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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07; 2020 > Article
中國 山西 崇善寺의 《釋迦如來八十四龕》 畫帖 硏究

Abstract

숭선사는 1383년에 주강이 창건한 사찰이다. 주강이 숭선사를 창건한 목적은 마황후의 원찰로서의 기능과 불교의 皇權에 의한 통제라는 정치적 기능을 위한 것이었다. 숭선사의 정전 동·서 회랑에는 불전벽화(1383-1391)가 그려져 있었으나 1472년-1480년의 중수로 모사되어 1483년에 《석가여래팔십사감》 화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화첩은 숭선사 불전벽화의 도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화첩의 천공과 지면을 각기 다른 색으로 채색하는 방식은 명대 불화의 배경 표현상의 특징임을 알 수 있다. 산석의 강한 부벽준에서는 명대 궁정 산수화의 표현 요소를 살필 수 있고, 건축물의 花斑石은 황실공간의 위계를 강조하고 있다. 둥글게 말린 편삼에서는 元末 주호고 일파의 복식 표현상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명대 불전도 중 이 화첩에서 전통도상의 수용과 도상의 공유양상이 적극적으로 확인되는 원인은 명대 가장 이른 시기 제작된 숭선사 불전벽화를 모사했기 때문이다. 이 화첩에서 석가모니의 태자 시절의 신분을 강조해 표현한 것은 명초 황실이 불전도를 통해 황권의 神聖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라 짐작된다.

Abstract

Chongshanshi(Chongshan Temple) was built in 1383 by Zhu Gang, to honor the memory of his mother, Empress Ma, and to consolidate the imperial authority over Buddhism. The walls of the eastern and western galleries of Zhengdian, the main hall of the temple, were decorated with illustrations of the life of the Shakyamuni Buddha, painted between 1383 and 1391. The paintings were copied when repair works for the temple was carried out in 1472-80, and compiled as the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in 1483. Consequently, the album contains faithful reproductions of the mural paintings at Chongshansi. The use of different colors for the air and the earth are important features of Ming Buddhist paintings and the axe-cut brushstrokes on mountains and rocks are characteristic of the landscapes favored at the Ming court. The depictions of red marbles on architecture emphasize the prestige of the imperial buildings and the rolled edges of Buddha’s clothes resemble the paintings of the Zhu Haogu school, active in late Yuan. Among the illustrations of Buddha’s life made during the Ming Dynasty, this album is recognized for its active employment of traditional iconography, as the paintings were made after the mural paintings of Chongshansi in the earliest years of the Ming Dynasty. The emphasis on Shakyamuni Buddha’s activities as Prince Siddhartha are likely based on a political agenda to convey the sacredness of imperial powers through the illustrations of Buddha’s life.

Ⅰ. 머리말

《釋迦如來八十四龕》은 1483년에 山西省 太原市 崇善寺에서 화첩으로 제작된 佛傳圖 이다.1 본래 이 화첩은 1383년-1391년 사이에 산서성의 藩王이자 太祖 朱元璋(1328-1398)의 세 번째 아들인 朱棡(1358-1398)이 숭선사의 正殿 동·서 회랑에 벽화로 제작한 것을 1483년 당시 사찰의 주지였던 金西白의 주도하에 화첩의 형태로 모사한 것이다. 따라서 이 화첩은 1483년에 제작되긴 했지만 1383년-1391년 사이에 그려진 숭선사 불전벽화의 도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추정된다.
1383년-1391년이라는 제작 시기는 현전하는 明代(1368-1644) 불전도 중 가장 이른 것으로(Table 1), 명대 초기 불전도의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元代의 불전도가 부재하다시피한 상황에서 전통도상의 계승과 동시기 불전도 간의 도상의 공유양상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이 화첩은 발원의 주체가 황실이라는 점에서 명대 궁정화풍 불화의 일면까지도 고찰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석가여래팔십사감》에 대해서는 제작 목적과 동시기 작품 간의 도상의 공유와 변용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을 뿐이다.2 따라서 본 논문은 먼저 명 초기에 건립된 숭선사가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 기존 연구와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숭선사 불전벽화가 화첩으로 제작되게 된 원인과 제작자, 특히 선행연구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표현상의 특징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 또한 《석가여래팔십사감》이 서문의 내용대로 숭선사 불전벽화(1383-1391)를 모사했다는 사실의 입증을 위해 명 초기 불전도 중 하나인 多福寺 불전벽화(1458)와의 도상의 공유현상을 살펴, 《석가여래팔십사감》은 숭선사 불전벽화의 도상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임을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화첩에서만 보이는 특정 도상에 대해 선행 연구와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며 명대 다양한 불전도상 속에서 본 화첩이 갖는 의미를 도출해 보고자 한다.

Ⅱ. 숭선사의 창건

숭선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5대 晋王 朱鍾鉉(1428-1502)의 아들인 朱奇源(寶賢堂, 1449-1501)이 쓴 「五十三參序」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3
  • 崇善名藍은 나의 선고조 공왕께서 孝慈昭憲至仁文德承天順聖高皇后의 망극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새롭게 지으셨다. 금으로 상감한 그 전당은 우뚝 솟아올라 해 그림자를 받아 빛을 반사하고… 그 규모와 배치는 엄연히 신선의 궁전과 같아서 太原의 으뜸은 아닐지라도 참으로 普國을 통틀어 제일의 장관일 것이다. …成化 19년 계묘년 가을 9월 좋은 날에 寶賢堂 쓰다.4

위의 기록은 숭선사가 주강이 돌아가신 마황후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건립되었고 그 규모가 태원에서 가장 크고 웅장했다는 내용이다. 주강은 1370년 晋王으로 봉해져 1378년에 태원으로 왔다.5 숭선사는 1382년에 마황후가 별세함에 따라 1383년에 晋王府의 都督僉事이자 개국공신인 謝成(1339-1394)이 新寺의 건립을 奏准받아 衛指揮使 袁弘의 감독 아래 완비되어 1391년에 주강이 崇善禪寺라 사액했다.6 여기서 위지휘사 원홍이라는 인물이 주목된다. 淸代 『國朝院畵錄』에는 “명대에는 대부분 금의위 직함을 차용하였는데 그림을 그리는 기예로써 화공이 된 자들은 대개 무관직을 받았으며”7 라는 내용이 있다. 명대 금의위는 南北鎭撫使 14개와 각 지소에 설치된 衛所에 소속되었다. 위소의 군관은 다시금 世官과 流官 두 종류로 나뉘는데 세관은 세습 출신의 군관직을 가리키며 관직은 9등급으로, 衛指揮使(정3품)·指揮同知(종3품)·指揮檢事(정4품)·正千戶(정5품)·副千戶(종6품)· 衛鎭撫(종5품)·實授百戶(정6품)·試百戶(종6품)·所鎭撫(종6품)이며 명대 궁정화사의 직함은 기본적으로 모두 세관의 부류에 속했다.8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원홍은 명대 궁정화사였으며 숭선사의 불화와 불상은 원홍이 이끄는 황실의 궁정화사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한편 숭선사가 건립된 1383년과 사액된 1391년은 明朝에서 적극적으로 불교 교단을 통제하던 시기였다. 주원장은 1368년에 불교의 통제를 위해 수도에 善世院을 설치했고 1381년에는 그 명칭을 僧錄司로 바꾸어 府에는 僧綱司, 州에는 僧正司, 縣에는 僧會司를 설치했다.9 <건사록유편>에는 주강이 ‘홍무24년(1391)에 불교의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숭선선사라 사액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원장은 ‘1391년’에 불교를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법령인 百日諭令을 내려 전국의 수많은 사찰은 100일 안에 각 현마다 몇 안 되는 사찰로 통합하도록 명령했고 새로운 사찰의 건립을 영원히 금지했다.10 1475년 『山西通志 』에는 숭선사에 “승강사를 설치하다”라는 내용이 있다.11 즉 숭선사가 건립된 1383년은 불교 통제가 전국적으로 확대된 시기였고 주강이 숭선사를 사액한 1391년은 明朝의 불교 통제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불교의 통제기관인 승강사를 숭선사에 설치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주강은 숭선사의 건립 시 단지 마황후의 원찰로서의 기능만을 목적한 것이 아닌, 불교의 皇權에 의한 통제라는 정치적 기능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숭선사는 1383년 건립된 이후 1391년까지 사세의 지속적인 확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숭선사의 건립 목적은 1482년의 <崇善寺建築全圖>(Fig. 1)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12 사원의 주체는 金剛殿·天王殿·正殿·毘盧殿·大悲殿·金靈殿이며 금령전은 마황후의 祠廟로 추측된다.13 주불전 구역인 천왕전·정전·비로전은 四方에 회랑이 둘러졌고 정전의 남쪽에는 넓은 庭院이 있으며 정전과 비로전 사이는 회랑이 있어 工字形 평면을 이뤘다. 정전은 중층 기단에 우진각지붕이며 동·서측에는 朶殿있다. 이와 같은 숭선사의 주불전 구역의 건축 구성은 宋代 이래로 대형 건축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宋代 <后土廟圖碑>·金代 <中岳廟圖碑>·北京 紫禁城의 건축 구성은 공통적으로 주요 건축물이 남북 중심축선상에 있고, 그 주변에 회랑이 설치되었다.14 또한 중심건물은 工字形 평면의 중충의 우진각지붕이며 동·서측에는 타전이, 남쪽에는 넓은 정원을 두었다. 숭선사가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건축 구성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靑海省 瞿曇寺의 건립이 주목된다. 구담사는 라마승 三剌(1367-1414)에 의해 1391년에 건립되어 1393년에 주원장이 구담사라 사액한 후15 승강사를 세워 三剌에게 都綱司를 맡게 했다.16 그 후 구담사는 永樂·洪熙·宣德年間까지 황실의 계속되는 지원으로 사세가 확장되었고17 특히 융국전의 건립 시에는 御用太監 孟繼 등이 공사를 직접 감독할 만큼 명초 황실은 구담사를 중시했는데,18 그것은 元末明初 이 지역에서 割據하던 元의 유민들과 원의 잔병세력들과 유민들의 명으로의 귀순을 위한 것이었다.19 즉 명초 구담사는 西寧지역에서의 황제의 상징적 존재로 사세의 확장 시 숭선사와 동일한 중국의 전통적 대형 건축군의 형식을 따랐던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숭선사는 마황후의 원찰과 명초 山西에서 불교의 皇權에 의한 통제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Ⅲ. 《석가여래팔십사감》의 내용과 제작자

1. 내용

《석가여래팔십사감》은 山西省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의 겉면은 칠이 된 나무판으로 윗면에는 자개로 “釋迦如來八十四龕上”이라는 제목이 있다.20 ‘龕’의 여러 의미 중에는 ‘취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석가여래팔십사감’은 석가모니의 ‘84장면만을 취해 그리다’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간부에는 “弟子李雲鵬重裝”이라는 문구가 있어 이 화첩이 이운붕에 의해 다시 장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화첩에는 재장황의 여러 흔적들 또한 볼 수 있다. 먼저 화첩 윗부분 청색의 장황지 아래에서 그림과 상관없는 부분이 보이며21, 일부 장면에서는 화제의 첫 글자가 약간씩 잘려 있다. 이러한 현상은 화첩을 현재의 크기로 다시 장황하면서 생긴 실수라고 생각된다. 또한 화첩의 오염부가 일반적으로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닿게 되는 장황지 부분이 아닌 그림의 四邊部라는 현상도 재장황의 증거라 판단된다.
화첩의 첫 장에는 「팔십사감서」가 있으며 글의 끝에는 一淸堂이라는 당호와 晋王府의 收藏印 중 하나인 晉府圖書가 찍혀 있다. 화첩의 맨 뒷장에는 滇南釋淨倫大巍의 「世尊示跡圖像後跋」과 希聖堂의 시문이 있고, 시문의 끝에는 그의 인장과 역시 진왕부의 수장인 중 하나인 晉國奎章이 찍혀 있다. 화첩의 화면 크기는 세로 51cm, 가로 37cm이며 비단에 채색되었다. 채색은 주·녹청·군청을 주조색으로 하였고, 청색의 꽃무늬가 있는 종이로 장황하였다. 84장면의 향좌측 상부에는 주색 畵記欄이 있고 먹으로 畫題가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Table 2)와 같다.
《석가여래팔십사감》의 서문과 발문 그리고 시문의 작성자는 누구일까. 이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에서 그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일청당은 당시 晋王이었던 朱鍾鉉이라 판단된다. 「팔십사감서」에는 “선증조 恭王께서”라는 내용이 있는데, 진왕의 家系에서 주강을 선증조라 불렀던 인물을 찾아보면 5대 晋王인 주종현이 해당된다. 발문의 석정륜은 『明詩綜』 권90의 내용을 통해 명대 昆明(滇南)출신의 승려로 추정된다.22 희성당은 다음의 시문을 통해 역시 진왕가의 인물로 짐작된다.
  • “…나의 선조께서 마음은 한묵장에서 노닐었고, 도교 불교 두 학문을 양 날개로 삼으셨네. 문장과 도덕은 고금에 뛰어났으니… 아아! 내가 붙들고 사랑하며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 그 곁에서 시절인연을 기록하네. 스님께 부탁하여 모시고가서 잘 거두어 보관하니… 때는 萬曆龍飛壬子仲春之吉.”23

위 내용에서 주목되는 점은 희성당이 선조의 학식을 찬탄하는 대목과 《석가여래 팔십사감》을 보관한 사실이다. 晋王府는 명대에 刻書와 藏書로 가장 유명했다. 주강은 중국회화사상 괄목한 만한 개인 수장가였던 元代 皇姊大長公主에 비견될 만한 인물로 그의 수장인인 敬德堂圖書印·敬德堂章·晋國奎章·道濟書府·晋府書畵之印 등이 찍혀 있는 작품은 關同의 <關山行旅圖>와 郭熙의 <早春圖>·<窠石平遠圖> 등이 있다.24 또한 朱奇源은 『寶賢堂集古法帖』(1496)을 제작해 弘治帝(1487-1505)에게 바쳤고, 6대 진왕 朱知煬(재위 1503-1533)도 『文選』·『唐文粹』·『宋文鑑』을 嘉靖帝(재위 1521-1567)에게 바쳤다.25 따라서 《석가여래팔십사감》을 수장하게 된 희성당은 시문을 지어 본 화첩의 발문에 끼워 넣었고 시문의 작성일이 1612년인 것으로 볼 때 희성당은 11대 진왕 朱求桂(재위 1613-1630)로 추정된다.

2. 제작자

「八十四龕序」에는 숭선사 불전벽화가 화첩으로 제작된 이유와 제작자에 대한 내용이 있다.
  • …아름답도다. 긴 행랑 양 편의 그림 속에 보이는 석가세존의 시적성도의 모습이… 지금 아득한 세월이 흐른 후 금칠과 朱漆이 흐릿해지니 절일을 맡은 住持 金西白 무리들이 모두 그 정성을 다해서 새로 색을 입혀 단장하기 위하여 먼저 方冊을 마름질하여 그 법식을 맞추고 이 冊葉에 옥을 취하고 금으로 마무리하였다. 주지나 불사를 하는 이에 대해 말하자면 서백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주지가 온 이후 전당의 향기로운 촛불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벽과 담장은 얼음과 옥처럼 깨끗하여 듣고 보는 사람이 누구나 부러워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國恩과 佛恩을 받은 몸으로 어찌 보답하지 않을 것이며… 대대로 주지가 된 이는 敎門의 중심을 맡아 어떻게 힘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成化19년 癸卯年 가을 9월의 좋은 날에 一淸堂 쓰다.26

서문에서는 숭선사 불전벽화가 긴 행랑 양 편에 그려졌다고 했다. <숭선사건축전도>에서 84장면의 불전도가 그려질 수 있을 만큼의 긴 행랑을 찾아보면 바로 정전의 동·서측에 그려진 회랑임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명초 西寧지역의 황실 사찰이었던 구담사 불전벽화(1427) 역시 주불전인 융국전의 동·서측 회랑에 그려진 점이다. 앞서 논하였듯이 융국전의 건립공사는 명 조정에서 어용태감을 파견할 만큼 중시하였다. 따라서 융국전의 건립 시 그 모델은 중원의 대표적 황실사찰인 숭선사로 삼았기 때문에, 구담사의 불전벽화가 숭선사와 동일한 건축물에 그려졌다고 생각된다.
서문에서 숭선사 불전벽화는 세월이 흘러 훼손되자 주지 김서백과 그 무리들이 벽화를 모사하여 화첩으로 제작했음을 밝혔다. 1480년 「重修崇善寺碑記」에 의하면 숭선사에는 1472년에서 1480년까지 중수가 있었고 이 기간에 숭선사의 불전들은 ‘새롭게 단청되었다(金璧丹垩, 焕然一新)’27라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숭선사 불전벽화가 화첩으로 제작된 직접적인 원인은 1472년에서 1480년의 중수에 있다고 추정된다.
서문에서는 김서백을 “金公西白”이라 하였는데 公은 남자의 姓·諡號·雅號·官爵 뒤에 붙이는 존칭으로 그는 비구승임을 알 수 있다. 김서백이 승려임에도 俗姓을 사용한 것은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청대까지 승려가 속가의 성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28 또한 김서백을 “國恩과 佛恩을 받은 몸”이라고 했는데, 명대의 官方사찰은 보편적으로 승려가 僧官과 住持를 겸하였으므로, 김서백은 승관직과 주지직을 겸했던 인물로 짐작된다.29

Ⅳ. 《석가여래팔십사감》의 양식적 특징

《석가여래팔십사감》의 불전도상은 현전하는 명대 불전도상 중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이며 표현에서도 다음과 같은 특징이 확인된다(Table 1).
《석가여래팔십사감》의 천공과 지면은 두 가지 색채로 명확히 구분하여 채색되었다(Fig. 2). 즉 지면부터 상부의 일정 부분까지는 연녹을, 천공은 군청으로 채색되었는데 이는 경태제 발원 <天龍八部羅義女衆圖>(1454),30 公主寺 大佛殿 <수륙화>(1503),31 북경 수도박물관의 <석가모니불도>(1643)32 등 다수의 명대 불화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명 이전 시기 불화에서는 천공과 지면을 명확히 구분해 채색하지는 않았던 듯한데, 원대 황실 화사 王振鵬의 《唐取經圖冊》에는 천공에도 인물이 그려졌지만 배경은 동일한 황토로 칠해졌을 뿐이다.
《석가여래팔십사감》에는 황·분홍·삼청·녹색으로 구성된 彩雲이 한데 어우러져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되었다(Fig. 3). 이와 같은 구름 표현은 구담사 불전벽화(주·녹·황·백색), 법해사 벽화(1443, 녹·황·분홍색),33 寶梵寺 대웅보전 <십육나한도>(1450, 주·군청·녹·먹·백색)34 등에서도 나타나며 특히 《석가여래팔십사감》과 법해사 벽화에서는 동일한 색조합의 채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두 작품 모두 황실에서 발원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전 시기 불화에는 명대와 달리 주·녹·백색의 구름이 각기 독립적으로 천공·건물·수목·인물들의 주변에 그려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開化寺 대웅보전 北宋 1096년 <大方便佛報恩經變相圖>·<本生圖>·<인연고사도>에서는 주·녹·백색의 구름이35, 永樂宮 純陽殿 1358년 <純陽帝君神游顯化圖>에서는 황토와 백색 구름이 주를 이루는 점을 볼 때 3가지 색 이상으로 구성된 구름이 한데 어우러진 표현 역시 명대 불화의 특징 중 하나라고 추측된다.
《석가여래팔십사감》의 산수는 금벽산수로, 이는 고대부터 주로 궁정 산수화에서 많이 사용되던 묘사법 중 하나이다.36 산석은 마치 여러 개의 태호석을 중첩시켜 놓은 듯한데 이러한 표현은 법해사 동벽 <불회도>의 산석에서도 볼 수 있다.37 또한 이 화첩의 산석은 부벽준과 피마준으로 묘사되었는데 특히 부벽준은 상당히 강하게 표현되었다. 이런 강한 부벽준의 표현은 명대 궁정화사인 商喜(약 1430-1440년 활동)의 <關羽擒將圖>38의 바위와 계단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이 화첩의 산석표현에서는 중국의 전통적 궁정산수인 청록산수와 명대 궁정 산수화의 표현 요소를 모두 살필 수 있다.
《석가여래팔십사감》에는 기둥·계단·답도·난간·坐床·足座·탁자·부처의 대좌와 심지어 그릇과 같은 기물에까지도 소용돌이 문양과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각진 문양이 그려졌다(Fig. 4). 이들 문양은 본 화첩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원대 《唐取經圖冊》 중 〈唐僧随五百羅漢赴天斎〉의 기단과 계단, 보녕사 《水陸畵》(1460-1464) 중 <노사나불도>의 대좌,<右第九阿氏多尊者荼畔吒迦尊者圖>의 經床·法床·의자·足座,39 경태제 발원 《수륙화》 중 <비로자나불도>의 대좌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양이 대부분 건축물에 나타난 것으로 볼 때, 이 문양은 花斑石(文石)을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화반석은 석재 중 진귀한 것으로 역사상 皇家에서만 사용되었고 민간에서는 채굴이 금지되었다. 元代 大明殿, 紫禁城의 명대의 奉天殿·皇極殿, 淸代의 坤寧宮·乾淸宮·寧壽宮 등에 화반석이 사용되었다.40 따라서 《석가여래팔십사감》은 화문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황실의 위엄을 드러내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가여래팔십사감》에서는 부처의 褊衫이 둥글게 말려있는 표현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41 불화에서 승기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오는 편삼은 향우측 방향에서 시작해 향좌측 방향의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본 화첩의 둥글게 말린 편삼 표현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Fig. 5). 그런데 靑龍寺 腰殿 <수륙화>(1289) 42 중 향우측 여래의 편삼과 대웅보전 <미륵하생경변상도>(1289)의 여래의 가사, 興化寺 <미륵하생경변상도>(1298) 43 중 여래의 편삼(Fig. 6), 廣勝下寺 <약사설법도>(14세기 초)와 <치성광여래설법도>(14세기 초)의 여래의 편삼, 廣勝上寺 비로전 <十二圓覺佛會圖>(1513)의 보살의 편삼과 가사에서 동일한 표현이 확인된다.44 또한 永樂宮 純陽殿 <純陽帝君神游顯化圖>(1358)의 인물들의 내의 옷깃도 둥글게 말려져있는 표현을 볼 수 있다.45 흥화사 <미륵하생경변상도>와 <순양제군신유현화도>는 13세기 말‒14세기 초까지 산서에서 활동한 朱好古와 그의 문도들이 제작한 벽화이며 청룡사와 흥화사의 <미륵하생경변상도>는 지역적으로 동일한 稷山縣에 위치했고 도상과 화풍면에서도 대단히 유사하여 주호고에 의해 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따라서 둥글게 말린 편삼 표현은 주호고 일파의 복식 표현의 특징이며 본 화첩은 이를 계승한 작품으로 판단된다.
《석가여래팔십사감》에 산서지역에서 활동한 주호고 일파의 표현상의 특징이 확인되는 이유는 산서라는 지역성과 당시 주호고의 역량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영락궁은 원 황실의 중요한 사원으로 벽화를 제작한 일부 화사들의 이름 앞에는 송대 화원화가의 최고 직함인 待詔라는 관직명이 있다.46 元代에는 화원제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待詔라는 직함을 사용한 것으로 볼 때 당시 이들은 국가적으로 공인된 화사 집단이나 기량이 매우 뛰어난 화사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사용한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47 따라서 이후 산서지역에서 사원의 벽화제작 시 주호고 일파의 영향력은 상당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한편 흥화사·청룡사·영락궁은 모두 산서성 運城市에 위치했으며 특히 영락궁이 위치한 永樂鎭에서는 당·송이래 벽화의 대가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唐代의 유명한 벽화가 吳道子, 송대 도교벽화의 명수 武宗元, 王拙 등이 모두 이 지방 출신이다.48 이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숭선사 불전벽화는 원홍이 이끄는 황실 화사들에 의해 제작되었지만 이들은 불화를 전문적으로 그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초본은 산서지역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불화사가 직접 그렸거나 또는 선대의 초본을 바탕으로 다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선대의 뛰어난 기량의 화사집단이었던 주호고 일파의 표현상의 특징이 숭선사 불전벽화에 반영되었고 그 모사본인 《석가여래팔십사감》은 주호고 일파의 표현상의 특징이 명대 불화에 계승되었음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Ⅴ. 《석가여래팔십사감도》의 도상적 특징

1. 선행 불전도상의 수용

탄생도상에서 마야부인은 무우수의 줄기에 오른손을 대고 서 있으며, 태자는 마야부인의 오른쪽 소매 속에서 양 팔을 앞쪽으로 향한 채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리고 태자의 앞쪽에는 무릎을 꿇은 한 여성이 태자를 두 손으로 받으려 하고 있다(Fig. 7). 여기에서처럼 중국 불전도의 탄생도상 중 마야부인이 ‘무우수의 줄기에 손을 대고’ 태자를 소매 속에 표현한 선행 작품으로는 江蘇省 棲霞寺 石塔의 八相부조(南唐)를 들 수 있다(Fig. 8).
중국 불전도의 탄생도상에서 마야부인은 주로 ‘무우수 가지’를 붙잡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탄생도상을 확인 가능한 명대 불전도 중 각원사 불전벽화를 제외한 모든 작품의 탄생도상에서 마야부인은 ‘무우수의 가지’를 잡고 있다. 따라서 이 도상은 명초에 상당히 유행했으리라 짐작된다.
고행도상에서 태자는 바위 위에 가부좌하였고 왼쪽 무릎의 안쪽으로 풀이 그려져 있다(Fig. 9). 화면의 향우측 상부에는 새 한 마리가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태자를 향해 날아오고, 화면 하부 향우측에는 원숭이와 사슴이 그려졌다. 중국 불전도의 고행도상 중 본 작품의 고행도상과 가장 유사한 선행 작품은 『어제비장전』 권21 「불부」의 불전도(Fig. 10)와 금대 암산사 불전벽화(1164)의 고행도상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불부」의 도상은 판화라는 한계점으로 인해 ‘무릎사이의 갈대’를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불부」에는 “까치가 정수리에 둥지를 틀었고 갈대가 무릎을 들고 올라왔다.”49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 고행도상에도 ‘갈대’가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더욱이 「불부」의 불전도와 동시기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Maryland주 Walters Art Museum의 불전부조의 고행도상에도 태자의 머리 위로 새집과 두 마리 새, 양 무릎 사이에 기다란 풀이 표현되었다.50
암산사 불전벽화의 고행도상에도 태자의 머리 위로 새집과 두 마리 새, 양 무릎 사이에 키가 낮은 풀이 그려져 있으나, 원숭이와 사슴은 묘사되지 않았다. 대신 호랑이로 보이는 동물, 갑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는 인물, 상의를 입지 않고 엎드려 있는 인물, 두 손에 완을 든 여인이 그려졌다.51 따라서 「불부」 불전도의 고행도상의 주요 모티프와 암산사의 고행도상의 모티프가 《석가여래팔십사감》의 고행도상의 성립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항마도상에서도 전대의 도상을 수용한 점이 확인된다. 부처는 화면 중앙의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두광과 신광 주위로 연꽃이 둘러져 있는데(Fig. 11) 이 도상은 만당대 돈황 막고굴 156굴(Fig. 12)과 오대 61굴의 불전벽화, 금대 암산사 불전벽화, 원(14세기) 절강성박물관의 朱玉, <魔軍拒戰圖>, 永樂年間 북경도서관의 <鬼子母揭鉢圖> 등 여러 선행 작품에서 볼 수 있어 전통성이 강한 도상임을 알 수 있다.

2. 도상의 공유

「팔십사감서」는 《석가여래팔십사감》이 숭선사 불전벽화(1383-1391)를 모사했음을 밝혔으나 서문만을 통해 이 화첩이 숭선사 불전벽화를 그대로 모사하였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런데 《석가여래팔십사감》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多福寺 불전벽화(1458)의 도상이 이 화첩의 도상과 매우 유사하여 주목된다.52 더욱이 다복사 불전벽화는 84장면으로 구성되어 이 화첩의 장면 수와도 일치하며 화제 또한 훼손된 것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내용이다.53 지금부터는 두 작품 간의 도상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겠다.
두 작품의 탄생도상에서 마야부인은 나무 아래에서 머리에 보관을 쓰고 오른손을 나무줄기에 댄 채로 서 있다(Figs. 13, 14). 마야부인의 향우측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어깨에는 숄을 두른 여인이 마야부인의 왼팔을 부축하고 있다. 한편 마야부인의 오른쪽 소맷자락 안에서는 나신의 태자가 그려졌다. 태자의 앞쪽으로는 무릎을 꿇은 여인이 두 팔을 뻗어 태자를 받으려 하고 있다. 이 여인이 어깨에 두른 숄의 양 끝자락은 땅으로 흘려 내려 그 끝이 마야부인을 향해 있다.
仙人占相 도상에서는 두 작품 모두 정반왕, 태자, 아시타선인이 건물 안에 그려졌다(Figs. 15, 16). 정반왕은 화면 중앙에서 通天冠을 쓰고 목에 方心曲領을 착용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데 코와 턱, 그리고 귀밑 턱 부분에 모두 긴 수염이 묘사되었고 발밑에는 족좌가 있다. 정반왕의 신체는 정면을 향했고 머리만을 태자가 있는 향좌측으로 돌려 태자를 바라보고 있다. 정반왕의 향우측 뒤로는 한 궁인이 壺를 들고 있다. 태자는 민머리의 나신으로 화면의 향좌측에서 여인의 팔에 안겨 있다. 화면의 향우측에는 코와 턱에 긴 수염이 나있고 머리에는 관을 쓴 선인이 의자에 앉아 있다. 선인은 한쪽 팔을 들어 올려 손가락으로 향좌측의 태자를 가리키고 있는데, 복부 중앙부에서 대의가 묶여진 모습까지도 두 작품이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태자가 무예를 배우는 도상에서, 두 작품 모두 태자는 주색 대의를 입고 머리에는 검은 모자를 쓰고 흰 코끼리의 등 위에 올라 서 있는데 고개는 말을 타고 있는 인물을 향했다(Figs. 17, 18). 코끼리의 코는 아래로 향해 있으며 입에는 상아가 그려져 있다. 태자의 맞은편에는 녹색 대의를 입고 말의 등 위에 올라서 있는 인물이 그려졌다. 이 인물은 향우측 손을 허리춤에 대고 향좌측 팔은 태자를 향해 뻗어 다섯 손가락은 모두 다 펼쳤다. 말의 형상은 두 작품 모두 힘차게 달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太子威力 도상에서의 주요 모티프는 威力을 보이는 태자와 이를 지켜보는 이모 대애도이다(Figs. 19, 20). 두 작품 모두 태자는 화면의 향좌측에서 연봉형의 녹색 광명 안에 표현되었다. 태자는 머리에 검은 색 모자를 쓰고 주색 대의를 입었다. 태자의 향우측 손은 가슴의 중앙부에서 주먹을 쥔 모습이며 향좌측 팔은 아래로 내려졌다. 태자는 고개를 향우측으로 돌려 대애도를 바라보고 있다. 대애도는 머리에 보관을 쓰고 귀걸이와 목걸이를 차고 있다. 대애도는 주색 대의를 입고 양 어깨에는 녹색 숄을 걸쳤으며, 두 손은 소매 속에 감춘 채 복부 쪽에서 모아져 공수자세로 그려진 듯하다. 한편 대애도와 태자 사이에는 어깨에 숄을 걸친 한 궁인이 묘사되었다.
지금까지 《석가여래팔십사감》과 다복사 불전벽화의 도상을 비교하여 두 작품의 도상이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다복사 불전벽화가 이전의 불전도상인 숭선사 불전벽화를 계승했을 가능성의 가정 하에, 이 화첩은 1383년-1391년 사이에 제작된 숭선사 불전벽화의 도상을 모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3. 특정 신분의 강조

명대 불전도 연구자인 荊利利는 《석가여래팔십사감》의 가장 큰 도상적 특징은 禮敬太子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54 荊利利는 화첩의 84장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제3장면-34장면) 32장면은 모두 태자의 궁중생활을 그린 것으로 이는 이전시기 불전도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라 말하며, 그 예시로 樹下誕生·九龍沐浴·行七步의 장면은 중국의 많은 불전도에서 하나의 장면에 담아 그렸지만 이 화첩에서는 이 장면들이 각각 그려졌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荊利利는 天人이 태자에게 꽃·향·보물·寶蓋·天衣를 바치는 장면(제8-12장면)들에 대해 “(이 장면은) 佛傳에서의 중점인 묘사 내용이 아니고, 불전도의 전개와 크게 연관성이 없으며, 중국의 불전도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라 주장하였다(Fig. 2). 이러한 《석가여래팔십사감》의 도상 특징에 대해 荊利利는 『明史』 「朱棡傳」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강이 자신의 안정적 왕권 유지를 위해 당시 태자였던 朱標(1355-1392)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석가모니의 태자시절의 모습에 주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주장했다.55
그러나 대다수 佛傳에서는 태자의 탄생을 前後하여 나타난 여러 祥瑞이 기술되어 있다. 또한 태자를 찬탄하며 태자의 궁중생활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56 따라서 이 화첩에 태자의 궁중생활 장면이 많았던 원인은 불전의 내용을 자세히 표현한 것이라 판단된다. 일예로 北周시기 돈황 막고굴 290굴의 불전벽화의 총 87장면 중 32장면은 태자의 탄생 후 祥瑞의 장면들이다. 또한 고대부터 수하탄생·구룡목욕·행칠보의 도상은 각각 3장면으로 나뉘어 독립적으로 그린 다수의 작품이 존재하는데, 北魏 <太安三年(457)銘 불좌상 광배 뒷면 부조>, 北周 돈황 막고굴 <290굴 불전벽화>, 대영박물관의 唐(9세기) <불전도번>, 『어제비장전』 「불부」 <불전도>(11세기), 금대 <암산사 불전벽화>(1164), 묘인사 불전벽화(1427)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본 화첩의 天人이 태자에게 꽃·향·보물·보개·천의를 바치는 장면들은 현재까지는 명 이전시기 작품에서는 그 일례를 찾을 수 없으나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모든 하늘들 허공에서 보배 일산을 들어 모시고 그 威神을 찬탄하면서…모든 龍王들 기뻐하면서…만다라꽃을 뿌려대면서 오롯한 마음으로 즐겁게 공양했네. 여래가 이 세상에 나타나시자 淨居天도 또한 기뻐하였다.…저 須彌寶山王이…보드라운 가루 전단향 온갖 보배 연꽃들 바람 부는 대로 허공 따라 흐르고…허공에선 하늘옷 내려… 『佛所行讚』57

  • “태자의 나이 일곱 살이었는데…여러 하늘·용·신·건달바들은 허공에서 각각 형상을 달리하여 꽃을 흩고 향을 사르면서 구슬번기, 비단을 드리웠으며” 『佛說普曜經』

비록 위 내용이 이 화첩의 제8장면-12장면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모두 태자의 탄생 후 하늘에서 여러 보물들을 태자에게 바치는 것으로 따라서, 이 장면들은 불전의 내용을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숭선사가 건립되기 이전에 주강은 많은 不法을 저질렀고 역모를 의심 받았다는 荊利利가 인용한 『명사』 「朱棡傳」의 내용은 杨永康의 연구에 의해 朱棣(永樂帝, 재위1403-1424)에 의해 날조된 것임이 밝혀진 바 있고,58 실제로 주강은 주원장에게 높은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명대 역사에서 어림잡아 1만 5천여 명을 죽인 대학살 사건 중 하나인 藍玉(?-1393)의 모반 사건(藍黨大獄, 1393)이 발생했을 때 주원장은 가장 먼저 주강으로 하여금 변경에 군사를 통솔하여 배치하게 하였다. 이처럼 주강이 「주강전」의 기록과 같이 역모를 의심받고 불법을 일으킨 제왕이었다면 평소 의심이 많은 주원장이 그에게 남옥의 모반사건을 처리하는 일을 맡길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숭선사가 건립된 1383년과 사액된 1391년이 주목된다. 1380년에는 좌승상 胡惟庸(?-1380)의 모반죄(胡黨大獄)로 3만명이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주원장은 이 사건을 빌미로 승상제도를 폐지하고 재상의 권력을 六部(吏·戸·禮·兵·刑·工)에서 나눠주어 육부의 관원들이 황제와 독대, 보고할 수 있는 통로를 구축하여 황권과 중앙 통치 제도를 동시에 강화했다.59 또한 이 사건 이후 주원장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승려들도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고 의심했으며 어쩌면 반란을 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60 결국 주원장은 1391년에 불교의 확실한 통제법인 백일유령을 반포했다.
이처럼 숭선사는 황제권 강화를 위해 명조에서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에 건립된 사찰이다. 중국은 고대부터 佛法를 통해 황권을 강화하려 했던 현상이 많았다. 北魏의 道武帝 때 승려 法果는 “황제가 바로 현재의 여래이므로 승려들이 항상 절을 해야 한다.”라며 황제의 권위를 종교적 권위와 일체화시켰다. 567년 衛元嵩은 武帝에게 불교 사원의 건립을 금지하고 대신 무제를 여래로 모시는 延平大寺를 세울 것을 요청하였다.61 즉 주강은 숭선사 불전벽화에 부처의 신분을 극대화시켜 그림으로써 존귀한 부처라 할지라도 결국 황제의 통제권 아래 존재한다는 것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석가여래팔십사감》은 명초 황실이 황권 강화를 위해 불교미술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판단된다.

Ⅵ. 맺음말

숭선사는 주원장의 3번째 아들인 주강이 1383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주강이 숭선사를 창건한 목적은 어머니인 마황후의 원찰로서의 기능과 불교의 皇權에 의한 통제라는 정치적 기능을 위한 것이었다.
본래 숭선사의 정전 동·서 회랑에는 불전벽화(1383-1391)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1472년부터 1480년의 사찰의 중수 시 불전벽화는 모사되어 1483년에 《석가여래팔십사감》 화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화첩은 숭선사의 불전도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화첩 제작을 주도한 승려 김서백은 僧官과 황실사찰의 住持를 겸한 인물이었다. 서문을 쓴 일청당은 5대 진왕 주종현이며, 발문을 쓴 석정륜은 명대 昆明지역 출신의 승려였다. 시문의 작자 희성당은 11대 진왕인 주구계로 추정된다.
《석가여래팔십사감》은 표현과 도상에서 당시 명대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첫째, 배경 표현에서 천공과 지면을 각기 다른 색으로 채색하는 방식과 3가지 색 이상으로 구성된 색구름의 적극적인 표현은 명대 불화의 배경 표현상의 특징이다. 《석가여래팔십사감》의 산수표현은 변화가 많은 산석의 형태와 강한 부벽준의 표현에서 명대 궁정 산수화의 표현 요소를 살필 수 있었고, 건축물에 花斑石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황실이라는 공간의 위계를 강조하려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둥글게 말린 편삼의 표현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산서지역에서 기량이 매우 뛰어난 화사집단이었던 주호고 일파의 복식 표현상의 특징이 명대 작품으로까지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로 《석가여래팔십사감》의 도상의 특징에서는 명대 불전도 중 유독 전통도상의 수용과 도상의 공유양상이 적극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원인은 이 화첩이 명대 가장 이른 시기인 숭선사 불전벽화(1383-1391)의 도상을 그대로 모방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석가여래팔십사감》은 명초 불전도상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셋째로 《석가여래팔십사감》이 석가모니의 태자시절의 신분을 강조해 그린 것은 명초 황실이 불교의 敎祖 석가모니 부처의 삶을 그린 불전도를 통해 황권의 神聖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본 작품은 명초 황실이 정권의 안정을 위해 종교미술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명대 황실의 불교미술에 대한 이용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 판단된다.

Notes

1) 숭선사는 1864년의 대화재로 山門·鍾樓·大悲殿·伽藍殿만이 남은 작은 규모의 사찰이다. 張紀仲 외 1인, 『太原崇善寺文物圖錄』(山西省新華書店, 1987), p. 23.

2) 《석가여래팔십사감》에 대해서는 邢莉莉, 「明代佛傳故事畵硏究」(中央美術學院中國美術史博士學位論文, 2008); Craig Clunas, Empire of Great Brightness: visual and material cultures of Ming China, 1368-1644. London: Reaktion Books, 2012; 정하담, 「中國 明代 佛傳圖 壁畫의 圖像 硏究」(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5); 이영종, 「 『釋氏源流』와 중국과 한국의 불전도」(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6) 참조.

3) 《석가여래팔십사감》과 《선재동자오십삼참》은 1383년-1391년 사이에 숭선사에 그려진 벽화를 1483년에 모사하여 화첩의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각 화첩에는 「팔십사감서」와 「오십삼참서」가 실려 있다. 晋王의 가계에 대해서는 宋光宇, 「明代晉藩藏書刻書硏究」(山東大學古典文獻學碩士學位論文, 2016), pp. 9-20 참조.

4) 「五十三參書」, “崇善名藍者, 我先古祖, 孝慈昭憲至仁文德承天順聖高皇后罔極之恩, 一新之建也. 其殿堂金錯, 巍巍乎, 接影連輝…規模宣序, 儼若仙宮, 不惟甲於太原, 誠盖普國第一之偉觀焉. …成化十九年歲次癸卯秋九月之吉書于寶賢堂.” 中國佛敎文化硏究所, 『釋迦世尊應化示跡圖·善財童子五十三參圖』(中國佛敎文化出版有限公司, 1996) 중 『善財童子五十三參圖』 所收.

5) 『明史』 列傳第四 諸王, “晋恭王○, 太祖第三子也. 學文於宋濂, 學書於杜環, 洪武三年封. 十一年就藩太原…” http://www.guoxuedashi.com/

6) <建寺綠由匾>, “晉恭王殿下爲母后孝慈昭憲至仁文德承天順聖高皇后馬, 於洪武十五年八月初十日升霞, 無由補報罔極之恩, 洪武十六年四月內, 今差永平候奏准建立新寺一所, 今右護衛指揮使袁弘監修啓盖完俻. 至洪武 二十四年淸理佛敎事, 恭王賜額崇善禪寺, 就拔施地土一十九頃, 永遠與寺裡焚修供佛香燈. 敬此永樂十二年九月…”, 邢莉莉, 앞의 논문, p. 77. 『明史』 卷132 列傳第20, “謝成, 濠州人, 從大軍克滁州, 和州. 渡長 江, 平定集慶, 授予總管. 攻克寧國, 婺州. 晉升為管軍千戶. 激戰鄱陽, 平定武昌, 攻下蘇州, 湖州, 晉升為指揮僉事. 跟從大軍征討中原, 攻克元都, 攻占慶陽, 直搗定西, 任都督僉事, 晉王府相. 跟從沐英征討朵甘, 降服乞失迦, 平定了洮州十八族. 洪武十二年, 賜封為永平侯, 食祿二千石. 世襲指揮使. 二十年, 同張溫追討納哈出余部, 召回. 二十七年, 受株連被殺, 沒收田宅.” http://www.guoxuedashi.com/ 숭선사의 창건 시기에 관해서는 『大明一統志』(1461년)의 ‘洪武初建’, 『山西通志』(1475)의 ‘洪武6년’, <重修崇善寺碑記>(成化16, 嘉靖42)의 ‘洪武14년’, <建寺綠由匾>(1414)의 ‘洪武16년’의 기록이 있다. 張紀仲·安笈은 洪武6년에 대해 『明史』 本纪第二 太祖二, “九年春正月…三月己卯詔曰, 比年西征燉煌北伐沙漠軍需甲仗皆資山, 陜, 又以秦, 晉二府宮殿之役, 重困吾民. 平定以來, 閭閻未息. 國都始建, 土木屢興. 畿輔既極煩勞, 外郡疲於轉運.”(http://www.guoxuedashi.com/)와 당시 주강은 태원으로 부임하지도 않았으며(각주 5) 더욱이 이때는 晋王府도 완공된 시점이 아님을 근거로 ‘洪武6년’은 刻板 혹은 影抄 중의 실수로 인한 것임을 지적했다. 또한 홍무14년 건립에 대해서도 마황후는 홍무15년에 별세(『明史』 卷113 列傳第一, “太祖孝慈高皇后馬氏, 宿州人. …洪武元年正月, 太祖即帝位, 冊為皇后… 洪武十五年八月寢疾.” http://www.guoxuedashi.com/)했기 때문에 홍무14년설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張紀仲 외 1인, 앞의 책, pp. 7-9. 張紀仲·安笈은 숭선사의 창건 시기는 <建寺綠由匾>의 1383년이며 창건 목적은 마황후에 대한 보은을 핑계로 부친에 대한 충성심을 표방하여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張紀仲 외 1인, 앞의 책, p.14. 邢莉莉역시 숭선사의 창건은 <建寺綠由匾>의 1383년이며 목적은 마황후의 원찰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1391년의 百日諭令으로인해 숭선사의 사세가 확장된 것으로 보았다. 邢莉莉, 앞의 논문, pp. 77-79.

7) 單國强, 유미경 외 3인 역, 『중국미술사:명·청부터 근대까지』 4,(다른생각, 2011), pp. 123-124.

8) 單國强, 유미경 외 3인 역, 위의 책, p. 123.

9) 鎌田茂雄, 정순일 역, 『中國佛敎史』(경서원, 1996), pp. 261-262.

10) 티모시 브룩, 조영헌 역,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너머북스, 2014), p. 331.

11) 『山西通志』, “崇善寺在太原府城東南隅, 洪武六年建, 置僧綱司於內, 倂文殊寺安國寺入焉.” 張紀仲 외 1인, 위의 책, p. 7.

12) <숭선서건축전도>의 제작 시기는 劉敦楨, 『中國古代建築史』(中國建築工業出版社, 1984), p. 365 참조.

13) 1376년 주강은 太原에 皇廟를 건립했는데 1905년 <山西省全圖>에서 그 위치는 晋王府城의 남쪽 서측이며, 동측에는 숭선사가 있다. 따라서 숭선사가 위치한 특성으로 볼 때 금령전은 마황후의 사묘라 판단된다. 태원 황묘는 周陽·趙健彬, 「關於太原市歷史文化街區的探索」, 『太原理工大學學報』(太原理工大學, 2009); 盛力, 「閑話太原街巷」下, 『山西文史資料』(山西省政協文史資料委員會, 2000) 참조. 1905년 <산서성전도>에서 숭선사의 위치는 賈富強, 「明清時期太原城市空間演變硏究」(西北師範大學歷史文化學院碩士學位論文, 2015), p. 49 참조.

14) <후토묘도비>와 <중악묘도비>의 구조도는 賈紅艷, 「從後土祠廟貌碑看宋代後土祠在中國古代建築史上的地位」, 『文物世界』 5期(山西省文物局, 2009), p. 43; 張家泰, 「大金承安重修中嶽廟圖碑試析」, 『中原文物』 1期(河南博物院, 1983), p. 41; 자금성의 구조도는 路易吉 외 1인, 『鳳凰之家』(中國建築工業出版社, 2003), p. 29.

15) 구담전 중량 묵서명, “大明洪武二十四年歲在辛末季秋.” 形莉莉, 앞의 논문, p. 91. 『太祖高皇帝實錄』 卷225, 洪武 26年2月27日, “西寧番僧三剌貢馬. 先是三剌為書招降罕東諸部又剏佛剎於碾白南川, 以居其眾, 至是始來朝, 因請護持及寺額. 上賜名曰瞿曇寺.” http://sillok.history.go.kr/

16) 『明史』 218 西域二, “初西寧番僧三剌爲書招降罕東諸部, 又建佛剎於碾白南川, 以居其眾, 至是來朝貢馬, 請敕護持, 賜寺額. 帝從所請, 賜額曰瞿曇寺. 立西寧僧綱司, 以三剌爲都綱司.” http://www.guoxuedashi.com/

17) 구담사의 明代 五通碑는, 皇帝救蕷碑(永樂16)·皇帝救蕷碑(永樂16)·禦制金佛像碑(永樂16)·禦制瞿·寺後殿碑 (洪熙元年)·禦制瞿鉭寺碑(宣德2)이다. 1391년 瞿曇殿의 건립 이후 1418년에는 寶光殿과 동·서朶殿, 金剛殿, 三世殿, 護法殿이, 1427년에는 현재의 주불전인 隆國殿과 그 동서로 大鼓樓, 大鐘樓가 건립되었다. 謝繼勝·廖腸, 「瞿曇寺回廊佛傳壁畫內容辨識與風格分析」, 『故宮博物院院刊』 125期(故宮博物院, 2006), pp. 17-18. 융국전은 중층 우진각 지붕에 남쪽으로 넓은 정원을 두었고 강국전, 대고루, 대종루는 모두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18) 隆國殿木牌, “大明宣德二年二月初九日, 御用監太監 孟繼, 尙義, 陳亨, 袁琦建立.” 劉科, 「漢藏藝術交流中的青 海樂都瞿昙寺回廊佛傳壁畫」, 『中國美術館』4期(中國美術出版總社, 2013), p. 16.

19) 邢莉莉, 앞의 논문, p. 92.

20) 《석가여래팔십사감》의 소장처와 겉면 도판은 中國佛敎文化硏究所, 앞의 책 所收.

21) 中國佛敎文化硏究所, 위의 책, fig. 51 참조.

22) 『明詩綜』 권90, “浄倫字大巍昆明人. 正統中出家, 天順間叅善學於浮山, 晚住錫五臺. 示寂於京師顯通寺. 有竹室集.” http://www.guoxuedashi.com/ 邢莉莉는 앞의 논문(2008), p. 79와 『明代佛傳故事畵硏究』(線裝書局, 2010), p. 115에서 발문의 작성일을 “건륭26년”이라 기술했다. 그리고 위의 책(2010), p. 116에서는 “건륭29년”이라 기술했다. 그런데 발문의 맨 끝장 좌측 상부에는 “乾隆二十九年歲在甲申十月二十二日夢禪瑛寶敬觀”이라는 화기가 있어 건륭29년에 夢禪 瑛寶가 이 화첩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瑛寶는 재상집안의 아들로 서법은 유문청공 墉을 닮았고 그림을 잘 그렸는데 특히 指頭畫를 잘 그려 高且園 시랑에 비교된 인물이다.(『清稗類鈔』, “夢禪居士瑛寶, 相門子也, 又為巡撫伊江阿之弟. 隱居不仕. 其書法極似劉文清公墉, 或見其致親家母竹軒夫人手札十九通, 甚佳. 又善繪事, 似倪雲林. 尤善指頭畫, 識者以比高且園侍郎. http://www.guoxuedashi.com/) 따라서 邢莉莉는 이 화기를 발문의 작성일로 오판한 것으로 추측되며, “건륭26년”은 邢莉莉의 오타로 생각된다.

23) “我祖遊心翰墨場, 二氏之學相羽翼. 文章道德邁古今…嗟我把玩不釋手, 聊志歲月于其側. 囑僧携去好收藏… 峕萬曆龍飛壬子仲春之吉.” 본 시문의 출전은 中國佛敎文化硏究所, 앞의 책 所收.

24) 홍상희, 「元代 李·郭派畵風 繪畵 硏究」(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2), p. 13.

25) 宋光宇, 앞의 논문, p. 28.

26) 「八十四龕序」 “…當哉, 兩掖長廊繪畵, 釋迦世尊示跡成道之像,…今繪像日遠, 今朱烟淡, 其摠寺事, 住持金公西白輩, 共竭其誠, 欲新粧彩, 先裁方冊, 以謨其儀, 玆冊葉者, 玉就金成, 來啓一言, 題於葉端, 予曰住持佛事者, 似西白輩, 而其人也. 自住持來, 殿堂香燭煒煌, 門墻氷玉淨潔, 聞見之者, 孰不羨歟.…何國恩佛恩, 在己者之不報焉.…爲住持者, 預於此敎門之重任, 可不難乎.…成化癸卯歲季秋吉日書一淸堂.” 「八十四龕序」출전은 中國佛敎文化硏究所, 앞의 책 所收.

27) 張紀仲, 외 1인, 앞의 책, p. 20.

28) 『比丘尼傳』 卷4, “偽高昌都郎中寺馮尼傳五十五馮尼者, 本姓馮, 高昌人也, 時人敬重, 因以姓為號.” 嚴耀中, 「從嚴佛調朱士行說中土的僧姓法名」, 『史林』(上海社會科學院歷史硏究所, 2007), pp. 90-91.

29) 『孝宗敬皇帝實錄』 卷174, 弘治14년5월22일 “○己巳內官監太監李興請建僧寺一所, 于大興縣東皋村以僧錄司左覺義定錡住持, 仍乞賜寺額護勑. 又以寺西有官路不便, 於寺乞以其私地易路東苜蓿官地, 為之得旨, 仍陞定錡為 右講經兼本寺住持, 賜寺額曰隆禧.” http://sillok.history.go.kr/ 명대 승관제도는 馬曉菲, 「明代僧官制度硏究」(山東大學校中國古代史博士學位論文, 2014) 참조.

30) 이 작품은 1454년에 제작되어 북경 大隆福寺에 헌납된 《수륙화》로 제작 당시의 총 화폭 수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 <十地菩薩圖>와 <天龍八部圖>가 소장되어 있고 파리 기메미술관에 <羅漢圖>· <明王圖>·<二十八宿星辰衆圖> 등 34폭이 소장되어 있다. Weidner, Marsha S, and Patricia A. Berger, Latter Days of the Law: Images of Chinese Buddhism, 850-1850. Lawrence, KS: Spencer Museum of Art, University of Kansas, 1994. pp. 51-62, pp. 284-287; Ho, Wai-kam, Eight dynasties of Chinese painting: The collections of the Nelson Gallery-Atkins Museum, Kansas City, and the Cleveland Museum of Art. Cleveland, Ohio: Cleveland Museum of Art, 1980. p. 153.

31) 공주사 <수륙화>는 熊雯, 「山西繁峙縣公主寺東西壁水陸畫內容考釋與構圖分析」(北京大學藝術學院美術史碩士學位論文, 2008), p. 12 참조.

32) 北京市文物局, 『北京文物精粹大系:佛造像卷』 下(北京出版社, 2003), 도판해설 p. 1 참조.

33) 법해사 벽화는 田偉, 「北京法海寺壁畫藝術風格考述」(中央民族大學考古學及博物館學碩士學位論文, 2012), p. 8 참조.

34) 보범사 <십육나한도>는 範麗娜, 「蓬溪寶梵寺明代壁畫羅漢圖像考察」, 『故宮博物院院刊』 156期(故宮博物院, 2011), pp. 36-38과 範麗娜, 「蓬溪寶梵寺明代壁畫圖像綜合分析」, 『故宮博物院院刊』 157期(故宮博物院, 2011), pp. 81-82 참조.

35) 개화사 벽화는 谷東方, 「高平開化寺北宋大方便佛報恩經變壁畫內容考釋」, 『故宮博物院院刊』 142期(故宮博物院, 2009) 참조.

36) 금벽산수의 대표작으로는 중국 청록산수의 시조인 隋代 展子虔의 전칭 작 <遊春圖>와 大靑綠山水 및 金碧山水 화풍을 창조한 唐代 李思訓의 전작인 <江帆樓閣圖>이 있다.

37) 形莉莉는 이 화첩의 산석표현에 대해 畫法은 金碧式이며 小斧劈皴의 皴染이라 했다. 形莉莉, 앞의 논문, p. 87.

38) <關羽擒將圖>는 https://minghuaji.dpm.org.cn/ 참조.

39) 보녕사 《수륙화》는 陳俊吉, 「寶寧寺水陸畫的繪畫制作年代與賞賜年代探究」, 『書畫藝術學刊』 6期(臺灣藝術大學, 2009) 참조.

40) 姜宁, 『古朴雅致: 明清家具收藏与鉴赏』(北京美术摄影出版社, 2015), p. 58.

41) 편삼 및 불상 복제에 대해서는 逸見梅榮, 『佛像の形式』(東出版, 1975); 大西修也, 「百濟佛再考-新發見の百濟石佛と偏衫を着用した服制をめぐって-」, 『佛敎藝術』 第149號(每日新聞社, 1983); 水野敬三郞, 「釋迦三尊と止利佛師」, 『法隆寺金堂釋迦三尊』(岩波書店, 1979); 久野建, 「東アジアの佛像と偏衫」, 『古代小金佛』(小學館, 1982); 김춘실, 「삼국시대 시무외·여원인 여래좌상고」, 『미술사연구』 제4호(미술사연구회, 1990); 김춘실, 「한국 여래상의 착의 형식 변천」, 『중원문화연구』 제18·19집(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12.12); 吉村令, 「佛像の着衣 ‘僧祇支’と‘偏衫’について」, 『南都佛敎』 81(2002); 吉村令, 「古代比丘像の着衣と名稱-僧祇支·汗衫と·偏衫·直裰について」, 『Museum』 587(2003); 岡田建·石松日奈子, 「中國南北朝時代の如來像着衣の硏究(上, 下)」, 『美術硏究』 第356, 357號(1993); 岩井共二, 「硏究ノート 佛像の服制と‘偏衫’をめぐる諸問題」『美學美術史硏究論集』 13(名古展大學文學部 美學美術史硏究室, 1995) 등 참조(이상의 논고는 안여진,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의 현상과 양식」,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전라북도 고창군, 2019, pp. 117-144 수록).

42) 청룡사 요전 수륙화는 劉棟·侯慧明, 「山西稷山青龍寺腰殿水陸畫新探」, 『忻州師範學院學報』 1期(忻州師範學院, 2019), pp. 122-123 참조.

43) 흥화사 벽화는 北京古宮博物院과 Canada Toronto Royal Ontario 미술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미륵하생변상도>의 제작 시기는 曾嘉寶, 「山西興化寺元代壁畫 《彌勒說法圖》 淺釋」, 『文物』 3期(文物出版社, 1990), p. 87 참조.

44) 광승하사의 <약사설법도>와 <치성광여래설법도>는 安瑞軍, 「流落异國的瑰寶:山西洪洞廣勝寺 《藥師經變》 壁畫」, 『文物鑒定與鑒賞』 1期(時代出版傳媒股份有限公司, 2013), pp. 79-80; 張兵, 「洪洞廣勝寺」, 『文史月刊』 1期(山西省政協文史資料委員會, 2016), p. 79-80 참조. 광승상사 <십이원각불회도>는 姜帥, 「現存元,明時代晉南寺院佛會圖壁畫硏究」(中國美術學院藝術學碩士學位論文, 2015), p. 26 참조.

45) <순양제군신유현화도>의 화기는 남벽 동측에 “禽昌朱好古門人, 古新遠齋男寓居絳陽侍詔張遵禮, 門人古新田德新, 洞縣曹德敏至正十八年戊戌季秋重陽日工畢謹誌”, 남벽서측에 “禽昌朱好古門人, 古芮待詔李弘宜, 門人龍門王士彥, 孤峰侍詔王椿, 門人張秀實, 衛德至正十八年戊戌季秋上旬壹日工畢謹誌” 라 기록되어 있다. 김현정, 「중국 산서지역 화사 朱好古 硏究」, 『강좌미술사』 26(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6), p. 908 참조.

46) 『宋會要輯本』 職官 卷36-106, “翰林圖畫院은 雍熙元年, 內中苑 東門 안에 설치되었고, 咸平元年 右掖門 밖으로 이전되어 內侍 2인이 관리하도록 했다. 待詔 등은 예전에는 定員이 없었으나, 지금은 待詔 3인, 藝學 6인, 祗候 4인, 學生 40인을 額으로 정하였고, 예전에 工匠은 14인이었으나 지금은 6인이다.” 李光洙, 「宋代 院體畵風의 形成과 藝術的 交流」(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3), p. 7.

47) 侍詔는 박해훈, 「元代 永樂宮壁畵에 대한 考察」, 『미술자료』 65(국립중앙박물관, 2000), p. 102;김현정, 위의 논문, p. 908 참조.

48) 이정한, 「元·明代 海上群仙圖의 硏究」(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9), p. 51.

49) 『어제비장전』 권21 「어제불부」, “까치가 정수리에 둥지를 틀었고 갈대가 무릎을 들고 올라왔다. 이곳에서 6년을 고행하여 비로소 불도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http://abc.dongguk.edu/

50) Walters Art Museum의 불전부조는 https://art.thewalters.org/ 참조.

51) 암산사 불전벽화의 고행도상은 常樂, 『岩山寺詳釋』(三晉出版社, 2013), p. 86 참조.

52) 다복사의 初創寺名은 崛圍寺(洪武版 『太原志』, 萬曆版 『太原府志』 寺觀條)이며 洪武年間에 주강에 의해 增修되었다 파괴되어 智果에 의해 1415년에 중건이 시작되어 1456에 완공되었고 대웅보전의 불전벽화는 1458년 제작되었다. 1615년 「晋省西山崛圍多福寺碑」, “自晋恭王有國奉爲焚修, 壇宇金像重輝, 規模大備.”; 1466년 「崛圍寺興复記」, “迨薨逝後以其地幽絶, 遼敻檀越罕至, 緇流憚居, 殿宇設像日入於壞, 鞠爲草莽之區久矣. 景泰辛未榆次瞽沙彌智果往棲其地, 發大願力, 究心殫慮夜, 書夜經營, 感動善庶, 輸財效藝, 若水注雲. 不數年間, 崇門大殿, 新像儀衛, 煥然一新. 加於舊觀, 下至齋庫○湢, 次第畢具. 祝延有場, 結習有所, 朝鐘暮鼓, 響應嚴所, 皈依瞻仰者, 遠近趨赴, 巋然成一大招提也.”; 다복사 대웅보전 脊槫 木板 “大明景泰柒年歲次丙子四月癸丑庚子朔初四○乙卯重修謹誌” 다복사 불전벽화 묵서명 “大明天順二年三月十三日住持○心明”. 太原市崛围山文物保管所, 『太原崛围山多福寺』(文物出版社, 2006), pp. 6-8, 27 참조.

53) 다복사 불전벽화의 화제는 邢莉莉, 앞의 논문, pp. 128-131 참조. 邢莉莉는 다복사와 《석가여래팔십사감》에 대해 장면 수, 화제의 일치, 도상의 유사성을 이유로 숭선사 불전벽화를 모본으로 제작되었음을 주장하며 두 작품 간의 도상의 변용에 대해서만 논했다. 邢莉莉, 위의 논문, pp. 97-101.

54) 荊利利, 앞의 논문, pp. 84-86.

55) 『明史』 「朱棡傳」, “棡修目美髯, 顧盼有威, 多智數, 然性驕, 在國多不法, 或告棡有異謀, 帝大怒, 欲罪之, 太子力救得免, 二十四年, 太子巡陜西歸, 棡隨來朝, 敕歸藩, 自是折節, 待官屬皆有禮, 更以恭慎聞.” http://www.guoxuedashi.com/

56) 『修行本起經』, “이때에 여러 작은 나라의 왕들은 대왕의 부인이 임신하였음을 듣고 모두가 와서 朝賀를 하며 저마다 금은의 값진 보배와 옷이며 꽃과 향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바쳐 올리면서 길함을 찬양함이 한량없었는데”, 『佛說太子瑞應本起經』, “이날 밤에 하늘에서 상서로운 감응이 내렸는데 서른두 가지나 되었다. …둘째 길거리가 저절로 깨끗해져서…셋째 나라 경계 안에 말라죽었던 나무에서 모두 꽃과 잎이 피어났고…일곱째 창고에 감추어졌던 보물이 정밀한 광명을 나타내었고…열셋째 궁중에 火燭을 다시는 쓸 필요가 없게 되었고… 열아홉째 만 개의 보배 항아리마다 甘露가 가득 담겨져 있었고…스물여덟째 지옥이 다 쉬어서 모진 고통이 행해지지 않았으며, 스물아홉째 독충이 숨고…서른한째 국경 안에 아이 밴 부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모두 사내아이였고, 귀머거리·봉사·벙어리·고질병·쇠잔함 등의 온갖 질병이 모두 다 나왔고” 『佛說普曜經』, “그 때 보살은 여러 석종의 아이들과 함께 계시면서 손에 금 붓과 栴檀에 쓴 隸書를 가지고 뭇 보배와 明珠로 책상을 만들어 시자에게 들리고 가서 스승 선우에게 물었다. ‘이제 스승께서는 무슨 글로써 저에게 가르치겠소?’ 그 스승은 대답하였다. ‘梵과 佉留로써 가르칠 것이며, 그 밖의 다른 글은 없습니다.’ 보살은 대답하였다…. http://abc.dongguk.edu/

57) 『佛所行讚』과 『佛說普曜經』의 내용은 http://abc.dongguk.edu/

58) 杨永康, 「明初晉王朱棡事跡辨正-兼及 《太祖皇帝欽錄》 的史料價值-」, 『史学史硏究』 3期(北京師範大學歷史學院史學硏究所, 2015) 참조.

59) 호유용의 모반죄와 주원장의 황권 강화에 대해서는 安震, 정근희 역, 『천추흥망 : 명나라 대항해의 선구자』 (따뜻한손, 2010), pp. 31-145 참조.

60) 티모시 브룩, 조영헌 역, 앞의 책, p. 331 참조.

61) 박광연, 「동아시아의 ‘王卽佛’ 전통과 미륵불 궁예」, 『사학연구』 110(한국사학회, 2013.), pp. 93-97.

Fig. 1.
<숭선사건축전도>, Bird’s Eye View Representation of Chongshan Temple, 1482. National Architecture Institute of China (Photo from Zhang, Jizhong and An Ji, Taiyuan Chongshansi wenwu tulu, Fig.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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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석가여래팔십사감>, Scene 8,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Ink and colors on silk, 51×37cm,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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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석가여래팔십사감>, Scene 30,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 g 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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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석가여래팔십사감>, Scene 33,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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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Buddha’s clothing in Scene 51,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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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미륵하생경변상도>, Detail of Buddha’s clothing in Illustration of Maitreyavyakarana Sutra of Xinhuasi, 1298. Color on earthen wall, Royal Ontario Museum, Toronto (Photo courtesy of Professor Kim Junghee, Wonkwang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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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Siddhartha’s birth in Scene 3,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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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서하사 석탑 팔상부조 탄생도상>, Siddhartha’s birth scene, detail from the relief on the stone pagoda of the Qixia Temple, Southern Tang, Qixia Temple, Jiangsu Province(Photo from Lei Shao, “Nanjing Qixiasi sheli ta fozhuan tu de neirong ji suoshe Nantang jianzhu guizhi zhu wenti,” Fig.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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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Siddhartha practicing asceticism in Scene 44,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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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고행도상>, Detail of Siddhartha practicing asceticism, Fig. 2 in Life of Buddha, book 21 of the Yuzhi Bizangquan (Imperially Composed Explanation of the Secret Treasures), 11th century (Photo from Tokyo Kokuritsu Hakubutsukan, Nanzenji: Kameyama Ho 700-nen onki kinen, 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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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Shakyamuni’s battle against Mara in Scene 52,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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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불전도>, Detail of Shakyamuni’s battle against Mara, Mogao Cave 156, Late Tang. Color on earthen wall(Photo from Zhongguo Dunhuang bihuaquanji bianji weiyuanhui, Zhongguo Dunhuang bihuaquanji 4, Fig.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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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3.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Siddhartha’s birth in Scene 3,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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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4.
<다복사 대웅보전 동벽의 탄생도상>, Detail of Siddhartha’s birth on the east wall of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Duofu Temple, 1458. Color on earthen wall, 2.58×9.22m(Photo from Tai yuan shi jue shan wen wu bao guan suo, Tai yuan jue shan duo fu si, p.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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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5.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Siddhartha being examined by the sage in Scene 6,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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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6.
<다복사 대웅보전 동벽의 선인점상>, Detail of Siddhartha being examined by the sage on the east wall of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Duofu Temple, 1458. Color on earthen wall, 2.58×9.22m (Photo from Taiyuanshi jueshan wenwu baoguansuo, Taiyuan jueshan duofusi,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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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7.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Siddhartha practicing martial arts in Scene 17,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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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8.
<다복사 대웅보전 동벽의 궁중무예>, Detail of Siddhartha practicing martial arts on the east wall of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Duofu Temple, 1458. Color on earthen wall, 2.58×9.22m (Photo from Taiyuanshi jueshan wenwu baoguansuo, Taiyuan jueshan duofusi,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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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9.
<석가여래팔십사감>, Detail of Siddhartha revealing his mysterious powers in Scene 16,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1483, Shanxi Museum (Photo from Zhongguo fojiao wenhua yanjiusuo, Shijia shizun yinghua shiji tu·Shancai tongzi wushisan can tu, Fig.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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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0.
<다복사 대웅보전 동벽의 태자위력>, Detail of Siddhartha revealing his mysterious powers on the east wall of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Duofu Temple, 1458. Color on earthen wall, 2.58×9.22m (Photo from Taiyuanshi jueshan wenwu baoguansuo, Taiyuan jueshan duofusi, 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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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중국 불전도 현황 Paintings of Shakyamuni Buddha‘s Life in China
Production Date/Dynasty Region Location Details
Jin, 1167 Fanshi County, Shanxi Province Wenshudian (Hall of Manjusri), Yanshan Temple
Yuan Jishan County, Shanxi Province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Qinglong Temple One painting on a bracket set on the south wall
Jishan County, Shanxi Province Yaodian(Middle Hall), Xinghua Temple Four paintings in the Jishan County Museum
Ming Wall painting made between 1383-1391 Taiyuan, Shanxi Province Shanxi Museum Copied in 1483 and made into an album
1417 Jianchuan County, Yunnan Province Dadian (Great Hall), Xingjiao Temple
1427 Ledu District, Qinghai Province Longguodian (Hall of Dynastic Prosperity), Qutan Monastery Sixteen paintings in the eastern gallery
1427 Yongdeng County, Gansu Province Wansuidian (Hall of Ten Thousand Years), Miaoyin Temple
1458 Taiyuan, Shanxi Province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Duofu Temple
1468 Zhengding County, Hebei Province Monidian (Hall of the Mani Jewels), Longxing Temple
1489 Jiange County, Sichuan Province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Jueyuan Temple
15th-16th Century Kagoshima Prefecture, Japan Reimeikan Ritual painting, 13 pages, 51 scenes
Qing Shunzhi Period (1644-1661) Jinzhong, Shanxi Province Zhengdian (Main Hall), Luohan Temple
1798 Pingyao County, Shanxi Province Sanfoluo (Pavilion of Three Buddhas), Zhenguo Temple
1834 Ledu District, Qinghai Province Longguodian (Hall of Dynastic Prosperity), Qutan Monastery 28 scenes in the western gallery
After 1808 Wutai County, Shanxi Province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Jile Temple
After 1808 Wutai County, Shanxi Province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Youguo Temple
Daoguang Period (1821-1850) Jinzhong, Shanxi Province Sanfoluo (Pavilion of Three Buddhas), Jingxin Temple
1878 Datong, Shanxi Province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Huayan Temple
1892 Qingxu County, Shanxi Province Dadian (Great Hall), Baofan Temple
Qing Luliang, Shanxi Province Daxiongbaodian (Treasure Hall of the Great Hero), Anguo Temple
Qing Luliang, Shanxi Province Sanfodian (Hall of Three Buddhas), Suhuang Temple
Qing Jinzhong, Shanxi Province Zhengdian (Main Hall), Daming Temple
<Table 2>
《석가여래팔십사감》의 내용 Scenes of the Eighty-four-leaf Album of the Shakyamuni Buddha
Scene Number Title Scene Description
1 第一護明菩薩修行辭會之處 Prabhapala Bodhisattva is informed of a suitable place for his incarnation.
2 第二菩薩駕日輪象至飯王宮託化受胎之處 The Bodhisattva arrives at the palace of King Suddhodana on an elephant and enters his mother’s womb.
3 第三摩耶夫人毘蘭園無憂樹下降生太子之處 Queen Maya gives birth to the prince under an asoka tree in the Lumbini Garden.
4 第四九龍吐水沐浴太子之處 Nine dragons spit water to bathe the prince.
5 第五太子初行七步目顧四方手指天地蓮花捧足之處 The prince walks seven steps, looks to the four corners of the world, and points to the sky and ground. Lotus flowers bloom under the prince’s feet.
6 第六飯王宣阿期陀仙人瞻相太子形儀之處 King Suddhodana asks Asita the sage to examine the prince’s countenance.
7 第七飯王観太子具足端嚴相好立名之處 The king observes the baby’s serene and dignified form and decides on a name.
8 第八太子威神力故天人獻寶蓋之處 Deva offers canopy to the prince, overwhelmed by his sublime powers.
9 第九天人獻寶奉上太子之處 Deva offers treasures to the prince.
10 第十姨母引太子行天人獻花供養之處 Deva offers flowers to the prince as he walks with his aunt Mahapajapati.
11 第十一天人獻香之處 Deva offers incense to the prince.
12 第十二淨居天人獻天衣之處 Suddhavasa deva offers clothes of heaven.
13 第十三飯王令太子體掛天衣之處 The king orders to dress the prince in the clothes of heaven.
14 第十四太子入學従師之處 Prince Siddhartha starts school and learns from his teacher.
15 第十五太子學算法之處 Siddhartha learns mathematics.
16 第十六太子於姨母宮中現身光之處 Siddhartha reveals his mandorla to Mahapajapati.
17 第十七太子走象奔馬之處 Horses run away as Siddhartha approaches on his elephant.
18 第十八太子共南天國閗武藝之處 Siddhartha matches his martial prowess with warriors from a southern kingdom.
19 第十九興南天國爭上下國相撲之處 Siddhartha competes with southern men by wrestling.
20 第二十太子顯神力射穿九重鐵鼓之處 Siddhartha reveals his mysterious powers and pierces an iron drum with his arrow.
21 第二十一太子威神廣大擲象過城車匿驚恐之處 Siddhartha throws an elephant out of the palace with his mighty powers and Channa is astounded and afraid.
22 第二十二逰東門見老人之處 Prince Siddhartha sees an old man outside the east gate of his palace.
23 第二十三太子逰南門見病人之處 Prince Siddhartha sees a sick man outside the south gate.
24 第二十四太子逰西門見尸悲悼之處 Prince Siddhartha sees a dead body outside the west gate and mourns.
25 第二十五太子逰北門見僧棄車問訊之處 Prince Siddhartha meets an ascetic at the north gate and talks to him against Channa’s protests.
26 第二十六太子出城觀苗稼年得大稔之處 The prince comes out of the palace and is moved by the sight of men working in the field.
27 第二十七太子欲要修行飯王宣諸臣佐共議之處 King Suddhodana discusses with his courtiers of the prince’s desire to seek enlightenment.
28 第二十八太子宮中欲樂淨居天人捧書省勧處 As Siddhartha enjoys the pleasures and luxuries of the palace, Suddhavasa deva writes to the prince to lead him to enlightenment.
29 第二十九太子於宮妃御深生壓惡之處 Siddhartha is shaken by the unseemly sight of his wife.
30 第三十太子於欲棄榮華志慕雪山修行之處 Siddhartha wishes to discard his worldly riches and practice asceticism in a snow-covered mountain.
31 第三十一太子悟世無常欲求佛道之處 Siddhartha realizes how inconsequential the vanities of the world are and seeks the teachings of Buddhism.
32 第三十二諸天進上太子僧衣之處 Devas come together to offer garments of a monk.
33 第三十三太子痛念生死輪轉躬詣飯王求請出家之處 Siddhartha contemplates the eternal cycle of birth, death, and rebirth, and asks the king for permission to leave the palace.
34 第三十四太子威神力故宮眷靑衣盡皆濃寐四天 捧馬子夜踰城之處 Siddhartha puts all men and women in the palace to deep sleep with his powers. The four deva-kings lift up the feet of the prince’s horse to help him over the palace walls.
35 第三十五太子己離宮城發弘誓願之處 Siddhartha makes a vow as he leaves the palace.
36 第三十六太子雲山中樵夫指路之處 A woodcutter helps the prince find his way in the snow- covered mountain.
37 第三十七太子乘馬過廟感得山神迎引之處 As the prince passes a shrine on his horse, a guardian spirit of the mountain is moved and comes out to receive him.
38 第三十八太子到雪山令車匿回馬/繾綣忍還之處 Siddhartha arrives at the snow-covered mountain and orders Channa to return. Channa obeys despite his grief at parting.
39 第三十九車匿還宮見耶輪夫人悲痛之處 Channa returns to the palace and sees princess Yasodhara, Siddhartha’s wife, in deep distress.
40 第四十車匿見飯王說太子修行之處 Channa informs the king of Siddhartha’s departure.
41 第四十一太子靑山斷髮天人捧金盤之處 When the prince cuts his hair in the mountain, deva receives them in a golden basin.
42 第四十二太子堆坐天人進仙桃之處 As the prince sits on a hill, deva offers him peaches from heaven.
43 第四十三太子修習禪定天人參禮之處 Deva pays respects to the prince as he meditates.
44 第四十四鵲巢於頂蘆芽膝猿鹿獻花果之處 Magpies have made a nest at the top of Siddhartha’s head, reed sprouts from his knees, and monkeys and deers bring him fruits and flowers.
45 第四十五入泥連河沐浴天人壓樹枝之處 As Siddhartha bathes in the River Nairanjana, deva presses down tree branches.
46 第四十六洗浴而出牧牛二女內獻乳粥之處 After his bath, two milk-maids offer him rice-milk.
47 第四十吉祥長者獻軟草之處 A kusha grass-cutter offers the softest grass to Siddhartha.
48 第四十八天人獻寶座之處 Devas offers a throne.
49 第四十九魔女笑佛感得形皃自陋之處 Mara’s daughters smile at Siddhartha, but he makes them realize their own ugliness.
50 第五十天藥空中自鳴小童歓樂供養之處 Heavenly music plays in the sky and a young boy gladly offers music.
51 第五十一四王奉四寶鉢之處 The four deva-kings offer four jewel bowls.
52 第五十二魔軍外道俱来害佛世尊寂然不動之處 Mara’s army and heretics all come together to attack Shakyamuni but he remains poised and calm.
53 第五十三天人獻袈裟之處 Deva offers him a monk’s robe.
54 第五十四利益長者求諸說法作禮謝佛之處 Liyizhangze asks Shakyamuni to preach for him and pays respects in return.
55 第五十五南海龍王歸禮如來聽法之處 Dragon King of the South Sea pays respects and asks for his teachings.
56 第五十六善多長者見佛現降魔巳歓喜禮敬之處 Shanduozhangze rejoices at Shakyamuni’s expulsion of Mara and pays respects.
57 第五十七牧牛女見世尊成正覺歸依之處 The milk-maid sees that Shakyamuni has attained enlightenment and vows to follow him.
58 第五十八舟人索渡世尊垂雲而去舟人追悔之處 An oarsman seeks Shakyamuni’s help to cross the water and repents when he goes away with a cloud.
59 第五十九佛與賈客随機說法之處 Shakyamuni preaches the dharma frequently for a merchant.
60 第六十世尊見一渾身瘡潰之人神力令其痊美之處 Shakyamuni miraculously heals a man covered with ulcers.
61 第六十一忠榮長者求諸出家之處 Zhongyingzhangze expresses his wish to leave the mundane and become a Buddhist monk.
62 第六十二利生長者歸禮世尊之處 Lishengzhangze vows to follow Shakyamuni.
63 第六十三東海龍王請佛海藏說法之處 The Dragon King of the East Sea requests preachings of dharma for the sea.
64 第六十四世尊覔宿南方火龍欲燒法身之處 When Shakyamuni is in need of a place to spend the night, the fire dragon of the south tries to light fire to his body.
65 第六十五貧人至心供佛世尊赴請之處 Shakyamuni comes to visit the poor who has served Buddha with utmost respect.
66 第六十六鹿野苑先度憍陳如等五人出家之處 Five people, including Kaundinya, enter the Buddhist priesthood in Sarnath.
67 第六十七世尊光中現天宮殿天人禮敬之處 Devas and men worship when Shakyamuni reveals the heavenly palace in light.
68 第六十八耶輸夫人降生羅睺之處 Princess Yasodhara gives birth to Rahula, Siddhartha’s son.
69 第六十九飯王知降生羅睺驚問之處 King Suddhodana is surprised at the news of Rahula’s birth.
70 第七十飯王一怒火燒羅睺子母之處 The King is enraged and wants to burn Rahula and his mother.
71 第七十一上見羅睺子母得罪天人持書相勧之處 Deva sees that the mother and child are to be executed and writes to save them.
72 第七十二世尊知羅睺子母有難駕雲散花之處 As he flies on a cloud to save the mother and child from their plight, flower petals are strewn for Buddha.
73 第七十三敕令焚燒羅睺子母世尊遥指火滅化爲 蓮池之處 When orders are given to burn Rahula and his mother, Shakyamuni points at the fire from afar, puts it out and turns the place into a pond with lotus flowers.
74 第七十四飯王遣使捧書遥請如來之處 The king sends a letter by an emissary to ask for Shakyamuni’s visit.
75 第七十五世尊入城衆見如來端嚴相好生大歓喜之處 As Shakyamuni enters the palace, the people are overjoyed to witness his dignified and solemn appearance.
76 第七十六羅睺子母瞻禮如來之處 Rahula and his mother pay their respects to Shakyamuni.
77 第七十七飯王見佛欲聞正敎世尊說大乘法之處 The king wishes to receive the true teachings, and Shakyamuni preaches the Mahayana views.
78 第七十八世尊頭上出水足下出火天人獻寶之處 When water emits from Shakyamuni’s head and fire from his feet, deva offers riches to him.
79 第七十九世尊雙林入般涅槃之處 Shakyamuni enters nirvana under a Bodhi tree.
80 第八十世尊出金棺爲母摩耶說報恩法之處 Shakyamuni comes out of his golden casket and preaches dharma to his mother, Queen Maya.
81 第八十一金官自擧逰拘尸羅城之處 The golden casket wanders by itself in Kushinagar.
82 第八十二迦葉禮金棺佛現雙足之處 When Mahakasyapa pays respects to the golden casket, Shakyamuni’s feet is shown.
83 第八十三世尊自發三昧火焚金軀之處 Shakyamuni burns his own body by raising fire within himself.
84 第八十四諸天及諸人王建舍利寶塔之處 All devas and kings build a stupa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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