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Art Hist > Volume 316; 2022 >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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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쪼음입사 관련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설혜강, 「조선시대 포목상감 문양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同著, 「조선시대 포목상감 제작기법에 관하여」, 『역사와 실학』 20(2000); 이선진, 「조선후기 철제입사공예품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同著, 「조선후기 철제입사공예품 연구」, 『동악미술사학』 17(2015); 박수지, 「쪼음입사의 기원 고찰」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김세린, 「의궤를 통해 본 숙종~영조 연간(1674~1776) 상존호도감 보록 철제입사자물쇠의 시문기술과 금속재료」, 『한국문화연구』 40(2021) 등이 있다. 조선시대 입사장 관련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김선정, 「조선시대 은입사기법의 현대적 전승에 관한 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학위논문, 2015); 김세린, 「조선시대 입사장의 역할과 작업범주의 재해석」, 『무형유산』 3(2017); 김세린, 「조선시대 관영수공업에서 입사장의 직무유형과 역할」, 『문화재』 54-2(2021) 등이 있다.
2) 한국 전 시대의 입사기법에 대해 아우른 성과는 다음과 같다. 김선정·변지선, 『입사장』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08); 최응천, 『한눈에 보는 입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16) 등이 있다. 또 조선시대 기종 및 문양 등의 연구 주제 내에서 시문기법 중 하나로 입사를 다룬 연구는 다음과 같다. 김창균, 「한국청동은입사향완의 연구」(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同著, 「韓國靑銅銀入絲香垸의 硏究」, 『불교미술』 9(1988); 이용진,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태백산 부석사명 철제은입사향완>」, 『불교미술』 18(2007); 同著, 「한국 불교향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김세린, 「조선 후기 연초문화와 철제입사담배합의 양상」, 『미술사논단』 49(2019) 등이 있다.
3) “大明洪武三十年丁丑 朝鮮國開國祖聖朝 中宮神德王后 本鄕晋陽大都護府裨補禪刹靑谷寺 寶光殿香 敬造靑谷重刱比丘尙聰 全爲百分常住僧堂所大藏印 成商轉法輪廣度衆生 同願駕 洛府院君金師幸贊成事金溱入絲金信剛靑銅夫金”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내용과 김신강(金信剛)이라는 인물이 입사를 담당했으며, 청동으로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다.
5) 현재 조선 후기 조총 등과 같은 무기 중 화기류에 이를 상징하기 위한 문자인 현(玄)을 끼움입사로 시문한 유물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철에도 입사의 세부기법 중 끼움입사를 적용한 것은 균일한 기벽 두께와 정밀한 총포 구경 및 경도 확보를 위함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표면 정질이 많은 쪼음입사의 공정을 생각하면 단편적인 이유가 추론되지만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6) 『각사등록』은 금제를 취하기 전 금제의 필요성을 논하기 위해 당시 담뱃대의 사치풍조를 논하며 금제를 건의하는데 여기에 오동이 포함되었다. 『各司謄錄』 統制營關牒, 고종10년(1873) 8월 초6일, “煙臺一種言之, 金雕銀飾, 爭相奇巧 … 以後煙臺之金銀烏銅雕飾自, 先者産各處, 而一切通禁…” 그리고 실제 8월 21일 금제를 취했다. 『各司謄錄』 統制營關牒, 고종10년(1873) 8월 21일. “煙臺之金銀烏銅雕飾者, 一切通禁.…”.
7) “…入絲匠徐勉造…” <지정28년명 향완> (표훈사, 1368). 이 외에도 고려시대에는 청동장인이 만들었다거나(지정6년 상원사명 향완, 1364), 누공(縷工, 지정12년 용장선사명 향완, 1352), 누수(縷手, 지정4년명 중흥사 향완, 1344) 등 입사를 다룬 장인을 지칭한 명칭이 명문에 등장하며, 당대의 기법명이 확인되는 사례도 있다.
8) 『經國大典』 工典; 『大典續錄』 工曹 工匠條 (1491); 『典錄通考』 工匠條, 續錄, 工曹, (1706); 『大典通編』 工典 京工匠條 本曹 (1785); 『大典會通』 公典 京工匠條, 京工匠定額, 尙衣院(1865)
9) 김세린, 「조선시대 금속공예 입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pp. 42-89. 현전하는 17-20세기 초 의궤 중 입사가 활용된 의례 대부분에서 확인되기에 입사장에게 지급된 끼움, 쪼음입사 관련 재료와 도구에 대한 근거 사료는 방대하다.
10) 사례로 18세기 경종, 영조대 사장 최창업(崔昌業)은 입사장, 쇄약장으로 차출된 바 있다. 최창업의 전문 분야에 대한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특기를 알 수는 없으나 최창업의 사례는 금속을 다루는 장인 중 입사기술을 지니고 있어 이를 포괄해 작업한 장인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최창업이 참여한 공역은 다음과 같다. 『肅宗國葬都監儀軌』 (1720, 入絲匠), 『景宗國葬都監儀軌』 (1725, 入絲匠), 『宣懿王后國葬都監儀軌』 (1731, 入絲匠), 『莊祖世子愛冊時冊禮都監儀軌』 (1736, 鎖鑰匠). 조선시대 장인 관련 선행 연구 성과에 따르면 왕실 공역은 장인의 신상과 특기 등이 정리된 성책(成册)을 마련해 공역의 특성과 장인의 기술에 맞춰 장색을 분업 했었던 것이 파악된다. 장경희, 「조선시대 철물 제작 장인 연구」, 『한국공예논총』 17-1(2014), p. 58. 따라서 사장, 관장을 막론하고 금속을 다루는 사장 중 입사 기술을 갖추고 있다면 도감의 상황에 따라 입사장이나 보유 기술에 의거해 다른 장색의 금속 장인으로 배속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1) 여러 사례 중 의궤를 통해 1621~1649년까지 활동이 확인되는 상의원 소속 입사장 안인남(安仁男: 생몰년 미상)에 대해 살펴보면 9개의 공역에 참여했으며 기본적으로 상의원 소속 입사장이지만 공역에서 입사장은 물론 조각장(雕刻匠), 조각장 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안인남이 참여한 공역 및 장색이 기록된 의궤는 다음과 같다. 『光海朝尊崇都監儀軌』 (1620, 入絲匠), 『昭顯世子嘉禮都監儀軌』(1627, 入絲匠), 『元宗禮葬都監儀軌』 (1627, 彫刻匠), 『仁穆王后山陵都監儀軌』 (1632, 彫刻匠), 『仁祖壯烈后嘉禮都監儀軌』 (1638, 雕刻匠), 『昭顯世子禮葬都監儀軌』(1645, 入絲匠), 『孝宗王世子及嬪宮冊禮都監儀軌』 (1645, 入絲匠), 『昭顯世子廟號都監儀軌』 (1645, 大桴石所 彫刻匠邊首), 『仁祖長陵山陵都監儀軌』 (1649, 大桴石所 彫刻匠邊首).
14) 일성정시의는 낮에 태양 뿐 아니라 밤에는 북극을 중심으로 행성이 규칙적으로 일주 운동한다는 사실을 적용해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북극을 향하는 정극환을 중심으로 가장 안쪽에는 성구백각환, 가운데는 일구백각환, 바깥쪽에는 주천도분환이 있다. 일구백각환과 성구백각환에는 12시와 100각 눈금이 새겨져 있다. 주천도분환에는 365.25도인 주천도수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에 위치한 일구백각환은 고정되어 있고, 나머지 2개의 환은 각각 십자받침 위에서 회전한다. 출처 - 한국천문학회, 위키천문백과사전: http://wiki.kas.org/index.php/일성정시의(검색일 2022. 11. 29.)
17) 대한제국까지 앙부일구 제작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물로는 1899년 제작된 <앙부일구>(국립고궁박물관)가 있다. 조선의 Ⅰ유형 끼움입사로 주요 요소를 시문했는데 밑면에 음각으로 “光武三年己亥 仲秋. 臣 姜湕 謹製”라는 명문이 있어 강건(姜湕, 1843~1909)이라는 장인이 앙부일구를 제작했음이 확인된 사례이다. 1899년 앙부일구는 해시계에 끼움입사를 한 전통이 대한제국에서도 유지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1) 『萬機要覽』 財用編4, 金·銀·銅·鉛, “…戶曹銀有四名. 曰天銀, 地銀, 玄銀, 黃銀. 天銀用於御用器皿. 地銀用於支勑禮單. 玄銀, 黃銀用於諸般經用. 一年所捧不能當所下. 故天銀, 地銀. 以價磨鍊. 逢授白木廛. 使之貿銀吹鍊. 臨時取用.”
22) 입사은자가 확인되는 의궤는 다음과 같으며 17세기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懿仁王后尊號大妃殿上尊號中宮殿冊禮王世子冊禮冠禮時冊禮都監儀軌』 (1609), 『宣祖大王懿仁王后祔廟都監儀軌』 (1610), 『光海君私親追崇都監儀軌』 (1610), 『宣祖懿仁王后恭聖王后追崇都監儀軌』 (1616), 『光海君尊崇都監儀軌』 (1621), 『宣祖懿仁王后恭聖王后尊號都監儀軌』 (1621), 『仁祖莊烈后嘉禮都監儀軌』 (1638), 『肅宗仁顯后嘉禮都監儀軌』 (1680). 『顯宗明聖王后嘉禮都監儀軌』 (1651).
23) 입사은이 확인되는 의궤는 다음과 같으며 17세기부터 대한제국기인 20세기 초까지 고루 확인된다. 『孝宗王世子及嬪宮冊禮都監儀軌』 (1645), 『明聖王后冊禮都監儀軌』 (1661), 『別三房儀軌』 (1661), 『肅宗王世子冊禮都監儀軌』 (1667), 『肅宗仁敬王后嘉禮都監儀軌』 (1671), 『別三房儀軌』 (1677), 『景宗王世子冊禮都監儀軌』 (1690), 『玉山大嬪陞后受冊時冊禮都監都廳儀軌』 (1690), 『肅宗仁顯王后冊禮都監儀軌』 (1694), 『景宗端懿后嘉禮都監儀軌』(1696), 『愍懷嬪復位宣諡都監儀軌』 (1718), 『端懿嬪禮葬都監都廳儀軌』 (1718), 『英祖王世弟受冊時冊禮都監儀軌』 (1721), 『別三房儀軌』 (1722), 『孝章世子冊禮都監儀軌』 (1725). 『別三房儀軌』 (1726), 『宣懿王后國葬都監儀軌』(1731), 『賢嬪玉印造成都監儀軌』 (1735), 『思悼世子冊禮都監儀軌』 (1736), 『端敬王后復位祔廟都監儀軌』 (1739), 『孝宗加上諡號都監儀軌』 (1740), 『思悼世子嘉禮都監儀軌』 (1744), 『懿昭世孫冊禮都監儀軌』 (1751), 『孝純賢嬪禮葬都監儀軌』 (1752), 『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 (1759), 『正祖孝懿王后嘉禮廳儀軌』 (1762), 『英祖國葬都監儀軌』 (1776), 『莊獻世子上諡封園都監儀軌』 (1776), 『眞宗追崇都監儀軌』 (1777), 『文孝世子冊禮都監儀軌』 (1784), 『正祖國葬都監儀軌』 (1800), 『純祖純元王后嘉禮都監儀軌』 (1802), 『貞純王后國葬都監儀軌』 (1805), 『孝明世子嘉禮都監儀軌』 (1819), 『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1821), 『孝明世子葬禮都監儀軌』 (1830), 『純祖國葬都監儀軌』(1835), 『孝顯王后國葬都監儀軌』 (1843), 『憲宗孝定王后嘉禮都監儀軌』 (1845), 『憲宗國葬都監儀軌』 (1849), 『純元王后國葬都監儀軌』 (1857), 『哲宗國葬都監儀軌』 (1865), 『神貞王后國葬都監儀軌』 (1892). 『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 (1898), 『純明妃國葬都監儀軌』 (1904), 『純宗純貞皇后嘉禮都監儀軌』 (1906).
24) 입사천은이 확인되는 의궤는 다음과 같으며 18-19세기에 확인된다. 『貞聖王后冊禮都監儀軌』 (1726), 『仁元王后淑嬪英祖貞聖王后尊崇都監儀軌』 (1756), 『顯宗明聖王后英祖貞聖王后貞純王后上號都監儀軌』 (1773), 『莊獻世子上諡封園都監儀軌』 (1776), 『孝懿王后冊禮都監儀軌』 (1778), 『貞純王后尊崇都監儀軌』 (1778). 『英祖貞聖王后眞宗孝純王后祔廟都監儀軌』 (1778), 『貞純王后莊獻世子惠嬪尊號都監儀軌』 (1783), 『英祖貞聖王后貞純王后莊獻世子惠嬪尊號都監儀軌』 (1784), 『貞純王后加上尊號都監儀軌』 (1787), 『貞純王后孝懿王后尊崇都監儀軌』 (1802), 『綏嬪葬禮都監儀軌』 (1823).
29) 『동국여지지』 (1656)에는 경기도 영평, 호서의 공주와 진잠, 호남의 순창, 창평, 흥양, 진산, 영광, 강진, 해남, 영남의 영해, 거제, 관동의 평창, 금성, 해서의 수안, 장연, 관서의 구성, 삼등 등에서 동이 생산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유형원의 『동국여지지』를 인용하며 국내에 구리가 나는데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31) 『備邊司謄錄』 107冊 영조16년(1740), “生銅非我國所産, 故凡公私之用, 遠貿於倭國, 每患苟簡矣, 向者江原監司, 以寧越地所産銅鐵, 上送備局, 故自本曹試令鑄器, 則無欠造成, 品亦精好, 實爲多幸, 蓋生銅取用之法, 添入鍮鑞, 則爲鍮鐵, 添入常鑞, 則爲鑄鐵, 添入含錫, 則爲豆錫, 生銅一物, 鎔鑄器用, 其路甚廣, 今此銅脈, 若其豐盛, 則有用之物…”
Type | Record | alloy method | common materi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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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nze | 五洲書種博物考辨 | When smelting drugs such as pansŏk and ch’osŏk together with copper, it becomes bronze. [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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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ss | 五洲書種博物考辨 | Brass is made by melting Nogamsŏk or zinc into copper. After putting 4 kŭn in the melting pot for every 6 kŭn red copper roots and repeating the melting process, cool it and take it out, it becomes brass. In the old days, people called this Yusŏk. [34] | Copper+Zin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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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園經濟志 | Koreans smelted copper to make yellowish bowls. In general, this is called Yugi, but the dialect has been misrepresented. Red copper and Japanese zinc are sometimes cast in a ratio of 6:4 to copper. A bowl called “samhwa hwangdong (三火黃銅)” or “sahwa suktong (四火熟銅)” means that copper and Japanese zinc are mixed in a 7:3 ratio and cast. [35] | ||
Imwŏn’gyŏngjeji | |||
Black copper | 五洲書種博物考辨 | True black copper(眞烏銅): One nyang of red copper with 5 or 6 pun of thin gold is of good quality. A thin layer of gold with 3 pun in it is considered low quality. [36] | Copper+Gold |
Ojusŏjongbangmulgobyŏn | Fake Black Copper(假烏銅): We mix and match the juices to soak the copper or scorch with sulfur smoke..[37] | ||
林園經濟志 | Metal made by adding 30Mok(3nyang) of white lead to 100Mok(10nyang) of copper is called chahŭngmok. Add 3 don gold to 100 Mok chahŭngmok. chahŭngmok and gold are mixed and melted to form a metal. Here, 4 ch’o, 4 iron vitriol, and 1 don of water are boiled and soaked to make the color black. [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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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roni | 五洲書種博物考辨 | It is not known where the yellow f lavor comes from. If you smelt yellow incense to make it, it turns white like silver. Copper is soft and can be made into strings, and it hardens when boiled with licorice. [39] | Copper+White arsen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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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園經濟志 | Cupronickel is made by mixing copper with emergency, but it is used by people who like luxury because it is expensive and difficult to make. [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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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per for casting [41] | 五洲書種博物考辨 | Among the cast bowls, those made by mixing red copper and zinc half and half are of poor quality. In severe cases, zinc 6 and copper 4 are mixed. It is made from samhwa hwangdong (三火黃銅) and sahwa suktong (四火熟銅) with good quality, and zinc 3 is blended with 7 copper. [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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