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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13; 2022 > Article
조선후기 청화백자를 통해 본 칠보문의 구성과 활용*

Abstract

칠보문은 상서롭고 진귀한 가치를 지닌 여러 사물을 소재로 한 복합 문양으로, 조선후기 공예 장식으로 애호되었다. 본 연구는 사료와 유물을 종합하여, 그동안 파악되지 못했던 칠보문의 연원과 구성을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조선후기 왕실부터 민간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사용된 청화백자의 사례를 통해 칠보문의 제작양상과 특징을 파악하였다. 칠보문을 구성하는 금정, 은정, 원전 등의 소재는 보문이라고 칭할 수 있으며, 중국 당대 처음 시작되어 송~청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 조선에서는 이러한 보문 소재를 통틀어 특별히 ‘칠보’라는 용어로 칭했다. 칠보문은 조선후기 공예의 여러 장르에서 사용되었는데, 이중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는 폭넓은 계층에서 애호된 청화백자는 칠보문 활용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유물을 검토한 결과 청화백자의 칠보문은 일상생활 기명 전반에 장식되었으며, 최소 23가지 소재가 칠보문의 종류로 파악되었다. 칠보문은 주문양은 물론 보조문양까지 폭넓게 등장해 활용도가 매우 높은 문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칠보문이 장식 소재로 애용될 수 있었던 것은 갖가지 보문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다채로운 구성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Abstract

What is called the “Chilbo” pattern consists of multiple motifs that bear traditional values of auspiciousness, rarity, or preciousness. Although the well-ordered, complex design enjoyed great favor in the production of the Late Joseon decorative arts, little academic attention has been paid so far unfortunately. Comprehensive examination of textual sources and surviving examples, however, sheds a new light on a body of less-studied scholarly issues including the origin of the Chilbo pattern, its composition, and especially the way in which the pattern was applied to underglaze cobalt blue decoration in the late Joseon period. Specific motifs such as coins of gold or silver or other metals, which constitutes the Chilbo pattern, were collectively referred to as “Treasure Motifs,” the concept of which made the first appearance in the Tang dynasty (618~907) and gradual developments from the Song (960~1279) up to the Qing (1644~1912) dynasties. The motifs from China and similar kinds together earned an all-inclusive designation in Korea: Chilbo . Among various decorative media across which the Chilbo pattern was widely employed is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especially remarkable; featuring a diversity of design possibilities, the medium was widely favored in the late Joseon society from the royal court to a private house. A survey of extant porcelain examples reveals that the pattern was used in the whole range of everyday wares; furthermore, it confirms that at least 23 motifs have been included in the Chilbo combination. The pattern’s potential to integrate primary and subsidiary motifs brought about huge applicability. In other words, the Chilbo pattern became popular since the potential diversity of motif combinations allowed the pattern to yield a myriad of compositional variations.

Ⅰ. 머리말

칠보문(七寶紋)은 상서롭고 진귀한 가치를 지닌 여러 사물을 소재로 한 복합 문양이다.1 칠보문은 고려시대 미술에서 초보적으로 등장한 이후 조선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공예 장식문양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2 특히 조선후기에는 칠보문이 도자는 물론 금속, 목제, 직물 등 공예의 여러 장르에서 활용되었으며, 민간을 비롯하여 왕실 의례용 기물의 장식으로도 등장했다.3 나아가 근대기에도 조선색을 반영한 문양으로 여겨지며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4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애용되어 온 칠보문은 일찍이 전통문양 개론서를 통해 일반에 소개되었고, 특히 복식사 분야에서 개별 연구가 진행되었다.5 선행 연구에서는 칠보문이 현실의 부귀(富貴), 학문(學文) 등을 상징하는 길상물을 모티프로 한 문양이라는데 공통된 인식을 보이나, 칠보문의 연원, 구성, 시문 양상 등 기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한편, 미술사 분야에서 칠보문에 대한 단독 연구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칠보문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류와 조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식문양으로 칠보문은 주문양보다 보조문양으로 활용된 사례가 많아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한 측면도 있다. 사실 칠보문은 조선후기 공예 전반에서 사용된 만큼 유물을 통해 구성과 시문 양상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청화백자는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는 폭넓은 계층에서 애호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존 수량도 상당하다. 따라서 이를 통해 칠보문을 살펴본다면 문양의 구성과 시문 양상 등을 이해하는 것이 유효하다.
본고에서는 그동안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했던 칠보문의 연원을 찾고, 문양을 구성하는 소재들을 최대한 정리하고자 한다. 나아가 조선후기 청화백자의 사례를 통해 칠보문의 구체적인 용례를 파악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과 중국의 유물 및 기록을 폭넓게 분석하여 칠보문의 개념과 구성을 밝히고, 조선후기 청화백자를 통해 칠보문의 시문 양상과 특징을 추출하겠다. 이로써 그동안 막연히 이해된 칠보문의 성격을 정립하고 공예 장식문양으로써 의의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Ⅱ. 중국 보문(寶紋)의 연원과 시대별 전개

기존의 연구에서는 금정(金錠), 원전(圓錢), 파초선(芭蕉扇), 여의(如意) 등 귀중하고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사물을 모티프로 한 문양을 ‘보문’이라 지칭했다.6 보문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널리 활용되어 동아시아 미술 전반에 공유된 문양 소재이다. 각 나라는 보문의 조형과 길상적 의미를 공유했지만, 다종다양한 보문 소재를 이르는 명칭에는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7 그중 조선에서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보문 소재를 통틀어 ‘칠보(七寶)’라 하였다.8
고려시대 미술에서부터 시작하여 조선 전시기 동안 공예 장식으로 사용되어 온 칠보문은 최소한 35가지 이상의 소재로 구성되었음이 파악되었다.9 그러므로 조선시대 칠보문 소재의 연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곧 보문의 연원과 계통을 정리하는 일이 선결되어야 한다. 보문은 중국 당대 처음 시작된 이래, 송·원·명·청을 거치며 시기별로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여 구성이 점차 풍부해졌다. 조선의 칠보문 유입과 정착은 중국 미술 내 보문의 흐름과 떼어 놓을 수 없으므로, 본 장에서는 중국 미술에서 보문 소재의 시기별 발전상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에서 보문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당대(唐代, 618~907)로, 둔황 벽화에서 초기의 모습이 확인된다. 벽화의 내용은 불교 경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보문은 보시(布施)를 하거나 하늘에서 우보(雨寶)가 내린다는 경전의 내용을 도해한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Fig. 1, 1-1).10 일례로 둔황 막고굴 제 208굴에는 값진 보배들이 땅에 떨어져도 욕심내는 사람이 없는 미륵 정토의 평온한 생활상이 그려졌는데, 해당 장면에서 호병(胡甁)·견면(絹綿)·서각·상아·원전·산호·구슬 등이 확인된다.11 도상이 비롯된 경전의 내용을 따른다면 금·은·진주·호박 등 갖은 보석이 등장해야 한다.12 하지만 경전 속 보석이 갖는 고유의 빛, 색, 형태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속의 귀한 물건들로 보석이 갖는 상징성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겨지면서, 벽화에서는 보석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값비싼 물건들로 대체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만당기에 이르면 보문의 종류는 금정·은정·원전·산호·구슬·서각·방승·만자 등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13 당대 공예품의 보문을 살펴보면 법문사 지궁 출토 <사리함> 중 북방비사문천왕(北方毘沙門天王)의 배경을 장식하는 소재로 금정·구슬 등을 새겼고, 6~8세기의 <납힐직물>처럼 산호·은정·서각·만자(卍字) 등의 소재가 패턴화된 사례가 있다(Fig. 2).14 비록 보문이 시문된 공예품의 수량은 많지 않지만, 직물의 사례를 통해 장식문양으로 초보적인 사용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송대(宋代, 960~1279)에는 당대의 보문 구성을 이어받는 한편, 각종 공예품의 장식문양으로 본격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도시 문화가 발달하며 세속의 가치를 상징한 모티프들이 등장한 때이다.15 길상 문양의 유행에 따라 보문 소재는 광범위하게 유통되었고, 송을 비롯하여 요·금의 미술에서도 등장한다.16 공예 장식으로 보문은 칠기, 자기, 금속기 등 다양한 재질의 기물에 활용되었다. 특히 자주요(磁州窯)나 길주요(吉州窯)와 같은 민요(民窯)에서 획화(劃花), 전지첩화(剪紙貼花), 압출양각(壓出陽刻) 등 쉽고 빠르게 문양을 복제할 수 있는 기법을 활용해 보문 장식이 있는 자기를 생산하였다(Fig. 3, 3-1).17 이처럼 민간에서 대량으로 제작되는 공예품 장식에 보문이 활용된 것은 보문 소재의 인식과 활용에 저변화가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원대(元代, 1271~1368)에는 당~송대 유통된 보문에 개(蓋)·쌍어(雙魚)·소라[螺]·바퀴[輪]·병(甁)·연꽃[蓮花]·산(傘)·반장(盤長)이 추가되었다. 새로이 등장한 소재들은 불교의 공양물 이미지로 일찍이 당대 이후 둔황이나 티벳 지역에서 유통되던 것이다.18 원 황실의 티벳 불교 숭앙과 함께 종교적 상징물 이미지가 중원으로 유입되면서 보문 소재가 증가한 것으로 생각된다.19 한편 원대에는 표현상의 특징도 관찰되는데, 연판문(蓮瓣紋)과 보문이 결합하고 보문 주위로 띠장식이 부가되었다. 원대 공예에 활용된 연판문은 병, 호의 경부나 동체 하부 또는 반과 같이 편평한 기물의 내저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Fig. 4).20 일정한 크기의 연판 내부에 각기 다른 종류의 보문이 시문되는데, 짜임새 있게 구획된 기면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규칙적인 경향을 띤다. 또한 보문 주변으로 더해진 흩날리는 띠장식은 8~9세기 불교 미술에서부터 확인되는 요소로 물건 자체가 가진 생명력과 힘을 상징하였다.21 띠장식 외에도 보문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요소로써 화염이나 구름이 표현되어 보문의 존귀함이나 상서로움을 암시하였다.22
이어서 명대(明代, 1368~1644)는 이전 시기보다 보문의 사용이 더욱 활발해지는 한편, 그 종류와 구성이 풍성해지는 경향이 뚜렷해진다. 무엇보다 명대 전기에는 송~원대 보문의 구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문을 활용한 일정한 구성을 갖춘 도안(圖案)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명대 확립된 보문 도안은 팔보(八寶)와 팔길상(八吉祥)으로 각각 금정·은정·원전·방승·상아·서각·구슬·산호(Fig. 5)와 바퀴·소라·개·산·연꽃·쌍어·병·반장(Fig. 6)의 구성을 갖춘다. 두 도안은 적어도 영락연간(永樂年間, 1402~1424)경부터 구별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23 16세기 후반 간행된 『강서성대지(江西省大志)』에도 두 소재가 분명히 구별되어 명대에는 그 차이를 일반에서도 인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24
명대 말엽은 이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롭고 다양한 구성의 보문이 유통되었다. 이렇게 보문 소재가 폭증하게 된 배경은 당시 삽화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했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삽화는 기존에 소설과 희곡을 중심으로 발달했지만 명말에는 점술서, 보록(譜錄)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에도 적용되어 상업 서적의 흥행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25 삽화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보문의 종류도 다채로워졌는데 악기, 문방구, 청동기 등의 사물이 고사(故事)나 문인적 생활을 상징하며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방씨묵보(方氏墨譜)』나 『십죽재전보(十竹齋箋譜)』와 같은 디자인 서적에 사물과 그것이 암시하는 고사의 표제어가 한 화면에 등장해 사물 소재가 특정 상징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준다.26 더불어 묵보와 전보에 수록된 디자인은 실제 공예품 장식에 적용되어 명말에는 사물 소재의 장식이 증가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Fig. 7).27 이러한 경향에 힘입어 명말에는 보문의 구성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일례로 숭정연간(崇禎年間, 1628~1644)에 제작된 <청화박고도삼족로(青花博古圖三足爐)>(Fig. 8)는 기면이 산호·구슬·책·원전·반장·파초선·필통 등 다양한 소재로 가득 채워져 명말 확장된 보문의 구성과 종류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청대(淸代, 1644~1912)는 보문 소재가 꾸준히 활용되는 시기로, 명대에 정립된 팔보와 팔길상 등 보문을 활용한 도안이 더욱 확산되는 반면, 명말의 사례처럼 갖은 종류의 보문을 기면 전체에 가득 채우는 방식은 쇠락하였다. 대신 보문이 테두리 프레임이나 중심 소재의 주변 공간을 채우는 보조문양으로 사용된 예가 많다. 대표적으로 <척채용봉집복규판식반(剔彩龍鳳集福葵瓣式盤)>(Fig. 9)은 복(福)자 내부를 거문고·북·방승·은정·산호 등의 보문으로 채운 사례이다. 청대에는 길상 도안을 조합하여 문양의 의미를 배가시키는 장식이 선호되었는데28, 길상 문자인 ‘복’을 중심에 크게 배치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보문으로 채운 것도 이러한 경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대 황실의 의물을 도해하고 설명한 『황조예기도식(皇朝禮器圖式)』에 따르면 갖은 종류의 보문은 팔보(八寶) 또는 잡보(雜寶)라고 기록되었다.29 따라서 적어도 청대에는 팔보가 기존의 의미에서 확장되어 보문 전체를 칭하기도 했으며, ‘많다’ 또는 ‘잡다하다’는 의미의 ‘잡(雜)’을 사용해 보문을 통칭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 미술에서 보문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당대 처음 확인되는 보문 소재는 이후 송·원·명·청대를 거치며 규모와 활용의 모든 측면에서 성장을 거듭해왔으며, 다종다양한 보문은 팔보 또는 잡보라고 불렸다. 이렇게 중국 미술에서 형성된 보문은 조선으로도 전해졌고 ‘칠보’라 일컬어지며 공예 장식으로 애용되었다. 즉, 보문은 중국과 조선에서 소재와 표현 방식은 동일하나 그것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만 다른 것이다.

Ⅲ. 조선시대 칠보문의 종류와 구성

칠보문은 조선 전시기 사용된 것으로 널리 인식되고는 있지만, 그 구성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추정되어 온 경향이 짙다. 이번 장에서 조선에서 보문 소재를 통틀어 왜 칠보라 하였는지, 칠보문의 구성은 어떠한지 유물과 기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기존의 논의에서 칠보문은 명칭의 ‘칠(七)’이라는 단어 때문에 ‘일곱 가지’ 소재로 구성되었으리라 판단되거나, 인물과 동물상으로 구성된 전륜성왕의 칠보가 간략화된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30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륜성왕 칠보와의 관련성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추단되어 온 부분이며, 칠보문이 시문된 유물과 관련 기록을 검토해보면 일곱 가지 이상의 소재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칠보문의 기본 정보인 구성과 성격을 명확히 파악해야만 시문 양상과 제작 경향 등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칠보문은 특히 조선 후기 공예 전반에 폭넓게 사용되었으므로, 이 시기의 자료에 집중하여 문양의 성격과 특징을 규명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보문을 개별적으로 명명하지 않고 칠보로 통칭하며 하나의 문양으로 인식했다. 실제 유물과 기록을 살펴보면 현재 알려진 것보다 칠보문 구성 소재가 더욱 다양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왕실 현판이 있다.
왕실 현판의 사례 가운데 정조의 후궁 수빈박씨(綏嬪朴氏, 1770~1822)의 혼전에 걸었던 <현사궁 현판>과 『현목수빈빈궁혼궁도감의궤(顯穆綏嬪殯宮魂宮都監儀軌)』(1823)의 기록은 칠보문의 구성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Fig. 10). 이 의궤는 1823년(순조 23)에 창경궁 도총부 안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의 혼전을 조성하면서 남긴 기록으로, 현사궁(顯思宮) 현판 제작에 참여한 화원과 소요 물목 등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에 따르면 현사궁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칠한 글자를 올렸고 테두리[局量]에 칠보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31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현사궁 현판을 살펴보면, 테두리에 연환·금정·파초선·부채+여의·방승·개·부채(원선·접선)·종+경·호리병·화축·은정·서각의 소재가 확인된다. 따라서 의궤에 기록된 ‘칠보’는 반드시 ‘일곱 개’를 의미하기보다, 여러 종류의 보문을 통틀어 가리킨 것임을 알 수 있다(Table 1).
이 외에도 후술할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1901) 중 향합 도설을 통해서도 칠보가 일곱 가지 소재 이상으로 구성된 문양임이 드러난다. 이 의궤에 따르면 향합에 칠보가 시문되었다고 기술되었는데, 도설을 보면 일곱 가지 이상의 소재가 그려져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 칠보문은 명칭의 ‘칠’이 곧 문양 구성 요소의 개수를 뜻한다고 여겨졌지만, 실제 유물을 검토한 결과 칠보문은 일곱 가지와 별다른 상관이 없고, 다양한 종류의 보문을 통틀어 이른 명칭임이 명확해졌다.32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왜 보문을 칠보로 통칭한 것일까. 추정컨대 조선에서 ‘칠보’라는 단어가 귀중하고 값어치 있는 물건의 대명사로 쓰였고, 의미가 확장되어 귀중한 사물 소재로 구성된 문양까지도 칭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려시대 문헌에서부터 칠보는 갖은 보석이나 귀중한 물건을 의미하였고,33 그것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34 조선전기 기록 중 비단에 짜여진 문양으로 칠보가 등장하며,35 중기의 기록에서도 왕릉의 병풍우석(屛風隅石)에 조각된 영저(鈴杵)와 영탁(鈴鐸)을 칠보라 명명하는 내용이 확인된다.36 중기의 사례는 사물의 원명칭을 대신하여 칠보로 그 대상을 칭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용례에 비추어 일찍부터 귀중한 사물을 뜻하던 칠보가 의미를 확장하며 일군(一群)의 보문을 통틀어 이르는 용어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한다.

Ⅳ. 칠보문의 제작양상과 특징: 조선후기 청화백자를 중심으로

앞선 장에서 조선시대에 일군의 보문을 통틀어 칠보로 칭했음을 확인하였다. 이번 장에서는 청화백자의 사례를 통해 칠보문의 구성과 활용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청화백자 칠보문의 제작 흐름을 시기에 따라 파악하고 유물을 바탕으로 칠보문 소재를 종합한 뒤, 칠보문이 조선후기 청화백자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시문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눠 검토하겠다.

1. 제작과 구성요소

청화백자에 칠보문 장식이 활발하게 시문된 것은 조선후기이나, 이미 전기부터 청화 기법으로 칠보문이 장식된 사례가 확인된다. 즉, 청화백자 칠보문은 조선 전시기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기에 여기에서는 먼저 조선 전~중기 청화백자 칠보문의 제작 추이를 간략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선후기 칠보문 청화백자의 제작과 유통 경향을 살핀 뒤, 유물에서 확인되는 칠보문 소재를 종합하여 문양의 구성을 파악하겠다.
조선전기에는 주기(酒器)로 사용된 전접시의 뒷면과 명기(明器)와 같은 소형 기물에서 칠보문이 확인된다(Fig. 11).37 전기 유물에서는 금정·은정·서각·원전·산호·구슬·상아·여의두 등과 같은 소재가 확인되며, 칠보문은 등간격을 이루어 폭이 좁은 곳을 장식하는 보조문양으로 기능했다. 다만 전기에는 청화백자 제작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상을 반영하듯, 칠보문이 시문된 유물의 수량이 극히 적고 기종도 한정되어 널리 유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선중기는 양란의 여파로 청화백자 생산이 원활하지 못했고, 대신 철화백자가 주로 생산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칠보문 청화 또는 철화백자의 사례는 매우 드물지만38 직물 등 다른 재질의 공예품에서 칠보문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17세기 중후반 제작된 경기도박물관 소장 <성산이씨(1651~1671) 자라줌치>에는 금정·서각·원전·구슬·산호 등 칠보문이 수놓아져 있다(Fig. 12). 이처럼 다른 재질의 공예품에 칠보문이 등장하기 때문에 중기 백자의 장식으로도 칠보문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칠보문이 청화백자 장식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후기 이후이다. 17세기 이후 청화백자 생산 여건이 안정화 되었고39 더불어 사번(私燔)이 성행했으며,40 공예 전반에 장식 애호 풍조가 일어나는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칠보문도 전기보다 다양한 기종에 시문되었다. 조선후기 청화백자 칠보문의 제작 경향은 생산지와 소비지 출토품 그리고 전세품을 종합하여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칠보문 청화백자가 생산된 요장을 검토해보면, 18세기 전~중반 운영된 금사리 요지에서는 주로 뚜껑 편에서 칠보문이 확인된다. 그러나 1752년 이후부터 분원이 해체되는 19세기 말까지 운영된 분원리 요지에서는 호, 완 등 더욱 다양한 기종에서 칠보문을 찾아볼 수 있다.41 생산지의 출토 경향은 조선후기 청화백자의 생산과 수요가 확장됨에 따라 칠보문 청화백자의 생산 또한 증가하고 기종 구성이 다채로워졌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소비지의 경우 궁궐인 경복궁과 덕수궁 권역을 비롯하여 한양 내 시전(市廛)과 관청으로 추정되는 유적에서 칠보문 청화백자가 출토되었다.42 특히 조선후기부터 1925년 경성운동장 건립 이전까지의 퇴적층이 확인된 동대문운동장유적에서 칠보문이 시문된 합, 호, 연적 등이 출토되어 칠보문 청화백자의 소비는 조선후기는 물론 근대기에도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43 이같이 출토품과 전세유물을 종합해보면 칠보문은 병, 합, 접시, 반, 완, 주자, 연적, 필통·지통, 화분받침과 같이 각종 음식기, 문방구, 생활용품 등을 망라하며 조선후기 생산된 백자 기종 전반에 걸쳐 시문되었음을 알 수 있다.44
필자가 현재까지 확인한 조선후기 청화백자에 시문된 칠보문의 소재는 적어도 23가지에 이른다. 개(蓋)·거문고·경(磬)·구름·금정·꽃봉오리·나뭇잎·만자(卍字)·바퀴·방승·파초선·생황·서각·호리병·연환·은정·비파·필통·여의·화축·꽃·부채·원전이 있으며, 향후 더 많은 칠보문 소재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Table 2).45

2. 시문 유형별 특징

(Table 2)를 통해 최소 23가지의 소재가 조선후기 청화백자 칠보문으로 인식되었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여기에서는 칠보문 소재의 배치 방식을 기준으로 청화백자 칠보문의 시문 유형을 구분한 후 그 특징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칠보문은 다종다양한 소재의 집합으로서 일정한 범주를 가지는 한편, 칠보문의 소재들은 단독으로 등장하거나 다른 문양과 결합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공예의 장식 소재가 풍성해지고 시문 방식이 다채로워지는 가운데, 칠보문이 주문양은 물론 보조문양에 이르기까지 크게 애호된 요인은 다른 문양에 비해 자유롭게 이합집산하여 조합할 수 있다는 장식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 조선후기 청화백자 칠보문의 시문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Ⅰ유형은 칠보문 소재가 등간격으로 배치되어 문양대를 이루는 것이며, Ⅱ유형은 칠보문 소재 중 몇 가지가 선택적으로 등장해 다른 문양소재와 결합한 유형이다. 마지막 Ⅲ유형은 기면 전체를 오직 칠보문만이 장식한 것이다(Table 3).
Ⅰ유형은 칠보문 소재들이 등간격으로 열을 지어 배치되며 문양대를 구성한다. 이와 같은 유형의 칠보문은 원통형 기물의 폭이 좁은 부분이나, 구연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활용되었다(Fig. 13). 앞서 살펴보았듯 15세기 전접시의 후면 장식에도 등간격으로 배치된 칠보문이 시문되어 Ⅰ유형은 조선 전시기에 걸쳐 활용된 유형이라 볼 수 있다. 조선후기 백자에 종속문양이 다시 등장하고, 기면 내에서 문양이 점유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가운데,46 칠보문을 등간격으로 배치해 문양대로 활용한 것 또한 기면 장식을 더욱 복합적으로 구성해 여백 없이 빽빽하고 치밀한 시문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Ⅱ유형은 칠보문의 여러 소재 중에서 선택된 몇 가지가 문자문, 과일문, 절지화훼문을 비롯한 다른 문양과 결합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Ⅰ유형은 칠보문이 등간격을 유지하면서 짜임새 있는 배치가 돋보였다면 Ⅱ유형은 칠보문 범주에 속한 소재들이 독립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Ⅱ유형에서 칠보문 소재가 다른 장식문양과 결합 되는 것은 19세기 이후 청대 미술의 영향으로 길상 문양의 유행이 심화 되면서 조선후기 백자의 장식 소재 역시 풍성해진 흐름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47 청대 도자기를 비롯한 문물의 유입으로 불수감·복숭아·석류와 같은 과일문과 모란·국화 등의 절지화훼문, 도안화된 문자문, 화창(花窓) 등 새로운 장식 소재가 떠올랐고,48 칠보문은 이러한 소재와 번갈아 배치되며 짜임새 있게 기면을 장식했다. 일례로 칠보문 중 화축과 불수감이 번갈아 배치된 경우를 살펴보면, 열매와 가지 그리고 잎으로 구성된 불수감과 칠보문이 번갈아 기면을 장식하고 있다(Fig. 14). 일정하게 패턴화된 문양이 조합을 이루며 시문되는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확인되는 경향으로, 칠보문과 다른 문양 소재가 번갈아 배치되는 사례 역시 조선후기 백자 장식 경향의 일반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가 가능하다.49 또는 단독으로 유통되는 칠보문 소재가 주문양이 아닌 배경을 장식하는 보조문양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용, 사자 등 서수(瑞獸)나 기명절지문의 배경을 보조하는 사례가 그것이다(Fig. 15, 15-1). 보문 소재로 배경을 장식하는 예는 중국 미술에서 확인되며, 그 영향을 받아 조선에서도 배경 장식으로 활용되었다. 조선후기 청화백자의 장식 경향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Ⅱ유형의 칠보문은 다른 장식문양과 호응하거나 화면을 보충하는 요소로 활용되어 상황에 따른 응용력과 수용력이 뛰어난 문양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Ⅲ유형은 칠보문을 구성하는 복수의 소재들이 기면을 가득히 장식한 것이다. 이는 기면이 매끄럽게 만곡하며 무게중심이 하향한 스타일의 병에서 주로 확인된다(Fig. 16).50 이 경우 앞서 살펴본 어떤 유형보다 한 기물 내에 표현된 칠보문 소재가 가장 풍부하다는 점이 핵심이다. 칠보문을 기면 전체에 시문하는 경향은 청화백자 외에 왕실에서 사용된 금속제 공예품에서도 확인되는 바로, Ⅲ유형의 칠보문이 왕실을 중심으로 특수하게 사용되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일례로 대한제국 시기 선원전 의례에 사용된 의례기물을 정리한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摹寫都監儀軌)』(1901) 중 은제 향합(香盒)은 기면 전체가 칠보문으로 장식되었다.51 내용에 따르면 2·3실의 작헌례에 사용된 은제 향합은 전면에 칠보문을 조이로 시문하고 그 위에 순청색의 파란(波蘭)52으로 장식했다.53 도설 또한 경(磬)·은정·서각·비파·화축·연환·금정·꽃봉오리 등을 비롯한 칠보문 소재가 그려졌고, 그것을 장식하는 띠장식과 빈공간을 채우는 구슬 장식이 함께 표현되었다(Fig. 17). 1·2·3실의 향합 도설에도 개(蓋)·금정·책·서각·파초선·방승·원전·부채·은정·호리병·쌍어(雙魚)·연환 등 칠보문 소재가 확인된다(Fig. 18).
Ⅲ유형은 하나의 기물에 표현된 칠보문의 소재가 풍부하고 시문의 품질 또한 정치하여 칠보문 구성에 대한 지식이 상당할 뿐 아니라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제작 시스템을 갖춘 집단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면 전체를 칠보문으로만 장식한 사례는 청화백자뿐만 아니라 왕실용 금속기에도 확인되는 만큼, Ⅲ유형 칠보문의 제작과 유통은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조선후기 청화백자를 통해 본 결과 칠보문은 시문 대상의 형태나 장식 구성에 제약을 받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히 적용되었다. 이것은 칠보문이 여러 소재로 구성된 복합적인 문양이며 각각의 소재들이 이합집산하는 특성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칠보문은 기면 내 빈공간을 채우기 위한 보조문양부터 기면 전체를 점유하는 주문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이는 곧 칠보문이 어떠한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는 유연한 수용성이 특징인 문양임을 드러낸다.

Ⅴ. 맺음말

본고에서는 다소 막연하게 인식된 칠보문의 연원을 규명하고 종류 및 구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사용된 청화백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칠보문의 제작양상과 특징을 파악하였다.
가장 먼저 칠보문의 연원인 보문에 대해 검토했다. 동아시아 미술 전반에 공유된 보문은 중국 당대 처음 등장한 이래, 송·원·명·청을 거치며 발전해왔다. 당대 이후 소재의 확장을 거듭한 보문은 조선에서 특별히 칠보문이라 불리며 공예 장식문양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조선후기 공예품에 활용된 칠보문의 구성과 시문 양상은 청화백자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청화백자의 칠보문은 그 소재가 적어도 23가지에 이르며, 주문양은 물론 보조문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등장하여 어떤 문양보다 활용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가운데 기면 전체를 칠보문으로 장식한 유형이 왕실 금속기의 사례와 흡사하여, 금속과 도자에 장식된 칠보문의 상호 연관성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칠보문이 주문양과 보조문양을 넘나들며 장식 소재로 애용될 수 있었던 것은 갖가지 소재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다채로운 구성을 연출할 수 있다는 칠보문의 장식적 이점이 컸기 때문이었다.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칠보문의 사례로서 청화백자에 주목하였으나, 금속, 목제 등 다른 재질별 시문 양상과 특징 또한 면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향후 상술한 문제를 비롯하여 중국 보문의 국내 유입 정황 등 칠보문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들을 후속 연구로 기약하겠다.

Notes

1) 현재 문양 연구에서 칠보문의 종류로 은정, 금정, 서각, 방승, 화축, 나뭇잎, 거울, 경(磬) 등을 꼽고 있으나 칠보문의 소재와 구성은 알려진 것보다 더 다양하다. 칠보문은 단독연구보다는 조선시대 문양에 관한 개론서에서 간략하게 설명되어 왔으며, 이와 관련한 대표 저술은 다음과 같다. 임영주, 『傳統紋樣資料集』 (미진사, 1986), pp. 13-14; 同著, 『한국전통문양 1』 (예원, 1998), pp. 135-136; 국립문화재연구소, 『우리나라 전통무늬2 도자기』 (2008), pp. 430-431 등

2) 고려 명종 7년(1177)에 제작된 밀양 표충사 소장의 <청동은입사향완> 저부에 하늘을 나는 용이 시문되었는데, 그 배경에 칠보문 소재의 하나인 금정이 있다. 이외에도 고려시대에 그려진 사경변상화나 불상 내에 납입된 복장 직물 가운데서도 칠보문이 확인된다. 고려~조선시대 칠보문 소재의 수용에 관해서는 이다란, 「조선 후기 공예품의 칠보문(七寶紋)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1), pp. 37-59 참조.

3) 칠보문은 조선후기 왕실 의례에 사용된 은병, 향로 등의 장식문양으로 선택되었다. 구혜인은 제사의 성격별로 제기의 문양에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규명했는데, 이 가운에 칠보문은 왕실의 속제용(俗祭用) 기물에 한정적으로 시문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구혜인, 「조선시대 왕실 제기(祭器)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9), pp. 308-309 참조.

4) 서지민,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연구: 운영과 제작품의 형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pp. 58-59.

5) 미술사에서 칠보문의 연원과 시문 양상 등을 검토한 연구는 많지 않다. 그러나 복식사 분야에서 칠보문 또는 보문을 주제로 한 연구가 축적되어 참고된다. 임재영, 「우리나라 七寶紋樣에 關한 硏究: 現存遺物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석사학위논문, 1978); 오하나, 「15세기 이후 한·중 전통직물의 보문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석사학위논문, 2008); 김우경, 「자수기법 칠보수(七寶繡)에 관한 연원문제-칠보(七寶)와 칠보문(七寶紋)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韓服文化』 23(1) (2020. 03) 등. 이 연구들에서는 복식 및 직물에 한정된 칠보문의 양상을 언급했으나, 칠보문의 연원이나 소재 등을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6) 귀중하고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사물 모티프의 문양을 ‘보문’이라 칭한 대표적인 사례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편찬한 『우리나라 전통 무늬』 1~7(2006~2014) 시리즈이다. 이 저작에서는 생활 주변에서 사용하던 기물 중에 상서롭고 기쁜 일을 가져다줄 것으로 여긴 상징물들을 간단한 부호로 정리하여 무늬로 사용한 것을 보배무늬, 즉 ‘보문(寶紋)’이라고 정의하였다.

7) 일례로 중국의 경우 『강서성대지(江西省大志)』 卷7 「도설(陶說)」이나 『황조예기도식(皇朝禮器圖式)』 등 명~청대 문헌에서 보문을 통틀어 팔보(八寶)라 칭했으며 간혹 잡보(雜寶)라고 명명했음이 확인된다. 일본은 무로마치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보문 소재를 수용했는데, 당시의 기록을 보면 ‘宝尽くし’ 또는 ‘宝’라고 기록하며 보문을 칭하였다. 이다란, 앞의 논문, pp. 7-8; 중국에서는 보문 소재에 대한 언급은 많지만, 명칭·개념·범주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정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일본에서는 관련 연구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8) 현재 문양 관련 저술에서 보문을 칠보, 불교의 보문, 도교의 보문, 잡보 등의 몇 가지 계통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칠보가 아닌 팔보로 문양을 지칭하기도 한다. 허균, 『전통 문양』 (대원사, 2000), pp. 114-117; 국립문화재연구소, 앞의 도록, p. 431; 국립중앙박물관, 『길상, 중국미술에 담긴 행복의 염원』 (2012), p. 106 등. 이 경우 칠보는 보문 소재 중 일곱 가지를 선택해 성립된 문양으로 이해되며, 구체적으로 원전·서각·방승·화축·나뭇잎·거울·경의 일곱 가지 소재만으로 구성된 문양이라는 점이 전제된다. 후술하겠지만 조선에서는 보문 소재를 통틀어 칠보라 총칭했으며, 그 구성은 일곱 가지 소재에 한정되지 않으므로, 선행 연구의 분류법은 정정될 필요가 있다.

9) 칠보문의 구성과 범주를 추정하기 위해 현전하는 금속제, 목제, 도자제 공예품에 장식된 칠보문 종류를 유물 실견 및 이미지 조사를 통해 최대한 수합하였다. 그 결과 적어도 조선후기 공예품에 장식된 칠보문은 최소 35가지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 종류를 열거하면 거울·구슬·징·여의(如意)·연방(蓮房)·책·추(椎)·구름·꽃봉오리·반장(盤長)·병(甁)·비파(琵琶)·산(傘)·쌍어(雙魚)·연꽃·개(蓋)·경(磬)·나뭇잎·만자(卍字)·바퀴·생황(笙簧)·소라·원전(圓錢)·화축(畵軸)·파초선(芭蕉扇)·금정(金錠)·방승(方勝)·부채·서각(犀角)·연환(連環)·은정(銀錠)·호리병·담뱃대·복주머니·거문고 등이다. 이다란, 앞의 논문, pp. 141-143.

10) 沙琛喬, 「雜寶紋起源考 - 由佛教七寶圖的演變設起」, 『絲綢之路硏究集刊』 6 (2021), pp. 391-394.

11) 호병, 견면, 상아, 서각 등은 서역의 상인들에 의해 수입되던 물목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귀중하고 고급스러운 것으로 이해되었다. 沙琛喬, 위의 논문, pp. 396-398; 당대 공예에 나타난 호풍의 영향에 관해서는 김은경, 「唐代 長沙窯의 胡風 형성과 그 배경」, 『美術史學』 41 (2021. 02), pp. 73-82 참조.

12) 세상이 평온하여 길에 떨어진 보배도 탐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佛說彌勒下生經』에서 확인된다. 내용을 보면 금·은·차거(車璩)·마노(馬瑙)·진주(眞珠)·호박(虎珀) 등 값진 보배가 땅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 탐하는 자가 없다고 하여 보배의 종류를 정확하게 열거하고 있다. 『佛說彌勒下生經』 卷1 T14 421b9-14, “爾時 閻浮地內自然生粳米 亦無皮裹 極為香美 食無患苦 所謂金銀珍寶車璩馬瑙真珠虎珀 各散在地 無人省錄 是時 人民手執此寶 自相謂言昔者之人由此寶故更相傷害 繫閉在獄受無數苦惱 如今此寶與瓦石同流 無人守護”

13) 沙琛乔, 앞의 논문, p. 398.

14) 해당 유물은 영국의 스타인 원정대가 중앙아시아 카라호토에서 수집한 6~8세기 납힐 직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정보는 심연옥, 『한국직물문양 이천년』 (고대직물연구소 출판부, 2006), p. 148을 참고.

15) 郭學雷, 「南宋吉州窯瓷裝飾與世俗文化」, 『收藏』 2012(21) (2012. 11), pp. 58-61; 북송~금대 도시문화의 성행 속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관해서는 지민경, 「중국 근세 시각문화에서의 이미지 생산과 소비 - 磁州窯系 瓷枕을 중심으로 -」, 『한국도자학연구』 23 (2016. 04)을 참조.

16) 송대 이후 보문의 인식과 활용의 확장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오늘날 중국의 산서성과 하남성 일대에 분포한 북송~금대 장식고분이 있다. 해당 고분에는 재화의 상징 또는 배경 장식으로 보문이 그려져 문양을 향유하는 계층과 공간적 범위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송~금대 장식고분의 성격과 벽화에 그려진 보문에 관해서는 아래의 논고를 참조. 지민경, 「北宋·金代 裝飾古墳의 소개와 기초 분석」, 『美術史論壇』 33 (2011. 12); 이다란, 앞의 논문, pp. 190-191.

17) 중국 하북성 한단시 자현 일대에 위치한 자주요와 중국 강서성 길안시 영화진에 위치한 길주요는 모두 송~원대에 걸쳐 운영된 대표적인 민요로 주로 서민들이 사용한 생활용품이 제작되었다. 두 요장에 관한 정보는 아래를 참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도자』 (2007), p. 156; 한성백제박물관, 『흑자의 멋, 차와 만나다』 (2018), p. 76.

18) 불교 공양물의 시원적인 이미지는 당송시기 둔황 벽화 등에서 확인된다. 당시 밀교의 영향으로 만다라의 네 끝을 장식하나, 이미지의 종류와 배치 순서는 고정적이지 않다. 楊鴻姣, 「明代藏傳佛教八吉祥紋樣在漢地的傳播及其風格演變」, 『西藏藝術研究』 2008(01) (2008. 03), pp. 69-70.

19) 원 황실의 티벳 불교 신봉 이후 불교의 공양물 이미지가 확산되어 도자, 금속, 비단 등 공예품의 장식 문양으로 도입되었다. 원 황실의 티벳 불교 수용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티모시 메이 저·권용철 역, 『칭기스의 교환』 (사계절, 2020), pp. 279-286을 참조.

20) 朱裕平, 『元代靑花瓷』 (文匯出版社, 2000), pp. 233-236.

21) 馬世長, 「大隨求陀羅尼曼茶羅圖像的初步考察」, 『唐硏究』 10 (2004), p. 547, pp. 557-559; Paul Copp, The body incantatory: spells and the ritual imagination in medieval Chinese Buddh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4), pp. 95-98.

22) 朱仁星, 「佛家珍寶-七政寶與八吉祥 (上)」, 『故宮文物月刊』 196 (1999. 07), p. 28.

23) 명대 영락연간(永樂年間, 1402-1424) 생산된 자기에서부터 ‘바퀴·소라·개·산·연꽃·쌍어·병·반장’의 순서를 갖춘 팔길상 도안이 확인된다. 이러한 조합은 가정연간(嘉靖年間, 1521-1566)까지 이어져 명초부터 후기까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명말~청초에 이르면 쌍어와 병의 순서가 바뀌는 예도 등장한다. 朱仁星, 위의 논문, p. 32.

24) 國立故宮博物院, 『福壽康寧吉祥圖案瓷器特展圖錄』 (1995), p. 36.

25) 명말 삽화 발전의 흐름에 관해서는 오키 야스시 저, 고인덕 역, 『중국 명말의 미디어 혁명-서민이 책을 읽다 -』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3), pp. 56-86를 참조.

26) 명대 미술에서 삽화의 역할과 기능에 관해서는 Wright, Suzanne E, “Luoxuan Biangu Jianpu and Shizhuzhai Jianpu: Two Late-Ming Catalogues of Letter Paper Designs.”, Artibus Asiae 63, no. 1 (2003); J.P. Park, “Instrument as Device - Social Consumption of the Qin Zither in Late Ming China (1550-1644)”, Music in Art 33, no. 1/2 (2008) 등을 참조.

27) 이다란, 앞의 논문, pp. 26-27.

28) 田自秉·吴淑生·田青著, 『中國文樣史』 (高等敎育出版社, 2003), p. 380.

29) 본문 각주 7 참조; 『皇朝禮器圖式』 중 황태후 의물인 <皇太后儀駕盥盆> 테두리에 반장·바퀴·연꽃·蓋·傘·물고기·병·여의·그림·서각·구슬·금강저가 그려졌다. 부기된 설명에는 ‘邊鈒花文八寶’라고 하여 그려진 보문을 통틀어 팔보라 칭했음을 알 수 있다.

30) 조선시대 칠보문과 전륜성왕 칠보의 연관설은 인물과 동물 그리고 몇 종류의 사물로 구성된 전륜성왕의 칠보[윤보(輪寶)·상보(象寶)·마보(馬寶)·주보(珠寶)·여보(女寶)·거사보(居士寶)·장군보(將軍寶)]가 어느 순간 간략화되어 칠보문의 형태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繡林苑 編, 『李朝의 刺繡』 (昌震社, 1974), pp. 102-10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朝鮮時代 피륙의 무늬』 (2002), pp. 206-207; 김우경, 앞의 논문, p. 75 등. 그러나 당대에 귀중한 물건의 상징인 보문과 전륜성왕의 동물 및 인물상은 동시기에 등장하고 있기에 도상의 간략화라는 전제는 성립되기 어렵다. 필자가 검토한 바에 따르면 조선의 칠보문과 전륜성왕의 칠보를 연결한 최초의 언급은 『李朝의 刺繡』이나 해당 부분에는 부가 설명과 출처 표기를 위한 각주가 남겨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특별한 검토 없이 반복적으로 인용되어왔고, 그 결과 전륜성왕의 칠보와 조선시대 칠보문을 연결 짓는 오류가 꾸준히 생산된 것이라 생각된다.

31) 『顯穆綏嬪殯宮魂宮都監儀軌』 (1823) 卷3, “正宮因傳敎設於昌慶宮都總府一新修改戶曹新揭顯思宮懸板御筆書下漆質金字陽刻板與局量椴板畵七寶…”

32) 이와 유사한 사례로 십장생문이 있다. 십장생문 역시 명칭에 포함된 ‘십(十)’으로 인하여 열 가지 장생물로 구성된 문양이라 이해되었으나 관련 기록을 검토한 결과 조선후기에는 총 13가지의 소재가 십장생으로 인식되었으며 백자에 시문될 때에도 소재가 10개로 지켜지지 않고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최경화, 「조선후기 십장생문 백자 연구」, 『美術史學硏究』 295 (2017. 09) 참조.

33) 고대부터 칠보는 여러 가지 보물, 보석 등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고려 문헌에서 七寶器, 七寶帶와 같이 갖은 보석으로 장식한 기명과 띠가 언급되었다. 『高麗史』 卷33 「世家」 忠宣王 卽位 8월; 『高麗史』 卷123 「列傳」 최충헌.

34) 조선시대 문헌에도 역시 갖은 보석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용례로 족두리, 비녀 등 여성의 머리 장신구를 꾸미는 소재를 언급할 때 ‘칠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正祖實錄』 卷26, 12年(1788) 10月 7日 辛卯條, “如七寶之類 如前飾用 則有改制之名 無昭儉之實也 凡係首飾金玉珠貝及眞珠唐紒眞珠套心之屬, 一幷禁斷一於由味 巨頭味 係是命婦常時所着 人家讌婚所用 勿爲禁斷…”

35) 『燕山君日記』 卷54 10年(1504) 6月 14日 癸酉條, “命入白細花七寶紋紗五匹 柳靑花紋紗四匹 大紅雲紋紗三匹 花紋白紗五匹”; 『燕山君日記』 卷54 10年(1504) 7月 13日 辛丑條, “傳曰 藍匹段滿金線 以七寶細花紋織入” 이상 기록은 연산군이 작은 꽃[細花]과 칠보(七寶) 무늬로 비단을 짜 올리라고 명령한 내용이다. 조선전기 유물 중 <연안 김씨 묘 출토 저고리>를 통해 작고 은은한 느낌의 꽃과 칠보가 어우러진 비단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우리나라 전통무늬1 직물』 (2006), p. 161.

36) 『孝宗寧陵山陵都監儀軌』(1673) “健元陵以下各陵所排石物中屛風隅石外面則刻七寶屛風面石外面則刻人像…” 건원릉 이하 각능 소배석 중 병풍우석 외면에는 칠보가, 병풍면석의 외면에는 인물상이 조각되었다는 내용이다. 건원릉은 태조의 능으로 병풍우석에 새겨진 문양은 영저(鈴杵)와 영탁(鈴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릉 석물조각사 2』 (2017), p. 426.

37) 조선전기 전접시의 칠보문은 일찍이 다수의 연구에서 언급되었다. 이 가운데 칠보문의 양식적 연원을 명대 청화 백자에서 찾거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티베트 미술과 연결 지은 사례가 있다. 관련된 연구로는 아래를 참조. 윤효정, 「朝鮮 15·16世紀 靑畵白磁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pp. 97-98; 전승창, 「조선 초기 명나라 청화백자의 유입과 수용 고찰」, 『美術史學硏究』 264 (2009. 12), p. 50; 이현정, 「15-16세기 朝鮮 白磁에 보이는 明代 磁器의 影響」, 『美術史學硏究』 270 (2011. 06), p. 143; 김윤정, 「朝鮮初 酒器의 조형 변화와 원인」, 『강좌미술사』 37 (2011. 12), pp. 138-139.

38) 전세품 가운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백자청화 칠보초화문 팔각연적>은 연적의 몸체에는 초화문을 윗면에는 칠보문을 단정하게 시문한 수작(秀作)이다. 17세기 유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시기 청화백자 생산이 원활하지 못했던 사실에 반해, 유물의 유색·기형·시문 품질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점에서 편년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해당 유물을 중기의 작례로 확정하지 않고, 각주로 간략히 전한다. 관련 정보는 아래를 참조. “백자청화 칠보초화문 팔각연적”, 삼성미술관 리움, 접근 2022년 2월 27일, https://www.leeum.org/collect/collect01_detail.asp?seq=620.

39) 이슬찬, 「조선 17세기 청화백자의 제작과 확산」, 『美術史學硏究』 302 (2019. 06), pp. 153-157.

40) 방병선, 「조선 후기 사기장인 연구」, 『美術史學硏究』 241 (2004. 03), pp. 203-208; 최경화, 「朝鮮後期 分院里 時期官窯白磁 硏究: 1752-1895년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4), pp. 12-16; 이종민, 「朝鮮 官窯에서의 私燔 실태와 영향」, 『역사와 담론』 86 (2018. 04), pp. 371-374.

41) 국립중앙박물관·경기도박물관, 『京畿道廣州中央官窯: 窯址地表調査報告書』 (2000);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조선시대 마지막 官窯廣州 分院里 白磁窯址』 (2006); 경기도자박물관, 『광주 조선백자요지 6차 발굴조사보고서』 (2020).

42) 칠보문 청화백자는 경복궁·덕수궁 권역, 청진 12~16지구 유적, 동대문 운동장 유적 등 궁궐을 비롯하여 시전, 관청으로 추정되는 유구에서 다수 출토되었다. 칠보문 청화백자 출토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다란, 앞의 논문, pp. 103-109 참조.

43) 중원문화재연구원, 『동대문 운동장 유적: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부지 발굴조사』 (2011), pp. 233-236.

44) 칠보문은 조선 후기 백자 기종 전반에서 확인되며 호와 합에 시문된 경우가 많다. 칠보문 청화백자 전세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다란, 앞의 논문, pp. 109-134 참조.

45) <table 2>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원광대학교박물관, 『開校50周年紀念 博物館圖錄』 (1996), p. 92.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조선백자』 (2015), p. 176. ⒞Fig. 16의 세부 ⒟<백자청화산수문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H. 40.2cm (필자촬영) ⒠Fig. 13의 세부 ⒡경기도자박물관, 『분원백자전Ⅰ 조선후기 청화백자』 (2009), p. 69.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2014), p. 137.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 뉴어크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2016), p. 109. ⒤백자청화산수문호, 서울역사박물관, H. 32.5cm (https://museum.seoul.go.kr/) ⒥한국국제교류재단, 『일본소장 한국문화재 3』 (1997), p. 79. ⒦국립중앙박물관, 『朴秉來蒐集李朝陶磁』 (1974), pl. 155. ⒧온양민속박물관, 『사진과 해설로 보는 온양민속박물관』 (1996), p. 82.

46) 최경화, 「編年資料를 통하여 본 19世紀 靑畵白磁의 樣式的 特徵」, 『美術史學硏究』 212 (1996. 12), p. 93.

47) 최경화, 앞의 논문, pp. 169-170; 장기훈, 「朝鮮後期 分院白磁의 特徵」, 『분원백자전Ⅰ』 (경기도자박물관, 2009), pp. 306-308.

48) 길상문은 청의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문양을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등의 특징을 갖는다. 장기훈, 위의 논문, p. 307.

49) 18세기 4/4분기-19세기 초로 편년되는 분원리 1호요지 가마2호 상부퇴적과 바닥내에서 출토되는 복숭아문[桃紋]은 복숭아열매+나뭇잎, 꽃잎+나뭇잎 등의 문양 조합을 보인다. 이를 근거로 18세기 후반경에는 문양의 패턴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최경화, 앞의 논문, pp. 177-180.

50) 무게중심이 하향한 병은 18세기 말경에는 이미 제작되기 시작하여 19세기 이후에는 굽도 낮아지고 동체의 형태도 다양화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최경화, 앞의 논문, pp. 219-221.

51) 『影幀摹寫都監儀軌』에는 선원전 제사에 사용된 기물을 사실감 있게 묘사한 도설이 포함되어 있다. 의궤의 제작 배경과 도설의 종류에 관해서는 구혜인, 「대한제국기 경운궁 선원전 禮器의 구성과 함의-『영정모사도감의궤』 (1901) 도설 속 기명을 중심으로」, 『美術史學硏究』 288 (2015. 12) 참조.

52) 금속 소지에 유리질 유약을 얹고 고온에 녹여 장식하는 기법을 조선에서는 파란(波蘭) 또는 파랑(巴琅)이라 하였다. 정약용의 어휘 연구서인 『아언각비(雅言覺非)』 (1819)에 따르면 “법랑은 잘못 번역되어 파랑(巴琅)이 되었다. 중국음은 본디 ‘ᄫᅡ랑’이다. 譯書에 이르기를 은에 푸른 빛을 칠한 것이라고 했다”라 하여 명칭의 어원과 뜻을 밝혔다. 정약용 저, 정해겸 역, 『아언각비·이담속찬』 (현대실학사, 2005), p. 99; 한편 오늘날에는 이러한 기법이 칠보라 명명되기에 간혹 현재의 용례에 입각해 조선시대 문헌 기록의 칠보를 장식기법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파란이라 불리던 기법이 언제부터 칠보로 칭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칠보가 장식기법을 의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53) 『影幀摹寫都監儀軌』 (1901) “銀質七寶雕伊 各色波蘭 上盖梨花鍍金 圓徑三寸二分 高二寸五分 三室同 波蘭 則純靑 眞殿茶禮時所用”

Fig. 1, 1-1.
<막고굴 208굴 북벽 ‘衆人觀寶而不取’의 보문(원전·서각·산호·호병 등)>, ‘衆人觀寶而不取’ illustration in Dunhuang Mogao Cave 208 and Bomun motifs, 650-753 CE, Dunhuang Mogao Cave, image from Dunhuangshiku Quanji 6 Mileijing Huajuan (2002), Fig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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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납힐 단편에 보이는 보문 구성(구슬·산호·서각·은정·만자 등)>, Bomun motifs in Batic fragment, 8th-9th c. CE, Kara-Khoto in Western Inner Mongolia, National Museum of New Delhi, image from 2,000 Years of Korean Textile Design (2006), Fig 3.35-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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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3-1.
<瓷質印花盤模>, Porcelain dish mould with carved design of a deer carrying a tablet inscribed “Vessel of Zhao the First”, Jin dynasty(1115-1234), H. 4.0cm, D. 23.2cm(mouth), Excavated in 1963 from the Hebiji klin site, Hebi city, Henan Museum, image from Complete collection of ceramic art unearthed in china 12Henan (2008), p.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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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青花雲龍纏枝牡丹紋 獸耳蓋罐>, Jar with two handles,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dragon and peony scroll design, Yuan dynasty(1271-1368), H. 46.5cm, Gao’an Museum, image from Gao’an Museum website (www.gasbwg.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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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青花雲托八寶紋高足杯>, Blue and white stemcup with the Eight Treasures supported on clouds, Chenghua reign(1447-1487), Ming dynasty, H . 8.0cm, D. 9.5cm(mouth), National Palace Museum, image from National Palace Museum Digital Archive (digitalarchive.npm.gov.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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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青花蓮托八吉祥紋盤>, Blue and white porcelain Plate with Bajixiang and Lotus scroll design, Ming dynasty, Chenghua reign(14 47-1487), H . 3.8cm, D . 19.0cm, National Palace Museum, image from National Palace Museum Digital Archive (digitalarchive.npm.gov.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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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天寶>, 『方氏墨譜 』卷 5, Tianbao motif in Fangshi Mopu(collections of ink designs), 1588, Ming Dynasty, image from Shuge website (new.shu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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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青花博古圖三足爐>, Blue and white porcelain incense burner with three feed and design of antique, Chongzhen Reign(1628-1644), Ming dynasty, The Palace Museum, image from Palace Museum website (digicol.dpm.org.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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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剔彩龍鳳集福葵瓣式盤>, Lacquered Mallow-Petal Plate with Chinese Character for “Blessing”, Qinglong Reign(1736 -1795), Qing Dynasty, H. 3.5cm, D. 19.5cm(mouth), The Palace Museum, image from Palace Museum website (digicol.dpm.org.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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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현사궁 현판>, Plaque of Hyŏnsagung, 1823 CE, Joseon dynasty, Colors on wood, H. 56.0cm, W. 130.5cm,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image from Emuseum (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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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청화보상화당초문반>, Blue and white porcelain Plate with Baoxianghua Scroll Design, 15th c. CE, Joseon dynasty, H. 2.0cm, D. 22.7cm, The Museum of Oriental Ceramics, Osaka, image from MOCO website (www.moco.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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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자라줌치>, Pocket, 17th c. CE, Joseon dynasty, W. 8.5cm, D. 17.0cm, Gyeonggi Province Museum, image from FEMALEORNAMENTS IN THE17THCENTURYJOSEON DYNASTY (2019),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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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5, 15-1.
<구름 용무늬 항아리>,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Design, 18th c. CE, Joseon dynasty, H. 55.2㎝, The Museum of Oriental Ceramics, Osaka, image from IN BLUE AND WHITE:PORCELAINS OF THE JOSEON DYNASTY (2010), Fig.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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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7.
<은제 향합 도설(2·3실)>, 『영정모 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 Illustrated Explanation of Silver Incense Case, Uigwe for Painting the Royal Portrait, 1901 CE, Korean Empire, Colors on paper,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image from Kyujanggak website (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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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8.
<은제 향합 도설(1·2·3실)>, 『영정모 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 Illustrated Explanation of Silver Incense Case, Uigwe for Painting the Royal Portrait, 1901 CE, Korean Empire, Colors on paper,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image from Kyujanggak website (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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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현사궁 현판> 테두리의 칠보문 구성, Composition of the Chilbo motif in the Plaque of Hyŏnsagung(顯思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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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2>
조선후기 청화백자의 칠보문 소재, Composition of the Chilbo motif in Blue and White Porcelain of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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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3>
청화백자 칠보문 시문 유형별 특징, Characteristic of the Chilbo motif in Blue and White Porcelain by ty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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