, 未免昔人筆過傷韻之譏,” 惲壽平, 『甌香館集』 卷11(杭州: 西泠印社出版社, 2012), p. 251.
11) “憶童年隨先君子謁遜庵惲先生, 正叔侍側. 時正叔 …… 名格, 字惟大. 辛醜冬, …… 爾時更字正叔, 款書壽平, 簡劄原名格, 取‘天壽平格’義也.” 張玉霞, 앞의 논문, p. 28.
12) 蔡星儀 主編, 앞의 책, p. 14. 惲壽平이 杭州의 東園高雲에서 머무른 시기는 1664년, 1668년, 1673년, 1675년 등으로 확인된다. 惲壽平은 1670년대 중반까지 여러 작품에 ‘東園’과 관련된 號를 적었는데, 이는 그가 東園高雲에 다녔던 시기와 유사하다.
23) “在杭州已覓得好地, 有兩處, 地價俱已在此設法, 幸有李且翁爲我承當, 其價須百金之外, 全要在此著力應酬各處筆墨, 方可就緒. 所喜人情甚好, 想慕者多, 急急做去, 定能成就. 只恨眼下竟無幫手, 自身日日病出, 早晚在此服藥, 諸事酬應甚難, …… 打點二月初起身來杭.” 楊臣彬, 위의 책, p. 32.
24) 현재 惲壽平의 墓는 常州市 武進區에 있으며, 부친 惲日初의 墓와 나란히 자리해 있다. 1983년 惲壽平 탄신 350주년을 맞이하여 묘역을 단장하면서 墓碑도 다시 세웠는데, 당시 常州書畫院의 초대 명예원장이었던 劉海粟(1896~1994)이 지은 「重修惲南田墓記」가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惲南田, 名格, 字壽平, 一字正叔, 號南田, 又號白雲外史. 武進上店人. 明崇幀六年生, 卒於清康熙二十九年, 終年58歲. 南田詩書畫時譽三絕, 其沒骨花卉清麗雅逸, 師心獨見. 山水畫力遒韻雅, 超邁絕倫, 世稱惲派, 海內親之. 癸亥春爲紀念惲南田誕生350周年, 設紀念館於馬杭, 重修墓宇, 緬懷先賢, 激勵後者, 愛以志之.”
25) 林健, 「試談宋代至明初毗陵草蟲畫及在東亞的影響」, 『榮寶齋』 (2013年 11期), pp. 110-111; 楊衛華·陳淑君, 「常州畫派草蟲畫發展研究」, 『大衆文藝』 (2020年 9期), p. 145.
26) 僧居寧, …… 妙工草蟲, 其名藉甚, 嘗見水墨草蟲, …… 題云, “居寧醉筆, 雖傷大而失眞, 然則筆力勁俊, 可謂稀奇.” …… 好半者每得一扇, 自爲珍物. 곽약허 저, 박은화 옮김, 『도화견문지』 (시공아트, 2005), p. 425.
28) Chung Saehyang P, “An Introduction to the Changzhou School of Painting 1,” Oriental art 31, no. 2(1985), p. 150.
30) Chung Saehyang P, “An Introduction to the Changzhou School of Painting 2,” Oriental art 31, no. 3(1985), p. 293.
31) 당시 일본에서는 常州에서 건너온 화려한 색감의 花卉草蟲畫를 紅白川이라 불렸으며, 이는 이러한 작품을 그리는 常州의 화가들을 통칭하기도 한다. 島田 修二郎, 「呂敬甫の草虫図―常州草虫画について―」, 『美術研究』 150(1948), p. 187.
33) 孫隆, 이후에 등장한 惲壽平은 당대 화훼화가들이 대부분 黃筌의 화풍이라 불리는 鉤勒을 따르고 있으며, 徐熙의 화풍은 전해진 바가 없어 새롭게 연구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는 1671년 작 <紅蓮綠藻圖> (Fig. 5)와 1677년 작 《花卉圖冊》 第11葉 (Fig. 10)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34) “余與唐匹士研思寫生, 每論黃荃過於工麗, 趙昌未脫刻畫, 徐熙無近轍可得, 殆難取則, 惟當精求沒骨. 酌論古今, 參之造化, 以爲損益. 匹士工畫蓮, 余雜拈卉草, 壹本斯旨. 觀此圖, 可知余兩人宗尚, 庶幾有合於先匠也. 取證石老, 辛指以繩墨.”
35) “傳稱西蜀黃筌畫兼眾體之妙, 名走一時. 而江南徐熙後出, 作水墨畫, 神氣若湧, 別有生意. ……” 王安莉, 「南北宗論的形成, 1537~1610」 (上海師範大學 博士學位 論文, 2013), p. 103.
37) “牡丹最易近俗, 殆難下筆. 如近世工徒, 塗紅抹綠, 雖千花萬蘂, 總一形勢, 都無神明. 惟北宋徐熙父子, 趙昌王友之倫, 創意既新, 變態斯備, 其賦色極妍, 氣韻極厚. 蓋能不守陳規, 全師造化, 故稱傳神. 觀南田此本, 妍精沒骨, 得其變態, 真可上追北宋諸賢, 不僅淩跨有明陳陸數子已也. 壬子十月既望, 劍門王翬書.”
40) “昔滕昌祐常於所居多種竹石杞菊, 以資畫趣. 所作折枝花果, 並擬諸生. 余亦將灌花南田, 玩樂苔草, 抽毫研色, 以吟春風. 信造化之在我矣.” 惲壽平, 『甌香館集』 卷11(杭州: 西泠印社出版社, 2012), p. 248.
41) “寫生有二途; 勾花、 範葉、 細染、 細開, 黃筌神矣. 不用筆墨, 全以五彩染成, 謂之沒骨, 徐崇嗣獨稱入聖. 後世寫生家稍能操觚者, 悉祖逑黃法, …… 而徐崇嗣沒骨一宗無聞焉. 蓋不用勾勒, …… 故研精其法者鮮也. …… 寫生之有沒骨, 猶音樂之有鍾呂, 衣裳之有黼黻, …… 真繪事之淵泉也. 因斟酌今古, 而定宗於沒骨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