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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15; 2022 >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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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保社復勳都監儀軌』 (1695, 외규076)는 御覽用으로 제작된 유일본으로서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되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외규장각의궤의 하나이다. 2011년 국내에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 의궤에는 숙종실록 등 다른 문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어람회맹축의 제작 관련 내용이 유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3) 필자는 2020년 6월 17일 문화재청의 의뢰로 보물 제1513호로 지정되어 있던 어람회맹축(2007)을 국보로 승격 지정하기 위한 조사에 참여하여 실견 조사하였고 같은 해 12월 7일 문화재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후 해당 유물은 국보로 승격되었고, 본고는 당시 작성한 보고서의 토대 위에 의궤기록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장인의 제작기술을 보완하였음을 밝힌다.
4) 이상식, 「숙종대 保社功臣의 錄勳 과정과 사회적 關係網 분석」, 『한국사연구』 155(2011. 12). pp. 75-112; 전경목· 박용만, 「<二十功臣會盟軸>의 특징과 가치」, 『장서각』 22(2009); 김덕수, 『조선의 공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2), pp. 33-34, pp. 58-64, pp. 73-92; 박성호, 『이십공신회맹축, 공신과의 옛 맹약을 지키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7); 윤혜민, 「숙종대 保社功臣의 錄勳과 정치적 의미-『保社錄勳都監儀軌』를 중심으로-」, 『朝鮮時代史學報』 99(2021), pp. 41-72; 윤혜민, 「숙종대 保社功臣의 錄勳과 정치적 의미-『保社錄勳都監儀軌』를 중심으로-」, 『朝鮮時代史學報』 99(2021), pp. 41-72; 김우진, 「숙종대 保社功臣의 復勳과 『保社復勳都監儀軌』」, 『朝鮮時代史學報』 99(2021), pp. 75-104.
5) 박지선, 「유물과 기록을 통해 본 조선의 장황」, 『제3회 동아시아 종이문화재보존 심포지엄 발표논문집』 (한국장황연구회, 2008. 9), pp. 112-113; 박용만, 「이십공신회맹축, 조선왕실 장황문화의 정수」, 『장서각에서 옛 기록을 만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1).
6) 이십공신은 開國, 定社, 佐命, 靖難, 佐翼, 敵愾, 翊戴, 佐理, 靖國, 光國, 平難, 扈聖, 宣武, 淸難, 靖社, 振武, 昭武, 寧社, 寧國, 保社功臣이다. 1680년 당시 녹훈된 보사공신 6인은 1등 공신 2명(金錫胄, 金萬基), 2등 공신 1명(李立身), 3등 공신 3명(南斗北, 鄭元老, 朴斌)이었다(『錄勳都監儀軌』, 계사질, 경신(1600) 5월 16일).
10) 『復勳都監儀軌』, 계사질, 갑술 윤5월 초6일, 윤5월 초7일. 都監應行事目. 『숙종실록』 권26, 숙종 20년 윤5월 25일 신묘; 6월 5일 신축. 실록에서는 庚申復勳都監으로 부르고 있다.
13) 『復勳都監儀軌』, 계사질, 갑술 윤5월 초7일; 윤5월 25일; 이것은 1680년 녹훈도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원래 당상은 金錫胄가 혼자 담당하였다가 金萬基가 추가로 임명되었다(『錄勳都監儀軌』, 계사질, 경신 6월 16일; 승정원일기 277책, 숙종 6년 6월 16일 계유).
21) 이은경, 『韓國과 中國의 布帛尺에 關한 硏究』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pp. 88-89. 『經國大典』의 布帛尺은 46.80cm, 대한제국 光武 6년의 布帛尺은 48.48cm, 조선 말기에는 51.51~61.60cm로 연구하였다. 하지만 숙종 당시 어람회맹축의 나비와 길이는 이에 부합되지 않는다.
23) 『復勳都監儀軌』, 1방 품목, 갑술 10월 일; 장경희, 『의궤 속 조선의 장인』 (솔과학, 2013), pp. 222-565. 복훈도감에 참여한 각색 장인들의 활동 기간이나 상황은 현종대부터 숙종대까지의 기록에서 확인하였다.
24) 『復勳都監儀軌』, 감결질, 갑술 윤5월 23일. “兵曹了爲相考事. 綃匠·筬匠·練絲匠等段, 已爲料布, 磨鍊上下事, 移文爲如乎, 其中織造守直軍二名, 假家守直軍二名等價布段置, 依前謄錄磨鍊上下, 輸送都監, 以爲分給之地向事.”
29) 『復勳都監儀軌』, 1방 소용, 갑술 윤5월일. “匠人等所用 筬機一 造筬次大竹二箇 魚膠一張 剪竹所入 眞油一升 甘醬五升 燒木五丹.”; 『保社錄勳都監儀軌』, 1방, 1680. “筬匠所用延日礪石一塊 塗灌一 用後還下次”
30) 『保社錄勳都監儀軌』, 1방 품목, 경신 6월 21일. 품목. “會盟軸所入白絲, 不可不極擇精織是乎等以, 白絲二斤段, 還 送該曹市人處, 可合. 白絲, 自都監爲先擇, 用後價本乙良, 令 戶曹上下事分付爲乎旀, ”
33) 『復勳都監儀軌』, 1방 소용, 갑술 윤5월일. “鍊絲次 海長竹十五箇 熟麻條所一巨里 木賊三錢 尾箒三柄 炭二石” ; 『保社錄勳都監儀軌』, 1방, “鍊絲次 海長竹十五箇 熟麻條所一巨里 木賊三錢 尾箒三柄 炭二石.”
34) 『復勳都監儀軌』, 1방 소용, 갑술 윤5월일. “織造時所用陶所羅一 沙鉢一 沙貼匙二 旕乃三十箇 絲機八 刃機一筬機一 朴串機二 鉛叱土八箇合重二十兩 刀子一 錐子一 東串一 四寸錠四箇---戶曹 工曹 繕工監 平市署 禮賓寺 長興庫 軍資監 廣興倉 司宰監 刑曹 內資寺 瓦署 司贍寺 軍器寺 別工作 司䆃寺 豊儲倉 義盈庫.”
38) 『保社錄勳都監儀軌』, 1방. “織造直二名” 織造直들은 1644년 녹훈도감 등 여러 도감에 등장하며, 1달 이상 백초를 직조하는 동안 직조를 지킨 수직군사였다고 여겨진다. 『錄勳都監儀軌』, 1644, 규14946. 1방 織造兼敎書色.
40) 『復勳都監儀軌』, 1방 품목, 갑술 윤5월일. “本房織造時, 綃匠五名所着, 白布巾乃赤亇三件, 白布手巾三件, 織造膠染所用, 綿紬手巾等物, 用後還下次, 各該司良中, 進排事, 捧甘, 何如? 稟. 依. 戶曹 濟用監.”
44) 『復勳都監儀軌』, 계사질 갑술 6월 초10일. “啓曰, 進上會盟軸, 白綃五十尺, 磻水與褙貼大爭機坐排處所, 他無可設, 故庚申年慶德宮內兵曹大廳排設....今番復勳時進上會盟軸, 亦依庚申年例, 慶德宮內兵曹 排設之意, 敢啓.”; “今番復勳時 進上會盟軸, 亦依庚申年例, 慶德宮內兵曹 排設之意, 敢啓. 傳曰, 允.”
47) 『復勳都監儀軌』, 2방 화상색겸교서색. 갑술 6월일. “進上會盟軸, 綃五十四尺, 毛邊·楮注等紙後褙後, 以白蜜推光爲如乎, 推造軍四名, 限一日定送於慶德宮事, 戶曹及該署良中, 捧甘, 何如? 稟. 手決, 依. 戶曹 平市署.”
54) 『復勳都監儀軌』, 감결질, 갑술 윤5월 16일. “平安監司了 爲相考事. 今此保社功臣復勳事, 命下矣. 進上會盟軸所入玉莫只, 實預差幷以四箇, 道內成川府良中, 星火知 委, 今月晦日內, 急速堅封, 入盛樻子具鎻鑰, 封表上送, 以爲及時取用之地向事.”
55) 『復勳都監儀軌』, 감결질, 갑술 윤5월 17일. 別工作手本 “右手本爲行下事. 取考謄錄, 則進上會盟軸所入玉莫只, 實預差幷四箇, 移文于平安監司, 則自成川府造作, 上納爲有如乎.”
60) 『錄勳都監儀軌』, 1644, 규14946, 別工作 工匠秩. “簪匠 安二男”; 別單. “簪匠 安二男(三等).” 안이남이 簪匠으로서 동원된 것은 1644년과 1694년 2차례에 발견되어 주목된다.
62)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역대서화가사전』하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pp. 2390-2391. 해당 사전에서는 한후방의 활동시기를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으로 표기하여, 본고에서는 장경희, 앞의 책, pp. 296-541을 참조하여 그의 활동한 기간을 적시하였다. 韓後邦은 여러 의궤에 韓後房, 韓後芳, 韓厚邦, 韓厚芳 등 다양하게 표기된다.
71) 김덕수, 「숙종조 어필 수집 양상과 숙종의 어제 찬술」, 『장서각』 45(2021), pp. 71-72; 이완우, 「조선후기 列聖御筆의 刊行과 廣布」, 『장서각』 30(2013), pp. 14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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