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청화백자 병화(瓶花)도상으로 본 명대의 영향*

A Study on the Influence of the Ming Dynasty from the Flower Arrangement Images of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in the Late Joseon Period*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Art Hist. 2020;308():73-104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0 December 31
doi : https://doi.org/10.31065/kjah.308.202012.003
**Doctoral Student, Department of Cultural Heritage and Museology, Fudan University; Visiting Scholar,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RIKS), Korea University
성고운**
**중국 복단대학교 문물 및 박물관학과 박사과정, 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객원연구원
*

본 논고는 2020년 6월 20일 한국미술사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Received 2020 September 1; Revised 2020 October 13; Accepted 2020 December 7.

Abstract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조선 청화백자에 등장한 병화(瓶花)도상은 화병이나 화분에 식물을 꽂은 도상을 가리킨다. 병화문화는 명대 중기 이후 문인들의 『준생팔전(遵生八牋)』(1591), 『병화보(瓶花谱)』 (1595), 『병사(瓶史)』(1599), 『장물지(长物志)』(1621) 등 서적과 <병화도(瓶花圖)> 회화를 비롯해 『당시화보 (唐詩畫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畫譜)』 등 판화로 확대되었다. 특히 병화의 품등을 청동기와 가요자기 등의 고동 화병으로 구분 짓는 행위는 문인들의 고동기에 대한 인식 욕구를 자극했다. 이러한 병화 도상이 시문된 중국 도자는 숙신공주(淑愼公主, 1635~1637)묘와 종로 청진 12-16지구에서 발굴되었으며 허균은『한정록(閑情錄)』에서 명대 문인 원굉도(袁宏道)의 『병사(瓶史)』를 부록으로 실어 병화문화를 전파했다.

조선의 청화백자에서도 병화도상은 청동기의 돌기와 유두문(乳頭文)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요자기의 빙렬문양도 확인된다. 특히 중국 청화백자에서는 보이지 않는 청동기 돌기와 가요자기의 빙렬문을 결합한 병화도상도 등장한다. 또한 병화의 구체적 품등에 대한 기록과 삽화가 등장하는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와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병화문화에 대한 이해가 확인되며 19세기 이유원은 「화사(花史)」에서 병화문화를 시로 각색하였다.

이렇듯 도자에 그려진 병화도상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문인들의 병화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조선에서도 허균이나 김홍도, 이유원 같은 문인들은 화병을 선별하는 병화문화를 향유했다. 그 외에도 조선 청화백자의 문양을 통해 병화문화의 저변 확대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병화도상은 조선 문화의 일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주요한 매개체로서 도자의 문양이 문화의 전달자로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Trans Abstract

After the mid-18th century, images of flower arrangement (Byeonghwa) inscribed in cobalt blue, began to appear in white porcelain of the Joseon dynasty. These images appear on objects including white porcelain jars, bottles, plates, and rice bowls. Among Korean writers, the flower arrangement motif has continued since the Goryeo Dynasty, but it seems the influence of Ming paintings such as “Pinghuatu 瓶花圖”, and printed manuals such as Shizhuzhaishu Huapu 十竹齋書畫譜 and Tangshi Huapu 唐詩畫譜 intensified interest in it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se late Ming works, which engaged in dividing the quality of the antique vase into bronze vases and Geyao 哥窑 kiln vases, had in turn been stimulated by renewed interest in the material culture of early China.

The present article situates the findings of recent excavations of Chinese porcelains on the Korean peninsula, such as that excavated from the tomb of King Injo’s 仁祖 eldest daughter, Princess Sukshin 淑愼公主 (1635~1637), and no. 12-16 in Chongjin-gu, Jongno excavation site in present-day Seoul. In analyzing elements in porcelain produced on the Korean peninsula that is not found in Chinese blue and white porcelain—such as bronze bumps and cracked decoration of Geyao in a single flowerpot—I argue that the Korean changes in the transmitted conventions of flower vase motifs are related to the expansion of yangban elites and the loosening of their social boundarie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Affluent people and civil servants participated in collecting the antiquities, commissioning porcelain with flower arrangement images on them. These images painted on porcelain illustrate how the patterns on porcelain functioned as a messenger of culture, as well as a major medium reflecting the trends of the Byeonghwa culture, the strict observance of grades in officialdom, and a diversification of social classes during the late Joseon.

Ⅰ. 머리말

병화(瓶花)도상은 18세기 중반 이후 조선 청화백자에 등장하기 시작한 문양으로, 화병 및 화분에 꽃을 꽂은 문양이다. 고려시기부터 문인들은 꽃꽂이를 하며 아취를 즐겼고 고려청자에도 화분과 꽃을 꽂던 매병이 흔히 발견된다.1, 조선 도자에 나타난 병화도상은 중국 명대 중기에 유행한 병화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병화도상은 식물이 화분이나 화병에 식재(植栽)된 것이 아닌 꽂혀 있는 문양으로 청동기와 가요자기의 특징이 드러난다.2

이러한 병화도상은 중국에서는 복고문(復古紋), 한국에서는 기명절지문(器皿折枝紋) 등으로 인식되었고 단일 도상의 의미 파악과 유래에 대해서는 연구가 이루어진 바 없다. 다만 책거리에 나타나는 화병과 병화도상들이 거론된 바 있으며 분재문(盆栽紋)이라는 범주에서 화분 도상에 한해 분류가 시도된 바 있다.3, 또한 회화 분과에서 병화도상이 화제(畵題)로 등장한 근대 시기의 <기명절지도>에 관한 연구 및 민화와 청화백자 문양의 연관성이 다루어졌다.4

본고는 18세기 중·후반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청화백자에 병화도상이 등장한 배경을 병화문화의 유입과 함께 고찰하여 조선 문인들의 아취활동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중국 명대 도자에 병화도상이 출현하게 된 배경을 짚어본 후, 병화의 품등(品等)을 특징적으로 구현한 조선 청화백자의 병화도상, 그리고 병화문화에 관련한 조선 문인들의 문헌들을 함께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 도자에서 나타난 병화도상이 병화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출현된 문인적인 요소임을 밝히고 조선 청화백자에서 드러난 특수성도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한다.

본고는 도자에 등장하는 병화도상을 중국 명대 중기 이후에 발생한 문화적 요소로 보았다. 특히 화병과 화분의 품등이 청동기와 송대 도자로 같고 나무가 화분에 식재되어 분재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이외에 화분과 화병에 꽃을 꽂고 있어 화분과 화병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결합된 요소가 많으므로 이런 조건의 경우 화병과 화분을 하나의 범주에서 토론하겠다.

Ⅱ. 병화도상의 출현배경

1. 명대 문인의 병화 향유

병화도상이 처음 출현한 것은 문인들 사이에서 병화문화가 유행한 명대 중기 이후이다. 그러므로 명대 문인들의 병화문화와 그 품등의 형성을 이해한 후, 문헌과 판화, 중국도자가 조선으로 유입된 정황을 살펴보겠다.

병화도상은 화문(花紋)과 식물문 위주의 문양 시문방식이 화병과 화분에 꽂혀있는 형상으로 변화한 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도상은 명대에 출판된 다수의 병화 전문서적을 통해서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병화문화가 서화의 소재로 그려지고 또 도자의 문양으로까지 확장되는 면모를 보인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병화의 등장과 보편화

명대에 병화문화는 아집(雅集)의 한 요소로서 시서화 품평에 버금가는 행위로 자리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기록으로는 『준생팔전(遵生八牋)』(1591), 『병화보(瓶花譜)』(1595), 『병사(瓶史)』(1599), 『장물지(長物志)』(1621)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장겸덕(張謙德, 1577~?)의 『병화보』를 통해서 당시 문인들이 즐긴 병화문화가 꽃을 꽂으며 아취를 즐기는 행위를 넘어서서, 문인들이 화병과 화분의 등급을 나누고 품등을 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화병을 선별하는 일이 계절에 맞는 꽃을 선별하는 일보다 더 우선시되었다는 점에서 명대 문인들에게 화병이 얼마나 주요한 요소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가).

  • (가) 은거하며 한적한 청아함을 즐기는 일 중, 병화는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제대로 이해하는 이를 하나 얻기 어렵다. 꽃을 꽂는 일을 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화병을 선별하는 일이다.5

이러한 점은 송대와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병화문화가 확산되고 대중화되어 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1590년대 이후 병화 관련 문헌들이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며 병화의 필수요소인 화병의 소유 여부는 문인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고렴(高濂, 嘉靖初年~?)의 『준생팔전』에는 문인의 이상적인 서재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기록 속 가구와 기물들은 모두 문인의 아취를 드러내는 요소로서 등장하였다. 그 기록 중 명 중기 화병은 벼루와 연적 등 문방사우에 버금가는 고동기로서 문인의 서재를 장식하는 상징적인 기물이었다(나).

  • (나) 서재에 긴 탁자 하나, 옛 벼루 하나, 오래된 청동 연적 하나…침상 머리에 작은 탁자 하나, 그 위에 고동 화준(花尊)이나 가요에서 만든 병 하나를 둔다.6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렇게 아취를 즐길 줄 아는 문인이 서재를 꾸밀 때 선행되는 조건이다. 고렴의 서재에 등장하는 벼루는 ‘옛’ 벼루이고 ‘오래된’ 청동 연적이며 화병도 ‘고대(古代)’의 것이다. 이렇게 문인들은 고동기물을 숭상했고, 서재에 어울리는 화병 역시 고동화병이 최고의 품등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청동기 및 가요 화병 등 기형과 품등에 대한 지식적인 학습이 선행되어야만 병화문화의 향유층으로 인정받았다.

상인계층에서도 병화문화와 화병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다. 오씨(吳氏)는 도자 유통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과시했던 휘주(徽州) 상인 중 하나로, 상인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 재산을 분재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분가부(分家簿)에는 수놓은 포단 1쌍, 주칠한 은쟁반 4개와 함께 옛 청동화병 1쌍이 포함되어 있다.7

병화문화에 대한 관심과 보편화는 회화 자료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진순(陳淳)의 <병하사생(瓶荷寫生)>, 육치(陸治)의 <세조도(歲朝圖)>, 도성(陶成)의 <세조도(歲朝圖)>, 진괄(陳栝)의 <단양경(端陽景)>, <백자창영도축(百子昌榮圖軸)>등을 필두로 송대 전선(錢選)의 <사계평안축(四季平安軸)>, 명초 변문진(邊文進)의 <세조도(歲朝圖)> 등 방작(仿作)까지 성행하며 <병화도>는 여러 차례 그려졌다.8, 또한 당대의 회화교본이었던 『도회종이(圖繪宗彝)』에서도 병화도상이 등장한 사실을 통해서 병화문화가 문인들의 담장을 넘어 폭넓은 계층으로까지 점진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Fig. 1).

Fig. 1.

Yang Erzeng 楊爾曾, editor (輯), Tu ui zong yi 圖繪宗彜, juan 8, 1607, Harvard Yenching Library

병화문화가 명대 문인들에게 널리 유행하게 된 동시에 그 문화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고동기 화병을 선별할 줄 아는 배경 지식을 요구하는 데 있었다. 고동기에 대한 병화의 품등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청동기, 그 다음으로는 송대 자기였다. 그중에서도 가요자기는 알아보기 쉬운 빙렬문양의 특징 덕분에 더 널리 애용되었다. 분화(花盆)도 같은 품등을 가지고 있는데 청동기와 가요자기 외에는 균요(鈞窯) 화분이나 청화백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동기에 비해 값어치가 낮았던 사실을 문인들의 문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명대 문인 장겸덕은 『병화보』, 「품병(品瓶)」에서 청아한 아취를 살려주는 화병의 종류로 귀한 자기, 고동기, 금은기를 꼽고 있다. 동시에 주병(酒瓶)으로 사용되던 고동기가 화병으로 사용되는 용법에 관한 기록도 남겼다.9 원굉도는 마찬가지로 청동기를 우선으로 꼽고 그 다음으로는 송대의 자기를 언급하였다. 이를 통해 청동기 다음으로는 송대에 만들어진 각 지역 가마의 자기들이 모두 환영받았음을 알 수 있다(다).

  • (다) 강남 인사들이 소장한다는 고동기 고(觚), 그 다음은 관요, 가요, 상요, 정요 등의 자기가 꽃을 안착시키기 가장 좋으며….10

흥미로운 점은 화병 외에도 기물을 상하로 구분하고 품등을 매기는 일이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점이다.11, 문진형(文震亨, 1585~1645)의 기록 『장물지』에서 이와 관련해 눈여겨 볼 만한 기록이 있다. 「분화(盆花)」편에서 문진형은 청록고동과 정요백자, 관요와 가요자기를 화분으로서는 첫째로 친다고 하였다.12, 송대의 화분을 청동 화분과 같은 품등으로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송대의 화병은 선물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남겼다.13, 송대의 화병이 청동기보다는 품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품등 구별은 종이를 누르는 문진에 대한 소개에서도 이어지는데, 관요를 비롯해 가요와 정요 자기의 문진 모두가 고아한 흥취를 내는 기물로는 취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진으로서는 옥의 품등이 가장 상급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14 이러한 기록들은 각 용도에 따라서 각기 다른 소재의 기물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를 가지던 당시 상황을 보여줌은 물론 품등을 매기고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상품의 물건을 쓰려했던 명대 문인들의 문화상을 담고 있다.

명대 문인 고렴은 그의 저서 『준생팔전』에서 따로 장을 만들어 꽃꽂이를 하는 데 필요한 화병을 전문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꽃을 꽂는 화구(花具)로는 한나라의 고동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피력한다.15, 이와 같은 내용은 문진형의 『장물지』에서도 언급되어 있어 고동 청동기가 화병으로서 가장 높은 품등을 차지하고 있었던 점은 확실했던 것으로 보인다.16

송나라의 문인 조희곡(趙希鹄)은 그의 저서 『동천청록(洞天清錄)』 고동병(古銅瓶)에서 청동기를 화병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송대의 고동병에 대한 예찬은 명대에 이르러서 보편화되었다. 원굉도는 청동기 화병이 땅속에 오래 머물며 흙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꽃이 자라는 데 유익하다는 조희곡의 기록도 소개한다(라).

  • (라) 듣자하니, 오래된 청동기는 흙 속에 묻힌 기간이 길어 흙의 기운을 깊게 품어 꽃을 기르면 화색이 선명해지고…17

그러나 이 기록은 조희곡이 『동천청록』에서 언급한 이유를 원굉도가 조희곡의 이름과 문헌을 언급하지 않고 인용한 것으로, 당대 청동 화병에 대한 지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병화는 고동 화병에 대한 이해도를 자극하며 명대 중기 이후 문인들에게 유행했다. 문인들에게는 전문서적을 생산하게 했고, 보다 큰 유통망을 가질 수 있는 판화의 삽화로 퍼졌으며 상인들까지도 고동 화병 소장에 뛰어들도록 했다.

2) 중국 경덕진 자기의 병화도상

병화도상이 도자에 등장한 시기도 명대 중기 이후 병화문화가 보편화된 이후이다. 특히 병화도상의 등장은 가정년간(嘉靖年間, 1522~1566) 이후 경덕진의 민요(民窯)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시기부터 경덕진 민요 도자의 제작 기술은 관요(官窯)의 도자 제작 요구 때문에 명대 중기와 큰 차이를 보인다. 경덕진 관요에 하달되는 도자 제조 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529년에는 2,570점을 소성하던 것에서 1571년에는 50배에 달하는 105,770점을 소성해내야 했기 때문이다.18, 이를 수용하지 못한 관요에서는 민요에 일정 부분을 공납하게 하는 ‘관탑민소(官塔民燒)’제도가 시행됐는데, 이 기간 동안 다량의 관요 양식과 기술들이 민요자기로 유입되었다.19, 상인들의 유통조직인 상회(商會) 역시 대거 조직되면서 경덕진 민요 도자를 전 지역으로 유통시켰다.20, 유통의 확충에 따라 민요 가마는 새로운 타겟을 문인계층으로 정하고 새로운 문양과 소재들을 응용했다. 한국의 종로에서 출토된 적벽부 시문(詩文)의 완을 비롯하여 당대 소설의 부분 삽화, 관료와 ‘녹봉’을 연상시키는 상징인 사슴도 등장한다.21

만력년간(萬曆年間, 1573~1619)에 생산된 도자의 병화도상은 청동기임을 알 수 있도록 귀를 그려 넣은 병화도상으로 각 면에 등장한다(Fig. 2). 강희년간(康熙年間, 1662~1722)의 병화도상은 깨어진 가요자기에 서책이 결합된 것을 볼 수 있다(Fig. 3). 이후 원근법과 점층 적인 구도, 다초점 등의 회화기법을 병화도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변화했는데 이러한 구도는 풍성하게 기물이 가득 차 있는 효과를 보여준다. 강희제 중기로 밝혀진 침몰선에서 이러한 병화도상의 민요 도자가 대량 출수됨으로써 점층적 구도를 가진 병화도상 도자의 연대 또한 알 수 있다(Fig. 4). 건륭년간(乾隆年間, 1736~1795)에 들어서서는 실내 인물화와 결합한 병화도상 양식도 출현한다(Fig. 5). 이러한 양식은 접시나 완의 내저면에 실내 인물화를 그린 후 각 외벽 혹은 접시의 모서리를 일정 등분하여 시문되어 있다. 이 시기의 병화도상은 이러한 실내배경을 구축하는 하나의 요소로 변화된 것이다.

Fig. 2.

Vase, H: 31cm, Wanli period, from Chūgoku tōji: bi o miru kokoro 中國陶磁 美を鑑るこころ, Tōkyō: Senoku Hakkokan 泉屋博古館, (2010), p. 59

Fig. 3.

Bowl, H: 8.7cm, Kangxi period, Musée Guimet des Arts Asiatiques

Fig. 4.

Box, H: 28cm, mid-Kangxi period, Zhang, Bai 张柏, Zhongguo chutu ciqi quanji 中國出土瓷器全集, no. 11, Beijing: Kexue Chubanshe 科學出版社, (2008), Fig. 224

Fig. 5.

Cup, H: 3.8cm, Qianlong perio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병화도상은 중국에서 태동하였고 청대에 이르러 점차 널리 보편화되었다. 특히 도자에 나타난 병화도상은 판화 속 소재와 유사해 그 향유 계층은 병화문화를 직접 향유하던 최상위 문인 계층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하층 그룹에서 유행했을 가능성이 높다.22 병화도상은 문인의 개별적인 회화작품에서 회화교본인 출판물로 확대되었고, 또한 경덕진 민요 도자로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병화문화가 상층에서 하층으로 문화를 이어주는 전달자 구실을 했다는 점 또한 알려준다.

2. 병화도상의 조선 유입

명대 병화문화의 전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개개인의 창작과 수용이라는 문헌적 차원에서의 교류이고, 두 번째는 보다 넓은 범위의 판화와 민요자기이다. 특히 민요자기는 중국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일본과 유럽에까지 병화도상을 전달했으며 판화는 일본에도 전달되었다. 조선에는 문헌과 판화, 도자가 모두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수용 태도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 서적을 통한 개념의 유입

병화의 개념이 조선으로 유입된 것은 중국의 유행과 같은 동시기인 17세기에 이루어졌다. 허균(許筠, 1569~1618)은 명말 문인 원굉도의 『병사』를 연행 중 직접 구입하고 이를 자신의 서적에 부록형식으로 다시 출판해 유통했다.23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은 서명과 같이 한가로운 정취를 향유하는 데 필요한 목록으로 구성되어 그가 병화문화를 수용하여 향유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허균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보는 등 아집행위의 하나로서 원굉도의 작품을 『한정록』에 실었음도 밝히고 있다(마). 이는 허균이 주도적으로 유통한 명대의 병화문화가 허균 주위 문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마) 손으로 직접 베껴 책상 위에 두고, 취미가 같은 벗들과 함께 보았는데 모두 참 좋다고 하였다. …갑인년(1614) 을묘년(1615)에 일이 있어 북경에 두 번이나 가게 되어, 그때 집에 있는 돈으로 약 4천 권의 책을 구입하였다. …석공 원굉도의 병화사와 상정, 진계유의 서화금탕 등이 모두 사람의 본성에 맞는 놀이의 도구로 한정(閑情)에서 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록으로 말미에 붙여 고요하게 감상할 자료로 삼게 한다.24

이렇게 허균이 들여온 원굉도의 『병사』는 화병의 중요성은 물론 고동 화병에 대한 애호, 고동 화병의 품등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이렇게 허균이 유통한 원굉도의 문헌은 문체가 경박하다는 이유에서 정조에게 집중적으로 비판받은 바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정조시대까지 원굉도의 작품이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25

2) 명대 화첩 및 중국도자의 유입

병화도상은 명대 서적 외에 화첩을 통해서도 유입되었다. 『당시화보(唐詩畫譜)』에 등장하는 문인의 서재에는 향로와 가야금, 화병이 상징적인 요소로 등장하고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畫譜)』에는 병화의 품등인 청동 화병이 등장한다(Fig. 6). 특히 『십죽재서화보』는 조선후기 유입되어 조선화가들에게 일정 영향을 준 화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26 이 화보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등장하는데 전체 화보 중 유일하게 기물을 두 점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청동기 화병인 기형 고(觚)와 빙렬문양이 두드러진 가요자기이다. 이렇듯 병화도상은 중국의 화보를 통해서 조선으로 유입되었고, 화보자체의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조선인 들에게 명대 병화문화에 대한 전달자적인 역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Fig. 6.

Shizhuzhai shu huapu,十竹齋書畫譜, no.16, 1633,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김홍도(金弘道)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는 포의를 걸치고 풍류와 아취를 즐기는 화가 자신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그림의 왼편에 위치한 청동 화병과 가요자기를 통해서 김홍도가 명대 병화문화의 특징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Fig. 7). 이는 위에서 언급한 허균의 병화문헌 소개와 화보를 통한 도상 유입, 여기에 실제 <병화도(瓶花圖)>내지는 병화에 사용되었던 화병들이 유입되었을 당대 조선의 상황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단면이라고 하겠다.

Fig. 7.

Kim Hongdo 金弘道, Pouipungryudo 布衣風流圖, Leeum, Samsung Museum of Art

경덕진에서 생산된 명대 병화도상 청화백자가 한국에서 출토된 사례도 있어 당대 조선으로의 병화도상 유입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청진 12-16지구 ‘나’구역에서 출토된 이 자기의 문양은 식물이 식재된 것이 아니라 화분에 꽂힌 병화도상으로 볼 수 있다(Fig. 8). 특히 청동기의 돌기 부분을 문양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기하학적 대각선을 이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그 외에도 인조의 장녀 숙신공주(淑愼公主, 1635~1637) 묘에서 출토된 오채자기에서도 역시 병화도상을 살펴볼 수 있다(Fig. 9). 특히 공주묘 출토품인 만큼 그 사용계층에 대해서도 유추가 가능한데, 숙신공주가 태어난 지 몇 해 되지 않아 사망했던 점을 되새겨 볼 때 이는 동반 출토된 은제화장합과 같이 실제 부모가 사용했던 것을 매장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병화도상은 조선 왕족에게까지 사용되었던 상대적으로 상급의 자기로 여겨졌다는 사실도 유추할 수 있다.

Fig. 8.

Bowl, h: 4.7cm, Seoul Baekje Museum and Hanul Munhwajae Yeonguwon [Hanu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Jongno Cheongjin 12-16 Jigu Yujeok, Seoul, (2013), pp. 28-32

Fig. 9.

Dish, H: 1.5cm, excavated from the tombs of Suksin princess in Gyeonggido goyangsi, The National Museum of Korea,Chinese Ceramic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中國陶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도자, Seoul: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2007), p. 320

다음 장에서는 문헌과 판화, 도자를 통해 조선으로 유입된 명대의 병화문화와 병화도상이 도자의 도상으로서 그 특징을 어떻게 표현해내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Ⅲ. 조선 청화백자에 나타난 병화의 품등(品等)

명대 문인들은 각 용도에 따라 기물의 재질에 품등을 매겼다. 화병의 품등을 습득하는 일은 문인이 병화문화를 향유할 때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병화도상에서는 화병 품등에 가장 우위에 있는 청동기와 그 다음 품등을 차지했던 가요자기의 특징이 남아있다.

1. 최고 품등의 청동기 화병

조선 18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한 분재문 청화백자는 대나무를 식재한 도상으로서 중간의 두 직선무늬와 사선으로 이루어진 교차선이 등장한다. 이는 청동기의 돌기 문양이 간략하게 변형되어 도상에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Table 1 - Type 1>. 종로 청진지구에서 출토된 중국도자의 병화도상은 구연부가 더 넓어지고 받침이 있는 화분으로 보이지만 식재된 식물이 꽃 몇 송이로 화병과 화분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도 알 수 있다. 민요 생산 자기의 특성상 그 표현이 점점 간략화되기는 했지만 청동기의 돌기 부분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선의 표현방식이 조선의 청동 표현방식과 유사하다<Table 1-Type 2>.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중국 주자(注子)의 병화도상에서는 보다 완형 청동 기형에 가깝게 표현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이 도상은 경부부터 구연부에 이르기까지 크게 외반한 고(觚)의 기형적 특징을 잘 묘사하였다. 또한 대각선으로 바뀌었지만 보다 세밀한 돌기의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Table 1-Type 3>. 역시 메트로폴리탄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 명대 클락 완의 병화도상은 돌기만이 아니라 청동기 양면에 귀를 부착하여 특징을 구현했다<Table 1-Type4>. 이러한 중국 청동 병화도상의 간략화 현상과 함께 고찰해볼 때 조선백자의 분재문 도상에도 이러한 영향 아래에서 태동된 청동의 특징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지 유추해 볼 수 있다.

Detailed Comparison of the Characteristics of Bronze Line Image

야마구치시립 박물관 소장의 조선 19세기 청화백자 육각접시에서도 청동기의 특징이 보인다. 이 접시의 내면에는 불룩한 복부를 지나 외반한 구연부 위로 꽃 두 송이가 꽂혀진 병화도상을 볼 수 있다. 특히 병화도상 견부에 발견되는 네 개의 동그란 무늬는 청동기에서 보이는 유두문(乳頭紋)을 드러낸 형태이다<Table 2-Type 1>. 이화여자대학교 소장의 조선 청화백자접시에서도 견부를 둘러싼 문양대가 확인된다<Table 2-Type 2>. 단독으로 보면 점선이 이어진 무늬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소개한 야마구치시립 박물관 소장의 육각접시 병화도상과 함께 본다면 청동기와 같은 유두문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청동기의 유두문은 명대 문인 육치의 <세조도>에서 청동기를 표현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다<Table 2-Type 3>.

Detailed Comparison of the Characteristics of Bronze Image

한편, 야마구치시립 박물관 소장의 접시와 이화여대 소장의 접시는 거의 같은 문양구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형은 각각 육각접시와 원형접시로 다르다. 이는 동일 구성요소가 각기 다른 여러 접시에 그려지며 유행한 당대의 상황을 드러내어 병화문화의 유행정도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이 두 접시는 병화도상이 기명절지 문양의 구성요소로 편입되면서도 병화의 품등을 드러내는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Figs. 10-11).

Fig. 10.

Dish, H: 4.2cm, 19th century. Ehwa Womans University Museum. White porcelain in the Joseon dynasty 조선백자, Seoul: Ehwa Womans University Museum, (2015), p. 153

Fig. 11.

Hexagonal Dish, Joseon, 19th D: 17.9cm, Yamaguchi Kenritsu Hagi Bijutsukan and Uragami Kinenkan 山口県立萩 美術館·浦上記念館, Kaikan Kinen 1 Shūshū-ka Uragami Toshirō no Me - Kanzō Meihinten 開館記念1 蒐集家浦上敏 朗の眼-館藏名品展, Japan: Yamaguchi Kenritsu Hagi Bijutsukan and Uragami Kinenkan, (1996), p.206.

2. 차등 가요자기의 도상적 특징과 그 유행

가요자기는 조선의 <책가도>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요소 중 하나로 빙렬문양이라는 특징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식하기가 쉬웠다. 이러한 가요자기의 유행은 책갈피나 먹, 가구 문살의 문양으로 채용되며 빙렬문양 자체가 유행하기도 했다.29, 책가도의 각종 기물뿐만 아니라 국보 제263호 <백자청화산수화조문항아리>에서도 가요자기의 빙렬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Fig. 12).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항아리의 중심부에는 능화형의 화창으로 구획된 안쪽에 화분이 시문되어 있다. 그 화분의 받침에서 가요자기의 빙렬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명대 유행하기 시작한 가요자기의 빙렬문양이 비교적 이른 18세기 중반에 이미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병화의 품등에서도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청동기 다음으로 송대 자기를 대표하는 화병으로서 가요자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Fig. 12.

Jar, H: 54.8 cm, National Treasure no. 263. Yongyin University Museum.

조선사회에서 소장품으로 자리한 가요자기가 병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는 문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기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임하필기(林下筆記)(1871)』에는 그의 스승인 신위(申緯, 1769-1845)가 가요 화병을 보여주면서 경화사족인 구씨 문인에게 구입했다는 것을 소개하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30, 신위도 고동 소장가로 유명했으나 구윤명은 종로에 살던 대대로 영향력 있는 세력가였다.31, 이 세 사람의 관계를 통해 세력가인 경화사족 구윤명이 애초에 화병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가 신위에게 판매하였으며 신위는 이를 자신의 제자인 이유원에게 꺼내서 보여주며 소장 내력을 공개한 것이다. 조선의 문인들은 이러한 품평회나 아취 있는 고동기물과 병화를 보면서 시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홍대용은 탁자 위에 놓인 향로와 향합, 화병 한 쌍을 놓고 정취를 읊었는데, 그 화병에는 석귀문(石龜文), 즉 가요 화병의 깨어진 무늬가 있었다.32, 덕수궁에도 화병은 아니지만 44cm에 달하는 대형 가요자기가 소장되어 있다. 덕수궁 전세품인이 청자복숭아모양필세에는 붉은 색 사용흔적까지 남아 있어 왕실을 비롯하여 경화사족에 이르기까지 가요 자기가 유통,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Fig. 13).

Fig. 13.

Brush washer, H: 44 cm, the collection of Deoksu palac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19세기 도자에 나타난 병화도상은 이 가요자기 필세와 같은 가요 화병이 유입되어 사용된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예이다. 서울 역사박물관 소장 완에 시문된 병화도상은 화병의 중심부에 간략한 ‘X’자 문이 여럿 겹친 문양을 살펴볼 수 있다<Table 3-Type 1>. 이는 가요자기의 빙렬문양을 표현하려는 것으로 양측에 모두 시문되어 있다. 또 가요 화병에 꽃 이외에 두루마리를 꽂은 도상도 등장하는데, 다만 그 도상의 표현은 이미 심하게 간략화되어 원통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Table 3-Type 2>. 이는 동시기 <책가도>와 <문자도>에 등장하는 가요자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The application of the Ge kiln Characteristics

Ⅳ. 병화도상의 변화와 그 특징

19세기 청화백자에 이르러서 병화도상은 기존의 중국 병화도상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 조선 도자만의 도상적 특징들을 발현하게 된다. 크게 3가지의 특징이 눈에 띄는데, 식물의 종류, 신문물과의 조화, 병화특징의 상호결합이다. 먼저 중국에서는 병화에 쓰이는 식물의 종류가 한정되거나 사라지고 화병 자체만 남는 반면에 조선도자에서는 모란이나 연꽃과 결합하여 나타난다(Fig. 14). 또한 화병에 비해서 꽂혀있는 식물의 크기와 비중이 크게 증가하여 이는 당대 도자문양과 회화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33, 두 번째는 병화도상이 신문물인 안경 등을 추가하여 만물이라는 개념의 백물(百物)문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병화도상의 가장 큰 특징은 고동 화병의 품등에 따라 구분지어 사용하는 것에서 의미를 가지는데, 이를 당대 청나라의 수입품인 ‘안경’이나 당대 동시기의 보자기를 두른 화병도상과 결합하여 병화도상의 문화적 의미가 축소되고 물질적인 성향이 더 부각되는 결과를 낳았다(Figs. 15-16). 마지막으로 병화의 가장 높은 품등인 청동기와 가요자기의 빙렬문양이 하나의 화분 도상 안에서 보이는 문양도 출현하게 된다(Figs. 10-11). 이 화분 도상은 청동기의 유두문을 상부에 표현하고 아래에는 가요자기의 빙렬문양을 전면에 장식했다. 이러한 도상은 병화가 단순한 꽃꽂이 현상이 아니라 일정의 품등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청동기의 유두문 특징이 가요자기와 다른 재질이라는 점을 제대로 알았다면 또한 탄생할 수 없는 도상이다.

Fig. 14.

Jar, H: 41.4cm, 1800-1850, Victoria and Albert Museum.

Fig. 15.

Bottle, H: 29.4cm, 19th centur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Fig. 16.

Dish, H: 3.0cm, 19th centur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백자청화백물인물문병>은 이러한 도상이 탄생하게 된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34, 두 병은 문양구성 요소와 구도가 거의 유사해 이와 같은 문양을 한 병이 당시 일정량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병의 저부에는 갑번(甲燔)을 의미하는 ‘갑(甲)’이 음각되어 있다(Fig. 15). 조선후기 갑번이 사번(私燔)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면 그 향유계층의 다변화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35, 병화의 향유계층에 대한 판단을 바로 내릴 수는 없으나 기록들을 통해 경화사족과 북학파의 병화문화에 대한 유입 방식이 서로 달랐던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이유원은 명대 문인 원굉도의 문헌을 통해 병화문화를 수용한 허균과 같이, 원굉도의 『병사』를 각색해 『가오고략(嘉梧藁略)』에 「화사(花史)」를 남겼다. 이유원은 서문에서도 자신의 시(詩)가 원굉도의 영향을 받아 적은 것임을 밝혀두었으며 그의 목차 역시 『병사』와 같다.36, 또한 각 장마다 원굉도의 표현들을 거의 대부분 인용하면서 일부분만 고쳐쓰는 글쓰기 방식을 취했다.37 이는 허균이 17세기 초 직접 전편을 부록으로 실어 유통시킨 원굉도의 원문이 19세기 이유원에 이르기까지 조선 문인들에게서 꾸준히 읽히며 병화문화를 전파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직접 중국에서 고동을 취급하는 현지 고동 상인으로부터 송 관요와 가요자기 품등의 세부요건을 입수했다. 이 기록은 유색과 빙렬의 크기를 기준으로 가요자기를 상품과 하품으로 나누었다(바).

  • (바) 官窯의 법식과 품격은 대략 哥窯와 같다. 빛깔은 분청색이나 혹은 유백색의 광택이 나며 두꺼운 것이 기름처럼 비치는 것은 상품이다. 담백유 회색은 절대 취해서는 안 된다. 문양으로서는 빙렬에 뱀장어 무늬를 제일로 치며 세세한 빙렬은 하품이니 취할 수 없다.38

이 기록은 명대 문인 장응문(張應文)의 『청비장(清秘藏)』에 들어있는 내용으로 박지원의 기록에서는 세부 누락된 기록이 있다. 장응문의 기록에는 가요의 유색 중에 분청색을 상품, 담백유색을 차품으로 보았으며 유회색을 하품으로 여겼고 문양 중에는 뱀장어 무늬를 상품, 매화편과 묵문을 차품, 세세한 빙렬을 하품으로 구분했다(사). 그러나 박지원은 차품인 담백유색을 취할 수 없다고 기록하였고, 문양도 마찬가지로 차품을 생략하고 기록하였다.

  • (사) 관요의 법식과 품격은 대략 가요와 같다. 빛깔은 분청색을 최상으로, 담백유를 그 다음으로, 유회색을 가장 아래로서 구분한다. 문양은 빙렬을 취하는데, 뱀장어무늬가 최상이고, 매화편에 묵문(墨紋)이 그 다음이며, 잘게 깨어진 무늬가 가장 아래다.39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 까닭은 박지원이 가요자기를 인식하게 된 출처에 달려있다. 박지원이 가요자기에 대해 남긴 「고동록」은 그가 직접 쌓아둔 지식을 바탕으로 적거나 명대 문인들과의 교류, 혹은 허균 등과 같이 서적을 통해 습득한 지식이 아니었다. 그는 연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동상인에게 고동록을 부탁했다.40, 이에 따라 박지원이 남긴 고동록에는 문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고동을 직접 판매하는 상인의 시각이 들어있다.41, 이 상인 역시 고동록을 베끼어 박지원에게 전달했다고 하니, 장응문 등의 가요자기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고동상인이라는 지위에 맞게 중간품을 생략하고 최상품과 최하품만을 강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42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역시 청동화병과 가요자기라는 두 가지의 병화 요소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동 화병이 선호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청동 화병이 단지 물 흡수를 잘 한다고 기록하였다(아).

  • (아) 일곱은 절지를 심는 법이다. 오래된 청동화병과 가요자기가 물 흡수를 잘 하니 화병으로 좋다. 여기에 꽂으면 가지가 시들지 않는다.43

또한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이 삽화를 보면 가요자기에 빙렬문양을 표현하려 한 듯하지만, 가운데를 비워둔 까닭은 알 수 없다. 특히 청동화병을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이는 ‘동병식(銅瓶式)’화병의 삽화에는 앞에서 살펴본 청동기의 도상적 특징인 원형돌기나 뇌문, 사선 혹은 직선의 돌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Fig. 17).

Fig. 17.

Deokmu, Nonhoemaesipjeon 輪回梅十箋, Cheongjanggwanjeonseo 靑莊館全書, no. 62.

또한 대부분 화병으로 쓰이던 기형은 청동기 고(觚) 기형으로서 경부부터 구연부까지 밖으로 크게 외반하거나 경부에 귀가 달려있다. 하지만 이덕무의 삽화는 ‘동병식(銅瓶式)’이라는 부가설명이 있음에도 청동기라고 확언하기는 어렵다. 이 두 삽화를 통해 이덕무가 병화문화를 이해하고 화병의 선별에 관심을 가졌으나 세부묘사나 원인에 대한 이해는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조선에 들어온 병화문화와 그 품등은 직접적인 명대 문헌을 통한 경우와 박지원의 경우 처럼 직접 고동상인을 통한 현지정보의 습득 등이 있었다. 이렇게 다른 유입방식을 통해 전달된 병화문화와 품등에 대한 정보가 조선 사회에서 융합된 상황이야말로 중국도자에서 나타나지 않는 특수한 도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

Ⅴ. 맺음말

본고는 18세기 중반 이후 조선 청화백자에 등장한 병화도상을 품등이 다른 고동 화병에 꽃을 꽂는 명나라 병화문화의 영향으로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품등은 청동기 화병과 송대의 가요자기 화병, 균요 화분과 기타 자기 화분 등으로 상하의 구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명 중기 이후 회화의 화제로 그려지기 시작한 후에 판화 속 삽화에도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병화도상은 문인 취향의 도상을 대폭 수용하던 가정년간 이후 중국 경덕진의 민요 도자의 문양으로 그려져 각지로 유통되었다.

병화의 개념과 병화도상은 동시기에 17세기 허균의 「한정록」에 의해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병화의 개념과 품등을 기록한 원굉도의 『병사』전편이 허균의 서적에 수록되었으며 병화도상이 그려진 중국의 경덕진 자기가 종로 청진지구, 경기 고양시 숙신공주묘에서 출토된 바 있다. 청화백자에 나타난 병화도상은 품등에 따라 청동기, 송대 가요자기를 우선으로 하였다. 청동기를 전면에 배치한 병화도상은 청동기의 유두문과 돌기를 통해서, 두 번째 품등인 송대 가요자기는 빙렬문양의 크기와 유색으로 특징을 표현했다.

조선의 청화백자에 출현한 병화도상은 신문물인 안경과 결합하거나 청동기와 가요자기의 특징을 하나의 도상에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청나라 상인과 교류하며 가요자기의 품등을 이해한 박지원과 다르게 병화문화를 시로 재생산한 이유원이 있는 등 조선사회의 병화문화에 대한 향유는 다층적으로 이루어졌다.

병화도상은 병화문화라는 특수한 문화의 유행과 보편화에 따라 선택되어진 문양으로서 조선에 흡수되었다. 그 영향을 반영한 변화한 도자의 문양을 통해서 당대의 문화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이는 도상이 문화의 전달과 유통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하지만 본고에서 한정적인 수량을 바탕으로 도자의 병화도상만을 다룬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으며, 동시기에 병화문화의 영향을 받은 기록화 등 사회 전반의 유행정도에 대해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 나가겠다.

Notes

1

鄭銀珍·翁宇雯, 「高麗與朝鮮時代的賞花和插畫」, 『故宮文物月刊』 428(臺北: 國立故宮博物院, 2018), pp. 32-40.

2

분재문이 조선 분청사기에 등장한 예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번호 동원 539인 <분청사기상감연화문병>이 있다. 하지만 이 도상은 18세기 중반 이후 나타나는 본고에서 다루는 도상들과 친연관계가 적어 다루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중국 병화문화와 도상을 함께 고찰하기 위해 청동기, 가요자기로 구분되는 병화의 품등에 영향을 받은 병화도상만을 대상으로 삼아 다루도록 하겠다.

3

방병선, 「이형록의 책가문방도 팔곡병에 나타난 중국도자」, 『강좌미술사』 28(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7), pp. 209-238; 최경화, 「18 19세기 일본자기의 유입과 전개양상」, 『미술사논단』 29(한국미술연구소, 2009), pp. 197-222; 신미란, 「책거리 그림과 기물연구」,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268(한국미술사학회, 2010), pp. 169-194; 김은경, 「책거리에 등장하는 중국 도자의 함의– 장한종, 이형록의 책거리를 중심으로」,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경기도박물관, 2012), pp. 190-203; 최예슬, 「조선후기 분재문 청화백자 연구」(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박성미, 「조선시대 도자화분 연구」(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7).

4

허보인, 「한국의 기명절지도 연구」(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8); 최경화, 「조선 후기 청화백자 문양과 민화와의 상관성 고찰」, 『한국문화연구』 34(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2018).

5

(明)張謙德, 『瓶花譜』, 「品瓶」. “幽棲逸事, 瓶花特難解. 解之者億不得壹. 凡插貯花, 先須擇瓶.”

6

(明)高濂, 『遵生八箋』, 「高子書齋說」. “齋中長桌一, 古硯一, 舊古銅水注一. …牀頭小几一, 上置古銅花尊, 或哥窯定瓶一. 花時則插花盈瓶, 以集香氣, 閒時置蒲石於上, 收朝露以清目.”

7

우런수, 『사치의 제국』(파주: 글항아리. 2019), p. 361.

8

李玉珉主編, 『古色:十六至十八世紀藝術的博古鳳』(臺北: 國立故宮博物院, 2003), pp. 228-229; 변문진(邊文進)의 <수조도(歲朝圖)>는 병화도로서 명말 그의 관식을 적어 넣은 방작으로 보인다: 成高韻, 「晚明瓶花圖和花瓶的仿古與互動關係」, 『美成在久』 第六期, (北京: 北京華楠出版社, 2019), pp. 40-53.

9

(明)張謙德, 앞의 책, p. 18, 29. “貴礠·銅, 賤金·銀, 尚清雅也. …銅器之可用插花者, 曰尊·曰罍·曰觚·曰壺, 古人原用貯酒, 今取以插花極似合宜.”

10

(明)袁宏道, 『瓶史』, 「器具」. “嘗見江南人家所藏舊觚. …可謂花之金屋. 其次官·哥·象·定等窯.”

11

이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다른 계층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문화적 소양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박은화, 「문진형 (文震亨)의 『장물지(長物志)』 중 ‘현화월령(懸畵月令)’과 명대(明代) 말기(末期)의 회화감상(繪畵鑑賞)」, 『강좌 미술사』 29(한국미술사연구소, 2017), pp. 209-228.

12

(明)文震亨, 『長物志』卷二, 「花目」, 「盆花」. “盆以青綠古銅, 白定, 官哥等窯爲第一, 新制者五色內窯及供春粗料可用, 餘不入品.”

13

(明)文震亨, 위의 책, 卷七, 「器具」, 「花瓶」. “磁器用官, 哥, 定窯古膽瓶, 一枝瓶, 小蓍草瓶, 紙槌瓶, 餘如暗花, 青花, 茄袋, 葫蘆, 細口匾肚, 瘦足, 藥壇, 及新鑄銅瓶, 建窯等瓶, 俱不入清供.”

14

(明)文震亨, 위의 책, 卷七, 「器具」, 「鎮紙」. “玉者有古玉兔, 玉牛, 玉馬, 玉鹿, 玉羊, 玉蟾蜍, 蹲虎, 辟邪, 子母螭諸式, 最古雅. 銅者有青綠蝦蟆, 蹲虎, 蹲螭, 眠犬, 鎏金辟邪, 臥馬, 龜, 龍, 亦可用. 其瑪瑙水晶, 官, 哥, 定窯, 俱非雅器.”

15

(明)高濂, 『遵生八箋』十九卷, 「瓶花之宜」. “瓶花之具有二用. 如堂中插花, 乃以銅之漢壺, 大古尊罍.”

16

(明)文震亨, 위의 책, 卷七, 「器具」, 「花瓶」. “花瓶以古銅入土年久, 受土氣深, 以之養花, 花色鮮明, 不特古色可玩而已.”

17

(明)袁宏道, 앞의 책, 「器具」. “養花瓶亦須精良. …嘗見江南人家所藏舊觚. …可謂花之金屋. …嘗聞古銅器入土年久, 受土氣深, 用以養花, 花色鮮明….”

18

(明)王宗沐纂修, 『江西省大志·陶書(萬曆本)』(御供, 中國國家圖書館藏善本書).

19

『景德鎮陶錄』 “樞府窯, 元之進御器, 民所供造者, 有命則陶.”; Margaret Medley, “Organization and Production at Jingdezhen in the Sixteenth Century.” Colloquies on Art & Archaeology in Asia, no. 16, Percival David Foundation of Chinese Art. London: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 (1993), pp. 69-82; 方李麗, 『景德鎮民窯』(北京: 人民美術出版社, 2002), p. 71; 彭明瀚, 「江西紀年墓出土明代景德鎮民窯青花瓷研究」, 『故宮博物院院刊』 01期(北京: 故宮博物院, 2007), p. 44.

20

劉朝暉, 「明清以來景德鎮的瓷業與社會控制」(復旦大學博士學位論文, 2005), pp. 54-57.

21

謝明良, 「十七世紀中國赤壁賦圖青花瓷碗」, 『陶瓷手記2: 亞洲視野下的中國陶瓷文化史』(臺北: 石頭出版社, 2012), pp. 39-53.

22

宋璇珊, 「明清時期景德鎮青花藝術中的博古紋飾研究」(景德鎮陶瓷大學碩士學位論文, 2016).

23

許筠, 『惺所覆瓿藁』 Ⅳ, 「閑情錄」, 「附錄」.

24

許筠, 앞의 책. “手自繕寫. 置案頭. 同志友見之. 咸以爲佳. …甲寅乙卯兩季. 因事再赴帝都. 斥家貨講得書籍機四千餘卷. …袁石公瓶花史. 觴政. 陳眉公書畫金湯. 俱是適性戱具而閑情之不可廢者. 故附于錄末以資靜玩云.”

25

『正祖實錄』卷24, 正祖 11年(1787). “最所切可惡者, 所謂明末、淸初文集及稗官雜說, 尤有害於世道. 觀於近來文體, 浮輕噍殺, 無館閣大手筆者, 皆由於雜冊之多出來.”;『正祖實錄』卷33, 正祖 15년(1791). “大體明淸之文, 噍殺奇詭, 實非治世之文.『袁中郎集』爲其最矣. 近來俗習, 皆未免捨經學而趨雜書, 世無有識之士, 愚民無以觀感. 予 於小說, 一不披覽, 內藏雜書, 皆已去之, 此可知予苦心矣.”; “卿居廟堂籌謀之地, 須以文集及稗官雜記等諸冊, 投之水火當否, 與諸宰, 爛加講究, 而此若以令不便爲嫌, 赴燕使行購雜書之禁, 在所申明. 卿意云何?”

26

차미애, 「십죽재서화보와 표암 강세황」, 『다산과 현대』 3(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0), pp. 171-210.

27

山口県立萩美術館·浦上記念館, 『開館記念1 [蒐集家浦上敏朗の眼-館藏名品展』(日本: 山口県立萩美術館·浦上記念館, 1996), p. 206.

28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조선백자: 2015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개관 80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2015), p. 153.

29

謝明良, 「晚明時期宋官窯鑑賞與碎器的流行」, 『貿易陶瓷與文化史』(臺北: 允晨出版社, 2005), pp. 361-381.

30

고동 소장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계층으로 경화사족이 꼽히고 있다. 배우성, 「종로 시전 뒷길의 능성구씨들」, 『서울학연구』 67(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7), pp. 137-169; 李裕元, 『林下筆記』 卷二十九.

31

능성 구씨는 왕실과 두 번의 연을 맺으며 서울 종로 인근에 집터를 두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북촌: 1863-1962: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터전』(서울역사박물관, 2019), p. 46.

32

洪大容, 『湛軒書』卷九, 「夷齊廟」. “卓上置香爐香盒花瓶壹雙. 皆美石龜文. 如哥窯奇紋也.”

33

최경화, 앞의 책, pp. 159-161; 김유진, 「조선후기 청화백자 모란도 연구」(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pp. 79-82.

34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유물번호 ‘서울역사002952’의 <백자청화기명절지문병>이 소장되어 있다. 이 병의 높이는 31.9cm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청화백물인물문병>의 높이 29.4cm와 거의 유사하지만 시명은 시문되지 않았다.

35

『承政院日記』, 英祖 30年(1754). “鳳漢曰, 回回靑, 是極貴之物, 而不但士夫家用此, 雖吏胥輩, 亦用此器, 豈不可痛乎? …此後特敎別燔外, 廚院堂郞, 毋得任意別燔. 其別燔者, 卽甲燔也. 私造巧制若飭, 此禁奢也.”; 최경화, 앞의 책, pp. 157-158.

36

李裕元, 『嘉梧藁略』, 「花史」. “원중랑이 『병사』라고 지은 것이 또 있는데 대략 유유자적을 즐기는 운사에 관한 것이다. …그 목차와 형식을 방하여 시로 대신하여 사시사철 향관에 걸어 두었다.” “袁中郞作又作甁史. 盖其所云幽人韵士. …倣其目傚其軆. 以詩代之. 揭四時香舘.”

37

김인규, 「이유원의 수용과 변용을 통한 문학 창작 기법 연구」, 『동방한문학』(동방한문학회, 2017), pp. 273-300.

38

朴趾源, 『熱河日記』, 「古董錄」. “官窯法式品格. 大約與哥窯相同. 色取粉靑. 或卵白汁水瑩. 厚如凝脂爲上品. 其次淡白油灰色. 愼勿取之. 紋取氷裂鱔血爲上. 細碎紋紋之下品. 勿取可也.”

39

(明)張應文, 『清秘藏』, 「論窯器」. “官窯品格與哥窯大約相同, 其色俱以粉青色爲上, 淡白色次之, 油灰色最下. 紋取冰裂, 鳝血爲上, 梅花片, 墨紋次之, 細碎紋最下.”

40

朴趾源, 앞의 책, 「粟齋筆談」. “전사가, 자는 대경, 보정이며 호는 포관이다. 무인사람으로 … 태원 사람 양등과 이곳에 점포를 열었다. …고동기의 내력을 잘 알았다.” “田仕可字代耕, 一字輔廷, 號抱關, 無終人也. …太原人楊登開鋪於此.”

41

朴趾源, 앞의 책, 「粟齋筆談」. “곧 『서청고감(西淸古鑑)』과 『박고도(博古圖)』 중에서 제 소견을 첨가하여 깨끗이 써서 드리겠습니다.” “當於西淸古鑑. 博古圖中. 參以陋見. 淸單仰報.”

42

朴趾源, 앞의 책, 「商樓筆談」. “내가 전포관에게 “고동목록은 이미 쓰기를 시작하셨냐고 묻자, 전생이 오후에 일이 있어 반도 베끼지 못했다 말했다. … 전사가와 비치가 나와 맞이한다. 전생이 두 봉의 글을 내었는데 뜯어보니 내게 주는 고동목록이다.” “余問田抱關曰. 古董名目. 已爲開錄否. 田生曰. 午刻緣些他冗. 謄寫未半. … 田生出二封書. 坼一封以示. 卽抵余書. 錄古董名目.”

43

李德懋, 『靑莊館全書』 卷 六十一, 「輪回梅十箋」. “七之植折枝. 宜古銅甁. 哥窰貯水. 揷之. 枝不憔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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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information Continued

Fig. 1.

Yang Erzeng 楊爾曾, editor (輯), Tu ui zong yi 圖繪宗彜, juan 8, 1607, Harvard Yenching Library

Fig. 2.

Vase, H: 31cm, Wanli period, from Chūgoku tōji: bi o miru kokoro 中國陶磁 美を鑑るこころ, Tōkyō: Senoku Hakkokan 泉屋博古館, (2010), p. 59

Fig. 3.

Bowl, H: 8.7cm, Kangxi period, Musée Guimet des Arts Asiatiques

Fig. 4.

Box, H: 28cm, mid-Kangxi period, Zhang, Bai 张柏, Zhongguo chutu ciqi quanji 中國出土瓷器全集, no. 11, Beijing: Kexue Chubanshe 科學出版社, (2008), Fig. 224

Fig. 5.

Cup, H: 3.8cm, Qianlong perio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Fig. 6.

Shizhuzhai shu huapu,十竹齋書畫譜, no.16, 1633,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Fig. 7.

Kim Hongdo 金弘道, Pouipungryudo 布衣風流圖, Leeum, Samsung Museum of Art

Fig. 8.

Bowl, h: 4.7cm, Seoul Baekje Museum and Hanul Munhwajae Yeonguwon [Hanu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Jongno Cheongjin 12-16 Jigu Yujeok, Seoul, (2013), pp. 28-32

Fig. 9.

Dish, H: 1.5cm, excavated from the tombs of Suksin princess in Gyeonggido goyangsi, The National Museum of Korea,Chinese Ceramic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中國陶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도자, Seoul: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2007), p. 320

Fig. 10.

Dish, H: 4.2cm, 19th century. Ehwa Womans University Museum. White porcelain in the Joseon dynasty 조선백자, Seoul: Ehwa Womans University Museum, (2015), p. 153

Fig. 11.

Hexagonal Dish, Joseon, 19th D: 17.9cm, Yamaguchi Kenritsu Hagi Bijutsukan and Uragami Kinenkan 山口県立萩 美術館·浦上記念館, Kaikan Kinen 1 Shūshū-ka Uragami Toshirō no Me - Kanzō Meihinten 開館記念1 蒐集家浦上敏 朗の眼-館藏名品展, Japan: Yamaguchi Kenritsu Hagi Bijutsukan and Uragami Kinenkan, (1996), p.206.

Fig. 12.

Jar, H: 54.8 cm, National Treasure no. 263. Yongyin University Museum.

Fig. 13.

Brush washer, H: 44 cm, the collection of Deoksu palac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Fig. 14.

Jar, H: 41.4cm, 1800-1850, Victoria and Albert Museum.

Fig. 15.

Bottle, H: 29.4cm, 19th centur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Fig. 16.

Dish, H: 3.0cm, 19th centur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Fig. 17.

Deokmu, Nonhoemaesipjeon 輪回梅十箋, Cheongjanggwanjeonseo 靑莊館全書, no. 62.

Table 1.

Detailed Comparison of the Characteristics of Bronze Line Image

Type 1 Type 2 Type 3 Type 4
Title Jar, Joseon Plate, China, H.4.7cm Teapot, Qing dynasty, early 18th century, H.8.9cm Scalloped Bowl, Chinese, Ming dynasty, late 16th century, H. 8.2cm
Detail
Bronze Line Type Straight line and Oblique line Oblique line Straight line
Other Characteristics of Bronze None Bumps Shape Ear and Bumps
Kiln Gwangju in Gyeonggi Province Jingdezhen
Holding Institutio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The Seoul Baekje Museu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able 2.

Detailed Comparison of the Characteristics of Bronze Image

Type 1 Type 2 Type 3
Title Hexagonal Dish, Joseon, 19th D.17.9cm 27 Dish with Flower, Vessel and Brush Design in Underglaze Blue, Joseon, 19th D.17cm 28 Lu Zhi (陸治), <SuiChaoTu (歲朝圖)>
Detail
Holding Institution Yamaguchi Kenritsu Hagi Bijutsukan and Uragami Kinenkan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The Taipei National Palace Museum

Table 3.

The application of the Ge kiln Characteristics

Type 1 Type 2
Title Bowl, Joseon, H.10cm, D.8.4cm Bowl, Joseon, H.29.4cm
Detail
Holding Institution Seoul Museum of Histor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