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의 양식 특징과 건립 시기*

The Stylistic Characteristics and Construction Date of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Art Hist. 2020;307():35-66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0 September 30
doi : https://doi.org/10.31065/kjah.307.202009.002
**Researcher, Central Buddhist Museum
김동욱**
**불교중앙박물관 연구원
*

이 글은 金東昱, 「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硏究」(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9)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Received 2020 May 28; Revised 2020 June 26; Accepted 2020 July 30.

Abstract

늦어도 신라 하대부터 華嚴十刹이자 戒壇寺院으로 이름났던 普願寺 터에는 높았던 寺格을 대변하는 석조물이 다수 전해온다. 보물 제104호인 〈보원사 석탑〉은 이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많은 연구자는 이 석탑을 法印 坦文(900-975)의 원력으로 건립했다고 추정해왔다. 소위 백제계 석탑 양식으로 〈보원사 석탑〉을 분류한 관점 역시 10세기 이후로 석탑의 연대를 파악한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기단부의 부조 양식이 9세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어 편년에 대한 중론은 모이지 못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그간의 연구 성과와 양식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보원사 석탑〉의 건립 시기를 고찰했다. 나아가 석탑을 세우기에 가장 유력했을 당시 보원사의 배경도 함께 검토하였다.

〈보원사 석탑〉의 양식은 9세기까지 유행한 신라 석탑 양식에 근간을 두었지만, 옥개석 등에서는 앞으로 도래할 변화를 예고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을 근거로 건립 시기는 9세기 후반에 가깝다고 보았다. 사리장엄구 역시 제작 기법을 검토한 결과 9세기 후반까지 하한 연대를 올려볼 수 있었다. 또한 보원사에서 대규모 불사가 이루어질 수 있던 배경으로 전성기였던 9세기 후반의 사세와 중창불사가 있었을 여지를 주목하였다. 반면, 탄문의 행장을 검토한 결과 보원사의 현전 유물과는 결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일련의 검토를 통해 〈보원사 석탑〉이 9세기 후반 명망 높던 보원사의 위상과 문화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신라와 고려의 석탑 양식 변화와 편년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례임을 알 수 있었다.

Trans Abstract

Many stone monuments at the site of Bowonsa Temple, testify to the prominence of the establishment, renowned as one of the Ten Temples of Hwaeom (Ch. Avatamsaka) and also as a temple of ordination platform by late Unified Silla at the latest. The Bowonsa Temple Stone Pagoda, Treasure No. 104, is a representative example. Many scholars have proposed that the pagoda was built by National Preceptor Tanmun (900-975). The arguments which categorized the pagoda to the traditional style of Baekje pagoda also supports the proposal that dating the pagoda to after 10th century. However, as some suggest that the relief on the stylobate was sculpted by no later than the 9th century, the production date for the pagoda has not been agreed upon. This thesis reviews previous arguments and analyzes the stylistic characteristics to propose a possible timeline and examines backgrounds around the temple at the time.

The pagoda is based on the style of Silla, popular until the 9th century, but the roof stone shows the early stages of changes to come in the next century, providing grounds to propose the late 9th century for its production. The sarira reliquaries found inside the pagoda also display techniqu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9th century at the latest. Examinations of historical records reveal that Bowonsa Temple was in its zenith during the 9th century and powerful enough to carry out a work of such monumentality. However, records of the life of Tanmun show that it is difficult to connect the pagoda to Tanmun.

Conclusively, this paper has recognized the value of the Bowonsa Temple Stone Pagoda as representing the eminence of the temple in the late 9th century. Moreover, it is a valuable document in studying the stylistic changes and dating of Silla and Goryeo stone pagodas.

Ⅰ. 머리말

충청남도 伽倻山 북쪽 기슭에는 과거에 큰 총림이면서 아름다웠다고 전하는 普願寺 터가 있다.1 지금은 옛 영광을 보여주는 빛바랜 석조물만 여럿 전하는데, 보물 제104호인 〈瑞山普願寺址 五層石塔〉(이하 〈보원사 석탑〉)은 이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많은 연구자는 이 석탑을 고려 光宗(재위 949-975) 때 國師를 지낸 法印 坦文(900-975)이 보원사에 駐錫하던 10세기경에 세웠다고 추정하였다.2, 석탑 건립과 같은 대규모 佛事는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므로 고려 왕실의 각별한 신임을 받던 탄문을 매개로 본 이유에서다. 〈보원사 석탑〉이 신라 석탑 양식에서 벗어났다는 관점도 이러한 추정에 근거를 더했는데, 소위 백제계 석탑으로 이 석탑의 양식을 분류한 것이 그 예다.3, 하지만 八部衆 등 석탑 부조의 양식이 9세기에 가깝다는 지적과 더불어,4, 보원사는 통일신라 때부터 저명했기에 일찍이 탑을 갖췄으리란 이견도 병립하는 상황이다.5

〈보원사 석탑〉의 연대에 관한 학계의 의견이 나뉘었던 가장 큰 까닭은 羅末麗初에 해당하는 기년작 석탑이 드문 데다,6 석탑의 양식과 역사적 배경에 관한 다양한 理解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석탑의 편년을 두고 건축사와 조각사 분야의 관점이 달랐던 것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논의의 가장 큰 맹점이기도 하다. 〈보원사 석탑〉의 건립 배경을 언급할 때 대부분 탄문에 의한 가능성만을 주목한 사실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후술하겠지만, 관련 기록을 검토해 보면 탄문의 원력으로 석탑을 건립했다는 추정은 재고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보원사 석탑〉의 건립 시기를 밝히는 데 필요한 기초 작업으로서 양식 분석을 우선 시도해보겠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석탑의 양식을 살펴보며 연대 추정에 중요한 요소를 하나씩 확인할 것이다. 이와 함께 〈보원사 석탑〉에 봉안하였던 사리장엄구도 양식에 근거해 제작 시기를 도출하여 석탑의 편년을 추정하는 논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석탑 건립처럼 큰 불사를 추진할 수 있었던 당시 보원사의 내력도 확인하겠다. 탄문의 주석이 석탑 건립과 직결하는지, 그보다 앞선 시기에 다른 정황은 없었는지가 주로 논증할 내용이다.

Ⅱ. 양식 분석으로 본 석탑의 건립 시기

1. 9세기 후반의 석탑 양식 요소

약 8.5m 높이의 〈보원사 석탑〉은 현재 이중 기단에 5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물론 노반석과 찰주까지 갖춘 모습으로 남아있다(Fig. 1). 비록 일부 부재는 전하지 않고 부조에서 마멸도 나타나지만, 건립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는데 무리는 없다. 아래에서 건립 시기를 추정할 때 가장 중요한 특징을 부재별로 세분해 살펴보겠다.

Fig. 1.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Fiv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H. 8.5m, Located in Bowonsa Temple Site, Seosan-si,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04. (Photograph by Kim, Dongwook)

첫째, 이중 기단의 채택과 그 세부 변화다. 경주 일원에서 성립한 신라 석탑 양식은 대부분 이중 기단이었는데, 이는 석탑 건립이 전국 각지로 확산한 9세기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특히 9세기부터는 판석을 활용한 결구 방식과 다양한 장엄 부조가 증가하면서 탱주 수는 감소하고 상층 기단 갑석 밑면에 물끊기[落水, 切水] 홈을 낸다고 이해해왔다.7, 반면 10세기부터는 단층 기단이 주류로 등장하고,8, 治石과 결구는 물론 부재별 비례 역시 다양하게 변화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상층 기단 갑석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밑면 받침[副椽]의 높이를 낮게 내거나 생략하는 점이 그 예다.9 이상의 이해를 토대로 〈보원사 석탑〉 기단부를 보면 9세기 양식에 더욱 가까움을 알 수 있다.

한편 〈보원사 석탑〉 상층 기단 갑석의 밑면 받침 높이가 낮기 때문에 고려 석탑 양식과 가깝다는 지적이 있다.10, 하지만 〈長興 寶林寺 南·北 三層石塔〉(870)과 〈陜川 海印寺 吉祥塔〉 (895)도 건립 시기가 앞선 〈大邱 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傳 863)보다 밑면 받침의 높이를 낮게 마련했다(Table 1).11 이를 통해 상층 기단 갑석의 밑면 받침 축소가 고려 석탑 양식의 專有가 아닌, 늦어도 9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나타난 변화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해당 특징만을 근거로 〈보원사 석탑〉의 연대를 10세기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9세기 후반 기년작 석탑과의 상층 기단 갑석 실측 수치 비교 Numerical comparison of Gapseok (甲石, a flat stone covering the stylobate) in upper stylobate of stone pagodas in the late 9th century

둘째, 기단부 면석에 장엄한 부조이다. 〈보원사 석탑〉은 상층 기단 면석에 팔부중을 2구씩, 하층 기단 면석에 사자를 3구씩 면마다 부조했다. 먼저 살필 팔부중상은 오늘날의 강원 지역에서 9세기경에 유행한 석탑 팔부중상 계열을 따르고 있는데,12, 이 중 〈高城 神溪寺 三層石塔〉(이하 〈신계사 석탑〉)과 〈軍威 持寶寺 三層石塔〉(이하 〈지보사 석탑〉)이 도상과 방위별 존상의 배치 면에서 가장 밀접하다.13, 그렇기에 같은 계열에서 건립 시기가 가장 이른 〈襄陽 陳田寺址 三層石塔〉(이하 〈진전사 석탑〉)의 팔부중상을 중심으로 비교한다면 선후 관계를 가늠할 수 있다.14

팔부중의 얼굴부터 비교해보면, 〈보원사 석탑〉은 〈진전사 석탑〉과 〈襄陽 禪林院址三層石塔〉(이하 〈선림원 석탑〉)처럼 자연스럽지만, 〈지보사 석탑〉은 살이 올라 평평하고 이목구비를 과장한 감이 있다. 阿修羅와 緊那羅가 합장한 모습도 〈진전사 석탑〉과 〈선림원 석탑〉처럼 〈보원사 석탑〉은 오른손 손등을 내보였다. 그러나 〈신계사 석탑〉과 〈지보사 석탑〉은 왼손 손등을 드러냈다. 또한 〈진전사 석탑〉 아수라 옷자락은 양옆으로 뻗은 옷자락 네 갈래가 위를 향해 휘날리나, 〈신계사 석탑〉과 〈지보사 석탑〉 아수라는 옷자락을 팔뚝에 감았다. 〈보원사 석탑〉 아수라는 부자연스럽지만, 양옆으로 나부끼는 네 갈래의 옷자락을 표현한 점이 〈진전사 석탑〉과 같다. 그밖에도 〈신계사 석탑〉과 〈지보사 석탑〉은 팔부중을 새긴 면석의 너비가 높이에 비해 좁은데, 〈보원사 석탑〉은 〈진전사 석탑〉처럼 그 차이가 심하지 않다. 이상의 특징은 〈보원사 석탑〉 팔부중상이 〈진전사 석탑〉의 표현 요소를 더욱 충실히 구현했음을 증명한다(Fig. 2, 3, 4).15

Fig. 2.

<보원사 석탑> 아수라(左)와 긴나라(右) 세부, Details of Asura (left) and Kinnara (right) Reliefs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3.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아수라(左)와 긴나라(右) 세부, Details of Asura (left) and Kinnara (right) Reliefs on Thre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Early 9th Century, Located in Jinjeonsa Temple Site, Yangyang-gun, Gangwon-do, National Treasure No. 122.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4.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 아수라(左)와 긴나라(右) 세부, Details of Asura (left) and Kinnara (right) Reliefs on Three-story Stone Pagoda, Goryeo, Early 10th Century, Located in Jibosa Temple, Gunwi-gun, Gyeongsangbuk-do, Treasure No. 682. (Photograph by Kim, Dongwook)

〈보원사 석탑〉 하층 기단에 새긴 사자상은 마멸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근육은 물론 다양한 자세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Fig. 5). 부조의 사자상은 석탑보다 불상의 대좌나 僧塔 등 다른 불교 석조물에 다수 남아있는데, 특히 9세기경 조성한 석조물 사례와 양식상 상통하므로 〈보원사 석탑〉의 연대 추정에 참고할 수 있다(Fig. 6). 한편, 같은 寺域에 있는 〈瑞山普願寺址 法印國師塔〉(975) 하대석에도 사자상이 남아있지만, 얼굴은 물론 갈기와 자세 등 사자를 표현한 새김 수법이 매우 어색하다(Fig. 7). 이는 〈보원사 석탑〉의 편년이 이 승탑을 세운 때보다 내려가기 어려움을 방증한다.16

Fig. 5.

<보원사 석탑> 사자 세부, Detail of Lion Relief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6.

<홍천 물걸리사지 석조대좌편> 사자 세부, Detail of Lion Relief on Stone Pedestal, Unified Silla, 9th Century, Located in Mulgeol-ri Temple Site, Hongcheon-gun, Gangwon-do.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7.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사자 세부, Detail of Lion Relief on Stupa of National Preceptor Beopin at Bowonsa Temple Site, Goryeo, 975, Located in Bowonsa Temple Site, Seosan-si,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05. (Photograph by Kim, Dongwook)

셋째, 상층 기단 갑석과 1층 탑신석 사이에 있는 탑신 받침석이다. 〈보원사 석탑〉은 받침[몰딩] 1단을 조출한 상층 기단의 갑석 윗면에 다시 別石으로 구성한 받침석을 끼운 특징이 있다. 2매로 이루어진 이 받침석은 다시 위아래로 받침을 1단씩 마련했으며, 밑면 받침은 弧形으로 깎았다(Fig. 8). 이와 유사한 모습의 받침석은 늦어도 9세기 후반부터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17, 또한, 해당 사례를 대표하는 保寧 聖住寺址의 석탑 4基가 거리 면에서 보원사와 멀지 않아 일찍부터 상호 양식 영향이 있었을 정황이 다분하다(Fig. 9).18, 10세기 이후에 건립한 석탑에서도 이처럼 별석으로 낸 탑신 받침석이 다수 남아있는데, 〈지보사 석탑〉 등처럼 연판을 함께 새기는 특징이 새롭게 등장하였다(Fig. 10).19 이상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보원사 석탑〉 탑신 받침석을 보면 10세기 이후의 양식 경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Fig. 8.

<보원사 석탑> 탑신 받침석 세부, Detail of Underpinning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9.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탑신 받침석 세부, Detail of Underpinning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Located in Seongjusa Temple Site, Boryeong-si,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9.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0.

<지보사 석탑> 탑신 받침석 세부, Detail of Underpinning Stone on Three-story Stone Pagoda at Jibosa Temple. (Photograph by Kim, Dongwook)

넷째, 평평하며 얇고 넓은 옥개석의 모습이다. 〈보원사 석탑〉 옥개석은 얇은 단면과 높이가 낮은 받침, 그리고 물끊기 홈을 포함한 밑면의 너비를 크게 마련함으로써 전체 모습이 평박하다(Fig. 11). 그로 인해 백제계 석탑,20, 또는 고려 이후로 등장한 새로운 석탑 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이 옥개석을 이해해왔다.21, 하지만 평박한 비례 요소를 제외하고 본 〈보원사 석탑〉 옥개석은 분명 기존 신라 석탑의 옥개석 구조와 다르지 않다. 더욱이, 밑면 등의 비례 변화를 통해 옥개석을 비교적 평박하게 구현한 9세기경의 석탑 사례가 남아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Fig. 12). 평박한 옥개석이 고려시대 백제계 석탑을 대변하는 중요한 개성이지만, 이러한 범주로만 〈보원사 석탑〉 옥개석 양식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Fig. 11.

<보원사 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2.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Thre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9th Century, Located in Hwacheon-ri, Yeongyang-eup, Yeongyang-gun, Gyeongsangbuk-do, Treasure No. 609. (Photograph by Kim, Dongwook)

백제계 석탑은 10세기부터 백제 고토를 중심으로 나타났다고 이해하는데, 백제가 멸망한 이후인 약 250여 년 뒤에야 불현듯이 출현해 확산한 점은 여러모로 어색하다. 통일신라에서도 옛 백제 석탑에서 구현한 양식과 미감이 끊어지지 않고 신라 석탑 양식과 절충함으로써 면면히 이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22, 그렇다면 〈보원사 석탑〉 옥개석을 일찍이 신라 석탑 양식을 토대로 백제 석탑의 양식과 미감을 접목한 사례, 다시 말해 백제계 석탑의 前兆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23, 10세기 이후에 건립한 유사 양식 석탑과 비교할 경우 이러한 추정은 더욱 명료히 드러난다. 〈群山 鉢山里 五層石塔〉, 〈扶餘 無量寺五層石塔〉, 〈金堤 金山寺 五層石塔〉(982) 옥개석만 보아도 隅棟이나 추녀를 표현하거나 옥개 받침을 별석으로 마련하는 등 이미 신라 석탑 양식과 많은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Fig. 13, 14, 15).24 이에 비해 〈보원사 석탑〉 옥개석은 기존 신라 석탑 양식에 더욱 충실하므로 위의 세 석탑보다 선행함을 알 수 있다.

Fig. 13.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Late Unified Silla to Early Goryeo Period, Early 10th Century, Located in Balsan Elementary School, Gunsan-si, Jeollabuk-do, Treasure No. 276.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4.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Goryeo, Late 10th Century, Located in Muryangsa Temple, Buyeo-gun,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85.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5.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Goryeo, 982, Located in Geumsansa Temple, Gimje-si, Jeollabuk-do, Treasure No. 25. (Photograph by Kim, Dongwook)

〈보원사 석탑〉은 9세기 신라 석탑 양식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이후 대두할 세부 변화 또한 차츰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근거로 석탑의 건립 시기는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10세기 석탑에서 〈보원사 석탑〉만큼 古式을 충실하게 구현한 예가 드문 점을 염두에 둔다면 9세기 후반에 더욱 가깝다고 본다.

2. 석탑 봉안 사리장엄구의 편년

신앙의 대상이라는 석탑의 의미는 물론, 건립 시기를 가늠할 때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사리장엄구이다. 비록 兩者의 연대가 다른 경우도 있다지만, 석탑 건립과 重修 과정을 살피는 데 사리장엄구가 참고할 지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보원사 석탑〉에서도 비교적 온전한 모습의 사리장엄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25, 그간의 연구에서는 대체로 고려시대의 작례로 추정해왔다(Fig. 16).26, 하지만 통일신라로 연대를 올려볼 여지가 최근에 제기된 상황이라,27 석탑처럼 사리장엄구도 편년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 따라서 〈보원사 석탑〉 사리장엄구의 양식을 하나씩 검토함으로써 제작 시기를 도출한다면 봉안했던 석탑의 건립 시기를 추정하는 데도 참고할 수 있다.

Fig. 16.

사리장엄구 일괄, Sarira Reliquaries,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from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Buyeo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95-2398. (Photograph by Kim, Dongwook)

먼저 〈金銅方形外函〉(이하 〈보원사 외함〉)은 뚜껑 겉면에 꿇어앉은 승려에게 授記하는 보살의 모습을,28, 몸체 겉면에는 佛法의 핵심을 함축한 緣起法頌 20字를 새겼다 (Fig. 17).29 이처럼 작고 네모진 器形에 線彫 기법으로 문양을 낸 예는 〈靑陽 道林寺址 三層石塔〉과 〈平昌 月精寺 八角九層石塔〉의 사리장엄구처럼 주로 고려 전기에 남아있다. 하지만 〈보원사 외함〉에 새긴 문양과 글귀, 새김 수법만큼은 통일신라의 양식 특징이 다분하다.

Fig. 17.

<금동방형외함> 뚜껑(左)과 몸체(右) 겉면 문양 도면, Drawing of the Lid (left) and Body (right) Patterns on Gilt-bronze Square Case,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from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Buyeo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98. (Drawing by Lim, mookwon)

일례로 유려하게 표현한 보살의 모습은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白紙墨書 大方廣佛華嚴經』(754-755)의 변상도 등 8세기부터 유행한 보살과 비슷하고(Fig. 18),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金銅外函板〉(傳 863)에서 보듯 9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양식과 맞닿는다(Fig. 19). 雙鉤 기법으로 새긴 연기법송 역시 중요하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연기법송을 새긴 현전 사례의 조성 시기를 모두 통일신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30, 아울러 〈보원사 외함〉에 표현한 쌍구 기법은 높은 공예 기술은 물론 서예에 대한 충실한 이해까지 필요한데, 기년작이 모두 9세기에 집중한다.31 이상의 내용은 〈보원사 외함〉의 제작 시기를 추정할 때 참고할 중요한 기준이다.

Fig. 18.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세부, Detail of Illustration on Transcription of Avatamsaka Sutra, Unified Silla, 754-755, Leeum, Samsung Museum of Art, National Treasure No. 196. (Provided by Leeum, Samsung Museum of Art Website)

Fig. 19.

<금동외함판> 합장인면 세부, Detail of Bodhisattva Incised on Plaque of Gilt-bronze Case, Unified Silla, 863, from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Biroam Hermitage of Donghwasa Temple, Daegu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09. (Photograph by Kim, Dongwook)

〈金銅楕圓形內函〉(이하 〈보원사 내함〉)은 덩굴 문양 등으로 구획한 공간에 四天王과 花紋을 새겼고 여백은 魚子紋으로 빼곡하게 채웠는데, 분명 〈보원사 외함〉보다 세부표현은 뒤떨어진다(Fig. 20). 이러한 차이는 양자의 제작 시기나 제작지가 다르다고 추정하는 근거이기도 하다.32, 그럼에도 〈보원사 내함〉이 통일신라에서 유행한 기법을 구현한 점은 분명해 보인다. 테두리를 구획하며 마련한 안쪽 면에 尊像과 어자문을 장엄하는 방식을 <보원사 내함>이 계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자문의 경우 뚜렷하지 않고 겹친 부분도 있지만 주 문양의 테두리를 따라 새긴 특징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통일신라의 금속 공예품에 보이는 특징으로 이해하므로 연대를 추정할 때 중요하다.33, 아울러 사천왕이 寶塔, 劍, 長槍, 拂子처럼 다양하면서 중복되지 않은 지물을 소지한 점도 통일신라의 사천왕 사례와 다르지 않다.34

Fig. 20.

<금동타원형내함>, Gilt-bronze Oval Case,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5×3.5×1㎝, from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Buyeo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97. (Provided by Buyeo National Museum)

직접 사리를 담았을 〈綠琉璃甁〉은 재질과 색, 기형 면에서 통일신라의 사리병을 연상케 한다.35, 특히 〈奉化 西洞里 東 三層石塔〉에서 나온 〈녹유리병〉이 양식 면에서 보원사 〈녹유리병〉과 유사하므로 참고가 된다. 더불어 9세기 사리장엄구의 중요한 특징으로 蠟石으로 壺나 小塔을 제작한 점을 들 수 있다. 〈보원사 석탑〉에서 확인한 〈蠟石製 小塔〉 다수는 이 무렵의 전통이 고려까지 이어진 것으로 파악해왔다.36, 그러나 밑면에 구멍을 낸 양식 특징을 고려한다면 9세기의 작례로 보는 편이 더욱 자연스럽다.37

〈보원사 석탑〉에 봉안된 개개 용기가 처음부터 사리장엄구 일괄이었는지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지만, 제작 시기만큼은 모두 나말여초를 넘기 어렵다. 또한, 석탑의 건립 시기가 9세기 후반에 가깝다는 양식 추론을 생각한다면 사리장엄구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함께 봉안했다고 본다.

Ⅲ. 보원사 역사로 본 석탑의 건립 배경

1. 신라 말 보원사의 위상과 중창 가능성

보원사가 나말여초에 화엄 사상을 선도한 주요 사원[華嚴十山, 華嚴十刹] 가운데 하나였음은 孤雲 崔致遠(857-?)이 지은 「唐大薦福寺故寺主飜經大德法藏和尙傳」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38, 늦어도 9세기 전반부터 많은 이가 이곳 戒壇에서 구족계를 받은 점도 보원사의 중요한 내력이다.39, 신라에서는 州마다 특정 사원에만 계단을 마련했는데,40, 熊州를 대표하는 계단사원이 바로 보원사였다. 화엄십찰에서도 계단을 마련한 사원이 드물었음을 염두에 둔다면,41, 웅주는 물론 신라 불교계에서 보원사의 위상은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42

9세기부터 웅주 지역에서는 신라에 대한 반감이 움트고 있었다. 이곳은 822년에 金憲昌(?-822)이 주도한 반란에 가담했고,43, 이후에도 文聖王(재위 839-857)에게 불복할 만큼 민심이 사나웠다고 이를 정도였다.44, 그런데도 신라 조정에서는 웅주가 唐恩浦 등 서남해안의 요충지와 인접했기에 왕실과 밀접한 인사를 지방관으로 기용하는 등 일대의 지배권을 유지하려 노력했다.45, 나아가 지역 내 영향력을 유지하고 민심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불교를 주목했는데, 朗慧 無染(801-888)이 주석한 성주사를 왕실에서 후원한 일이 그 예다.46

신라 조정에서는 웅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으므로 지역 내 유력 사원에 대한 후원은 선종 산문인 성주사에만 국한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당시 불교계의 주도권은 여전히 화엄을 위시한 교종에 있었으며 왕실에서도 관련한 불사 후원을 꾸준하게 이어갔기 때문이다.47 자연히 王京에서도 일대의 화엄을 대표하며 계단까지 마련했던 보원사의 명성을 충분히 접하며 성주사 못지않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러한 추정에 동의한다면, 왕실을 비롯한 유력 가문이 檀越이 되어 보원사의 크고 작은 불사에 동참했을 여지도 떠올릴 수 있다.

한편 桐裏山門 출신의 廣慈 允多(864-945)가 9세기 후반 ‘가야산 새 절’에서 구족계를 받은 사실이 碑文에 남아있어 흥미롭다.48, 새 절이라고 말할 만큼 당시 보원사에서 대규모 확대중창이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49, 여러 禪僧이 보원사에서 수계를 받은 연대가 9세기 후반에 집중된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번성했을 보원사의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50, 참고로 같은 화엄십찰인 해인사도 창건 당시 규모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897년에 조정의 허락을 받아 이듬해까지 結界를 확장한 일이 있다.51 보원사도 해인사처럼 寺勢가 증대하며 사역을 확장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신라 말 화엄의 전당이자 많은 이가 왕래하는 受戒處로 부상했던 보원사에서는 그 寺格에 걸맞은 다양한 불사가 성행했을 것이다. 예경의 대상이자 가람의 중심에 위치했을 석탑도 새 절처럼 사역을 확장할 때 중요한 工役 대상이었다고 본다. 특히, 〈보원사 석탑〉처럼 거대하면서 면마다 다양한 부조를 세밀하게 표현한 석조물을 세우는 일은 상당한 공력과 기술을 요구한다. 현지 대중과 승단의 원력만으로는 석탑 건립에 쓰일 막대한 재화와 노동력을 충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앞서 추론한 왕실 등 주요 가문의 시주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유력한 王公貴族이 단월로서 석탑 건립에 힘을 보탰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규모 불사인 〈보원사 석탑〉의 건립을 추진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배경이기도 하다.

2. 고려 초 사역 주변 정세와 탄문의 주석

늦어도 10세기 전반부터 보원사 주변의 정세는 매우 혼란했다. 904년 公州의 장군 弘奇가 弓裔(?-918)에게 투항했으며,52, 918년에는 웅주와 運州 지역이 태봉을 대신한 고려를 배신하고 甄萱(867-936)의 진영에 가세하였다.53, 927년에는 고려가 운주를 수복했지만,54, 후백제가 다시 탈환하는 등 이 지역을 둘러싼 두 나라의 각축전은 한동안 이어졌다.55, 지난한 경쟁은 934년에 이르러서야 고려가 일대의 지배권을 확정하며 비로소 끝나게 된다.56 이러하듯 30여 년간 전란으로 어수선했을 지역 분위기를 보원사라고 외면하기는 어려웠다고 본다. 따라서 이 무렵에 석탑 건립처럼 규모 있는 불사를 추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보원사 내력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탄문의 주석을 들 수 있다. 지금도 사지에 남아있는 탄문의 승탑과 탑비는 물론, 이곳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鐵造如來坐像〉을 949년에 탄문의 원력으로 조성했다고 본 학계의 추론은 보원사와 탄문 사이의 관계를 더욱 강조한다.57, 나아가 탄문이 광종의 長壽와 聖化를 기원하고자 953년에 세운 石龕을 〈보원사 석탑〉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58, 실제로 보원사에서 탄문이 세 가지 번역본의 『화엄경』을 수년간 經行했고,59, 975년에 下山所로 삼아 입적하기까지 약 3개월간 주석했던 사실은 양자의 남다른 인연을 드러낸다.60

하지만 위의 두 일화 이외에 보원사와 탄문의 인연이 분명하게 드러난 다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앞서 살핀 광종을 위해 발원했다는 金像과 석감도 조성한 장소를 명시하지 않았기에 정황만으로 보원사의 유물과 결부하는 추정은 동의하기 어렵다. 한편, 均如 (923-973)의 입지가 부상하며 탄문이 중앙 교단에서 밀려났다는 추론도 있지만,61, 이것이 보원사에 탄문이 주석했다는 가정 자체를 증명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균여가 불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때는 953년 이후로,62 탄문이 금상과 석감을 조성한 때와 같거나 늦기까지 하다. 요컨대, 균여의 부상으로 開京에서 밀려난 탄문이 보원사로 移錫해 금상과 석감을 세웠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탄문은 오히려 이와 머지않을 때인 惠宗(재위 943-945)과 定宗(재위 945-949) 재위기에 九龍山寺에 주석했는데,63, 968년까지 이석한 기록은 없으므로 광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한동안 이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탄문과 광종 사이의 특별한 인연은 물론,64, 고려 왕실에서 구룡산사가 점유하는 남다른 의미를 함께 생각한다면 이러한 추정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65

보원사에 탄문이 머문 명확한 시기는 생애 초년으로 추정하는 몇 년과,66 입적 직전의 약 3개월로 정리할 수 있다. 초년은 보원사에서 직접 불사를 추진하기에 기반이 부족했을 것이며, 만년의 경우 대규모 불사를 주도하기에는 주석 기간이 너무나도 짧다. 보원사와 탄문의 인연이 각별했음은 분명하지만, 이를 유일한 매개로 여겨 현전 유물과의 연관을 예단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보원사는 탄문이 아니어도 이전부터 많은 후원과 불사가 이루어졌을 名刹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원사 석탑〉의 연대가 양식상 9세기 후반에 가깝다고 본 앞의 추론을 고려한다면, 953년에 탄문이 세운 석감과는 부합하기 어려우며 입적 직전인 975년에 건립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다.

Ⅳ. 맺음말

〈보원사 석탑〉의 건립 시기는 관련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므로 선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를 명시한 기록은 없어서 연대를 추정하는 주요 근거인 석탑의 양식과 건립 배경 등을 바라보는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이는 연구자마다 중점을 두고 해석하는 지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보원사 석탑〉의 양식과 함께 사리장엄구의 특징, 소재지인 보원사의 내력에 관한 그간의 쟁점을 하나씩 살펴봄으로써 건립 시기를 9세기 후반까지 비정할 수 있었다.

경주 일원에서 성립한 신라 석탑 양식은 늦어도 9세기 이후부터 석탑 건립이 전국으로 확산하며 지역별 여건에 따라 나름의 개성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옛 백제 강역에 속한 보원사는 그 문화유산과 미감, 습속이 산견했기에 신라 석탑 양식을 변용하는 데 더욱 유리했을 것이다. 그 결과 〈보원사 석탑〉은 신라 석탑 양식에 충실하면서도 백제 석탑을 연상할 만큼 옥개석 등에서 평박한 비례 변화를 접목할 수 있었다고 본다. 다가올 고려 석탑의 다양한 양식 일면을 예고한 〈보원사 석탑〉이 나말여초 石塔史에서 점유하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한편 사지를 발굴한 그간의 조사 결과는 석탑과 관련한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석탑과 금당 터가 있는 사역 일대를 발굴하면서 9세기는 물론 고려 전기로 추정하는 유구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른 시기의 보원사는 다른 곳에 있었고 조선 전기에 이르러 오늘날의 위치로 중심 사역을 옮겨 세웠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보원사 석탑〉 역시 지금의 자리가 원위치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67 하지만 이를 증명할 별도의 유구나 塔址는 확인하지 못했고, 석탑도 해체한 후 그 아래를 발굴한 것은 아니므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이를 보강하는 폭넓은 발굴조사와 석탑에 관한 논의를 함께한다면 나말여초 보원사의 실체는 물론, 관련 문화 양상 파악에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Notes

1)

李嚞煥, 『象山三昧』[이철환, 이대형 역, 『상산삼매–18세기 내포가야산 유람기–』(대한불교조계종 내포가야산보원사, 2017), p. 109.], “…其陰卽古大叢林普願之墟 普願者一曰講堂 舊以宏麗甲湖右 今獨有佛殿…”.

2)

주로 다음의 논고를 참조했다. 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文化財大觀 上』(韓國文化印刷株式會社, 1968), p. 368; 천득염, 『백제계석탑 연구』(전남대학교 출판부, 2000), pp. 100-101; 鄭永鎬, 「普願寺址 5層石塔의 考察」, 『百濟文化』 34(公州大學校 百濟文化硏究所, 2005), p. 53; 박경식, 『한국의 석탑』(학연문화사, 2008), p. 422; 陳政煥, 「高麗前期 佛敎石造美術 硏究」(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3), pp. 79-80; 신용철, 「軍威 持寶寺 三層石塔에 대한 考察」, 『東岳美術史學』 16(東岳美術史學會, 2014), pp. 65-70; 金成旭, 「10世紀 石塔 硏究」(단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4), pp. 66-70; 엄기표, 「고려시대 編年 石塔의 전개와 미술사적 의의」, 『普照思想』 49(普照思想硏究院, 2017), pp. 101, 109-110; 정병삼, 「고려초 탄문의 불교계 활동과 보원사」, 『史學硏究』 132(韓國史學會, 2018), pp. 336-338.

3)

천득염, 앞의 논문(2000), p. 101; 鄭永鎬, 앞의 논문(2005), pp. 52-53. 백제계 석탑은 백제 석탑을 모방하는 등 관련 영향이 농후한 고려 석탑의 양식 유형을 이른다. 이를 다양한 용어로 일컫지만, 이 글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백제계 석탑으로 지칭하였다. 다만, 전지혜는 〈보원사 석탑〉을 이러한 범주로 분류하면서도 건립 시기는 9세 기에 가깝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지혜, 「백제양식석탑에 관한 연구」(부경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9), p. 149.

4)

韓載沅, 「統一新羅 石塔浮彫 八部衆像 硏究」(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3), p. 70; 同著, 「統一新羅 石塔浮彫八部衆 圖像과 配置 硏究」, 『미술사연구』 20(미술사연구회, 2006), p. 223; 同著, 「한국 고대 신중상 연구」(홍익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8), pp. 179-182; 강희정, 「보원사지 오층석탑 사리함의 연기법송(緣起法頌)과 해상실 크로드」, 『미술사와 시각문화』 13(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2014), pp. 40-41; 水野さや, 「보원사지 오층석탑의 의의」, 『서산 보원사지 보물문화재 국보 승격을 위한 학술세미나 자료집』(서산시·내포가야산보원사·佛敎文化財硏究所, 2017a), pp. 42-46; 同著, 『八部衆像の成立と展開』(中央公論美術出版, 2017b), pp. 230-234.

5)

강희정, 「서산 보원사 사리기와 신라 하대의 해상 교류」, 『新羅史學報』 46(新羅史學會, 2019), pp. 162-163.

6)

나말여초는 연구자에 따라 설정하는 기간이 조금씩 다르다. 이 글에서는 석탑의 양식 변화가 가장 뚜렷하다고 생각하는 기년작을 기준으로 기간을 정했다. 〈長興 寶林寺 南·北 三層石塔〉(870)부터 〈安城 長命寺 五層石塔〉 (997) 사이인 약 130여 년의 기간이 바로 그렇다. 고려 기년작 석탑 목록은 엄기표, 앞의 논문(2017), p. 100, 표-1 참조.

7)

이중 기단의 양식 변화는 朴慶植, 「新羅 九世紀 石塔의 樣式에 關한 硏究」, 『考古美術』 173(韓國美術史學會, 1987), pp. 17-31; 同著, 앞의 책(2008), pp. 250-346; 申龍澈, 「統一新羅 石塔 硏究」(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6), pp. 162-175; 同著, 「統一新羅 二重基壇石塔의 樣式과 特徵」, 『東岳美術史學』 9(東岳美術史學會, 2008), pp. 214-223; 김지현, 「통일신라 典型樣式 석탑의 기단부 유형과 8세기 석탑의 편년 검토」, 『新羅文化』 45(東國大學校 新羅文化硏究所, 2015), pp. 213-217 참조.

8)

박경식, 앞의 책(2008), p. 446; 全敏淑, 「高麗前期 石塔 硏究」(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1), pp. 70-72; 洪大韓, 「高麗 石塔 硏究」(단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2), pp. 309-311; 신용철, 「신라 단층기단 석탑의 편년과 특징」, 『한국민족문화』 47(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3), pp. 145-146; 엄기표, 앞의 논문(2017), p. 108.

9)

전지혜, 「백제양식석탑의 양식과 건립연대에 관한 검토」, 『불교미술사학』 12(佛敎美術史學會, 2011), p. 114; 洪大韓, 앞의 논문(2012), p. 223; 엄기표, 앞의 논문(2017), p. 108.

10)

전지혜, 앞의 논문(2011), p. 115; 金成旭, 앞의 논문(2014), p. 67.

11)

Table 1의 석탑 수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상북도의 석탑Ⅳ』(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p. 16; 同著, 『전라남도의 석탑Ⅱ』(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pp. 23, 29; 同著, 『경상남도의 석탑Ⅱ』(국립문화재연구소, 2017), p. 228; 서산시,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정밀실측조사 보고서』(서산시, 2016), pp. 164, 223 의 방위별 실측 수치를 평균값으로 계산하였다.

12)

韓載沅, 앞의 논문(2003), p. 118; 신용철, 앞의 논문(2014), pp. 144, 154-155; 水野さや, 앞의 책(2017b), pp. 230-234.

13)

세 석탑은 東面 ‘龍-緊那羅’, 西面 ‘迦樓羅-阿修羅’, 南面 ‘乾達婆-夜叉’, 北面 ‘摩喉羅伽-天’을 짝지어 배치했다. 이는 〈진전사 석탑〉 등 다수의 석탑 팔부중상 배치와는 다르다. 韓載沅, 앞의 논문(2006), pp. 217-223; 신용철, 「新羅 八部衆 圖像 전개에 있어 雙塔의 역할」, 『정신문화연구』 33-1(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pp. 141-146.

14)

〈진전사 석탑〉의 건립 시기를 8세기 후반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鄭永鎬, 「襄陽 陳田寺址 遺蹟 調査–石塔과 浮屠의 復原을 契機로–」, 『歷史敎育』 11·12(歷史敎育硏究會, 1969), pp. 324-329; 水野さや, 앞의 책(2017b), pp. 211-214. 그러나 대부분은 건립 시기를 9세기 전반으로 추정한다. 蘇在龜, 「禪林院址 三層石塔의 조형적 특징과 의의」, 『講座 美術史』 18(韓國佛敎美術史學會·韓國美術史硏究所, 2002), p. 44; 申龍澈, 앞의 논문 (2006), pp. 172-175; 金志昡, 「新羅 石塔의 構造와 造營 硏究」(동아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3), pp. 203, 208-210; 한재원, 앞의 논문(2018), pp. 170-171 참조.

15)

〈보원사 석탑〉과 동일 계열 석탑 팔부중상의 세부 양식 비교는 지면 및 도판 매수의 제약으로 일부만 수록하였다. 자세한 비교는 金東昱, 앞의 논문(2019), pp. 64-89 참조.

16)

신용철 역시 〈보원사 석탑〉 사자상이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의 사자상보다 앞선 양식임을 지적했다. 다만 〈보원사 석탑〉의 건립 시기는 10세기 초중반으로 추정했다. 신용철, 앞의 논문(2014), p. 69.

17)

박경식, 『통일신라 석조미술 연구』(학연문화사, 1994), pp. 119-122; 洪大韓, 「高麗初 石塔의 塔身받침 造形特性에 관한 硏究–塔身받침의 起源과 變化를 중심으로–」, 『文化史學』 27(韓國文化史學會, 2007), pp. 614-615; 이순영 (이서현), 「新羅 石塔에서 別石 塔身받침의 形式과 特徵」, 『新羅史學報』 32(新羅史學會, 2014), pp. 413-414.

18)

10세기 전반에 탄문은 보원사에 있을 때 聖住院의 승려와 얽힌 神異를 증험하였다. 비록 이 내용이 두 사원의 교류를 증명하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당 원문은 이 글 각주 59 참조.

19)

高裕燮, 『朝鮮塔婆의 硏究 上』(悅話堂, 2010), pp. 311-312; 洪大韓, 앞의 논문(2007), p. 618.

20)

천득염, 앞의 책(2000), p. 101; 鄭永鎬, 앞의 논문(2005), pp. 52-53.

21)

陳政煥, 앞의 논문(2013), p. 79; 金成旭, 앞의 논문(2014), p. 68; 전지혜, 앞의 논문(2019), p. 147.

22)

〈南原 實相寺 百丈庵 三層石塔〉 옥개석 양식이 백제 석탑에서 영향을 받았을 여지를 제시한 박경식의 견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朴慶植, 「百濟系石塔의 建立 背景에 關한 考察」, 『文化史學』 24(韓國文化史學會, 2005), p. 70, 각주 42 참조. 또한, 백제 석탑 양식 전개의 공백기를 메우는 과정과 이를 증명하는 석탑 사례를 다수 제시한 연구도 있다. 전지혜, 앞의 논문(2019), pp. 73, 194-197.

23)

백제계 석탑 양식을 가장 먼저 구현한 사례로 〈보원사 석탑〉을 주목한 견해 역시 이러한 인식과 다르지 않다. 鄭永鎬, 앞의 논문(2005), p. 54.

24)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과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의 건립 시기는 陳政煥, 「後百濟 佛敎美術의 特徵과 性格」, 『東岳美術史學』 11(東岳美術史學會, 2010), pp. 168-169; 전민숙, 「무량사 오층석탑의 구조분석과 원형(原形) 추정」, 『불교미술사학』 24(佛敎美術史學會, 2017), pp. 114-115, 124-128 참조.

25)

당시 석탑에서 수습한 사리장엄구는 〈金銅方形外函〉, 〈金銅楕圓形內函〉, 〈綠琉璃甁〉 각 1점과, 〈蠟石製 小塔〉 12기 등이다. 國立博物館, 「考古美術 뉴스」, 『美術資料』 12(國立博物館, 1968), p. 40.

26)

秦弘燮, 「高麗時代의 舍利莊嚴具」, 『考古美術』 180(韓國美術史學會, 1988), pp. 75-76; 姜友邦, 「佛舍利莊嚴論–佛經·佛塔·佛像의 相關關係–」, 『佛舍利莊嚴』(國立中央博物館, 1991), p. 178; 전경미, 「사리장엄구를 통해서 본 고려 금속공예」, 『文化財』 26(文化財硏究所, 1993), p. 3; 申明熙, 「高麗時代 舍利莊嚴具 硏究」, 『東岳美術史學』 5 (東岳美術史學會, 2004), p. 60; 임지윤, 「고려시대 魚子文 금속공예품 연구」, 『美術史學硏究』 271·272(한국미술사학회, 2011), pp. 18-19; 국립부여박물관, 『개태사, 태평성대 고려를 열다』(국립부여박물관, 2018), p. 132 참조.

27)

강희정, 앞의 논문(2014), p. 41; 同著, 앞의 논문(2019), pp. 158-161.

28)

이 장면을 『三國遺事』의 慈藏定律條를 근거로 문수보살이 慈藏(590-658)에게 梵偈를 주는 장면으로 해석한 의견이 있다. 얀 폰테인, 趙容重 譯, 「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에서 發見된 舍利盒」, 『美術資料』 47(國立中央博物館, 1991), p. 98. 강희정은 해당 도상이 『佛說隨求卽得大自在陀羅尼神呪經』에 의거한 중국의 진언 護符 도상과 유사하고, 『불설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신주경』과 賢首 法藏(643-712)과의 연관을 崔致遠(857-?)이 찬술했으며, 최치원이 서산 일대와 연관이 있던 사실이 모두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강희정, 앞의 논문(2019), p. 161.

29)

내용은 “諸法徔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이며, 義淨(635-713)의 漢譯을 따랐다. 강희정, 앞의 논문(2014), pp. 41-42.

30)

〈보원사 외함〉 이외에 연기법송 글귀를 새긴 사례는 慶州 錫杖寺址 출토 <塔像紋塼> 8점, 그리고 慶州 皇龍寺址에서 발견했다고 전하는 <銀板> 2점만이 전한다. 해당 유물의 현황과 제작 시기는 김지현, 「慶州 錫杖寺址塼佛 硏究」, 『美術史學硏究』 266(한국미술사학회, 2010), pp. 50-52; 周炅美, 「韓國 佛舍利莊嚴에 있어서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意義」, 『불교미술사학』 2(통도사성보박물관 불교미술사학회, 2004), p. 173; 한정호, 「황룡사구층탑 창건기 사리장엄구와 경문왕대의 공정」, 『불교미술사학』 28(佛敎美術史學會, 2019), pp. 667-671 참조.

31)

리송재, 「〈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의 서체와 서예사적 의의」, 『정밀 학술 조사보고서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p. 177; 안귀숙, 「〈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 秘藏과 出現의 神異–금속공예사적 意義를 중심으로– 」, 『정밀 학술 조사보고서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pp. 150-156.

32)

강희정은 〈보원사 석탑〉에 봉안한 사리장엄구 일괄이 처음부터 사리장엄을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며, 이전에 있던 사리기와 다른 용도의 전세품 등을 수습해 다시 납입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강희정, 앞의 논문 (2019), p. 160.

33)

周炅美, 「新羅 舍利莊嚴方式의 형성과 변천」, 『新羅文化』 43(東國大學校 新羅文化硏究所, 2014), pp. 198-199.

34)

통일신라 사천왕상의 다양한 지물 사례는 權江美, 「統一新羅 四天王像 硏究」, 『文物硏究』 7(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2003), pp. 61-65; 송우솔, 「統一新羅 四天王 浮彫 石塔 硏究」(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9), pp. 51-52 참조.

35)

통일신라 사리병 현황은 金玟宋, 「統一新羅 8–9世紀 舍利莊嚴具 硏究」(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8), pp. 59-65 참조.

36)

한정호, 「통일신라시대 蠟石製舍利壺의 발생과 전개에 대한 고찰」, 『古文化』 77(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11), p. 63.

37)

통일신라 납석제 소탑의 특징은 문상련(정각), 「納塔經典의 시대적 變遷考」, 『佛敎學報』 62(東國大學校 佛敎文化硏究院, 2012), pp. 353-354; 김영옥, 「통일신라기의 쌍탑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조탑 영향 연구」(경주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4), p. 154 참조.

38)

崔致遠, 「唐大薦福寺故寺主飜經大德法藏和尙傳」(T.50, n.2054, p.0284c17.), “…海東華嚴大學之所 有十山焉…熊州迦耶峽普願寺…此十餘所…”.

39)

韓基汶, 「新羅末·高麗初의 戒壇寺院과 그 機能」, 『역사교육연구』 12(한국역사교육학회, 1988), pp. 51-52; 정병삼, 앞의 논문(2018), pp. 334-335 등 참조.

40)

한기문, 앞의 논문(1988), p. 53; 여성구, 「신라승의 수계와 승적」, 『新羅史學報』 31(新羅史學會, 2014), p. 65.

41)

화엄십찰에서 계단을 설치한 곳은 보원사 이외에 華嚴寺가 있고, 眞空 忠湛(869-940)이 수계를 받은 靈神寺를 國神寺로 보더라도 3곳이 전부다. 정병삼, 앞의 논문(2018), p. 335.

42)

官壇을 운영하며 교계의 운영과 통제를 담당한 웅주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로 보원사를 주목한 견해도 있다. 張日圭, 「신라 하대 서남해 지역 禪僧과 후백제」, 『韓國古代史硏究』 74(한국고대사학회, 2014), p. 120.

43)

『三國史記』 卷10, 新羅本紀 憲德王 14年 春3月(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sg_010_0050_0540.), “…三月 熊川州都督憲昌 以父周元不得爲王反叛…”.

44)

「崇巖山聖住寺事蹟」[黃壽永, 「崇巖山聖住寺事蹟」, 『考古美術』 9-9(韓國美術史學會, 1968), p. 450.], “…文聖大王頻降神筆曰 熊州是海隅邊塞 人性凶傲 朕篤畏不服…”.

45)

890년대 중반까지 당은포 주변 지역에 신라 왕실의 지배가 강화되었다는 추론도 있다. 그 예로 웅주의 경우 최치원과 金峻이 富城郡과 橻城郡 태수를 역임한 사실을 들었다. 張日圭, 「나말여초 서해 항로와 평택」, 『新羅史學報』 34(新羅史學會, 2015b), pp. 98-100.

46)

문성왕은 무염이 성주사에 머물며 일대를 교화함으로써 王化에 도움을 주었다고 치하했는데, 당시 왕실에서 지방에 주석한 승려에게 바라는 기대 효과를 잘 드러낸다. 崔致遠, 「聖住寺 朗慧和尙塔碑文」[許興植 編著, 『韓國金石全文 古代』(亞細亞文化社, 1984a), p. 217], “…文聖大王 聆其運爲 莫非裨王化 甚㤎之 飛手敎 優勞且多…”, 또한 眞聖王(재위 887-897)은 무염이 입적하자 최치원에게 비문 찬술을 하명하는데, 무염과 신라 왕실의 결연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이해한다. 張日圭, 「신라 말 서해 항로와 崔致遠의 지방관 활동」, 『韓國古代史探究』 19(韓國古代史探究學會, 2015a), pp. 33-34.

47)

景文王(재위 861-875)이 주도한 崇福寺 중창과 황룡사 목탑 중수가 대표적이다. 또한, 886년 定康王(재위 886-887)이 후원하고 賢俊이 주관한 『화엄경』 사경 모임도 화엄을 내세우고자 한 의도로 파악한다. 정병삼, 「9세기 신라 화엄의 추이」, 『佛敎學報』 69(東國大學校 佛敎文化硏究院, 2014), pp. 137-140.

48)

孫紹, 「大安寺 廣慈大師塔碑文」[許興植 編著, 『韓國金石全文 中世上』(亞細亞文化社, 1984b), p. 353.], “…伽耶岬新藪 受具後…”, 윤다가 구족계를 받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출가한 때가 871년임을 염두에 둔다면 9세기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49)

정병삼은 이러한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827년 普照 體澄(804-880)이 수계한 관단이 이미 보원사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사원의 확대 중창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고 언급하였다. 정병삼, 앞의 논문(2018), p. 334. 하지만 중창은 계단 설치와 별개로 사세 변화에 따라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고 본다.

50)

앞서 살핀 윤다를 제외하면 체징은 827년, 眞空 □雲(855-937)은 874년, 眞澈 利嚴(870-936)은 888년, 法鏡 玄暉 (879-941)는 898년에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해당 원문은 金東昱, 앞의 논문(2019), p. 8, <표 1> 참조.

51)

崔致遠, 「新羅伽倻山海印寺結界場記」, 『孤雲集』 卷1(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P_0002A_0040_060_0010_2017_001_XML.), “…賲興三於勝墍 年僅百於和居 而顧結界嶔崟權輿齷齪 議諧改作 律許開張 遂於乾寧四載之秋 宴坐九旬之杪 爰謀拓土 竚俟布金…”.

52)

『三國史記』 卷50, 列傳 弓裔(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sg_050_0020_0350.), “…公州将軍弘竒 來降…”.

53)

『高麗史』 卷1, 世家 太祖 元年 8月(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kr_001_0020_0030_0070.), “…癸亥 以熊運等十餘州縣 叛附百濟…”.

54)

『高麗史』 卷1, 世家 太祖 10年 3月(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kr_001_0110_0020_0020.), “…辛酉 王入運州 敗其城主兢俊於城下…”.

55)

김갑동, 「고려초기 홍성지역의 동향과 지역세력」, 『史學硏究』 74(韓國史學會, 2004), pp. 146-148.

56)

『三國史記』 卷50, 列傳 甄萱(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sg_050_0030_0380.), “…清泰元年春正月 萱聞太祖屯渾州 遂簡甲士五千至 將軍黔弼 及其未陣 以勁騎數千突擊之 斬獲三千餘級…”.

57)

이 〈철조여래좌상〉(본관 5191)을 949년에 즉위한 광종을 위해 탄문이 발원한 석가삼존의 金像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많다. 姜友邦, 「統一新羅鐵佛과 高麗鐵佛의 編年試論–忠南 瑞山郡 雲山面의 鐵佛坐像과 雲山面 普願寺址 丈六鐵佛坐像을 中心으로–」, 『美術資料』 41(國立中央博物館, 1988), pp. 26-29; 김혜완, 「普願寺鐵佛의 조상–고려 초 原州鐵佛과 관련하여–」, 『史林』 14(首善史學會, 2000), pp. 22-23; 정병삼, 앞의 논문(2018), pp. 336-338; 하정민, 「충주지역 고려 초기 철불과 그 의의」, 『인문과학연구논총』 40-2(명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9), pp. 319-327 등 참조.

58)

金廷彦, 「普願寺 法印國師塔碑文」[許興植 編著, 앞의 책(1984b), pp. 414-415.], “…光宗御宇四年春 大師得佛舍利三粒 以瑠璃甖盛 安置法宇…補天練石之龕 所以延帝齡扶聖化也…”. 이를 〈보원사 석탑〉으로 추정한 의견은 陳政煥, 앞의 논문(2013), pp. 79-80; 정병삼, 앞의 논문(2018), pp. 336-338 참조.

59)

金廷彦, 「普願寺 法印國師塔碑文」[許興植 編著, 앞의 책(1984b), p. 416.], “…大師乃言之 昔吾在普願寺 奉持三本華嚴經 每以中夜 經行像殿 不絶數年 忽一夜 三寶前 有一僧 問曰 僧來奚自 乃曰 聖住院住持五百僧 隨緣赴感 經過此地 遣僧起居 乃往三寶 洗脚訖 向吾房而去…”.

60)

金廷彦, 「普願寺 法印國師塔碑文」(위의 책, pp. 416-418.), “…開寶八年春正月 大師以適當衰皃 請歸故山…行至迦耶山寺 其僧徒等 如迎佛具仙樂…開寶八年 龍集乙亥春三月十九日 大師將化往 盥浴訖 房前命衆 迺遺訓曰… 言畢入房 儼然跌坐 示滅于當寺法堂 俗年七十六 僧盥六十一…”.

61)

최연식, 「均如 華嚴思想硏究–敎判論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8), pp. 54-60; 정병삼, 앞의 논문(2018), p. 332.

62)

최연식, 앞의 논문(1998), pp. 43-44.

63)

金廷彦, 「普願寺 法印國師塔碑文」[許興植 編著, 앞의 책(1984b), p. 414.], “…惠宗嗣位…永締芳緣 附大師 送納於九龍山寺…定宗踐阼 遂於九龍山寺 置譚筵 大師爲法主…”.

64)

탄문은 926년에 太祖(재위 918-943)의 청으로 神明王后 劉氏의 순산을 기도했는데, 이때 탄생한 이가 광종이다. 이를 통해 두 인물이 서로 특별한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金廷彦, 「普願寺 法印國師塔碑文」(위의 책, p. 413.), “…同光紀㦄 丙戌司年冬十月 太祖以劉王后 因有娠得殊夢…遂請大師 祈法力 於是 香金鑪 經開玉軸願維熊之吉夢 叶如羍之誕生…有以見端居鶴禁 嗣守鴻圖 是大成王也…”.

65)

구룡산사는 開京 扶蘇山에 있었으며 태조의 5대조인 國祖聖骨將軍 虎景의 사당을 설치해 고려 왕실의 근간을 추모하던 곳으로 추정한다. 金龍善, 「光宗의 改革과 歸法寺」, 『高麗光宗硏究』(一潮閣, 1981), p. 107; 김혜완, 앞의 논문(2000), p. 19; 정병삼, 앞의 논문(2018), p. 322.

66)

탄문이 보원사에서 『화엄경』을 익힌 정확한 연대는 남아있지 않지만 太大德 神郞에게 3本 『화엄경』을 청해 듣던 934년과 가깝다고 짐작한다. 金廷彦, 「普願寺 法印國師塔碑文」[許興植 編著, 앞의 책(1984b), p. 414.], “…淸泰初 聞西伯山 神朗太大德 纂覺賢之餘烈 演方廣之秘宗…大師 遂往西伯 聽雜華三本…”.

67)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瑞山 普願寺址Ⅰ』(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0), p. 474; 同著, 『瑞山 普願寺址Ⅱ』(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2), p. 533. 현 위치에 지금처럼 사역을 갖춘 것은 조선 明宗(재위 1546-1567) 때 文定王后 尹氏(1501-1565)의 각별한 후원에 힘입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金東昱, 앞의 논문(2019), pp.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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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Fiv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H. 8.5m, Located in Bowonsa Temple Site, Seosan-si,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04.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2.

<보원사 석탑> 아수라(左)와 긴나라(右) 세부, Details of Asura (left) and Kinnara (right) Reliefs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3.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아수라(左)와 긴나라(右) 세부, Details of Asura (left) and Kinnara (right) Reliefs on Thre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Early 9th Century, Located in Jinjeonsa Temple Site, Yangyang-gun, Gangwon-do, National Treasure No. 122.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4.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 아수라(左)와 긴나라(右) 세부, Details of Asura (left) and Kinnara (right) Reliefs on Three-story Stone Pagoda, Goryeo, Early 10th Century, Located in Jibosa Temple, Gunwi-gun, Gyeongsangbuk-do, Treasure No. 682.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5.

<보원사 석탑> 사자 세부, Detail of Lion Relief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6.

<홍천 물걸리사지 석조대좌편> 사자 세부, Detail of Lion Relief on Stone Pedestal, Unified Silla, 9th Century, Located in Mulgeol-ri Temple Site, Hongcheon-gun, Gangwon-do.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7.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사자 세부, Detail of Lion Relief on Stupa of National Preceptor Beopin at Bowonsa Temple Site, Goryeo, 975, Located in Bowonsa Temple Site, Seosan-si,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05.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8.

<보원사 석탑> 탑신 받침석 세부, Detail of Underpinning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9.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탑신 받침석 세부, Detail of Underpinning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Located in Seongjusa Temple Site, Boryeong-si,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9.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0.

<지보사 석탑> 탑신 받침석 세부, Detail of Underpinning Stone on Three-story Stone Pagoda at Jibosa Templ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1.

<보원사 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2.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Three-story Stone Pagoda, Unified Silla, 9th Century, Located in Hwacheon-ri, Yeongyang-eup, Yeongyang-gun, Gyeongsangbuk-do, Treasure No. 609.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3.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Late Unified Silla to Early Goryeo Period, Early 10th Century, Located in Balsan Elementary School, Gunsan-si, Jeollabuk-do, Treasure No. 276.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4.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Goryeo, Late 10th Century, Located in Muryangsa Temple, Buyeo-gun, Chungcheongnam-do, Treasure No. 185.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5.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옥개석 세부, Detail of Roof Stone on Five-story Stone Pagoda, Goryeo, 982, Located in Geumsansa Temple, Gimje-si, Jeollabuk-do, Treasure No. 25.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6.

사리장엄구 일괄, Sarira Reliquaries,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from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Buyeo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95-2398.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17.

<금동방형외함> 뚜껑(左)과 몸체(右) 겉면 문양 도면, Drawing of the Lid (left) and Body (right) Patterns on Gilt-bronze Square Case,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from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Buyeo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98. (Drawing by Lim, mookwon)

Fig. 18.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세부, Detail of Illustration on Transcription of Avatamsaka Sutra, Unified Silla, 754-755, Leeum, Samsung Museum of Art, National Treasure No. 196. (Provided by Leeum, Samsung Museum of Art Website)

Fig. 19.

<금동외함판> 합장인면 세부, Detail of Bodhisattva Incised on Plaque of Gilt-bronze Case, Unified Silla, 863, from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Biroam Hermitage of Donghwasa Temple, Daegu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09. (Photograph by Kim, Dongwook)

Fig. 20.

<금동타원형내함>, Gilt-bronze Oval Case, Unified Silla, Late 9th Century, 5×3.5×1㎝, from the Five-story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Buyeo National Museum,, Accession No. ssu 2397. (Provided by Buyeo National Museum)

<Table 1>

9세기 후반 기년작 석탑과의 상층 기단 갑석 실측 수치 비교 Numerical comparison of Gapseok (甲石, a flat stone covering the stylobate) in upper stylobate of stone pagodas in the late 9th century

Stone Pagoda at Biroam Hermitage of Donghwasa Temple (863) South Stone Pagoda at Borimsa Temple (870) North Stone Pagoda at Borimsa Temple (870) Gilsangtap Stone Pagoda at Haeinsa Temple (895) Stone Pagoda at Bowonsa Temple Site
Average height (cm) Gapseok 14.1 16.6 13.3 13.5 24.0
Prop part of base side 5.8 3.9 3.0 3.8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