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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14; 2022 > Article
해인사의 『대방광불화엄경(진본)』 (‘수창판’) 開板과 계승

Abstract

본 논문은 합천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진본 화엄경』 45권 21장인 소위 ‘수창판’의 특징과 그 계승을 분석한 논문이다. 해인사에는 1098년 수창 4년에 제작된 경판이 남아 있다. 수창판은 장석을 사용하지 않았고, 권말에 음운이 있으며, 경판의 바닥면 판각이 거칠며, 함차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기초로, 현재 해인사에 남아 있는 사간판 중복판 『진본 화엄경』 35판을 분석한 결과, 35판 가운데 2판이 수창판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26판도 수창판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 현재 국보로 지정된 해인사 소장 3본 화엄경은 각수의 분석, 경판의 형태, 그리고 사간판 배면에 남아 있는 고려대장경판의 존재를 통해 고려대장경판 『진본 화엄경』과 『주본 화엄경』이 판각되기 최소 5년 전에 판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논문은 수창판, 사간판 『진본 화엄경』, 고려대장경판 『진본 화엄경』을 비교하여 매우 중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간판 『진본 화엄경』은 수창판의 복각한 것이고 고려대장경판 『진본 화엄경』은 사간판의 복각본이었다. 이는 해인사에서 수창판을 판각한 이래 이 인경본이 고려에서 널리 유행한 결과로 이해된다. 화엄사찰인 해인사는 11세기말부터 화엄경 주요한 화엄경 판각처였고 이것이 고려대장경판이 제작된 13세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so-called "Suchangpan" and it’s succession. In Haeinsa, there remains the wood block, “Suchangpan” made in 1098. The hinge wasn’t used in “Suchangpan”, there was a pronunciation at the end of the volume, the bottom had a rough engraving, and the index was described in the first of the volume. Based on these characteristics,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35th edition of Avatamsaka Sutra Woodblock Translated by Buddhabhadra in Haeinsa, it was confirmed that two of the 35th edition were “Suchangpan”, and the 26th edition was likely to be ones.
Meanwhile, through the analysis of engraver, the shape of the wood block, and the presence of some letters of Tripitaka Koreana in back side of Avatamsaka Sutra Woodblock translated by Buddhabhadra, it was confirmed that the three edition of Avatamsaka Sutra Woodblock(Saganpan) was engraved at least 5 years earlier than the year, 1237 when the Tripitaka Koreana began to engrave
The Avatamsaka Sutra Woodblock(Saganpan) translated by Buddhabhadra in Haeinsa, was a reprint of the Suchangpan, and Tripitaka Koreana was a reprint of Avatamsaka Sutra Woodblock in Haeinsa. Haeinsae, a Huayan temple, has been a major engraving site of Avatamsaka Sutra Woodblock since the end of the 11th century, which lasted until the 13th century when Tripitaka Koreana was produced.

Ⅰ. 머리말

법보종찰 합천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사간판 가운데에는 수창 4년(1098, 고려 숙종 3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大方廣佛華嚴經(晉本)』 45권 21장 이른바 ‘수창판’이 남아 있다. 수창은 요나라의 연호로 원래는 壽隆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의 부친 王隆과 글자가 같아 피휘하여 수창이라 했다.
‘수창판’은 일제강점기인 1942-43년의 사간판 조사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한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은 해인사에는 완질의 3본 화엄경 즉 『대방광불화엄경(晉本)』 (60화엄, 이하 『화엄경(진본)』), 『대방광불화엄경(周本)』(80화엄, 이하 『화엄경(주본)』), 『대방광불화엄경(貞元本)』(40화엄, 이하 『화엄경(정원본)』)이 남아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특히 사간판 3본 화엄경 가운데 중복판이 다수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중복판인 『화엄경(진본)』 권45 21장의 말미에 수창 4년이라는 간지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후지타는 이 경판이 수창 4년(1098) 제작된 것이 아니라 고려말 혹은 조선 세조 연간에 손상된 원판 혹은 인경본을 그대로 복각한 경판으로 추정하였다.1
해방 후 해인사 고려대장경판(국간판)2 및 사간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수창판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조사에서 수창판이 복각판이 아니라 수창 4년에 제작된 경판임이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수창판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판이 되었다.3 후지타가 수창판을 복각판으로 이해했으나 수창판이 수창 4년 제작된 원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수창판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과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때문에 해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수창판의 총 수량도 논자들에 따라 이견이 매우 컸다. 서수생은 해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3본 화엄경 중 다수의 중복판 즉 진본 33판 62장, 정원본 37판 66장, 주본 64판 111장의 존재를 지적하면서 이들 중복판이 수창판일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이에 반해 사간판 진본, 주본, 정원본 3본 화엄경 모두를 수창판으로 이해하기도 했다.4 다만 최근 사간판 3본 화엄경 각수와 고려대장경 3본 화엄경 각수를 비교하여 두 각수들 사이에 동일인이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져 사간판 3본 화엄경은 고려대장경판과 같은 시기에 판각되었음이 확인되었다.5
따라서 해인사 수창판의 정확한 수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간판 3본 화엄경 중복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사간판 3본 화엄경 중복판 가운데 수창판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여기서는 우선 수창판의 형태적 특징을 먼저 살펴볼 것이다. 수창판의 형태적 특징은 현재 남아 있는 수창판인 『화엄경(진본)』 45권 21장의 형태와 수창판으로 알려진 인경본 검토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한편 수창판과 사간판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국보로 지정된 사간판 3본 화엄경의 판각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것이다. 선행연구에서 사간판 3본 화엄경이 고려대장경판과 같은 시기에 개판되었다는 점이 규명되었다고 하더라도, 사간판 3본 화엄경이 고려대장경 3본 화엄경 보다 앞선 시기에 판각되었는지, 같은 시점인지, 고려대장경 판각 이후 시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사간판 3본 화엄경의 판각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수창판과의 연관성을 살펴볼 것이다. 더불어 사간판과 고려대장경판도 비교 검토하여 양자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표적 화엄사찰인 해인사가 일찍부터 경전 판각처였음을 규명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려대장경 판각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6

Ⅱ. 수창판의 형태적 특징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판인 ‘수창판’이 해인사 사간판전에 봉안되어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수창판의 형태적 특징은 아직 본격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필자는 법보종찰 해인사의 배려로 해인사 수창판 및 사간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해인사에 봉안된 『화엄경(진본)』 45권 21장의 끝에는 “迦耶山海印寺 依止僧 成幹(軒?) 特爲 天長地久之願 施財開此卷普施 壽昌四年戊寅三月 日謹記”라는 명문이 있어 이 경판이 수창 4년(1098, 고려 숙종 3)에 해인사 승려의 시주에 의해 개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창판의 양쪽 마구리는 유실되어 현대 보수하였다. 마구리를 제외하면 수창판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판면의 마모도도 높지 않고 비틀림이나 균열도 크게 확인되지 않았다. 현대 수리된 마구리를 제외한 전체 규격은 (Fig. 1)과 같다. 마구리를 제외한 전체 경판의 길이는 55.9cm, 너비는 24.2cm, 두께는 1.9cm이다.
수창판은 사간판 『화엄경(진본)』, 고려대장경 『화엄경(진본)』과 비교하여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수창판은 마구리 부분에 장석을 결구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주지하듯이 고려대장경판에는 마구리와 경판을 결구하기 위해 장석이 사용되었고 장석의 결구를 위해서는 철제 못을 사용했다. 따라서 장석이 결락되더라도 철제 못을 박은 흔적이 경판에 남을 수밖에 없다. 고려대장경판과 마찬가지로 『화엄경(진본)』 45권 21장에도 장석이 결부되어 있다. 이에 반해 수창판은 못을 결구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수창판에는 마구리는 결구되었지만 별도의 장석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수창판의 두 번째 특징은 板題의 표기 방식이다. 수창판은 판제가 앞쪽에 있는 판수제 형태이며 경명, 장차가 기재되어 있다. 수창판의 경명은 ‘晉 四十五’로, 있고 장차는 ‘二十一’ 이다. 따라서 수창판은 경명과 장차가 경판의 말미에 있는 판미제가 아니라 판의 서두에 있는 판수제 형태이고 경전의 명칭은 ‘진’으로 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명 표기는 사간판 『화엄경(진본)』에 그대로 수용되고 있으며 고려대장경판의 경우는 다소 다르게 명기되어 있다. 사간판 『화엄경(진본)』의 경우 각수 ‘公’이 표기되어 있는 것이 차이일 뿐이다. 이에 반해 고려대장경판의 경우는 ‘晉經第四十五 第二十一幅 問’이라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의 問은 함차이다.
수창판의 또 다른 특징은 수창판의 판각형태에서도 확인된다. 수창판은 바닥면이 거칠게 처리되어 있고 경판 공백면이 더 깊게 파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판각용 칼자욱이 경판 바닥면에 확연하다. 이에 반해 사간판은 행간의 바닥면이 비교적 정연하게 판각되어 있다. 따라서 경판의 판각상태에서도 수창판과 사간판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Fig 2).
수창판의 가장 중요한 네 번째 특징은 현재 남아 있는 수창판 인경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국보(202호)로 지정되어 있는 『화엄경(진본)』 37권의 말미에는 수창판과 유사한 간기가 남아 있다. “고려국 합주호장 동정 이필선이 위로는 사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유를 적시기를 서원하면서 재물을 내어 화엄경 37권을 조판합니다. 때는 수창 4년 5월입니다(高麗國陜州戶長同正李 必先 上報四恩 下滋三有之願 施財雕版 花嚴經 第三十七卷 時壽昌四年 五月 日 記)” 해인사가 위치한 합천의 호장이 시주에 참여하였다는 점, 시주내용을 표기하는 방식, 권말에 음운이 기재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국보 『화엄경(진본)』 37권은 수창판의 인경본 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국보 37권의 첫 장을 보면 흥미로운 사항이 확인되는데 경전명 아래에 함차가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다(Fig. 3). 따라서 수창판의 권두에는 함차가 명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현재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8건의 『화엄경(진본)』 인경본 가운데 함차가 표기되어 있는 경우는 앞서 살펴본 37권을 제외하면 1건 확인된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금은 해인사 성보박 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화엄경(진본)』 53권의 서두에는 함차가 있다. 판수제의 형태도 ‘晉五十三二十’으로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어 수창판의 형태와 같음을 알 수 있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화엄경(진본)』 27권의 경우 ‘玄’이라는 함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정리하면, 수창판은 함차가 있고, 판수제이며, 장석이 결구되지 않았으며, 독특한 판각 수법이 확인된다. 이러한 점을 토대로 현재 해인사 사간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중복판과 비교해 보았다. 현재 해인사 사간판전에는 사간판 3본 화엄경 중복판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Table 1). 현재 남아 있는 수창판이 『화엄경(진본)』이므로 『화엄경(진본)』 중복판을 살펴보았더니, 수창판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 경판이 확인되었다.
우선 중복판 『화엄경(진본)』 35판 모두 장석이 결구된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함차의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현재 남아 있는 중복판 가운데 함차가 기재될 수 있는 권수판 즉각 권의 첫 번째 경판은 『화엄경(진본)』 10권 1-2장, 29권 1장, 51권 1-2장 3판이다. 이들 경판 가운데 1장에 해당하는 경판 중 함차가 기재되어 있는 경판은 51권 1-2장이다. 51권 1-2장에는 ‘大方廣佛華嚴經卷第五十一’ 이라는 권제 아래 함차인 宙가 판각되어 있다(Fig. 4). 특히 주목되는 점은 함차의 배열이다. 국보인 수창판 『화엄경(진본)』 권37의 함차는 黃이고, 보물인 『화엄경(진본)』 53권 함차는 宙인데 중복판 『화엄경(진본)』 51권 1-2장의 함차 역시 宙이다.
고려대장경판의 경우, 거의 대다수가 10권 1함의 함차 배열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근거로 수창판 『화엄경(진본)』의 함차 배열을 추정해 보면, 1~10권 天함, 11~20권 地함, 21~30권 玄함, 31~40권 黃함, 41~50권 宇함, 51~60권 宙함이 된다. 이는 현재 전하고 있는 경판과 인경본의 함차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즉 37권의 함차가 黃, 51권과 53권의 함차는 宙이므로 추정 함차 배열과 같다. 따라서 현재 해인사 사간판전에 보관되어 있는 『화엄경(진본)』 중복판 51권 1-2장은 수창판으로 판단된다(Fig. 4). 51권 1장의 경우 경판 여백면의 판각 형태는 칼자욱이 뚜렷하고 거칠어 수창판과 흡사하다.
수창판으로 판단되는 51권 1장에는 광곽 외부에 각수가 음각되어 있다. 좌우반전 된 사진상 권제 우측에 ‘逈’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해당 경판을 판각한 각수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형’이라는 각수가 기재되어 있는 경판 역시 수창판일 것이다. 중복판 35판 가운데 ‘형’이라는 각수명이 음각되어 있는 경판은 59권 11-12장이다. 이 경판의 판수제는 11장 ‘晉五十九十一’, 12장 ‘晉五十九 十二’로 기재되어 있어 수창판과 같으며 판각 형태 역시 수창판과 매우 유사하다(Fig 5). 따라서 현재 해인사 사간판전에 소장되어 있는 사간판 중복판 『화엄경(진본)』 35판 가운데 2판은 수창판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1장에 함차가 기재되지 않은 10권 1-2장, 29권 1장은 수창판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사간판 『화엄경(진본)』 중복판 35판 가운데 나머지 31판에서도 수창판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경판들이 있다. 23권 12장은 권수제가 ‘晉經第二十三 十二卜’ 32권 10장은 ‘晉經第三十二 十幅’ 33권 4-5장은 권수제가 각각 ‘晉經第三十三 四幅’ ‘晉經第三十三 五’로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판수제 표기형태는 수창판과 기본적으로 달라 이들 경판을 수창판으로 보기 어렵다. 차이는 판수제 표기 형태뿐 아니다. 판각 형태 역시 수창판과 거리가 있다. 이들 경판은 각 행 사이에 칼자욱이 선명해 수창판의 그것과 다르다. 이들 경판이 언제 판각되었는지는 현재로는 확언하기 어려우나 수창판 보다는 후대에 제작된 경판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8
『화엄경(진본)』 중복판 35판 가운데 수창판이 2판, 수창판으로 볼 수 없는 경판이 5판(7장) 확인되었다. 나머지 28판 가운데 5권 21-22장과 10권 19-20장은 손상이 심각해 판수제를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반해 26판은 판각형태와 판수제 표기가 수창판과 동일하여 수창판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으나 이는 과학적 조사 등 정밀조사를 통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Ⅲ. 사간판 3본 화엄경의 제작시기

사간판 3본 화엄경의 조성시기는 이미 선행연구에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내려진 상태이다.9 사간판 3본 화엄경의 각수와 고려대장경판의 각수 가운데 동일인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두 경판은 유사한 시기에 판각되었을 것이다. 다만 선행연구에서는 각수의 중복만 확인하였지 사간판 『화엄경(진본)』전체 각수를 분석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전체 각수를 분석해 중복여부를 살펴보았다. 사간판 『화엄경(진본)』의 판각에 참여한 각수는 경판에 각수가 기재되지 않은 경판, 각수의 판독이 용이하지 않은 장을 제외하면 대략 16명 정도로 추정된다<Table 2>. 사간판 『화엄경(진본)』의 각수는 광곽 내부 판수제 아래에 기재되어 있으며 이름 2자를 모두 기재한 경우와 1자만 기재한 경우로 구분되는데 1자만을 기재한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 아래 표에서는 전체 이름을 복원하여 제시하였다.
사간판 『화엄경(진본)』의 판각에 참여한 각수들 16명 가운데에는 고려대장경판(국간판) 『화엄경(진본)』의 판각에 참여한 각수는 4명이 확인되었다. 사간판 총 128장을 판각한 惠耳(惠二)는 고려대장경판 『화엄경(진본)』 26장을 판각하였으며, 사간판 55장을 판각한 山甫(山寶)는 고려대장경판 8장을 판각하였으며, 사간판 9장을 판각한 應甫는 고려대장경판 40장을 판각하였으며, 사간판 2장을 판각한 唐文은 고려대장경판 42장을 판각하였다. 한편 惠珎, 元升, 公甫 등은 『화엄경(진본)』은 아니지만 역시 고려대장경판의 판각에 참여하였다. 공보는 고려대장경판 『화엄경(주본)』 6권의 각수이며, 혜진은 『방광바라밀경』 2권의 각수이며, 원승은 『마하반야바라밀다경』 19권의 각수이다.
따라서 사간판 『화엄경(진본)』과 고려대장경판 『화엄경(진본)』은 동일한 각수들이 참여하였으며 제작시기는 한 세대가 활동하였다고 생각되는 30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양상은 『화엄경(주본)』에서도 확인된다. 사간판 『화엄경(주본)』의 각수도 고려대장경판의 판각에 참여하였다. 『화엄경(주본)』 13권 2장의 각수인 臣保는 고려대장경판 『대보적경』 65권 3장을 판각하였다. 그러므로 사간판 『화엄경(주본)』 역시 고려대장경판이 판각되던 즈음 판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대장경판 3본 화엄경과 사간판 3본 화엄경이 같은 시기에 판각되었다면 문제는 두 경판 중 어느 경판이 먼저 판각되었는지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려대장경판 3본 화엄경의 판각연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고려대장경판 각 권의 말에는 간기가 남겨져 있어 해당 경판이 언제 판각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고려대장경판은 통상 10권을 1函에 넣어 천자문에 따라 함으로 분류되어 있고, 앞선 함일수록 판각 시기가 빠르다. 예를 들어 경번호가 1(K-1)이고 天함인 『大般若波羅蜜多經』1~10권은 1237년 정유년에 판각되었다. 경번호 78(K-78)이고 殷함인 『寶星陀羅尼經』1~10권은 1240년과 1241년에 판각되었다. 경번호가 81(K-81)이고 臣함인 『信力入印法門經』1~5권도 1240년과 1241년에 판각되었다. 이에 반해 경번호가 79인 『화엄경(진본)』과 80인 『화엄경(주본)』은 1244년과 1245년에 판각되었다. 『화엄경』만 판각 연도가 3~5년 정도 늦게 판각된 것이다.10 고려대장경판 『화엄경(진본)』과 『화엄경(주본)』만 늦게 판각된 이유를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사간판 3본 화엄경의 판각으로 인해 고려대장경판 3본 화엄경의 판각이 늦어졌을 가능성은 상정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경판의 형태를 통해서도 추론할 수 있다. 사간판과 고려대장경판 모두 장석을 철제 못으로 고정했으나, 크기에는 차이가 있다. 고려대장경판이 사간판보다 두껍고 크기도 크다. 마구리가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경판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사간판은 전체 길이가 63cm 내외이고 고려대장경판은 70cm 내외이다. 두께도 차이가 있는데 사간판은 2.3cm 내외인 반면 고려대장경판은 2.8~3.3cm 정도였다(Fig. 6). 그런데 사간판의 크기는 오히려 수창판과 거의 같다. 마구리를 제외한 길이가 수창판의 경우 55.9cm였고 사간판 『화엄경(진본)』 1권 16장 역시 55.9cm였다. 사간판은 수창판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고 고려대장경판은 새로운 크기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형태를 고려하면 사간판이 고려대장경판보다 먼저 판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간판이 고려대장경판보다 먼저 제작되었다는 점은 사간판 『화엄경(주본)』 48권 16장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고려대장경판과 마찬가지로, 사간판 3본 화엄경은 양면으로 판각된 경우가 대부분이나, 몇몇 경판의 경우 단면으로 판각되었다. 그런데 일부 단면 경판의 배면에는 해당 경판의 일부만 판각하다가 중지한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배면을 판각 수련용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화엄경(주본)』 48권 16장의 배면에도 경판 내용의 일부가 판각되다 중단되어 있다. 판각이 중단된 경판 가운데에는 『화엄경(주본)』 65권 4장의 일부와 『摩訶般若波羅蜜多經』 25권 13장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서로 다른 두 경판이 판각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특정 경판을 판각하다 실패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배면 경판은 각수자가 판각을 수련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수련용 배면 경판의 내용의 『摩訶般若波羅蜜多經』 25권 13장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화엄경(주본)』 48권 16장을 판각할 당시 『마하반야바라밀다경』 25권 13장의 판각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각수의 존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 25권 13장의 각수는 釋光(石光)11인데 석광은 사간판 『화엄경(주본)』 48권 17장의 각수이기도 하다. 『화엄경(주본)』 48권 17장의 판수제 아래에는 ‘石’이라는 각수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각수의 이름을 1자로 기재하는 사간판 3본 화엄경의 특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해인사 사간판전에 소장되어 있는 『화엄경수소연의초』하권 6-7장의 각수는 석광인데 6장에는 이름 2자를 모두 기재하였지만 7장에는 석만 기재하였다. 따라서 석은 석광임을 알 수 있다. 동일한 각수가 판각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간판 『화엄경(주본)』은 『마하반야바라밀다경』 25권이 판각된 1238년 이전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Fig. 7).
이처럼 고려대장경판 3본 화엄경의 판각 시기가 늦은 점, 사간판이 수창판과 형태적으로 유사하다는 점, 무엇보다 사간판 『화엄경(주본)』 48권 16장의 배면에 남아 있는 고려대장경판 『마하반야바라밀다경』 25권 13장의 흔적과 동일한 각수가 판각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간판 3본 화엄경은 고려대장경판이 판각되기 전 해인사에서 새로 개판된 것으로 판단된다.

Ⅳ. 해인사의 화엄경 판각 전통

수창판과 해인사 사간판 『화엄경(진본)』의 크기가 유사하다는 점은 양자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수창판과 사간판 『화엄경(진본)』을 조사해 보면 두 경판은 여러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우선 행자수가 같고 권말에 음운이 있다. 초조본 『화엄경(진본)』의 권말에는 음운이 없으나12 수창판에는 음운이 있어 음운은 행자수와 더불어 초조본과 구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창판의 음운은 기본적으로 사간판 『화엄경(진본)』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창판과 수간판은 경판의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다(Figs. 8, 9).
수창판의 마구리는 현대에 보수된 것이므로 마구리를 제외한 경판 길이를 계측해 보면 수창판은 55.9cm이고 사간판은 56.4cm로 큰 차이가 없다. 폭 역시 수창판은 24.2cm, 사간판은 23.5cm로 거의 같다. 두 경판의 유사성을 확인하기 위해, 1행부터 끝행까지 계측해 보았더니 수창판은 42.2cm이고 사간판은 42.1cm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세로의 경우 1자부터 17자까지 계측하니 수창판은 23cm, 사간판은 22cm였다.
수창판과 사간판의 유사성은 크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글자 형태 역시 매우 유사하다. 음운에 새긴 글자의 형태는 수창판과 사간판이 거의 유사하다. 유사성 확인을 위해 수창판과 사간판의 본문과 음운 2곳을 비교해 보았다<Table 3>.
위의 표에서 확인되듯이, 輪자와 生의 크기와 자형은 수창판과 사간판이 모두 일치한다. 음운에서도 가운데 행의 길이가 유독 짧은데 이 부분도 일치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사간판은 수창판의 복각판으로 판단된다.
복각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또 다른 수창판으로 판단된 중복판 51권 1장을 사간판 51권 1장과 비교해 보았다<Table 4>. 광곽 좌우 길이는 중복판과 사간판이 51.0cm로 동일했고 권제부터 마지막 24행까지의 길이는 중복판이 48.8cm, 사간판이 48.3cm였다. 곽광 상하의 길이는 중복판이 23.5cm, 사간판이 22.7cm였고 24행 1자부터 17자까지의 길이는 중복판이 23.1cm, 사간판이 22.3였으며 권제의 길이는 중복판이 15.8cm, 사간판이 15.3cm이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전체 판형은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서체 및 글자 판각의 유사성은 더욱 크다. 德과 山의 크기, 德의 자형은 두 경판이 같다. 권제와 역자 표기 부분 역시 간격이 모두 일치해 사간판이 중복판의 복각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13세기 초엽에 판각된 사간판은 이전의 수창판을 복각하여 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해인사는 11세기 말 『화엄경(진본)』을 판각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13세기 초엽 해인사에서 판각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될 즈음 『화엄경(진본)』을 복각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간판과 고려대장경판의 차이는 어떨까? 우선 고려대장경판 가운데 3본 화엄경은 다른 고려대장경판과 행자수에서 차이가 있다. 고려대장경판의 거의 대다수는 초조대장경과 같이 23행 14자의 행자를 취하고 있다. 반면, 3본 화엄경만은 유독 24행 17자이다. 때문에 3본 화엄경은 ‘사찰본’을 판본으로 하였음이 일찍부터 지적되었다.13 따라서 사간판 『화엄경(진본)』과 고려대장경판 『화엄경(진본)』을 비교해 복각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화엄경(진본)』 1권 8장, 16장, 17장을 비교해 보았다<Table 5>.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려대장경판과 사간판은 전체 크기가 상이하다. 그러나 1행에서 24행까지, 1자에서 17자까지의 크기는 거의 같다. 8장의 경우, 1행에서 24행까지가 사간판은 48cm, 고려대장경판은 48.5cm이며 1자부터 17자까지의 거리는 사간판과 고려대장경판이 21.0cm로 동일하다. 16장의 경우 글자의 상하 간격이 3.8cm, 3.7cm로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경판의 판각형태를 고려하면 고려대장경판은 사간판의 복각판으로 판단된다.
글자의 판각 형태에서도 동일한 부분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예를 들어 사간판 『화엄경(진본)』 1권 8장 24행 하단의 16, 17자인 ‘妙光’은 우측으로 약간 비겨져 판각되어 있다. 이는 각수를 새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고려대장경판 1권 8장에도 똑같이 나타나 있다. 11권 10장의 사례는 더욱 흥미롭다. 사간판 11권 10장의 우측 상면에는 경판이 약간 기울어 있고 이 때문인지 글자 역시 기울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대장경판 11권 10장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음운의 표기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음운은 통상 2글자씩 기재하였다. 윗 글자는 上으로 아래글자는 下로 표기하여 그 음을 설명하였는데, 만약 1글자만 설명할 경우 상과 하 가운데 하나만 판각하였다. 그런데 이때 상 혹은 하를 행 중심에 표기하기도 하고 행의 좌우로 치우치게 표기하기도 하여 규칙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음운 표기방식 역시 사간판과 고려대장경판은 일치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18권 22장이다. 18권 22장 ‘윤택 앞글자는 如와 順의 반절이다(潤澤 上如順切)’에서 上자는 지나치게 우측으로 치우쳐 있는데, 사간판과 고려대장경판은 모두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5권 22장의 경우 下를 판각하였으나 내용은 판각하지 않았는데 고려대장경판에서는 이 부분까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사간판을 판본으로 판각하지 않으며 발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Table 6>.
다만 복각과정에서 자획이 바르지 못한 부분은 고려대장경판에서 새롭게 수정되기도 했다. 4권 1장의 경우 사간판에서 자획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고려대장경판에서는 수정되었다. 사간판에서 不자는 획의 일부가 치우쳐 있고 行자는 획의 일부가 결락되어 있음이 인경본과 경판에서 확인되고 있으나, 이후 고려대장경판에서 확실히 수정되어 분명해졌다. 6권 21장의 경우 사간판에는 ‘切’이 누락되었으나 고려대장경판에서는 ‘切’을 추가하여 판각하였다. 이처럼 사간판을 판하본으로 하여 복각하면서도 고려대장경판에서는 사간판의 자획이 불분명하거나 글자가 누락되었을 경우 수정하여 경판을 보완하였다<Table 7>. 따라서 고려대장경판이 사간판을 복각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일부 수정을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해인사 사간판이 고려대장경판의 판본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해인사 수창판 혹은 사간판 인경본이 고려대장경판 인경 당시 상당히 유행했기 때문이었다. 해인사 3본 화엄경이 당시 유포되어 있었던 사실은 국보로 지정된 『화엄경(주본)』 6권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화엄경(주본)』 6권 1장에는 ‘海東沙門 守其藏本’이라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수기대사가 소장하고 있던 이 『화엄경(주본)』은 24행 17자이며 권말에는 음운이 있는 해인사 사간판과 동일판본이다. 다만 수기대사의 이 본이 현전하는 사간판 본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판각한 경판의 것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당시 해인사 소장 판본이 유행하고 있었던 사실은 현전하는 3본 화엄경 인경본 현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3본 화엄경 인경본은 총 29건이다. 이 가운데 초조본이 9건, 26행 17자본이 1건, 나머지 19건은 모두 24행 17자로 해인사 사간판과 같은 행자수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화엄경의 경우 해인사 간행본이 상당히 유행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해인사에서는 11세기말 『화엄경(진본)』을 간행한 이래, 해당 판본을 저본으로 현재 국보로 지정된 사간판을 13세기 초에 판각하였고, 이 판본은 고려대장경판의 판각에도 이용되었다. 때문에 3본 화엄경 사간판과 고려대장경판의 인경본은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해인사의 사간판 『화엄경(진본)』이 고려대장경판의 판각에 이용된 것은 이 본이 당시 상당히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고려대장경판을 교감한 수기대사 역시 이 본을 소장하고 있었던 점, 현전하는 국가 지정 문화재 3본 화엄경 인경본 중 다수가 해인사 인경본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9세기 창건된 해인사는 화엄 10찰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화엄사찰이다. 화엄사찰 해인사는 11세기말 이래 화엄경을 판각하여 소장하고 있었으며 이 판본을 인경하여 유포하였다. 고려대장경판에 해인사 소장본이 판본으로 활용된 점을 고려하면, 화엄사찰로서 해인사가 화엄경전의 판각과 유통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더 주목되는 점은, 고려대장경 『화엄경(진본)』과 사간판 『화엄경(진본)』의 판본이 같다는 사실과 두 경판의 각수가 일치한다는 사실과 사간판 배면에 고려대장경판의 내용 일부가 판각되어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들은 해인사 혹은 가야산 일원이 고려대장경판의 판각처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시한다. 다만 이 문제는 현재 학계에서 논의 중이므로 추후 연구과제로 삼으려 한다.

Ⅴ. 맺음말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화엄경(진본)』 45권 21장은 수창 4년(1098) 제작된 경판이다. 이른바 ‘수창판’으로 알려진 이 경판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이다. 해인사에서 판각한 수창판은 4가지 특징이 확인된다. 수창판은 장석이 없고, 판수제를 채택하고 있고, 판면이 거칠게 판각되어 있고, 권수에는 함차가 표기되어 있다. 『화엄경(진본)』 중복판 35판 가운데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경판은 2판이고 수창판으로 볼 수 없는 경판이 7판이며 수창판으로 추정되는 경판이 26판이다.
해인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사찰 판각 경판 이른바 사간판 3본 화엄경이 소장되어 있다. 이 경판은 고려대장경판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수창판과의 유사성, 경판의 형태 등을 보면, 고려대장경판 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판각되었다. 특히 『주본 화엄경』 48권 16장의 배면에는 1238년 판각된 『마하반야바라밀다경』 25권 13장 내용의 일부가 남아 있어 사간판이 고려대장경판보다 먼저 판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창판, 사간판, 고려대장경판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1098년 해인사에서 판각된 수창판을 판본으로 하여 13세기초 사간판이 판각되었고, 사간판을 판본으로 고려대장경판이 판각되었다. 이는 3본 화엄경 각 권의 끝에 있는 음운, 글자체, 글자가 판각된 방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해인사 간행 화엄경이 상당히 유행하고 있었고 그 결과 해인사본을 토대로 고려대장경판이 판각된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화엄사찰 해인사에서는 11세기 말이래 화엄경을 판각하였고 이러한 전통이 고려대장경판을 판각할 때까지 이어진 것이다.

Notes

1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해인사잡판고」, 『조선학보』 139집(1991), pp. 111-112.

2 고려 고종 연간 제작된 경판의 명칭은 ‘팔만대장경’, ‘재조대장경’, ‘국간판’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여기서는 ‘고려대장경판’으로 지칭한다.

3 서수생, 「해인사 사간장경판 연구」, 『해인사지』, (가산문고, 1992), pp. 472-473.

4 임기영, 「해인사 사간판전 소장 목판 연구」(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9).

5 최영호, 「海印寺에 소장된 江華京板高麗大藏經의 ‘外藏’ 연구(Ⅰ) - 高麗經板의 조성시기 재검토」, 『석당논총』 53(2012), pp. 305-306.

6 고려대장경의 판각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마다 견해가 상이하다. 강화도와 남해에서 함께 경판을 개판하였다는 견해(①), 남해에서 전체 경판을 판각하였다는 견해(②), 해인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과 계수관에서 판각하였다는 견해(③)가 있고 수종분석을 통해 해인사 인근 사찰에서 개판하였다는 견해(④)가 있다. ① 천혜봉, 『고려대장경과 교정의 연구』 (범우, 2012), pp. 147-162; 윤경진, 「고려 대몽항쟁기 분사남해대장도감의 운 영체계와 설치 배경」, 『역사와 실학』 53(2014), pp. 23 -37. ② 남해군, 한국문화유산연구원, 『고려대장경의 판각과 남해』 (학연문화사, 2013), pp. 54-65. ③ 김윤곤, 『고려대장경의 새로운 이해』 (불교시대사, 2002); 최영호, 「13세기 중엽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의 조성공간 과 경주 東泉社」, 『한국중세사연구』 20(2006), pp. 95-116; 최연주, 「고려대장경 각성인의 참여형태와 조성공간」, 『한 국중세사연구』 4(1997), pp. 79-105. ④ 박상진, 「고려대장경판의 재질로 본 판각지에 대한 고찰」, 『인문과학』 12(1998).

7 유부현, 「壽昌版 계열 三本 화엄경’의 판본 연구」, 『한국도서관 정보학회지』 44-1(2013), p. 273.

8 한편 유부현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17자 24행 3본 화엄경 인경본을 분석하여 이러한 형태의 판수제가 사용된 경 전은 11세기 판각된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경판을 토대로 살펴 본 결과 이런 판제 형태의 경전은 수창판 보다 후 대 경판으로 판단된다. 유부현, 앞의 논문 참조.

9 최영호, 앞의 논문. 다만 이 연구에서는 중복되는 각수가 있다는 사실만 언급되고 사간판 『화엄경(진본)』 전체 각 수 현황을 분석하지는 않았다. 이 절에서는 사간판 『화엄경(진본)』 전체 각수를 판독하여 그들이 판각한 경판 현황 과 고려대장경판 판각여부를 검토하였다.

10 고려대장경판의 간행년에 대해서는 ‘남해군, 한국문화유산연구원, 『고려대장경판의 판각과 남해』 (2013)’을 참조.

11 釋光은 石光으로도 표기된 각수이다. 석광은 1228년(고종 15)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소자본)을 판각한 각수이며 1237년 사간판 『금강반야바라밀다경』 (대자본, 해인사 소장)의 판각에 참여하였고 고려대장경판 『금강반야바라 밀다경』 전체를 판각한 각수이다. 석광의 판각활동에 대해서는 최연주, 『고려대장경연구』 (경인문화사, 2006), pp. 273-280. 참조.

12 초조본 『화엄경(진본)』 10권에 말미에 음운이 없는 점은 ‘천혜봉, 위의 책, p. 90.’을 참조.

13 천혜봉, 위의 책, pp. 171-172.

Fig. 1.
〈수창판 규격〉, Size of Suchangpan, Haeinsa(ⓒ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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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판각형태 비교(진본 화엄경 45권 21장)〉, Comparison of engraving shapes (Volume 45, page 21, Avatamsaka Sutra translated by Buddhabhadra)(ⓒ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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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화엄경(진본) 37권 인경본>, The printed book, Volume 37 Avatamsaka Sutra translated by Buddhabhadra,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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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진본 화엄경 중복판 51권 1장>, Page 1 Volume 51 of the duplicated Avatamsaka Sutra woodblock engraved in the temple(ⓒ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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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진본 화엄경 중복판 59권 11장(좌 우반전)>, The page 11, volume 59 duplicated Buddhabhadra’s Avatamsaka Sutra woodblock engraved in the temple(ⓒ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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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사간판, 고려대장경판 『화엄경(진본)』 1권 17장 비교>, Comparison Woodblock engraved in the temple with Tripitaka Koreana(Photograph by Shin, Eu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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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사간판 『화엄경(주본)』 48권 16장>, Page 16, Volume 48, Avatamsaka Sutra by Śik ānanda, engraved in the temple(ⓒ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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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수창판>, Suchangpan(ⓒ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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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사간판>, Wood block engraved in the temple (ⓒ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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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The duplicated Avatamsaka Sutra woodblock engraved in the temple
Name Avatamsaka Sutra translated by Buddhabhadra Avatamsaka Sutra translated by Śik ānanda Avatamsaka Sutra translated by Prajñā
Number of woodblock 35 61 36
Total Pages 66 109 64
Table 2.
Engravers of Buddhabhadra’s Avatamsaka Sutra woodblock engraved in the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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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3.
Comparison Suchangpan with the Wood block engraved in the temple(ⓒ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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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4.
Comparison of Page 1, Volume 51, Buddhabhadra’s Avatamsaka Sutra(ⓒ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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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5.
Size Comparison Woodblock engraved in the temple with Tripitaka Koreana (ⓒ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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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6.
Comparison Woodblock engraved in the temple with Tripitaka Koreana in the shape of a letter(ⓒ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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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7.
Correct the letters(ⓒHaein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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