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Art Hist > Volume 311; 2021 >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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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일본 도자기 중에서도 ‘우츠시(寫し) ’를 가장 많이 지향하고 제작한 가마는 바로 교토(京都)를 중심으로 생산된 京燒(쿄야키)이다. 근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비판적인 시각이었던 ‘우츠시’를 쿄야키를 중심으로 미술사적으로 올바르게 평가하려는 시도로는 이하와 같은 연구가 있다. 尾野善裕, 「仁阿弥道八と建仁寺」, 『天才陶工 仁阿弥道八』(東京: サントリー美術館, 2014), p p. 197-201; 前崎信也, 「近代陶磁と特許制度―清風與平から見た 「写し」 をめぐる京焼の十九世紀―」, 『写しの力―創造と継承のマトリクス』(京都: 思文閣出版, 2013), pp. 73-109.
3) 이 분야에 대한 연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淺川伯教, 『釜山窯と對州窯』(東京: 彩壺會, 1930)에는 倭人求請謄錄 甲申(1644) 6월 12일의 기록에 땔감이나 가옥(假屋) 건축에 대한 요구가 나타나는 것을 근거로 이즈음에 왜관 안에 가마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泉澄一도 앞의 책에서 아사카와의 학설에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문헌만으로 왜관 안에 가마가 설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필자는 『邊例集要』 癸卯(1663)에 ‘自館中’이라는 기록으로서 그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보고자 한다.
4) 대표적 논저는 주3과 4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다. 森村健一(모리무라 켄이치), 「粉青沙器から釜山窯系へ展開-15-17世紀における日本遺跡出土品と比較して-」, 『考古歷史學誌』 8(동아대학교, 1992), pp. 355-375; 茶道資料館, 『高麗茶碗 御本とその周辺』(京都: 1992); 赤沼多佳, 「注文の高麗茶碗」, 『高麗茶碗 御本とその周辺』(京都: 茶道資料館, 1992), pp. 90-105; 赤沼多佳, 『高麗茶碗』(東京: 至文堂, 2001); 片山まび·永井正浩, 「韓国·東亜大學校博物館所蔵の釜山窯出土片について」, 『東洋陶磁』 43(東京: 東洋陶磁學會, 2014), pp. 93-125; 鈴木裕子, 「近世都市江戸における文献史料からみた高麗茶碗の動向」, 『江戸遺跡研究』 5(東京: 江戸遺跡研究會, 2018), pp. 1-21; 三井記念美術館, 『茶の湯の名碗 高麗茶碗』(東京: 2019). 방병선, 「17-18세기 동아시아 도자교류사 연구」, 『美術史學硏究』 232(韓國美術史學會, 2001), pp. 131-155; 앞의 필자, 「조선 후기 도자의 대외교섭」, 『朝鮮 後半期 美術의 對外交涉』(예경, 2007), pp. 253-284; 片山まび, 「부산(釜山) 고관요(古館窯)에 대한 고찰(考察) -위치(位置), 기술(技術), 그리고 의의(意義)를 중심으로-」, 『東洋美術史學』 3(동양미술사학회, 2015), pp. 49-88; 카타야마 마비, 나가이 마사히로,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부산요 출토편에 대한 고찰」, 『博物館硏究論集』 22(부산박물관, 2016), pp. 125-183; 권상인, 「倭館窯에 관한 小考」, 『차문화·산업학』 32(국제차문화학회, 2016), pp. 1-28; 김현지, 「조선후기 釜山 新官窯 연구-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신관요 수습유물을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허현정, 「조선후기 倭館窯의 運營」,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19; 앞의 필자, 「조선후기 왜관요의 자원 수급」, 『항도부산』 39(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20), pp. 205-239.
6) 부산지역의 강서구 녹산동 가마터(東亞細亞文化財硏究院, 『釜山 菉山洞 靑磁窯址』, 2012), 기장 상장안 및 하장안 가마터(釜山博物館, 『機張 上長安遺蹟』, 2011; 『機張 下長安遺蹟』, 2013) 등 정식 발굴조사에 따른 성과에 따라 왜관요라고 지칭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부산박물관 학술연구총서 제43집 釜山도자기 천년의 지혜를 담다』(부산박물관, 2014)에 부산요에 해당하는 여러 가마터가 소개되었다.
7) 高橋義雄編, 『大正名器鑑』 7(東京: 大正名器鑑編纂所, 1926). 현재 일본 다도구 연구에 있어 기준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연구 논문 등에 반드시 인용되고 다루어지는 책이다.
8) 賣立目錄은 일본 茶器 연구에 있어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문헌이다. 데이터베이스는 다음과 같이 공개되어 있다. 東京國立文化財硏究所編, 賣立目錄 검색 사이트. https://www.tobunken.go.jp/archives/%E6%96%87%E5%8C%96%E8%B2%A1%E9%96%A2%E9%80%A3%E6%83%85%E5%A0%B1%E3%81%AE%E6%A4%9C%E7%B4%A2/%E5%A3%B2%E7%AB%8B%E7%9B%AE%E9%8C%B2%E4%BD%9C%E5%93%81%E6%83%85%E5%A0%B1/
9) 전근대의 일본인의 이름은 같은 한자라도 다양한 발음이 존재하였는데, 기록이 없는 한 정확한 발음표기를 알 수 없으므로 가장 일반적인 표기로 제시하였다. 즉 두 가지 이상의 발음이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높은 빈도로 사용되는 발음을 사용하였다.
14) 도쿄국립박물관, https://webarchives.tnm.jp/dlib/detail/3890;jsessionid=A150C2581941E1019F04C16E51B1A6E9
15) 『銘物集』 宗甫公好之立鶴の茶碗高麗御本手本也筒かたニて割高台前後に鶴之画有一説ニ細川三斎七十之賀ニ被召候時御茶ニ被下候尤江戸二の丸の御囲ニて此説座敷杖をはめし有之しとなり 즉, ‘엔슈가 선호한 입학다완은 왜관요에서 제작된 것이다. 통형이며 할굽이 있고 동체의 앞뒤에 학 그림이 있다. 일설에는 細川三斎가 칠순축하를 위해 德川家光의 초대를 받아 갔을 때 받은 다완이라고 한다. 또한 기록하기를, 에도성 니노마루(二の丸, 제2곽)의 오카코이(御囲)에서 축연이 열렸는데, 그때 (산사이가)연회자리에서 지팡이를 짚었다(허용되었다는)’라는 일화가 전해진다.
16) 松山米太郎, 『茶道四祖伝書 二 三齊公傅書全』(東京: 秋豊園, 1933). 大福茶(다이후쿠차)란, 정월에 장수를 기원하며 마시는 차로, 다시마와 매실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 마신다.
17) 상자의 뒷면에 붙어있는 첩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遠州好本歌御本焼 立鶴茶碗 遠州好本歌 御本焼 立鶴茶碗 遠州公正月三箇日以此 茶碗喫大福矣三井崇清 所持之效公之致有年 吉見喜斎請求焉亦准 偖之做而珍翫之也」.
20) 국립중앙박물관, 『경상남도 동부지역 가마터 지표조사 보고서』(2018); 서유리, 「경상남도 동부지역 가마터 조사 자기편의 양상과 의의」, 『경상남도 동부지역 가마터 지표조사 보고서』(국립중앙박물관, 2018), pp. 214-243.
21) 片山まび, 앞의 논문(2015); 尾上博一, 「金石城跡出土の高麗茶碗の整理と分類ー研究の糸口としてー」, 『西海考古』 8(長崎: 西海考古同人會, 2012), pp. 159-170; 오노우에 히로카즈, 「쓰시마 출토 조선시대 도자기」, 『계간 한국의 고고학』 8(주류성출판사, 2021), pp. 40-47.
27) 최근 池內敏의 연구에서는, 柳川가 宗氏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지의 장악을 둘러싼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池內敏 「 「柳川一件」の歴史的位置」, 『譯官使·通信使とその周辺』(名古屋: 「訳官使·通信使とその周辺硏究会」 2020, pp. 51-66).
28) 泉澄一, 앞의 책(1986)을 참고로 하고 원문을 재확인한 결과 1934년에 주문된 다기는 다음과 같다. 화살표 방향으로 헌납되었다. 2월 14일, 掛川藩主·青山幸成→ 幕府馬方. 高麗白茶碗 5개. 3월 28일, 宗義成→ 規伯玄方, 高麗茶碗 4개. 4월 16일, 宗義成→ 酒井忠勝, 新渡高麗茶碗 8→ 酒井忠勝, 5개 반납/石川千左衛門(酒井의 신하?), 高麗茶碗 2개 花房勘兵衛(御書院番), 고려다완 1개/以酊菴, 高麗茶碗 1개. 4월 17일, 宗義成→ 柳生宗矩,今燒高麗茶碗 8개. 8월 17일, 平松右衛門督 高麗新渡茶碗 1개/宗義成→ 龍慶(에도성 茶湯僧?) 高麗荒茶碗 2개.
30) 大橋康二, 「肥前のやきものと高麗茶碗」, 『高麗茶碗―論考と資料』(京都: 河原書店, 2003), pp. 159-169; 尾崎直人, 『福岡市美術館叢書5 筑前高取焼の研究』(福岡: 海鳥社, 2013).
32) 泉澄一, 앞의 책(1986)을 참고로 하고 확인 가능한 원문은 모두 다시 확인하였다. 1637년 9월: 宗義成→ 酒井忠勝→ 家光, 新渡高麗茶碗 1상자 20개. 1638년 11월 2일: 酒井忠勝→ 家光, 조선다완 1상자.
35) 渡邊良次郎, 「德川家光と茶道」, 『國學院雑誌』 89(東京: 國學院大學, 1988), pp. 314-326; 石井智恵美, 「 『茶會集』 の評釈 (二): 正保元年の山里茶會」, 『教育學部紀要』 53(埼玉: 文教大學教育學部, 2019), pp. 298-276.
38) 이하 사료는 禮曹에서 廟堂한테 보낸 狀啓인 점으로 미루어,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의 주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邊例集要』 卷之十二 求貿 亥三月,府使趙存性時,倭人持書契請陶鑄茶器甫兒·瓦器等物,使金海匠人陶給緣由,馳啓。 無回下 四月,牛黃羊口·鷹子·陶器求貿書契頭倭橘智種等,賫來呈納是白乎等,以同書契,捧上上送爲 白乎旀,各樣物種,報本道分定入給,而其中鷹子段,減數許貿計料事 啓。
42) 矢部誠一郎, 「資料:『二三代将軍御会記』」, 『茶の湯文化學』 8(東京: 茶の湯文化學会, 2001); 中路のぶ代, 「〈研究ノート〉茶の湯における中国青花(染付) 磁器受容の様相ー十七世紀前半を中心にー」 『東洋陶磁』 44(東京: 東洋陶磁學会, 2015), pp. 123-151. 고려다완이 사용된 기록은 다음과 같다. 寬永4(1627) 2월27일 家光 다회:高麗割高臺(藤堂高虎 바침). 5월3일 家光 다회:三嶋曆(인화분청) 다완. 6월25일 家光 다회:高麗割高臺(藤堂高虎 바침). 9월13일~16일 秀忠 다회:高麗다완. 寬永5(1628) 1월18일 秀忠·家光 다회:高麗割高臺(土井利勝 바침). 1월19일~1월20일 家光 다회:高麗割高臺(土井利勝 바침). 2월13일 家光 다회:高麗割高臺. 3월13일 家光 다회:高麗 千鳥(井戸). 3월22일 秀忠 다회:三嶋香合. 4월3일 秀忠 다회:阿けの井戸. 6월11일 秀忠 다회:三嶋曆, 銅壺之間에 高麗茶碗. 10월6일 家光 다회:高麗割高臺. 寬永6(1629) 1월28일 家光 다회:茶碗 新渡高麗(割高臺). 2월13일 家光 다회:茶碗 新渡高麗(割高臺). 4월29일 家光 다회:茶碗 高麗割高臺. 5월23일 家光 다회:茶碗 高麗割高臺.
44) 松山米太郎, 앞의 책(1933) 참조. ‘古織’은 무장이자 茶匠으로 유명하던 古田織部(후루타 오리베: 1544-1615)로 그가 디자인했다고 전해진 ‘割高臺’ 다완은 현재 도쿄 畠山記念館(하타케야마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46) 小川裕充, 「黄筌六鶴図壁画とその系譜∼上∼薛稷·黄筌·黄居采から庫倫旗1号遼墓仙鶴図壁画を経て徽宗·趙伯·牧谿·王振鵬,浙派·雪舟·狩野派まで」, 『国華』 1165(東京: 国華社, 1992), pp. 3-22; 黄筌六鶴圖壁畫とその系譜(下)薛稷·黄筌·黄居采から庫倫旗一號遼墓仙鶴圖壁畫を經て徽宗·趙·牧谿·王振鵬、 浙派·雪舟·狩野派まで」, 『国華』 109(4), (東京: 国華社, 2003), pp. 7-25.
47) 홍선표, 「전통 花鳥畫의 역사」, 『朝鮮時代繪畫史論』(文藝出版社, 1999), pp. 525-526; 김윤정, 「고려청자 문양의 詩·畵적 요소와 도상의 독창성」, 『美術史學 』 28(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4), pp. 351-382; 片山まび, 「象嵌青磁にあらわされた 「六鶴図」 について」, 『吉岡庸暢先生古希記念論集 陶磁器の社会史』(富山: 桂書房, 2005), pp. 29-40.
51) 한성욱, 「日本 鎌倉出土 高麗青瓷의 硏究」, 『東亞文化』 창간호(東亞文化硏究院, 1999), pp. 153-207. 이 논문에서 언급된 운학문은 小町1丁目120番地1地点에서 1점, 若宮大路周辺遺跡(小町1丁目扇ケ谷線路)에서 2점, 小町2丁目345番2地点 2점, 千葉地東遺跡 2점, 今小路西遺跡, 御成町625番3地点, 本覚寺, 東勝寺, 報國寺, 覺園寺. 米町遺跡, 和賀江島遺跡에서 각 1점씩이다.
56) 『寛政重修諸家譜』에 기재된 德川家光 그림은 다음과 같다. (久能山東照宮博物館, 『德川歴代將軍の書画』 (1971), pp. 217-218). 松平清昌<清昌像>(권21), 松平忠實<岩に鶺鴒>(권27), 松平忠隆<竹に雀>(권31), 土岐頼久<翡翠>(권293), 坂洞菴<鶺鴒>(권299), 浅野寧子<枯木に小鳥>(권309), 安倍信成<野馬>(권355)·<枯木に木兔>(권355), 牧野信成<梟>(권367), 牧野親成<木に鴗>(권367), 杉浦政清<木兔>(권528), 岡本諸品<翡翠>(권593), 永井尚政<画(寛永八年)>(권619), 大久保忠昌<翡翠>(권705), 小河政勝<雀>(권887), 三宅康広<枯木に鳥>(권1004)·<若松(扇面)>(권1004), 神尾元珍<団扇>(권1044), 大岡直政<花鳥風月四季二幅>(권1064), 大草公継<松>(권1066), 大草高盛<猿>(권1067)·<梅>(권1067), 三枝守清<梅>(권1151), 服部順定<樹に鳥>(권1358), 数原宗和<神農>(권1359), 狩野尚信<画>(권1433).