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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Art Hist > Volume 307; 2020 > Article
佛日 普照國師 甘露塔의 조성 시기와 양식적 기원

Abstract

普照國師 知訥(1158-1210)은 1210년에 입적하였고 문도들에 의해 다비 후 修禪社(현 松廣寺) 북쪽에 감로탑이 세워졌다. 이 탑은 방형기단의 球形 탑신으로 탑신 받침부터 도드라지는 선으로 여덟모가 표현되어 상륜부까지 정밀하게 이어져 있다.
이 탑은 12-13세기 조성의 부도들과 동일 경내에 대를 이어 조성된 13-14세기 부도들과의 양식적 비교를 통하여 1210년경 양식임을 알 수 있었으며 방형 기단은 하부의 방형 매장 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에서 球形 탑신 불탑의 출현 시점은 크게 두 차례다. 첫째는 8세기 不空의 밀교 경전 전래와 번역이 이루어진 당 중기 시대 이후부터 그 영향 아래 『寶篋印陀羅尼經』 변상도가 조성된 10세기 오월국 시대까지이며 둘째는 많은 인도 승려들과 함께 다량의 밀교 경전들이 새롭게 도래하여 번역된 송나라 초기이다.
이 시기 당나라 8세기 말의 南陽 慧忠國師 無縫塔, 오월국의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에 표현된 과거불의 전신사리탑, 『華嚴經』 「입법계품」 도상 속 비슬지라 거사의 栴檀座 불탑, 오월국 시기부터 북송대의 과거칠불탑과 사리구들이 조성되었다.
한국에서도 10세기 중엽에 조성된 충주 정토사 法鏡大師(879-941년)의 탑과 영월 흥녕사 澄曉大師折中(826-900년)의 塔, 11세기 초 법경대사의 제자인 정토사 弘法國師塔(1017년 탑 건립), 13세기 초 보조국사 감로탑이 조성되며 이어 여말선초 회암사 指空(?-1363), 懶翁(1320-1376년), 無學(1327-1405년) 선사들의 탑에서 다시 등장한다.
특히 보조국사 감로탑은 『寶篋印陀羅尼經』 변상도, 『華嚴經』 「입법계품」 도상, 북송 대 과거칠불탑, 불탑, 사리구 등의 중국 10-12세기 구형 불탑 양식과 형태적, 불교적, 역사적으로 깊은 관련이 확인되며 이는 문종과 대각국사 의천으로 인해 야기된 불교문화 교류의 양상이 알려진 것보다 그 영향력이 폭넓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 중국, 일본, 한국의 『寶篋印陀羅尼經』, 중국의 과거칠불탑과 사리구의 구형탑은 과거불의 전신탑으로 불성을 상징하지만 『華嚴經』 「입법계품」 도상의 전단좌 불탑에 이르면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 심지어 성문, 독각, 보살들의 영원히 상주하는 해탈 모습으로 범위가 확장되며 그 의미도 불성과 보살의 가피, 행을 상징하게 된다.
따라서 보조국사 감로탑은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一切衆生悉有佛性’의 믿음 아래 부처가 되는 길, 그를 통해 불교적 이상사회를 지향하고자 했던 보조국사와 그의 문도들의 대 사회적 계몽 운동의 실체를 전해 준다.

Abstract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 Jinul(普照國師 知訥, 1158-1210) entered nirvana in 1210, and his stupa named Gamro(甘露塔) was built on the north side of Suseon Association of faith(修禪社, Songgwangsa Temple nowadays) after the body was cremated by his disciples. The stupa is a sphere shaped stupa with a square base, and it forms octagonal structure with the eight lines raised from the base of body up to the decorative part of the top.
From the stylistic comparison with the stupas built during the 12th and 13th centuries and stupas of the 13th and 14th centuries constructed at the same temple ground, the style of the Gamro stupa can be determined as that of circa 1210. The square base of the stupa considered to be related with the burial facilities underground.
In China, the sphere shaped monk stupa began to appear from the mid Tang period when Buddhist esoteric scriptures were transmitted and translated by the Bukong(不空) in the eighth century, to the tenth century when the illustration of Precious Casket Seal Dharani Sutra(寶篋印陀羅尼經) was created in the Wuyue kingdom under the influence of Bukong. The sphere shaped stupa again appeared during the early Northern Song period when large numbers of esoteric scriptures were newly introduced and translated by many Indian monks.
During the above mentioned period, many sphere shaped stupas appeared in China. They include the Seamless Stupa(無縫塔) for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Nanyang Huizhong(?-775), the true body stupa of the past Buddha expressed in the illustration of Precious Casket Seal Dharani Sutra(寶篋印陀羅尼經), stupa with sandal wood Pedestal expressed in the iconography of Biseuljira Grhapati in the ‘Gandavyuha’ Avatamsaka Sutra created in the Wuyue kingdom, the stupa of Seven Past Buddhas, Sarira reliquaries datable to the period of Wuyue kingdom(吳越國) and Northern Song.
The sphere shaped stupas constructed in Korea are as follows: the stupas of Priest Beopgyeong(法鏡大師, 879-941) at Jeongto Temple(淨土寺) in Chungju(忠州), the Priest Jinghyo Jeoljung(澄曉大師 折中, 826-900) at Heungnyeong Temple(興寧寺) in Yeongwol both built in the middle of the tenth century,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Hongbeop(弘法國師) stupa of 1017, Gamro stupa(甘露塔) of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普照國師) constructed in the early 13th century, stupas of Priest Jigong(指空, ?-1363), Priest Naong(懶翁, 1320-1376), and Priest Muhak(無學, 1327-1405) from the late Goryeo to the early Joseon period.
The Gamro stupa(甘露塔) of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普照國師) demonstrates strong historical, canonical, morphological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sphere shaped stupa style of the 10th-12th century shown in the true body stupa of the past Buddha expressed in the illustration of Precious Casket Seal Dharani Sutra(寶篋印陀羅尼經) created in the Wuyue kingdom, stupa with sandal wood Pedestal expressed in the iconography of Biseuljira Grhapati in the ‘Gandavyuha’ Avatamsaka Sutra, and the stupa of Seven Past Buddhas and Sarira reliquaries. This indicates that influence of Buddhist cultural exchanges initiated by King Munjong(文宗) and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Daegak(大覺國師) Uicheon(義天) was much greater than previously known.
The Precious Casket Seal Dharani Sutra(寶篋印陀羅尼經) of China, Korea, and Japan, and Chinese Stupa of Seven past Buddhas and Sarira Casket symbolized Buddhadhatu(佛性) as the true body stupa of the past Buddhas. However, the stupa with sandal wood Pedestal expressed in the iconography of Biseuljira Grhapati in the Gandavyuha, the Avatamsaka Sutra symbolize the Buddhas of all directions and time, the Shravakas(聲聞), the pratyekabuddjass(獨覺) and the Bodhisattvas(菩薩), appear as the one who renounce enlightenment, and they imply Buddhadhatu(佛性), benevolence, and deeds of Buddhas and Bodhisattvas.
Therefore, the Gamro Stupa of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普照國師甘露塔) conveys the meaning of social enlightenment movement aiming at Buddhist ideal society, led by him and his followers in the belief that everyone could become a Buddha.

Ⅰ. 서론

普照國師 知訥(1158-1210)은 한국 불교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선승이다. 보조국사 탑 비문에 의하면 그는 1210년 입적한 후 문도들이 7일간 공양을 올리고 다비하여 현 송광사인 修禪社1 북쪽에 모셨다고 하며2 지금의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이 이것이라 전한다. 감로탑은 건립된 후에 조계산 경내에서 수차례 이전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26년 원 위치에 다시 모셔져 있던 탑을 열어 기단부 부재 일부를 보완하여 재 건립하고 예배에 편리하게 주변을 정리한 것이다.3
감로탑은 8각이 도드라진 윤곽선으로 표현된 球形 탑신과 일반적인 가구식, 혹은 수미좌 형태를 벗어난 독특한 기단으로 조성되었다. 이는 보조국사 입적 직후인 1210년경의 일반적인 부도 모습과는 다르다. 또한 1926년 재건하면서 탑 안에 모셔진 옛 사리기가 분청사기로 알려지면서4 일찍부터 조선 초에 후대 양식으로 다시 건립된 탑일 것이라 여겨져 왔다.
불탑과 부도의 사리구는 재 봉납이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편년 자료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감로탑 양식과 비교할 수 있는 고려 중기의 편년 부도가 없으며 보다 큰 이유는 여러 차례 이전 사실에서 유구의 손상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일반론이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더불어 보조국사 이후의 역대 수선사 국사들의 탑 양식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조성, 계승되고 있다는 점도5 이러한 생각에 힘을 더해 준다.
이로 인해 보조국사 탑에 관한 개별 연구는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2000년대 들어 개설적인 연구서에서부터 언급되기 시작하였는데 순천시의 불교문화유적의 하나로 다루어지면서 후대 건립으로 추정되거나6 신라와 고려시대의 석조부도에 관한 연구서에서 ‘현 위치가 탑비에 의해 언급된 방향과 일치하여 원 위치이며 여러 차례 옮겨지면서 일부 후대의 보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러한 8각형 구형 탑신이 이미 11세기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에서 보이므로 이를 계승한 것’이라고 하면서 현 모습이 원형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서술하였다.7
이어 감로탑을 포함한 송광사 부도들을 주제로 한 논문인 「고려후기 송광사 출신 16국사의 석조부도 연구」가 발표되었으며 보조국사 탑의 양식, 이전 상황, 1926년의 해체 복원 상황, 보조국사 생애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 탑은 1926년 보강된 것 외의 부재들이 원래의 양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수 시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 부재를 첨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원래의 모습과 양식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 하였다.8
「송광사 보조국사감로탑의 조성 연대와 의미」라는 학술 발표에 이르면 보조국사 탑을 개별 주제로 독립시켜 다루면서 학계에서 조성 시기를 12, 13세기로 특정하고 있는 승탑들, 송광사 경내 후대 계승자들 탑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보조국사 탑이 1210년경의 양식으로 가능하며 비교 자료로 인도 팔라 왕조의 봉헌판 속의 불탑과 북송대 과거칠불탑의 예를 제시하였다.9 그러나 감로탑 형태의 기원에 관해 자료 제시가 단편적이어서 조성 연대에 관한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하였다.
일찍부터 학계의 구형 부도에 관한 연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지공, 나옹, 무학선사 탑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 중기까지의 편년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10 이 형식의 시원에 관하여는 조봉진은 절강성과 천태산 지역의 과거칠불탑, 산동성 영암사의 부도군에서 유사한 모습을 찾아내어 이러한 양식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이들의 조성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지만 적어도 고려 말, 원나라의 관련 지역을 방문했던 승려들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추정하였다.11 전미숙은 이외에 14세기 법화경 등의 경전 변상도에 보이는 불탑과의 관련성을 추가하고 있는데12 이들의 견해는 자료가 부족했던 시기에 이루었던 주요한 성과였다.
결국 11세기 정토사 홍법국사탑의 양식적 영향을 언급하기에는 같은 구형 탑이라도 팔각원당형인 홍법국사탑과는 느낌이 다르고 조성 시기의 차이도 크며 고려 말 조선 초와 연결하기에는 후대의 사례이니 12세기의 국내외의 예가 논리적으로 제시되기 전에는 보조국사 탑은 정황상 고려 말 조선 초 조성으로 보는 기존의 견해가 더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이어진 「절강성 지역의 과거칠불탑」 발표는 중국 절강성 지역에 1033년 북송시대에 조성된 감로탑과 유사한 과거칠불탑이 이미 오대부터 시작되어 많은 조성 예를 남기고 있음을 조명해 감로탑과의 영향을 다루었다.13 가장 최근에는 「순천 松廣寺 普照國師 甘露塔과 甘露塔碑에 대한 고찰」에서 ‘치석수법과 양식, 1926년의 해체 보수 이전의 사진 자료 등을 근거로 기단 하부 1단을 제외하면 1210년 3월 27일 보조국사 입적 직후 조성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14
현재 구형탑이나 칠불탑과 관련된 한국과 중국 측의 진전된 연구 자료는 이전에 비해 많이 축적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관련 사항들을 다시 검토해 보면 이러한 양식이 훨씬 이전 시기부터 찾아지며 주류를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 유례도 다양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8각형 구형 탑신의 예인 10세기 중엽에 조성된 충주 정토사 法鏡大師(879-941년)와15 영월 흥녕사 澄曉大師 折中(826-900년)의 塔을16 시작으로 11세기 초 법경대사의 제자인 정토사 弘法國師(1017년 탑 건립), 13세기 초 보조국사 감로탑으로 이어지고 여말선초에 조성되는 회암사 指空(?-1363), 懶翁(1320-1376년), 無學(1327-1405년) 선사들의 탑까지 일련의 연관성이 있음도 밝혀지게 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먼저 감로탑의 양식을 검토하고 국내외 구형 탑들의 일련의 관계 속에서 조성 배경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12-13세기 부도들을 재검토하여 이들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감로탑의 양식편년을 시도하려 하며 확인된 조성 시기를 배경으로 구형 탑신에 보이는 사상적, 미술사적 배경과 그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이러한 작업은 궁극적으로 보조국사 사상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두 가지 논점을 가지고 서술하였다. 첫째, 양식적 시대 편년을 통하여 이 묘탑이 1210년경의 양식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둘째, 8각이 표현된 원구형 탑신의 양식적 배경을 밝혀 이 시대에 이러한 양식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논증해 보겠다.

Ⅱ. 보조국사 감로탑

1. 양식

감로탑은 현재 하대, 중대, 상대가 각각 단일 부재로 이루어진 하층 방형 기단 위에 상층 기단, 탑신, 옥개석, 상륜부가 차례로 중첩되어 있다(Fig. 1). 이 중, 하층에 놓여진 방형 기단은 1926년에 조성된 것으로17 치석 수법도 다르고 일부 돌의 색도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따라서 본 양식 고찰에서 이 부분은 제외하고자 한다.
상층 기단부(Fig. 2)는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3단이 삼각형 형태로 좁아지며 겹쳐진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탑신부보다 폭이 넓고 높으며 옥개석, 상륜 부재와도 균형을 이룬다. 그 모습은 기단이라기보다는 귀중한 물건을 안치하기 위한 받침과 같은 형태로 이색적이다. 원래 승탑은 건축을 축소한 형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기단부도 수미좌나 가구식 기단으로 조성된다.
이에 비해 감로탑은 다소 두꺼운 방형 지대석 상단에 일단의 낮은 몰딩이 이어지고 다시 위로 경사 있게 긴 복연판대를 돌렸으며 다시 작고 큰 2단의 몰딩 상단에 사방으로 둥글려 좁혀 들어가게 하여 중앙에 낮은 일단의 받침을 조출한 후, 상부 부재인 탑신 받침을 받치고 있다. 마치 탑신의 무게로 받침 중앙이 살짝 눌려져 사방이 봉긋하게 부풀려진 듯하다.
탑신(Fig. 3)은 둥근 원구형이나 상륜부의 보주부터 옥개석, 탑신으로 이어지는 8각의 구획을 위한 가늘고 정치한 돋을새김이 이어지고 있다. 중첩을 위해 상, 하단이 수평으로 다듬어졌으며 동일하게 8각이 표시된 얕은 받침이 위, 아래로 이어져 상, 하 부재를 받고 있다.
옥개석(Fig. 4)은 기본적으로 8각형 목조 지붕 형태이다. 그러나 기와, 목구조, 혹은 목구조 대신 약화되어 나타나는 옥개석 하부의 층급받침조차 없다. 단지 8면의 지붕이 만나는 추녀마루, 낙수면, 처마 상단이 아담하게 반전하고 있어 목조적인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으나 처마 단면, 그 단면의 하단, 각 처마 단면이 만나는 전각부는 직선에 가까워 실제 모습의 번안과는 거리가 있다.
옥개석 하단은 직선에 가까운 처마 단면 하단으로부터 점차 완만하게 배불러지다가 감축하여 역 사다리꼴 형태의 다소 높고 작은 받침으로 연결된다. 받침까지 한 돌로 조성된 지붕돌은 8개의 추녀마루와 연결되어 전각부, 옥개석 하부, 받침까지 8각의 구획선이 다른 곳보다는 조금 더 확실하게 돋을새김 되어 있다.
상륜부(Fig. 5)도 한 돌로 조각되어졌는데 밑에서부터 복연대, 가는 몰딩, 양 단이 둥근 사선으로 처리된 8각형 받침, 밑단에 앙련이 장식되고 8각이 표현된 둥글고 긴 보주로 이루어졌다. 옥개석과 연결되는 하단의 복연대와의 연결 부분이 다소 손상을 입어 시각적으로 조금 어색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2. 시대편년

이 탑은 기단부, 탑신부, 옥개석에서 새로운 형태를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편년의 기준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편 지눌의 뒤를 이은 수선사 2세부터 16세까지 이어지는 승려들의 탑이 13-15세기에 걸쳐 조성되어 현재 모두 8기가 전해지는데 이들은 모두 고려에서 국사로 책봉된 승려들로 탑신 정면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그 중 6기는 송광사 경내 조계산 자락에 전해진다.18
그러나 송광사 2세인 眞覺國師 慧諶(1178-1234년)의 탑은 지눌 탑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조성되며 이후 탑들도 이를 모본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역시 합리적인 비교 자료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 묘탑의 조성 시기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지눌 탑의 기단부 중단 복연판, 옥개석, 상륜부 보주에 장식된 앙련 양식을 학계에서 조성 시기를 12, 13세기로 특정하고 있는 다른 승탑들의 양식과 비교해 보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12-13세기 예들로는 1180년경에 조성된 영동 영국사 전 圓覺國師 德素(1119-1174년) 탑19, 포항 보경사 圓眞國師 承逈(1171-1221년)탑20, 하한을 13세기로 볼 수 있는 대구 동화사 道鶴洞 부도가21 있다.

1) 기단부 중단 복연판

기단부 2층 단에는 각 면에 4매씩 복연이 늘어져 장식되는데 양 측면을 향하여 조금씩 벌어지고 기울어지게 배치되어 점차 아래로 넓어지는 공간을 채우고 있다. 연잎 사이로는 또 다른 연잎의 머리가 동일한 양식으로 내밀려 겹쳐져 있다.
연잎은 중앙과 잎 가장자리가 도드라져 있는데 마치 청자 밑단에 장식되는 연판처럼 길쭉한 형태로 약한 S자 곡선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반전하며 잎 끝 쪽으로는 잎 면이 살짝 더 파여지며 굴곡을 이루어 뾰족한 끝 잎과 중앙선이 더 도톰해 보인다. 네 모서리에는 조금 더 큰 잎을 중앙선을 중심으로 반으로 나누어 양면에 꺾어 걸쳐 놓아 중앙선의 S라인이 전각부가 되어 네 귀퉁이를 잡아 준다.
한편 이러한 연판의 양식을 Fig. 6과 함께 살펴보면 지눌 탑(Fig. 6의 1)의 것과 승형 탑(Fig. 6의 2)의 것은 긴 형태, 잎 중앙과 주위의 도드라진 융기선, 잎 끝단의 살짝 들린 반전과 안 내부 쪽의 파임, 경사지게 배치된 연잎들, 8각 전각부에 양면으로 반씩 나누어져 놓인 연잎, 중앙선과 반전이 있는 각 잎의 잎 머리 등에서 동일한 수법을 볼 수 있다.22
이어서 이를 다시 13-14세기에 걸쳐 조성된 송광사 경내 부도들(Fig. 7)의 양식과 비교해 보면 연잎 주위와 중앙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끝단에 약간의 반전을 보인다는 점은 동일하나 연잎의 형태와 표현은 크게 변화하여 전혀 다른 모습이다.
1224년에 조성된 원진국사의 복연판(Fig. 6의 2)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1252년 입적한 淸眞國師 夢如(?-1252년)의 예(Fig. 7의 1)는 잎 사이 끝단에 살짝 드러나는 사이 잎의 표현 없이 연판을 둥글게 돌렸는데 밑으로 넓어지는 면을 장식하기 위해 사다리꼴 형태의 연잎을 채워 넣는 기계적 공간 처리가 눈에 띈다. 이후 Fig. 7의 1293년 조성 圓鑑國師 冲止(6세, 1226-1293년)탑, 1301년경 조성 慈靜國師 一印(7세, ?-?)탑, 1430년 조성 高峯和尙 法藏(16세, 1350-1428년)탑들의 복연판들은 각 모서리에 큰 잎을 두고 남는 빈 공간에 사이 잎을 두고 있는데 두꺼운 장식을 덮어씌운 듯 투박한 느낌으로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둔화하고 있다.
또한 덕소 탑(Fig. 6의 3)과 도학동 부도의 앙련판(Fig. 6의 4)은 Fig. 6의 1, 2와는 달리 위를 감싸는 형태의 연판으로 같은 유물에서도 그 작법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Fig. 7의 1, 2, 3, 4 앙련판 예들과 비교해 보아도 연잎을 표현한 생동감, 정치함에서 시대적으로 Fig. 6의 1, 2 복연판의 수법과 더 가깝다.
이상의 검토를 종합해 보면 지눌 탑의 기단부 중대에 장식된 복연판의 양식은 적어도 13세기를 벗어나 조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특히 보경사 원진국사탑 양식보다는 선진적이어서 1210년 그의 열반 직후 건립된 양식으로 생각된다.

2) 옥개석

보조국사 탑의 옥개석은 처마, 즉 옥개석 하부가 타원형의 호를 그리며 부풀어져 있어 아주 특징적이다. 현재 확인되는 유례 중에서 13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양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송광사 경내의 1235년 조성의 진각국사(2세)탑 이후의 모든 예들도 지붕돌 하부는 거의 직선이다.
처마 하부가 곡선으로 처리되는 예들은 12세기 이전의 부도들에서 많이 보이는데 이들은 대부분 옥개석을 목조 지붕 그대로 번안하면서 낙수 면에는 기와 골과 막새기와가, 하부에는 서까래와 부연 등이 있는 이중 처마를 표현하면서 하부가 두툼해지며 곡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하부 목구조를 생략하면서 형태만 곡선형으로 만들기도 하고 간혹 조각을 장식하기도 한다. 영국사 원각국사 탑(Fig. 8의 2)과 동화사 도학동 부도(Fig. 8의 4)가 여기에 해당하는 예로 이들은 1180년과 13세기 이전에 조성된 것들이다. 1224년에 조성된 보경사 원진국사의 지붕돌(Fig. 8의 3)은 추녀의 반곡에 따라 하부도 8면이 나뉘어져 좌, 우로 둥글려 부풀어져 있어 새로운 목구조적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을 정리하면 보조국사 탑의 옥개석 하부 양식은 주로 12세기 이전의 양식으로 한발 양보하여도 13세기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즉 1210년경 조성 가능한 양식이다. 다만 보조국사 탑의 옥개석 하부의 유독 심한 곡률의 부자연스러움과 역 사다리꼴로 좁아지고 있는 받침 모습은 좁아진 둥근 탑신 상부와 맞추기 위한 시도로 보여진다.

3) 상륜부 보주 하단 앙련판

보조국사 보주 밑을 받치고 있는 앙련(Fig. 9의 1)은 탑신부터 이어지는 8개의 능선을 따라 아담하고 우아한 8개의 연잎을 두고 사이에 안으로 겹쳐 보이는 잎을 배치하였다. 연잎은 중앙과 주위가 약간 도드라지게 다듬어졌으며 잎 끝단은 밖으로 살짝 반전되어 대체로 섬세하고 우아한 고려 중기적 감각의 건축적 의장이다.
이와 비슷한 시대이지만 14년 늦게 조성된 보경사 원진국사 탑 상륜부(Fig. 9의 2)는 좀 더 공예적이고 화려하다. 탑 자체도 건축보다는 석등, 석당과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양상은 조계산 경내에 있는 수선사 2세 이후의 탑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차이점은 보주와 노반을 감싼 앙련의 양식이 기단부에서와 같이 길쭉하고 입체적이며 정연하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진각국사 탑은 작은 수미좌 받침 모습(Fig. 9의 3)으로 이를 장식한 앙련과 복연의 형태는 단아하지만 선각에 가깝다. 이후 Fig. 9의 4, 5인 원감국사와 자정국사 탑은 상륜부가 더욱 섬약해지며 보주도 연봉우리로 변하고 있다. 세부 양식도 점차 약화되다 1430년 조성된 고봉화상 탑에 이르면 구성이 생략되고 투박해진다.
조선 초인 1398년 조성된 양평 용문산 正智國師 탑은 이러한 고려 말의 양상을 투박하게 계승한 예이며 1393년의 중원 청룡사 普覺國師 탑과 1398년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탑처럼23 몇몇 국가적 조성의 부도에서는 새로운 양식의 연판이 등장하고 있다.
결국 보조국사 지눌 탑의 상륜부 형태와 보주 앙련판, 기단부 복연판의 양식은 고려 중기적 양상으로 해석되며 여말선초, 혹은 조선시대 양식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탑신부부터 상륜부 보주에 이르기까지 8각을 표현하기 위해 도드라지게 연결된 선의 정치한 수법은 상륜부 각 부재가 연결되는 미세한 공간까지 이어지고 있어(Fig. 9의 1) 고려 말이나 조선시대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수법이다. 따라서 1210년경의 양식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24

Ⅲ. 양식적 배경

앞 장에서 감로탑의 양식과 양식 편년을 검토한 결과 감로탑은 1210년경 양식을 보이고 있어 원형이 지켜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에 대한 해답을 10세기 이후 오대, 북송의 자료에서 자주 등장하는 불탑의 양식과 의미, 그리고 그 영향력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구체적 사항들을 항목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寶篋印陀羅尼經』 변상도의 과거불탑

Fig. 10의 『보협인다라니경』은25 첫 머리에 5행의 간행 기록이 있고 뒤이어 경전 내용을 그린 변상도, 경 이름, 경전 내용이 이어지고 있어 고려 목종 10년(1007년)에 총지사에서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변상도 우측 상단에는 상서로운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보탑이 표현되어 있는데 연화대좌 위에 감실이 있는 구형 탑신을 두었다. 내부 중앙에는 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며 위로 목조건축형 지붕과 보주가 올려져 있어 보조국사 탑과 유사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탑은 무슨 탑이며 실제 불탑으로 조성되었는지 여부가 주목된다.
『寶篋印陀羅尼經』, 혹은 『寶篋印經』은 『一切如來心祕密全身舍利寶篋印陀羅尼經』 이라는 짧은 다라니 경전의 머리 제목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大唐貞元續開元釋敎(794년) 기록에 의하면 『보협인다라니경』은 당 대종 大曆 7년(772년)에 入藏되었으므로 중국에 유포된 시기는 772년이 된다.26
내용은 무구 묘광(無垢妙光) 바라문이 세존에게 공양을 청하여 그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석존이 흙무더기로 변한 과거불의 전신사리 불탑에 예를 드리자 섬광이 비치는 이적이 나타났다. 이에 관한 설명이 있자 시방의 많은 부처님께서 오셔서 찬탄하시며 설법한 경전을 탑에 안치하면 시방 여래의 전신사리가 모셔진 것과 같은 보탑이 된다고 하시며 이를 조성하고 경배하면 모든 죄가 없어지고 해탈을 얻으며 병이 치료되고 탑이 있는 곳은 일체 여래가 보호하므로 천재지변, 외적의 침입이 막아진다고 하였다. 석존이 다라니를 설할 때 낡은 탑에서 칠보탑이 솟아나오고 여러 부처님들이 이것이 세워진 곳을 보호하겠다고 하였다는 것이다.27
吳越國 忠懿王(재위 948-978년) 錢弘俶(929-988년)이 조성한 『보협인다라니경』은 956(丙辰)년, 965(乙丑)년, 975(을해)년 조성된 3종으로 석조 경당, 탑 지궁, 공사 현장 출토의 철제 소탑, 뇌봉탑 등에서 발굴, 발견되고 있으며 이 중 956년의 병진본이 총지사본과 가장 유사하여 이를 모본으로 총지사본을 간행하였던 것으로도 보고 있다.28
한편 전홍숙은 다수의 경당, 사찰, 석탑 등의 조성 불사도 하였는데29 『佛祖統紀』 권 10과 43의 송 태조 건륭(乾隆) 원년(960년) 기록에 의하면 아소카왕의 예에 따라 10년간 8만 4천 탑을 조성하고 『보협인다라니경』을 봉안 배포하였는데 철, 동, 은, 금동, 칠기 소탑으로 조성된 유례들이 중국과 일본에 다수 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吳越國王 錢弘俶敬造 八萬四千塔 乙卯歲記(955년)”의 명문이 있는 동으로 제조된 유례가 확인된다.30
그런데 이들 모습은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에 보이는 탑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보협인다라니경』에서도 이 다라니경을 안치할 탑 형상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보이지 않는다. 아육왕탑의 형상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일본 光仁天皇 寶龜 10년(779년)에 眞人元開가 쓴 『唐大和上東征傳』이다. 여기에는 744년 스승 鑑眞화상과 함께 무현 아육왕탑을 여러 차례 예배했던 제자 思托이 저술한 『大唐傳戒師僧名記大和上鑑眞傳』의 관련 내용이 인용되어 있는데 묘사된 아육왕탑 모습이 오월왕 전홍숙 탑의 형상과 완전히 부합한다.
오월국의 경내에 있었던 무현의 아육왕탑은 왕실이 귀중하게 여겨 수도인 항저우 羅漢寺로 옮겼고 송에 귀순할 때는 송 황실로 봉송되었다. 따라서 전홍숙은 소탑 안에 새로 조성한 『보협인다라니경』을 법신 사리로 봉안하면서 탑 형태는 저장성 무현(즉 닝보)에 있는 아육왕사의 아육왕탑을 모본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31
결국 『보협인다라니경』의 내용에 의하면 변상도 상단의 무너진 과거불탑에서 솟아난 보탑은 과거불의 전신사리가 모셔진 탑으로 이 탑이 있는 곳은 부처님들의 보호를 받을 것이며 재료나 모습에 관계없이 이를 설한 『보협인다라니경』을 탑 안에 봉안하면 모든 부처님의 전신 사리를 모신 탑이 되어 역시 죄업 소멸, 국토 안녕, 치병 등 큰 복덕을 받게 된다고 정리 할 수 있겠다.
중국 남동 해안 지역은 한반도와의 교류가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지만 특히 나말여초 시기에는 중국 대륙의 혼란상으로 더욱 빈번했다.32 『佛祖統紀』 권 10, 권 45와 『十國春秋』, 권 89, 오월 13에 의하면 고려 光宗(925~975, 재위 949~975) 11년(961년)에는 전란으로 천태종 서적이 훼손되어 불경 한 구절을 이해할 수 없었던 오월왕 전홍숙이 일본과 고려에 관련 서적을 구하러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50종의 보물을 함께 보냈고 이때 고려 승 諦觀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이 경전과 함께 파견되어 천태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33
10세기에 남중국을 직접 방문한 승려들도 많다. 그 중 다수의 스님들이 고려 개국과 함께 돌아왔는데 충주 淨土寺 法鏡대사(879-942년), 문경 봉암사 靜眞대사(878-956년), 여주 고달원 元宗대사(869-958년) 등은 920년대에 귀국하였으며34 도봉산 寧國寺 慧炬국사(?-974년)는 972년 광종 대에 왕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광종 19년(968년)에 국사가 되어 활동하였으니 이 시기 국내에 끼친 불교 교류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하겠다.35
이러한 국제 교류 속에서 적어도 10세기 말에는 변상도가 있는 『보협인다라니경』과 경을 안치한 아육왕탑 형상의 보협인탑이 고려에 전해졌다고 생각되며 그 유례도 확인된다. 특히 본 논문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에 보이는 불탑이 실제 중국과 한국에서 조성되었다는 사실이다.
불공에 의해 번역된 『보협인다라니경』이 중국에 유포된 시기는 772년인데 그 직후에 중국 浙江省 출신의 南陽 慧忠국사(?-775년)의 불성을 상징하는 무봉탑이 그의 유언에 따라 국가와 제자에 의해 둥근 형태의 탑신으로 건립된다. 고려에서는 10세기 중엽에 고려 淨土寺 法鏡대사(879-941년)탑과 흥녕사 澄曉大師 折中(826-900년)의 塔이, 11세기에는 법경대사 제자인 홍법국사실상탑 등이 둥근, 혹은 8각형을 표현한 둥근 탑신으로 조성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정토사의 예에서는 남양 혜충국사의 영향이 보인다.36
중국의 경우는 불탑과37 사리기에서도 구형탑이 나타난다. Fig. 11은 1965년 중국 溫州 白象塔에서 출토된 2기의 나무 탑형 사리기 중 하나로 비어 있는 둥근 탑신 안에는 사리 1과가 봉안되어 있었다. 탑은 당 정관 연간(627-649년)에 처음 조성되어 북송 咸平 연간(998-1003년)에 크게 중수되었는데 이 사리기도 이 시기에 봉안된 것이다.38 함께 출토된 사리기와 함께 그 형태가 변상도 속 과거불탑의 모습이다.
Fig. 12는 1966년 중국 溫州 慧光塔에서 출토된 鍍金舍利甁銀龕으로 기단 상대 측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1035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혜광탑은 당 大中 연간(847-859년)에 초창되어 현재 탑은 북송 景祐 원년(1034년)에서 慶曆 3년(1043년)에 다시 조성된 것이다.39 사리감의 형태는 지붕이 생략되었지만 을축년 조성의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의 과거불 전신사리가 모셔진 사리병 봉안 모습(Fig. 13) 40과 동일하다.
이처럼 10세기 오월국 전홍숙이 조성한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 속의 목조식 지붕의 구형 과거불탑은 실제 승려 묘탑, 불탑, 사리탑형 사리구 등으로 조성되고 있음이 확인되며 이를 통해 당시 구형탑의 의미가 어느 정도 이해되고 받아들여졌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 『華嚴經』 「입법계품」 도상의 전단좌 불탑

보조국사와 그의 문도들에게 『華嚴經』과 거사불교는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는 이미 선종이 도입되는 신라 말부터 있었던 경향이며 승려들과 유학자들의 직접적, 간접적 교류가 활발했던 오대, 북송 선종계와 지식층, 이에 영향 받은 고려 10-12세기, 그리고 이를 계승한 고려 13세기의 시대적 흐름이었다.41
특히 보조국사에게 큰 영향을 미친 大慧 宗杲(1089-1163년)의 현실지향적인 간화선의 경향은 화이론에 바탕한 主戰論, 선과 유교를 일체적으로 파악한 儒佛一致 사상, 보리심이 충의심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본체는 같다는 등, 선의 일상성을 강조하는 논리는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이끌었다.
그는 왕의 군대가 개선했다는 소식에 옷과 의발을 내고 승려들을 모아 『화엄경』 700 여부를 열독하며 축원하였고 사대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후원과 거사로서 선 수행에 참여하는 것을 이끌어내고 지도하였다. 이처럼 송대 사대부 계층에서 선 수행이 성행하면서 그들에게 적합한 수행 방법이 요구되었고 거꾸로 대혜 종고와 간화선에 일정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42
1213년 건립된 보조국사의 비문과 1207년 저술된 『華嚴論節要』 서문에 의하면 지눌은 생애 세 번의 깨달음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확립하였는데 첫 번째는 25세(1182년) 승선에 합격한 후, 창평 청원사에서 『六祖壇經』을 읽다가 “진여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면 육근이 비록 알고 하더라도 대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자재한다.”라는 대목에서 본래 마음인 진여자성이 작동하면 일거일동이 모두 진리임을 체험한다.
두 번째는 28세(1185년) 경북 예천 보문사에서 3년간 대장경을 열람하다 『華嚴經』 「출현품」의 “한 티끌이 대천세계를 머금었다.” 그리고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 마음에 갖추어져 있지만 어리석은 범부들은 그런 줄을 깨닫지 못한다.”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곧 부처’라는 선의 입장과 부합하는 구절을 읽고 선과 교가 다르지 않음에 감격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李通玄장자(635-730년)의 『신화엄경론』의 ‘중생들의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굳게 믿는 것, 즉 ‘누구나 부처’라는 신념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함을 절감한다.
이후 그는 31세(1188년) 팔공산 거조암으로 옮겨 33세에 「勸修定慧結社文」을 작성하여 修善結社를 본격적으로 수행하였다. 이 결사문에서 그는 선(禪), 교(敎), 유교, 도교를 신앙하는 누구라도 이 뜻과 부합한다면 契를 맺은 인연이 없더라도 결사문 뒤에 이름 올리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불교적 깨우침을 통한 방법이었지만 실로 그와 고려 불교계가 지향한 것은 분명 고려 사회의 자성적 전환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세 번째는 41세(1198년) 때,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大慧 宗杲의 『大慧普覺國師語錄』을 읽다가 ‘선정은 고요하거나 시끄럽거나 일상 인연에 따르는 곳이나 분별하지 말고 참구해야 한다.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일임을 알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진리는 어디에나 있으며 이것이 현실 삶에 그대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에 계합하고 43세(1200년) 송광사로 옮겨 수련과 활발한 대중 지도에 몰두한다.43
Fig. 14는 일본 사가(滋賀)현 園城寺 소장 <華嚴海會善知識圖> 중, 『華嚴經』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鞞瑟胝羅거사를 방문한 장면이다. 화면에는 거사가 탑문을 열면서 佛種無盡, 즉 과거부터 차례로 시방삼세의 수많은 부처님들, 성문, 독각, 보살이 발심하고 깨닫고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보는 삼매를 얻어 열반하지 않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던 구형 탑신의 전단좌 불탑이 묘사되어 있다.
이 선지식도는 문수보살이 선재동자를 이끄는 첫 장면부터 차례로 54개의 화면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는데 상단에 篆書로 <華嚴海會善知識圖>라는 제목이 쓰여져 있다. 이 작품은 색채감, 의습, 광명과 구름, 건축 세부 등의 표현으로 보아 송나라 본의 영향을 받은 가마쿠라(鎌倉, 1192-1333년)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44
선재동자 구법도는 중국 송대에 나타나며 일본은 송본의 선재동자 구법도들이 전래되면서 헤이안 말기인 12세기에 도다이지 소장의 <華嚴五十圖繪>나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일본풍의 <華嚴五十圖所繪卷>이 조성된다. 이 중 후자는 頌讚이 송나라 楊傑의 『大方廣華嚴經入法界品讚』으로 楊傑은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에 들어갔을 때 접대를 담당하는 등 의천과 긴밀한 관계였다. 또한 의천이 머물며 晉水 凈源법사에게 가르침을 배웠던 浙江省 항주 慧因寺에도 <善財童子參知識五十四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의천과 연결하여 해석해 보려는 경향도 있다.45
교토 東大寺에도 <華嚴海會善知識圖>가 있는데 붉은 색, 의습의 문양, 건축의 먹선 등에서 역시 송본의 영향이 보이며 특히 중앙 상단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의 양식이 화엄승 明惠(1173-1232년)가 의지처로 삼았던 당본 善知識圖에 맞닿아 있다.
그는 교리적 접근보다는 보살도의 구체적인 실천을 지향하였다. 특히 그는 한반도의 원효, 의상의 저술을 중시 여겨 1250년에 정리된 高山寺의 「聖敎目錄」에는 이들의 저술이 다수 들어 있다. 그의 『摧邪論』 등에는 수선사 2세 慧諶이 필사하고 지눌의 서문과 李通玄 장자의 행장이 권말에 실린 지눌의 『華嚴論節要』가 인용되었는데 그 책도 현재 일본 金澤 문고에 전해지고 있다.46
이상을 정리해 보면 Fig. 14의 자료는 鎌倉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이전까지 유통되었던 『화엄경』 도해 등과 관계가 깊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에도 동일한 내용이 전해졌을 것이며 대략 그 하한은 1100년 경 이전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 주목된다. 즉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상이 당대 돈황본과는 다른 요소가 보이며 이를 앞서 살핀 『화엄경』 관련 도상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47 이는 중요한 지적으로 그렇다면 이들의 영향이 고려 중, 후기 불교와 불교 문화재에 생각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다.
Fig. 15는 해인사에 소장된 재조대장경 이외의 『화엄경』 3본 중 80권(周本)의 각 권에 잇대어 만든 변상도로 68권 「입법계품」 39의 9 도상 중 鞞瑟胝羅거사를 방문한 장면이다. 역시 그가 예배하는 탑이 그려져 있는데 Fig. 14의 예보다는 상륜부의 형태가 더욱 보조국사 탑과 닮아 있다.
이 변상도가 있는 주본 『화엄경』은 완본으로 남아 있으며 대각국사가 1094년 해인사에 와서 1095년 10월에 귀경한 후 1098년에 간행된 壽昌 4년 간기의 『화엄경』 본과 수법 상 연관성이 깊다고 한다. 따라서 제작 연대를 상한은 1098년으로, 하한은 국난이 끝나 불사의 여유가 있었던 1251년 이후의 13세기경으로 잡고 있다.48
물론 이들은 전쟁으로 산일된 고려 현종대에 조조된 「開元釋敎錄」 수록분인 송의 開寶勅板大藏經 5048권, 문종대 조조된 「貞元續開元釋敎錄」에 수록된 경률론과 大宋新翻譯經 등 1000권, 대각국사가 1086년 음력 5월 12일 중국 영파(명주)를 출발하며 가져 온 55선지식의 화상과 『화엄대부사의론』 등 여러 종파의 교장경 3천여 권49이 중요한 모본이 되었을 것이다.
비슬지라 거사는 선재동자가 바수밀다 여인을 만난 후, 남쪽의 선도성(善度城)에 이르러 참배한 선지식으로 어떻게 보살행과 보살도를 배우고 닦는지를 물었다. 이에 ‘자신은 보살의 해탈을 얻었지만 열반에 들지 않는다. 부처님들도 그러하다. 다만 중생 교화를 위해 열반한 것같이 보일 뿐이다. 자신이 공양하는 전단좌 불탑의 탑문을 열 때 삼매에 들어 가섭불 등 과거의 부처님들을 비롯하여 수백, 수천, 무수히 많은 부처님을 차례로 본다. 그들이 발심하여 원을 성취하고 법륜을 굴리며 신통 변화하는 현상을 다 지니고 기억하고 관찰하고 분별하여 나타낸다. 미래의 미륵불과 현재의 비로자나불,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 성문, 독각, 보살도 그와 같이 한다.’ 50고 답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구형탑이 과거 부처님들의 전신사리탑에서 더 넓게 성문, 독각, 보살이라는 화엄의 영역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보조국사는 ‘중생의 마음이 부처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굳게 믿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임을 절감했다. 아마도 그 같은 확신을 돕는 시각 자료로 끊임없이 출현하여 부처의 길을 수행하는 과거, 현재, 미래 부처님, 성문, 독각, 보살의 전신이 나타나는 전단좌의 불탑은 무엇보다 적합한 상징이었을 것이다.
보조국사가 활동하고 생을 마감했던 시대는 국내적으로는 무신 통치 속에서 정권의 변화가 많았고 대외적으로는 12세기에 여진족의 금나라가 강성해지면서 중국 대륙도 다시 전쟁에 휩싸였던 시기로 기존의 체제가 흔들리고 견고함을 잃어 가는 불안정한 시대였다. 이에 뜻있는 스님들과 지식층을 중심으로 수선사와 백련사의 결사가 일어나 새로운 실천운동을 통한 사회 정화와 대중 구제를 지향하고자 하였는데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보조국사이며 그의 문도들이었다.
전단좌 불탑문을 열면서 佛種無盡, 즉 부처님이 과거부터 끝없이 출현함을 보았고 성문, 독각, 보살, 모든 부처님들이 해탈하였으나 열반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함을 보고 기억한다는 善度城의 비슬지라 거사와 그의 구형 불탑은 그들이 추구하는 불성과 대중 교화의 신념을 상징하는 이상적 형태로 수용되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3. 절강성 지역의 과거칠불탑

중국 절강성 지역의 溫州, 麗水, 臺州, 寧波 등지의 錢塘江 남동 해안지역에는 오대 오월국 시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후대까지 이어진 과거칠불탑과 그 유형의 불탑들이 다수 확인된다. 이들은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에 보이는 과거불탑의 모습으로 실제 같은 모습의 사리구가 확인되듯이 불탑으로도 건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유구들은 작은 부재들을 중첩하여 조성한 소규모 탑인 까닭에 자연적, 인공적 재해에 견디지 못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손상되고 다시 복구되어 유적지마다 초기 유구는 하나 혹은 2-4 예만 있고 나머지는 후대작으로 중수되거나 매몰되었다가 발굴되기도 한다.
양식은 6각형으로 수미좌식 기단부에 구형 탑신을 두고 그 위에 목조 양식의 지붕과 길쭉한 상륜부를 차례로 올렸는데 각 탑신 정면에는 불감을 두고 그 안에 각각 칠불을 조각하거나 상으로 모신 독특한 모습이다. 탑신에는 조성기를 새긴 경우가 많아 조성자, 건립 연대, 조성 배경을 알 수 있으며 어떤 예는 탑 중앙 감실 문 위에 편액을 조각하여 과거불탑의 명칭을 밝히고 있다.51
溫州市 樂淸 磐石鎭 重石村에 있는 眞如寺 칠불석탑(Fig. 16-1)은 오대 오월 시기에 건립되었다고도 전하나 永樂·樂清縣志에 의하면 북송 明道 2년(1033년)에 청석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각 높이 약 5.16m의 과거칠불탑으로 바다가 가까워 한때 태풍으로 인한 해일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문화혁명 때 크게 손상되기도 하였으나 1999년 원 위치에 복원되었다. 현재 4기가 북송대 원 유물로 그중 탑 1기만 완존하며 3기는 지붕 부분이 보수되었다. 나머지는 후대 남겨진 부재를 혼용해 복원된 것이다.
기대석 6각형 중대 면석에 새겨진 초문, 기둥 대신 받친 무릎을 꿇거나 앉은 역사상, 수미좌식 기단의 앙연과 복연 장식, 기단 중대면석의 사자머리, 참외형 탑신 정면 벽의 호문, 내부에 각 불상 1존 안치, 6각 모임지붕을 받치는 공포 구조, 둥근 처마 윤곽과 크게 들린 전각 모습의 지붕돌, 노반과 표주박형 보주의 상륜은 오대 오월 양식이라기보다는 북송적인 특징을 보인다.52
과거칠불은 인도 원시불교의 기본 경전인 『아함경』에도 등장하며 석가모니와 그 이전 생의 과거 여섯 분의 부처님을 지칭한다. 칠불은 경전에 따라 조금씩 호칭이 다르지만53 過去莊嚴劫의 비바시불(毗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毗舍浮佛)과 賢劫의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가섭불(迦葉佛), 釋迦牟尼佛이며 불교적 시간관에 따라 장차 미래에 올 미륵불과 함께 장엄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칠불이 장엄된 불탑과 조각 유물들도 기원전 인도와54 2세기 전후 서북부 간다라 지역에서 석가불, 미륵불과 함께 일찍부터 숭배되었으며55 4-6세기 키질벽화, 돈황 지역의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불탑과 석굴 조각에 다수 그 실례를 전하고 있어 바다 길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도 이른 시기에 전파되어 신앙되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56
장엄된 양상은 불탑은 7기의 과거칠불탑으로, 혹은 북량(北凉, 397-493년) 소탑에서와 같이 미래세의 부처님이시며 현재 도솔천에 계신 미륵보살과 함께 불탑 8면 감실에 장식된다.57 5세기 초의 돈황지역 과거칠불 유례들은 이 지역에서 번역되고 유행했던 잡밀 경전과 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같은 양상은 끊임없는 관련 다라니의 번역과 함께 수, 당대를 거쳐 송, 요, 금나라와 명, 청 시대까지 다양한 사상적, 신앙적 변화를 담아 이어지고 있다.
과거칠불 신앙은 과거칠불상이나 다라니주가 있는 보당, 보개 등의 장엄을 지니거나 다라니를 독송하면 칠불의 신통력으로 재난, 질병, 전쟁의 환란을 막고 진심을 다하여 참회하면 여러 생의 죄가 소멸되어 다라니를 수지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칠불과 불국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승려들은 과거칠불의 보호로 선정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없애고 마음 수행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며 과거칠불의 신통력으로 때로는 과거칠불을 직접 뵙고 예배드릴 수도 있다고 한다. 국가 지배층도 국가의 안정, 화평을 기구할 수 있어 오랫동안 유행할 수 있었다.58
북송은 건국 초기부터 불교를 높이고 보호했던 오대 오월국의 종교 흐름을 그대로 계승하였는데 송 태종은 당 태종을 본받아 태평흥국 7년(982년)에 역경원을 건립하여 政和 1년(1111년) 완전히 폐쇄될 때까지 번역가 15명이 284부 758권을 번역하였다. 景佑 2년(1034년)에는 五天竺에서 백여 명의 범승들이 경전을 가지고 수도인 변경으로 왔으며 또한 서쪽에 가서 경전을 구하여 귀국한 승려도 138명이었다고 전한다.59
이 시기 인도 불교는 밀교가 크게 발전하였기 때문에 전래되어 번역된 경전 대부분이 밀교 경전이었고 과거칠불에 대한 내용도 많았다. 당나라 중기 이후부터 끊임없이 과거칠불 관련 밀교경전 번역이 새롭게 이어지며 관련 신앙은 陀羅尼呪와 결합되어 크게 신앙되었다. 역경원 구성원 중, 973년에 汴京에 온 중인도 나란타사 승려 法天은 『佛說七佛經』을, 서역승 施護는 『佛說守護大千國土經』을 번역하였는데 과거칠불의 위엄과 신이한 힘으로 국토, 왕, 백성들이 공포와 두려움을 여의고 안락하게 살 수 있음을 설하고 있다.60
이러한 배경 아래 과거칠불탑의 조성은 오대, 북송, 남송대를 거쳐 민국 시기까지 이어지며 해양 실크로드를 따라 일본 규슈 지역에도 전해져 12-13세기 조성의 사츠마(薩摩) 탑이 규슈 북서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40여기 확인된다.61 고려도 11세기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와 12-13세기 『화엄경』 「입법계품」 변상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과거칠불탑의 조성 상황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13세기 초의 보조국사 탑만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眞如寺 과거칠불탑 탑신 받침의 사이 잎을 둔 길쭉한 형태의 복연과 기단 상대석의 잎 주위와 중앙을 도드라지게 한 부드러운 앙련의 모습(Fig. 16-2)이 보조국사탑의 복연, 앙련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또한 1061년에 조성된 湖北省 當陽 玉泉寺 1 3층 철탑의 기단부 복연(Fig. 17), 당나라 정관 연간(627-649년)에 처음 건립되어 북송 咸平 연간(998-1003년)에 크게 중수된 溫州의 6각 7층 白象塔의 상륜부 전체 모습과 둥근 노반에 장식된 가늘고 긴 연판형태(Fig. 18-1, 2)도62 보조국사 탑의 둥글게 배부른 층단식 기단, 탑신, 상륜으로 이루어진 전체 모습과 복연 형태와 닮아 있다. 白象塔 상륜부 복발 표면과 노반 하단 주위에는 북송시대 조상자의 이름 등, 명문이 주조되어 있어 북송대 조성이 확인된다.
상륜부는 그 시대의 탑 모습이 일정 부분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양식적 사례들의 유사성은 고려 중기 북송과의 불교문화 교류와 그 영향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함을 알려 준다.

4. 방형 기단

감로탑은 탑신, 옥개, 상륜부가 8각형 구형이나 8각형인 것과는 달리 기단부가 방형 평면이다. 이 탑의 방형 기단은 기대와 기단이 합쳐진 형태로 방형 기대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방형 기대 위에 8각형 묘탑을 올린 예는 844년 조성된 염거화상탑에서도 나타나며 이후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꾸준히 확인된다.
기대는 시신, 화장 후 나온 사리나 가매장 후 2차장으로 추려진 유골이나 사리를 매장하기 위한 하부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선사들의 장법은 대체로 화장이나 매장한 뒤 탑을 세워 모신다. 매장의 경우는 가매장, 혹은 동굴이나 선정 장소에 모셨다가 후에 유골을 수습하거나 다시 화장하여 모시는 2차장, 쇄골하여 상을 만드는 등 다양하다.63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나 마치 무덤처럼 탑의 감실이나 지궁을 조성하여 조사상, 사리, 유골, 관련 물품 등을 함께 봉안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특이하게 전신을 그대로 모시는 장법도 많이 보인다.64
1997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광양 玉龍寺의 북동쪽 浮屠殿址 2기의 발굴은 이 같은 묘탑 봉안 양상의 일단을 전해 준다. 2기 중 북쪽 유구는 3차에 걸쳐 조영된 부도전지로 잘 다듬어진 초기 기단 면석이 일부 남아 있으며 최하층에서 통일신라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효공왕 2년(898년) 2월에 입적하여 직후 탑이 세워진 先覺國師 道詵(827-898년)의 유구로 추정되었다.
부도전지 중앙부에는 파괴된 지대석 등, 부도 파편과 함께 지하에서 길이 130cm, 폭 70-60cm, 깊이 80-68cm의 석곽과 남북 길이 방향으로 안치된 석관이 발견되었는데 내부에는 신체 탈골 후 2차장으로 추려진 유골이 물에 잠긴 채 봉안되어 있었다. 석관은 전체 높이 45cm로 뚜껑과 관이 각 1석으로 조성되었으며 뚜껑돌은 盝頂形(네 면의 모를 죽인)이다. 관 외부는 길이 95cm, 폭 54cm, 깊이 30,5cm이고 내부는 길이 81cm, 폭 38.5cm, 깊이 19-21cm의 작은 장방형으로 표면에는 아무런 조식과 명문이 없다.65
1931년 강원도 원주 흥법사 터를 떠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석조 전시장에 있는 眞空대사 탑에도 이와 거의 같은 규모와 형태의 석관이 수습되어 함께 전시되고 있어 이러한 사례는 장래 좀 더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도선대사의 탑은 남겨진 지대석 유구로 보아 방형 지대석 위에 8각당 형태로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진공대사의 탑도 마찬가지다.66 현재까지의 학계 연구 상황은 4각 지대석이 아닌 8각 지대석을 사용한 묘탑의 경우 하부에 매장 공간을 두지 않고 탑 내에 사리를 두었다거나 4각 지대석 하부에 반드시 매장 시설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기단 중대석에서 장방형 사리공이 확인된 경남 울산 석남사(石南寺)부도가 지대석부터 전체 탑 형태가 8각형이라는 점에서 관련 연구가 요청되는 상황이다.
한편 위와 같은 유례들을 염두에 둘 때 林綺山의 「普照國師甘露塔改建記略」의 1926년 개건 내용 중에 “…門徒等이 香燈을 廣設하야 七日을 供養한 後 茶毘를 奉行하고 五色의 骨身을 拾得하야 寺의 北麓에 方墳을 봉건하얏더니…”라는67 1210년 초건에 대한 언급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방형 분묘(方墳)에 중점을 둔 이 언급은 이 글을 쓴 인물이 당시 개건을 직접 보고 관여했다는 점, 보조국사 탑과 관련한 그 이전의 상황을 가장 잘 전해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68 좀 더 비중 있게 살피고 반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보조국사 탑의 방형 기단은 기대와 일체로 조성된 까닭에 하부의 매장 시설과 관련하여 방형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1926년 5월에 해체 수리가 시작되어 같은 해 10월에 보수가 완공된 보조국사 탑이 새로 방형 기단부 하단이 추가되었던 점도 이와 관련하여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이상 양식적 배경이 되는 네 측면의 고찰을 정리하면 첫째, 구형 탑신 불탑이 작은 규모의 탑과 도상으로 출현하는 시점은 크게 두 차례다. 8세기 불공의 밀교 경전 전래와 번역이 이루어진 당 중기 시대 이후부터 그 영향 아래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가 조성된 10세기 오월국 시대와 많은 인도 승려들과 함께 다량의 밀교 경전들이 새롭게 도래하여 번역된 송나라 초기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당나라 8세기 이후 보이는 승려 탑, 오월국의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의 과거불의 전신사리탑, 오월국 시기부터 북송, 남송대의 과거칠불탑, 사리구들이 조성된다. 이들의 모습은 목조형 지붕의 유무로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구형 탑신은 동일하며 과거 부처님, 혹은 그들을 모두 포함한 시방 삼세의 수많은 부처님의 법신과 전신사리가 적취된 탑으로 이들에 대한 다라니 신앙은 국왕과 대중들이 신앙을 행하기는 쉬운 반면 이익은 아주 크다는 대중적 특성을 보여 준다.
또한 과거칠불은 『화엄경』, 『법화경』 등 여러 대승경전에도 자주 등장하며 관련 조성 유례들도 확인된다.69 따라서 위와 같은 과거칠불 신앙과 불탑의 유행 속에서 『화엄경』 「입법계품」 변상도 속의 비슬지라 거사의 전단좌 불탑 모습으로 등장하며 그 의미도 과거불을 포함한 시방 삼세의 수많은 부처님들, 성문, 독각, 보살들이 상주하고 계시는 곳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결국 보조국사의 구형 탑신과 목조형 옥개양식 탑은 개인의 멸죄와 정토왕생 등을 원하는 구복 신앙, 국토와 왕권을 지켜주는 호국신앙을 간편하고 용이하게 행할 수 있는 과거불에 대한 아함부 경전과 다라니경에 대한 신앙, 수행자와 대중들이 모두가 부처임을 굳게 믿고 이를 과거불뿐만 아니라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 심지어 성문, 독각, 보살들로 확장시킨 『화엄경』의 성기사상에 의한 불성에 대한 신념과 보살도행(道行)을 상징한다.70
그러므로 불탑의 형태이면서도71 선승의 묘탑으로 조성될 수 있었으며 기단부의 형태가 이들 경전과 다라니 변상도의 탑 모습과 닮아 있으면서도 방형을 이룬 것은 승려들의 봉안 방식에 따른 전통적 하부 매장부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Ⅳ. 보조국사 지눌의 시대적 소명과 탑의 의미

순천 송광사의 영산전 후면 좌측 언덕에는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이 서 있다. 탑은 방형 기단부에 구형 탑신, 팔각 목조형 지붕, 노반과 보주형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탑에는 8각을 표시하는 가는 돋을새김이 탑신 받침에서 구형 탑신, 8각 옥개석 상, 하면, 보주 끝까지 굴곡에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다.
양식상 정치한 돋을새김 수법과 함께 기단부의 복연과 상륜부 보주 하단의 앙련, 옥개석 하부의 배부른 수법은 고려 중기의 감각과 연결되고 있어 하단의 돌 색이 다른 1단의 기단부가 1926년 삽입된 것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1210년 3월 입적한 후 조성된 양식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탑은 10세기 초, 중국 오대 오월국의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와 12-13세기 『화엄경』 「입법계품」 변상도 속의 불탑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10-11세기 오월과 북송시대 이후에는 과거칠불탑과 사리구로 조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10세기 초엽의 유학승들의 귀환, 오월국과 송과의 국가적 교류, 남중국과의 상업적 교역을 통해 고려로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조국사 탑 형태와 복연, 앙련의 양식은 북송시대 浙江省 溫州의 眞如寺 과거 칠불탑과 白象塔 상륜부, 북송시대 연판과 닮아 있어 11세기 문종대의 북송과의 국교 재개와 대각국사 의천의 구법 여행에서 비롯된 불교 문화적 교류의 영향력이 알려진 것보다 크고 광범위하였음을 전해 준다. 이 점은 일본 사가현 園城寺 「화엄해회선지식도」 중의 『화엄경』 「입법계품」 비슬지라 거사의 전단좌 불탑 자료와 관련하여서도 제기되는 사항이다.
11-12세기 북송과 고려 불교는 이전 시기부터 시작되었던 유교, 불교, 도교의 습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며 화엄의 성기사상과 천태사상의 禪的 수용 속에서 지식층과의 교류가 활발했다. 대외적으로는 12세기에 여진족의 금나라가 강성해지면서 군사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더구나 고려는 무신 통치로의 정권 변화가 겹쳐 양국은 기존 체제가 견고함을 잃어가는 불안정한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뜻있는 지식층들은 사회 정화와 대중구제에 나서고자 하였으며 선승들은 수선사와 백련사의 결사를 중심으로 불교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특히 보조국사는 선승임에도 화엄적 성기사상의 선적 수용이라는 사상적 흐름 속에서 자신 앞에 닥친 시대적 소명을 우선시하여 문도들과 함께 앞장서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였다.
보조국사 감로탑은 과거뿐만 아니라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 심지어 성문, 독각, 보살들의 영원히 상주하는 모습을 통해 불성의 인식과 보살 가피의 길, 즉 행을 상징한 구형 탑의 모습으로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부처가 되는 길, 그리고 이를 통해 불국토를 지향하고자 했던 그와 그의 문도들의 대 사회적 계몽 운동의 실체를 전해 준다. 이것이 선승으로서 고려 사회를 품었던 보조국사의 진면목이며 대승정신에 기초하며 中道不二에 근거하여 현실을 중시했던 대혜 종고의 간화선과 맥락을 함께 하는 부분이다.

Notes

1) 수선사는 당시 불교계와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비판정신으로 지눌 선사가 중심이 되어 결행된 불교 신앙결사이다. 원래 명종 20년(1190) 현 팔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를 결성, 정혜사로 시작되었는데 많은 호응으로 송광산 吉祥寺로 옮기게 되었다. 이전 공사를 완공한 희종 1년(1205년)에 왕명으로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정혜사를 수선사로 개칭하게 되었다.

2) 李智冠, 「順天 松廣寺 佛日普照國師 碑銘」,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 高麗篇 4(伽山佛敎文化院, 2000년 재판), PP. 58-98.

3) 林綺山, 「普照國師甘露塔改建記略」, 『佛敎』 41호(佛敎社, 1927.11), PP. 21-22. 이 논문에는 처음 감로탑을 세운 후 일곱 차례에 걸친 개건 사실이 정리되어 있다.

4) 高裕燮, 「순천 송광사 불일보조국사감로탑과 추기」, 『朝鮮塔婆의 硏究』下(열화당, 2010), pp. 403-405에는 1926년에 탑의 개수가 이루어졌으며 일본학자 노모리 겐(野守健)이 『考古學』 1937년 5월호에서 사리기와 탑을 조선 초기 것으로 보고 있으나 본인은 사리기와 탑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韓盛旭, 「順天曹溪山 松廣寺 慈靜國師·高峰和尙 舍利器」, 『佛敎考古學』 5호(위덕대박물관, 2005), P. 108, 각주 1에서는 사리기를 강경숙, 성춘경의 저술과 논문을 인용하면서 성종대 개건하면서 봉안된 것으로 보았다.

5) 이는 수선사의 초기 계승과 변화, 眞覺國師 慧諶(1178-1234년) 이후의 무인정권과의 긴밀한 관계, 원나라와의 전쟁 등으로 인한 불교계, 사상계를 둘러싼 환경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상징이 수용된 것으로 이해되며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6) 崔仁善, 「順天市의 佛敎文化遺蹟」, 『順天市의 文化遺蹟 II』(順天大學校 博物館, 2000), p. 194.

7) 엄기표,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학연문화사, 2003), pp. 437-439.

8) 嚴基杓, 「高麗後期 松廣寺 出身 16國師의 石造浮屠 硏究」, 『文化史學』 29(韓國文化史學會, 2008.06), pp. 43-48.

9) 강병희, 한국미술사학회 192회 월례발표회(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2014.3.22)

10) 조봉진, 『朝鮮前期 球形浮屠의 始原에 관한 考察』,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1); 전미숙, 「高麗末~朝鮮前期 球形浮屠 硏究」, 『불교미술사학』 13(2012), pp. 7-40, 박영구, 「朝鮮時代 浮屠의 樣式 分類」, 『佛敎考古學』 6호(위덕대학교 박물관, 2006); 이수정, 「朝鮮前期 浮圖의 特徵 硏究』, 『文化史學』 37(2012. 2), pp. 65-92.

11) 조봉진(1991년), 앞의 학위 논문, pp. 19-49.

12) 전미숙(2012년), 앞 논문, pp. 27-29.

13) 강병희, 2017 한국미술사학회·서양미술사학회 미술사학대회(서울대 두산인문관 101호, 2017.6.10.)

14) 嚴基杓, 「순천 松廣寺 普照國師 甘露塔과 甘露塔碑에 대한 고찰」, 『美術史學硏究』 305(2020. 3), pp. 15-19.

15) 충주 정토사 法鏡大師 塔은 일제 강점기에 반출되어 현재 자취를 알 수 없다. 다만 정영호, 「中原 淨土寺址 A·B地區 發掘調査 報告-1983年度」, 『忠州댐 水沒地區 文化遺蹟發掘調査綜合報告書-佛蹟分野』(忠北大學校博物館, 1984), pp. 65-89와 강병희,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의 기원과 의미」, 『미술사학연구』 278(2013. 6), pp. 49-51에 의하면 이 절터에는 원래 3 기의 크고 작은 卵形부도가 있어 주민들이 이를 큰 알독, 작은 알독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이 중 법경대사의 제자인 홍법국사의 작은 구형 탑만 전하고 있는데 법경대사 탑비에는 구형 탑신인 無縫塔을 자신의 탑으로 건립하게 한 중국 남양 혜충국사가 대사와 동일시되어 서술되고 있으며 사상적으로도 같은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법경대사의 탑도 구형 부도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16) 현재 징효대사 절중의 부도비(혜종 원년, 944년)에서 약간 서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부도로 비와 동시대의 양식을 보인다. 정영호, 「新羅 獅子山 興寧寺址 硏究」, 『백산학보』 7호(1969. 12), pp. 37-38쪽에 의하면 대사는 신라 말인 효공왕 3년(900년)에 입적하여 다비를 하고 왕이 내린 탑명을 받아 906년에 석조 부도를 세워 안치하였다고 하나 그 실상이 확인되고 있지 않으며 다만 양식, 위치, 정황상 비를 세울 때 탑도 함께 세웠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7) 각주 2) 林綺山의 글에서 “…塔軆에는 三級의 座席을 加하고…”라 언급하고 있고 각주 3) 고유섭의 글에서는 후지시마(藤島)의 『建築雜誌』 1930년 7월호 글에서 “묘탑은 새로 축조한 기단 위에 그대로 세웠던 까닭에, 이 탑을 볼 때는 아래쪽을 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는 점, 또 노모리 겐(野守健)의 『考古學』 (1937. 5) 논문의 하층 기단부가 없는 사진을 1926년 개수 이전의 모습으로 추정하고 있는 점 등이 이를 대변한다. 관련 사진은 순천시, 『정겨운 순천의 옛 사진』, 학연문화사(2007)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자료에 있다.

18) 崔仁善(2000), 앞의 책; 徐惠銀, 『松廣寺 16國師의 石造浮屠』, 순천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2004); 嚴基杓(2008.06), 앞의 논문, pp. 41-90; 嚴基杓, (2020.03) 앞 논문, pp. 5-38.

19) 영국사에 있는 덕소의 비는 일부 깨어져 탑 이름, 탑 건립에 대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학계에게 다비하여 영국사에 안장했다는 기록과 함께 이 탑의 양식이 12세기 후반경임을 인정하여 덕소의 탑으로 보고 있다(鄭永鎬, 「永同 寧國寺의 遺蹟」, 『李弘稙博士回甲紀念 韓國私學論叢』, 신국문화사, 1969; 장준식외, 『永同寧國寺』, 충청대학 박물관, 1998; 嚴基杓,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 학연문화사, 2003, pp. 433-436).

20) 승형의 비문에 팔공산 남쪽 기슭에서 화장한 후, 영골을 수습하여 보경사 동쪽 산에 탑을 세워 안장하였다고 하며 그의 비가 보경사에 남아 있어 절이 내려다보이는 이 탑을 승형의 탑으로 보고 있다(鄭永鎬편저, 『國寶』 14-석조 III, 예경산업사, 1986; 정영호, 『한국의 석조미술』,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pp.206-207).

21) 일제강점기인 1918년 간행된 『朝鮮古蹟圖譜』 6권에 桐華寺 弘眞大師塔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鄭永鎬는 「達城道鶴洞 石造浮屠」, 『고문화』 14(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76), pp. 30-36, 편저인 『國寶』 14-석조 III(예경산업사, 1986), 책임감수한 『韓國의 美』 15권(중앙일보사, 1983) 등에서 신라말 고려초의 유물로 보고 있다. 嚴基杓는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학연문화사, 2003), p. 490에서 弘眞國師 惠永(1228-1294년)의 부도로 추정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결국 이 부도는 조성 시기가 논란이 있지만 가장 늦은 추정 연대인 13세기를 하한으로 보고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다.

22) 보경사 원진국사 비문의 내용을 보면 그가 보조국사를 방문하여 참문한 적도 있으며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이러한 배경을 증명하듯 1224년에 조성된 원진국사 부도의 경당형 형태가 1235년에 세워진 송광사 2세 진각국사(혜심) 원조탑과 이후 송광사 계승자들 탑의 전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李璥馥, 「圓眞國師 承逈의 活動과 崔忠獻」, 『湖西史學』 36집(2003), p. 82에서는 원진국사가 지눌의 사상체계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23) 무학대사 비문에는 1407년 조성으로 쓰여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태조가 1397년 7월에 미리 탑을 만들기 시작하고 1405년 9월에 입적하자 그 탑에 안장한다는 구체적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사리 안장과는 달리 탑이 먼저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秦弘燮, 『개정증보판 韓國美術史年表』, 일지사, 2006, pp. 301-302 참조)

24) 嚴基杓, 「순천 松廣寺 普照國師 甘露塔과 甘露塔碑에 대한 고찰」, 『美術史學硏究』 305(2020. 3), pp. 15-19에서도 치석수법과 양식, 1926년의 해체 보수 이전의 사진 자료 등을 근거로 기단 하부 1단을 제외하면 1210년 3월 27일 보조국사 입적 직후 조성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도 많은 이전 속에서 혹 일부 부재가 손상으로 교체되었다 하더라도 현 유물의 양식상 적어도 그 원형은 지켜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25) 千惠鳳, 『韓國典籍印刷史』, 범우사, 1990년, p. 42의 도판 14.

26) 千惠鳳, 「高麗初期刊行 一切如來心祕密全身舍利寶篋印陀羅尼經」, 『中央圖書館學報』 2(국립중앙도서관, 1973), pp. 28-29과 馬場壽, 「寶篋印經の傳播と展開: スリランカの大乘と不空、延壽、重源、慶派」, 『佛敎學』 54(2012), pp. 1-21에 의하면 이 경은 인도 승려 불공(705-774년)이 당나라 玄宗의 명에 따라 경전을 구하러 師子國에 갔을 때 가져 온 것 중 하나이다. 그는 스승인 金剛智(669-741년)가 입적한 741년에 떠나 747년에 많은 경전을 가지고 돌아왔으며 이어 번역 작업에 착수하였다.

27)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篋印陀羅尼經』,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千惠鳳 (1990), 앞의 책, pp. 42-47; 곽승훈, 「고려전기 『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篋印陀羅尼經』 간행」, 『아시아문화』 12(1996), pp. 117-136; 安眞鏞(2001), 앞의 학위논문, pp. 56-63; 홍대한, 「신라와 고려시대 造塔 경전의 역할과 기능」, 『史學志』 42(2010), pp. 101-149; 이승혜, 「高麗 吳越板 寶篋印經 수용과 의미』, 『불교학연구』 43(2015. 6), pp. 31-61.

28) 이승혜(2015. 6), 앞의 논문, pp. 37-44.

29) 黎毓馨, 「五代 吳越國의 불교 유적과 유물」, 『절강성의 보물』(국립광주박물관·浙江省博物館, 2012), pp. 238-244.

30) 梅原末治安저 진홍섭역, 「五越王 錢弘俶 八萬四千塔」, 『미술사학연구』 81(1976), 51-100호 합집본, p. 288; 安眞鏞(2001), 앞의 학위논문, pp. 24-26; 주경미, 「五越王 錢弘俶의 佛舍利 信仰과 莊嚴」, 『역사와 경계』 61(2006), pp. 59-71; 최응천, 「中國 阿育王塔 舍利器의 特性과 受容에 관한 고찰」, 『동악미술사학』 12(2011), pp. 34-36.

31) 黎毓馨, 「阿育王塔實物的發現與初步整理」, 『東方博物』 31(浙江省博物館, 2009. 12), pp.33-49; 楊富學 王書慶, 「敦煌文獻 p. 2977所見早期舍利塔考」, 『敦煌學輯刊』(2010. 1기), pp. 66-89.

32) 金在滿, 「五代와 後三國·高麗 初期의 關係史」, 『大同文化硏究』 17(1983), pp. 169-207; 崔聖銀, 「羅末麗初 佛敎彫刻의 對中交涉에 대한 考察」, 『佛敎美術』 11(동국대박물관, 1992), pp. 105-130; 이기동, 「羅末麗初 南中國 여러 나라와의 交涉」, 『역사학보』 155(1997), pp. 1-24; 나민수, 「고려의 대외교역에 대하여」, 『연세경제연구』 VIII권 1호(2001. 3), pp. 1-29; 조영록, 「法眼宗의 등장과 그 海洋佛敎的 전개-10세기 중국 東南沿海의 한중 불교교류」, 『이화사학연구』30(이화사학연구소, 2003), pp. 737-758; 金渭顯, 『高麗時代 對外關係史硏究』, 景仁文化社(2004), pp. 207-223; 문명대, 「高麗佛畫의 國際性과 對外交流關係」, 『고려미술의 대외교섭』(2004), pp. 77-105; 허인욱, 「고려 초 남중국 국가와의 교류」, 『국학연구』 24(2014), pp. 219-260; 국립전주박물관편, 『당송전환기의 吳越』(2015)

33) 安眞鏞(2001), 앞의 학위논문, p. 77-78; 김대식, 「고려 광종대 대외관계」, 『사림』, 29(성균관대 수선사학회, 2008. 2), PP. 116-117.

34) 李智冠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 고려편 1(가산불교문화원, 1994), pp. 210-248과 pp. 440-513; 李智冠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 고려편 2(가산문고불교문화원, 1995), pp. 18-55.

35) 조영록, 「法眼宗과 海洋佛國 吳越-고려 불교교류와 관련하여」, 『불교연구』 41(2014), pp. 392-394; 최연식, 「고려 초 道峯山 寧國寺 慧炬의 행적과 사상 경향-신발견 塔碑片의 내용 검토를 중심으로- 」, 『한국중세사연구』 54(중세사학회, 2018), pp. 180-190.

36) 강병희, 「정토사 흥법국사실상탑의 기원과 의미」, 『미술사학연구』 278(2013. 6), pp.31-60.

37) 불탑은 3절에서 따로 다루었다.

38) 溫州博物館編, 『白象 慧光』, 文物出版社, 2010년, pp. 10-11과 pp. 116-117의 도판.

39) 溫州博物館編(2010), 위의 책, pp. 11-13과 186-187의 도판.

40) 浙江省博物館編, 『東土佛光』(浙江古籍出版社, 2008), pp. 133-134와 p. 134의 도판.

41) 趙明濟, 「高麗後期 戒環解 楞嚴經의 盛行과 思想史的 意義-麗末 性理學의 수용 기반과 관련하여」 『釜大史學』 12(1988), PP. 129-148; 金相永, 「高麗 中期의 禪僧 慧照國師와 修禪寺」, 『佛敎와 歷史-李箕永 博士 古稀紀念論叢』(1991), pp. 360-379; 박용운, 「高麗·宋 交聘의 목적과 使節에 대한 考察(上)」, 『한국학보』 21(일지사, 1995), pp. 188-210; 趙明濟, 「高麗 中期 居士禪의 사상적 경향과 看話禪 수용의 기반」, 『역사와 경계』 44(부산경남사학회, 2002. 9), pp. 110-116; 김상영, 「高麗 中·後期 禪宗界의 禪門 認識」, 『韓國禪學』 9(2005. 2), pp. 144-151; 강문선(慧謜), 「당대선에서 송대선으로의 유동적 演變의 과정-대혜종고 以前을 중심으로」, 『佛敎學報』 59(2011), pp. 9-10; 정운(신명희), 「 『華嚴經』의 禪觀 小考」, 『韓國禪學』 32(2018. 8), pp. 58-62.

42) 趙明濟, 「13世紀 修禪寺의 현실 대응과 看話禪」, 『한국선학』 1(2000년), pp.28-34.; 현각스님, 「고려 중·후기 간화선의 특징」, 『韓國禪學』 9(2005. 2), pp. 13-23

43) 朴相國, 「普照國師 知訥의 生涯와 著述」, 『普照思想』 3(1989. 12), pp. 7-18와 p. 15의 『華嚴經節要』 저술 소개; 김방룡, 「지눌 선사상 형성에 미친 중국불교의 영향」, 『불교학연구』 23(2009. 8), pp. 7-52; 강건기,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사상』(불일출판사, 2010), pp. 33-76; 吳容錫, 「대혜종고 간화선에 나타난 대승정신과 간화선 대중화에 대한 小考」, 『한국선학』 31(한국선학회, 2012. 4), pp. 39-70.

44) 모리자네 쿠미코저 진영민역, 「<화엄회해제성중만다라>와 고려 화엄」, 『불교미술사학』 7(2009), p. 10에는 <화엄해회선지식도>는 묘에가 建仁 2년(1201)에 슌가(悛賀)에게 그리게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함.

45) 石田尙豊, 『日本の美術』 270號(華嚴經繪)(至文堂, 1988), pp. 34-38.

46) 石田尙豊(1988), 앞의 책, p. 17과 pp. 39-46과 p.78의 도102 참조; 鮑志成, 『高麗寺與高麗王子』(杭州大學出版, 1995), pp. 64-65에 의하면 북송 철종 2년(1099년)에 대각국사가 화엄경각의 건립을 위해 이천 냥의 은자를 내어 휘종대인 1101년에 완성되었으며 금으로 쓰여 진 3부 『화엄경』을 비롯하여 각종 논서 600함이 있어 화엄종의 중흥을 도모하였고 후에 교종 전적의 보고로 남송 寧宗황제가 친히 와서 보고 <華嚴經閣>의 편액을 내렸다고 한다.

47) 姜熺靜, 「高麗 水月觀音圖像의 연원에 대한 재검토」, 『미술사연구』 8(1994. 12), pp. 19-25.

48) 張忠植, 『高麗 華嚴版畫의 世界』(亞細亞文化社, 1982), pp.6-14과 pp. 107-108의 『대방광불화엄경』 제 68권 변상도.

49) 鄭駜謨, 『高麗佛典目錄硏究』(亞細亞文化社, 1990), pp. 17-24; 심재열외, 「귀국하여 사죄하는 표」, 한글대장경 『대각국사문집』 외, 대각국사문집 제 8권(동국역경원, 2006. 7쇄) pp. 103-104.

50) 法頂 옮김, 『新譯 華嚴經』(東國大學校 譯經院, 1988), pp. 276-278.

51) 吳志標, 「浙江麗水靈鷲寺石塔」, 『東方博物』 30(浙江大學出版社, 2009), pp. 6-9; 溫州博物館編, 『白象 慧光』(文物出版社, 2010), p. 9; 叶挺鑄, 「宋興福寺七佛塔考略」, 『東方博物』 38(浙江大學出版社, 2011), pp. 43-54; 蘇義惠, 「平陽栖眞寺宋代五佛塔」, 『東方博物』 48(2014), pp. 62-70; 占翀, 『宋代七佛塔硏究-以浙江地區爲中心』, 중국 浙江大學석사학위논문(2014.06), pp.7-8의 표 2.1에서는 9기가 정리되어 있다,

52) 溫州博物館編(2010), 앞의 책, p. 9에서는 기록을 중심으로 오대 오월국 작으로 보고 있으며 占翀(2014.06), 앞의 학위논문, pp. 6-17에는 오대-북송 시기(907-979년)에 처음 조성되었지만 북송대 유물로 편년되고 있다.

53) 현교와 밀교의 호칭이 다르며 경전마다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 『增一阿含经』 권1의 칠불은 维衛佛, 式弃佛,随葉佛, 拘留孫佛, 拘那含牟尼佛, 迦葉佛、释迦牟尼佛이며 『長阿含經』 권1은 毗婆尸佛, 尸棄佛, 毗舍婆佛, 拘楼孫佛, 拘那含佛, 迦葉佛, 释迦牟尼佛이다. 잡밀경전의 칠불은 동일한데 帛尸梨密多羅 역 『佛說大灌頂經』의 칠불은 維衛佛, 式佛, 隨葉佛, 拘楼秦佛, 拘那含牟尼佛, 迦葉佛, 釋迦文佛이다.

54) 인도 중부 보팔 근처에 있는 산치 대탑의 북문 토라나(Torana)에 칠불 대신 일곱 개의 스투파와 聖樹가 병렬 배치되어 있다. 산치 대탑은 처음 아쇼카왕 대에 조성되었고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기원전, 후 1세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55) 賀世哲, 「關于十六國北朝時期的三世佛與三佛造像諸問題(一)」, 『燉煌硏究』 (1992.04), p. 3에 의하면 간다라지역에서의 7불은 미륵보살과 함께 나타나며 이것이 5세기 초 중국 북량에 전해진다.

56) 趙莉, 「克孜尔石窟降伏六師外道壁畫考察」, 『敦煌硏究』(1995.01), pp.146-155; 蕫華鋒, 「南, 北石窟寺七佛造像空間布局之淵源」, 『敦煌學輯刊』(2010.01), pp. 100-107; 孫曉峰, 「麥積山第127窟七佛圖像硏究」, 『敦煌學輯刊』(蘭州大學校, 2012.04), pp. 116-129.

57) 殷光明, 「北凉石塔上的易經八卦與七佛一彌勒佛彫像」, 『敦煌硏究』 51(1997. 01), pp. 81-87; 강병희, 「『熱河日記』를 통해 본 遼東白塔」, 『외대사학』 12(2000. 8), pp. 265-270; 彭建兵, 「盛唐以前敦煌石窟中的雜密七佛」, 『黔西南民族師范高等專科學校學報』, 2009년 2기(2009.06), pp. 29-30에 북량소탑에 조각된 칠불의 명칭은 잡밀경전의 과거칠불로 이 시기 돈황지역에 『佛說灌頂經』, 『大方等陀羅尼經』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고 『佛說灌頂經』의 돈황 사본인 0009호본은 태화11년(370년) 것으로 이 경이 일찍부터 이 지역에 유행하였다고 한다.

58) 彭建兵(2009.06), 앞의 논문, pp. 30-31. 于博(2013.05), 『遼代七佛造像硏究-以遼寧義懸奉國寺大雄殿七佛爲中心』, 首都師範大學碩士學位論文, pp.20-25.

59) 宋, 贊寧撰, 『大宋僧史略』(谷贇, 『遼塔硏究』, 中央美術學院博士學位論文(2013.05), p. 54의 각주 108 재인용)과 같은 학위논문, pp. 54-56.

60) 谷贇(2013.05), 앞 학위논문, pp. 61-63; 谷贇, 「奉國寺“過去七佛”造像與護國思想」, 『山東藝術學院學報』(2015.03), pp. 43-49; 閻愛宾, 「密敎傳播與宋元泉州石造多寶塔」, 『中國文物科學硏究』 27(2012.03), p. 68.

61) 劉恒武, 陳竟翹, 「薩摩塔與宋日海上絲綢之路」, 『日語學習與硏究』 180號 宗敎文化(2015. 5期), pp.100-106. 특히 재료의 분석에 근거해 절강성 영파의 중국 장인이 영파 지역의 돌로 조성해 전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62) 溫州博物館編(2010), 앞의 책, pp. 11-13과 p. 296의 도면. 이외 이 탑에서는 12세기 중엽에서 13세기 초에 간행된 西夏의 『觀無量壽經』 등도 출토되고 있어 당시 해양뿐 아니라 육로를 통한 문화교류의 양상도 알려 준다.

63) 崔仁善, 「光陽 玉龍寺 先覺國師 道詵의 浮屠殿址와 石棺」, 『문화사학』 67(1997. 6), pp. 381-393; 엄기표,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학연문화사, 2003), pp. 29-135.

64) 再万里, 『中國古代舍利瘞埋制度硏究』(文物出版社, 2013).

65) 崔仁善(1997. 6), 앞의 논문, pp. 371-381.

66) 강삼혜, 「염거화상 탑지와 탑에 대한 고찰」, 『국립춘천박물관 소장품 조사연구보고서 I 선림원종 염거화상탑지』, 국립춘천박물관, 2014, p. 174의 도 18.

67) 林綺山(1927. 11), 앞의 논문, p. 22.

68) 嚴基杓(2020. 03), 앞의 논문, p. 5의 각주 2에 의하면 林綺山스님(1892~1968년)은 1930년대부터 해방되던 해까지 송광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본관은 나주, 전남 순천 송광면 신흥리 출신이었다 한다.

69) 張元林, 「燉煌北朝時期<<法華經>>藝術及信仰考察」, 『燉煌硏究』 99(2006.06), pp. 9-23.; 张宝玺, 李现, 王万青, 「炳靈寺石窟老君洞北魏壁畫淸理簡報」, 『考古』 1986년 8기(甘肅省博物館, 炳靈寺石窟文物保管所, 1986.08), pp. 734-755.

70) 이행구(도업), 「화엄의 수행」, 『정토학연구』 11(한국정토학회, 2008), p. 104.

71) 懶翁慧勤(1320-1376)의 현창 운동 속에서 그의 사리 숭배가 부처님처럼 신앙되어 여러 탑이 조성되고 형태도 불탑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하는 南東信, 「여말선초기 懶翁 현창 운동」, 『韓國史硏究』 139(한국사연구회, 2007.12), pp. 161-203의 내용이 당시 불교계의 상황으로 보아 보조국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Fig. 1.
<불일 보조국사 감로탑>, The Gamro Stupa for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 Goryeo Dynasty, about 1210. Suncheon City, Korea.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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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감로탑 상층기단>, The upper base (medhi) of Gamro stupa.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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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감로탑 탑신>, The body (anda) of Gamro stupa.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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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감로탑 옥개석>, The roof stone of Gamro stupa.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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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상륜부>, The upper part (chattra) of Gamro stupa.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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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기단부 연판 세부>, 1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 Songgwang Temple, Goryeo Dynasty, 1210, 2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Wonjin, Bogyeong Temple, Goryeo Dynasty, 1224, 3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Wongag DeogSo, YeongGug Temple, Goryeo Dynasty, 1180, 4 A Dohak-dong monk stupa, Donghwa Temple, Goryeo Dynasty, Before the 13th century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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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기단부 연판 세부>, 1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Chongjin (Mongyeo), 3rd generation, 1252, 2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WonGam (ChunGji), 6th generation, 1293, 3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JaJeong (Il-In), 7th generation, 1301, 4 The Buddhist priest Go Bong (Beopjang), 16th generation, 1430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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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옥개석 세부>, 1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 1210, 2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Wongag, Goryeo Dynasty, 1180, 3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Wonjin, 1224, 4 A Dohak-dong stupa, Donghwa Temple, Before the 13th century.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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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9.
<상륜부 세부>, 1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Bojo, 1210, 2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Wonjin, 1224, 3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Jingak, 1235, 4 The honorable State Preceptor WonGam, 1293, 5 The Buddhist priest Go Bong stupa, 1430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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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0.
<고려 총지사 간행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 Goryeo, The illustration of Chongjisa Edition of the “Precious Casket Seal Dharani Sutra”, 1007, from HanGugJeonJeog-InSwaeSa: Korean Documentary Printing History, p. 42, Fig.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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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1.
<중국 浙江省 溫州 白象塔 출토목제 사리탑형 사리기>, A wooden stupa-type sarira Reliquary excavated in Bái xiàng Pagoda, Wenzhou Museum, China. North Song Xián píng period (998-1003)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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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2.
<중국 浙江省 溫州 慧光塔 출토 鍍金舍利甁銀龕>, A Sarira reliquary of silver-plated niche shape with gold-plated bottle excavated in Huiguang Pagoda in Wenzhou, Wenzhou Museum, China. North Song, 1035, from Bái xiàng huìguāng, figure on page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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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3.
<乙丑本 『보협인다라니경』 변상도>, The illustration of “Precious Casket Seal Dharani Sutra”(Yǐ chǒu Edition), Zhejiang Provincial Museum. North Song, 965, from Dōng tǔ fóguāng, figure on page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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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4.
<일본 園城寺 소장 「華嚴海會善知識圖」의 비슬지라(鞞瑟胝羅) 거사 선지식>, Biseuljira Grhapati in <Kalyana-mitras Omament of Avatamsaka Ocean Assembly>, Japan Enjoji Temple collection from Nihon no bijutsu no. 270, p.78, figure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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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5.
<해인사 소장 사찰판 80권 『대방광불화엄경』 68권 변상도의 비슬지라(鞞瑟胝羅) 거사 선지식>, The illustration of Biseuljira Grhapati, Haeinsa Temple’s collection of temple editions, 80, “the Avatamsaka Sutra”, from HWA-OM (Avataṃsaka Sutra) ENGRAVINGS IN THE KORYO DYNASTY, Volume 68, figure on pp.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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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6-1.
<중국溫州市眞如寺칠불석탑전경>, The Pagodas of Seven Past Buddha in zhēn rú temple, Wenzhou, China. North Song, 1033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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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6-2.
<眞如寺 칠불석탑 7호 탑 탑신 받침 복연과기단 상대석앙연>, The lotus plaque at the body and the base (medhi) of the Pagodas of Seven Past Buddha in zhēn rú temple, North Song, 1033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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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7.
<中國 湖北省 玉泉寺 13층 철탑 기단부 복연>, The lotus plaque at the base of the 13th floor Pagoda made of iron at Yuquan Temple, Hubei Provincee, China. North Song, 1061 (photograph by Kang, By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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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8-1.
<白象塔상륜부노반과복발의연판도면>, The lotus plaque at the harmika and dome (anda) drawing of the Bái xiàng Pagoda, Wenzhou Museum. North Song Xián píng period (998-1003), from Bái xiàng huìguāng, figure on p.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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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8-2.
<白象塔상륜부노반과복발의연판도면>, The lotus plaque at the harmika and dome (anda) drawing of the Bái xiàng Pagoda, Wenzhou Museum. North Song Xián píng period (998-1003), from Bái xiàng huìguāng, figure on p.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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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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