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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15; 2022 > Article
고려시대 동자문(童子文) 청자의 제작과 그 배경*

Abstract

본 연구는 고려시대 동자문 청자의 제작 양상과 시기, 문양의 시문 배경에 대한 요인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동자문 청자는 당시 양질의 청자를 생산한 강진과 부안 가마터에서 출토되며, 궁궐터와 왕실 인물의 무덤과 같은 소비지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어 지배 계층의 수요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2세기 경 제작되기 시작하여 13세기에 가장 집중적으로 생산 및 소비되었고, 14세기 전반 이후로는 원의 영향에 의해 문화의 흐름이 대체되면서 시문 사례가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동자문은 식물 넝쿨과 결합하여 하나의 문양 구성을 이루는 A유형과 그 외에 회화적 요소를 지닌 B유형으로 크게 분류되며, 전자의 경우 송·금대의 정요 자기, 후자의 경우 송대 회화와 조형적으로 유사성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 지역에서 확산된 동자 이미지와 그것이 고려에 유입된 양상 및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영향 관계를 추정하였다. 동자문 청자의 제작은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와 이에 따른 문물의 유입 양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중세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이미지의 유입과 수용 과정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reveal how and when child design celadon was produced in Goryeo and the circumstances under which the designs were created. As child design celadon vessels are discovered in kiln sites in Gangjin and Buan or at palace sites or tombs of royal family where they were used, it is likely that they were made for the ruling class. The design first appeared on celadon ware in the 12th century and was mainly produced and consumed in the 13th century. Its appearance decreased after the early 14th century as influences of the Yuan culture changed the culture of Goryeo. Child designs on Goryeo celadon could be categorized into two major types: type A, which combines child design with plant scroll motifs and type B, where child designs are drawn in picture-like detail. The type A is similar to Ding ware from Song and Jin dynasties, and the type B to paintings of Song dynasty. The influences to the child design were analyzed by examining images that had been popular in China, tracing how they were introduced to Goryeo, and studying related historical documents. Child designs on Goryeo celadon are the outcome of active cultural exchanges with surrounding countries and art works that traveled between them. It serves as an example that demonstrates how an image was introduced and accepted in medieval East Asian international relations.

Ⅰ. 머리말

동자문은 어린아이의 형상을 나타낸 문양을 의미하며, 동아시아의 건축, 공예, 회화와 같은 분야의 조형 예술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왔다.1 고려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동자 이미지가 유입된 이래 12세기에서 14세기까지 청자의 문양으로 활용되었으나 그동안 연구 주제로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2 압출양각 기법으로 시문된 경우 형상이 분명하지 않아 그 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일부 불교적 요소로 인식되어 종교적 도상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동자문을 불교적 맥락으로 인식하는 것은 현대에 통용되는 동자승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고려시대에 불교가 융성하여 관련 이미지가 생산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려 석탑에는 『유행경(遊行經)』 등에 의거한 ‘공양동자’ 표현 예가 있으며,3 『화엄경(華嚴經)』이 유행함에 따라 불화에는 ‘선재동자(善財童子)’ 도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때 표현된 동자는 경전의 내용을 시각화한 조형이었다.
그러나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동자문은 이와는 다른 조형을 보이며, 동시기 중국 지역에서 확산된 길상적인 의미의 동자 이미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중국에서 동자 이미지가 어떠한 상징을 가지고 확산되었는지 살펴보고, 그 이미지가 고려에 유입된 양상과 청자의 문양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먼저 고려시대 동자문 청자의 유형과 출토 양상 및 시기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 일부 문양 유형의 특징과 제작 지속 요인을 추정하여 동자문 청자가 가지는 성격을 다각도로 이해하고자 한다. 국내외 기관에서 공개한 발굴품과 전세품을 대상으로 그 양상을 파악할 것이며 문헌 사료를 기반으로 고려 내 동자 이미지에 대한 인식과 소비, 중국과의 교류 양상의 분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해 중국의 공예품 및 회화의 조형 요소가 고려청자 양식에 끼친 영향에 대해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현시점까지 분석이 미진하였던 동자문 청자의 기초 연구를 마련함에 따라 고려 중기 청자의 연구에 미약하게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Ⅱ. 고려시대 동자문 청자의 유형과 제작 시기

이 장에서는 고려시대 동자문 청자의 유형별 출토 양상 및 시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현전하는 유적 출토품과 전세품을 대상으로 그 현황을 파악하고, 제작 시기의 경우 소비지 유적의 상대 편년 자료를 중심으로 하되 일부 전세품의 조형을 바탕으로 추정해볼 것이다.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동자문의 유형은 식물 넝쿨과 동자가 결합하여 하나의 문양 구성을 이루는 A유형, 넝쿨과 결합하지 않고 회화적인 요소를 보이는 B유형으로 크게 분류하여 살펴볼 수 있다.

1. A유형

동자문 A유형에 나타나는 식물 넝쿨의 종류로는 연화, 포도, 보상화, 해석류화, 촉규화, 국화 넝쿨이 있으며, 연화, 포도 넝쿨이 대부분의 수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연화 넝쿨과 동자가 결합한 문양은 발, 접시, 합, 유병 기종에서 확인되며, 일부 상감 기법의 예가 있으나 대부분 압출양각 기법으로 시문되었다.4 압출양각 기법의 경우 비교를 통해 문양 구성에 차이가 있는 개체를 분류할 수 있으며, 제작에 사용된 도범의 종류가 파악된다.5
<Table 1>을 보면 각기 다른 형태의 도범을 사용하여 생산한 연화 넝쿨과 동자의 결합이 확인된다. (a)구성을 보면, 내저면에 국화문을 두고 측면에 4명의 동자가 대칭으로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에 커다란 연꽃과 연잎이 번갈아 배치된 구성이다. 출토지로는 원덕태후(?~1239)의 묘인 곤릉 출토 예가 있다.6 이 도범 유형의 전세품들을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구성은 같으나 연꽃과 연잎의 방향이 반대인 경우가 있는데,7 이는 제작 시 같은 도안을 바탕으로 생산한 여러 도범들의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b)구성은 발 내저면에 연화문이 있고 측면에 3명의 동자와 세송이의 연화넝쿨이 어우러진 것이다. 보령 원산도, 사당리 43호 요장 및 23호, 42호의 지표조사에서 발견되어,8 사당리 요지 내 여러 기의 가마에서 동일 문양 구성의 도범을 사용한 사실과 원산도에서 출토된 동자문 발의 제작처가 사당리 요장임을 알 수 있다.9 (c)구성은 내저면에 국화문을 배치하고 측면에 연화 넝쿨과 3명의 동자를 나타낸 것으로, 동자의 양 팔을 벌린 자세와 휘날리는 복식의 표현이 특징적이다. 강진 사당리 41호와 40-1호 폐기장, 부안 유천리 요장의 출토 예가 있다.10 이상의 세 종류의 발은 기형에서도 일관성을 보여 도범을 이용한 규격화된 생산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11
A-연화 유형이 장식된 청자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보면, 곤릉 출토품의 경우 피장자인 원덕태후가 1239년 승하하고 그해 능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1239년 이전에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12 보령 원산도 유적의 경우 전반적인 출토 유물의 양식을 통해 13세기 전반 경으로 시기가 추정되었는데,13 A-연화 유형의 발과 접시가 다량으로 출토되어 해당 시기에 집중적으로 생산되어 소비지로 이송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출토 유물 양식에 따른 시기 추정 및 제작의 하한 시기를 알려주는 것이므로 제작 시기를 13세기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A-연화 유형이 나타나는 발의 기형 및 번조받침의 양상, 동자문과 같이 새로운 문양의 등장과 수반되는 압출양각 기법의 청자가 12세기 경 이래로 생산이 지속되었다는 점을 참고한다면,14 12세기 이후 생산이 개시되어 13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까지 소비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포도 넝쿨과 동자가 결합한 문양은 발, 접시, 병, 주자, 매병, 사이호, 뚜껑 기종에서 확인된다. 시문 기법의 경우 압출양각 기법의 예가 가장 많으나 상감 기법의 제작 비율이 높은 특징이 있다.15 생산지는 부안 유천리와 강진 사당리 일대로,16 마도 해역과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과 같은 유통로에서 수습되었다.17 이 외에 파주 혜음원지(Fig. 1), 개성 고려궁성, 울주 연자도, 남원 실상사, 강화 옥림리‧월곳리 발굴에서 보고된 바 있으며, 일본의 가마쿠라(鎌倉) 유적에서도 출토되어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된 양상이 확인된다.18
A-포도 유형이 장식된 청자의 출토지인 고려궁성은 강화로 천도한 1232년 이전과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 이후 운영되었으며, 혜음원지는 13세기 전반 경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19 강화 옥림리와 월곳리 출토품의 경우 중성을 쌓은 1250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는 1270년까지의 시기에 사용된 기물이라 생각된다.20 출토품은 모두 압출양각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A-연화 유형과 같이 12세기 이래로 제작이 개시되어 13세기를 중심으로 제작 및 소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상감 기법의 경우 전세품의 조형적 특징을 통해 시기를 추정해볼 수 있다. A포도 유형의 주자는 윗박과 큰 아랫박이 연결된 몸체에 곡선형의 주구와 손잡이를 단 형태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기형은 1257년을 하한으로 하는 최항(崔沆) 묘 출토 주자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21 또한 A-포도 유형은 최항 묘 출토 주자에 나타나는 동화 기법이나 역상감 기법으로도 시문된 예가 있어, 기형 및 기법적인 측면에서 13세기의 특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Fig. 2).22 한편, 동반 문양의 양식에 따라 제작 시기를 내려 볼 수 있는 유물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청자 상감 동자 포도 당초문 표형병>이 있다.23 여기에 나타난 운문은 구불구불한 표현이 일부 남아있는 간략화된 형태로, 1301년 경 제작된 자광국사(慈精國師)의 청자 사리함의 문양과 그 양식이 유사하다고 판단된다.24 따라서 A-포도 유형 청자의 제작은 12세기 이후 개시되어 13세기를 중심으로 생산 및 소비되었고 14세기 전반 경까지 일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25
유사한 양식과 수량을 보이는 두 A유형의 제작 양상을 비교해보면, A-포도 유형은 A-연화 유형과 다르게 14세기까지의 제작이 추정되며, <Table 2>에 제시한 바와 같이 병이나 주자, 매병과 같이 액체류를 따르는 기종에 장식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26 표의 내용을 보면 전체 A유형의 수량 가운데 포도 유형은 약 44.9%를 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일반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이는 발이 46.8%로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많은 기종이 주자이다. 주자 기종의 84.6%가 A-포도 유형으로, 주자와 같이 음용기의 기능을 하는 매병과 병 또한 A-포도 유형에 분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유형이 종류에 따라 시기 및 기종의 성격에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동반 문양인 포도문이 갖는 특성에 있다고 생각되며, 이러한 현상을 당시의 포도 및 포도주의 소비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고려시대에 포도는 자생하였으며 감상의 대상이자 선물로 주고받는 귀한 과일이었다.27 문인들은 시렁에 틀어 올린 포도 넝쿨을 보며 그 모양새와 맛의 우수함에 대해 찬미하였고, 수정(水精), 흑수정(黑水精), 흑구슬[驪珠], 옥 같은 열매[玉實], 동글동글 알알이 투명[團圓箇箇更通明]과 같은 어구로 그 외형을 묘사하곤 하였다.28 포도 감상에 대한 내용은 13세기 전반~14세기 기록에 나타나 A-포도 유형의 제작 시기와 일치하며, 포도에 대한 묘사 내용은 흑상감 및 동화 안료를 사용하여 다채롭게 장식된 청자의 포도문 표현과도 부합하여 청자의 감상적 성격을 상기시킨다(Fig. 2).29 이처럼 완상의 대상이자 시적 제재였던 포도에 대한 애호는 공통된 향유 계층을 갖는 청자에 그 모습을 구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인들은 포도를 보며 포도주를 연상하고, 술로 만들어 즐기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였다.30 포도주는 고려 후기 상류층에서 음용되었던 주류의 일종이었으며,31 당시 그들이 포도주를 담았던 기물로는 호(壺), 준(樽) 등의 명칭이 확인된다. 이색은 호에 담긴 포도주를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바 있으며, 주연 때 포도주가 담긴 호를 가져가 잔에 담아 마셨다. 또한 태평성대인 조정을 축사하는 자리에서 준에 가득 찬 포도주를 언급하기도 하였다.32 호의 경우 기록에 나타난 용례를 보아 현재의 주자나 병을 가리키는 용어였던 것으로 추정되며,33 준은 태안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죽찰의 내용을 통해 매병의 명칭이었던 것이 확인된다.34 즉, 고려에서는 포도주를 병, 주자, 매병과 같은 기종에 담아 두고 마셨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35 포도주는 왕실의 하사품이자 연회에 가져가는 선물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담는 용기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당시 액체류를 담는 고급 재질의 용기로는 금은기 및 청자가 연상된다.
포도주와 관련된 고려의 기록은 원나라 황제가 포도주를 하사한 1285년의 기록이 가장 이른 것이다.36 포도주의 유입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현재로서는 13세기 후반에 원을 통해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37 전술하였듯이 A-포도 유형의 청자는 13세기 전반에는 이미 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포도문의 등장을 포도주의 유입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유사한 문양 구성을 가진 A유형 가운데 제작 시기와 기종의 종류에서 특징을 보이고 있고, 고려인들이 포도를 완상하고 포도주를 연상하며 그것을 청자에 담기도 했다는 추정을 고려한다면 13세기 후반 포도주의 유입이 청자의 포도 장식에 대한 수요를 지속시킨 요인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2. B유형

동자문 B유형은 넝쿨과 결합하지 않으며 회화적인 요소를 갖는 유형이다. 수량에 비해 다양한 표현 양상을 보이며, 동자들이 연못가에서 노는 장면을 묘사한 연지동자 유형, 연꽃‧나비‧새와 같은 자연물을 든 동자 유형, 버드나무와 같은 자연 풍경 속에 등장하는 동자 유형으로 크게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B-연지동자 유형은 발 내저면에 헤엄치는 물고기를 배치하고 측면에 연못가에서 연꽃을 따며 노는 6명의 동자를 묘사한 것이다(Fig. 3). 압출양각 기법으로 시문되었고 강진 사당리 요지 및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바 있다.38 현재 남아 있는 예 중에서는 발의 특정 기형에서만 확인되며,39 강진 용운리 10-II 층위에서 출토된 K형의 발과 비교해볼 수 있다. 두 기형은 유사한 속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형태 및 내화토 번조 받침, 화형 구연, 세로 선을 넣어 시각적으로 동체를 외부에서 누른 것과 같이 처리한 점에서 그러하다.40 내화토 받침은 모래빚음과 규석 받침이 출토되는 층위보다 하층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편년 보조 자료에 의하면 주로 11세기 말~12세기 전반에 나타난다.41 이에 따라 B-연지동자 유형이 시문된 발의 경우 12세기 전반 경에는 제작이 개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나비‧새와 같은 자연물을 손에 든 동자 유형은 발, 완, 잔, 유병 기종에 나타난다. 발 기종에는 원문 장식과 함께 나타나며(Fig. 4), 사당리 27호에서 수습된 예가 있다.42 완과 잔 기종에는 원문 장식 없이 내부 측면 세 곳에 연꽃 줄기를 든 동자를 시문하고 내저면에 국화문을 두는 구성을 한 것이 대부분이다(Fig. 5). 개성 지역에서 국화 줄기를 잡은 동자가 그려진 유병,43 보령 원산도에서 모란 줄기를 잡은 동자가 그려진 뚜껑 편 등이 출토되었다.44 이 유형에 대한 직접적인 편년 자료는 없으나, 명종 지릉에서 출토되어 1255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상감 여지 당초문 발>의 양식을 참고할 수 있다(Fig. 6).45 발의 외면 장식을 보면 구연부의 당초 문대 아래로 간격이 넓은 당초문대를 두고 그 안에 원문으로 장식한 모란문을 배치하였으며, 그 아래 국화문을 일정한 간격으로 시문한 구성이다. 이것은 Fig. 5의 동자문 청자와 동일한 문양대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동자문 유형은 지릉 출토 발의 하한을 참고하여 13세기 중반 이전부터 청자에 장식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B유형의 자연 풍경 속에 등장하는 동자 유형은 완, 주자, 매병, 정병, 화분 기종에 나타난다. 주로 두 명의 동자가 등장하며 배경에 버드나무가 배치된 경우가 많다. 진도 명량대첩 해역에서 버드나무와 동자가 시문된 화분 편이 발견되었으며,46 보령 원산도와 중국 항주 수내사 관요 일대에서는 능화형 장식 내부에 나뭇가지를 든 두 명의 동자가 시문된 매병 편이 수습되었다.47 유사한 문양 구성의 전세품인 Fig. 7의 매병을 살펴보면 반구형 구연에 목이 짧은 편이고, 어깨 부분은 팽팽한 곡선을 이루다가 하부로 갈수록 완만하게 좁아져 저부에서 살짝 넓어지는 기형이다. 이러한 형태는 태안 마도 2호선에서 출토된 두 기의 매병과 유사한데, 특히 <청자 상감 국화 모란유로죽문 매병>과 같이 능화형 장식 안에 문양을 배치한 표현 방식에서 공통된 특징이 있다. 마도 2호선은 출토 목간의 판독으로 1213년 이전에 난파한 선박이라는 것이 밝혀져 제작 시기의 하한을 알 수 있다.48 이를 참조하면 회화적 구성을 보이는 B유형의 동자문 청자는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 경 제작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동자문 청자는 고려 중기 양질의 청자를 생산했던 강진과 부안 가마터에서 출토되며, 같은 시기 조질 청자를 생산했던 요장에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바가 없다.49 또한 고려의 궁궐터나 왕비의 무덤, 국왕의 행차 및 관료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국립 숙박시설, 대형 사찰, 귀족들의 생활공간이었던 건물지 등에서 출토되고 있어 지배계층의 수요품이었던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제작 시기는 B-연지동자 유형이 가장 일찍 발생하였으며 A-포도 유형이 가장 늦은 시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12세기 전반 경 압출양각 기법을 중심으로 한 일부 동자문 청자의 생산이 개시되었고, 13세기에는 상감 기법의 발달에 따라 이전보다 다양한 문양 유형이 발생하며 제작과 유통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4세기 전반에는 일부 A-포도 유형이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그 이후로는 점차 청자의 문양으로 선호되지 못하고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후술하겠지만 동자문은 송에서 금으로 이어지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조형이었으며, 13세기 후반 이래 원 간섭기라는 특수한 상황을 거치면서 문양의 유행이 또 다른 요소로 대체됨에 따라 점차 시문 사례가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Ⅲ. 중국 동자 이미지의 고려 유입과 그 영향

고려시대 동자문 청자의 제작 배경으로는 동시기 중국 내 동자 이미지의 확산과 양국 간 문물 교류에 의한 이미지 유입이 고려된다. 이 장에서는 동자 이미지가 갖는 상징의 형성과 고려로의 유입을 살펴보고, 동자문의 조형 요소를 바탕으로 서로 간의 영향 관계를 논해보고자 한다.

1. 중국 내 동자 이미지의 형성과 확산

중국 고대 사회에 등장하는 아동 이미지는 대부분 실재하는 아이 역할과 관련되며, 특정한 의미를 가진 도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양상을 보인다.50 상징성이 부여된 동자 이미지가 단독으로 표현되는 양상은 당대 이래로 두드러지는데, 이 때 나타나는 동자의 외형은 로마 장식 예술에서 볼 수 있는 ‘푸토(putto)’ 이미지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불교문화의 전래 및 무역 활동을 매개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북부 지역으로 유입된 것으로 여겨진다.51
중국 지역에 유입된 동자 이미지는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공양동자’ 및 ‘연화화생’ 표현에 차용되면서 보다 확산된다. 화생한 영혼이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내용은 초기 불교 경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나, 중국에서는 이들 영혼을 유아의 개념으로 생각하여 어린아이의 외형으로 표현하였다.52 동자 이미지는 불교적 상징과 관련되어 확산되는 동시에 장식적 요소로도 역할하게 된다. 돈황 막고굴 329굴을 예로 살펴보면, 화생동자의 도상이 벽화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으며 석굴의 주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서 양 측면에 배치된 구조라는 점에서 장식적 성격이 두드러진다.53 이는 불교적 맥락에서 사용되었던 화생동자 이미지가 독립된 도상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Fig. 8).
동자 이미지는 자손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 도상으로 인식되면서 더욱 널리 확산되었다. 당시 남아 생산에 대한 소망은 특히 지배계층에서 강조되었는데, 나라의 통치는 유능한 남성 자손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데 달려 있었으며 황실 내 아이의 생산 및 육성은 엄격한 자격 요건에 따라 제한되는 책무였다.54 이러한 가치관은 남아 생산을 기대하는 상징을 궁정 그림에 담게 했다.55
동자 이미지가 갖는 상징은 민간에서도 널리 공유되었으며, 칠석절에 대한 기록에서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당대에는 7월 7일 밤에 화생이라 불리는 작은 상을 띄우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행위는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여성들의 바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56 남송대의 기록 『동경몽화록』에는 다음과 같이 칠석절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칠월 칠석에는… 모두 진흙을 이겨 만든 조그만 토우인 마갈락(磨喝樂)을 팔았다.57 … 어떤 것들은 금·진주·상아·비취 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어, 한 쌍에 수천 문(文)이나 되는 것들도 있었다. 궁궐, 고관대작, 그리고 사인과 서민들 모두 이 마갈락을 칠석 때 물품으로 가지고 다녔다. … 아직 연꽃이 피기도 전에 도성 사람들은 두 송이로 이루어진 가짜 연꽃을 만들어 한때를 즐기다 이를 손에 들고 돌아가면, 길 가던 사람들이 보고 찬탄을 하곤 하였다. 또 아이들은 반드시 새 연잎을 사서 그것을 우산처럼 손에 쥐고 다녔는데, 아마도 마갈락을 흉내 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58
이와 같이 어린아이를 형상화한 마갈락을 유통하는 칠석절의 풍습은 명대 후반까지 이어지며 그 이미지는 자손 번영의 보편적 상징으로 남는다.59 당시 사회에서 중요시되었던 자손 번영에 대한 소망이 투영된 동자 이미지는 송‧요‧금대에 이르러 더욱 확산되었고 도자기, 칠기, 장식구, 직물 등 보다 다양한 분야의 공예 자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게 된다.60 또한 회화 영역에서도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여 궁중 여성들과 분리되어 자유로이 노는 아이들을 그린 영희도(嬰戲圖)가 길상화의 일종으로 발달한다.

2. 동자 이미지의 고려 유입과 그 영향

중국 지역에서 확산된 동자 이미지는 다양한 물적‧인적 교류를 통해 고려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1078년의 기록에는 송 신종이 보내온 복식품 중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새긴 옥이 포함된 것이 확인되는데,61 이는 11세기 후반 국교를 통해 공예품에 장식된 동자 이미지가 유입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실물이 전하는 공예품의 유입 예로는 국내에서 출토된 동경을 들 수 있다.62 개성 부근에서 동자와 식물 넝쿨이 어우러진 구성의 <동자유희문경(童子遊戱文鏡)>, 연꽃 줄기를 쥐고 있는 두 명의 동자를 나타낸 <동자연지유희문경(童子蓮池遊戱文鏡)>, 커다란 파초와 괴석 주변에서 노는 아이들을 나타낸 <파초동자유희문경(芭蕉童子遊戱文鏡)>이 수습되었으며, 인천과 청주 용암 유적 38호 묘에서는 전각 아래 악기를 연주하거나 깃발을 들고 있는 동자들을 묘사한 <유아화상문경(游兒畵像文鏡)>이 출토되었다. <동자유희문경>은 현재까지 6점이 전하며, 4점에 금대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동자연지유희문경>의 경우 국내 출토품에는 명문이 적혀있지 않으나, 중국에서 출토된 동일한 도상의 동경 중에 금대 명문이 새겨진 것이 있어 금경일 가능성이 있다.63 금의 동경에 명문이 새겨지게 된 것은 사주경(私鑄鏡)의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제도에 기인하며, 이 제도는 약 1170년에 시행되어 1205년까지는 지속된 것으로 파악된다.64 따라서 이들 동경은 12세기 중반~13세기 초반 경 제작되어 고려에 전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동자 이미지는 자기 문양의 형태로도 유입되었다. 송·금대에는 여러 지역에서 요업이 성행하였는데, 이 때 생산된 동자문 자기가 국내에서 발견된다. 개성에서 출토된 <백자 모란 당초 동자문 접시>가 대표적인 예로, 금대 정요 자기의 시기적 특징을 보이고 있어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 경 고려에 유입된 것으로 생각된다(Fig. 9).65 또한 고려의 관청과 각종 사지에서 동자 화당초문이 시문된 경덕진계 청백자가 소비되었던 사실이 확인된다.66
당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동자문 자기를 고려의 동자문 청자와 비교해보면 특히 정요 자기의 조형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개성에서 출토된 정요 자기의 문양은 압출양각 기법으로 시문되었으며, 내면 가득 장식된 모란 넝쿨 사이로 배자를 걸친 동자들이 정면, 옆면, 거꾸로 매달린 자세로 넝쿨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Fig. 9). 동자의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자세 표현은 같은 시기 동자문 자기를 생산했던 요주요나 경덕진계 자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나, 거꾸로 매달린 자세의 동자는 타 요장 생산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정요 자기와 고려청자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도상이라 할 수 있다(Fig. 10). 동자의 복식 형태 또한 주목되는데, 정요와 고려의 동자는 배두렁이나 배자를 걸친 경우가 많으나 요주요와 경덕진 자기에 나타난 동자는 그러한 예가 드물고 목과 손발에 항권(項圈)을 한 경우가 많다.67 또한 요주요의 동자문이 크고 대담한 양식으로 표현되는 반면, 정요와 고려의 동자문은 작고 세밀한 구성으로 기면을 채우는 경향이 있다. 이 외에 구연에 테를 두른 고려의 <청자 상감 모란문 은테 발>의 예는 정요 자기와 같은 모습을 구현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보이는 제작 요소라 할 수 있다(Figs. 11, 12).
이상의 몇 가지 공통된 문양 요소들은 고려청자에 나타난 동자문이 여러 외래적 요소를 반영하면서도 특히 정요 양식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정요 자기는 대체적으로 높은 제작 수준과 품질을 보이고 있으며, 고려에서 이러한 자기를 사용함에 따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자기 문양에 어느 정도 참고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68
한편, 당시에 활발했던 서화 교류에 의한 동자 이미지의 유입 또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12세기에 활동한 송대 궁정 화원 소한신(蘇漢臣)은 많은 영희도를 남겼는데, 그의 작품 중에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동자문과 비교해볼 수 있는 장면이 있어 주목된다. 아이들의 다양한 놀이 장면을 긴 화폭에 나타낸 <장춘백자도(長春百子圖)>가 그것으로, 이 중에서 연못가에서 연꽃을 따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구간이 고려청자의 B-연지동자 유형과 동일한 주제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6~7명의 동자가 등장하는 구성과 수풀과 어우러지고 연잎이 떠 있는 연못의 묘사, 연꽃을 건지거나 줄기를 잡고 있는 동자의 자세 및 외형 묘사에서 유사성이 포착된다(Figs. 13, 14).
<장춘백자도>에 등장하는 나뭇가지와 새를 잡은 동자 역시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소재로, 동자의 자세와 머리 및 복식의 형태 표현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다(Fig. 15). 이 외에도 소한신의 <중오희영도(重午戲嬰圖)>에 등장하는 연잎과 새장을 든 동자, 작자 미상의 송대 그림 <자손화합(子孫和合)>에 나타나는 연꽃 줄기를 든 동자 또한 고려의 동자문에 나타나는 도상이다.69 이상의 예와 같이 B유형의 동자문은 송대 회화와 조형적으로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며, 여러 명의 동자가 하나의 화면 구성을 이루거나 자연물 및 사물과의 결합이 획일화되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회화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그 시문 배경을 서화 교류의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자문 청자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12세기는 송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유입된 시기로, 서화 또한 주요한 교류 대상이었다.70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 문종은 1074년 송에 사신을 보내 상당량의 그림을 사들이게 하였고, 송 신종에게 고려 사람을 가르칠 화공(畵工)을 요청하기도 하였다.71 송 신종과 휘종은 고려 사신들에게 서화를 선물하였으며,72 특히 휘종이 내린 서화 작품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는 내용으로 보아 당시 고려의 상류층에서 송대 서화가 갖는 영향력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73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서긍(徐兢)이 묘사한 관회 장면에는 서화를 포함한 각종 진귀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취향에 따라 원하는 것을 주었다고 되어 있어, 고려를 왕래하는 사신들에 의해서도 그림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74 서화는 궁궐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귀하게 수장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 애호 현상이 꽤 확산되어 있었던 듯하다.75
이처럼 서화의 교류가 활발했던 상황에서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림에 대한 고려의 인식은 어떠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영희도에 나타나는 아이들의 놀이 장면은 실제 고려 왕실 및 문인들의 생활 속 풍경이기도 했다. 공민왕은 초파일 날 궁궐의 정원에서 아이들이 깃발을 흔들며 거리를 뛰어다니는 호기놀이를 관람하였으며, 풀 던지기 놀이를 구경하기도 하였다.76 이규보는 아이들이 탱자나 우박을 가지고 놀거나, 나비를 잡고 풀피리를 만들어 노는 모습 등을 평화로운 분위기로 묘사하였으며,77 이색의 글에는 가면을 쓰고 장난하며 참새를 잡기 위해 새총을 손에 쥐고 그물을 펼치는 아이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등장한다.78 이들 문집의 내용에 의하면 고려 사회에서 아이들의 놀이 장면은 다복한 이미지로 인식 및 소비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중국에서 동자 이미지가 정착하여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가치관과 현세적 소망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려 또한 ‘어린아이’를 태어날 때 부여받은 천성을 간직하고 있는 순수의 존재로 보았고,79 그 성정을 간직하도록 바르게 키워내는 것을 하나의 임무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80 이러한 인식은 중국과 같은 맥락의 동자 이미지를 수용할 수 있었던 하나의 배경으로 이해된다.
영희도와 같은 고려시대 그림은 전하는 것이 없으나, 기록을 통해 고려에 존재했던 아이 그림의 양상을 엿볼 수 있다. 고려 문집에는 송대 인물 사마광(司馬光)의 어린 시절 고사를 표현한 격옹도(擊瓮圖)에 대한 내용이 전하는데, 그것이 어떠한 그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조선 전기의 시문이 참조된다. 내용을 살펴보면 “총각 머리, 알락 옷에 어리디 어린 얼굴, 우뚝이 스스로 여느 애와 다르니. 알래라, 이게 사마공의 초상…”이라 하여, 격옹도가 실제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81 권근, 이색 등의 인물이 이를 제재로 시를 썼으며, 이규보는 ‘사마온공 격옹도 뒤에 씀[書司馬溫公擊甕圖後]’을 제목으로 글을 지어 이러한 그림이 고려에 유통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82 또 다른 이규보의 시에는 “짓궂은 아이들 장난은 덩이를 뭉쳐 쥐고, 신묘한 화공의 솜씨는 진상을 묘사하네”라는 구절이 있어, 현전하지 않으나 고려에서도 영희도와 같은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83 또한 앞서 언급한 국내 출토 <파초동자유희문경>의 경우 송대 <초석영희도(蕉石嬰戲圖)>와 z자 형의 울타리 및 파초의 배치 등의 전체적 구성이 동일하여 영희도의 이미지가 공예품의 형태로 유입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Figs. 16, 17).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고려에서는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이 그려진 영희도와 같은 그림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11세기 후반 이래 활기를 띤 서화 교류가 고려청자 문양에 미친 영향은 당시의 화업 구조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11세기 후반 고려의 공예 화업은 각 관청에 그림 담당 장인을 두어 도안 그리는 업무를 수행하는 구조였다.84 이후 화업을 전담하는 기구인 화국(畫局)이 설치되었는데, 설립 시기는 고려에서 송의 제도를 본격적으로 따르기 시작한 문종대 이후로 보이며 그 중에서도 관제 개혁이 실시될 무렵인 1116년 경으로 추정된다.85 화국의 설치는 화학(畫學) 진흥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이녕(李寧)과 같은 화원을 배출하여 고려의 일반 회화가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86 회화의 발전과 전문 화원의 양성은 당시 중상서와 같은 관청에서 공예품 도안을 담당하였던 화원의 업무에도 변화를 야기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지배계층 내 만연했던 서화 애호 풍조와 교류를 통해 유입된 중국의 그림 양식은 그들이 제작하는 공예 도안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 중기 청자에 새롭게 등장하는 여러 문양에서 송대 회화와의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은 이러한 점을 방증하며,87 동자문 역시 하나의 사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Ⅳ. 맺음말

이 글에서는 고려시대 동자문 청자의 제작 양상과 그 배경에 어떠한 요인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데 주목하였다. 동자문 청자는 당시 양질의 청자를 생산했던 강진과 부안 가마터에서 수습되며, 왕실 인물의 분묘를 비롯한 지배 계층의 생활권에 해당하는 소비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상류층의 수요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2세기 경 제작되기 시작하여 13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생산 및 유통되었고, 14세기 이후로는 소멸하는 양상을 보인다. 동자문은 식물 넝쿨과 어우러진 A유형과 회화적 요소를 지닌 B유형으로 크게 분류되며, 두 유형의 조형은 각기 다른 분야의 장식 예술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포도 넝쿨과 결합한 동자문 유형의 경우 제작 시기와 기종의 분포에서 특징을 보이고 있어 13세기 후반 포도주의 유입에 따른 문양의 지속 요인이 있었음을 추정하였다.
고려청자에 시문된 동자문은 동시기 불교 미술에 나타나는 공양동자 및 선재동자와는 다른 맥락의 도상으로, 당대 이래 중국 지역에서 확산된 길상적 의미의 동자 이미지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문헌 자료와 국내에서 출토되는 중국의 동자문 공예품은 고려에 동자 도상이 전래된 양상과 청자 문양과의 영향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당시 고려에 유입되었던 정요 자기의 동자문 양식과 고려청자 동자문 A유형의 양식은 일부 공통된 조형적 특징을 보이고 있어 수입품을 사용하는 상류층의 취향이 고려청자 도안에 반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B유형의 경우 송대 그림에서 보이는 조형 요소가 발견되며, 특히 소한신의 <장춘백자도>에서 연지동자 유형과 동일한 주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문화 발전을 추구한 고려 문종 및 예종대의 서화 교류의 기록은 영향 관계를 뒷받침하며, 회화 전담 기구인 화국의 설치 또한 고려청자 문양에 회화적 요소가 반영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고려 중기 동자문 청자의 제작 배경에는 당시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와 이에 따른 문물의 유입 양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고려시대 동자문 청자의 유형과 제작에 사용된 도범 종류의 소개, 제작 시기와 시문 배경을 포괄하는 고찰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로 동자문 청자의 기종과 그 변천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A-포도 유형의 동자문 청자가 갖는 특징에 대해 소비적 관점에서 접근하였으나 사용례에 대한 구체적 규명 없이 가능성 제시에 그쳤다는 점에서 부족함이 있다. 문양과 기물의 용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동반 문양에 대한 단독 연구와 더불어 면밀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동자문 청자는 강진 사당리를 비롯한 각종 유적에서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어 보다 많은 조사 결과물이 쌓인다면 확장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의 과제로 삼고자 한다.

Notes

1) 중국에서는 어린아이의 형상을 나타낸 문양에 대해 어린아이 영(嬰), 놀이 희(戲)자를 써서 영희문(嬰戲文)이라 칭한다. 일본에서는 ‘당나라 아이’라는 의미로 당자문(唐子文)이라 하며, 국내에서는 동자문(童子文)이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어린아이[童子]’라는 본연의 의미를 잘 드러내며 가장 포괄적인 ‘동자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2) 가타야마 마비(片山まび)는 <청자 상감 동자 씨름문 접시>에 관한 논고에서 씨름 도상을 동자문의 일종으로 보았고 영희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고려의 실제 씨름 모습을 담은 독자적 도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이 외에 동자문 청자는 어린이를 주제로 한 전시 관련 논고에서 아동상의 하나의 예로서 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가타야마 마비,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청자상감동자씨름문접시」,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 2권 : 한국 및 동양의 미술』 (사회평론, 2006);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동심 : 한국미술에 나타난 순수의 마음』 (2008); 호암미술관, 『동자, 순수와 행복의 얼굴』 (2013); 국립청주박물관, 『어린이 미래의 희망을 보다』 (2015).

3) 고려 1085년에 세워진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의 상층 기단 면석의 오른쪽에 사리기를 봉송하고 있는 2명의 동자가 표현되어 있다. 임영애, 「한국 조각의 동자 이미지」, 『동심 : 한국미술에 나타난 순수의 마음』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2008), p. 119.

4) 압출양각 기법이 92.2%, 상감기법이 7.8%로 파악된다. 산출 배경은 본고의 각주 26과 같다.

5) 문양 구성이 분명하게 파악되고 같은 유형이 여러 건 존재하는 세 종류만을 거론하였다.

6) 국립문화재연구소, 『강화 고려왕릉』 (2007), p. 155;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왕실의 도자기』 (2008), p. 39.

7)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 『소장유물도록』 (2013), p. 242.

8) 민족문화유산연구원, 『강진 사당리 43호 고려 청자요지 : 발굴조사 보고서』 (2015), pl. 45; 고려청자박물관 소장(S-23M-0305, S-23M-0085, S-42-0005, https://www.celadon.go.kr ).

9) 국립해양유물전시관, 『保寧 元山島 : 水中發掘調査報告書』 (2007), p. 51 참조.

10) 국립중앙박물관, 『강진 사당리 도요지 발굴조사 보고서』 (2015), p. 378, pl. 854; 국립중앙박물관, 『부안 유천리 도요지 발굴조사 보고서』 (2011), p. 35, pl. 27. 민족문화유산연구원, 『강진 사당리 도요지 발굴조사 보고서』 (2021), p. 244, pl. 27.

11) 기형에 관한 내용은 최혜주, 「고려시대 동자문(童子文) 청자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20), pp. 65-72 참조.

12) 『高麗史』 卷88, 列傳1, 后妃1. “元德太后柳氏…高宗二十六年薨 葬坤陵 上謚元德太后….”

13)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위의 책, p. 107.

14) A-연화, 포도 유형의 동자문이 시문된 압출양각 발의 기형은 고려 중기 주요 품종으로 새롭게 생산된 기형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된다. 관련 내용은 최혜주, 앞의 논문, pp. 65-72 참조. 압출양각 청자에 대해서는 장남원, 「高麗中期壓出陽刻 靑瓷의 性格」, 『美術史學硏究』 242·243(2004), pp. 109-115 참조.

15) 음각 기법이 3.2%, 압출양각 기법이 58.1%, 상감기법이 38.7%로 파악된다. 산출 배경은 본고의 각주 26과 같다.

16) 고려청자박물관, 『강진 사당리 고려청자 특별전』 (2016), p. 25; 전북문화재연구원, 『부안 유천리 3구역 청자요지군 발굴조사 보고서Ⅰ』 (2018), pp. 89, 81; 전북문화재연구원, 『부안 유천리 3구역 청자요지군 발굴조사 보고서Ⅱ』 (2020), p. 267, pl. 173 외 다수.

17)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 마도해역 : 시굴조사보고서』 (2017), p. 56, pl. 12;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 : 수중발굴조사보고서2』 (2018), p. 189, pl. 98.

18) 국립중앙박물관, 앞의 책 (2008), p. 54, pl. 54; 국립문화재연구소, 『개성 고려궁성』 (2009), p. 78;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울주 연자도 유적』 (2012), p. 535, pl. 430;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실상사Ⅱ 발굴조사보고서』 (2006), p. 574, pl. 556; 국방문화재연구원, 『강화 월곳리·옥림리 유적』 (2016), p. 520; 中原文化財硏究院, 『江華 玉林里 遺蹟』 (2012), p. 173, 224; 鎌倉市敎育委員會, 『鎌倉市埋藏文化財 緊急調査報告書 6』 (神奈川縣鎌倉市敎育委員會, 1990). 한성욱, 「日本 鎌倉出土 高麗靑瓷의 硏究」, 『동아문화』 1 (2005), p. 6에서 재인용.

19) 강도시기(1232~1270)는 고려왕실이 강화도에 머무른 시기로 고려궁성 운영기간의 공백기가 된다. 한나래, 「개성 고려궁성 출토 자기의 성격」, 『개성 고려궁성』 (2009), p. 164. 혜음원의 운영 시기는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파주 혜음원지 발굴조사 보고서 : 1차~4차』 (2006), pp. 365-367 참조.

20) 강화 옥림리 건물지의 경우 중성과 같은 시기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월곳리 건물지에 대해서는 태묘(1255년 이후), 최항(또는 설신)의 저택(1262년 이전), 이궁(1264년 이후 또는 1292년 경)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중원문화재 연구원, 『江華 玉林里 遺蹟』 (2012), p. 368; 국방문화재연구원, 앞의 책 (2016), pp. 453-455.

21) 삼성미술관 Leeum, 『세밀가귀』 (2015), pl. 1.

22)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동심, 한국미술에 나타난 순수의 마음』 (2008), pl. 38. 역상감 기법에 대한 내용은 김세진, 「高麗 13世紀 靑瓷 硏究」 (충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0), pp. 68-69 참조.

23) 國立故宮博物院, 『尙靑 : 高麗靑瓷特展』 (2015), p. 270.

24) 이 유형의 운문은 양식 변화의 흐름상 14세기 제작품에 나타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혜경, 「高麗時代靑瓷 雲鶴文 硏究」 (충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pp. 73-74.

25)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청자 상감 동자 포도 당초문 표형병>에 보이는 문양 양식과 같이 동자의 인체 비례가 맞지 않거나 쌍계가 경계 없이 표현되는 등 13세기의 양식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이는 전세품들이 여러 점 존재하여 14세기까지 제작이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혜주, 앞의 논문, p. 86 참조.

26) <Table 2>는 현재까지 국내외 국공립 및 사립 기관에서 공개한 동자문 청자 자료를 수집하여 제시한 것이다. 공개되지 않은 자료 및 필자가 발견하지 못한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수치가 될 수는 없겠으나 대략의 제작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 생각하여 제시하였음을 일러둔다.

27) 『陶隱集』 卷3 詩 「走筆謝眞師惠蒲萄」. “筠籠玉實纍纍堆 題封遠自梵宮來 一箇入口沈痾失 何必採藥尋蓬萊.”

28) 『東國李相國集』 卷12 古律詩 「乾聖寺帝釋殿主謙師所居樓…」; 『東文選』 卷11 五言排律 「鄭相國暉蒲萄軒次韻」; 『牧隱詩藁』 卷16 詩 「架松簷移葡萄架」; 『牧隱詩藁』 卷18 詩 「水精葡萄」 등의 내용 참조.

29) 청자는 지배 계층의 문사적 성향과 문인 문화의 형성으로 인해 완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련 내용은 장남원, 「물질문화 관점으로 본 고려청자」, 『미술사와 시각문화』 18(2016) 참조.

30) 『東文選』 卷11 五言排律 「鄭相國暉蒲萄軒次韻」. “架上蒲萄密…味珍殊可貴 酒力豈云微 試問爲州樂 何如一醉歸”; 『陶隱集』 卷3 詩 「題神孝寺息師蒲萄軒」. “…樓外蒲萄一架秋 最好滿盤堆馬乳 何須作酒博涼州.”

31) 『牧隱詩藁』 卷11 詩 「塗遇韓平齋 賞花花園…」. “…高吟薔薇亭 痛飮葡萄酒…”; 『牧隱詩藁』 卷16 詩 「詠杏」. “…華筵日日葡萄酒…”; 『牧隱詩藁』 卷31 詩 「閏月廿又四日…」. “…君王賜酒中官來 葡萄灩瀲黃金杯…”; 『謹齋集』 卷1 詩 「葡萄酒和州隱者持以勸余」의 내용 참조.

32) 『牧隱詩藁』 卷8 詩 「觀擊毬」. “…所以宮壺鴨頭綠…”; 『牧隱詩藁』 卷3 詩 「六月十五日 憶鄕里游燕」. “紫霞洞裏携壺去…玉杯瀲灎蒲萄綠…”; 『牧隱詩藁』 卷3 詩 「紀事」. “…値此太平朝 樽酒蒲萄凸….”

33) 『고려도경』에서 설명하는 탕호(湯壺)는 다탕용 주자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추정된 바 있다. ‘탕(湯)’은 기능에 따라 붙여진 용어이므로 주자 기종은 호(壺)라는 용어로 통용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宣和奉使高麗圖經』 卷31 器皿2 「湯壺」. “湯壺之形 如花壺而差匾 上蓋下座 不使泄氣 亦古溫器之屬也 麗人烹茶 多設此壺”; 장남원, 「『선화봉사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의 기명류(器皿類) 연구」, 『역사와 담론』 70(2014), p. 180. 호는 목이 길고 배가 불룩한 형태이자 준(樽), 동이[罍], 단지[甕], 항아리[甀]보다는 작은 기종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호는 현재 병기종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東國李相國集』 卷19 銘 「漆壺銘」의 내용 참조.

34) 김현아, 「마도 2호선 출수 도자기의 특징」, 『태안마도 2호선 수중발굴조사 보고서』 (문화재청·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1), p. 435.

35) 『고려도경』 기록에 의하면 Fig. 2와 같은 기종의 주 용도는 다기로 추정되나(각주33), 포도주를 담는 기물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4세기 몽골의 영향 아래 있었던 이란의 그림에는 Fig. 2와 같은 주자와 승반 세트가 등장하는데, 주자 옆에 놓인 잔에 붉은색의 액체가 담겨 있어 포도주의 주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림에 표현된 승반의 내부도 붉은색으로 묘사되어 있어 잔의 내용물이 포도주를 나타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Diez Album』 fol. 72, S. 29. 베를린국립도서관 자료 검색 페이지 참조(https://digital.staatsbibliothek-berlin.de/). 그림 속 붉은 액체가 담긴 고족배의 표현을 포도주를 담은 것으로 추정하여 논지를 전개한 연구로 김윤정, 「고려시대 왕실 연례 문화와 청자 주기(酒器): 왕권과 주기」, 『다기와 주기를 통해 본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 (고려음, 청자에 담긴 차와 술 문화 연계 학술대회 자료집, 2022)가 있다.

36) 원 황제의 포도주 하사 내용은 1285년, 1296년, 1297년, 1298년, 1302년, 1308년 기록에 등장한다. 『高麗史』 卷30 世家 卷第三十 忠烈王 11年 8月 戊辰. “元卿等還自元 帝賜王蒲萄酒”; 『高麗史』 卷31 世家 卷第三十一 忠烈王 22年 3月 己卯. “…太后賜蒲萄酒二器…”; 『高麗史』 卷 31 世家 卷第三十一 忠烈王 23年 3月 戊辰. “王詣闕 帝賜蒲萄酒”; 『高麗史』 卷31 世家 卷第三十一 忠烈王 24年 9月 丙申. “…自公主棄世 王獨處無聊 帝賜王蒲萄酒…”; 『高麗史』 卷32 世家 卷第三十二 忠烈王 28年 2月 庚寅 “帝賜王葡萄酒”; 『高麗史』 卷32 世家 卷第三十二 忠烈王 34年 2月 丁巳. “中贊崔有渰還自元 帝賜王蒲萄酒.”

37) 안축(安軸, 1282~1348)의 『근재집』에는 화주(和州) 지역의 은자가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권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화주는 함경도 영흥부(永興府)의 옛 이름으로 1217년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설치한 지역이다. 따라서 포도주의 고려 유입은 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박세욱, 「우리나라 포도와 포도주 전래에 관한 小考」, 『江原人文論叢』 16(2006), p. 255.

38) 고려청자박물관, 앞의 책 (2016), p. 3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덕수5744, https://www.emuseum.go.kr).

39) 높이와 밑지름이 약 6cm 이하이며 입지름 18~19cm의 제원을 갖는 기측선이 넓게 벌어지는 형태의 발이다. 구연 형태가 화형인 것과 아닌 것이 있으며 외면에 세로 구획선을 그은 경우가 많다(Fig. 3).

40) 국립중앙박물관, 『康津龍雲里靑磁窯址: 本文篇』 (1997), p. 102; 최혜주, 앞의 논문, p. 67.

41) 국립중앙박물관, 위의 책 (1997), pp. 223, 227; 장남원, 「高麗中期壓出陽刻 靑瓷의 性格」, 『美術史學硏究』 242·243(2004), pp. 105-107.

42) 해강도자미술관, 『康津의 靑磁窯址 : 康津靑磁窯址 地表調査報告書 第一卷』 (1992), p. 16, pl. 10.

43) 고려청자박물관, 『하늘의 조화를 빌리다』 (2019), p. 108.

44)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앞의 책, p. 95, pl. 176-1~4.

45) 지릉은 명종이 승하한 1202년에 조성되었으며, 1255년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장품은 후장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13세기 중반으로 보기도 한다. 지릉 출토품에 나타나는 역상감 기법이 곤릉(1239년), 강화 중성(13세기 중반) 출토 청자에 나타나기 때문에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본고에서도 지릉 출토 청자를 13세기 중반 경의 자료로 삼고자 한다. 한성욱, 「고려 후기 청자의 기형 변천」, 『美術史學硏究』 232(2001), p. 66; 김세진, 앞의 논문, p. 68.

46)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앞의 책 (2018), p. 266, pl. 259.

47)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앞의 책, p. 78, pl. 128, 129; 馬亦超, 『南宋杭州修內司官窯硏究』 (中國美術學院出版社, 2006), p. 266.

48) 문화재청·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마도 2호선 수중발굴조사 보고서』 (2011), pp. 208-211; 임경희, 「마도2호선 목간의 분류와 내용 고찰」, 위의 책, pp. 438-447. 동자문이 시문된 매병에 관한 내용은 최혜주, 앞의 논문, pp. 81-86 참조.

49) 조질 청자가 주로 출토되는 대전 구완동, 음성 생리, 여주 안금리, 부안 진서리, 용인 보정리 등의 요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50) 고대 무덤 속에 매납된 조형물의 아동 이미지는 당시의 장례 의식 및 사후세계에서의 역할과 관련되며, 한대 화상석에 나타난 아동은 이야기의 등장인물로서 사회에서 강조하는 가치 및 교훈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었다. Ann Barrott Wicks and Ellen B. Avril, “Introduction : Children in Chinese Art,” in Children in Chinese art, ed. Ann Barrott Wicks (Honolulu :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 pp. 2-4; Wu Hung, “Private Love and Public Duty” in Chinese Views of Childhood, ed. Anne Behnke Kinney (Honolulu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5), pp. 79-110.

51)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식물 넝쿨 장식은 5세기 이래 북위의 행정 및 상업 중심지의 건축 장식에 나타나기 시작하며 동자문을 비롯하여 여러 문양과 결합한다. James C. Y. Watt, China: Dawn of a Golden Age, 200-750 AD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4), pp. 18-19; 북위의 수도 대동(大同) 지역에서 발견된 금속제 잔에는 포도 넝쿨과 어우러진 동자문이 장식되어 있다. Jessica Rawson, Chinese ornament : the lotus and the dragon (New York : Holmes & Meier, 1984), p. 40. Wicks and Avril, 위의 책, pp. 6-8.

52) Wicks and Avril, 앞의 책, p. 8.

53) 제329굴 서벽의 구성에 대한 내용은 燉煌文物硏究所, 『燉煌莫高窟3』 (平凡社, 1992), p. 249 참조.

54) Richard Barnhart and Catherine Barnhart, “Image of Children in Song Painting and Poerty,” in Children in Chinese art, ed. Ann Barrott Wicks (Honolulu :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 p. 55.

55) 당대 그림에는 궁정 여성들이 아이를 보살피는 모습과 대야에 목욕을 시키는 장면이 나타난다. 당시 중국에서는 분만 시 아기를 대야에 받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이미지가 자손 탄생을 상징할 수 있었다. C.A.S. Williams, Outlines of Chinese Symbolism and Art Motives (New York: Dover, 1976), pp. 43-44.

56) Ellen Johnston Laing, “Auspicious Images of Children in China,” Orientations 27, no. 1 (1996), p. 48.

57) 마갈락은 어린 아이를 형상화한 상으로 마후라(摩睺羅), 마합라(魔合羅)라고도 한다. 『東京夢華錄』, 『夢梁錄』, 『武林舊事』 등의 송대 기록에 등장한다. 扬之水, 『從孩兒詩到百子圖』 (人民美術出版社, 2014), pp. 43-52.

58) 『東京夢華錄』 卷8 「七夕」. 孟元老 著, 김민호 역, 『동경몽화록』 (소명출판, 2010), pp. 286-288.

59) Laing, 앞의 논문, p. 48.

60) 최혜주, 앞의 논문, pp. 13-18 참조.

61) 『高麗史』 卷72 志 卷第26 輿服1 冠服. “宋神宗賜衣二對 各金銀葉裝柒匣盛…一條玉一十六稻 鏤塵百戱孩兒頭尾共一十事….”

62) 국내에서 출토되거나 전세되는 동자문 동경의 내용은 최혜주, 앞의 논문, pp. 107-109, 124-136 참조.

63) 하북성(河北省) 상의현(尙義縣) 대청구(大淸溝)에서 출토된 동경에 '云中縣官(花押)'의 명문이 있다. 河北省文物硏究所, 『歷代銅鏡紋飾』 (1996), pl. 251.

64) 박진경, 「金系 高麗鏡의 제작과 유통」, 『미술사학연구』 279·280(2013), pp. 71-72.

65) 정요에서는 북송 중기에 압출양각 기법이 개시되어 금대에 가장 유행하였다. 출토된 기년명 도범에 ‘大定二十四年(1184)’, ‘大定二十九年(1189)’, ‘泰和三年(1203)’, ‘泰和六年(1206)’ 등 금대 연호가 새겨진 것이 많다. 小林仁, 「優雅な白いやきもの-定窯白磁をめぐる諸問題」, 『定窯 : 優雅なる白の世界-窯址発掘成果展』 (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 2013), pp. 230-231.

66) 국내 출토 경덕진계 동자문 자기의 내용은 최혜주, 앞의 논문, pp. 107-109, 124-136 참조.

67) 上海人民美術出版社, 『中國陶瓷全集10 : 耀州窯』 (1985), pl. 79; 北京藝術博物館, 『中國耀州窯』 (中國華僑出版社, 2014), pl. 81, 102 등 참조.

68) 김윤정, 「12세기 고려청자에 보이는 宋·金代 定窯 자기의 영향과 의미」, 『야외고고학』 29(2017), pp. 44-46.

69) 국립고궁박물원 소장품 검색 페이지 참조(http://digitalarchive.npm.gov.tw); 國立故宮博物院, 『嬰戲圖』 (1990), p. 73. 고려의 청동 정병에서도 회화 장면과 같이 그려진 동자문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고토미술관 소장 <청동 은상감포류수금문 정병>에는 버드나무에 설치된 그네를 타거나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노는 활달한 동자의 모습들이 나타나 있는데, 이러한 장면은 영희도의 제재이자 고려의 여러 공예품 장식에 회화성이 내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五島美術館學藝部·大東急記念文庫學藝部, 『時代の美 : 五島美術館·大東急記念文庫の精華 第 4部(中国·朝鮮編)』 (五島美術館, 2013), pl. 60.

70) 회화 교류에 대한 내용은 홍선표, 『朝鮮時代 繪畵史論』 (문예출판사, 1999), pp. 131-138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71) 『宋史』 卷487 列傳 第246 外國三 「高麗」 “…又表求醫藥·畫塑之工以教國人 詔羅拯募願行者.”

72) 『林泉高致集』 「畫記」. “有皆作秋雨冬雪二圖 賜岐王…又作秋景烟嵐二賜高麗…”; 『高麗史』 卷14 世家 睿宗 12年 6月 癸亥. “…藏宋帝所賜親製詔書 及御筆書畵”; 『高麗史』 卷14 世家 睿宗 16年 12月 壬辰. ”御淸讌閣 以宋帝所賜書畵等物 宣示宰樞·侍臣.” 휘종이 고려 사신들에게 보여준 그림 목록에 대해서는 『東文選』 卷35 表箋 「謝宣示大平睿覽圖表」 참조.

73) 『破閑集』 卷中 「鳳城北洞安和寺 本睿王所創也」. “…顯孝皇帝優加褒賞 別賜法書名劃珍奇異物 不可勝計.”

74) 『宣和奉使高麗圖經』 卷26 「館會」. “…使副延館伴官於所館之樂賓亭 用行庖之人 而果肴器皿 皆御府所給 四筵列寶玩古器法書名畫異香奇茗 瑰瑋萬狀 精采奪目 麗人莫不驚歎 酒闌 隨所好 恣其所欲.”

75) 『高麗史』 卷18 世家18 毅宗 乙酉 19年 甲申. “內侍左右番爭獻珍玩 時右番多紈袴子弟 因宦者 以聖旨 多索公私珍玩書畵等物.”

76) 『高麗史』 卷40 世家 卷第40 恭愍王 13年 4月 辛丑. “燃燈 觀呼旗戱於殿庭 賜布”; 『高麗史』 卷41 世家 卷第41 恭愍王 15年 4月 戊午. “王觀呼旗童戱於殿庭 賜布百匹”; 『高麗史』 卷41 世家 卷第41 恭愍王 14年 6月 辛卯. “王射于佛福藏 觀群童擲草戱.”

77) 『東國李相國後集』 卷8 古律詩 「見兒童弄枳有作」. “柰何兒童 終日弄團圓 不唯弄之耳 齒嚼未遽捐”; 『東國李相國後集』 卷8 古律詩 「三月十四日 大雨雹」. “況此僅同梅子耳 團團但作兒童戲”; 『東國李相國後集』 卷1 古律詩 「草堂卽事」. “嬌娘撲蝶翩翩落 稚子黏蟬軋軋鳴”; 『東國李相國後集』 卷4 古律詩 「家圃六詠」. “兒童吹却當簫笳.”

78) 『牧隱詩稿』 卷34 詩 「群雀」. “…那知豪俠兒 挾彈張罻羅…”; 『牧隱詩稿』 卷7 詩 「卽事」. “…假面弄餘童稚鬧….”

79) 『東國李相國集』 卷20 雜著 韻語 「驅詩魔文」. “…人始之生 鴻荒樸略 不賁不華 猶花未萼 錮聰塗明 猶竅未鑿…”; 『東國李相國全集』 卷11 古律詩 「明日尹君復見和次韻寄答」. “…嬰兒氣祕三關固 幼婦詞高萬口喧…”;『破閑集』 卷下 「士子徐文遠 與權公惇禮 自小相友愛 俱儒門子弟也」. “…夫鍾天所賦 生而有之 不可以因物而遷…; 『東國李相國後集』 卷8 古律詩 「次韻李侍郞上晉陽公女童詩呈令公」. “…只爲伶才生得耳 不然齕齒慣知何…”; 『東國李相國全集』 卷22 雜文 論 「書司馬溫公擊甕圖後」의 내용 참조.

80) 『牧隱詩藁』 卷28 詩 「新沐」 “ 三郞新沐罷 和氣郤陰邪…善保千金子 文章早起家.”

81) 『東文選』 卷8 七言古詩 「擊甕圖」. “伊誰畵此擊瓮圖 掛君書堂之座隅 總角斑衣髫稚容 逈然自與凡兒殊 知是司馬相公眞 竦然軒眉久睢盱 畵師經營有深意….”

82) 『東國李相國全集』 卷22 雜文 論 「書司馬溫公擊甕圖後」.

83) 『東國李相國後集』 卷9 古律詩 「復次韻李侍郞重和雪詩廻文」. “…狂童戲衷拳貪掬 妙匠心中手宛描….”

84) 왕실 그릇과 장식 기물을 관리하던 중상서에 무관직인 화업지유를 두었고, 군기감에는 깃발 그림을 담당하는 장인 기화업이 소속된 것이 확인된다. 『高麗史』 卷80 志34 食貨3 祿俸 諸衙門工匠別賜 中尙署. “米十五石[畫業指諭一]….”; 『高麗史』 卷80 志34 食貨3 祿俸 諸衙門工匠別賜 軍器監. “…稻十五石[…旗畫業行首校尉一]….” 김세린, 「高麗時代 金屬象嵌技法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pp. 144-145.

85) 홍선표, 앞의 책, pp. 136-137.

86) 이녕은 고려 예종대 화국에 소속되어 있었던 화원으로 그림 실력이 출중하였다 전한다. 『高麗史』 卷122 「列傳」 卷35 「方技」 ‘李寧’條 참조.

87) 고려청자의 죽육학문, 화조충문, 물가풍경문에서 송대 회화와 유사한 표현이 발견된다. 김윤정, 「고려청자 문양의 詩·畵적 요소와 도상의 독창성」, 『미술사학』 28(2014), pp. 367-374.

Fig. 1.
<청자 압출양각 포도 동자문 발> Celadon Bowl with Relief Design of Grape Scroll Child, 12~13th Century, Koryŏ, h. 7. 3cm, d. 19.4cm, Excavated from Hyeŭmwŏn (Excavation Report of Hyeŭmwŏnji Site in Paju: 1-4, p.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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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청자 포도 동자문 표주박 모양 주자>, Gourd-shaped Celadon Ewer with Inlaid Grapes and Boys Design in Underglaze Copper-painted Decoration, 13th Century, Koryŏ, h. 34.5cm,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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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청자 압출양각 연지동자문 화형 발>, Celadon Bowl with Pond and Child Design in Relief, 12th Century, Koryŏ, h. 5.6cm, d. 18.1cm,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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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청자 상감 포도 동자문 발>, Celadon Bowl with Inlaid Child Design, 12~13th century, Koryŏ, h. 7.7cm, d. 19.2cm,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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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청자 상감 동자 모란 당초문 완>, Celadon Bowl with Inlaid Child Design, 12~13th century, Koryŏ, h. 5.2cm, d. 10.5cm,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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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청자 상감 여지 당초문 발>, Celadon Bowl with Inlaid Lychee Design, 12~13th century, Koryŏ, h. 8.4cm, d. 19.8cm,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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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청자 상감 동자문 매병>, Prunus Vase with Clouds, Flying Cranes, and Children amid Bamboo, 12~13th century, Koryŏ, h. 33.3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rtic. edu/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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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돈황 막고굴 제329굴 서벽>, The West Wall of cave 329, Mogao caves, Early Ta ng, Gansu, China (e-dunhu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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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백자 모란 당초 동자문 접시>, White Porcelain Dish with Peony Scroll and Child Design, Jin, h. 3.6cm, d. 19.7cm, Excavated from Kaesŏng,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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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백자 모란 당초 동자문 발 (좌)>, Detail of Foliate Rimmed White Porcelain Bowl with Peony Scroll and Child Design (Left), Northern Song to Jin, h. 7.5cm, d. 20.4cm, National Palace Museum (Decorated porcelains of Dingzhou, pl. Ⅱ-109)
<청자 압출양각 동자 당초문 발 (우)>, Detail of Celadon Bowl with Lotus Scroll and Child Design, 13th Century, Koryŏ, h. 7. 6cm, d. 19.0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collections.m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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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청자 상감 모란문 은테 발>, Silver-rimmed Celadon Bowl, 13th Century, Koryŏ, h. 7.9cm, d. 18.8cm, Excavated from Kaesŏng, National Museum of Korea (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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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백자 양각 모란문 발>, Bowl with Three Boys amid Peony Scrolls, Song, h. 5.3cm, d. 19.4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rtic.edu/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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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3.
소한신 (蘇漢臣), <장춘백자도 (長春百子圖)> 의 일부, One Hundred Children in the Long Spring (detail), 12 th Century, Song, 30.6×521.9cm, National Palace Museum (Complete Works of Chinese Painting 6,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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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4.
<청자 압출양각 연지동자문 화형 발 (상)>과 <장춘백자도 (하)>의 세부 표현, Details of a Pond and Child Design on Koryŏ Celadon (upper section, Fig. 3) and One Hundred Children in the Long Spring (lower section, Fig.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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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5.
<청자 상감 동자문 매병 (Fig. 7)>과 <장춘백자도 (Fig. 13)>의 세부 표현 Details in Vase with Clouds, Flying Cranes, and Children amid Bamboo (Fig. 7) and One Hundred Children in the Long Spring (Fig. 13)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rtic.edu/ collection; Special Exhibition of Paintings of Children Playing, pp. 17,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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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6.
<파초 동자 유희문 동경 (芭蕉童子遊戱文 鏡)>, Bronze Mirror with Plantain and Playing Children Design, Song or Yuan, d. 23.6cm, Excavated from Kaesŏng, National Museum of Korea (Children in korean art and culture, pl.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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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7.
<초석영희도 (蕉石嬰戲圖)>, Plantain and Playing Children, Southern Song, 13.7×15.0cm, National Palace Museum (Complete Works of Chinese Painting 6, p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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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Type A of Lotus Scroll Molded R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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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2.
Celadon with Child Design - Type A
Bowl Dish Bottle Ewer Prunus vase Covered box Other Total
Lotus 41 18 4 1 64
Grape 29 5 5 11 9 3 62
Other 5 2 2 3 12
Total 75 25 5 13 9 4 7 138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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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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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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