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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13; 2022 > Article
17-18세기 유럽에 수출된 명·청대 박고문(博古紋)자기의 양상과 그 영향*

Abstract

본 논문은 17-18세기 유럽에 수출된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양상을 살펴보고 수출자기로서의 특수성을 조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박고문자기는 고동기 혹은 古器物 도상이 중심문양을 형성하고 시기에 따라 文房淸玩, 八寶, 그리고 吉祥 등 다양한 소재가 조합된 도안의 자기를 말한다. 박고문자기는 17세기 중후반 고동기를 완상·애호하는 박고취미가 문인취향의 일환으로 유행하면서 출현하였다. 이후 이러한 박고취미가 상품경제의 발전과 확대에 힘입어 점차 사회 전반적으로 향유되면서, 청대에 이르면 황실을 비롯하여 상하계층을 막론하고 널리 성행하였다. 17-18세기 명·청대 박고문자기는 내수용으로도 제작되었지만, 특히 동시기 유럽과의 활발했던 동서교류를 통해 유럽에 다량 수출되면서 점차 유럽 수출용 자기로서 특징을 보여주었다. 수출자기로서 박고문자기의 특징과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유럽에 수출된 박고문자기가 애호될 수 있었던 요인을 당시 유럽 내 열풍이었던 중국풍 시누아즈리(Chinoiseire)와 연계하여 고찰해 보았으며, 이어서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를 크게 3시기로 구분하여 양식적 특징 및 시기별 변천양상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17-18세기 명·청대 박고문자기가 유럽도자에 미친 영향을 모방과 변용으로 나누어 확인하였다. 특히 변용단계에서 시누아즈리 양식과 결합되거나 유럽 정물화적 요인 등과 유사함을 보이는 점은 유럽도자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에 수출된 박고문자기의 영향으로 판단되며, 이를 통해 유럽 수출자기로서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특수성과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aspects of a particular design that appears on Chinese export porcelain produced for the European market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he bogu design portrays bronze vessels or other ancient objects as the central component supplemented by auspicious subjects such as scholar's accoutrements(文房淸玩) and the eight treasures(八寶). The specific elements included in the design and the overall composition changed throughout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These changes can be categorized into three distinct types and periods.
Chinese bogu ceramics exported to Europe also had an effect on the ceramic production of its destination. The European reproduction of bogu ceramics took form in two ways. The first is a faithful imitation that strived to emulate the exact shape, design, and style of the Chinese ceramics. The second is a departure from the original as it incorporated elements of European taste. Most notably, the combination of 'bogu' elements with aspects of Chinoiserie and European still-life paintings, as seen during the transformation stage of Chinese bogu ceramics, was a significant development that emerged as a new trend in European ceramics.

Ⅰ. 머리말

17-18세기 명·청대 박고문자기는 觚, 尊, 鼎, 甁, 爵, 壺 등의 고동기 혹은 고기물 도상이 중심문양을 형성하고 시기별 변천에 있어, 文房淸玩, 八寶, 그리고 吉祥을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로 조합된 도안의 자기를 말한다. 오늘날 박고문의 개념 정의는 古事, 古學 등 주로 옛 것을 지칭하는 ‘博古’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후 博古紋, 博古圖, 博古畵 등과 같이 시각적 장르에 대입될 경우, 그 의미는 北宋代 『宣和博古圖』에 등장하는 古器物에 중점을 둔 것이다.1 박고문자기의 출현은 명대 중후반 문인들 사이에서 고동기를 중심으로 하는 博古趣味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2 이후 상품경제의 발전에 힘입어 박고취미는 더욱 성행하였으며, 청대에는 황실, 문인계층을 비롯한 민간계층에까지 보다 더 확산되어 박고문자기의 제작 역시 활발히 이뤄질 수 있었다.3
특히 청 강희(康熙, 재위 1662-1722)연간에 제작된 박고문자기는 양·질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17-18세기 중국과 유럽 간에 무역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가장 다양한 양식과 품종으로 유럽에 수출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중국 복건성(福建省) 해역에서 발견된 완초 1호(碗礁 1號, Wanjiao no.1) 출수 박고문자기는 이 시기 유럽 수출자기로서 박고문자기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4
17-18세기 명·청대 박고문자기는 중국 수출자기 중에서도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유럽에 전해졌다. 박고문자기는 수출을 겨냥한 유럽식 기형, 사전에 주문된 가문의 문장(紋章) 등의 요소들과 결합되거나 내수보다는 수출을 위한 여러 품종으로 다수 제작되어 점차 유럽의 수요에 부응했던 수출자기의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이내 모방과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유럽도자 제작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때 중국 박고문자기의 단순모방을 넘어 시누아즈리 양식 소재로 빈번하게 활용되거나 유럽 정물화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유럽도자에 미친 박고문자기의 영향은 일시 단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유럽도자에서 박고문자기의 영향은 17-18세기를 지나 19세기까지 시기별 그리고 지역별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지속 단계적인 모방과 변용이 모두 이뤄졌다. 이러한 점은 유럽에 수출된 박고문자기의 특수성과 위상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수출자기로서 박고문자기를 주목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5 주로 중국산수, 풍경, 인물문 등 유럽 수출자기로 성행했던 문양에 가려져 단독 연구대상에서 배제되거나, 단순히 중국 수출자기 중 일부로 인식되고 문양보다는 기형이나 시문기법 등 기초적인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어 박고문자기의 수출자기로서 특수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6
이에 본고에서는 그간 연구동향의 한계를 인식하고 17-18세기 수출자기로서의 특수성에 주목하여 박고문자기의 특징과 변천, 그리고 유럽도자에 미친 영향과 그 의미를 조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먼저 유럽에서 중국 박고문자기를 비롯한 박고소재의 장르가 어떠한 양상으로 소비되었는가를 살펴본다. 중국풍 시누아즈리라는 문화현상은 중국자기 및 중국물품 그 자체로서 가치가 높았을 뿐 아니라 동양(중국)의 기물이 주가 되는 박고소재의 장르가 선호될 수 있었던 시대적·문화적 배경이었다.
그 다음 편년 추정이 가능한 침몰선 출수 자료와 현전하는 해외소장 박고문자기를 중심으로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하고 시기별 특징과 변천 양상의 흐름을 살펴보겠다. 이를 토대로 박고문자기가 유럽도자에 미친 영향을 모방과 변용으로 살펴본 후, 특히 변용사례에 주목하여 수출자기로서 지닌 박고문자기의 특수성과 그 의미 등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유럽 내 박고소재의 유행

17세기부터는 유럽 주요 국가들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되면서 동방무역이 활성화되었고 특히 도자기와 가구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과 일본의 공예품이 유럽에 유입되기 시작한다. 17-18세기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왕실과 귀족층을 중심으로 중국 취향의 예술품에 대한 수집열이 극성했던 시기로 유럽 각국으로 유입된 동양 예술품에 대한 새로운 취향이 형성되었다.7 이는 곧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는 문화현상으로 설명된다. 17-18세기 당시 유럽 전역에서 성행했던 중국취향(Chinese taste), 중국열풍(Chinese craze) 등으로 설명되는 시누아즈리란 그 개념이 상당히 포괄적이긴 하나, 동서 무역을 통해 유입된 동양유물, 동양에 대한 이국적 취향,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풍의 장식미술 양식을 전반적으로 일컫는다.8
17-18세기 유럽 내 시누아즈리의 열풍으로 중국 자기를 비롯한 동양물품은 미술 애호가들의 주요한 소장품이 되었다. 명·청대 자기, 회화, 가구, 직물, 각종 공예품 등 다양한 장르로 유럽에 전해진 박고소재의 장르는 이러한 중국취향을 드러내는 실용품이자 예술품 그 자체로 소비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박고소재의 코로만델 칠병풍(Coromandel lacquer screen)이 라커룸(Lacquer room)의 벽장식으로 소비된 정황을 통해 알 수 있다.9 1695년 네덜란드 프리젼(Frisian) 총독(Stadholder) 가문 궁전에 제작된 아그네스(Agnes, 1634-1696) 공주의 라커룸에는 산수와 박고문이 시문된 코로만델 칠병풍으로 장식되어 있었다(Fig. 1).10 주문양은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 <서호십경도(西湖十景圖)> 등 중국 전통 산수풍경이고, 외곽 프레임의 경우, 고동기 및 화훼, 여러 중국적 고기물 등으로 이루어진 박고소재로 장식되었다. 이러한 칠병풍은 라커룸 안에서 주는 동양풍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유럽 수출 코로만델 칠병풍의 장식소재로 전통 산수문과 함께 박고소재가 빈번하게 확인된다는 점은 유럽인들에게 박고소재는 중국적 취향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소재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럽에 유통된 박고소재의 여러 장르들은 점차 유럽 소비자들에 의해 재생산되면서 유럽 내 자체적 예술품으로 구현되기 이른다. 박고문자기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자기에 청동 장식물을 가미하는 마운트 장식기법으로 18세기 로코코 시누아즈리(Rococo Chinoiserie) 양식의 장식 예술품으로 재소비되었다.11 이렇게 재창조된 박고문자기는 18세기 로코코 미술이 유행하던 시기에 청동 장식물의 정교함과 화려한 형태로 도자기 자체에 예술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또한 18세기 로코코 시누아즈리 삽화에서 동양인물과 종종 그려지는 박고소재는 벽지나 타일, 인테리어 가구, 공예품 등 주로 실내 장식예술에서 부각을 나타냈다. 이들은 주로 화려하고 색채감 있는 로코코 시누아즈리 장식 소재로 활용되었다.12 그중 도자기는 중국 자기의 직접적인 유입과 모방이 다른 장식미술에 비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특히 박고문은 이후 유럽도자 제작에서 시누아즈리 양식의 모티프로 새롭게 변용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편 시누아즈리 양식에서 박고소재의 활용은 유럽의 건축분야에서도 나타난다. 18세기 영국 버킹햄셔(Buckinghamshire)의 Summer House는 중국 건축을 모방하여 설계된 것으로, 18세기 로코코 시누아즈리 건축 양식이 강하게 드러난다(Fig. 2).13 건물 외벽의 채화 장식문양으로 산수풍경, 화조, 박고 등 중국 전통소재가 선택되었으며, 이를 통해 유럽 내 중국풍 시누아즈리를 형성하는데 박고소재에 대한 지속적인 선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시누아즈리 열풍은 박고문자기를 비롯한 명·청대 박고소재 장르의 수요와 소비를 촉진케 하였으며, 박고소재는 이미지 그 자체로 시누아즈리 양식의 모티프로 소비될 수 있었다. 즉, 유럽에서 박고소재는 동양의 기물과 물품들을 잘 드러내면서 이와 동시에 동양적, 중국적인 것을 대표하는 상징수단으로 인식되었던 점을 알 수 있다.

Ⅲ.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의 특징과 변천

17-18세기 유럽에 수출된 명·청대 박고문자기는 당시 유럽인들의 식생활에 맞는 기형과 취향에 적합한 장식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그 태생부터 유럽시장을 겨냥한 수출 목적은 아니었으나, 17-18세기 유럽에 수출되면서 시기별 다종다양한 양식적 특징과 변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수출용 자기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Table. 1).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의 시기별 특징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해 연대 추정이 가능한 침몰선 출수품을 기준하여 문양구성에 따라 수출자기로서의 초기(1640-1680), 중기(1680-1730), 후기(1730-1780)로 각 시기를 구분하고 해당 시기의 문양의 주요 특징과 변천양상 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1. 초기: 1640-1680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의 초기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는 1643년의 편년을 갖는 해처선(Hatcher Cargo) 출수 크락(Kraak)양식의 <청화박고문접시>이다(Fig. 3).14 이 접시의 중심문양은 고기물로 추정되는 사각 형태의 병과 화훼, 그리고 왼쪽으로 수석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크락양식의 청화 자기 박고문은 구성소재가 비교적 단순하며, 고동기나 고기물에 화훼가 꽂아진 병화 도상 위주의 문양 구성임을 알 수 있다.15
이와 유사한 유형의 박고문은 소위 ‘과도기(Transitional) 양식’이라 불리는 청화자기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Fig. 4).16 과도기 양식이란 대략 명청 교체기에 제작된 자기를 지칭하는데, 크락양식과 같이 주로 수출자기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양식을 말한다.17 과도기 양식으로 나타나는 박고문자기의 문양구성은 크락 접시의 것과 유사하여 17세기 전반의 박고문자기가 명말청초기에 해당하는 17세기 후반으로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의 박고문자기는 이후 다양한 양식으로 출현하는 박고문자기 보다 유럽 내 현전하는 수량이 비교적 적고, 기종 역시 제한적이다. 크락양식의 접시가 주를 이루며, 과도기 양식의 유럽식 기형에서도 차 용기(Tea caddy), 장식용 병 등 한정적인 기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라 볼 수 있다.

2. 중기: 1680-1730

명말·청초 혼란기에 잠시 폐요되었던 경덕진 관요는 강희 19년(1680) 이후 어요창(御窯廠)이 부활하면서18 수출자기의 양식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19 박고문자기의 수출 단계에서 중기의 시작을 1680년으로 설정한 것은 당시 이러한 경덕진의 製瓷상황을 반영한 것이고 또한 이 시기부터 수출자기에서 확인되는 박고문자기의 양상이 이전과는 다른 뚜렷한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문양의 구성소재와 구도 등에서 그 변화가 감지된다. 이 시기의 박고문은 17세기 중반, 병화 중심의 단순한 도안에서 거문고, 바둑판, 서적 등의 다양한 문방청완 소재의 급증과 특히 팔보문과의 결합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20 이러한 변화는 1690년 혼카우(Hon Cau) 침몰선21과 1690-1700년경의 완초(碗礁) 1호선에서 출수된 박고문자기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Fig. 5).22
또한 이 시기 박고문자기는 이전보다 다양한 기형으로 제작되었다. 접시나 일부 병 위주의 유럽식 기형이 주를 이룬 초기와는 달리 찻주전자(Teapot)나 소금통(Salt dish), 맥주잔, 와인 잔을 걸어두는 용도인 Monteith(Wine glass)23 등 유럽의 식생활과 취향이 반영된 다양한 유럽식 기형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고, 실생활용뿐 아니라 궁전이나 실내 장식을 위한 기형들이 다수 제작된 점이 특징이다(Fig. 6).
또한 청화에 이어서 시문기법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170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청화로만 시문된 것에서 대략 1700년경부터 1730년 사이에는 특히 녹색계열의 오채(Famille Verte)자기로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24 오채로 시문되는 박고문은 청화에서보다 다양한 문방청완 소재가 급증하여 복잡한 구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완초 1호선 출수품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수출자기에서 양식과 품종도 다양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화 박고문자기는 전통 산수, 인물주제 등과 함께 결합되어 명말·청초의 다소 복고적인 경향인 ‘강희양식(Kangxi style)’과 바탕문을 갈색계열로 채색한 소위 ‘바타비안(Batavian) 품종’으로도 제작되었다.25 오채 박고문자기의 경우, 당시 이슬람과 유럽인들에게 선호되었던 바탕색이 남유계통인 파우더 블루(Powder Blue)(Fig. 7), 흑색바탕의 파미유 누아르(Famille Noire),26 차이니즈 이마리(Chinese Imari) 등으로 확인된다. 이들은 주로 중국 내수보다는 수출을 목적으로 한 품종이었으며,27 유럽인들의 취향이 반영된 문양이나 기형으로 다수 제작된 특징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유럽 수출자기 박고문자기의 특수성과 관련하여 ‘차이니즈 이마리’의 박고문자기는 주목할 만하다. 차이니즈 이마리란 ‘중국제 이마리’, 즉 이마리를 모방한 종류로 1700년대 중국 경덕진에서 일본의 이마리 자기를 모방하여 제작한 자기를 말한다.28 차이니즈 이마리 자기는 당시 유럽시장을 겨냥한 수출자기 품종 중 하나로 유럽인들의 직접적인 주문이 반영된 특수한 자기이다.
18세기 초부터 제작된 차이니즈 이마리 박고문자기는 주로 기형과 유색, 그리고 장식기법 등에서 이마리 자기의 조형요소를 방제하면서도 문양은 오채의 박고문이 시문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예를 들면 일본 이마리에서 주로 유럽시장을 위해 제작한 다각형의 병이나 접시, 국화형 완, 조개형접시(貝形, Shell-Shaped Dish) 등의 특수기종에 중국 박고문이 시문된 예를 찾아볼 수 있다(Fig. 8).29 또한 유백색과 다각형이 주요 특징인 가키에몬(柿右衛門) 스타일을 모방한 경덕진 자기에서는 중국 전통의 두 여인문과 박고문을 함께 시문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이마리(古伊万里) 자기에서 접시 내부에 남색, 흰색 등의 바탕색으로 구분하고 국화문 등을 듬성듬성 찍어 장식한 일명 팔레트(Palette) 기법과 박고문이 결합된 양상도 확인할 수 있다.30
이처럼 18세기 초 차이니즈 이마리 박고문자기는 유럽 수출자기로서 유럽인들의 확실한 선호도를 보여준다. 기형, 유색, 장식기법 등 이마리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문양 장식에 있어서만큼은 중국 전통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선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31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경의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는 유럽식 기형을 비롯하여 가장 다종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유럽 내 현전하는 수량 또한 많은 것으로 보아 수출자기로서 전성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3. 후기: 1730-1780

대략 1730년대를 지나면 박고문은 이전 시기의 다양한 소재들과 결합된 유형이 지속되지 않고, 병화도상과 일부 문방청완, 길상 소재와의 결합으로 변모된다. 문방청완 소재가 대폭 감소하고 특히 팔보 소재가 아예 사라지거나 병화도상에서 화훼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여 확실히 이전과는 시기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32
이 시기 대표 편년작인 옹정(雍正, 재위 1722-1735)연간의 까마우(Ca Mau) 침몰선(1723-1735) 출수 오채접시의 박고문을 통해 살펴보면 중기의 팔보 소재를 찾아볼 수 없고, 향로나 향병 위주의 문방청완 소재로만 구성되어, 이전에 비해 단순하게 변화된 점을 확인할 수 있다(Fig. 9).33
장식기법도 이전의 청화·오채에서 분채(Famille rose)를 중심으로 변화하였다.34 기종은 접시나 Monteith, 찻주전자(Teapot) 등 일부 유럽식 기형이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나 그 수량은 이전 중기보다는 줄어들었으며 18세기 이후 유럽 내 차문화의 성행을 반영하듯 찻잔세트로 다수 제작된 것이 주특징이다(Fig. 10).
현전하는 사례를 통해 볼 때, 후기의 박고문자기는 이전 시기보다 수량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대략 1780년대를 전후하여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의 구체적인 양상을 쉽게 확인할 수 없다. 18세기 중후반경 박고문자기의 유럽 내 쇠퇴 원인을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18세기 중후반에 이르면, 청대 수출자기의 양식이 일변한다. 문양의 경우 가문의 紋章, 선박풍경 등을 소재로 한 자기가 성행하고, 수출자기의 양식도 廣彩자기 스타일로 변화되면서35 대부분 경덕진 민요 양식으로 제작되었던 박고문자기는 광채 양식의 자기에 밀려 이전처럼 활발한 유럽 수출이 이뤄지지 못했던 것 같다.36 둘째, 이미 18세기 초부터 유럽 자기 제작에 성공하여 그들만의 취향을 반영한 도자생산이 활발해짐에 따라 중국자기를 비롯한 동양의 자기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든 현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37 셋째, 유럽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과 취향 등이 이전과는 달리 변화되었고, 심지어 이전까지 선망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미술사적으로는 18세기 후반부터 계몽주의와 신고전주의 양식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등장은 결국 시누아즈리 양식의 쇠퇴를 초래하였다고 평가된다.38 18세기 후반 이후 유럽 내 박고문자기에 대한 수요 감소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들과 맞물려 자연스레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Ⅳ. 유럽도자에 미친 박고문의 영향과 그 의미

유럽에 유입된 중국 및 일본자기가 초기 유럽도자 제작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39 17-18세기 다양한 종류와 기형, 장식기법 등 다종다양한 양식으로 유럽에 수출되었던 명·청대 박고문자기 역시 유럽도자에서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현전하는 유물들을 통한 양자 간의 긴밀한 유사성으로 입증된다.
또한 모방을 벗어나 유럽인들의 미감에 맞게 변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변용은 주로 박고문자기에서 보이는 문양소재를 선택적으로 가져와 유럽인들의 장식적 취향을 가미하거나 동양인물이나 瑞獸 등 중국 전통소재와 결합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즉, 중국 박고문을 활용하여 유럽의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또한 유럽 정물화 스타일과도 유사하게 변용되었는데, 이는 유럽도자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에 일정 부분 박고문자기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도자에서 중국 박고문의 영향은 17-19세기까지 지속적이었으나, 유럽 내 여러 지역에서 단계적인 정도의 차이를 보여주며 전개되었다. 예를 들면,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의 박고문자기는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요장에서 모방 및 확대·재생산이 이뤄졌다면, 영국의 경우 이보다 늦은 18세기 후반경의 박고문자기를 수용·변용시켜 나갔다.40 박고문의 변용양상 또한 각국의 기호와 취향에 맞게 다르게 나타나는데, 박고문을 통해 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1. 모방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도자에서는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기형과 문양, 그리고 양식기법까지도 비교적 충실하게 모방하여 생산하기도 하였으며, 문양만을 차용하여 유럽식 기형이나 장식미감을 반영한 도자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먼저 크락양식의 청화 박고문자기는 일찍이 네덜란드 델프트(Delft) 도기에서 모방되었다. 대략 1660-1680년에 제작된 델프트 크락접시는 1643년의 해처선 출수 <청화크락양식박고문접시>(Fig. 3)에서 보이는 주문양의 박고소재와 구도 등이 유사하다(Fig. 11). 크락양식의 박고문자기는 일본 이마리 청화자기로도 확인되어 비록 그 문양이 완전히 동일하진 않지만, 경덕진, 이마리, 델프트라는 동서양의 도자에서 박고문이 공유되는 현상을 감지할 수 있다.41
또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강희양식의 박고문자기를 기형과 장식문양, 양식기법까지도 모방 제작한 예가 많다. 델프트의 그릭 A 공방(Greek A Factory)에서 제작된 <청화박고문병>은 강희연간의 청화박고문 자기와 기형이나 크기, 문양 구성과 형태, 시문기법 등이 거의 유사하다(Fig. 12). 동체부를 선으로 구획하여 구획마다 박고문, 중국 정원, 여인 등의 문양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이는 청대 박고문자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변용을 거치지 않고 기형과 문양요소들의 세부적인 표현까지 동일하게 방제한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백색도를 내는 유색에 있어서는 여전히 도기라는 제작기술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네덜란드 델프트와 프랑스 루앙(Rouen) 등 주로 연질도기를 생산하던 요장에서 박고문자기는 청화 이외에도 다채로운 상회도기의 모방제작으로도 나타났다.42 17세기 전반경 요업을 시작한 루앙 요장은 델프트와 마찬가지로 주석유를 주성분으로 하고 파이앙스(Faience)라 일컫는 연질도기를 생산하면서 후기에는 주로 델프트 스타일을 종종 방제하였다. 특히 델프트 도기와는 여러 가지 색채를 이용한 장식기법의 교류가 지속되었는데,43 이처럼 루앙과 델프트의 교류 양상은 중국 박고문자기를 모방한 예를 통해서도 상호 교류가 증명된다. 일례로 델프트, 루앙의 상회 도기 접시 가운데 18세기 초 청대 오채 박고문자기 접시의 구도, 문양소재, 상회기법 등 가능한 그 모본을 충실하게 모방한 예가 있다.44
18세기 초반 유럽 최초로 경질자기 생산에 성공한 마이센(Meissen) 자기에서도 18세기 초 파우더 블루 품종의 박고문자기와 기형, 장식기법, 문양구도까지 거의 동일하게 모방 제작한 예가 확인된다.45 이외에도 마이센요에서 모방한 박고문자기는 금색 바탕의 트럼펫 기형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아마도 이들의 모본은 18세기 중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Augustus the Strong, 1670-1733) 컬렉션에 포함된 청대 박고문자기였을 가능성이 크다.46 당시 아우구스투스는 청색 및 금색 계통의 동아시아 도자기와 마이센요에서 제작한 복제품을 일본 궁전의 2층에 자리한 두 개의 모서리 방에 나란히 배치하려했다.47 마이센요에서 모방 제작한 파우더 블루 품종의 청색, 그리고 금색 바탕의 박고문자기의 제작과 소비는 당시 아우구스투스황제의 계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유럽도자에서 박고문은 문양 소재만을 차용하여 유럽식 기형으로 제작되기도 하였으며, 일부 모방과정에서 유럽취향의 장식문과 함께 선택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델프트의 항아리는 강희연간의 청화 빙매문(冰梅紋, crackled ice) 기법과 박고문이 적절하게 결합된 예이다(Fig. 13).48 빙매문은 주로 호와 같은 기종에 바탕을 남색으로 채색한 후 빙렬과 흰색의 매화문을 그려 넣은 것으로 당시 유럽인들이 선호했던 수출자기 장식기법 중 하나였다. 강희양식의 청화 자기에서도 빙매문과 박고문의 결합이 확인되지만, 강희양식의 박고문은 화창(花窓) 내부 장식문양으로 자주 그려진 반면, 델프트 도기에서의 변용양상은 빙렬이 남색 바탕 전체로 표현되고, 매화 대신 박고문이 시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박고문은 중국의 원본보다 고동기와 화훼, 주변 장식의 팔보 소재들이 비교적 크게 그려지거나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델프트 도기에서 박고문과 빙매문 기법이 유럽 미감에 맞게 모방제작된 것이다.49
유럽도자에서 박고문자기의 모방은 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19세기 영국 산업도자에서는 주로 18세기 후반 분채 박고문자기에서 보이는 화훼, 고동기의 표현 등을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하여 방제하였다. 19세기 분채 스타일의 영국산 박고문자기는 현재 영국 왕실 컬렉션(Royal Collection Trust, England) 소장품으로 다수 확인할 수 있다.50

2. 유럽식 변용

유럽도자에서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영향은 단순 모방을 넘어 유럽 내 자체적 미감으로 변용되면서 유럽 내 독자적 양식의 자기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이는 곧 유럽에서 박고문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이해하였음을 의미한다. 변용 양상은 크게 시누아즈리 양식과 유럽 정물화 스타일로 구분하여 살펴보겠다.

1) 시누아즈리 양식

유럽에서 시누아즈리라는 한 시대의 특이한 현상은 여러 다양한 중국물품 등을 통한 중국적 취향, 그 자체로 수용되기도 했지만 유럽인들의 의식에 따라 변형·변용되는 현상으로도 나타났다.51 시누아즈리의 개념과 양식은 명확하게 정의하긴 어려우나, 중국을 비롯한 일본, 인도 등 당시 동양과의 활발했던 교류를 통해 유럽인들이 탄생시킨 새로운 산물이었으며, 풍부한 장식과 비대칭, 양식화된 특징이 있다.52
시누아즈리는 17세기 중후반 유럽 예술과 장식으로 편입되었으며, 유럽에서 그 유행은 18세기 중반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각 예술 장르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도자 제작에 있어서도 새로운 양식을 선보이게 된다.53 유럽도자에 나타난 박고문은 이러한 시누아즈리 양식과 결합되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종종 박고소재는 시누아즈리 소재들과 결합되어 새롭게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그 과정 중 대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일부 어설픈 모방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이때 중국 고동기나 고기물 등이 유럽의 금속기나 이를 모방한 기물 등으로 대체되거나 기물에 꽂아지는 화훼 역시 중국 전통 화훼가 아닌 유럽의 자생적인 히아신스, 튤립 등 이외에도 여러 교역을 통해 들여온 신품종의 화훼류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Fitzwilliam Museum) 소장 1720년 작 <청화박고화조문접시>의 주문양은 날고 있는 새와 화훼로 가득 채워져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양풍의 이미지를 형성한다(Fig. 14). 중심문양의 오른편에는 유럽식의 테이블 위에 중국 고기물 형태로 추정되는 기물에 화훼가 꽂아져 있다. 중국 박고문이 유럽식으로 변형되면서 유럽도자에서 박고문이 화훼와 새 등의 중국적 소재들과 함께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새롭게 변용된 것이다.54
빅토리아앤드알버트박물관(V&A) 소장 델프트산 청화접시에도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적절하게 변용된 박고문을 확인할 수 있다(Fig. 15). 중심문양의 박고문은 원근법을 활용하여 기물 간의 배치를 조화롭게 하였다. 화병의 고동기, 향로 등의 표현은 비교적 중국의 박고문을 충실하게 모방하였으나, 주변장식 문양을 중국식 花紋이나 龍紋으로 빼곡하게 채워 넣어 시누아즈리 미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바깥 테두리 장식은 13-14세기 프랑스 고딕 건축 양식에서 유래한 방사상의 ‘레요낭 양식(rayonnant style)’의 장식이 가미되어 중국 자기 박고문의 영향을 받은 도안에 유럽의 장식성이 더해지는 양상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55
또한 호리호리한 중국 두 여인을 그려낸 유럽에서 소위 롱 엘리자(Long Elizas)라 불리는 인물문과 박고문의 결합은 시누아즈리 양식 소재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동양의 인물문과 동양의 기물, 즉 박고문이 결합되어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나타난 예는 18세기 초 마이센 자기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Fig. 16). 요한 스테들러(Stadler, Johann Ehrenfried, 1701-1741) 작의 <청화박고문병>에는 중국풍이 느껴지는 박고문이 시문되었으나, 이 기물에 함께 그려진 인물들의 표현이 요한 니우호프(Johan Nieuhof)의 판화나 다른 시누아즈리 삽화에 그려진 인물들과 같이 전혀 중국적이지 않고 다소 이상화된 느낌을 보여준다.56 이와 같이 이상화된 동양인을 주제로 한 예는 당시 마이센자기에서 시누아즈리 양식의 새로운 도안으로 자주 응용되었던 것이었다.57 여기에 박고소재를 더하여 마이센만의 독자적인 시누아즈리 양식을 구축한 것으로 이해된다.
18-19세기 영국자기에서도 박고문은 시누아즈리 양식 소재로 시문된다. 18세기 중반 우스터(Worcester), 18세기 후반의 챔벌린 우스터(Chamberlain Worcester) 자기회사를 중심으로 중국 박고문이 변용되었으며, 우스터사의 경우 1760년대 이후 전사기법(Transfer Printing)이 상용화되면서 특히 중국 瑞獸, 정원풍경문 등과 결합된 박고문이 도식화되어 대량 제작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58
이처럼 유럽도자에서 박고문은 시누아즈리 양식 소재로 오랜 기간 활용되었으며 때로 그 과정에서 유럽의 장식적 취향이 적극 반영되기도 하였다. 박고문은 이러한 시누아즈리 양식에 유럽 양식이 혼합된 양상도 함께 볼 수 있는데, 변용 단계에서 특히 유럽 정물화의 양식과 밀접한 유사성을 보여주는 점은 유럽도자 제작에 있어 중국 박고문이 현지화에 성공한 예로서 주목할 만하다.

2) 유럽 정물화 양식

유럽은 도자기를 비롯한 비단, 가구 등 중국 예술품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유럽적인 상상력을 부여하거나 유럽문화를 그 속에 투영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박고문자기의 변용단계에서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유럽인들의 상상력이 부여되었다면, 유럽문화인 정물화 스타일을 박고문에 투영하는 또 다른 양상으로도 변용이 이뤄졌다.59 그런가하면 시누아즈리 양식에 유럽 정물화 양식이 모두 혼합되어 복잡·다양한 구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유럽도자에서 변용된 박고문과 유럽 정물화의 유사성은 크게 소재와 구도, 표현기법 등에 있어서 양자간의 비교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18세기 중반경 델프트에서 변용된 박고문을 살펴보면 병화도상의 박고문을 중앙에 배치하고 양 옆으로 꽃가지나 꽃잎을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17세기 전반에 그려진 얀 브뢰헐 2세(Jan Brueghel Ⅱ, 1601-1678)의 <꽃 정물화>에서 보이는 구도와 표현 등과 유사하다(Figs. 17-18). 두 작품 간의 분명한 시기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시 델프트 화공이 정물화적 모티프를 차용하여 중국 박고문에 의도적인 변용을 시도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화면 중앙의 화병 배치와 그 아래로 떨어진 꽃가지의 표현은 유럽의 꽃 정물화의 특정 요소와 상호 유사하며, 적어도 시각적인 부분에서 두 도안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꽃 정물화적 특징 이외에도 프롱크 스타일의 정물화(Pronk Still Life)에서 보이는 구도나 소재가 나타나기도 한다.60 V&A 소장 델프트 접시에는 프롱크 정물화 스타일에서 확인되는 테이블 위 여러 기물들이 원근법적으로 표현되는 특징이나, 카펫, 유럽식 금속기, 새, 화훼의 표현이 중국 박고문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소재가 유럽식으로 대체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Fig. 19). 특히 테이블 위에 카펫의 소재와 이를 늘어뜨리는 표현방식은 프롱크 정물화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이다.
이외에도 꽃 정물화에서 자주 그려졌던 달팽이 도상은 변용된 유럽식 박고문에서 새롭게 확인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프랑스 생-클루(Saint-Cloud) 공방에서 제작된 <청화병>은 달팽이 소재의 등장과 시누아즈리 양식, 유럽 미술 특유의 그로테스크(Grotesque)적인 미감까지 모두 간취되는 예라 할 수 있다(Fig. 20).61
화면에서 보이는 병의 중심문양으로 한 면에는 중국식 觚와 유사한 기물이 그려져 있지만 일부 향로, 바둑판 등의 박고소재가 유럽식 소재로 변형되었고, 또한 주변 장식으로 선택된 백조, 날개 달린 달팽이, 기괴한 인물의 표현 등은 모두 원본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소재들이다. 이는 중국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여 유럽 장식 미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달팽이는 유럽 꽃 정물화의 소재로도 종종 그려졌던 도상인만큼 정물화와 유럽도자에서 변용된 박고문 사이의 유기적인 친연성을 잘 보여준다.62

3. 유럽도자에 수용된 박고문자기의 의미

유럽도자에서 17-18세기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모방 제작은 유럽 내 어느 한 요장에서 일시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17-19세기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지속 단계적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향관계를 ‘수용과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그 의미는 각각 ‘모방과 창조’로도 표현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도자에 수용된 박고문자기는 중국풍의 있는 그대로를 모방하였고, 중국풍 시누아즈리 요인들과 함께 변용되거나 정물화 스타일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어 유럽도자에서 독자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당시 유럽 상류층을 중심으로 크게 성행했던 중국적 취향, ‘시누아즈리’라는 시대적 조류는 박고문자기가 유럽에서 선호될 수 있었던 기폭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재탄생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러한 시누아즈리 열풍 속 중국 박고문자기를 모방·제작하였고, 유럽인들의 중국 인식과 상상력이 결합된 새로운 양식으로 유럽 도자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렇게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재탄생한 박고문자기는 유럽 내 시누아즈리의 성행을 더욱 고취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유럽도자에서 변용된 중국 박고문이 유럽 정물화와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는 점은 유럽도자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유럽에서 박고문이 단순히 시누아즈리 차원을 넘어 어쩌면 그들의 미적취향에 부합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도나 소재에서 중국 박고문의 요소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정물화적인 요소 또한 감지되어 그들의 취향과 습성에 맞게 변용된 하나의 예로 이해할 수 있다.
유럽에서 중국 박고문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박고소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박고문이 여타 중국적 주제보다 더욱 선호될 수 있었던 요인은 당시 유럽 내 시누아즈리의 열풍과 유럽 정물화와의 유사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Ⅴ. 맺음말

본고에서는 17-18세기 유럽 수출자기로서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특수성에 주목하여 유럽에서 성행하게 된 배경과 요인을 살펴보고, 수출자기로서 시기별 특징과 양상, 그리고 유럽도자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박고문자기를 비롯하여 박고소재의 여러 장르가 유럽에서 소비되고 선호될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시누아즈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박고소재의 장르는 유럽에서 시누아즈리 차원에서 소비되었고, 이어 유럽 내 시누아즈리 장식 소재로 빈번하게 활용되어 동양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주요한 주제였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17-18세기 유럽 수출 박고문자기는 다종다양한 품종과 양식 등으로 확인된다. 문양의 소재, 구도 등의 변화를 기준으로 그 시기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시기별 특징과 양상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초기의 박고문은 단순 병화도상 위주로 크락, 과도기양식에서 확인되며, 이후 중기의 박고문자기는 청화와 오채자기로 성행하였다. 문양은 문방청완 소재가 증가하고 여러 팔보 소재와 조합되어 이전보다 복잡한 구도로 변화되었다. 특히 이 시기의 박고문자기는 바타비안, 파우더 블루, 파미유 누아르, 차이니즈 이마리 등 당시 수출자기로 유행했던 품종으로도 다수 제작되었다. 또한 중기의 박고문은 단독소재로도 나타나지만, 인물, 서수, 풍경 등의 중국 전통주제와도 종종 결합되어 종속문양으로도 나타나는 점이 특징이다. 18세기 이후의 후기 박고문은 문방청완 소재가 줄어들거나 팔보소재가 사라지는 것이 주특징이며, 시문기법에서도 이전 청화, 오채보다는 분채로의 변화를 보인다. 도안에 있어서는 특히 화훼의 비중이 높아지는 양상으로 제작되어 대략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에 수출되었지만, 1780년경 이후부터 유럽에서 점차 박고문자기의 수요가 감소되는 현상을 여러 요인들과 함께 살펴보았다.
셋째, 유럽도자에 끼친 박고문자기의 영향과 수출자기로서의 의미를 고찰하였다. 유럽도자에서 박고문자기는 모방과 변용이 모두 확인되며, 특히 변용 과정에서 시누아즈리 양식과 정물화적 특징이 간취되는 점은 유럽도자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7-18세기 명·청대 박고문자기는 유럽의 시누아즈리 현상 속 그 수요에 편승했던 대표적인 수출자기이다. 박고문자기는 중국과 유럽 도자교류의 일면 양상을 보여주며 시누아즈리 현상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자료로서 연구가치가 높다. 본고에서는 비록 제한적인 자료수집으로 17-18세기 유럽 수출자기의 보편적인 양상을 포괄적으로 살펴보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수출자기로서 박고문자기를 새롭게 조명한 점에 작은 의의를 둔다.

Notes

1) 사전적 정의로 博古의 용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예는 중국 漢代 張衡(78-139)이 저술한 『西京賦』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張衡, 『西京賦』, “有憑虛公子者, 心奓體忲,雅好博古,學乎舊史氏.” 박고의 개념이 이전까지는 古事, 古學 등의 의미로만 이해된 것에서 『선화박고도』 이후 박고의 함의는 『선화박고도』의 고동기, 고기물까지 포함되어 미술사적 범위로 확장되기 이른다. 「博古」의 항목으로 도해가 실린 明末 『十竹齋箋譜』(1644)를 통해 보아도 시각작품에서 박고의 의미는 특히 골동과 같은 옛 기물 즉, 고기물에 한정되는 경향을 알 수 있다. 박고의 개념과 박고문의 정의와 관련해서는 신주혜, 「17~19세기 명·청대 박고문(博古紋)자기의 유행과 동아시아로의 영향」, 『東洋美術史學』 14(2022), pp. 35-37을 참조.

2) 宋璿珊, 「明清時期景德鎭青花藝術中的博古紋飾研究」(景德鎭: 景德鎭陶瓷大學碩士學位論文, 2016), pp. 1-35.

3) 劉文勝, 「淸康熙瓷繪博古紋興盛原因與內涵探究」, 『中國陶瓷』 48(景德鎭: 中國輕工業陶瓷硏究所, 2012), pp. 33-34; 張心瞳, 「清代瓷繪博古紋考察」(景德鎭: 景德鎭陶瓷大學碩士學位論文, 2019), pp. 5-52.

4) 이 침몰선은 대략 청 강희 중기인 1690-1700년경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중 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수된 유물은 17,000여 점의 자기 중 10,000여 점 이상이 경덕진 민요 청화백자이다. 실제 적재되었을 수량은 적어도 50,000여 점 이상이었을 것으로 본다. 문양장식으로는 山水, 人物, 花鳥, 博古, 吉祥文字 등 크게 5종류로 구별된다. 碗礁一號水下考古隊 編, 『(東海平潭) 碗礁一號出水瓷器』(北京: 科學出版社, 2006), pp. 1-227.

5) 최근 중국에서 청대 박고소재 자기와 17-18세기 일본 이마리 자기와의 비교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해당 논문에서 이마리 청화, 색회자기뿐 아니라 델프트, 마이센, 영국 도자(Chelses)에서 보이는 박고소재를 소개하고 있으나, 유럽 수출자기로서 박고문자기를 심도 있게 다루진 않았으며, 주로 17세기 후반 만력연간의 크락양식 자기와 일본 이마리 자기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박고문자기를 교류사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한 연구성과이다. 方安豪, 「17-18世紀日本伊萬裏樣式瓷器中的博古圖像研究」(景德鎭: 景德鎮陶瓷大學碩士學位論文, 2021), pp. 1-41.

6) 현재까지 중국 박고문자기를 유럽 수출자기의 특수성에 주목하여 단독으로 살펴본 연구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영미권에서 박고문은 ‘Hundred antiques’, ‘Auspicious Objects’, ‘Scholar’s Objects‘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미국에서는 주로 ‘Hundred antiques’로 통일하여 명명하고 있다. 1911년 일종의 중국자기 카달로그에서 강희연간의 청화자기 중 ‘Hundred antiques’라는 용어가 처음 확인되며, 이후 출간된 수출자기 도록에서도 계속해서 ‘Hundred antiques’로 언급된다. Garrett Chatfield Pier, Catalogue of the Collection of Pottery, Porcelain and Faïence(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11), p. 34. Clare Le Corbeiller, China Trade Porcelain: Patterns of Exchange(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74), p. 18. 2006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개최된 청대 박고소재의 직물자수전시 《The “Hundred Antiques” in Chinese Textiles》에서도 ‘Hundred antique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7) Madeleine Jarry, chinoiserie: Chinese Influence on European Decorative Art, 17th and 18th Centuries(New York: The Vendome Press, 1981), p. 66.

8) 방병선, 「17-18세기 이태리 파엔자(Faenza) 도자에 보이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 양식 연구」, 『한국학연구』 69(2019), p. 143; 신상철, 「미술 시장과 새로운 취향의 형성 관계: 18세기 로코코 미술에 나타난 쉬느와즈리(Chinoiserie) 양식」, 『美術史學』 25(2011), p. 157.

9) 시누아즈리의 영향으로 네덜란드에서는 17세기 중반 이후부터 칠병풍을 포함한 칠가구를 해체하여 벽장식으로 활용하는 라커룸(Lacquer room)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궁전이나 상류층으로 퍼져 나갔다. 라커룸은 차이니즈 룸(Chinese room)으로 불리며 궁정이나 상류층 사이에서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나 칠가구와 같은 동양물품들을 전시하고 이국적 취미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의 라커룸은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에서 처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수경, 「17-18세기 코로만델 칠병풍의 제작과 소비 양상」, 『美術史學硏究』 312(2021), pp. 93-94.

10)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Leeuwarden)의 라커룸은 1885년 이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Rijksmuseum)으로 이전되었으며, 칠병풍의 재료 분석에 대한 연구 및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2014년에 다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에 설치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Gabriela Krist and Elfriede Iby, Investigation and Conservation of East Asian Cabinets in Imperial Residences(1700-1900)(Vienna: Böhlau Verlag Wien, 2015), p. 251.

11) 도자기에 금속 마운트를 추가하여 장식하는 관행은 고급품을 판매하거나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하는 ‘마르샹-메르시에(Marchands Merciers)’로 알려진 프랑스 상인이 제공하는 것 중 일부로 상품화된 것이다. 프랑스 상인은 은세공 장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수입품목을 고급 장식기법에 맞게 조정함으로써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하며 그 상품 가치를 높였다. Rose Kerr, Chinese Export Ceramics(New York: Harry N. Abrams, 2011), pp. 81-87.

12) 신상철, 앞의 논문, pp. 158-164.

13) David Beevers, Chinese whispers: chinoiserie in Britain, 1650-1930(Brighton: Royal Pavilion & Museums, 2008), pp. 55-56.

14) 해처선은 마이클 해처(Michael Hatcher) 선장에 의해 인양되어 그 이름을 따 명명한 것이다. 그는 남중국해 해저 약 40m 지점에서 난파선 잔해를 우연히 발견하였고, 난파선에는 약 23,000여 점의 중국자기가 실려 있었다. 그중 일부는 198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크리스티 경매에 소개된 바 있다. 해처선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본부가 있었던 자바섬의 바타비아로 향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며 난파선의 시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1643년에 해당하는 날짜가 새겨진 타원형 항아리 두 점에 있었다. 출수 자기 양상을 살펴보면, 크락자기도 소량 있었으나 명말청초의 과도기 양식의 자기가 다수 확인된다. 명이 1644년에 멸망하므로 해처선 출수품은 명말·청초의 혼란기 무역 도자를 조망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방병선, 「명말청초(明末淸初) 중국(中國) 청화백자(靑花白瓷) 연구」, 『강좌미술사』 30(2008), p. 208.

15) 박고문자기에 보이는 명대 병화 도상의 출현 배경, 특징에 대해서는 성고운, 「조선후기 청화백자 병화(瓶花)도상으로 본 명대의 영향」, 『美術史學硏究』 308(2020), pp. 75-81.

16) 서양에서는 중국 명말·청초에 해당하는 1620년에서 1688년의 한정된 기간을 ‘과도기(Transitional period)’라고 부른다. 이 시기 수출자기 양식에 대해 1923년 독일의 치머만(Zimmermann)이 ‘명 후기의 수출자기(Export-ware)’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일본에서는 ‘부용수(芙蓉手)’라 칭하는 크락양식의 청화자기를 이 시기의 대표적 유물로 보았다. 또한 R.L. 홉슨(Hobson)은 명말·청초 청화자기의 한 종류를 ‘Transitional Ware’이라고 명명하였다. 西田宏子, 「明·淸移行期の諸相」, 『東西交流の陶磁史』(東京: 中央公論美術, 2008), p. 225, 註1) 재인용. E. Zimmermann, Chinese Porzellan, Leipzig, 1923, pl. 67, 68; R.L Hobson, The Wares of the Ming Dynasty, London, 1923, p. 149, pl. 38, 44.

17) 본고에서 명말·청초 유럽 수출 청화백자를 구분하는 양식 명칭과 기준은 방병선, 「17세기 중국 무역도자 연구 - 유럽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강좌미술사』 33(2009), pp. 203-214; 방병선, 『중국도자사 연구』(경인문화사, 2012), pp. 455-464에 제시된 양식 기준에 따랐다.

18) 강희 22년(1683) 중앙정부에서 감독관을 파견한 것으로 어요창이 다시 부활하게 된다. [淸] 藍浦, 『景德鎭陶錄』 卷2, 「國朝御窯廠恭紀」, “十九年九月, 始奉燒造御器……二十二年二月, 差工部虞衡司郞中臧應選, 筆帖式車爾德來廠, 代督器日完善.”

19) 廣東省博物館, 『海上瓷路: 粵港澳文物大展』(廣州: 嶺南美術出版社, 2012), p. 251; Rose Kerr, 앞의 책(2011), p. 25.

20) 이 시기에 보이는 박고문은 가장 다양한 종류의 소재로 결합되며 복잡한 구도를 보인다, 영미권에서 흔히 지칭하는 ‘Hundred antiques’, ‘Auspicious objects’ 등은 이와 같이 다양한 소재로 조합된 박고문자기를 말한다.

21) Hon Cau 침몰선은 강희 29년(1690)에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중 베트남 해역에서 난파된 것으로, 庚午年 (1690)에 제작된 먹, 중국 동전인 <萬曆通寶>와 <康熙通寶> 등을 통해 그 시기를 대략 169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Hon Cau 침몰선에서 출수된 박고문자기는 청화 주자(Teapot)로, 편년 추정이 가능한 침몰선 자료 가운데 팔보 소재가 조합된 박고문의 양상을 알 수 있는 가장 이른 예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대항해 시대 바닷길에서 만난 아시아 도자기』(2017), p. 150.

22) 신주혜, 앞의 논문(2022), p. 50.

23) Monteith는 1680년대 영국의 은기로 다수 제작되었던 기형으로 상류층 사이에서 와인을 마실 때 안에 얼음을 넣고 테두리에 와인 잔을 걸어 두어 식히는 용도이다. 자기에서는 소량으로 확인되며 주로 18세기 이후 영국의 수요층을 겨냥하여 제작한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경덕진에서 이와 같은 기형의 제작은 1710년 이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되며, 그 모본은 영국 은기를 본 따 제작된 1684년作의 델프트 도기 <Monteith>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Thomas V. Litzenburg and Ann T. Bailey, Chinese export porcelain in the Reeves Center collection at Washington and Lee University(London: Third Millennium Pub., 2003), p. 217.

24) 유럽에서 오채자기는 1700년경인 18세기 초로 접어들면서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17-18세기 유럽사회에서는 바로크, 로코코 문화의 영향으로 유럽의 미감이 변화하여 이전 청화자기 뿐 아니라 화려한 색채의 상회자기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방병선, 앞의 논문(2009), pp. 202-203; 西田宏子, 앞의 논문, pp. 245-271.

25) 바타비안 품종은 주로 수출용으로 제작된 자기로 병, 주자, 찻잔세트 등 다양한 기종과 기형에서 확인된다. 유럽으로 향하던 강희연간의 붕타우(Vung Tau), 복건성 碗礁 1호, 옹정연간의 까마우(Ca Mau) 침몰선에서는 주로 병이나 찻잔세트의 바타비안 자기가 출수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유럽으로 수출된 바타비안 자기는 특히 네덜란드인들의 취향에 부합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陳聞娃, 「16-19世紀的中國貿易瓷」, 『文物鑒定與鑒賞』 6期(合肥: 時代出版傳媒股份有限公司, 2019), p. 45.

26)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기록에 의하면, 바탕이 흑색계열의 파미유 누아르 품종의 자기는 18세기에 흔한 유럽 수출자기였다고 전해진다. Rose Kerr, Chinese Ceramics: Porcelain of the Qing Dynasty 1644-1911(London: V&A, 1998), p. 27.

27) 일명 파우더 블루 품종은 제작기법상 코발트 블루 산화물을 파이프에 넣고 불어 넣어 바탕을 남색으로 표현한 자기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바탕색에 중점을 두어 藍釉 혹은 藍地자기라고 부르기도 하며 푸른 하늘색과 같다고 하여 ‘天藍釉’, ‘天靑釉’라고도 칭한다. 葉喆民, 『中國陶瓷史』(北京: 三聯書店, 2011), pp. 592-593; 17세기 말부터 바타비안 품종의 브라운 계열의 유색으로 대체된 1725년 이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Jörg C. J. A., Famille verte: Chinese porcelain in green enamels(Schote: Groninger Museum, 2011), p. 103.

28) 西田宏子, 「淸朝の輸出陶磁-欧米け製品を中心として」, 앞의 책(2008), p. 73.

29) 조개형접시는 조개형태를 본 따 일본에서 명명한 것으로, 유럽에서 실제 조개류나 생선류를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아 사용했던 전형적인 유럽식기류이다. 西田宏子, 앞의 논문, p. 194; C. J. A. Jörg, 앞의 책(2011), p. 154.

30) 大橋康二, 鈴田由紀夫, 古橋千明編, 『柿右衛門樣式磁器調査報告書-歐州篇』(九州産業大学柿右衛門様式陶芸研究センター柿右衛門様式磁器調査委員会, 2009), p. 247, pl. 433.

31) 신주혜, 앞의 논문(2020), pp. 117-118.

32)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유형 분류 및 특징에 관해서는 신주혜, 앞의 논문(2022), pp. 47-53 참조.

33) 까마우 침몰선은 18세기경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중 난파된 것으로, 베트남 최남단인 Ca Mau 성에서 167km 떨어진 해역에서 발견되었다. 수중 발굴조사는 1998-1999년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과 까마우박물관, 비잘 사(Visal Company)가 공동으로 실시하였다. 출수 유물 가운데 옹정연간의 명문이 새겨진 청화백자가 포함되어 있고, ‘강희통보(康熙通寶)’가 동반 출수되어 그 제작 시기를 대략 청대 옹정연간인 18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선적된 중국 자기는 경덕진요 청화백자와 오채자기, 복건성 덕화요 백자, 광동성 민요자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약 5만 점이 유럽 수출을 위한 수출자기로 확인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앞의 책, p. 180.

34) 분채라는 명칭은 清末 光緖年間(1874-1908)에 편찬된 『匋雅』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저자인 寂園叟는 분채를 ‘康熙彩硬,雍正彩軟, 軟彩者, 粉彩也.’라 하여 ‘軟彩는 粉彩’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재까지 분채에 대한 시각은 복잡한 성격을 보이지만, 지금까지 연구 성과를 토대로 본다면 분채는 民窯에서 제작된 법랑자기를 의미했을 가능성이 높다. 분채기법 그 자체는 강희 중엽부터 있었다고 하여도 그 완성은 역시 옹정연간, 빨라도 강희 말엽으로 생각되며, 분채자기의 해외수출은 옹정 중기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분채의 정의 및 성격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김은경, 「朝鮮後期 淸代 琺瑯瓷器 受容 硏究」(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8), pp. 71-73을 참고; 분채자기의 수출과 관련해서는 蔡毅, 「淸代粉彩與外銷」, 『中國古陶瓷硏究』(北京: 紫禁城出版社, 2008), pp. 369-378을 참고.

35) 방병선, 「청대 중서(中西) 도자 교류의 표상, 광채(廣彩)」,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9(2015), pp. 33-35.

36) 신주혜, 앞의 논문(2020), pp. 120-121.

37) 방병선, 앞의 책, pp. 563-566.

38) 18세기 후반 유럽 내 중국 인식에 대한 변화 양상은 최경현, 「18세기 유럽인의 중국 인식과 시각이미지의 변화」, 『美術史學硏究』 305(2020), pp. 207-211; 18세기 이후 중국과의 무역에 선두에 있었던 영국의 경우, 1840년대 이르면 18세기까지 환상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중국 및 동양에 대한 인식이 친숙함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Richard Hayman, Chinoiseire(Oxford: Shire Publications, 2021), p. 9.

39) 방병선, 「네덜란드공화국 유입 중국도자가 델프트 도기에 미친 영향」, 『강좌미술사』 48(2017), pp. 311-335.

40) 상대적으로 영국은 유럽 안에서 시누아즈리 양식의 채용 단계도 매우 늦은 편이었다. 영국은 18-19세기의 산업화로 인해 사회과 변화되고, 공장제가 실시되면서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되었다. 산업도자의 경우, 1740년대 후반 런던의 보우(Bow), 첼시(Chelsea)에서 연질자기 생산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자산업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방병선, 앞의 논문(2019), p. 144.

41) 신주혜, 앞의 논문(2022), p. 57.

42) 1670년대가 되면 델프트에서는 유상채 도기인 상회 델프트 도기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방병선, 앞의 논문(2017), p. 322.

43) H. P. Fourest, Delftware: Faience Production at Delft(New York: Rizzoli, 1980), p. 134.

44) 신주혜, 앞의 논문(2020), p. 130; 삽도 119-121. 참고

45) Frick Collection ed, The Arnhold collection of Meissen porcelain, 1710-50(London: D. Giles, 2008), p. 209.

46) 신주혜, 위의 논문(2020), p. 131.

47) 1730년 3월의 기록에 마이센에 동아시아 도자기를 모방하여 1,500여 점의 병과 접시를 제작하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주문서가 확인된다. Julia Wieber, 「중국 황제에 도전하다-강건왕 아우구스투스와 도자기 컬렉션」, 『王이 사랑한 보물』(국립중앙박물관, 2017), p. 233.

48) 빙매문 청화자기는 이후 19세기 영국에서 17세기 강희연간의 자기에 대한 애호가 급증하면서 매우 가치 있는 중국자기로 알려졌다. 훗날 ‘Hawthorn ginger jar’라고 명명된 빙매문 장식의 항아리는 루이스 휴스(Louis Huth, 1821-1905)가 소유하기도 하였으며, 19세기 런던에서 가장 훌륭한 중국 청화백자로 알려져 있었다. Gerald Reitlmger, The Economics of Taste: The Rise and Fall of the Objets de’Art Market Since 1750(New York: Holt, Rinehartand Winston, 1965), p. 206.

49) W. Pitcairn Knowles, Dutch Pottery and Porcelain(London: B.T. Batsford, 1913), p. 28; pl. ⅩⅩⅡ. 원문은(https://archive.org/details/dutchpotteryporc00know/page/n31/mode/2up) 2021년 11월 23일 검색.

50) (https://www.rct.uk/) 소장품 참고.

51) 김희정, 「유럽에 분 동양의 바람, 시누아즈리(Chinoiserie)」, 『도자기에 담긴 동서교류 600년』(국립중앙박물관, 2021), p. 167.

52) 방병선, 앞의 논문(2019), p. 145.

53) 방병선, 위의 논문(2019), pp. 137-146.

54) Michael Archer, Delftware: In the Fitzwilliam Museum(London: Philip Wilson Publisher, 2013), p. 118, pl. B.59.

55) W. Pitcairn Knowles, 앞의 책, p. 68.

56) John Stalker and George Parker, A Treatise of Japaning and Varnishing(London: Printed for the Author, 1688). 원문은 스미스소니언도서관(Smithsonian Libraries)에서 제공한 것을 참조하였다.(http://library.si.edu/digital-library/book/treatisejapanin00stal), 2021년 12월 1일 검색.

57) 마이센자기의 제작 초기 단계에는 비교적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재현된 중국, 일본자기 등을 모방하여 시누아즈리 양식으로 제작한 사례가 많다. 17-18세기 마이센 공장에서 시누아즈리 양식의 도자 제작은 헤롤트, 요한 스테들러 등 뛰어난 도화공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시누아즈리 예술에 표현되는 도상에 일종의 새로운 양식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된다. 진영, 「17-18세기 중반 유럽의 中國風 美術 硏究: 시누아즈리 美術에 나타난 中國的 要素의 考察을 중심으로」(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5), p. 25.

58) 이정민, 「18세기 영국 우스터 자기와 중국수출자기의 영향관계: 청화백자 풍경문 다호를 중심으로」, 『美術史學』 39(2020), p. 179.

59) 유럽 정물화와 청대 박고도, 박고문자기와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서양화법과 구도, 소재 등의 친연성으로 논의가 제기된 바 있다. 聂崇正, 「靜物畫與博古圖」, 『收藏家』 6(北京市文物局, 1995), pp. 60-62; Welsh, Jorge, The vases of the ‘ hundred treasures’(London: Jorge Welsh Books, 2019), pp. 6-70.

60) 프롱크(pronk)는 네덜란드어로 ‘과시’, 장식, 겉치레, 허영의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17세기 초반 다종다양했던 여러 정물화의 갈래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17-18세기에 이르러 당시 활발한 국제 무역을 통해 들어온 진귀하고 값비싼 여러 악기, 중국제 접시, 식기류, 이국적인 형태의 칼, 음식, 외래산의 다양한 꽃 등을 그려 놓는 프롱크 정물화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어느 정도 모두 프롱크 정물화의 성격을 띠게 된다. 최정은,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정물화』(한길아트, 2000), p. 275; 손수연, 「네덜란드 장르화에 재현된 도자기」, 『미술사와 시각문화』 15(2015), p. 164.

61) Jeffrey H. Munger, European Porcelain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8), pp. 138-140.

62) 꽃 정물화 주위의 달팽이를 비롯한 작은 동물이나 곤충들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면, 곤충과 애벌레는 탐욕과 허무함, 죄에 얽매인 인간의 모습이며, 도마뱀과 나비는 죄와 부활을 나타낸다. 최정은, 앞의 책, p. 74.

Fig. 1.
<프리젼 총독 가문 궁전의 라커룸>, The Frisian stadtholder‘s Lacquer room, before 1695, wood(plant material), H 53cm, Rijksmuseum(Image provided by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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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중국풍 집>, Chinese House, c. 1750, Buckinghamshire, England(Image from Chinese whispers: chinoiserie in Britain, 1650-1930, 2008, pp. 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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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청화박고문접시>, Blue and White with Bogu pattern Dish, c. 1643, Hatcher Cargo ⓒ Chri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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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청화박고문차용기>, Blue and White Tea caddy with Bogu pattern, 1628-164 4, H 20.5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Image provided by S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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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청화박고문호>, Blue and White Jar with Bogu pattern, ca. 1690-1700, Wanjiao no. 1 shipwreck, H 27.4cm, National Museum of China(Image from Ceramics Recovered from Underwater from the Wanjiao No.1 Shipwreck, 2006, pl.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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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Monteith(Wine glass)〉, ca. 1715-1720, D 32.1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Image provided by The 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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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남지오채박고문병> Pear-shaped bottle vase with powder Blue, Bogu pattern, c. 1700-1720, H 23.1cm, Rijksmuseum(Image provided by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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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오채박고문조개형접시>, Shell-shaped dish with Famille Verte, Bogu pattern, early 18th c, D 19.3cm, Rijksmuseum(Image provided by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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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오채박고문접시>, Famille Verte Dish with Bogu pattern, c. 1723-1735, Ca Mau shipwreck, D 13.5cm, H 4cm, Vietnam National Museum of History(Image from The age of discovery: asian ceramics found along the maritime silk road, pl.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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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분채박고문찻잔세트>, Famille Rose Cup&Saucer with Bogu pattern, ca. 1736, D 11.5cm, Philadelphia Museum of Art(Image provided by Philadelphia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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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청화크락양식박고문접시>, Blue and White and Kraak style Dish with Bogu pattern, 1660-1680, Delft, D 34.8cm, V&A(Image provided by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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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청화박고문병>, Blue and White Vase with Bogu pattern, 1722-1757, Delft(De Griekche A), H 26.2cm, D 13cm, Rijksmuseum(Image provided by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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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3.
<청화박고빙매문호>, Blue and White Jar with ‘crackled ice’ and Bogu pattern, 1690 -1700, Delft, H 18cm, D 13.5cm, V&A(Image provided by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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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4.
<청화박고화조문접시>, Blue and White Dish with flower and Bogu pattern, ca. 1720, H 9.2cm, The Fitzwilliam Museum, Cambridge(Image provided by The Fitzwilliam Museum, Cam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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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5.
<청화박고문접시>, Blue and White Dish with Bogu pattern, 1691-1724, Delft(Metalen Pot factory), D 49.2cm, V&A(Image provided by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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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6.
<청화박고문밸러스터병>, Blue and White Baluster Vase with Bogu pattern, Stadler, Johann Ehrenfried(1701-1741), ca. 1721(23), Meissen, H 68.7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Image provided by S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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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7.
<청화박고문접시>, Blue and WhiteDish with Bogu pattern, 1740-1750, Delft, Cite de la ceramique(www.sevresciteceramiqu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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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8.
얀 브뢰헐 2세, <꽃 정물화>, Jan Brueghel(Ⅱ), Still Life with Flowers in a Glass, c. 1625-1630, 24.5x19cm, Rijksmuseum(Image provided by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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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9.
<청화박고화조문접시>, Blue and WhiteDish with flowers, Birids and Bogu pattern, 1700-1730, Delft, D 33.4cm, V&A(Image provided by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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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0.
<청화박고문호>, Blue and White Jar with Bogu pattern, ca. 1695-1710, Saint-Cloud factory, H 20.5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Image provided by The 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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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17-18세기 유럽 수출 명·청대 박고문자기 시기별 특징 Ming and Qing Dynasty bogu export porcelain for European market in the 17th and 18th century types by period
Early Period Middle Period Late Period
시기 1640-1680 1680-1730 1730-1780
Period
대표 편년작 Hatcher Cargo(c. 1643) Hon Cau(c. 1690), Wanjiao no. 1(ca. 1690-1700) Ca Mau(ca. 1735)
Production Period
주요 특징 병화 도상 중심 병화. 문방청완, 팔보문 등 다양한 소재와의 결합 병화, 길상 소재 중심
Design FlowersinaVaseImage Flowers in a Vase Image, Munbang Cheongwan(文房淸玩, Well-equipped Scholar’s Study), or Auspicious Signs Flowers in a Vase Image or Auspicious Signs
주 기종 접시, 병 접시, 호, 병 등 다양한 유럽식 기형 접시, 찻잔세트 등
Shape Dish, Vase Dish, Jar, Vase, European Shaped Dish, Cup&Saucer etc
시문기법 청화 청화, 오채 청화, 오채, 분채
Decoration Technique Blue and White Blue and White, Famille Verte Blue and White, Famille Verte, Famille Rose
양식 및 제품 크락양식, 과도기양식 강희양식, 바타비안, 파우더 블루, 파미유 누아르, 차이니즈 이마리
Style and Products Kraak, Transitonal style Kangxi style, Batavian, Powder Blue, Famille Noire, Chinese Imari Products

REFERENCES

藍浦, 『景德鎭陶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대항해 시대 바닷길에서 만난 아시아 도자기』, 2017.

김은경, 「朝鮮後期 淸代 琺瑯瓷器 受容 硏究」,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8.

김희정, 「유럽에 분 동양의 바람, 시누아즈리(Chinoiserie)」, 『도자기에 담긴 동서교류 600년』, 국립중앙박물관, 2021.

방병선,「명말청초(明末淸初) 중국(中國) 청화백자(靑花白瓷) 연구」, 『강좌미술사』 30, 2008.

,「17세기 중국 무역도자 연구-유럽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강좌미술사』 33, 2009.

,『중국도자사 연구』, 경인문화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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